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워크 / 탠시 E. 호스킨스 / 소소의책
쇼어 박사는 자신의 책 『과소비하는 미국인』에서 중산층 ‘과소비’의 만연과 바로 그 중산층이 교육, 사회복지, 공공안전, 여가 활동과 문화 같은 것들을 위한 공적 지출에 거부감을 나타내는 현상이 동시에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소비 사회가 낳는 결과 중 하나는 빈곤층과 거의 빈곤에 가까운 계층이 공공복지나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빈곤층의 심각한 증가, 가난한 동네의 낙후화, 그리고 범죄와 마약 이용 증가라고 쇼어 박사는 썼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어쩌면 개인적으로 돈을 써서 그런 문제를 회피하려 하겠지만, 이는 사회적 병폐에 대한 해법이 될 수 없다.
소비주의와 민영화는 사람들이 공적 영역으로부터 물러나 사적 자원이 쓰레기 수거, 치안과 학교 같은 공공 서비스를 사적 상품으로 만드는 게이티드 커뮤니티로 향하게 만든다. 이는 사회 전체의 청결과 안전과 교육을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고립을 방지하고자 하는 사회복지의 핵심 그 자체를 무너뜨린다. 이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묻는 것의 차이라고 바버는 믿었다. 첫 번째 질문에 답하는 것은 시장이지만, 두 번째 질문에 답하는 것은 공동체다. (p.62)
통제를 벗어난 소비주의는 우리가 구매하는 모든 물건이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의식하지 못하게 만든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신발은 허공에서 요술처럼 홀연히 나타난 게 아니라 사람들에 의해 공들여 만들어졌다. 그 사람들 중 압도적 다수는 여자들이고, 그 여자들 대부분은 먹고사는 데 필요한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보수를 받고 있다.
세계화는 낮은 노동기준, 그리고 공장에 발주하면 몇 주 안에 납품될 거라는 기대를 널리 퍼뜨렸다. 공장 밑바닥의 노동자들은 그 압박을 고스란히 짊어져야 했다. 그 결과로, 이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인 노동 시스템의 예봉을 맞고 있는 셰브넴 같은 여자들을 세계 방방곡곡의 제화 도시에서 만날 수 있다.
셰브넴은 무보수 잔업과 극도로 낮은 임금 및 위험한 노동조건이라는 현실에 처한 실제 인물이지만, 또한 전 세계의 제화 공장 노동자들을 표상한다. 가족을 부양하려 애쓰는 노동계급 여성으로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고 노동시장에서 거의 선택권을 가지지 못한 사람으로서 셰브넴은 우리가 사는 경제 시스템을 떠받치는 사람들을 표상한다. 셰브넴은 글로벌 사우스를 표상한다.
글로벌 사우스와 글로벌 노스는 단순히 지리적으로만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용어인 ‘글로벌 사우스’는 이전에 ‘제3세계’나 ‘미개발국’이라는 두루뭉술한 이름표가 붙었던 곳을 가리킨다. 그것은 또한 세계화 및 그 문제들과 관련된 용어이다. 인류학자 토마스 힐란드 에릭슨의 설명을 빌리자면, 글로벌 사우스는 ‘전 지구적 신자유주의의 위력에 휘둘리는’ 국가들을 나타내게 되었다.
간단히 말해, 어느 국가가 전 지구적인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경제로부터 이득을 보면 글로벌 노스, 그 시스템 아래서 고통을 받으면 글로벌 사우스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용어에는 단서 조항이 따라붙는데,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피해자와 수혜자는 국경을 가운데에 놓고 양쪽으로 칼같이 나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인도에도 억만장자와 강력한 엘리트들이 있는가 하면, 영국에도 푸드뱅크와 극빈 노숙자들이 있다. 따라서 ‘글로벌 사우스’는 단순히 지도상에 그어진 선이라기보다는 개념에 더 가깝다.
신발이 주로 글로벌 사우스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의도적인 사업 전략의 결과다. 임금과 노동비용이 싼 국가, 환경규제 기준이 낮고 건강과 안전기준을 강제할 능력이 빈약한 나라에서는 기업 이윤이 꽃을 피운다. 값싼 공장을 원하는 제화 브랜드들은 바로 이런 곳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선다. 아시아는 세계 신발 생산량의 83.3퍼센트를 담당한다. 최근 태국은 신발 생산국 순위에서 이탈리아를 밀어내고 10위로 올라섰다. 이제 10위 안에 있는 비아시아 국가는 단 두 곳, 브라질과 멕시코뿐이다. (p.69-70)
광고와 유명 인사 마케팅, 그리고 대중문화는 신발의 물질적 가치와 분리된 상징적 가치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글로벌 노스에 속한 탐욕스러운 소비 국가의 국민들은 그곳의 공장들이 문을 닫으면서 상품과의 연결고리를 잃어버렸다. 그들의 친구나 가족 중에는 더 이상 신발을 만드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 상점 진열창에 전시된 물건들은 신비감을 띠기 시작했다.
그 신비감을 더한층 끌어올린 것은 점점 더 늘어나는, 터무니없는 고액의 스폰서십 계약이었다. 마이클 조던이 1992년 스폰서십 계약으로 벌어들인 2,000만 달러는 나이키 에어 조던을 꿰매는 모든 동남아시아 여성 노동자의 임금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알려진 바에 따르면 베트남의 나이키 하청 업체에서 일하는 전체 노동자의 1년 치 임금의 두 배라고도 한다. (p.90-91)
무함마드는 공장 노동자에서 재택 노동자가 되면서 세계경제에서 더욱 낮은 계급으로 내려앉았다. 전 세계적으로, 판매용 카펫을 짜고 옷을 바느질하고 밧줄을 삼고 땅콩을 까고 공예품을 직조하는 노동은 전통적으로 가정에서 이루어졌다.
오늘날 지역 시장 또는 세계 시장을 위한 상품을 만드는 재택 노동자는 경제의 필수 요소이다. 공급 사슬이 이전의 어느 때보다도 길어지고 생산이 분업화되고 전 세계로 흩어지면서 사람들은 심지어 가전제품을 집에서 조립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숫자가 무려 수억에 이르는데도 재택 노동자는 여전히 눈에 띄지 않고 임시 고용 상태이며, 심지어 공식 공장 노동자가 얻을 수 있는 그 빈약한 보호마저 받지 못한다. 세계 최대의 브랜드를 위해 일할 때도 종종 있지만, 그들의 노동은 임시적이고 보호받지 못하며 임금과 일거리는 극심하게 요동친다.
