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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집 마련의 꿈을 빼앗아 갔는가? / 이준구 / 문우사

 

 종부세 시행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매물이 늘어나지 않는 주요한 이유를 두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정책의 일관성에 대한 믿음의 결여에서 찾을 수 있다. 만약 종부세가 단계적으로 강화되어 갈 것이 확실하다면, 울며 겨자 먹기로 매물을 내놓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종부세 제도 그 자체가 흐지부지되어 버리고 말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에 팔지 말고 기다려보자는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이다. 현 상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는 국민에게 정책의 일관성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는 일이다.
 두 번째로는 현행의 보유세에 비해 양도소득세(이하 ‘양도세’)의 부담이 너무나 크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정부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종부세율을 충분히 높은 수준으로 올려놓는다면 상황이 조금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는 양도세의 부담이 훨씬 더 크기 때문에 보유세를 웬만큼 올려 보았자 별다른 효과를 낼 수 없다. 따라서 양도세를 한시적으로 완화하는 특단의 조처를 통해 매물을 많이 내놓도록 유도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모든 경우에 대해 일괄적으로 양도세를 완화해 주라고 제안하는 것은 아니다. 양도세의 완화 그 자체가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제도이든 간에 오랫동안 실시해 오던 것을 급격하게 바꾸면 나름대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양도세의 완화는 자신이 거주하는 한 채의 주택을 소유한 사람에 그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이와 같은 조처는 매물을 늘리는 효과뿐 아니라, 보유세 중과에 따른 문제점을 보완한다는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성격을 갖고 있다. 보유세 중과에 대한 저항을 줄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경제적 능력에 맞는 주택으로 옮겨 갈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p.27-28)

 

 나는 주택시장의 공급 측면뿐 아니라 수요 측면에 대해서도 엄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상품과 달리 주택은 소비의 대상이 됨과 동시에 투자의 대상이 된다는 독특한 성격을 갖고 있다. 소비의 대상이 되는 상품은 가격이 높을수록 그것을 소비하는 것과 관련된 기회비용이 당연히 높아지게 된다. 반면에 투자의 대상이 되는 상품은 현재의 가격수준이 별 의미가 없고 앞으로의 가격 동향이 핵심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바로 이와 같은 성격 때문에 주택가격이 일단 상승세를 보이면 수요가 더욱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가격이 높아짐에 따라 수요량이 작아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인데, 주택시장에서는 주택이 갖는 특성 때문에 그 상식과 어긋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주택시장에서 발생한 문제의 해결을 시도할 때, 상식적인 수요와 공급의 틀 안에서 해법을 찾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뜻한다.
 주거공간이라는 소비 대상으로의 주택에 대한 수요와 관련해서는 상식적 의미에서의 수요로 이를 해석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투자 대상으로서의 주택에 대한 수요는 다른 차원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최근 주택시장에서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바로 이 투자 대상으로서의 주택에 대한 수요다. 다시 말해 투기적 수요의 급격한 증가가 주택가격 폭등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했다는 뜻이다. (p.39)

 

