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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파의 시간 / 커털린 커리코 / 까치

 

 농촌에서 자란 사람치고 씨앗에 감사하지 않는 사람이 없고, 그 점은 생물학자도 마찬가지이다. 씨앗은 잠재력이며, 약속이고, 생명을 유지하는 자양분이다. 씨앗은 어두운 미래와 풍성한 미래 사이에 있다. 그렇기에 씨앗을 심는 것은 언제, 어디서든 신념과 희망의 행위이다.
 나는 나를 가르쳐준 선생님들께 감사한다. 세상의 모든 교육자에게 감사한다. 당신들은 씨앗을 심고 계시니까요. (p.8)

 

 차라리 세포는 영원히 잠들지 않는 과학소설 속 미래 도시에 더 가깝다. 분주하게 돌아가는 대도시의 활기찬 활동이 세포를 가득 채운다. 인간의 몸을 이루는 거의 모든 세포에는 밤낮없이 돌아가는 조립 공정을 통해서 수천 가지 제품을 생산하는 정교한 공장이 자리 잡고 있다. 세포 내부의 미로 같은 수송 체계는 가장 복잡한 고속도로망도 저리 가라 할 만큼 고도로 발달했다. 포장과 배송 센터는 DHL보다 효율적으로 돌아가고, 전력 발전소는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를 생산하며, 쓰레기 처리장 역시 세포 안에 쓸데없는 것들이 돌아다니거나 낭비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운영된다. 세포 안에서 복잡한 코드가 암호화되고, 봉쇄되고, 운송되고, 해독된 다음 분해된다. 특별한 열쇠를 쥔 손만이 그 문을 여닫을 수 있다. 감시 네트워크는 침입자를 찾아다닌다. ……그리고 발견 즉시 처리한다.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은 생물학적 작용이 몸속 수조 개의 세포 하나하나에서 쉼 없이 일어난다.
 이 책을 읽고 있는 지금도 당신의 세포는 펌프질하고, 운반하고, 쌓고, 이동하고, 복제하고, 해독하고, 건설하고, 파괴하고, 접고, 차단하고, 받아들이고, 내쫓는 중이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서 당신이 숨을 쉬고, 음식물을 소화하고, 산소와 영양소를 온몸에 보낸다. 당신의 몸은 전기를 생산하고 공기 중의 진동을 해석한다. 생각하고, 지각하고, 근육을 수축하고, 탐지하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수많은 병원체와 싸운다.
 그러니까 당신은 살아 있다는 말이다. (p.12)

 

 하루 일과를 준비하는 분주한 아침 시간에 (실내 공기가 너무 차가워서 입김이 보였다) 우리는 작은 라디오를 들었다. 매일 아침 아나운서는 그날이 누구의 “영명 축일”인지 알려주었다. 1년 365일 매일 다른 사람의 이름을 기념했다. 2월 19일은 주잔너, 11월 19일은 에르제베트. 좋은 아침입니다. 라디오의 목소리가 말한다. 오늘은 10월 2일, 페트러의 영명 축일입니다. 그리스어로 돌 또는 바위라는 뜻이고……. 학교에 가면 다 같이 영명 축일을 맞은 사람이 좋은 하루를 보내기를 빌었다. 이것은 좋은 방법이다. 우리 중 몇 명이나 자기 인생에 들어온 사람들의 생일을 알겠는가? 하지만 이름을 알면 적어도 그 사람의 영명 축일에 그 사람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으니. (p.20-21)

 

 나는 어려서부터 주변 어디에서나 과학을 배웠다.
 번식철에는 나무를 타고 올라가 새가 지은 둥지를 들여다보았다. 단단한 알이 어느새 털 없는 새끼 새가 되어 먹이를 달라고 입을 쩍쩍 벌리는 모습을 관찰했다. 새끼 새는 점점 깃털이 자라고 근육이 생기고, 이윽고 둥지를 떠나 땅을 쪼며 다녔다. 나는 황새와 제비가 바쁘게 날아다니다가 날씨가 추워지면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새들은 봄이 오면 돌아와서 모든 주기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언니와 나는 훈연실의 소시지에서 떨어지는 기름을 국자로 받아다가 냄비에 모았다. 매년 여름이 되면 어머니가 아주머니 한 분을 집에 모셔왔다. 나이가 지긋한 이 여성은 대대로 내려온 선조들의 지식을 전해주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아주머니가 시키는 대로 지방을 녹인 다음 그녀만이 이해하는 비율로 정확히 탄산나트륨과 섞었다. 그런 다음 행주를 덧댄 나무 상자에 그 혼합물을 붓고 굳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철사로 잘랐다. 이것이 비누였다. 우리는 그 비누로 목욕도 하고 얇게 깎아서 빨래할 때도 사용했다.
 돌이켜보면 동네의 이 “비누 아주머니”가 내가 만난 최초의 생화학자였던 것 같다. (p.23)

