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모든 것은 자산에서 시작되었다 / 리사 앳킨스, 멀린다 쿠퍼, 마르티즌 코닝스 / 사이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의 뒤를 이어 등장한 제3의 길 신자유주의자들은 누구나 주식 소유나 주택 소유를 통해서 혹은 단순히 어떤 능력을 소유하는 것, 즉 인적 자본(human capital)을 갖는 것만으로도 자산 가격 상승에 참여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했다. 인적 자본론에 대한 그들의 입장은 기업가적 투자자의 눈으로 인생을 바라보면 인적 자본을 기반으로 하는 소득을 활용해 노동을 통해 얻는 임금이 정체되는 문제를 영구적으로 보완할 수 있으며, 이런 식으로 피고용자와 고용주 간의 적대감을 상쇄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교육, 주택, 고용 등 인생의 중요한 사건들을 무엇보다 〈투자의 기회〉로 바라봐야 한다는 개념이 점차 재정 정책과 통화 정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p.39)
예를 들어 호주에서는 2000년대 초 이후 상대적으로 연령대가 높은 가구, 즉 55-65세 가구, 특히 65세 이상 가구가 가계 부 증가분의 대부분을 차지한 반면, 25-34세에 해당하는 젊은 가구의 부는 줄어들었다. 영국에서는 노령 가구가 보유한 부의 비중이 10년 전보다 늘어났으며,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주택 비용을 제외한 후 연금 수급자가 벌어들이는 소득이 생산 연령 가정의 소득을 따라잡았다. 인생의 같은 단계를 기준으로 비교했을 때 밀레니얼 세대는 1965년에서 1980년 사이에 태어난 직전 세대인 X세대에 비해 소득이 적다. 확정급여형 퇴직연금이 단계적으로 사라지고, 공공 주택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인적 자원, 그중에서도 특히 교육에 대한 투자가 더 이상 예전 같은 수익을 내지 못하는 제도적 상황 속에서 이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p.68)
사실 적어도 한동안이라도 상품화된 삶으로서의 생존이 가능할 정도의 제법 괜찮은 일자리를 얻으려면 이제 거의 모든 곳에서 인적 자본에 투자를 해야 한다. 이는 곧 교육 및 훈련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빌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신자유주의는 노동을 파는 것은 단순히 금전 거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적 자본을 이용해 소득을 벌어들이는 것이라는 개념을 현실로 만들었다. 이런 논리에 의하면, 교육은 이익을 창출하고 자본이득을 얻는 데 도움이 되는 기술을 계발하기 위해 미래의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벌어들인 이익으로 자기계발에 든 비용을 변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임금이 정체되고 있다는 것은 곧 인적 자본의 계발을 위해 짊어져야 하는 빚은 변함이 없는데도 인적 자본이라는 자산 자체는 평가절하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일종의 깡통 주택(underwater mortgage)과 같은 현상, 즉 돈을 빌려 매입한 자산의 가치보다 큰 금액의 변제 불가능한 채무를 갚아야 하는 현상이 인적 자본 자산 시장에서도 나타났다. 자산 경제와 상품 경제를 나눌 수 있다는 주장에는 이처럼 우리 모두가 자산의 가치 상승 및 하락, 인플레이션 및 디플레이션의 논리에 노출된 채 살아가고 있다는 현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p.80-81)