다단계 공급 사슬은 3차 하청 공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떤 단계에서든, 어떤 공장이든 재택 노동자에게 하청을 줄 수 있다. 재택 노동자는 공장과 아무런 계약관계가 없으며 삯일 임금 말고는 아무것도 받지 못한다. 공장은 이로써 제조의 부담과 위험을 가능한 많이 덜어내고, 그것을 집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떠넘길 수 있다. 공간과 전기 같은 생산에 드는 비용과 발주가 중단되고 일거리가 없어서 노는 시간은 모두 재택 노동자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재택 노동은 1차, 2차, 3차 하청 공장 아래의 세계이다. 이 공급 사슬의 세계는 종류를 막론하고 어떤 규제나 공장 감사 시스템도 미치지 못하는 저 한참 아래에 존재한다. 무시당하는 세계이다. (p.100-101)
시장자본주의가 사람들의 가정을 침략하면 그 결과는 단순히 임금 착취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것은 단순히 노동비용 절감만이 아니라 기본적 산업 표준을 지키는 데 드는 누적 비용을 회피할 방법을 추구하는 시스템이다. 여기서 침략당하는 것은 그저 무작위적인 누군가의 가정이 아니라 위험한 일터로 변한 글로벌 사우스의 가정들이다. 생산비 절감을 위한 사냥은 초국적기업을 글로벌 사우스의 가장 빈곤한 지역으로 이끌었고 노동을 개별 가정으로 분산시키도록 몰아갔다.
이 시스템은 위험한 노동을 규제하려는 전 지구적 노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왔다. 건물 임대료와 공공 비용을 개인적으로 떠안는 데 더해, 재택 노동자들은 더 많은 불길한 비용을 짊어져야 한다. 가정이 일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상적인 세계에서라면 가정은 음식을 요리하고 가족과 개인이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깨끗하고 안전한 장소일 것이다. 반면 공장은 소음과 연기로 가득하다. 사람과 위험한 기계로 미어터지는, 압박이 심한 환경이다. 사람들은 공장에서 살 수 없고, 집이 공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p.108-109)
카트만두의 폐기물 하치장, 쓰레기 매립지, 그리고 뒷골목에는 수천 명의 집 없는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은 유기, 극한의 굶주림이나 추위, 폭력과 성적 착취를 겪는다. 이 아이들 중 다수는 삶에서 육체적·감정적 괴로움을 피할 얼마 안 되는 기회를 찾으려 애쓰다가 지독한 접착제 흡입 중독에 사로잡힌다.
네팔 컨선트 센터(Nepal Concerned Center)의 차일드 워커스(Child Workers)에 8년째 몸담고 있는 비슈누 프라사드 파우델은 거리의 아이들을 위해 일해왔다. 비슈누는 아이들이 접착제 흡입의 이유로 꼽는 것들이 모두 일종의 통증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굶주림, 외로움, 공포, 싸움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그리고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고 친분을 맺기 위해 접착제를 흡입한다.
네팔의 길거리 구멍가게에서는 접착제가 씹는 허브인 ‘판(paan)’과 나란히 판매된다. 비슈누는 이렇게 설명한다. “보통은 ‘판’을 팔지만, 그것 말고 거리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접착제도 파는데 그게 더 잘 팔려서 수익성이 더 높아요.” 치약 튜브만 한 크기의 접착제 가격은 하나에 65~70네팔 루피이지만, 거리의 아이들은 그보다 더 높은 100~150루피를 내야 한다. 상점 주인들이 아이들이 중독자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지역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샤헤드 이브네 오바에드는 방글라데시에 위치한 야간 대피소 겸 노숙 아동을 위한 청소년 센터에서 일한다. 그는 방글라데시에서 ‘댄디’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신발 접착제에 중독된 거리의 아이들을 자주 마주친다. 지역 잡화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댄디는 알코올이나 대마초, 또는 헤로인 같은 약물보다 훨씬 싸다. 너무 싸서 길거리에서 사는 아이들도 살 수 있다. 샤헤드는 접착제를 팔지 않으려 하는 가게는 없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그걸 사서 연기를 흡입할 수 있도록 비닐봉지에 붓는다.
샤헤드의 센터에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남자아이들뿐만 아니라 여자아이들 역시 접착제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러한 접착제 사용은 아동 성매매와도 관련되어 있다. 겨우 열 살밖에 안 된 여자아이들이 접착제를 사기 위해 성매매를 한다. 샤헤드는 말한다. “이 아이들은 길에서 살아요. 나이가 열 살, 열한 살, 열두 살, 열네 살이죠. 성인들이 아니에요.” (p.115-116)
충격적인 폭로와 더불어 공급 사슬을 흠 없이 유지하려는 기업의 욕구가 결합한 결과로 재택 노동 자체를 금지하려는 움직임이 가끔 일어났다. 그러나 마르타 첸 박사는 이는 ‘끔찍하기 짝이 없는 실수’가 될 거라고 단언한다. 그녀는 금지가 역효과를 낳은 예시로 파키스탄의 축구공 산업을 지적한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파키스탄은 전 세계의 경기용 축구공의 80퍼센트를 생산한다. 작은 육각형과 오각형 가죽 수백만 개를 한데 꿰매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이 작업은 매년 파키스탄 경제에 약 5,000만 달러의 기여를 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과거에는 이 작업의 많은 부분이 가정에서 여성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어머니에게 일손을 보태곤 했지만, 아동노동에 조명이 비춰지면서 축구공 생산은 작업장과 공장으로 옮겨졌다. 이는 여성이 공장처럼 남성이 지배하는 공공장소에서 일하는 것을 금하는 파키스탄의 사회적 장벽을 무시한 처사였다.
“문제는, 파키스탄의 일부 여성들은 집 밖에서 일을 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런 처사는 무척이나 모순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어린아이들만 더 이상 축구공 만드는 일을 못하게 된 게 아니라 어머니들도 그 일을 못하게 됐죠.” 첸 박사의 설명이다.
아동노동이 발생하는 이유는, 가족이 극도로 가난해서 작업 할당량을 채우려면 아이들도 같이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동노동을 근절하겠다고 사회에서 여성이 돈을 벌도록 허용하는, 아마도 유일한 방법을 금지한다면 역효과만 낳을 뿐이다. 아동노동을 막으려면 재택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개선해야 한다.
첸 박사는 재택 노동이 비록 ‘세계화 체제의 어두운 그늘’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나 두꺼운 성차별의 장벽 때문에 집 밖에서 일할 수 없는 여성들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라고 인정한다. 첸 박사는 말한다. “재택 노동을 금지하면 안 됩니다. 그것이 세계화 생산 체제의 필수적인 일부이고, 다른 방법이 없을 경우 여성이 집에서 일할 수 있게 해주는 수단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일부는 문화적 표준이나 성별 표준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거든요. 또한 여성이 인생에서 온갖 것을 동시에 건사해야 하는 특정한 나이대에 있어서 그래야 할 때도 있고요.”
