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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의 편지교실 / 미시마 유키오 / 현대문학

 

 만사를 전화로 해결하는 세상이라 미국의 일부 도시에서는 이미 영상전화도 실용화되었지만 편지의 효용은 여전해서, 사람들은 잘 봉한 종이의 밀실 안에서 느긋하게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이야기할 수도 있는가 하면 엎드려 누워 이야기할 수도 있고, 상대가 누구든 다섯 시간 동안 독백을 들려줄 수도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마치 커다란 호텔 객실에서처럼 아주 예의 바르고 격식을 차린 대화에서부터 안방에서 나누는 정담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대화를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게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p.13)

 

 세상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목적을 향해 매진하고 있고 사람이 타인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상당히 예외적인 일임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당신이 쓰는 편지에는 생생한 힘이 갖추어지고 타인의 마음을 뒤흔드는 편지를 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p.268-269)

 

 

옷을 입다 패션을 만들다 / 정연이 / 에코리브르

 

 사람들은 참 못됐다.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인간의 소속감 욕구는 어느 시대건 배척할 대상을 찾아 증오하고 혐오하며, 상대적 안정감을 갈구한다. 중세 기독교인은 경멸의 뜻이 담긴 악마의 무늬를 이제 사회의 약자에게 강요했다. 죄수, 사생아, 농노, 매춘부, 광대, 백정, 집행을 앞둔 사형수부터 유대인과 이단자까지. 당대 사회 밑바닥이라 인식했던 ‘다양한’ 사람에게 줄무늬를 입도록 했고, 몸에 걸치는 의복과 장신구를 통해 어떤 식으로든 줄무늬 착용을 의무화했다. 줄무늬는 주목성으로 이들을 눈에 띄게 만들어 소위 ‘선량한’ 일반 사람과 섞이지 않도록 하는 동시에, 불경스러운 상징성을 덧씌우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이를테면 사회에서 버림받았거나 배척하는 가장 미천한 사람들에게 찍는 낙인과 같은 것이었다. (p.58)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더 약은 무리는 전쟁을 이용해 이익을 취한다. 공포심을 자극해 주종 관계를 만들고, 무기를 팔고, 영웅담을 판다. 전쟁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사람들은 전쟁의 서사와 극적 요소를 소비하고, 전쟁이 빈번한 시기라면 군에 큰 관심을 갖는다. 민족과 국가를 위해 몸 바쳐 싸운 용맹한 전쟁 용사들의 제복은 근사해 보일 뿐만 아니라, 기능과 효율 측면에서 당대 최신 기술을 반영한다. 이 때문에 많은 군복 아이템은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일반인에게 유행처럼 번진다. 편하고 멋지니까!
 오늘날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베레모, 카디건, 트렌치코트, 더플코트, 보머 재킷, 야상 재킷, 세일러복, 피코트 등 수많은 패션 아이템이 군복에서 유래했다. (p.76-77)

 

 19세기 중반 실크 햇이 유행하기 전까지 300여 년간 최고의 모자 재료는 비버였다. 16세기 후반에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비버 가죽 모자가, 17세기에는 유럽과 미국 전역에서 비버 모피나 펠트로 만든 비버 햇이 크게 유행했다. 비버 털은 가볍고 내구성이 좋을 뿐만 아니라 부드럽고 착용감이 좋아 최상품으로 여겼다.
 서구인은 비버를 얻기 위해 북아메리카로 몰려가 남획을 했고, 늘 그렇듯 어떤 이들은 그 틈바구니에서 모피 장사로 재벌이 되었다. 아메리카 모피 사(American Fur Company), 허드슨 베이 사(Hudson’s Bay Company)는 이렇게 북미 원주민과 비버 모피 거래를 통해 탄생했다.
 비버의 수난에 불을 댕긴 계기는 영국의 찰스 1세가 내린 복제령이었다. 패션에 매우 민감했던 영국의 찰스 1세는 그의 아내 앙리에트 마리와 함께 당시 유행의 첨단에 있던 패션 리더였다. 이러한 멋쟁이 찰스 1세가 귀족들에게 비버 햇을 쓰도록 하는 복제령을 공표하면서 무수한 비버가 멸종 직전까지 살육되었다. (p.88)

 