이제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그러나 특별히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우리는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우리의 성장과 번영을 더욱 저해하는 나쁜 방안들로만 가득한 메뉴 속에서 그나마 무엇을 적극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에게 남은 것은 끊임없는 경계의 필요성과 명백한 보상의 부재라는 고단하고 초조한 조합뿐이다. 제인 엘리엇은 이런 현상을 고통받는 대리(suffering agency), 즉 지속적인 각성 상태와 준비가 요구되지만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갖고 있건 결국 〈모든 것이 미리 결정되어 있는〉 역설적인 상태라고 칭한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이와 같은 정서적인 상태를 특정 세대 〈전체〉가 새로운 형태의 소외를 경험하게 되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상속과 부의 대물림 문제가 등장하자 좀 더 연령대가 높은 세대로 인해 젊은 세대 〈전체〉가 가진 것을 빼앗기고 자산을 소유할 수 없게 되었다는 주장이 즉시 의문에 부딪히게 되었다. 구제금융을 제공해줄 수 있는 부유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는 행운을 가진 사람은 학자금 대출 없이 졸업하기, 주택 계약 자금 저축하기, 흥미롭고 보수가 좋은 여러 직업이 요구하는 2년 동안의 무급 인턴 기간 채우기 같은 수많은 것들을 모두 할 수 있다. (p.85-86)
1976년 대선 캠페인 당시 카터는 자본이득과 경상소득에 부과하는 과세제도가 동등해지도록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세우며 누진세 효과가 강화되도록 세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카터가 추진한 개혁의 중요한 목표는 자본이득의 혜택을 거의 누리지 못하는 저소득층과 중산층에게서 자산 가격의 상승으로 수혜를 받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고소득자에게로 조세 부담의 무게를 이동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의 주도하에 카터의 뜻을 저지하기 위한 반격이 시작됐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대의를 실현하기로 마음먹은 다수의 저명한 경제학자들은 자본이득에 대해 경상소득과 같은 수준으로 과세하는 방안이 미국 경제에 커다란 손해를 끼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증명해 보이려고 애썼다. 특히 경제학자 마틴 펠드스타인이 카터가 지지하는 누진세 정책에 격렬하게 반대했다.
명망 있는 비영리 연구조직인 전미경제연구소의 소장을 지내는 동안 펠드스타인은 자본이득세를 인상하면 새로운 비즈니스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고, 정부의 세수 또한 줄어들며, 투자자가 기존의 자산 포지션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어 결국 자산 시장이 동결된다는 주장을 담은 여러 건의 저명한 연구를 발표했다. 펠드스타인의 주장은 학계에서 가장 저명한 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나갔다. 투자에 세금 혜택을 주는 방안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경제 성장을 촉진하고 국고를 다시 채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새로운 부류의 공급 중시론자들이 그들의 주장에 갈채를 보내고 더욱 널리 퍼뜨렸다. (p.100-101)
1970년대의 임금 인플레이션을 뒤집기 위해서는 세제 개혁 외의 또 다른 제도적 개입이 필요했다. 임금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저임금과 자본이득 증가가 영구적으로 계속되도록 재정 정책과 통화 정책을 둘러싼 새로운 공식이 필요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정부와 중앙은행이 역진세, 공공 지출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균형 예산, 임금 및 가격 인플레이션을 지속적으로 경계하는 정책, 자산 가격 인플레이션을 선의로 무시하는 전략 등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기로 합의하면서 1990년대에 이런 공식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 같은 조세 체제가 확고히 자리 잡기 전에는 좀 더 단호하게 노동운동을 좌절시켜야만 했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와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은 불황을 조성할 목적으로 금리를 인상했다. 