아이들을 보살피고 싶은 여성들의 욕구에 대해서도 더 많은 이해가 필요하다. 방과 후 시설이 부족한 환경에서, 어머니들은 아이들이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말썽거리에 엮이는 것보다는 같이 집에 있는 쪽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p.120-121)
브랜딩을 이해하기 쉽게 정의하자면 ‘감정적 뒷맛’으로, 이는 회사나 제품과의 경험으로부터 나온다. 브랜딩의 목적은 돈을 버는 데 이용될 수 있도록 사람들의 머릿속에 긍정적 뒷맛과 긍정적 연상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한 브랜드의 뒷맛을 망칠 수 있는 요인으로는 공장 노동자 착취나 환경 파괴, 또는 모델들에 대한 성폭력 같은 소식을 꼽을 수 있다. 브랜딩의 다른 임무는 공급 사슬을 흐릿하게 만드는 것이다.
전 세계 시장에서 상표는 모든 것을 뜻하는 동시에 아무것도 뜻하지 않게 되었다. 신발 바깥쪽에 붙은 상표는 어쩌면 어느 한 소비자를 위해 하나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로 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쪽의 상표는 소비자들이 신을 수 있도록 신발을 만들어준 사람들에 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것은 공장에 관해, 또는 공장 노동자들이 받은 임금에 관해 무슨 말을 하는가? 신발에 발암물질이 함유되어 있는지, 신발 조립에 쓰인 접착제에 독성이 있는지, 그리고 가죽 공정을 위해 혹시 우림이 벌목되지는 않았는지? 신발 상표는 종종 옷 상표에 비해 더 적은 것을 알려준다. 고객에게 브랜드의 이름과 신발의 사이즈 말고는 절대적으로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영국 법에 따르면 신발 제조업자와 소매업자는 신발 갑피, 안감과 바깥쪽 밑창의 80퍼센트를 구성하는 원료가 무엇인지 명시해야 한다. 글자로 표기할 수도 있고, 그림 형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유럽연합은 음식 외 제품에 제조국 표시 상표 부착을 의무화하려 했지만 아직까지 ‘메이드 인’ 상표 부착은 의무가 아닌 자율제이다. 상표의 공백과 브랜딩의 겉치장은 질문에 답하는 게 아니라 추한 진실을 숨기는 역할을 한다.
어떤 제품이 비싸다고 해서 곧 그게 윤리적으로 만들어졌다는 뜻은 아니다. 제아무리 비싼 신발이라도 어딘가에서 만들어졌을 수밖에 없다. 사치품이나 명품으로 브랜딩이 되어 있어도, 소비자가 아무리 비싼 돈을 주고 산다고 해도 그게 곧 노동자나 공동체에 더 나은 조건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과도한 가격표가 말해주는 것은 더 큰 잉여가치, 즉 이윤일뿐이다. 이 잉여가치는 공장 노동자들, 실제 노동으로 그 가치를 창조한 사람들에게 나쁘지 않은 임금을 확보해줄 수 있다. 하지만 유통과 브랜딩이라는 생산의 두 단계가 신발 한 켤레의 최종 가격에서 약 60퍼센트를 차지하는 것이 현실이다. (p.147-148)
돈과 교역 상품이 전 세계를 가볍게 옮겨 다니는 동안, 기업 또한 가장 낮은 임금과 생산비를 찾아 국경을 넘어 이 공장 저 공장으로 가볍게 옮겨 다닌다. 이 과정의 핵심은 낮은 가격이고, 이는 다시 낮은 노동 표준을 부추긴다.
패션 산업 시스템은 기업들이 환경 요구조건을 무시하고 관료에게 뇌물을 주고 절차를 어기도록 몰아간다. 이는 파괴를 장려한다. 공장들이 강과 호수로 쏟아내는 폐수로 인한 수질오염부터 숲 지대를 대규모로 태우는 것까지, 대기업들은 농지와 마을과 삶의 수단을 파괴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국제통화기금이 밀어붙인 자유무역협정과 구조조정 정책은 어업과 농업 같은 전통적 부문을 짓밟았다. 이런 요인으로 인해 사람들은 원치 않는데도 고향을 떠나 다른 곳에서 일거리를 찾아야 한다. 아무런 인맥도 없고 때로는 말조차 통하지 않는 도시로 밀려든 이주 노동자들은 흔히 가장 위험하고 보수가 낮은 일을 떠맡는 것 말고는 아무런 선택지가 없다.
자국에 이주민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유럽연합과 여러 국가의 정책결정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싶어 하는 산업 부문의 수출 지향 일자리에 의도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요르단이 그 예이다. 이런 투자는 의류 공장 일자리를 만드는 데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부문에서는 말 그대로 극도로 저임금이고 착취적인 일자리만 만들어낸다. 여기에 담긴 의도는 이주의 흐름을 막겠다는 것이다. (p.170-171)
패션과 신발 산업에서 도축장의 존재는 다들 언급을 피하는 화제다. 수백만 마리의 동물이 우리의 옷과 신발을 위해 목숨을 잃어야 한다는 사실은 당연한 듯 받아들여진다. 동물의 권리는 금기시되거나 입에 올리기 민망한 주제로 취급된다. 그럼에도 살해는 온 사방에, 바로 우리 눈앞에 존재한다.
알렉스 록우드 박사는 선더랜드 대학교의 매체와 문화 연구 대학원에 몸담고 있다. 어느 날 그는 기차에 앉아 북적대는 플랫폼으로 무리 지어 밀려드는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문득 뭔가를 깨달았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거의 모든 사람이 아침 출근 기차에 오를 무렵에는 어떤 식으로든 살해에 관여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침 식사로 고기를 먹었거나 점심때 먹을 고기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실크 타이를 매거나 실크 속옷을 입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젤라틴 캡슐에 싸인 약이나 비타민제를 복용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모피로 테를 두른 후드나 모자, 장갑을 착용했거나 오리털 재킷을 입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가죽이 있다. 가죽 신발과 부츠, 가죽 가방, 가죽 재킷과 허리띠, 전자책과 다이어리, 휴대전화를 위한 가죽 케이스, 그리고 가죽 카시트와 소파. 이들은 모두 폭력적 죽음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기차 창문을 통해 록우드 박사는 온 사방에 널린 죽음의 파편을 명확히 보았다. 하지만 이는 하나의 관념으로, 그저 삶의 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질 뿐 누구도 그것을 인지하거나 거론하거나 도전하지 않았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도축장을 도시 밖으로 몰아내어 눈에 보이지 않게 함으로써 머릿속에서도 지웠다. 그 후 일부 동물들, 주로 고양이와 개를 가까이 두고 싶은 욕구가 생겨났다. 그리고 나머지 모든 동물의 생사는 무시되었다. 그 무시의 정도는 소름이 끼칠 정도다. (p.186-187)
숲은 기후 위기를 예방하는 핵심 수단 중 하나인데, 광합성 과정에서 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다. 숲의 토양 또한 탄소를 흡수하는데, 흔히 숲 식물이 보유하는 양의 세 배에 이른다. 하지만 숲은 대단히 뛰어난 탄소 포집 및 저장 시스템이라 역으로 막대한 탄소 배출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인간의 활동, 구체적으로 말해 삼림 벌채는 나무들과, 나무가 자라는 토양의 탄소 저장 능력을 바닥내고 있다. 아마존 강 유역이 유지하는 탄소 저장고는 숲 화재 때문에 방출되고 있는데, 기후 붕괴로 인해 토지가 더 뜨겁고 건조해지고 극단적 가뭄이 발생하면서 화재는 더 빈번해진다. 숲과 토양에서 배출되는 탄소는 기후 위기의 핵심 원인이다.
