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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의 문법 / 김용익 외 / 한겨레출판

 

 한국의 의료보험을 훨씬 더 특별하게 만든 것은 의료서비스의 공급자를 민간에 의존하고 공공병원을 늘릴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의료보험이라는 공공재원을 만들면서도 공급자는 공공병원을 늘리는 대신 정부가 조달한 국내외 자본을 제공해 민간병원을 설립하도록 지원했다. 정부로부터 그런 지원을 제공받지 않았더라도 늘어나는 의료 수요 때문에 민간병원은 매우 빠른 속도로 확충되었다. 이러한 선택은 그 이후 정책에서도 강력한 ‘경로’로 작용해서 노인요양, 보육 등에서 민간요양시설, 민간어린이집 등의 형태로 반복된다. 우리나라의 보건복지 인프라에서 민간부문의 비중은 대부분 90% 이상으로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들다.
 결국 박정희 정부의 의료보험은 그 이후의 사회정책에서 아주 중요한 두 가지 경로를 설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회보장제도의 방식을 사회보험의 방식으로 설정’하는 것과 ‘서비스 제공을 민간에 맡기는’ 것, 이 두 가지가 그것이다. (p.58-59)

 

 국가와 시장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지만, 국가가 경제·사회를 움직이는 틀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한국은 세계적인 스펙트럼으로 보자면, 국가의 역할이 너무 왜소하고 시장의 영향력이 압도적인 나라에 속한다. 박정희 정부 시대에 본격화된 권위주의적 정치권력이 민주화 이후 사라졌다. 그 후에 국가의 역할은 국민의 삶을 적극적으로 보살피는 것으로 변화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정부의 작은 역할 중에서도 경제정책이 주로 강조되고 사회정책은 부차적으로 다루어지는 것도 한국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정책을 사소하게 생각하다 보니 부처 관료 간의 권력관계를 봐도 경제부처의 권한이 사회부처보다 비정상적으로 강하다. 이 권력관계는 정부 내에서의 해당 부처의 활동 범위와 국가의 역할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p.66-67)

 

 시장은 국가가 정해준 틀 속에서 성립되는 것이지, 시장 자체가 자동적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시장에 일정한 조직의 틀을 만드는 데, 그리고 시장의 규칙을 만드는 데 필요한 국가의 역할이 있다. 시장이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 또 시장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장하준 교수의 견해는 당연히 맞다. 그런데 가계에 대해서도 국가의 역할을 두고 같은 논리가 성립될 수 있다. 가정경제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도 국가가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하는데 한국은 그 부분이 매우 취약하다. (p.70)

 

 한국은 조세부담률과 국민부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에 비해 낮은 나라에 속한다. 조세와 사회보험료를 모두 포함하는 국민부담률은 2019년 기준 한국은 27.3%,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은 33.8%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에 비해 4/5 수준 정도로 조세와 사회보험료를 부담하고 있는 셈이다. 세계적인 기준에서 보았을 때, 한국은 세금을 많이 내는 나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은 조세 부담이 너무 크다고 느낀다. 어느 나라든지 세금을 적게 낸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없겠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이 세금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일 듯싶다. (p.73-74)

 

 한국은 현물급여 복지의 생산조직을 극단적으로 민간에 의지하는 아주 특수한 나라에 속한다. 이 부분이 한국 복지의 성격을 규정하는 중요한 지점이자 앞으로 더 나은 복지국가를 만드는 데 커다란 장애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 우려되는 부분이다. 보건의료 부분을 보면 공공의료기관은 전체의 5.7%, 공공병상은 10%밖에 되지 않는다. 건강보험을 한국과 비슷하게 사회보험 방식으로 운영하는 일본이나 대만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자유주의국가라는 미국과 비교해도 절반이 되지 않는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보건의료 생산에서 아주 극심한 민간 의존도를 가진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보건의료서비스 제공의 민간 의존도도 심각하지만, 사회복지서비스 분야로 가면 상황은 더 극심하다. 노인을 위한 사회복지서비스를 공공으로 직영하는 비중은 0.8%, 아동을 위한 사회복지서비스의 경우에는 0.7%인 식으로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설립한 몇 안 되는 기관들마저도 대부분 민간 위탁을 주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공공다운 공공복지시설은 전무한 실정이라고 할 수 있다. (p.88)