 지난 50여 년의 기간 동안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정부가 꺼내든 카드는 부동산시장 부양책이었고, 그때마다 주택가격은 수직상승을 거듭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부동산 불패의 신화’가 굳게 뿌리를 박고 있는 데다가 갈 곳 없는 뭉칫돈이 많이 쌓여 있는 우리 사회에서 경기부양책으로서 부동산시장 부양만큼 쉽고 확실하게 효과를 낼 수 있는 다른 정책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투기 억제의 고삐를 조금만 늦춰 줘도 엄청난 규모의 투기 자금이 부동산시장으로 흘러들어 주택가격을 끌어올리고 이에 힘입어 건설경기가 반짝 되살아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수를 쓰더라도 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싶은 정부에게 부동산시장 부양책은 마치 마약과도 같은 매력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시장 부양책을 통해 성장률을 손톱만큼 끌어올리기 위해 우리 사회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우선 주택가격의 급등은 집 없는 서민으로부터 내 집 마련의 꿈을 앗아가는 결과를 가져올 뿐 아니라, 전월세 가격의 동반 상승을 가져와 이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부작용을 가져온다. 이미 몇 채씩의 주택을 사재고 있는 부유층은 속으로 쾌재를 부를지 몰라도, 남의 집에 얹혀살고 있는 수많은 서민들의 한숨 소리는 나날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p.87-88)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제학자 노어리가드(J. Norregaard)는 경제적 선택행위에 대한 교란 이외의 관점에서 볼 때도 부동산 과세가 효율적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그는 무엇보다 우선 부동산은 (국제적) 이동성이 없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과세가 효율적이라고 말한다. 고도로 세계화된 경제질서하에서 노동이나 자본처럼 이동성이 큰 생산요소에 대한 과세는 각국 정부에게 상당히 큰 어려움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들이 낮은 세율을 찾아 외국으로 이동해 감으로써 조세수입이 줄어드는 문제가 생기고, 이 때문에 각국이 경쟁적으로 세율을 낮추는 상황, 즉 ‘바닥으로의 경쟁(race to the bottom)’이 일어난다. 그러나 부동산은 문자 그대로 이동성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와 같은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 부동산 과세가 효율적일 수 있다는 것이 노어리가드의 주장이다.
 또한 노어리가드는 토지에 대한 과세가 토지의 효율적 활용을 촉진한다는 점에서도 장점을 갖는다고 지적한다. 토지의 소유에 대한 과세는 일반적으로 그것의 소유자로 하여금 토지와 그 위의 건물을 좀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게 만드는 유인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는 만약 토지의 효율적 활용을 촉진하는 데 과세의 주안점이 있다면 순수한 토지세가 가장 바람직한 형태의 세금이 될 것이라고 덧붙인다. 왜냐하면 이 세금에 직면한 토지 소유자는 이를 최선의 용도로 활용하려 하는 유인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p.103-104)

 

 그 당시 종부세 도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즐겨 들었던 예는 근근이 저축한 돈으로 집 한 채를 간신히 마련한 은퇴자가 처해 있는 딱한 사정이었다. 변변한 소득이 없는 터에 몇백만 원 혹은 몇천만 원에 이르는 세금 부담을 어떻게 감당하느냐는 것이었다. 사실 종부세를 내는 사람이 전 인구의 2%에 불과하고 나머지 98%의 사람들은 전혀 상관할 필요가 없는 세금이었다. 그러나 보수세력이 만들어낸 ‘딱한 은퇴자’라는 이미지는 종부세야말로 납세자를 마구잡이로 쥐어짜는 나쁜 세금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엄청난 효과를 발휘했다. 이와 같은 인식의 확산에 보수언론의 선동적 보도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사실 이 딱한 은퇴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첫째로 생각할 수 있는 조처는 과세기준금액을 대폭 올려 중산층을 과세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것이다. 어떤 좋은 명분이 있더라도 중산층에게 상당한 금액의 추가적인 조세부담을 안기는 정책이 성공할 수 없다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두 번째의 조처는 1세대 1주택 고령자에게 연령별로 다른 세액공제를 허용한 이명박 정부처럼, 사회 통념상 특별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계층에 어느 정도의 특혜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조처만으로도 딱한 은퇴자를 괴롭히는 세금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리라고 믿는다.
 추가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조처는 역모기지(reverse mortgage)처럼 종부세 납세시기를 상속시점까지 연기해 주는 방법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소득의 흐름과 납세액 사이의 괴리를 해소시켜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저량(stock)의 성격을 갖는 부동산에 대한 과세는 기본적으로 현금흐름의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이런 방식이나 혹은 다른 방식을 통해 적절하게 조정을 해주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런 조정 메커니즘이 없었다는 것이 종부세에 대한 반감을 크게 만드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p.111-112)

 

 최근 Economist지에 “높은 부동산 가격은 어떻게 경제에 해를 끼칠 수 있는가?(How high property prices can damage the economy?)”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이 기사는 높은 수준에 있으면서 계속 상승하는 부동산 가격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최근 연구들의 결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가격 상승이 분배상의 측면에서 악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자원배분의 효율성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밝혀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분석 결과이지요.
 그렇다면 이 연구들은 왜 부동산 가격의 상승이 자원배분의 비효율성을 가져온다고 보는 것일까요? 부동산 가격 상승은 생산적인 투자를 구축하는(crowd out) 결과를 가져와 자본의 비효율적 배분을 초래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입니다. 기업이 보유하는 부동산이나 개인이 보유하는 부동산이나 그 가격이 크게 오르면 모두 이런 비효율적인 결과가 초래된다고 말합니다.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은 좋은 담보 대상이 되기 때문에 그것의 가격 상승은 부동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기업일수록 더욱 돈을 빌리기 쉬워지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반면에 성장 잠재력이 커서 부동산보다 무형자산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보유하고 있는 기업은 돈을 빌릴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됩니다. 이와 같은 구도는 자원의 효율적 배분에 분명 어긋나는 일입니다. (p.311-312)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서 살겠습니까 / 이재열 / 21세기북스