 

 한번은 역사 과목에서 지역 사람들이 영웅으로 생각하는 어른을 만나 인터뷰하는 숙제가 있었다. 우리는 그분들이 말하는 구전 역사에서 기억을 모으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그들을 칭송하는 에세이를 써야 했다. 나는 아버지 연배의 퇴역 군인을 맡았다.
 아버지가 그 사람의 이름을 물었다. 내 대답을 들은 아버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야.”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아버지가 그런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매몰찼고, 화가 나 있었다.
 “잔인한 사람이다.” 아버지가 계속해서 말했다. “썩을 놈이지. 이 인터뷰도 그럴 거다.”
 나는 아직도 아버지가 이 사람에 대해 무엇을 알았고, 어떤 모습을 보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의 말을 믿었다. 그렇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을 했다. 그 사람을 만나서 인터뷰했고, 그의 기억을 수집한 다음 그것을 바탕으로 훌륭한 에세이를 썼다. 하지만 그러면서 한 가지 진실을 배웠다. 어떤 과제는 거짓투성이라는 것을.
 내가 맡은 사람은 비열한 협잡꾼이었지만 세상에서는 때로 협잡꾼이 영웅으로 칭송받는다. (p.59)

 

 그해가 끝나기 전, 우리 반은 미국에 사는 센트죄르지에게 편지를 썼다. 하지만 주소를 몰랐고 찾을 방법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받는 이의 주소에 무작정 이렇게 두 줄을 써서 보냈다.

얼베르트 센트죄르지
USA

 참으로 대책 없는 시도였고, 무모한 도박이었다. 우리 중에 그 편지가 제대로 도착할 거라고 믿은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을까 싶다. 그러나 몇 개월 뒤, 우리는 답장을 받았다. 얼베르트 센트죄르지가 직접 쓴 서신이었다. 편지는 그가 쓴 책 『살아 있는 것의 상태(The Living State)』 한 권과 함께 도착했다. 책에는 “키슈이살라시의 열정적인 과학 꿈나무들에게”라고 적혀 있었다.
 이제 내게는 일말의 의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 위대한 과학자가 나에게 말을 걸다니. 과학 꿈나무. 그래, 그건 바로 나야. (p.66-67)

 

 셀리에는 내가 바라던 사고방식, 즉 원대한 질문을 정의하고, 그것을 목표로 삼아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명확하고 구체적인 답변을 추구해가는 방식을 말하고 있었다. 책의 앞부분에서 셀리에는 자연은 “실험의 형태로, 네/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게 묻지 않으면 우리가 던지는 질문에 잘 대답하지 않는다”라고 썼다. 나는 이 구절을 계속해서 읽었다. 자연이 네/아니오로 답할 수 있는…… 실험의 형태로 던지는 질문. 한 번에 한 가지씩. 수많은 네/아니오 질문들이 모여 지식의 모자이크가 확장된다.
 다음에는 이런 문단이 나온다.

 오직 자연을 향한 신실하고 깊은 애정만이 불러오는 이해력으로 축복받은 자만이…… 대략적인 답이나마 얻기 위해서 물어야 할 질문의 청사진을 그리는 데 성공할 것이다…….
 오직 자연의 비밀을 향한 소모적이고 통제할 수 없는 호기심으로 저주받은 자만이 그 비밀을 푸는 데에 필요한 수많은 실험에 수반되는 엄청난 기술적 문제들을 하나씩 끈질기게 해결하며 평생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축복을 받았든, 저주를 받았든 간에 나는 내가 바로 셀리에가 말하는 사람임을 확신했다. 나는 앞으로 내가 평생 수없이 많은 실험을 하며 수많은 기술적 난제들을 뚝심 있게 해결해 나가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그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테니까. (p.68-69)

 

 과학 연구는 단조로운 작업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 결과 많은 데이터가 생산된다. 때로는 그 데이터가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거기에서 기존의 설명에 부합하는 데이터를 수색하고 그것을 찾게 되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끝났다고 믿고 싶은 유혹은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실험은 정확이 생명이다.
 한 번에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답해줄 실험을 한다. 그런 다음 변수를 한 가지만 고치고 또 묻는다. 그리고 또 다음 변수로, 또 다음 변수로 한 가지씩 바꿔간다. 한 가지만 더. 다음에 시도할 한 가지는 늘 남아 있다.
 인내심을 가지고 빠짐없이 조사하고, 작은 것도 놓치지 않는다. 자신이 기대한 바를 검증하는 것처럼 보이는 정보의 산은 옆으로 치우고, 기대하지 않은 한 가지를 애써 찾아야 한다. 예상과 어긋나는 그 작고 거슬리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면 그것이 가리키는 곳에 진실이 있을 테니까. (p.73)