지구온난화는 일정 수준을 넘으면 통제가 불가능해질 것이다. 피언사이드 박사는 말한다. “이른바 폭주 온실효과라는 거죠. 지구는 더 더워지고, 화재는 더 잦아지고, 토양은 더 뜨거워지고, 배출은 증가하고, 그렇게 계속 가는 거죠. 눈덩이 효과. 우린 그걸 피해야 하고, 그러려면 아마존 강 유역이 대단히 중요해요. 탄소가 엄청 많거든요. 숲에도 그렇고 토양에도요.”
이는 신발과 불가분하게 관련된 문제인데, 그 이유는 피언사이드 박사가 잘라 말하듯, 아마존 강 유역의 열대우림을 주로 밀어내는 것이 소이기 때문이다. (p.194-195)
연간 242억 켤레가 생산되면서, 신발에 대한 집착은 우리의 미래를 위협하는 요소가 되었다. 신발이 지속 가능성을 얼마나 잃었는지를 가죽 산업보다 더 명확하게 보여주는 건 없다.
죽음과, 인간이 다른 종을 살해할 권리가 있다는 인류지상주의적 믿음에 입각한 가죽 산업은 그 심장부에 고통과 약탈을 안고 있다. 소들의 산업적 살해라는 일상화된 참상은 인류 전체의 자원 중 가장 귀중한 것으로 손꼽히는 아마존 강 유역의 파괴를 요구한다. 인권과 건강에 대한 철저한 무시와 노예제를 요구한다. 또한 어마어마한 양의 독성 화학물질을 우리의 삶을 떠받치는 물과 토지로 쏟아부을 것을 요구한다.
신발 소비를 권장하는 미사여구는 흔히 개인적 힘의 부여(empowerment)와 향유를 운운한다. 가죽 산업에서 이러한 향유와 힘의 부여는 대학살을 가려주는 가면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파괴적 시스템에 가담하지 않을 수 있다. 동물과 행성을 파괴하는 것쯤은 하찮게 여기는 인간 우월주의 사상을 떨쳐버릴 수 있다. (p.209-210)
분류 감독을 만은 로즈 응코어는 사회가 버린 물건을 처리하는 데 20년의 세월을 바쳤다. 그러면서 옷과 신발의 품질이 점점 떨어지고 아직 상표가 붙은, 몸에 걸쳐보지도 않은 기증품이 갈수록 늘어나는 현상을 목격해 왔다. 로즈는 말한다. “패스트패션은 곧 품질 저하를 뜻해요. 때로는 입기는커녕 건드리지도 않은 새 물품들도 있어요. 갈수록 더 낮은 품질이 홍수처럼 밀려들죠. 더 낮은 품질은 대체로 (할인) 판매로 가요.”
트레이드 창고에 도착하는 옷과 신발 및 자잘한 물건은 거기에 도착하기까지 낮은 확률을 이겨낸 것들이다. 영국인들은 매년 수거함에 대략 35만 톤의 헌옷을 버리는데, 이 무게는 런던 버스 2만 9,000대분에 해당한다. 폐품은 일단 수거함에 들어간 후 매립지나 소각장으로 향한다. (p.218)
신발을 포함한 중고 의류 수출국을 순위대로 꼽아보면 전 세계 재고량의 19.5퍼센트를 수출하는 미국이 1위, 13.3퍼센트의 영국이 2위, 11.5퍼센트의 독일이 3위, 그리고 7.9퍼센트의 중국이 4위를 차지한다. 안타깝게도 신발은 별도로 분류되지 않고 중고 의류 통계에 포함된다. 더는 필요 없어진 옷과 신발은 우간다 캄팔라의 오위노 시장 같은 곳으로 밀려든다. 오위노 시장은 아프리카 최대의 중고 의류 시장으로 손꼽힌다. 지역 사파리업체들이 시장 관광을 상품으로 출시했을 정도다.
일각에서는 이처럼 중고 의류가 밀려든 데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호황을 누렸던 동아프리카의 자체적 의류 및 신발 공장이 붕괴한 탓도 어느 정도 있다고 분석한다. 2016년, 동아프리카공동체(EAC)를 이끄는 우간다, 케냐, 탄자니아, 르완다, 부룬디와 남수단의 연합체가 대책을 마련하기로 결의했다. 그리고 2019년, 자체적인 제조 부문을 다시 일으킬 목적으로 헌옷 수입 금지를 공표했다.