 

 우리는 예로부터 상부상조하고 서로 잘 돕는 민족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고립된 개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내가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예를 들어 몸이 아프거나 급전이 필요하거나 아니면 고민이 있어 상담이 필요할 때 누군가 나를 도와줄 사람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아무도 없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의 비율이 매우 높게 나왔다. 사회적 고립 상태에 있는 사람의 비율이 원래 개인주의 문화가 강할 것으로 여겨지는 유럽에 비교해서도 훨씬 높았다. 한국은 사회적 고립의 정도가 헝가리 다음으로 가장 높았다. 헝가리는 사회주의가 붕괴하면서 극심한 혼란을 겪은 곳이기에 사회적 고립이 높다고 해도 우리나라의 사회적 고립이 높다는 것은 의외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지금 한국사회는 한마디로 불신사회다. 오히려 과거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정부나 여타 사회단체들에 대한 신뢰도가 꽤 높았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 제도에 대한 신뢰는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가장 심한 적자는 바로 ‘신뢰의 적자’다. 신뢰가 부족하다 보니 서로 협력해야만 이룰 수 있는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정치권은 각자의 정파적 이익을 넘어서는 일에는 합의하지 않는다. 국민은 정부가 하는 일에 매우 냉담하고, 한때는 중요한 중재자 기능을 했던 시민사회도 점점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자원봉사와 기부도 많이 줄어들고 있는데, 그 이유를 설문해본 결과 비영리단체를 ‘신뢰할 수 없어서’라는 대답이 많았다. 신뢰가 없다는 것은 타인과 사회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도 먹고살기 힘든데 어떻게 남들에 대해 신경 쓰느냐는 것인데, 이런 태도는 결국 내가 어려울 때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게 만든다.

 

 문제는 왕도정치의 리더십이 민주주의에서 전제하는 리더십과 체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이다. 선거 때가 되면 많은 입후보자가 세종로의 세종대왕상 앞에 와서 출마를 선언한다. 국민에게 자신도 세종대왕처럼 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그 출발에서부터 왕도정치와는 거리가 멀다. 미국의 정치학자 쉐보르스키(Adam Przeworski)의 표현을 빌리자면 민주주의는 ‘불신을 제도화’한 것이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만든, 미국 헌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임스 메디슨(James Madison)이 고민했던 문제는 이랬다. 시민들이 합의해서 선출한 지도자가 고약한 전제군주처럼 행동하게 되면 어떻게 하나?
 이러한 우려 때문에 신생 민주주의 국가 미국에서는 헌법을 만들면서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했다. 종신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임기를 정해서 성과를 살핀 후 연임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문제를 일으키면 임기 내에라도 탄핵해서 끌어내릴 수 있게 했다. 또 한 사람에게만 권한을 몰아주면 위험하니까 서로 견제할 수 있도록 정부를 입법, 사법, 행정부로 나누었다. 이게 애초에 민주주의를 구상한 사람들의 생각인데, 한마디로 말하면 ‘최악에 대비한 안전장치’였다.

 

 1990년대 재난에서 드러나는 공통점 중 첫 번째는 비용감소를 위한 높은 위험추구가 원인이라는 점이다. 고도성장기 우리 사회의 구호는 ‘시간은 돈’이었다. 그래서 ‘빨리빨리’ 문화가 발달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빨리빨리, 미친 듯 서둘렀는지 나중에 기업가들의 회고록에서 알게 되었는데, 바로 높은 사채 이자율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금융산업이 발달하지 않아 사채시장이 성업했다. 조선시대 고리대 못지않게 연 20~30퍼센트로 매우 높은 사채금리 때문에 급전을 빌려 쓴 기업들은 어떻게든 공사기한을 단축해서 빨리 끝내야 이익을 남길 수 있었다.
 경부고속도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건설한 고속도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전설적인 공사 이면에 숨겨진 사실이 바로 그로 인한 희생자들이다. 쉴 새 없는 24시간 돌관작업으로 인해 사고가 빈발해 숨진 작업자가 많았다. 현재 추풍령을 넘어가는 고갯길에는 그때 희생당한 77명 근로자들의 위령비가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급속도로 건설한 결과 우리나라 고속도로는 수리비용이 가장 많이 들어간 고속도로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독일 아우토반을 예로 들면, 독일인들은 10미터를 파서 맨 아래서부터 자갈과 모래를 차곡차곡 채워 튼튼하게 마무리한다. 반면 우리는 기초를 얕게 해서 그 위에 아스팔트를 깔다 보니 조금만 지나면 금이 가고 깨져서 준공과 동시에 보수를 시작해야 했다.