밀턴 프리드먼의 통화주의가 의도적으로 불황을 만들어 내기 위한 기술적인 핑계 역할을 했다. 세계 각국 정부가 동시다발적으로 지난 수십 년 동안 지속되어온 법적 및 사회적 보호 장치를 철회하는 상황에서 몇 달 동안 실업이 계속되자 노동운동은 결국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노동조합이 협상력을 잃자 기업들은 이제 자유롭게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하고 국내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는 임금을 삭감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1980년대 초반 내내 지속된 고금리로 인해 값싼 수입품이 넘쳐나게 되었고 물가 상승 시대가 막을 내렸다. 1982년이 되자 연준과 영란은행은 임금과 물가의 상승세를 꺾은 것처럼 보였다. (p.109-110)
1990년대에는 중앙은행 독립과 물가 안정 목표제라는, 통화에 대한 새로운 통설이 전 세계에서 꾸준히 지지를 얻었다. 물가 상승률은 무슨 일이 있어도 억눌러야 할 대상으로 여겨졌지만 중앙은행이 지나친 자산 가격 상승 억제를 목표로 삼은 적은 없었다. 1980년대 이후 중앙은행들은 줄곧 자산 인플레이션을 용인하고 심지어 장려하기까지 했지만 그와 동시에 임금 상승 인플레이션에 대해서는 항상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 이후 임금 및 물가 상승은 완전 고용을 위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실업률과 물가 상승률 간의 상충관계를 보여주는 필립스 곡선에 담겨 있는 이 같은 주장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시대 초기의 통화 충격으로 인해 이같은 믿음이 뒤집혔으며 중앙은행을 가격 안정성의 수호자로 여기는 새로운 인식이 퍼져나갔다.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이제 흔들림 없이 물가 상승과 임금 성장을 제지하며 정치권으로부터의 독립성을 증명해 보일 것으로 기대되었다. 새로운 통화 체제가 마련되자 중앙은행들은 채권 소유자들의 감수성에 직접 호소하고 국가의 정책 선택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중앙은행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한때는 임금 상승을 용인하기 위해 자산 가치를 희생시켰던 중앙은행들이 이제는 자산 가격 인상을 위해 임금과 물가를 억누르려고 애쓰게 되었다. (p.111-112)
자산 가치 상승에서 비롯된 이득이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고루 분배될 것이라는 약속이 없었다면 이러한 역학관계는 심각한 사회적 불안을 초래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낙수경제가 전면으로 내세운 공급 중심 원칙은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라는 전체 프로젝트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이념을 가장 노골적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했다. 낙수경제를 앞세운 정부는 투자소득을 이용해 근로소득 손실을 상쇄하라며 사람들에게 자산 경제 참여를 독려했다. 이 같은 가능성에 숨겨진 감정적 호소력을 잘 이해한 첫 번째 인물이 마거릿 대처였다.
노조와 공공 부문을 향한 공세가 한창이던 때에 대처는 장기적인 공공 주택 매수 권리 부여 정책을 통해 노동자 계급 주민들에게 공공 주택 자산을 매수할 기회를 제공했다. 이 프로그램은 말 그대로 투자 심리에 불을 지피는 역할을 하고, 그동안 공공 부문에 기대어온 사람들이 자신들을 노동자가 아닌 자산 소유주 겸 불로소득자로 여기도록 만들 것으로 기대되었다.
1988년 당시 영국의 재무장관이었던 나이절 로슨은 영국이 〈상속자의 나라(nation of inheritors)〉가 되고 노동자 계급에 속하는 가구마저도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불로소득자 계급의 이해관계와 일치한다고 생각하게 될 머지않은 미래를 예견했다. 미국에서는 로널드 레이건이 일자리 불안정성이 확대되고 임금 불확실성이 커진 탓에 연기금 자본주의(pension fund capitalism)가 생겨났다고 홍보했다. 확정연금 지급보증 제도를 포함한 일자리 보호 장치가 사라지는 가운데 미국의 노동자들은 퇴직연금 적립제도를 활용하면 주식 시장 폭등이 자신들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p.115-117)