 

 그러나 학교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공공 비중은 여전히 너무 낮고, 이는 현물급여 서비스의 질적 수준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흔히 공공부문은 서비스의 질이 낮고 민간부문은 높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공공 보육시설의 보육서비스, 국립대학의 교육서비스, 국립대학병원의 의료서비스 품질에 대한 국민 신뢰성을 생각해보면 이는 쉽게 알 수 있다. 지방의료원들의 경우도 같은 규모의 민간병원과 비교해 의료서비스 품질이 결코 나쁘지 않다. 국공립 시설은 해당 분야의 서비스에서 질적인 기준을 잡아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예를 들어 국공립 요양시설이 요양서비스의 질적 기준을 잡아주고, 민간시설들이 이에 준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민간시설들만 모여 있으니 이런 기준을 잡아주는 기관이 없고, 그렇다 보니 정부도 관리가 힘들어진다. 또한 서비스 제공 시설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편중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서비스 이용비의 상승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보건복지의 경우 정책 집행의 손발이 되어야 할 공공시설이 없으니 정책 집행 단계에서 상당히 큰 문제들이 일어난다. 교육시설은 국가가 세운 공립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국립대학 등이 있지만, 보건복지부 소관인 병원은 국립중앙의료원, 국립암센터, 국립재활원 등을 제외하면 국가가 세운 공공병원이 없다. 대부분의 병원은 민간에서 세웠고, 그나마 있는 공공병원인 지방의료원도 지자체 소관이라서 보건복지부가 어떤 의료정책을 펼치려고 해도 그것을 집행해줄 손발이 없다. (p.91-92)

 

 사회서비스 분야는 특히 여성의 취업 기회를 많이 늘려준다. 정부 고용 규모가 크지 않은 것은 한국의 여성 고용이 서구보다 10% 정도 떨어지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돌봄 노동의 부담에 사로잡혀 있다. 사회화되어야 할 돌봄 노동이 여전히 무급 가족노동, 특히 여성 가족 구성원의 노동에 의존한다. 여성의 사회경제적 진출을 가로막고 경력단절을 일으키는 주요 요인이다. 한국에 자영업자가 유난히 많은 이유도 이런 종류의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일 수 있다. 자영업자들이 끊임없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과정에서 가계부채가 점차 늘어나는 악순환과 사회 불안이 발생하는데 이런 현상들의 원인도 상당 부분 질 좋은 일자리의 부족에 있다.
 물론 국가가 고용을 늘리려면 많은 재원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 비용은 소득세와 거래세를 통해 회수된다. 늘어난 고용은 늘어난 소비를 통해 생산을 자극하고, 늘어난 생산은 법인세와 또 다른 거래세로 회수된다. 고용이 늘어나면 더 많은 가계가 맞벌이를 통해 소득을 늘릴 수 있고, 국민들은 더 좋은 돌봄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양극화,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질 좋은 일자리와 질 좋은 돌봄은 국민들의 간절한 요구다. (p.97)

 

 양극화는 시장에서 생기는 문제인 만큼 시장에서 먼저 풀어야 한다 한국 노동시장 구조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취업자가 적고, 취업한 사람은 장시간 노동을 한다는 것이다. 취업자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반면, 미취업자는 고용될 일자리 자체가 없는 현상이 생긴다. 취업한 사람이 ‘일을 많이 해서 피곤하다’라고 불평하면, 취직을 못한 사람은 ‘나도 그렇게 시달려봤으면 좋겠다’ 하고 부러워하는 일이 벌어진다. 일자리가 없으니 창업하는 일이 많은데, 얼마 안 가 한계상황에 내몰려 문을 닫는 자영업자들이 부지기수다. 그러면 그동안 들어간 사업경비가 가계부채로 쌓인다. 이런 일이 반복된다. (p.124-125)

 