 

 한 가지만 더. 그것이 내가 점점 나아진 비결이었다. 질문 한 가지만 더, 실험 한 번만 더, 한 가지만 더 생각해보자, 내가 할 수 있는 과제 한 가지만 더 시도해보자. 나는 읽고, 또 읽고 그런 다음 다시 시작했다. 나는 외우고, 방금 공부한 것을 시험해보고, 그런 다음 확실하게 이해할 때까지 더 공부했다. 또 하고, 또 하고, 한 가지만 더, 한 번만 더.
 만약 나에게 초능력이 있다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열심히 꼼꼼하게 일하고,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
 우리는 과제가 많았지만 나는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많은 지식을 계속 유지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머리에 새로운 지식을 채우면 전에 있던 것은 빠져나가는 듯했다. (p.103-104)

 

 다른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었다. 당시의 헝가리는 지금처럼 빈부 격차가 심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사는 모습은 제각각이었다. 우리는 어느 여름날 벌러톤 호수를 따라 한 친구의 집을 방문했다. 그 친구의 아버지는 어느 지역 단체의 재무 담당자였고 그 친구의 집은 무려 이층집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이층집에 사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조금 이상했다. 친구네 집은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가진 것이 많았지만 친구 부모님은 우리가 그 집에서 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대신 차고에서 우리를 재웠다. 그리고 식사도 챙겨주지 않아 우리끼리 돈을 모아 가까운 가게에 가서 빵과 라드를 사다가 배를 채웠다.
 바로 다음 날 우리는 다른 동급생 집에 갔다. 이 가족은 형편이 좋지 않았다. 우리 집보다 더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이 가족은 우리를 환대해주었다. 마당에서 (가장 저렴한 고기인) 돼지족에 허브와 양념을 넣고 정성껏 고아 진하게 우린 스튜를 잔뜩 준비해 양껏 먹게 했다. 우리는 영양만점의 맛있는 음식을 따뜻하고 배부르게 먹었다. 이 집에는 방이 하나밖에 없었는데, 친구 부모님은 우리에게 방을 내어주고 본인들은 친척 집에 가서 주무셨다.
 이런 관대함의 차이를 보고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때로는 가장 적게 가진 자가 가장 많이 베푼다는 것을. (p.108)

 

 공산주의 헝가리에서는 아주 적은 비용으로 아이를 보육 시설에 맡길 수 있었다. 어린이집은 크고 사랑스러웠고 믿음직한 전문가들이 아이들을 보살폈다. 많은 직원들이 공인 간호사였다. 매일 소아과 의사가 들러서 아이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아이마다 건강과 발달 상황을 기록한 수첩이 있어서 부모가 의사에게 질문이 있으면―이런 증상이 정상인가요? 발진이 생겼는데 따로 치료해야 하나요?―이 수첩에 질문을 적었다.
 의사는 매일 부모의 문의를 읽고 아기를 살핀 다음 세심하게 답했다. 네, 정상입니다. 발진은 나아지고 있어요. 하지만 한동안 기저귀 발진 크림을 계속 발라주세요. (p.155-156)

 

 조용히 오롯이 배움에 몰입한 시기였다. 저녁마다 대학 도서관에 갔다. 나는 지금도 내가 읽을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읽는다. 과학 학술지의 최신 호는 물론이고 과월 호에서 옛날 논문도 찾아 읽었는데, 이는 지금도 유지하는 습관이다. 나는 내가 찾을 수 있는 모든 지혜와 영감의 가능성을 수색했고 당장은 중요하지 않지만 알아두면 나중에 소용이 있을지도 모르는 발견까지 찾아다녔다. 그리고 그 사실들을 잘 저장했다. 분자생물학에 대해 배울 만큼 배우고 싶었고 그런 다음 집에 가고 싶었다. (p.196-197)

 

 연구책임자이자 멘토로서 엘리엇의 철학은 단순했다. 서로 궁합이 잘 맞는 똑똑한 사람들을 고용한다. 그들의 말을 귀담아듣는다. 그들에게 필요한 조언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 다음 알아서 하도록 맡겨둔다. 자신보다 성장하고 앞서가게 격려하고 그렇게 되면 축하한다. (p.208)