클린턴 행정부의 첫 번째 노동부 장관이었던 로버트 라이시는 포드식의 대량 생산 모델과 노조는 더 이상 지켜낼 수가 없으며, 지식이 주된 가치의 원천이 되는 새로운 정보 경제의 현실에 국가 경제가 적응해야만 한다는 주장을 널리 확산시키는 데 특히 커다란 기여를 했다. 라이시는 생산 사슬(production chains)과 금융 시장이 점차 세계화되고 있기 때문에 인적 자원이 한 국가가 자국의 소유라고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자원이자 변덕스러운 투자 자금을 유치하고 조달하기 위해 확실하게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요소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더이상 국가, 자본, 노조 간의 계약을 통해서는 국가의 번영과 고임금을 보장할 수 없게 되었다. 세계적인 투자 자본을 유치하는 국가 경제의 역량을 통해서만 번영과 고임금을 이뤄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연구, 교육, 인프라에 대한 꾸준한 공공 투자를 통해 국가의 혁신 제도를 가능한 한 매력적으로 만드는 데 있어서 국가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했다. (p.121-122)
그린스펀의 임금 상승 회피 통화 정책은 자산 민주화에 도달하기 위한 유일한 경로는 노동자들이 훨씬 높은 수준의 개인 소비자 신용을 활용해 자발적으로 자산 경제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시카고학파가 복음처럼 떠들어대는 인적 자본 이론과는 반대로, 모든 사람이 똑같은 자산을 갖고 인생을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달리 싸고 풍부한 신용의 도움을 받으면 누구나 빌린 돈으로 자산 경제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린스펀이 제시한 신용 의존적인 민주화된 자산 소유 방식은 심판의 순간을 연기하고 역사적으로 전례 없이 낮은 금리로 소비자 신용 대출을 제공해 클린턴이 제시한 공공 투자 경로와는 거리가 먼 차선책을 제시했다. 정부가 소득 빈곤층의 주택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이 같은 신용 호황을 이용하는 한 값싼 신용이 집값을 끌어올리고, 집값 상승은 또다시 추가적인 신용 대출을 얻기 위한 담보물의 가치 상승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발생하게 된다. 그린스펀은 사회적 투자와 임금 상승을 주축으로 하는 신뢰받기 힘든 정치로 되돌아가기보다는 신용에 대한 규정을 완화해 자산 가치 상승이라는 부의 효과를 〈일반화〉해야 한다고 클린턴에게 권고했다. 사실 기존의 정치 행태로 되돌아가는 건 언제건 어떤 수를 써서라도 연준이 차단할 만한 것이다. (p.126-127)
임금 정체가 계속되는 탓에 이전부터 존재해 왔던 부의 불평등이 통합되고 강조되고 있다. 우리는 상대적인 부의 민주화가 이뤄졌던 짧은 시기, 즉 과거에 노동자 계급에 속했던 사람들 중 일부가 진정한 계급 이동을 이뤄낸 시기에서 사회적 이동이 정지되고 임차인에서 주택 소유주로 넘어가는 사다리가 끊긴 폐쇄적인 〈이동 불가 시대〉로 옮겨왔다.
이런 추세들이 모두 더해지고 지금과 같은 정책 조건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주택 자산에 대한 접근성은 점차 일부 계급에만 집중되고 주택을 얻기 위해서 가족의 부에 더욱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30-40년 전만 해도 보증금만 저축하면 주택 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던 평균적인 임금 근로자들이 이제는 첫 번째 주택을 소유하기 위해 점차 부의 대물림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고등교육을 받거나 무급으로 진행되는 인턴 과정을 거치기 위해서도 가족으로부터 금전적인 도움이나 다른 방식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가 많다. 