 비버 햇의 수요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모자 장수들은 값비싼 비버 털을 대체할 다른 동물의 털을 찾고자 했다. 그러나 기름진 비버의 털과 달리 토끼나 다른 동물의 털은 단백질 분해가 잘 되지 않아, 촉감과 광택이 좋지 않았다.
 특히 문제는 뻣뻣한 질감이었는데, 사람들은 우연히 동물의 털을 수은 용액에 담그는 캐러팅(carroting)을 거치면 더 빨리 부드럽게 되어 펠트로 만들기 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모자 제작은 캐러팅 공정과 함께 가속화되었다. 공장 노동자들은 오직 최신 유행 모자를 더 빨리, 더 많이 만들기 위해 하루 종일 수은을 녹인 질산 용액에 맨손을 담그고 동물의 털을 빨아댔다. 수은 증기를 입과 코로 들이마신 노동자들은 수은 중독으로 인해 극심한 피부병은 물론 신경계 이상 증세를 보였다. 손을 떨고, 말을 더듬고, 몸을 가누지 못하거나 중얼거리는 치매 증상을 보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미친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에 ‘모자장이처럼 미친(mad as a hatter, 아주 화가 난)’이라는 관용어가 등장하고, 모자장이는 미치광이(mad hatter)라는 억울한 별명을 얻게 된다.
 당시 의학계가 수은의 위험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장 논리에 따라 모자 산업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정보와 적절한 보호 조치 없이 일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상해를 입거나 서서히 죽어갔다.
 패션의 역사 속에서 유행은 때때로 누군가의 고통과 희생을 수반한 채 유지된다. 피복 재료로 쓰기 위해 도살하는 수많은 동물, 열악한 환경의 노동자들, 그리고 유행 아이템을 획득하고 사회적 인정을 받으려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까지. 패션은 모두에게 항상 기쁨과 행복만 주는 것은 아니다. (p.90-91)

 

 그곳의 노동자들은 대부분 눈이 큰 외국인이었다. 그들은 거대한 워싱 기계 속에 상체를 집어넣고 옷을 잡아 빼거나, 이쪽에서 저쪽 기계로 물건을 옮기고 있었다. 모래를 분사해 데님의 부분 탈색 효과를 만들거나, 사람 다리처럼 생긴 틀에 청바지를 끼워 고정하고 화학 약품으로 이펙트를 만들고 있었다. 강한 열기와 약품 냄새가 뒤섞여 작업하는 사람들 가까이 다가갈수록 기침이 나고 눈물이 났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기계 소음에 귀가 먹먹했다.
 잠시 방문한 내가 이렇게 불편하고 힘든 이 환경이 누군가에겐 일상이고, 일터라니.
 작업 중인 공장 노동자들을 보면서, 먼 옛날 이야기처럼 아득히 잊고 있던 사실을 상기했다. 언뜻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화려한 패션 산업의 제조 공정 대부분은 여전히 사람 손으로 이루어진다는 것 말이다. 내가 원하는 물 빠짐 정도, 올 풀림 효과, 주름 모양, 틴 컬러(tin color)를 만들기 위해서 누군가 손으로 작업하며 육안으로 확인해야만 한다. 완전한 자동화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제조 공정에 사람의 노동력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그 작업 환경에 대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잊고 있었다.
 패션 산업은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이, 더 빠르게 생산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값싼 인력을 찾아 헤맨다. 임금이 낮은 외국인 노동자를 불러들이거나, 비용을 더 낮출 수 있는 해외로 생산처를 옮겨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 수단을 가진 사람들이 더 효율적으로 생산하려는 노력은 합당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안전과 공정의 측면에서 볼 때, 아직 사회적으로 합의하지 못한 모호한 경계에서 고통받는 누군가가 늘 있다는 것이다. (p.188-190)

 

 백화점에서 17만 8000원에 팔리던, 내가 디자인한 그 청바지. 수십 명의 손을 거치는 워싱 가격은 6000원에도 못 미친다. 그런데 나는 자본가의 충실하고도 잘 훈련된 개처럼 거기서 또 가격은 깎아달라 떼쓰고, 공정은 추가해달라고 우기고 있었다. 마진율이 높다고 내 월급이 올라가는 것이 아닌 줄 알면서도. 그때는 그것이 디자이너의 열정이라고 생각했다. 선배들이 몸소 보여줬던 ‘안 되면 되게 하라!’ 정신을 마음에 고이 품고, 조금이라도 덜 주고 더 챙겨 와 회사에 보탬이 되고자 악을 써댔다. 나는 한때 그렇게 쓸모 있는 디자이너로 인정받고자 안간힘을 쓰고 살았다. (p.191)

 