 

 지하철 4호선 ‘남태령의 비밀’에 대해 들어보았는가? 4호선 건설 당시 시내 구간은 지하철공사가 담당하고 시외 구간은 철도청에서 맡아 공사를 진행했다. 그런데 두 기관의 기준이 달랐다. 한쪽은 직류 시스템, 한쪽은 교류 시스템, 그리고 한쪽은 좌측통행, 한쪽은 우측통행이었다. 그래서 세상에 둘도 없는 아주 기발한 역이 만들어졌다. 남태령을 넘을 때 직류와 교류가 바뀌고 좌우가 바뀌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똬리굴을 만들었다. 내려가는 가속도가 붙은 상황에서 전원을 차단하고 직류와 교류가 교차하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남태령 구간을 넘는 지하철 안에서는 불이 한번 꺼졌다 들어온다. 사실상 매번 경계를 넘는 순간 묘기 대행진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시스템 간 조정 실패는 우리 사회 도처에 존재한다. 2003년 대구지하철 사고가 일어났을 때 응급통신망 주파수가 정부부처나 기관 간에 서로 달라 피해를 키웠다는 반성이 일었다. 그래서 고치기로 했지만, 10여 년간 개선하지 못하다가 급기야 세월호 사건이 터졌다. 이때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해군과 해경, 교통부가 쓰는 주파수가 모두 달라서 문제해결을 신속히 하지 못한 것이다. 이렇듯 조율 시스템의 부재가 모든 사고를 더욱 증폭시킨 원인이 되었다.

 

 사실 우리가 겪은 많은 재난을 연구하는 이들의 경험이 카산드라의 예언과 비슷하다. 위험신호를 읽고 경고하지만, 무시당하는 것이다. 정부부처나 기업에서 위험을 대비하는 역할을 맡은 이들은 권한이나 예산이 적은 한직으로 분류된다. 성실히 일해서 사고를 예방하면 겉으로는 드러나는 것이 없고, 사고가 나면 책임을 져야 하니 ‘잘해야 본전’이라 여기고 일 맡는 것을 기피한다.
 문제는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조직과 기반시설들이 과거의 단순 시스템에서 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시스템으로 진화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원자력 발전이나 고속철도, 광통신과 네트워크 등 첨단기술을 활용하는 복잡하고 정교한 시스템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러한 최첨단 시스템도 사고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사전적으로 여러 가지 위험신호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무시하고 방치했다가 나중에 터져버린 ‘숙성형 사고’가 과거의 사고였다면, 새로운 성격의 사고는 피할 수 없는 ‘정상사고’다.
 사고가 정상이라니 형용 모순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개념을 사용한 페로(Charles Perrow) 교수에 따르면 아무리 우리가 뛰어난 능력과 기술을 가지고 시스템을 설계한다 하더라도 신이 아닌 이상 오류나 실패의 확률을 0으로 만들 수는 없다.

 

