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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복지 / 윤진현 / 한겨레출판

 

 사방이 막혀 있어 햇빛 한 줄기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돈사, 비좁은 철제 스톨에 갇혀 자유롭게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임신돈들, 파리 떼에 뒤덮여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어미 돼지들, 눈과 코를 마비시킬 정도의 지독한 악취가 진동하는 돈사에서 온몸이 분뇨로 덕지덕지 얼룩진 채 누워 있는 돼지들.
 아마 이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다른 동기들처럼 사료 회사에 취직해 돼지들을 빠르게 살찌우는 사료를 배합하고 있거나, 농장주들에게 내가 판매하는 사료가 돼지를 키우는 데 얼마나 효과적인지 홍보하는 영업 사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 입으로 들어가는 식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이미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 버렸다. 인간에게 먹거리로 제공하기 위해 사육되는 돼지들이라 하더라도, 과연 이런 방식으로 키우는 것이 괜찮을까 하는 강한 의문이 들었다.
 당시 무농약, 유기농, 친환경으로 재배되는 채소와 과일을 찾는 소비자들에게 ‘건강한 먹거리가 건강한 몸을 만든다’는 인식이 이미 널리 퍼져 있었다. 반면에 이들은 축산물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건강한 먹거리를 찾는 소비자라면 마트에 진열된 돼지고기를 구입할 때도 당연히 원산지, 신선도, 친환경, 무항생제 등 최소한의 항목은 따져보고 구입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아마도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가 어떻게 키워지는지 그 진실을 알게 된다면 다른 식재료를 구입할 때와 달리 불편한 감정을 마주해야 하기에 더욱 쉽게 외면한 것이 아닐까. (p.38-39)

 

 핀란드 동물복지연구소는 헬싱키대학교 수의과대학에 소속되어 있고, 당시 약 20여 명의 멤버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중 절반은 책임 연구원으로 교수와 박사 후 연구원이 있고, 박사 과정 연구원, 기술직 연구원, 저널리스트, 그리고 농림부에서 파견한 옴부즈맨이 있었다. 다양한 분야의 동물복지 전문가들이 한 공간에서 근무하면서 다학제(multidisciplinary) 연구를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연구 분야가 무척 다양했고, 특히 인지과학을 이용한 반려동물의 심리 파악이나 농장동물의 환경 개선을 바탕으로 한 복지 향상 연구들이 활발했다.
 이곳의 책임 연구원들은 수의과대학에서 대학원생과 학부생 강의를 맡았고, 정책 기관, NGO 단체, 동물복지와 관련된 직업학교, 동물 보호소, 축산 관계 기관 등 다양한 곳에서 자신의 연구 분야를 바탕으로 지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두 명의 저널리스트는 연구원들이 발표한 학술 논문이나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비전문가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일반인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했다. 이런 활동으로 동물복지에 대한 핀란드 국민의 이해를 높이고, 연구 지원금을 마련하는 등 동물복지 향상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p.46)

 

 돼지는 천성적으로 사람을 두려워한다. 이 두려움은 당연히 돼지에게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따라서 관리자는 돼지의 두려움을 줄이기 위해 돼지와 늘 긍정적인 상호작용, 다시 말해 교감을 해야 한다. 돼지는 일반적인 선입견과 달리 매우 지능적이고 호기심이 많은 동물이다. 부드러운 핸들링과 차분한 말투는 돼지와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반면 돼지를 거칠게 다루고 고함을 지르는 것은 돼지에게 공포감을 조성한다. 가축에게 차분한 말투를 쓰며 교감한다는 것이 진지하게 들리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돼지는 시각보다는 청각이 발달한 동물이다. 나는 실험 농장에서 지내는 3개월 동안 피르요를 따라다니면서 돼지와 교감하는 법과 돼지들이 내는 소리를 듣고 요구를 파악하는 법, 또 어떻게 돼지들을 관찰하고 다뤄야 하는지 등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피르요는 돼지가 이동하며 낯선 환경에 마주했을 때 관리자가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그 목소리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했다. 돼지를 일정한 방향으로 몰 때도, 사람의 속도가 아닌 돼지가 편안해하는 속도로 흐름을 맞춰야 한다. 또한 사람이 옆에서 격려하고 칭찬하는 행동도 돼지에게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p.84)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은 집약적 축산의 부작용으로 부각되는 가축 전염성 질병 확산, 축산물에 유해 물질 잔류, 항생제 내성균 확산 등이 이슈화되면서 위생적인 축산물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더욱 커지게 되었다. 안전한 축산물을 얻는 것과 동물복지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동물의 본능적인 행동이나 습성을 억압한 생산 시스템은 동물의 대사 작용을 교란하고 면역 체계를 손상해 동물을 질병으로부터 취약하게 만든다. 더욱이 현대식 축산에서 농장동물들은 생산성 극대화를 위한 품종만이 선택되고 개량되면서,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같은 병원체에 저항할 수 있는 강건성이 떨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가축을 이용해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생산자는 가축의 질병 치료 및 예방을 위해 값싸고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축산농장에서 항생물질이 포함된 동물약품이나 합성 첨가제 사용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이러한 과정이 동물뿐만 아니라 사람의 건강까지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같은 산업 구조에서 동물복지는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대안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동물의 생명을 존중하고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노력이 곧 우리의 식탁을 보호해 주는 것이다. (p.96-97)