가령 임차료를 지원받거나, 임차료를 내지 않고 가족의 집에서 생활하거나, 부모를 대출 보증인으로 세우거나, 부모가 성인 자녀를 위해 대출을 받아줘야 하는 등 말이다. 사회안전망이 점점 사라지다 보니 값비싼 의료비나 교육비를 감당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주택을 담보로 필요한 돈을 마련하게 되면서, 즉 주택이 일상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런 현실은 주택 문제를 넘어서서 우리의 삶에 훨씬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p.130-131)
경제 엘리트들은 항상 공공 제도에 좀 더 많은 영향력을 미쳐 왔다. 하지만 제도의 영향을 받는 대다수의 사람이 점차 비합리적이라고 느끼는 방식으로 정책이 완전히 포획되어 버린다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이런 현상이 지속될 수 있는지 설명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중산층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주택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중산층은 종종 사회 안정성의 근간으로 여겨지며 정치인들과 정책 입안자들 역시 중산층을 소외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신자유주의 정책들은 자산 소유가 이미 상당히 민주화된 역사적, 제도적 상황에서 생겨났으며, 적어도 처음에는 그런 유산을 토대로 성공적으로 발전했다. 이로 인해 자산 가치 상승이라는 약속에 많은 투자를 한 중산층 유권자가 생겨났으며, 이런 맥락 안에서 자산 인플레이션에 찬성하는 정책 방향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p.170-171)
도서관은 살아 있다 / 도서관여행자 / 마티
폐기 위험에 처한 책을 구하기 위해 싸우는 사서들도 있다. ‘게릴라 사서’라 불리는 이들은 1989년 처음 등장했다. 그해에 느닷없이 발생한 강한 지진으로 샌프란시스코 중앙도서관이 크게 손상되고 서가가 파괴되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건물이 완전 복구되기 전, 작은 임시 열람실을 개방했지만 책을 비치할 서가가 턱없이 부족했다. 도서관은 대대적인 장서폐기 작업에 착수하고 모든 책을 ‘그해 대출이 된 도서’, ‘지난 2년간 대출 이력이 있는 도서’, ‘2년 넘게 대출되지 않은 도서’로 분류하고, 각각에 그린카드, 옐로카드, 레드카드를 꽂아두었다. 음악, 예술 분야를 포함한 상당수의 도서가 폐기 위험에 처하자 몇몇 사서가 창고에 몰래 침입해 책에 있는 레드카드를 그린카드로 바꾸어 책 구출 작전을 벌였다. 이들이 게릴라 사서의 시초다.
2016년 미국 플로리다주 소렌토의 이스트 레이크 카운티 공공도서관에서도 ‘게릴라 사서’가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이곳의 관장인 조지 도어는 ‘척 핀리’라는 이름으로 도서관 카드를 만들어 9개월 동안 무려 2361권의 책을 대출했다. 1년 이상 대출되지 않아 폐기 위험에 처한 책들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이 때문에 도서 대출이 3.9퍼센트 증가하자 도서 구매 예산을 받아내려 고의로 벌인 일이라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p.45-46)
고된 작업이라고 해서 도서 수집과 폐기를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분석 결과에만 맡기면 자칫 장서의 다양성을 해칠 위험이 있다. 2021년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켈빈 파크 고등학교 쓰레기장에 폐기된 도서관 책들이 화제가 되었다. 『햄릿』, 『죄와 벌』, 『변신』 등 여러 고전들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 도서관은 아마도 대출 통계 데이터에서 학생들이 읽지 않은 책들을 추려냈을 것이다. 이전에도 이런 비슷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용자들이 찾지 않아 버려지는 책들과 버려진 책들을 보고 화를 내는 이용자들. 좋은 장서를 만드는 건 사서의 노력이지만 좋은 장서를 지키는 건 이용자의 관심이다.