 1993년 전북 부안군 위도에서 침몰한 서해 페리호 사건의 구조도 세월호 사건과 동일했다. 그때 던져진 질문이 왜 적정 기준을 훨씬 넘겨 과적했는지, 태풍 예보가 있었는데 왜 무리해서 출항했는지, 왜 구명조끼는 갑판에 묶여 있어서 응급시 사용치 못했는지 등이었다. 앞서 살펴본 스위스치즈 모델처럼 여러 겹의 안전장치들 중 한 겹만이라도 제대로 작동했다면 대구지하철 사건과 같은 극단적인 피해까지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모두 안타까워했는데, 그로부터 20년 후에 똑같은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예고된 참사였던 세월호 사건 또한 여러 단계의 안전장치가 모두 무력화된 결과였다. 즉 세월호 사건은 예외적인 한 번의 재난이 아니라 그 사건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 갑판 위의 노동력 관리, 해운회사의 운영과 조직문화, 연안해운을 둘러싼 규제기관의 역할, 정부의 정책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준의 시스템적 요소들이 결합해서 만들어진 종합 결과물이었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청해진 해운의 고위험추구 경영 → 사고 이력이 있는 중고선박 도입 → 무리한 증축 및 구조 변경으로 인한 복원력 문제 발생 → 해양수산부 출신의 한국해운조합, 한국선급, 선박안전기술공단 장악으로 인한 규제 및 감독 소홀 → 승객관리 및 과적 관리 부실, 형식적 안전훈련, 안개 속 무리한 출발 → 선장 및 선박직 직원의 도덕적 해이·인적자원 관리의 부실 → 해경의 초기대응 실패: 골든타임을 놓친 응급구조 → 중앙안전대책본부의 컨트롤 타워 부재(사망자 집계를 둘러싼 혼란)

 

 현재 한국의 정치는 대통령이 취임하는 순간부터, 심지어는 같은 정당 내에서조차 미래 권력의 견제를 받는 시스템이다. 자신의 소신을 펼치기 어려운 여건이라는 뜻이다. 그렇다 보니 사실상 우리의 문제는 대부분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들임에도 정책은 단기적이고 임기 내 결과를 보려고 하는 것들 위주다. 대통령 하나 잘 선출했다고 해서 풀릴 수 있는 문제는 거의 없다. 그만큼 사회는 복잡해졌고,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고질적이다.
 각 정당이 내놓는 정책들도 차이가 거의 없다. 좋다는 것은 서로 베끼고 공유했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뀌면 강조점의 차이가 있을 뿐, 그것은 6시 5분 전과 5분 후의 차이와 같다. 그런데 정당 간 표현으로는 3시와 9시의 차이가 된다. 그래서 정권이 바뀌면 이전 정권에서 쓰던 정책을 지칭하는 용어는 금기어가 되고 다른 개념으로 포장해서 내놓지만 정작 새로운 것은 없다.
 사실 현존하는 사회문제가 정권이 바뀐다고 금세 해결되겠는가? 위험과 갈등요소는 여전하고, 정책의 콘텐츠는 달라진 게 없는데 포장만 달라진다. 게다가 사방이 견제의 대상이니 모든 정권이 임기 초반에 반짝 생색낼 수 있는 일만 하게 된다.

 

 그런데 독일의 전 총리 슈뢰더(Gerhard Schroder)가 그 일을 해냈다. 그는 유럽의 환자라고 하는 독일의 여러 가지 문제들, 소위 독일병을 풀기 위해 4단계 노동시장 개혁 방안을 골자로 하는 하르츠(hartz) 개혁을 시도했다. 슈뢰더는 사민당 출신으로 우리 식으로 하면 노조의 지지를 받는 총리임에도 노조에 가장 피해가 가는 정책을 집행한 것이다. 그래서 다음 총선에서 낙선하고 보수적인 기민당의 메르켈(Angela Merkel)이 당선되었다.
 그러자 정작 하르츠 개혁으로 인한 실업문제 해결, 고용률 증가의 혜택은 메르켈 정부로 돌아갔다. 하지만 메르켈은 나중에 슈뢰더를 모신 자리에서 그를 칭송했다. 정치적으로는 서로 정적이지만 국가를 위해 필요한 개혁을 했기 때문에 독일이 유럽의 맹주, 챔피언으로 다시 올라설 수 있었다면서 박수를 보낸 것이다. 이때 많은 독일 사람들이 감동했다. 독일의 하르츠 개혁을 보면 결국 정권에게는 임기 내 성과뿐 아니라 장기적 비전의 공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사회적 합의의 기술이다.

 

 프랑스는 숙의제 민주주의 국가로 중요한 국가사업에 대해서는 국가공공토론위원회를 열어 충분한 토론을 통해 합의를 도출한다. 일정 규모 이상의 철도나 도로, 발전소, 문화·체육·관광시설 건설은 의무적으로 공공토론을 열어 불만을 가질 수 있는 지역 주민이나 시민단체가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절차상의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과정의 정당성으로 인해 일단 정책이 시행되고 나면 국민 간 갈등이 대폭 줄어드는 효과가 생긴다. 다행히 우리나라도 이제는 이와 같은 공공토론을 점차 의무화하고 있는 추세다.