이에 재활용 의류 수출업자들은 분노의 목소리를 높였고, 미국 정부는 EAC에 중고 의류 수입 금지 정책은 아프리카 성장기회법에 위배될 여지가 있다고 경고했다. 해당 법은 미국이 우대 혜택을 받는 대가로 EAC 회원국에 미국 시장에 대한 쉬운 접근권을 제공한다. 그러자 케냐를 포함한 국가들은 미국의 방직 및 의류 시장을 잃을까봐 겁을 먹고 보이콧으로부터 발을 뺐다. 한편 그동안 경제의 근간이었던 농업을 떠나 ‘메이드 인 르완다’ 제품을 위한 산업기지를 구축하기로 작심한 르완다 정부는 케냐와 달리 미국산 중고 의류와 신발에 대한 관세를 크게 인상했고, 그 결과 아프리카 성장기회법에서 유예당했다. (p.220-221)
오늘날 신발 디자인의 핵심 요소들은 재생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한데 뒤섞여 쓰인 원료는 하나의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색상을 혼용하는 것 또한 어마어마한 어려움을 제기하며, 섕크나 장식용 징은 그야말로 재앙이다. 너무 딱딱해서 갈리지 않기 때문이다. 라히미파르드 교수는 말을 잇는다. “현재 신발의 디자인과 제조 과정에서는 신발의 수명이 끝날 때를 고려하지 않습니다. 신발에 금속 부품을 넣으면 재생하기가 훨씬 더 어려워집니다. 우리는 제화 과정에 금속 사용을 금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브랜드들이 발생시키는 문제는 시급하고 심각하게 우려스럽다. 운동화에 충격 흡수용 중간창으로 흔히 쓰이는 에틸렌초산비닐 한 장을 쓰레기 매립지로 보내면 그것은 거기서 1,000년간 남아 있게 된다. 그걸 수십억 배로 부풀려보면 지금 우리가 어떤 환경적 유산을 만들고 있는지가 선명하게 와닿을 것이다. 조깅화 같은 물건은 우리를 자연으로 데려다주고 심신의 안녕을 달성하도록 도와준다고 약속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우리와 연결되어야 할 바로 그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 (p.232-233)
매년 수억 켤레의 신발을 토해내는 브랜드들이 그 후 그 신발들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철저한 무시로 일관하는 상황에서, 라히미파르드 교수는 소비 후 폐기물에 대한 업계의 대응을 ‘책임 태만’이라고 부른다. 2020년 전 세계 제화 시장의 규모는 2,049억 달러로 추정되었다. 라히미파르드 교수는 최근 더 많은 프로젝트를 다루기 위해 좁은 연구실 가운데에 칸막이를 설치했다. 지금 당장 바라는 변화를 하나만 꼽자면, 브랜드들이 연구를 재정적으로 지원함으로써 폐품 신발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투자하는 것이다.
SMART가 일전에 추산한 바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재생되는 신발의 비율은 겨우 5퍼센트에 불과하다. 라히미파르드 교수는 그 수치가 크게 바뀌었다고 믿지 않는다. 그는 SMART의 연구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어떤 재생 방식을 고려하든, 그 비율은 3~5퍼센트입니다. 새로운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니까요. 그 비율이 예컨대 두 배로 늘어나는 일은 없죠. 우리가 여전히 90퍼센트의 신발을 매립지로 보내고 있다고 저는 장담할 수 있습니다.”
신발 중 재생되는 비율이 겨우 5~10퍼센트밖에 안 된다는 사실은 매년 수십억 켤레의 신발이 곧장 매립지로 향한다는 뜻이다. 라히미파르드 교수는 이렇게 말을 맺는다. “매립지 이야기를 하자면, 그것이 영국에 있는지, 방글라데시에 있는지, 아니면 파키스탄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딘가가 더 나쁘다고 하면, 그건 그곳에 감시가 더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물에 관해 전 지구적 시점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세계화의 관점이 아니라 전 지구적 관점으로 사물을 보는 거죠. 우리가 뭘 하든 그건 어딘가, 누군가의 매립지로 가게 되고, 그곳은 전 인류의 매립지입니다.” (p.235-236)
누르바흐시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일반적인 로봇 소비자나 로봇 제조업자는 사람들이 지저분하고 지루하고 위험한 업무에 종사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자주 할 겁니다. 역설적이게도 이들은 흔히 전용기를 타고 여행을 다니는 백만장자입니다. 이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할 때는 로봇이 모든 지루한 노동과 지저분한 노동을 대신해줘서 모든 사람이 필요한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는 세계를 상정하고 있죠. 하지만 지저분하거나 따분하거나 위험하다는 이유로 남들이 기피하는 일을 함으로써 생계를 유지하며 거기서 약간의 존엄성을, 그리고 확실히 약간의 자양분을 찾는 사람이 인류의 큰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p.256)
아사드는 이렇게 말한다. “이런 말을 하죠. 기후변화는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우리는 타이타닉 호에 타고 있으며 이미 빙산에 부딪혔다고. 우리 모두가 타이타닉 호에 타고 있는 건 맞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부자들은 타이타닉 호의 갑판에서 여전히 칵테일을 홀짝이고 관현악단의 음악을 감상하면서 어떤 기적적인 해법이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한편 선창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이미 죽어가고 있으며, 물을 피해 도망치려 하지만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갇혀 있습니다.”
전 지구적 법 체제는 기업 권력의 현실을 따라잡도록 허용되지 않았다. 기업들은 지구를 찢어발기면서 겉치장을 위해 얼토당토않은 해법을 내놓아왔다. 노동자들은 결사의 자유권을 부정당했고, 이른바 지구촌에서 평등한 권리를 누리려는 여성들의 노력은 가로막혀왔다.
신발이 왜 그토록 많은 아수라장을 초래했느냐고 묻는다면 그 답은 신발 산업이 규제 완화와 하도급이 일어나는 자본주의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사우스의 사람들과 지구에 대한 지나친 착취를 토대로 하는 엄청난 과잉생산을 수단으로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자본주의 말이다. 통제에서 벗어난 이 생산은 처음의 짜릿함이 사라지면 매립지로 향할 운명인 반짝상품의 과잉소비와 얽혀 있다. 이 아수라장을 키워낸 요람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그리고 지구화된 자본주의이다. 이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거기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이다. (p.300)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 / 벨랴코프 일리야 / 틈새책방
그렇다면 지금 내 정체성은 무엇일까. 나는 ‘한국인’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말한다. 한국인이라는 개념은 다분히 민족적인 개념이다. 세계에서 한국 같이 하나의 민족과 언어를 중심으로 나라가 형성되고 유지해 온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한국인이 곧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매우 예외적인 나라인데, 한국에서 태어나고 배운 사람에게는 한국이 보편적인 기준이 된다.
그런데 나는 다민족 국가인 러시아에서 왔다. 러시아는 ‘국적 국가’다. 러시아인을 하나로 묶는 건 국적밖에 없다. 민족이나 언어로는 도저히 공동체를 이룰 방법이 없다. 나는 러시아에서 태어나고 자란 탓에 이 사고방식이 그대로 머릿속에 박혀 있다. 나에게 국가란 곧 국적, 여권 색깔을 의미한다. 민족이나 언어는 내 여권의 색을 결정하지 못한다. 다른 나라로 귀화하면 배신자 소리를 듣지 않느냐는 질문도 들어 봤다. 한국인들은 국적을 바꾸는 걸 자신의 정신적인 뿌리까지 포함한 정체성을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 같은 다문화·다민족 국가 출신으로서는 사실 이해가 안 가는 말이다. 국적은 국적이고 나는 나다. 그렇게 생각하는 문화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p.55)
고르바초프는 유리 안드로포프(1914~1984)와 콘스탄틴 체르넨코(1911~1985)의 뒤를 이어 54세의 나이에 최고 지도자가 됐다. 왜 두 사람의 뒤를 이었다고 표현했냐면, 안드로포프와 체르넨코는 최고 지도자가 된 지 1년 남짓이 지난 후에 모두 노환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소련은 1983년 6월 16일부터 1985년 3월 11일까지 세 명의 지도자를 맞이해야 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갑자기 역대 최연소 공산당 서기장이 된 고르바초프는 무능한 지도자였다. 모스크바대학교 출신의 엘리트였지만 너무 멍청하다는 말을 들었다. 진짜 실세는 그의 부인 라이사 고르바체바라는 말도 돌았다. 언론에서는 ‘1인자’ 라이사의 패션이나 액세서리를 집중 보도했다. 영부인에 대한 안 좋은 기억 때문에 지금도 러시아에서는 대통령 부인이 전면에 등장하는 것을 금기시할 정도다.