 루이의 안락사 예정일 하루 전, 나는 동호회 온라인 게시판에 올라온 공고를 보고 다급한 마음에 보호소로 연락을 취했다. 그 아이는 내가 꼭 데려갈 테니 사흘만 기다려달라고. 보호소 담당자는 무척 난감해했지만, 어쨌든 루이와 나는 안락사 예정일이 이틀 지난 2012년 5월 15일에 처음 만났다. 보호소 직원이 루이를 우리에서 꺼내 품에 안고 사무실로 나올 때, 우리는 서로를 멀리서 처음으로 바라보았다. 루이는 시선을 내게 고정한 채 꼬리를 있는 힘껏 흔들어댔다. 보호소 직원은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하는 루이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 아이들이 이래요. 자기 살리려고 온 사람은 귀신같이 알아보고 이렇게 반가워해요.”
 루이는 우리가 결국 함께 살게 될 것이라고 직감했던 것 같다. 임시 보호를 하는 동안 우리는 정이 들어 자연스럽게 가족이 되어 버렸다. 루이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을 나누고 서로 아끼며 사랑하는 가족이 되리라는 것을. 반려동물을 키워본 경험이 전혀 없는 남편에게도 루이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우리는 이미 완전한 가족이다. (p.200)

 

 과잉 생산은 과잉 소비를 부추긴다. 통계에 따르면 미국인 1인당 의류 소비량은 1980년대보다 5배 증가했다. 평균 5.5일마다 새 옷을 구매하고 옷 한 벌당 착용하는 횟수는 평균 7회이다. 패스트 패션 덕에 소비자는 쉽게 지갑을 열어 일시적 만족을 얻고, 잠시 입다가 또 망설임 없이 버린다. 79억 명이 사는 지구에서 한 해 동안 생산하는 옷은 약 1000억 벌이고 그중 330억 벌이 같은 해 폐기된다. 팔지 못한 재고, 한 철 입고 버리는 옷 등이 이에 해당한다. (p.209)

 

 의류 수거함을 통해 수거한 옷 중 빈티지 의류로 유통하고 재사용하는 것은 단 5퍼센트에 불과하다. 나머지 95퍼센트는 인도, 방글라데시, 케냐, 가나와 같은 개발도상국으로 수출한다. 한국은 미국, 영국, 독일, 중국에 이어 중고 의류 수출 5위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소득 수준과 인구수를 감안해보면 한국인의 옷 사랑, 아니 의류 소비량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다.
 수출된 곳에서도 헌 옷의 운명은 다르지 않다. 이미 사용 가치가 없는 옷이므로 현지에서 재사용하는 비율 역시 낮다. 그런데 문제는 개발도상국은 폐기물 처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아, 헌 옷을 불태우거나 그냥 버리기 때문에 더욱 심각한 환경 오염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버린 옷 대부분은 어느 개발도상국으로 가서 거대한 쓰레기 산을 이루고 있다. 썩지 않는 옷 무덤은 토양과 수질을 오염시키고, 소들은 초원에서 풀을 뜯는 대신 버려진 옷을 먹는다. (p.211)

 

 2018년 유엔 유럽 경제 위원회는 패션 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해 왔다고 경고했다. 통계에 따르면 패션 산업의 탄소 배출량은 전체의 10퍼센트를 차지한다. 이는 항공과 해운 산업을 합한 것보다 많은 수치이다. 탄소 배출량뿐만 아니라 물 사용량, 토양 오염, 쓰레기 발생 등의 측면에서 패션 산업은 환경 오염의 원인 중 2위에 해당한다.
 패션 산업의 가치 사슬은 매우 복잡하다. 제품을 생산하기까지 농업과 목축업을 통한 원재료 추출, 편직 및 직물 염색 등 가공, 후가공 등 수없이 많은 과정을 거친다. 과정마다 많은 에너지와 자원이 필요하고 오염 물질을 배출한다. 예를 들어 청바지 한 벌을 만들기까지 목화를 재배해 실을 만들고, 원단으로 편직해 염색하고, 재단·봉제한 뒤 워싱 등 후가공을 거쳐 상품으로 완성하려면 물 7500리터가 필요하다. 하루에 물 8잔을 마신다고 가정하면 한 사람이 10년 동안 마실 수 있는 양이다. 또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휘발유 승용차로 46.5킬로미터를 달리는 것에 준하며, LED 형광등을 1950시간 켜놓는 것과 맞먹는 에너지를 소비한다.
 패션 상품의 제조 단계뿐만 아니라 유통·판매하여 소비자가 사용하는 동안에도 많은 오염 물질이 발생한다. 의류 제품의 60퍼센트는 합성 섬유이다. 합성 섬유 옷은 입고 있을 때, 그리고 세탁할 때 많은 미세 플라스틱을 방출한다. 한 연구에 의하면 합성 섬유를 한 번 세탁할 때 약 70만 개의 미세 플라스틱을 배출한다. 직경 5밀리미터 이하의 미세 플라스틱은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토양, 담수, 해양으로 흘러 들어간다.
 그리고 다시 인간에게 돌아온다. 우리는 공기로, 식수로, 채소와 해산물로 결국 다시 그것을 섭취한다. 우리는 일주일에 평균 신용카드 한 장만큼의 플라스틱을 먹고 있다. (p.215-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