 

 하지만 사람이 배고픔과 목마름, 잠자리가 해결됐다고 해서 모두 행복해지는 게 아니듯, 동물 역시 생존에 필요한 환경이 나아졌다고 해서 무조건 행복한 상태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 게다가 배고픔이나 갈증, 불편함, 고통과 같은 부정적인 요인들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단지 일시적으로 없어지거나 완화될 뿐이다. 그런데 현재까지도 동물보호단체를 비롯한 많은 기관에서 이러한 동물의 자유에 관한 프레임을 인용해 동물복지 기준에 적용하고 있는데, 이는 비현실적인 수준의 동물복지를 요구하는 것이다. 사람의 삶에서도 부정적인 요소를 완전히 없앨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람은 긍정적인 경험과 감정을 통해 스트레스를 줄여나간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동물들은 열악한 환경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다른 유쾌한 감정을 경험하면서 회복할 수 있다. 유쾌한 감정은 주로 보상행동(rewarding behaviour)이라고 하는 긍정적 자극을 주는 행동에서 비롯된다. 먹이 찾기, 동료들과의 상호작용, 주변 환경 탐색과 같은 행동을 통해 즐거움과 흥미, 안정감 등 다양한 형태의 긍정적인 감정을 끌어낼 수 있다. 따라서 동물복지란 생존과 연관된 부정적인 경험을 줄이려는 노력과 함께, 긍정적인 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p.99-100)

 

 핀란드에서는 여름에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어디서든 방목된 소를 마주칠 수 있다. 소를 방목해 키워야 한다고 법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는 눈 쌓인 춥고 긴 겨울 동안에는 실내 사육장에서 지내지만, 눈이 녹고 목초가 자라는 봄부터는 낮에 잠깐이라도 방목지에서 지낸다. 방목된 소들은 신선한 풀을 뜯어먹기 때문에 소화기관 내에 서식하는 유익한 미생물 수가 증가하여 소화 능력이 발달한다.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다리와 엉덩이 근육이 발달하여 건강한 체형을 유지하기도 한다. 또한 무엇보다 방목장에서 다양한 행동을 표현하면서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긍정적인 경험을 더 많이 할 수 있다. 그로 인해 더 잘 쉬고, 더 편안하게 잠을 잔다. 이러한 방목의 긍정적인 효과들은 소의 면역력을 향상시킨다. 인위적으로 면역 증강 물질을 합성 첨가제나 동물약품을 통해 사료에 첨가하지 않아도 방목을 하면 소의 강건성이 향상되어 질병 저항력이 높아지는 것이다. (p.146-147)

 

 돼지들의 밝은 표정들을 보니 문득 유럽의 동물복지형 농장들을 방문했을 때가 생각났다. 이런 농장들은 돼지뿐만 아니라 일하는 관리인도 모두 표정이 밝다. 이는 관리가 잘된 동물복지형 농장의 공통된 특징이다. 이날도 낮 기온이 30도가 넘는 폭염이 기승을 부릴 때였다. 저 멀리서 사료 급이기를 청소하던 외국인 직원이 우리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웃으며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하고 소리쳤다.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마치 돼지들의 밝은 표정이 관리인을 거쳐 나에게 전달되는 것 같았다. 동물들에게 좋은 삶을 보장해 주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동물뿐만 아니라 우리를 더 나은 삶으로 이끌고 간다는 생각을 새삼스레 떠올리게 된 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김 대표가 건넨 명함 뒷면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돼지가 행복하고, 농민이 행복하고, 소비자가 행복한 더불어 행복한 농장.” (p.169-170)

 

 

서울은 건축 / 신효근 / 효형출판

 

