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하는 법 / 장은교 / 터틀넥프레스
먼지 쌓인 책장을 둘러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왜 나에겐 기회를 주지 않는 걸까. 나는 왜 사람에겐 기회를 주지 않는 걸까. 재미없다고 묵혀두었던 책은 다시 읽어보면서, 왜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두 번째 기회를 주지 않는가. 관심 없던 분야의 책도 누군가 좋다고 하면 일단 사서 시도해보면서 왜 사람에게는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가. 사람이 한 권의 책이라면 나는 어떤 페이지를 본 것일까. 어떤 페이지만을 보고 이렇다 저렇다 판단한 것일까. 그렇게 놓쳐버린 사람, 흘려버린 만남이 얼마나 많을까. 우리가 다른 날, 다른 마음으로 만났다면 분명 다른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오늘 만난 그 사람도 나와 비슷한 얼굴로 돌아가 후회하고 있을까. 인터뷰를 망친 우리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 (p.9)
우리가 인터뷰이에게 건네야 할 것은 열쇠입니다. ‘열쇠 같은 질문’입니다. 그에게 열쇠가 되어줄 질문을 건네고, 그가 스스로 자신의 마음속을 열고 들어가기를 기다리는 것. 우리가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그의 어린 시절이 궁금하다면? 그를 어린 시절로 데리고 갈 만한 질문을 준비합니다. “어린 시절엔 어떤 아이였어요?”라고 시작할 수도 있겠지만, 보다 구체적으로 그를 어린 시절의 한 풍경으로 이동시킬 만한 질문이 더 좋을 겁니다. “초등학교가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가는 아이였나요? 떡볶이집이나 문구점 앞을 서성이는 어린이였나요?”처럼 생생한 장면 안으로 인터뷰이가 들어갈 수 있는 질문이 더 좋습니다. 이런 질문은 인터뷰이의 마음 안에 있는 여러 방 중 ‘초등학생 방’ 앞에 그를 서게 할 수 있습니다.
성공한 외식사업가에게 식당을 열게 된 계기와 초기의 성공 전략을 묻고 싶다면 어떤 질문으로 시작하는 게 좋을까요? “어떻게 식당을 시작하게 됐어요?” “사업 초창기엔 어땠나요?”라는 질문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식당을 처음 열던 날 기억하세요? 그날 하루는 어땠나요? 첫 손님 기억하세요?”라고 시작한다면 어떨까요. 그를 ‘사업의 첫날’로 데려가는 겁니다. (p.106-107)
인터뷰에 따라 상대에게 불편한 질문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인터뷰이의 아픈 경험에 대해 물어야 할 때, 그가 받고 있는 비판(또는 그가 과거에 한 명백히 잘못된 행동)에 대해 물어야 할 때, 그가 받고 싶어 하지 않은 질문인 것을 알면서도 인터뷰어로서 어려운 질문을 해야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럴 때야말로 상대방에게 건네야 하는 것은 거미줄이나 곡괭이, 삽, 화살 같은 질문이 아니라 열쇠 같은 질문입니다. 윽박지르거나 추궁하지 않고, 속이거나 현혹하지 않고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 질문. 힘든 상황에서 인터뷰에 응한 사람은 무엇보다도 인터뷰어가 지금 어떤 의도로 질문하는지 신경 쓸 수밖에 없습니다. 앞에 있는 이 사람은 내 얘기를 편견 없이 들어줄 사람인가,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해도 왜곡하거나 악용하지 않을 사람인가, 이 이야기를 꼭 해야 한다면… 지금 이 사람에게 하는 게 나을 것인가.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당신이 말하는 그대로 정확하게 듣겠다’는 믿음을 주는 것입니다. (p.110-111)
꼭 오랜 경험을 가진 사람에게서만 ‘어쩌다’를 들을 수 있는 건 아니에요. 2016년 가을, 저는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초등학생들을 만났습니다. 그때 제가 건넨 질문은 “대한민국 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요?”였어요. 내심 세종대왕이나 한글, 트와이스, 엑소 등을 예상했던 저는 어린이들의 대답을 듣고 너무 놀라서 한동안 얼음이 되었습니다. 어린이들이 ‘김밥천국, 최저임금, 야근, 대리운전’이라고 대답했기 때문이었어요.