 소득 불평등이 우리 사회에 끼치는 세 번째 악영향은 불평등 심화로 인한 ‘창의력’ 저하다. 대한민국 총인구의 약 2.1%는 지속적 빈곤, 11.5%는 반복적 빈곤, 1.6%는 일시적 빈곤 상태에 처해 있어서 2020년 기준으로 전체 빈곤자는 78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대한민국 국민의 약 1/3은 가난하거나 가난의 위협에 시달린다는 뜻이다. ‘배고픈 사람’은 창의적인 생각을 하기가 어렵다. 생계를 걱정하면서 어떻게 의욕이 넘치고 창의적인 사고가 가능하겠는가? 소득 격차가 벌어질수록 경제의 활력과 혁신 능력은 떨어지게 된다. 경제가 성장하려면 혁신이 있어야 하는데 혁신의 걸림돌이 바로 불평등이다. 평등한 사회가 성장도 잘된다. 평등해야 건강하고 평등해야 창의적일 수 있다.
 소득 불평등이 악화할수록 그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비용도 더 들어간다.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도 더 증가한다. 당연히 이것은 정치와 경제에 부담을 준다. 복지정책이 복지와 인권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경제를 위한 정책인 이유다. 그런데 한국의 정책 입안자들은 지금도 여전히 ‘복지정책은 복지정책’이고, ‘경제정책은 경제정책’이라는 고정된 관점에 사로잡혀 있다. 복지정책은 경제의 바탕을 만들어주는 가장 기본적인 경제정책이 될 수 있다. 복지정책이야말로 인적 자본을 축적하는 정책이고,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는 정책이다. 현대사회에서 복지정책의 경제정책적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정부는 국가 운영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p.135-136)

 

 ‘출산력 제고’를 정부가 정책 목표로 설정하는 것 자체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국민이 있다는 사실은 정부가 정책 목표를 잘못 세우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정부가 설정할 수 있는 가족 정책의 올바른 목표는 아동과 부모의 복지와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출산력 제고 자체는 정책 목표가 될 수 없다. 본말이 전도되었기 때문에 ‘여성을 도구화한다’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정책의 역할은 출산과 육아가 부담이 되지 않는 사회경제적인 상황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출산 여부는 부부의 자발적 선택이다. 즉, 정책 목표를 출산 유도에 맞출 것이 아니라 임신, 출산, 육아가 국민의 삶에 부담되지 않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데에 맞추어야 한다. (p.146)

 

 서구를 여행하다 보면 오후 5시가 되자마자 유령이라도 나올 것처럼 도시 전체가 조용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관공서나 회사는 물론이고 작은 가게들까지 일제히 문을 닫는다. 그렇게 일을 마치고 집에 가서 가사 노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들은 술을 언제 마실까? 집에서 저녁을 가족과 함께 차려 먹은 다음, 동네 술집에서 동네 친구들과 마신다. 우리처럼 직장 일 때문에 직장 근처에서 업무상 마시지 않는다. 그 시간에 어떤 사람들은 취미 활동을 한다. 《유러피언 드림》에서 제러미 리프킨이 말한 ‘심오한 놀이(deep play)’다. 거기서 뜻하지 않은 창의력이 폭발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제2의 인생을 위한 공부를 한다. ‘서머타임’ 제도는 정시 퇴근제와 짝이 맞아야 제구실을 한다.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 집에 가면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아진다. 여행객들에게는 몹시 불편하지만 일과 가정은 그렇게 해야 양립된다. (p.157)

 

 교육을 제외한 사회보장제도는 대부분 사회보험 방식으로 제공되는데 여기에서 우리나라 복지제도의 중요한 특징이 비롯된다. 첫째로는 사회보장제도 수혜 여부가 ‘고용 상태와 강력하게 연결’이 된다는 것이다. 사회보험 방식을 취하게 되면 국민건강보험의 지역가입자 같은 예외도 있지만, 시장에 고용된 집단을 주 대상으로 하게 되기 때문에 가입자가 고용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관리된다. 보험료도 소득(주로 근로소득)을 기준으로 고용자와 피고용자가 분담한다. 공무원의 경우에는 정부가 일정 부분의 보험료를 분담하는데 이것은 국가로서 국민에 대해 부담해주는 것이 아니고 고용자로서 피고용자인 공무원에 대해 부담하는 것이다. 자영업자는 고용자이자 피고용자이기 때문에 별도의 제도를 구성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자영업자 비중이 커서 이 인구집단 때문에 사회보장제도에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사회보장제도는 나라마다 차이가 크고 국가별 상황에 맞게 제도가 구성된다. 우리나라는 고용시장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이와 강력히 연결되어 작동하는 사회보장제도도 불안정한 성격이 상당히 강하다. (p.201)