 

 학술 연구는 경쟁이 극심하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압박이 가해진다. 자신의 결과가 눈에 띄고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논문을 내고 그 논문이 다른 사람에게 인용되어야 하는 부담이 있다. 그러나 압박은 그것뿐이 아니다. 첫째, 연구비 문제가 있다. 일반적으로 대학은 인문학, 예술, 사회과학 분야의 교수들에게는 급여를 주지만, 의학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은 알아서 월급을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병원 진료를 하는 사람도 있고, 외부 자금으로 자신과 자기를 위해서 일하는 모든 사람의 인건비를 충당하기도 한다. 여기서 외부 자금이란 민간 투자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정부 보조금, 즉 납세자의 돈이다.
 연구비를 땄다고 해서 그 돈이 다 연구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대학이 학교 운영을 위해 일부를 떼어가는데, 전체 보조금의 50-65퍼센트나 되고 때로는 더 많이 가져간다.
 재정적인 압박은 다른 종류의 시급함으로도 이어진다. 더 많이, 더 빨리 결과를 낼 것. 그러나 결과의 수준이 꼭 최고일 필요는 없음. 얼마나 주의 깊게 실험했는가보다는 맨 처음 논문을 내는 사람이 되는 것이 우선이다.
 자금 압박은 연구의 성격까지 결정한다. 다시 말해서 연구비를 받을 수 있는 유형의 연구를 해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압박이 있다. 즉, 이미 관심과 돈이 쏠려 있는 분야를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돈이 몰린다고 해서 반드시 혁신적인 분야인 것도, 가장 위대한 필요가 있는 곳인 것도 아니다. 결국 돈이란 훌륭한 아이디어를 완전히 눈에 보이지 않게 만들 수 있다. (p.218-219)

 

 한번은 과학계에서 아주 이름난―과학계의 전설, 진짜 권위자를 말하는 것이다―학자가 캠퍼스에 왔다. 너무 설레고 흥분되었다. 나는 이 연구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무엇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그러나 강연이 시작되자마자 완전히 실망했다. 그가 말한 것, 그리고 말하지 않은 것을 듣고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한때는 그 분야의 최전선에서 일한 과학계의 거장이 최근에는 논문 읽기를 소홀히 한 것 같았다. 그의 말을 듣고 있으려니 마치 수십 년 전에 묻어둔 타임캡슐을 여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가 놀라운 발전을 이룩한 이후 새로운 분자가 발견되고, 새로운 메커니즘이 밝혀지고, 새로운 실험 기술이 개발되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의 가능성이 확장되었다. 그러나 그는 확실히 옛날에 갇혀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을 더 실망했고, 그때마다 나는 스스로 다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읽기를 멈추지 않겠다고. 최신 동향을 따라잡을 수 없다면 차라리 강연을 하지 않겠다고. (p.232-233)

 

 수전은 조정의 매력에 푹 빠졌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고요한 캠퍼스를 걸어 스쿨킬 강으로 내려가는 길을 사랑했다. 배를 잔잔한 강물에 집어넣는 느낌을 사랑했다. 그리고 그 물 위에 떠서 땅에 묶인 세상의 가장자리를 따라 자유롭게 움직이는 순간을 사랑했다. 오직 근육의 힘만으로 배를 나아가게 한다는 사실과 팀원들과 합을 맞추어 움직인다는 사실을 사랑했다. 모든 노력이 한 번에 폭발적으로 작용해 자신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 이상으로 빠르게 배를 나아가게 하는 집단의 힘을 사랑했다.
 “마법.” 수전이 나와 벨러에게 이 스포츠에 대해 한결같이 묘사한 표현이다. “마법 같아요.” 팀워크, 동지애, 물에서 나는 냄새와 소리와 장면, 자신에 관해 발견하게 되는 모든 것까지 수전에게는 이 전부가 진정한 마법이었다.
 어릴 적에 나는 학교에서 그저 보통의 학생이었다. 다른 이들이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똑똑한 학생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배움에 나를 던졌고 그렇게 두뇌를 사용하는 것이 한 사람의 능력을 키우는 좋은 방법임을 알게 되었다. 이제 수전도 비슷한 것을 발견하고 있었다. 아무런 사전 준비도 없이 조정을 시작했으나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이 스포츠에 내어줌으로써 훌륭하게, 아주아주 훌륭하게 나아갈 기회를 얻었다. (p.300-301)

 