장서점검을 하면서 속상한 적도 많았다. 사람들은 왜 이 책들을 안 읽은 걸까? 3년 넘게 이용자 손길을 한 번도 받지 못한 책이 이토록 많다니. 사랑을 받지 못해 도서관을 떠나야 하는 책들을 볼 때마다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소장 기록을 삭제하고 면지에 ‘폐기’(DISCARD)라 적힌 도장을 탕탕탕 찍을 때마다 왠지 책들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제적된 책들은 카트에 실려 도서관에 딸린 중고서점이나 재활용 컨테이너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들의 운명을 기다렸다. 새로운 주인을 찾아가거나, 새로운 책으로 태어나거나. (p.46-47)
인세 하면 생각나는 작가가 있다.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 제임스 패터슨이다. 그는 보조(대필) 작가 20여 명을 두고 공장 돌리듯 작품을 생산해 연간 천억 이상의 수입을 벌어들인다. 작가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갈수록 심화된다. 모두에게 평등한 도서관에서도 그렇다. 도서관 관련 제도 중에 도서 대출에 대해 저작자에게 보상을 해주는 ‘공공대출권’ 제도가 있다. 최근 한국에서도 공공대출권 도입 여부가 쟁점으로 대두되었다. 공공대출권을 도입한 나라에서 블록버스터 저자들의 배만 불리는 결과가 빚어졌다는 사실을 알기에 나는 이 제도를 반대한다. 신인 작가, 지역 출신 작가, 독립출판 작가, 비인기 작가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좋은 작품을 이용자에게 알릴 수 있도록 선별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다. 도서관 목록에 이름 한번 올려보지 못하고 사라지는 소외된 책들을 위해서 말이다. 공공대출금 제도가 시행되면 도서관에도 타격이 올 것이다. 유명 작가에게 상당한 금액의 대출 인세가 나갈 것이고, 이용자가 덜 찾는 비인기 장르나 연구 및 보존 목적의 도서를 수집할 여력이 없어져 서비스가 퇴보할 수 있다. 도서관의 재정 악화를 불러올 수도 있다. 빡빡한 예산 때문에 이용자의 도서 구매 요청마저 반려하는 도서관들이 있는 지금, 자료 구입비 확충 방안을 논의하는 것이 더 시급하지 않을까? (p.51-52)
공공도서관을 지탱하는 기둥은 몇몇의 자선이 아닌 공동체의 공동선이다. 지역 소득과 기부금이 비례하고 도서관의 빈익빈 부익부가 날로 심화되는 현상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안타까운 현실이다.
얼마 전 ‘유명 인사의 인생 책을 기부받아 도서관이 부족한 지역에 도서관 건립을 지원하는 나눔 문화 토크쇼’ 예능 프로그램 「북유럽」을 시청하다가 잊고 있었던 고마운 분이 떠올랐다. 사서 시절 한국어 도서 기증 캠페인을 진행했을 때의 일이다. 지역 한인 신문에 실린 캠페인 홍보 기사를 본 한 어르신께서 한국 책을 구매하는 데에 써달라며 50달러 수표를 보내주셨다. 함께 보낸 편지에 이런 글이 담겨 있었다. “정부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처지라서 큰 도움이 안 되리라 생각되지만 제 작은 정성이라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추억상자에 간직한 이 오래된 편지를 꺼내 다시 읽어보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분께 미처 전하지 못했던 말을 여기에 남긴다.
도서관을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p.59-60)
공공도서관은 어린이, 청년, 성인, 노인이 모두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유일한 공동체 공간이다. 도서관은 책만 빌려 읽는 곳이 아니라 타인과 스치고 마주치며 다른 삶의 면면을 곁눈질로 보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나는 어린이 도서관을 따로 짓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공공도서관은 세대, 성별, 계층 갈등이 심화되는 한국에서는 더욱 필요한 소통의 장이자 시민 교육의 장이다. 언젠가 트위터에서 도서관에 애들 돌아다니는 게 싫다는 둥, 도서관에 노인들 좀 안 왔으면 좋겠다는 둥의 혐오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트윗을 올린 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도 한때 어린이였고 언젠가 노인이 된다. (p.64)