사후적 해석이지만 현재 푸틴을 지지하는 러시아인들은 고르바초프가 미국에 나라를 팔아먹을 작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고르바초프의 대명사 페레스트로이카(개혁)는 기존 시스템을 파괴한 뒤 미국식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세우자는 의미였는데, 고르바초프의 아무 대책 없는 개혁과 개방은 경제와 사회 질서를 붕괴시키는 결과 말고는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했다고 본다. 소련과 사회주의가 아무리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이런 식의 선택은 나라를 미국에 헌납하겠다는 의도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르바초프에 맞섰던 인물인 옐친이 러시아의 초대 대통령이 된 것 역시 우연이 아니라고 본다. (p.117-118)
2013년 푸틴 대통령은 국회 앞 연설에서 외국에서 러시아의 역사를 왜곡하려는 시도가 허다하다고 주장했다. 그러고는 러시아 역사 교육에 문제가 있다며 올바른 역사 교육은 국가만이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시 존재하던 수많은 역사 교과서를 폐지하고, 국가가 단 하나의 역사 교과서를 만들고 이를 학생들에게 가르치자고 했다.
처음에는 러시아 시민 단체와 대학 교수 들이 강력하게 반발했다. 그들은 다시 소련 시절로 돌아가면 안 된다고 했다. 반발이 격해지자 러시아 정부는 공식적으로 철회를 발표하고, 한 발자국 물러서는 듯했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의 뜻에 부합하는 교과서에 ‘국가 추천’이라는 딱지를 붙여 우회적으로 ‘국가 공인 교과서’를 만들었다. 그러고는 초등학교, 중등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립 학교에서 ‘국가 추천’ 교과서를 사용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국가 공인 교과서’ 사용이 국립 학교에서 어느 정도 이뤄지자, 이번에는 국가 지원을 받는 사립 학교에서도 사용하도록 강제했다.
그 결과 현재 러시아 학생들이 배우는 소련의 역사는 내가 학교를 다닐 때 배웠던 내용과 다소 다르다. 소련 시절의 만행이 누락됐고, 그 시절과 체제를 찬양하며, 논쟁적인 부분은 소련에 유리하게 해석한다. 설문 조사 기관 레바다센터는 5년마다 ‘러시아 역사 속 최고 인물’이라는 주제로 설문 조사를 실시하는데, 2021년 5월에 발표한 결과를 보면 1위가 스탈린(39퍼센트)이었다. 2위는 레닌(30퍼센트)이었고, 푸틴은 5위(15퍼센트)였다. 더 놀라운 것은 스탈린이 2012년에도 1위(42퍼센트), 2017년에도 1위(38퍼센트)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스탈린은 소련 시절에도 큰 비판을 받은 지도자다. 그가 1953년에 사망하고 니키타 흐루쇼프가 공산당 주석이 되자 전임자였던 스탈린을 강하게 비판하기 시작했다. 대숙청,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치명적인 실수 등을 지적했다. ‘어쩔 수 없는 악이었지만 어쨌든 악은 악이다’라는 식의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평가는 1990년대 소련이 붕괴하고 나서 더욱더 심해졌다. 러시아 내에서 처음으로 ‘독재자’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나도 그렇게 배웠다.
푸틴은 첫 대통령 임기 때부터 스탈린에 대한 평가를 자제했다. 스탈린에 대한 질문을 항상 회피했고 직설적인 답을 내놓은 적이 없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아픈 역사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하지만, 스탈린의 애국심, 나라를 위한 위대한 결단력은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슬금슬금 스탈린을 ‘사악한 독재자’가 아닌 ‘성과가 높은 매니저’로 보는 여론이 형성됐다. 스탈린을 조심스럽게 방어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간단했다. 스탈린은 농업마저 후진적인 나라를 레닌에게 물려받았음에도,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을 이겼고, 미국에 맞설 수 있는 최강대국으로 만든 지도자라는 것이다. “그래, 대숙청이나 사회에게 공포를 줬던 나치식 수용소를 만들어서 수백만 명을 학살한 지도자였지만, 나라를 시궁창에서 꺼내고 전 세계의 꼭대기에 자랑스럽게 설 수 있게 만든 사람이기도 하잖아. 그 정도 희생은 감내해야지. 지금 우리가 사는 나라의 기반은 스탈린이 깔아 준 거야.” 현재 러시아에서는 이런 입장으로 스탈린을 지지하는 국민들이 생각보다 많다. (p.126-128)
러시아 기성세대가 소련 시절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이 변화의 가장 큰 희생자였기 때문이었단다. 1990년대 초반에 소련이 붕괴되고 자본주의 체제가 들어섰을 때, 당시 30~40대들은 성숙한 사회인이자, 어느 정도 사회적 위치에 올라 있던 세대였다. 하지만 체제 변화로 이 모든 것들이 무용지물이 됐다. 이 세대는 어느 날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졌다. 2000년대에 들어서자 이들은 40~50대가 됐고, 10~20대와 동일 선상에서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 됐다. 회사 입장에서는 50대 초반보다는 20대 초반을 선호할 수밖에 없었으니, 인구의 절반이 넘는 세대는 쓸모없는 존재가 돼 버리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옛날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건 당연했다.
부모님께서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이 두 체제 안에서 살아보니 사회주의의 장점을 확실히 알게 되셨다고 한다. 사회주의 시절에는 교육, 일자리, 부동산 등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국가는 초·중·고 교육을 보장했고, 대학에는 무조건 무상으로 다닐 수 있었다. 모든 대학 졸업자에게 일자리를 100퍼센트 보장했기 때문에 대학 시절에 걱정거리가 하나도 없었다. 집도 국가가 무료로 나눠 주고, 차도 국가에서 분양받는 식이었으니 굳이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늙으면 국가에서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연금을 주니 노후에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
그렇다면 현재 러시아 자본주의 시스템의 가장 큰 장점이 뭘까. 아빠는 “부족한 게 없다”고 답하셨다. 돈만 있으면 마트에 가서 계절에 상관없이 모든 채소와 과일을 살 수 있다는 것, 돈만 있으면 가전제품을 국가가 나눠 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오늘 살 수 있다는 것, 돈만 있으면 비행기를 타고 국내 여행, 심지어 해외여행도 할 수 있다는 것 등이었다. ‘자유’라는 말을 쓰지는 않으셨지만 아빠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자유였다. 이동의 자유, 표현의 자유.