 

 사회보장제도의 성공 여부를 가르는 관건은 해당되는 사람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다. 즉, ‘가입의 보편성(universality)’이 일차적으로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고용과 아주 강한 연관성을 가지도록 제도가 설계되어 있어서 국민연금은 물론이고, 산재보험, 고용보험 등에서 복지 수혜자가 되어야 할 사람들이 상당수 제도에서 빠져 있다. 사각지대가 넓은 상태에서 보험급여를 확대하면 오히려 불평등을 악화시킬 우려가 크다. 문재인 정부에서 건강보험의 급여 확대를 시도한 것은 건강보험 가입이 보편성을 가졌다는 전제조건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더구나 앞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한국은 고용시장 자체가 상당히 불안정하다. 한국과 같이 불안정한 노동시장을 가진 나라에서 사회보험 방식의 복지제도가 타당한지는 그 자체가 큰 의문이다. 지금이라도 조세 방식의 제도로 전환을 하거나, 그러한 요소를 늘려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p.210)

 

 우리나라 사회보장제도에서 국민에게 부담을 주는 방식으로 설계된 부분은 별로 없다. 물론 부분적으로 제도 개선을 해야 할 부분은 수없이 많지만 큰 틀에서 봤을 때 국민 삶에 이익이 된다는 뜻이다. 사회보험제도 운영 시 보험료를 내는 사람과 혜택을 받는 사람의 불일치, 가입자가 돈을 내는 시점과 받는 시점의 불일치는 불가피하다. 그로 인해 보험료 부담이 커 보일 뿐이다. 그러나 평생 부담하는 보험료와 평생 받는 혜택의 총량을 비교해보면 국민의 절대다수가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이익을 보고 있다.
 이쯤에서 사회보장제도가 경제와 선순환 구조를 그려야 한다는 말을 다시 하고 싶다. 사회보장제도가 경제발전과 선순환 구조를 만들도록 정부가 정책적인 노력을 하고 국민도 올바른 개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런데 걸핏하면 보수 언론은 정부가 복지정책 좀 펼치려고 하면 ‘보험료 폭탄론’ 내지는 ‘기금 고갈론’을 들고 나와서 정책 추진을 막아선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과 달리 사회보장제도를 수급자 중심으로 제도 정비를 하고 이를 통해 국민 생활을 지원해주지 않으면 경제가 더 불안정해진다. 정부가 사회보장에 들이는 비용은 가계를 거쳐 구매력으로 전환된다. 정부의 ‘재정’도 민간의 ‘시장’과 마찬가지로 ‘돈’을 순환시키는 펌프로 작동한다. 경제는 시장과 재정이라는 두 개의 펌프로 작동하면서 돌아간다는 이해가 필요하다. 시장이 수요와 공급을 통해 돈을 순환시킨다면, 재정은 세입과 세출을 통해 순환을 시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국가 재정이 사회보장제도 운영에 투입되어 사회 전체에 이익을 남기는 구조를 만들고, 국민도 여기에 동의해가도록 정치권과 언론이 협조해야 한다. 정치적 이해를 앞세워 잘못된 프레임으로 여론을 선동하고 국민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지원하는 정책 추진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앞으로는 사회보장제도를 구상할 때, 사회투자로 성장을 만들어가는 전략이 성립되도록 그 개념을 새로이 해야 한다. (p.221-222)

 

 제도 개선과 더불어 인프라 개혁도 동반되어야 한다. 특히 현물급여 사회보장제도가 그렇다. 장애인 복지를 예로 들면, 우리나라는 전반적으로 의료 접근성이 나쁘지 않은 편이지만 장애인의 의료 접근성은 아주 안 좋다.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타고 갈 수 있는 병·의원은 많지 않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통역이 되는 병원도 거의 없다. 얼마 전에 어느 국립대학병원에 가서 강연을 했는데 강단에 장애인 경사로(램프)가 없었다. 그때 내가 다리를 다쳐 휠체어를 타고 있었는데 결국 다른 사람들이 들고 올라가야 했다. 그뿐이 아니다. 원장실 옆 장애인 화장실을 좀 가자고 했더니 창고로 쓰고 있었다. 국립대학병원도 그러니 다른 곳은 말할 것도 없다. 장애인 건강검진율도 굉장히 떨어지는데 장애인 검진 시설이 없어서 그렇다. 제도 사이에 가지가지 허점이 있다. 최근 사회문제로 대두 중인 ‘간병 살인’도 이런 허점들로 인한 돌봄 부담이 원인 중 하나라고 본다. 공공성 제고와 통합적인 돌봄 체계를 바탕으로 공공 인프라와 통합돌봄을 합치는 작업이 절실하다. 국가가 문제투성이인 현행 복지제도의 재설계를 미루는 것은 굉장히 비겁한 행위다. (p.223-224)