미국 사람들은 아이들 소음에 관대하다. 나는 도서관에서 재잘재잘 수다 떠는 학생 이용자들에게 시끄럽다고 눈치를 주거나 나무라는 어른을 보지 못했다(사서를 나무라는 이용자를 본 적은 있지만). 어린아이가 바닥에 누워 자지러지게 울거나 자폐 스펙트럼 장애 아이들이 느닷없이 큰소리를 내도 그칠 때까지 기다려주는 직원들과 이용자들을 보면서 한국이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한바탕 소동을 치르고 아이들이 떠나면, “아, 이제 좀 조용해졌네” 하며 허허 웃는 여유를 보이는 어른들. 공공장소에서 아이들 울음소리를 참아줄 수 있는 사회의 배려가 성숙한 시민의식의 발로가 아닐까? (p.75)
나는 어린이와 어른으로 구분하는 열람실보다 모두가 함께 이용하는 열람실이 좋다. 책이 많은 도서관은 좋지만, 책만 많은 도서관은 싫다. 서가로 가득 찬 도서관보다 이용자로 가득 찬 도서관이 좋다. 아름다운 도서관을 좋아하지만, 아름답기만 한 도서관은 싫다. 같은 말도 멋들어지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텍사스 오스틴 대학의 문헌정보학과 교수인 데이비드 란캐스는 “나쁜 도서관은 장서를 쌓고, 좋은 도서관은 서비스를 구축하고, 위대한 도서관은 공동체를 형성한다”라고 주창했고, 건축비평가 에드윈 헤스코트는 『파이낸셜 타임스』 사설에서 블록버스터 갤러리가 아니라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도서관을 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역할과 공동체 형성이라는 목표에 걸맞은 도서관은 어떻게 지을 수 있을까? 핀란드의 헬싱키는 오디 도서관을 짓기 위해 시민들로부터 2000여 개의 아이디어를 모았고, 한국의 전주는 트윈세대(‘10대’를 의미하는 teenager와 ‘사이’를 뜻하는 between을 조합한 용어로, 어린이라기엔 크고 청소년이라기엔 아직 어린 전환기에 속한 세대) 맞춤형 도서관 ‘우주로 1216’의 설계 과정에서 청소년들의 집단지성을 활용했다. ‘우주로 1216’을 디자인한 건축가는 “기둥을 둘러싸고 있는 소파가 있으면 좋겠다”라는 한 이용자의 바람을 설계도에 옮겼다.
도서관은 책의 성지가 아니라 공동체의 성지가 되어야 한다. 도서관이 ‘장서에서 연결로’(collection to connection)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공동체의 소통 공간을 확대하는 이유다. 도서관을 순례하는 이용자는 공동체의 성지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캘리포니아의 맨해튼 비치 공공도서관 계단 벽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읽고, 쓰고, 배우고, 만나고, 듣고, 발견하고, 탐험하고, 운동하고, 놀고, 관찰하고, 노래하고, 춤추고, 그리고 창작하고, 만들고, 경험하고, 묻고, 토론하고, 검색하고, 찾고, 쉬다.”
도서관을 짓는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동사들이다. (p.84-85)
그러면서 접근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유네스코와 국제도서관연맹의 ‘공공도서관 선언’을 소개했다. 여기에서는 2022년에 개정된 ‘공공도서관 선언’ 일부를 소개한다.공공도서관의 서비스는 나이, 민족, 성별, 종교, 국적, 언어, 사회적 지위 및 기타 특징에 상관없이 모두를 위한 접근의 평등에 기초해 제공된다. 어떤 이유로든 일반 서비스와 자료를 사용할 수 없는 이용자(언어적 소수자, 장애인, 디지털 또는 컴퓨터 기술 부족, 문해력 부족, 병원이나 교도소에 있는 사람)를 위해 서비스와 자료가 제공되어야 한다.
(p.90)
움베르토 에코가 못 가본 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이 있다. 핀란드 헬싱키 도심 한가운데에 위치한 오디 도서관으로, 국제도서관연맹이 선정한 2019년 최고의 공공도서관이다. 이용자의 눈높이에 맞춘 낮은 서가와 북 큐레이션을 위한 전시 서가는 휠체어 이용자도 쉽게 거닐 수 있도록 간격이 넓게 배치되어 있다. 창문에는 새 충돌 피해를 막기 위해 하얀색 무늬를 넣었다. 열람실에는 유아차 주차 공간을 마련했다. 카페, 레스토랑, 영화관, 게임 공간, 창작 공간, 성 중립 화장실… 부러운 시설이었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우리 동네에도 이런 도서관이 있었으면….’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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