아빠가 ‘자유’라는 단어를 안 쓴 이유가 있었다. 바로 러시아 사람에게는 ‘자유’라는 개념과 ‘무질서’라는 개념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소련이 해체되고 등장한 새로운 정권은 워낙 자유라는 말을 남용해서 이제 러시아 국민에게 자유는 무질서와 불평등, 비리와 횡령, 권력 남용과 다름없는 말이다. (p.131-133)
의아하게 들리겠지만, 첫 임기였던 2000년대 초반에 푸틴은 누구보다 민주주의를 강조했던 지도자였다. 미국과 친분을 쌓으려 노력하며 러시아를 나토에 가입시키려고 했다. 2001년 9월 11일 아침, 미국 뉴욕에서 테러가 일어났을 때 부시 대통령에게 가장 먼저 전화를 건 이가 바로 푸틴이었다. 미국이 선포한 ‘테러와의 전쟁’을 무조건 지지한다면서 러시아 영공을 미군에게 곧바로 열어 줬고, 미군이 러시아와 키르기스스탄의 군 공항을 이용하도록 도왔다.
러시아 국민들의 삶은 거시적으로 보든, 미시적으로 보든 이전보다 훨씬 개선되기 시작했다. 푸틴 대통령 첫 임기 때인 2000~2004년 러시아 국내 총생산(GDP) 성장률은 연간 평균 7퍼센트대였고, 빈곤율은 절반 이하로 내려갔다. 러시아의 경제 규모는 2000년에 전 세계 23위에 불과했지만, 2007년에는 11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금융 시장 개혁, 건설 분야 개혁, 부동산 시장 안정화…. 개선되지 않은 분야는 하나도 없었다.
통계 수치도 인상적이었지만, 국민들도 생활 수준이 개선되고 있음을 피부로 느꼈다. 식료품 부족은 옛말이 됐고, 너도 나도 핸드폰을 손에 쥐기 시작했다. 인터넷이 일상 속 도구가 돼 갔다. 나라 분위기는 들떠 있었다.
물론 이 모든 업적이 푸틴과 러시아 정부의 능력 덕분이라고 할 수는 없다. 2000년대의 세계적인 호황과 유가 폭등이 결정적이었다. 석유와 가스 판매량 기준으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공급자였던 러시아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돈을 갑자기 벌었다. 덕분에 러시아 국내 사정은 몇 배로 좋아졌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푸틴 대통령의 현명한 지도를 강조했다. 이제 지옥 같은 1990년대가 지나가고 새로운 나라가 태어났다고 주장했다. (p.141-143)
반민주주의적 행태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반정부 언론에 압력을 가하거나 폐간시켰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다. 인터넷을 통제하는가 하면, 반정부 인사 살해를 시도하는 등 독재적인 성격을 보여 줬다. 또한 2020년 7월에는 자신의 다섯 번째 대통령 출마를 가능케 할 개헌 국민 투표를 실시했다. 여기서도 부정행위, 결과 조작, 투표 절차 위반 등이 발각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틴은 여전히 지지를 받는다. ‘콘크리트 지지층’과 ‘극렬 반대층’을 제외한 중도층의 반응을 보면 이 현상의 이유를 알 수 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러시아에도 정치에 아예 관심이 없는 사람이 아주 많다. 정확한 수치를 말하기 어렵지만, 개인적으로는 러시아 사람들 대부분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느낀다. 보통 민주주의 국가라면 ‘샤이 친정권’, ‘샤이 반정권’ 등으로 표현되는 중도층이 평소에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가 투표 당일에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기 마련인데, 러시아에서는 그렇지 않다. ‘샤이 반푸틴층’은 보통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다. 정치에 관심이 정말 없기도 하고 투표 시스템을 전혀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의 러시아인들과 정치를 소재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다. “뭐하러 투표하러 가? 어차피 우리 손에 달려 있는 게 하나도 없는데. 그리고 바꿔 봤자 도로 1990년대지. 지금이 조용하고 좋아.” 투표해 봤자 조작을 할 테고, 푸틴을 갈아치워 봤자 푸틴보다 못한 놈들이 도로 1990년대의 대혼란을 가져올 것 같으니 푸틴이 마음에 안 들어도 그냥 놔두자는 심리다.
러시아 정부는 중도층의 생각을 잘 읽고 있어서 이를 최대한 활용하려 노력한다. 예를 들어, “러시아가 드디어 안정적인 발전을 이루는 나라가 됐는데 중간에 지도자를 뭐하러 바꾸나?”, “검증되지 않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다시 1990년대 나라 꼴이 된다.”, “푸틴만큼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은 러시아 어딜 찾아봐도 없다.”, “지금 미국이 우리를 지도에서 지우려고 사력을 다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을 어떻게 바꾸나? 위기인데!”라고 말한다. 국영 방송사가 이런 논조의 이야기를 매일 하기 때문에 인터넷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기성세대는 무비판적으로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런 주장은 일정 부분 사실이기도 하다. 2022년 기준으로 따지면, 푸틴은 22년째 러시아를 통치하고 있다. 이 기간 동안 푸틴은 자신과 맞설 수 있는 정치인이 등장할 수 없게 만들었다. 경쟁자로 클 여지가 보이면 국가의 행정, 사법 기관을 비롯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싹수를 잘라 버렸다. (p.151-153)
러시아는 독재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법률까지 만들었다. ‘권력비판금지법’이다. 유신 시절 한국의 ‘국가모독죄’를 연상시키는 법이 2019년 3월에 러시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 법은 대중들에게 겁을 주려고 만든 법이라서 실제로 적용된 사례는 없었다. 하지만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 법으로 사람들이 잡혀가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해 표면상의 언론의 자유조차 사라져 버렸다. 정부에서는 해외 대기업의 로비를 막겠다며 ‘해외 에이전트 금지법’을 만들었다. 이름만 보면 자본으로부터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법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언론의 자유를 완벽하게 망가뜨리는 법이다. 이 법에 따르면, 언론이 해외에서 재정 지원을 받을 경우 보도 때마다 후원받은 사실을 알리고, 이 기사를 읽지 말라는 메시지를 넣어야 한다. 게다가 해외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으면 아예 러시아 내에서는 광고 수주가 금지되고 국가 지원도 끊긴다. 해외 거주 러시아인이 언론사를 후원해도 해외로부터 지원을 받은 것으로 간주한다.