 

 정부의 의견은 입법 과정에서도 묻게 되어 있다. 담당 부처가 반대하면 사실상 입법을 할 수 없다. 법의 내용상 예산이 소요되는, 소위 ‘예산부수 법안’들은 담당 부처 외에도 기획재정부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국회의 입법 기능에 대해서 행정부가, 실제로는 담당 관료들이 거부할 권한을 갖고 있는 것이다. 헌법 제53조 2항에 의한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은 사후적인 거부권이지만, 관료들은 법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사전적인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셈이다. 물론 이러한 행정부의 입법 거부권은 필요한 측면이 있다. 예산을 함부로 낭비하지 않도록 한다든지, 행정적으로 안 좋은 법안이 국회에서 잘못 만들어지는 것을 억제하는 순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 삶에 꼭 필요한 법들이 관료들의 반대로 입법이 어려워지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기초생활보장의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서 부양의무자를 축소하자는 법안이 20여 년간 수없이 제출되었으나 경제 관료들의 반대로 최근 들어서야 비로소 축소할 수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집권당에 의한 관료 통제’가 아니라 ‘관료에 의한 집권당 통제’가 일어난다. 그래서 집권당이 바뀌어도 정책은 바뀌지 않는 것이다. (p.232)

 

 소선거구제에는 숨겨진 문제가 더 있다. 지역구 규모가 작기 때문에 국회의원과 지역구민의 개인적 인간관계가 중요해지고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활동에 시간을 많이 써야 한다. 지역구 ‘바닥 작업’을 하느라고 국회 전문위원회 일정을 잡지 못하는 일도 많다. 지역 주민들과의 생활밀착형 정치도 중요하지만, 지역구에 신경 쓰느라 국회의원들이 정책을 고민할 시간이 부족해지는 것은 큰 문제다. 이런 상황을 강제하는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전환해 시·도 단위 비례대표제만이라도 도입하게 되면,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활동보다는 정책적인 활동으로 전국적 명성을 높이는 전략을 쓰게 될 것이다. 소위 말해서 ‘공중전’을 할 수 있게 된다. 지역구를 구석구석 돌아다녀야 하는 소선거구제로 국회의원을 뽑는 한 대정치인은 나오기가 어렵다.
 중·대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각 정당은 득표한 만큼 국회의원을 배출할 수 있게 된다. 자기 표가 사표가 될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에 유권자는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에 투표하는 것을 망설일 필요가 없다. 결국, 비례대표제는 여러 개의 크고 작은 정당이 동시에 활동하는 다당제가 보편적으로 현실화된다는 뜻이자, 복수의 정당이 공동으로 연립정부를 구성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게 되면 진보 정당도 국회의원을 다수 배출할 수 있고 연립정부를 통해 정부 운영에 참여할 기회가 생긴다. (p.240)

 

 물론 예산안에 집권 세력의 의지가 반영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떤 부분을 반영할지가 기재부에 의해 ‘선택’되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안을 만들 때 모든 부처는 기재부에 가서 협의하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 특히 사회부처들은 이 벽을 매우 힘들어하고 사전에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 국회는 정부안을 심의를 할 권한이 있고 실제로 국회 심의를 거치면서 상당한 변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국회가 본격적으로 예산을 심의할 수 있는 시간은 11월 한 달 정도밖에 안 된다. 정치적 타협과 부분적인 조정이 가능할 뿐이다. 정부안의 기본적인 틀을 바꿀 수는 없다. 예산을 계획하는 과정에서 ‘정치권력에 대한 관료 권력의 우위’, 그리고 ‘타 부처에 대한 기재부의 우위’가 관철된다. 결국 정부 각 부처의 실질적인 활동을 통제하는 곳은 집권당이 아니라 기재부가 된다. 이 구조를 깨지 않으면 정부의 역할 변화는 일어날 수가 없다고 본다. (p.243)