부모님들이 자주 야근을 하거나 “사장님과 잘 지내야 해서” 늦게까지 회식을 하다 대리운전을 해서 집에 오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형과 누나들이 최저임금 이야기를 하며 고민하고, 밥이나 간식을 챙겨줄 사람이 없어서 학원에 가기 전 급하게 김밥천국에서 저녁을 먹는 일상. 이것이 당시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들이 들려주는 대한민국의 모습이었습니다. (p.147-148)
특히 인터뷰이가 답을 할 때 자료에만 눈을 두지 않기를 권합니다. 인터뷰할 때 많은 인터뷰어가 자신의 노트북이나 준비한 자료들을 보면서 질문을 합니다. 인터뷰이도 그 자료를 볼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나마 괜찮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인터뷰이는 어떻게 느낄까요. 심한 경우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 것처럼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내가 말을 하는데 상대의 시선이 나는 보지 못하는 어떤 자료만 본다, 그런데 그게 나에 대한 정보가 담긴 자료라면? 그런 장면이 반복된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했더라도 슬슬 불편해질 거예요. 그래도 자료를 봐야 성실하게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저도 늘 하는 고민입니다. 그러나, 준비는 인터뷰 현장에 오기 전 미리 충분히 하고 가급적 현장에서는 인터뷰이에게만 집중하기를 권합니다. (p.227-228)
초고를 씁시다. 다시, 또다시 씁시다. 그리고 한껏 아쉬워합시다. 아쉬워하는 마음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직 만나지 못한 더 좋은 콘텐츠가 태어납니다. 우리의 마지막은 정말로 아쉬워야 합니다. (p.320)
생활 공작 / 홍희범 / workroom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폴란드는 생활 공작이 특히 활발한 곳이었다.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략하는 동안 한 학생이 벽에 붙은 독일의 선전 포스터를 떼어냈다는 이유로 사형당했다. 이는 국민적 저항으로 이어져 폴란드 곳곳에서 말리 사보타시, 즉 ‘작은 생활 공작’으로 드러났다. 공작을 주도한 이는 교사이자 운동가인 알렉산더 카민스키였다. 그는 1940년 폴란드의 주요 지하 신문인 『비울레틴 인포르마치니』에 생활 공작에 관한 안내문을 실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독일 점령지에 지하 활동의 심벌인 코트비차(Kotwica)를 그리는 것이었다. 코트비차를 디자인한 안나 스몰렌스카는 1943년 게슈타포에 체포돼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스물셋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p.92)
다음 집단은 소문에 특히 취약하다.
― 기존의 안정과 복지에 불안감이나 공포를 느끼는 집단. 이들에게는 비관적 전망을 확신으로 바꿔줄 소문이 제격이다.
― 지나치게 낙관적이거나 자신감으로 가득찬 집단. 이들에게 필요한 소문은 이들의 희망을 지탱하는 정보와 대체로 일치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이들의 환멸을 유도할 정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 다른 집단에 적대감이 있는 집단. 이들에게 필요한 소문은 적대감을 정당화하고 증폭할 수 있는 사실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 단조롭고 지루한 생활로 환상에 쉽게 영향을 받는 집단. 특히 군인이나 수감자가 여기에 포함된다.
― 신앙심이 깊은 종교 집단.
― 미신에 강하게 의존하는 집단. 이들은 특히 순진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신념을 활용할 수 있는 소문이 필요하다.
― 언제 보복이 올지 몰라 두려워하고 구성원들끼리 죄책감을 공유하는 집단.
― 검열이나 고립된 상황, 높은 문맹률 등으로 기본적인 정보를 얻기 어려운 집단. (p.99-100)
물론 나치 독일이 이 나라들을 통해 많은 양의 무기나 물자를 만들게 해서 전쟁에 동원했지만, 이 나라들이 독일군을 위해 뽑아낸 생산량은 실제 잠재 능력에 비하면 크게 뒤쳐졌다. (…) 이유는 간단하다. 캐나다 공장 노동자들에게는 자국의 군대와 우방국의 승리를 위해 한몫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따라서 최대한 제품을 많이 만들고 품질을 높이려 했다. 벨기에 공장 노동자들은 어땠을까. 그들에게도 그런 의지가 있었을까? 자기 나라를 빼앗고, 다른 나라들을 침략하기 위해 총을 만들어야 한다면, 누구라도 기운이 빠질 게 분명하다. 벨기에 공장 노동자들이 독일군에 총을 납품한 건 순전히 생계와 위압 때문이었다. 생산성이 오르지 않는 건 당연했다. 오히려 노동자들은 독일군의 품질 검사는 무사히 통과하면서도 제품의 성능을 떨어뜨리거나 교묘하게 내구성에 문제를 만드는 비법을 터득할 정도였다.
이는 벨기에에만 해당하는 상황이 아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미국군 폭격기에 독일군이 쏜 대공 포탄이 터지지 않고 박혀버린 일이 있었다. 나중에 기지로 돌아와 포탄을 분해해보니 내부에 끼워진 쪽지 때문에 신관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쪽지에는 체코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고 한다. “내가 당신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소.” 독일군이 사용할 대공 포탄의 신관을 만드는 체코 공장 노동자들이 감시를 피해서 포탄을 불량품으로 만든 것이다. (p.116-117)
이처럼 인간의 심리는 전쟁에서 무시하지 못할 요소로 작용한다. 대외 정보기관인 미국의 전략사무국과 영국의 특수작전부대(Special Operations Executive, SOE)는 전쟁에 인간의 심리를 동원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이 기관들은 점령지 사람들의 점령군에 대한 반발을 극대화하고, 이들이 점령군을 괴롭히고 방해하도록 다양한 심리전 수단을 동원했다. 점령지의 저항 조직을 상대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폭발물 설치나 게릴라전 같은 직접적인 무장 저항보다 훨씬 위험 부담이 낮고, 특수한 장비나 무기가 필요하지 않으면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사보타주(sabotage), 즉 방해 공작의 방법을 퍼뜨리는 게 중요시됐다.
재미있는 건 당시에 이 기관들이 권장한 ‘물리적 파괴 없이 조직을 와해시키는’ 방법들이 오늘날 우리가 회사에서 겪는 상황과 한없이 가깝다는 점이다. 쓸데없는 회의, 비효율적이기 짝이 없는 인사, 이해할 수 없는 결정, 다양한 갑질… 이 책의 내용을 미리 숙지하고서 회사를 말아먹으려고 작정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책에서 말하는 적은 오히려 그들인지 모른다. (p.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