이 법은 인터넷 언론, 심지어 일반인에게도 적용된다. 해외로부터 어떤 명목으로든 100원이라도 입금을 받으면 정부가 개입할 수 있게 된다. 아마존에서 물건을 구매해도 이 법의 적용을 받는다. 물건이 해외에서 들어오면, 내가 구매를 했든 아니든 해외에서 지원을 받은 것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나의 SNS도 국가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즉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된다는 말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법이지만 이것이 지금 러시아의 현실이다. 누구든 마음대로 재갈을 물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련 시절의 완전한 독재와 1990년대 생지옥과 같은 자유를 경험한 러시아 국민은 작금의 이 상황을 최고의 상태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보수적인 러시아 어르신들은 정부가 언론을 박살내든 정치인을 탄압하든 한 가지만 생각한다. ‘어게인 1991’은 절대 안 된다고 말이다. (p.157-159)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는 가족이 탄생하는 출발점, 결혼을 기념하는 문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 내가 처음으로 한국 결혼식을 목도한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매우 감성적이고 길고 이벤트가 많은 러시아 결혼식과 달리 한국 결혼식은 정이 없어 보였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30분 만에 부부를 찍어 내는 사업처럼 보였다. 모든 결혼식이 다 똑같이 진행되는 것도 충격적이었다. 사회자가 하객을 웃기고 신랑 입장, 그러고는 신부 입장, 부모님에게 큰절, 주례사, 축가, 식사, 끝. 물론 결혼식마다 약간의 변화가 있을 수 있으나 대부분은 이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 결혼하는 두 사람에게 그 순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고 느끼게 하기보다 통과 의례를 해치우는 듯했다. 예식장에 오는 사람들도 놀라웠다. 신부 아빠의 골프 동아리 친구들, 신랑 엄마가 다니는 교회 성도들…. 결혼식에 결혼하는 당사자와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러시아와는 다른 문화였다. (p.227-228)
러시아에는 전통적으로 ‘여성스럽다’고 간주되는 직업과 ‘남성스럽다’고 간주되는 직업이 있다. 어떤 직업이 남성스럽고 여성스러운지는 대학교의 전공에 따른 남녀 비율을 보면 된다. 물론 전공에 따라 남녀 비율에 차이가 나는 현상이 러시아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러시아는 유독 심각하다. 언어학, 교육학, 의학 등의 학과에는 학생들의 90퍼센트 이상이 여성이다. 선생님, 의사 등이 여성스러운 직업으로 취급받아서다.
교육학과는 더 심각하다. 교육학과에 들어간 남학생은 성 정체성을 공공연히 의심받을 정도다. 이런 이유로 러시아 초·중·고에는 여자 선생님밖에 없다.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유치원에서 보살피는 일은 당연히 여자가 할 일이라는 게 러시아 사회의 보편적인 인식이다. 이상한 예외도 있다. 중장비나 버스 같은 차량을 운전하는 일은 남자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특이하게도 도로 위에 설치한 전선을 따라 운행하는 트롤리버스(trolleybus)와 트램(tram, 도시형 지상 경전차)의 운전자는 대부분 여성이다. 정해진 선로를 따라가는 대중교통은 남자답지 않다는 논리다.
내가 대학교 때 공부했던 한국학과에서는 같은 학년 중에 내가 유일한 남자였다. 1년 선배 중에는 남자 선배가 한 명도 없었고, 2년 선배 중에 딱 한 명이 있었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다들 경제학과, 법학과, IT학과와 같은 소위 ‘남성스러운’ 학과를 선택한 상황에서, 내가 한국학과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겠다고 하니 나를 이상하게 바라봤다. “졸업하면 통역사나 되려고?” 하며 놀리기도 했다. 통역사는 누가 봐도 여자가 해야 할 일이라는 의미였다.
‘남자의 일’과 ‘여자의 일’이 구분된다는 인식을 반영한 수치도 있다. 2021년 현재, 러시아 여성들이 법적으로 가질 수 없는 직종이 100개나 된다. 그나마 그것도 이전에 456개 직종에서 줄어든 것이다. (p.241-244)
이쯤 되면 러시아 여성들이 가부장제적 질서 안에서 신음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한국과 비교해 보면 여성들의 부담이 크고 희생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러시아에서 육아와 가사는 온전히 여성의 역할이다. 맞벌이를 한다고 해도 여성의 부담은 줄지 않는다. 육아와 가사는 온전히 여성의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여성이 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문제는 여성들이 여기에 전혀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뭐가 문제냐고 반문하기까지 한다. 밥 짓고 빨래하고 아이를 키우는 일은 당연히 여자가 할 일인데 왜 이상한 소리를 하냐는 반응이다.
한국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한국 사람들은 보통 두 가지 측면에서 충격을 받는다. 소련이 사회주의 국가였으니 러시아도 여성의 인권에 대한 인식이 높을 줄 알았는데 아니라는 점. 나머지 하나는 여성들도 이런 남녀 역할 구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오히려 옹호하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인들은 사회적 평등과 성 역할은 다르다고 인식한다. 두 가지가 하나의 가치로 수렴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다. 밖에서 같은 일을 하고 같은 급여를 받는 것과 가정에서 해야 할 일은 별개라고 보는 것이다.
배경은 이렇다. 사회주의 소련은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가혹했다. 아니 여성에게 오히려 더 가혹했다고 하는 게 맞다. 사회주의 혁명으로 시스템은 바뀌었다. 문화적으로 가부장제는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는 올라갔고, 정치적 권리도 보장받았다. 그러나 이 시스템에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전혀 녹아 있지 않았다. 소련 시절 여성들은 국가에서 원하는 노동을 수행해야 했다. 남녀의 신체적 차이는 상관없었다. 남자와 똑같이 공장에서, 건설 현장에서 일해야 했다. 남자들도 힘들다고 꺼리는 일을 똑같은 할당량을 받아 몸을 갈아가며 해치우고 집에 와서는 또 집안일을 해야 했다. 여성들의 권리를 보장해 준다는 사회적 배려가 실제로는 배려가 아니었다. 가부장제 문화는 그대로 둔 채 바뀐 시스템에서 여성들의 부담은 오히려 배가됐다. 당시 여성들 입장에서는 차라리 집에서 가사일과 육아를 전담하는 게 보다 인간다운 삶을 사는 방법이었다.
이런 이유로 러시아의 여성들은 자본주의 체제를 환영했다. 적어도 여성의 몸으로는 부담스러운 일을 하지 않을 자유, 보다 편한 일을 찾을 자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p.245-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