 ‘터무니’라는 단어가 있다. 터에 새겨진 흔적이다. 집을 지을 자리나 일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해주는 밑바탕의 뜻을 지닌 ‘터’에 흔적을 남기는 ‘무늬’가 변형된 ‘무니’가 결합된 단어다. 그래서 논리적인 근거가 없는 상황을 두고 ‘터무니없다’라고 한다. 그대로 뽑아 다른 곳에 옮겨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건물은 땅과의 연결고리가 약하다. 그런 건축물을 두고 터무니없는 건축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건물은 땅 위에 지어진다. 그러니 그 땅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게 중요하다. 빛, 향, 바람, 소음과 같은 요소를 분석하는 것부터 대지가 지닌 맥락, 분위기, 역사, 주변을 둘러싼 수많은 이해관계까지, 이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건물 전체를 아우르는 핵심 아이디어가 도출되고 그것이 외부 형태 혹은 내부 공간으로 표현돼 좋은 경험을 주는 공간이 탄생한다. 이러한 건축물은 잡초와 달리 다른 곳으로 옮겨 심으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금방 시들어 버린다. 자리한 땅과 어울리지 못하고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p.68-69)

 

 설계 과정에서 선행되어야 하는 건 대지 분석이다. 대지의 생김새, 높낮이, 이를 둘러싼 수많은 자연과 건물, 심지어 그 땅이 지닌 역사까지, 크고 작으며 보이고 보이지 않는 것 하나하나 분석하여 땅의 메시지를 읽어야 한다. 겹겹이 쌓여 무수히 많은 이해관계로 얽히고설킨 땅에는 설계의 실마리가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공간을 탐험하면서 종종 건축가의 의도가 궁금해지는 곳이 더러 있다. 주 출입구 위치, 창이 난 방향, 건물이 잘게 쪼개져서 배치된 방식과 그 이유, 심지어 파사드의 형태와 거기 사용된 재료까지 쉽게 납득이 가는 부분도 있지만, 건축가의 의도를 읽어내기 어려운 공간도 분명 꽤나 있다. 그럴 때면 언제나 질문에 대한 답은 땅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p.102)

 

 좋은 도시와 그렇지 않은 도시를 비교할 때, 디테일 차이를 언급하곤 한다. 건물의 입면, 표지판, 가로수, 자동차 등. 도시를 구성하는 외적 형태나 장식, 그것들의 조화 여부를 통해 가치를 판단하지만, 더욱 중요한 건 사람과 관계 맺음에서 생겨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낼 공간의 유무다. 우연한 만남이 이루어지고 크고 작은 이벤트를 수용할 수 있는 곳, 그런 공간이 많아지면 도시는 활기차고 낭만이 넘친다.
 파리가 좋은 도시로 손에 꼽히는 건 문화를 간직한 디테일 이전에, 누구나 쉽게 마주할 수 있는 열린 공간과 공공공간이 각양각색의 일상을 담아내기 때문이다. 작은 공원부터 넓은 공원, 크기에 상관없이 접근성 좋은 공공공간은 사시사철 사람들을 끌어모아 이야기를 만든다. 파리 하면 누구나 낭만을 떠올리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는 공원 수는 적지만, 산은 많다. 똑같은 녹지인데도 경사로 인해 접근성은 떨어지고, 걷고 앉아 쉴 수 있는 면적은 작다. 거기에 공공시설물의 수도 적으니, 도시 골목에 낭만이 싹트기 어렵다. (p.110-111)

 

 시대가 흘러 물건의 가치가 바뀌면 그것을 담는 공간도 변한다. 과거의 도서관은 우리가 익히 알던 공공성을 띤 공간이 아니었다. 고대와 중세의 도서관은 책을 수집하고 보관한다는 의미에서 오늘날 도서관과 같지만, 열람할 수 있는 사람들은 성직자와 수도사뿐이었다. 종이는 1세기에 발명되어 서양에 건너가기까지 천 년, 산업혁명으로 대중화되기까지 5백 년의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인쇄술은 15세기가 되어서야 발명되었다. 종이가 대중화되기 전까지 책은 비단과 양피지로 만들어졌기에 정말 귀했다. 그래서 과거의 도서관은 일반인이 책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내부를 미로처럼 만들었다. 특정 목적을 지닌 특정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었다. 도서관이 고귀하고 위대하며 숭고한 이미지를 지닌 까닭이다.
 오늘날 책은 쉽게 구할 수 있다. 가격은 천차만별이지만, 한 끼 식사 정도면 살 수 있는 책이 많고, 배송은 하루 만에 온다. 전자책을 구매한다면 지금 당장 열람할 수도 있다. 책을 수집, 보관하는 것이 무색해질 정도로 한 해 발간되는 신간은 8만 권이 넘는다. 게다가 정보 습득은 미디어 매체로 대신하는 경우도 많다. 책은 더 이상 귀한 존재가 아니며 사람들은 책에서 정보를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많은 책 중 어떤 책이 본인에게 적합한지 고르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하니 바쁜 현대인들이 책을 멀리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래서 오늘날의 도서관은 변하고 있다. 대학 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처럼 장서의 질과 양이 중요한 건물들은 당연히 크고 넓어야 한다. 반면 일반인이 이용하는 도서관은 권위를 강조할 필요가 없어졌다. 오히려 진입장벽을 허물고 있다. (p.136-137)