 

 국가의 역할 변화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는 지방자치다. 우리나라는 지방자치단체가 광역이건 기초건 모두 종합 행정을 한다. 서양에서는 광역자치단체(county)와 기초자치단체(municipality)가 역할을 분담한다. 광역자치단체는 경제문제를 포함한 지역발전계획을 세우는 역할을 하고, 기초자치단체는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복지를 담당한다. 또한 지역병원의 설립과 운영은 광역자치단체가, 보건소나 사회복지시설의 설립과 운영은 기초자치단체가 하도록 분담하기도 한다. 이런 바탕 위에 중앙정부는 기획 위주의 역할을 한다. 한국은 광역과 기초가 모두 종합 행정을 하도록 하니 지역 인구가 얼마 되지도 않는 군수나, 전체가 하나로 움직이는 대도시의 한 조각에 불과한 구청장들이 경제와 토목을 운운한다. 그러면서 이들의 중요한 업무인 지역민들의 생활적인 보살핌은 소홀히 한다.
 정부조직 개편을 논의하면서 중앙부처 조직의 개편만 언급하는 것은 부족하다. 현재의 사회문제를 돌파하는 데 중앙과 지방, 광역과 기초의 업무를 어떻게 분담하는 것이 최적인지를 염두에 두고 개편안을 설계해야 한다. 주민들의 삶에 밀접한 보건, 복지, 교육, 생활교통과 같은 종류의 업무는 주민 삶의 현장을 가장 잘 아는 기초자치단체가 전담하고, 경제나 토목 업무에서는 손을 떼는 것이 좋다고 본다. (p.255)

 

 과연 복지에 돈을 쓰면 그것으로 끝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현재 65세 이상 노인들 중 소득 하위 70%에게 기초연금을 30만 원씩 주고 있는데, 30만 원을 받은 노인들이 5만 원짜리 6장을 받아서 그것을 밥처럼 씹어 먹어버리지는 않는다. 그 돈으로 옷을 사든, 식품을 사든 어디에서든 구매 행위를 한다. 그렇게 무엇인가를 ‘구매하는 그 순간’이 바로 복지가 구현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정부에서 돈을 줄 때는 ‘비용’으로 보이지만, 수급자들이 그 돈을 받아들고 소비하는 순간 ‘비용’은 ‘구매력’으로 바뀐다. ‘비용이라는 복지’가 ‘소비라는 경제’로 변화하는 것이다. 2022년 기초연금 수급자 수는 약 628만 명이고 투입된 예산은 20조 원이다. 이것이 단 한 번 일회성으로 지급된다면 잠깐의 ‘반짝 경기’로 지나가겠지만 매달 약 1.7조 원이 지급되고 이를 바탕으로 소비 행위가 지속적으로 일어나면 이 소비들이 반드시 국가 경제 전반의 생산능력을 자극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효과는 연쇄적이다. 생산이 늘면 고용이 생긴다. 고용이 늘면 근로소득이 늘고 또 거래가 증가한다. 소득과 거래가 늘면 소득세, 거래세로 세수도 늘어난다. 복지로 ‘지출’되었던 정부 재정이 다시 세금으로 ‘수입’되는 것이다. 더욱이 기초연금을 수급받는 노인들 대부분은 집 근처에서 물건을 산다. 멀리 백화점까지 가서 소비하지 않는다. 즉, 기초연금 지급이 골목상권 회생과 중소기업 매출 증대로 이어진다. 복지에 쓰는 돈은 그냥 비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매력으로 전환되어 돈을 순환시킨다. 복지정책이 선순환의 경제를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p.257-258)

 