 

 이후 하버드대학의 나이 교수가 소프트파워라는 개념을 제안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는데 그것이 바로 선 인프라와 같은 개념이다. 그러면 선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았을 때 겪게 되는 대표적인 문제들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품격 없는 사회의 여러 증상들은 무엇일까? 바로 사회적 합의가 쉽지 않고, 타인에 대한 공감력이 부족하며, 제도와 법령을 양산하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공공의 이익보다는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공유지의 비극’이 만연하는 사회다. 그래서 품격 없는 사회는 갈등이 넘쳐나는 ‘갈등사회’, 모두가 화가 난 ‘분노사회’가 되는 것이다. 선 인프라를 사회학자들은 금융자본이나 인적자본과 구별되는 사회자본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사회적인 가치가 잘 구현되는 인프라인 것이다.
 선 인프라가 잘 작동하는 나라의 특징 중 하나는 행복감이 높다는 점이다. 물론 행복이란 개인들이 느끼는 것이지만, 평균적 행복감이 나라별로 차이가 크다면 개인적인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다. UN에서 발표하는 행복지수는 나라별로 그 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해하느냐의 평균을 보여준다. 행복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은 ‘삶의 전반에 대해 어느 정도 만족하느냐’는 간단한 질문으로 구성된 행복감의 척도가 체계적으로 개인과 그 나라의 사정을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2011년 OECD의 주요 국가들을 대상으로 여러 지표들을 검토해 사회의 품격을 평가한 결과, 가장 품격이 높은 나라는 덴마크였고, 한국은 30개 국가 중 28위로 거의 최하위였다. 한국보다 품격이 낮은 곳은 터키와 멕시코였다. 한국의 영역별 순위는 복지와 안전망에서 29위, 인적자본 투자에서 18위, 사회적 응집성에서 23위, 정치참여에서 29위였다. 이중 인적자본 투자 영역이 그나마 낫지만, 이것은 국가가 하지 않아도 학부모들이 대대적으로 사교육에 투자해서 교육비를 높인 결과다.

 

 사회적으로 투명하고 정치적 역능성이 높은 나라에서는 실력 경쟁이 활성화된다. 예를 들어 선진국에서는 채용 시에 추천서를 중시한다. 미국이 매우 공정한 사회라고 하는데 사실상 그 공정성의 기반은 추천서다. 대학진학 시에는 고등학교 교사가 추천서를 써주고 취업할 때는 지도교수가 추천서를 써준다. 명문대학에서 신임교수를 채용할 때도 추천서가 중요하고, 그 추천서의 분량도 꽤 많다. 오랫동안 지원자를 논문 지도하면서 경험한 여러 모습들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어서, 평가자들은 추천서만 읽어도 지원자의 장단점을 모두 알 수 있고 그래서 그를 채용했을 때 어떤 일들이 발생할지를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점수화해야 한다. 객관적으로 채점해서 총점이 0.1점이라도 높은 사람을 뽑아야만 채용의 당위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제소당할 위험이 크다.
 오래전 내가 재직하는 대학에서 학교장 추천제를 도입한 적이 있다. 도입 의도는 학력고사 점수로 줄 세워서는 들어올 수 없는 ‘끼가 넘치고 발전 잠재력이 풍부한’ 숨은 보물을 학교장 책임하에 추천해주면 뽑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평가위원으로 참여해 접한 추천서들은 모두 동일한 형식을 갖춘 천편일률적인 내용들이었다. 예컨대 “이 학생은 품행이 방정하고 두뇌가 명석하며 효성이 지극하고 성취가 탁월하며 봉사정신이 투철하다”는 식의 최상급 형용사의 나열로 일관된 것들이었다. 모두 슈퍼맨이고 슈퍼우먼이니 그들이 진짜 어떤 학생인지 구체적인 모습을 떠올리기 쉽지 않았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결국 누구도 책임지고 추천하려 하지 않다 보니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학부모 대표, 교사 대표, 학생 대표 등을 참여시킨 추천위원회를 만들고, 성적, 리더십, 봉사활동에 대한 점수표를 만들고, 그 모든 숫자를 합산한 1등을 추천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