 

 

잡지의 사생활 / 박찬용 / 세이지

 

 어쩌면 외산 라이프스타일 잡지를 만드는 우리는 늘 외래어를 접하면서 모국어의 어휘 범위를 조금씩 넓히고 있는 거라고도 생각한다. 영어권에서도 김치는 KIMCHI고 스시는 SUSHI다. 꼭 잡지가 아니라도, 번역가든 무역업자든 해외와 직접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각자의 한국어로 자신이 받아들인 개념을 한국어화하고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해외의 자료나 개념으로 원고를 만들 때 외래어를 원어로 쓰느냐 마느냐는 둘째 문제다. 읽기 좋은 문장 모듬을 만드는 게 먼저다. 외국에서 쓰는 스타트업이라는 말을 직역하느냐 의역하느냐, 의역한다면 어떤 말로 하느냐, 의역하거나 직역한 표현이 앞뒤 문장과 얼마나 잘 붙으면서 독자의 눈에서 쉽게 미끄러지듯 넘어가느냐, 내게는 그게 더 중요하다. (p.40-41)

 

 사진가, 디자이너, 교정사, 이 셋의 중요성을 가장 절실히 깨달았을 때는 내가 이들과 함께 일할 수 없을 때였다. 잡지사를 그만두고 다른 직업을 가졌다가 또 그만두고 잠시 프리랜서를 했던 때가 있다. 그때는 내가 틀린 문장을 써도 봐줄 사람이 없었다. 내가 ‘이 원고에는 이 사진이 좋겠다’ 싶어도 그 이미지를 같이 만들어나갈 사진가가 없었다. ‘이런 기획에는 이런 식으로 사진을 키우고 글을 줄이고’ 같은 계획을 짜봐도 그 페이지를 함께 만들 디자이너도 없었다. 그건 굉장히 겁나는 일이었다. 약한 잇몸 안에서 흔들리는 이가 된 것 같았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세련된 프로페셔널 덕분에 편하게 일하고 있었구나. 그분들의 감각과 경험에 기대고 있었구나. (p.58)

 

 다행히 주변에 좋은 교훈을 들려주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 나의 편집장인 신기주 선배는 인터뷰를 해본 배우만 천 명이 넘는다고 했다. 인터뷰만 모아서 책을 낸 적도 있다. 그런 선배가 어떤 날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도 많이 배우는 선배가 있어. 그 선배 인터뷰 정말 잘해. 아는 것도 많고 준비도 많이 해. 그런데 인터뷰를 할 때는 하나도 모르는 척 해. 그래야 제대로 된 질문을 하면서 상대방의 코멘트를 받을 수 있어. 인터뷰는 다 알고 있는 채로 모르는 척 질문하는 게 최고야.”
 그러게 말이다. 직업 인터뷰가 아니어도 남에게 뭔가 들을 게 있는 상황이라면 언제나 쓸모 있는 말이다. (p.96)

 

 광고주가 중요해지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역시 재정적인 부분이다. 잡지매체가 낼 수 있는 매출의 종류는 크게 두 가지다. 판매수익과 광고수익. 여러분도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구조다. 독자분께서 사주시는 잡지의 매출이 수익의 일부가 된다. 거기 더해 그 사이로 광고가 붙는다. 요즘은 그 수입원 중 광고주 쪽에서 나오는 매출이 압도적으로 높다. 사람들이 책을 안 사니까 광고주에게 의존하는 정도가 높아진다. 전 세계의 인쇄물 기반 매체가 마주한 현실이다.
 독자가 종이 잡지를 안 사는 게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이 변했을 뿐이다. 나만 해도 잡지 만드는 게 직업인데도 종이 잡지를 잘 사지 않는다. 인터넷 매체든 네이버 지식인이든 더 편리하고 효율적인 대체품이 있는데 돈을 쓰는 게 남다른 일이다.
 다만 변하지 않는 사실은 있다. 매체라는 걸 만드는 데에는 비용이 든다는 점이다. 정리되지 않은 정보를 가공하는 일, 그냥 보면 물건일 뿐일 옷을 어딘가 가져가서 모델에게 입힌 후 사진을 찍어서 화보를 만드는 일, 이런 일을 하려면 현실 세계의 인력과 비용이 필요하다. 잡지매체에서는 그 비용을 충당시켜 줄 어딘가가 꼭 있어야 한다. 지금의 광고주는 그 소중한 비용을 채워주고 있다. 어떤 방법으로든. (p.103-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