 문제는 세금을 올리는 ‘방법’이다. 우리나라의 여러 가지 정서를 고려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부자 증세를 한두 번은 해야 일반 국민에 대한 증세가 가능할 것 같다. 이때 부자 증세와 더불어 보편적 복지를 실행해야 한다. 보편적 복지는 모든 국민에게 복지급여를 해준다는 뜻이므로 증세 부담을 진 부자에게도 복지 혜택을 주는 것이다. 돈을 주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다. 보편적 복지가 되어야 부자들도 복지에 동의하게 된다. 이것은 세계적인 경험에 근거한다. 2020년 코로나19 대응책으로 1차 긴급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지급했을 때를 떠올려보라. 당시에 지급 대상에서 배제되어 억울하다는 원망도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부자들에게까지 ‘퍼주기’를 한다는 비난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2차부터는 선별지급을 하자 수없이 많은 원망과 논란이 터져 나왔다. 부자 증세를 하려면 반드시 부자들에게도 똑같은 혜택을 주어야 한다. 재벌 노인에게도 기초연금을 지급해야 하느냐는 논쟁은 이제 그만하고, 조건 없이 모든 노인에게 복지 지출을 하는 것이 옳다.
 그럴 돈이 어디 있느냐고? 부자들에게 퍼준 돈은 낭비이고 비효율이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부자들에게 혜택을 주는 대신, 소득 수준에 따라 세금을 그만큼 더 거두면 된다. 이런 방식을 ‘claw back’이라고 한다.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환수’ 또는 ‘되긁어오기’ 정도가 되겠다. 요컨대 부자들에게도 복지 지출을 공평히 하고 그만큼을 세금으로 다시 걷어온다는 말이다. 이런 방식이 가지는 큰 장점 중 하나는 행정비용(transaction cost)이 줄어드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각종 복지 혜택을 선별적으로 하기 때문에 그 선별에만도 엄청난 행정비용이 든다. 기초연금도, 아동수당도, 재난지원금도 지원 대상을 일일이 선별하려니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이것들을 모두 보편적 급여로 전환하고, 나중에 합산해서 한 번 되걷으면 일이 간단해진다. 그러면 지급할 때도 억울하게 누락되었다는 민원도 없을 것이다. 세금은 매년 조정하는 세율에 적절히 반영하면 큰 저항은 없을 것이다. 선별 작업은 백번을 해도 국민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다. 그런 헛수고를 하는 대신 노인, 장애인들을 한 번이라도 더 찾아가서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는 편이 진짜 복지다. (p.265-266)

 

 소득공제 제도는 나름의 필요성이 있으며, 모든 나라가 다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처럼 소득공제 종류가 많고 규모가 큰 국가는 찾기 힘들다. 소득공제 제도는 소득세 체계를 왜곡시키고 세수 규모를 줄인다. 한국의 소득세 규모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유독 작은 것은 상당 부분 소득공제 제도 탓이다. 향후 소득세 증세를 하려면, 소득세율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지만 소득공제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p.284-285)

 

 향후 복지 재원 확충을 위한 증세를 한다고 했을 때, 각 세목의 우선순위를 매긴다면 소득세>부가가치세>재산세>법인세 정도의 순서가 될 것 같다. 그리고 소득재분배, 부동산 가격 안정 등 다른 목적이 있다면 몰라도, 적어도 재원 확보가 목적이라면 부자 증세보다는 보편 증세가 타당하다. 한편, 증세를 통해 늘어난 재원은 복지 지출에 사용하도록 명문화하는 것이 좋겠다. 일본은 기존 5%였던 소비세율을 2014년 8%, 2019년 10%로 점차 높였다. 그러면서 인상된 재원은 사회보장 분야에 사용한다고 법으로 명시했다.
 이처럼 사용 용도를 명시한 세금을 목적세라고 한다. 목적과 사용처가 분명한 세금이다. 일본은 소비세 인상분을 목적세로 활용했지만, 특정 세목 대신 모든 세목에 일률적으로 일정 세율을 얹는 부가세(surtax) 형태의 사회보장 목적세를 신설할 수도 있다. 통상 재정학자들은 용도가 지정된 돈은 신축적인 재정 운용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반기지 않는다. 하지만 복지 지출의 경우는 꼬리표를 달아서 부담과 혜택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사회보험이 바로 그렇다. 사회보험은 연금, 의료, 실업, 산재와 같은 개별 프로그램별로 부담과 혜택이 연결되어 있다. 이에 비해 사회보장 목적세는 개별 프로그램보다는 넓은 범위의 사회보장 지출에 사용한다는 점만 다르다. (p.2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