 나는 학술 연구기관에서 과학이 이루어지는 방식이 개선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한 가지로, 직함, 논문 기록, 인용 횟수, 연구비, 심사위원, 관례, 공간 사용료 같은 명예의 징표와 양질의 과학의 징표를 더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우리는 너무 자주 그 둘이 하나인 것처럼 묶어서 생각한다. 그러나 더 많이, 또는 최초로 출판했다고 해서 꼭 더 나은 과학자인 것은 아니다. 어쩌면 데이터에 완벽을 기하려다 보니 논문이 늦어질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논문의 인용 횟수는 그 논문의 실질적인 가치보다는 외적인 사건과 더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 드루와 내가 우리의 대표적인 논문을 「이뮤니티」에 발표했을 때, 이 논문은 거의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했다. 세계는 팬데믹을 겪으며, 우리가 밝힌 것의 중요성을 이해했다.
 또한 우리는 과학자들을 평가하는 기준을 확장해야 한다. 대부분의 기관은 과학자의 가치를 무엇보다 연구비로 정의한다. 그러나 연구비를 따려면 연구자는 자신이 어떤 연구를 하려고 하고 어떤 발견을 기대하는지 아주 상세하게 적어야 한다. 나는 과학이란 질문하는 것이고, 시도하고, 그 답이 데려가는 곳은 어디든 가는 것이라고 주장하겠다. 과학을 하려면 알지 못하는 곳으로 걸어가야 한다. 미지의 것, 그것이 핵심이다.
 마지막으로 학술 연구자에게 미치는 돈의 영향과 그 결과에 대해 좀더 솔직해져야 한다. 돈은 산업계 못지않게 대학 환경에서도 중요하다. 그러나 내 경험으로 지금까지 학계는 좋은 아이디어를 무시하는 사치를 유일하게 누려왔다. (p.372-373)

 

 이제 나는 과학자들―현재, 미래, 잠재적인 모든 과학자들―뿐 아니라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기를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말로 이 책을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현재와 잘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어쩌면 당신은 교과서 속 과학자처럼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새로운 언어를 익히느라 어색한 발음으로 말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는 과학자 한 명 없이 자랐거나 누구도 들어본 적 없는 학교에 다녔거나 권력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규칙 같은 것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 당신이라면 특별히 내 말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어느 평범했던 날, 병원에서 나와 끔찍하게 아픈 몸을 이끌고 세게드의 거리를 걷던 중에 나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누구도 내가 아직 하지 못한 기여를 아쉬워하지 않으리라는 깨달음, 누구도 우리 집 문을 두드리며 제발 나와서 계속 일해달라 사정할 사람은 없다는 현실을, 내가 갑자기 모든 일을 포기하거나 서서히 노력을 그만두고 내 온전한 잠재력보다 덜 기여하더라도, 무엇보다도 나 하나쯤 사라진다고 해서 누구도 알아보는 사람은 없으리라는 깨달음이었다.
 중대한 기여자를 놓친 세상은 평범해 보인다. 그것이 현 상태의 정의이다.
 이런 깨달음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 순간 눈에 보이지 않는 수년의 시간, 암시적으로든 명시적으로든 내가 받은 거의 모든 메시지가 똑같은 말을 전한 그 세월들로 나를 데려갔다. 이 연구는 너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야, 커티.
 이 깨달음이 나를 꾸역꾸역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그리고 원래대로라면 진작에 포기했을 순간에도 고집스럽게 버티게 해주었다.
 어쩌면 이런 난데없는 통찰의 순간이 당신에게는 영영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깨달은 바를 함께 나누고 전하려는 것이다. 멈추지 말아라.
 앞으로 당신이 미래에 하게 될 기여는 아직 가설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인 것처럼 대하라. 그런 태도는 설령 그 결과를 직접 보지 못하고 눈을 감게 되더라도 중요하다. 그것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일단은 “한 가지 더”부터 실천하라. 그 다음에는 또다른 한 가지 더, 한 가지 더를 계속하라.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이것이다. 모든 씨앗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다는 것. 이 생명은 다시 자기의 새로운 씨앗을 만들고, 그 씨앗이 자라 계속해서 많은 것을 낳는다는 것. 계속해서.
 당신 안에 있는 것을 신뢰하라고 당부하는 것이다. 그곳에서 당신이 찾는 것을 키우고 보살펴라. 누구 하나 돌볼 생각이 없어 보이더라도 그곳에서 찾은 것을 돌보아라.
 내가 말하려는 것은 간단하다. 계속하라는 것. 계속 성장하고, 계속 빛을 향해 나아가라.
 당신은 가능성이다. 당신은 씨앗이다. (p.377-3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