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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을 쓰는 직업 / 신지은 / 마음산책

 

 어느 늦여름, 어떤 질문을 해도 몇 박자 늦은 ‘네’로만 일관하던 한 어린이가 있었다. 겨우 이어가던 대화 끝에 그 친구가 전화를 귀에 가까이 대고 나서는 “죄송한데요, 과일요” 하고 입을 열었다.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제일 좋아하는 과일을 물어보았는데, 긴 침묵이 돌아왔었다.
 “지금 생각났는데 말해도 돼요?”
 “그럼요.”
 그러자 어린이는 “청포도를 제일 좋아하지만, 올해 최고로 맛있게 먹은 과일은 복숭아”라는 이야기를 신나게 들려주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딱복(딱딱한 복숭아)이 흔치가 않아서요.”
 “그렇군요. 아까는 고민이 됐어요?”
 “아직은 청포도가 더 좋은 거 같기도 해서 대답하기 조금 어려웠어요.”
 등잔 밑이 어둡다. 보호자들이 가장 모른다. 잘하고 있는지 실수하고 있진 않은지 매 순간 확인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얼마나 말을 잘하는지.
 존댓말로 답하며 경청해주는 사람들 앞에서 어린이들은 지금 그들의 삶에서 중요한 이슈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들려주곤 한다. 어린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듣고 나면 심장이 갓 쪄낸 인절미처럼 뜨겁고 말랑말랑해진 기분이 든다. (p.42-43)

 

 “사실은 그림을 다 그렸을 때 저는 망쳤다고 생각했어요. 배경의 초록색 부분이 너무 짙어서 마음에 안 들어서요. 그래서 상을 받게 됐다고 들었을 때 깜짝 놀랐어요.
 그래도 상을 받았으니까 할아버지께 그림을 보여드렸는데요. 할아버지는 제가 잘못 칠한 부분이 포인트가 되어서 오히려 그림이 더 멋져진 것 같다고 하셨어요.”
 큰 상을 받고도 어쩐지 자기 성과에 미심쩍은 마음을 떨치지 못하는 순간을 왠지 이해할 것도 같았다. 또 스스로 확신을 하지 못하던 어린이가 마음 놓고 기쁨을 느끼게 만들어준 것은 요란한 말치레가 아니라, 한 어른이 다정한 눈길로 짚어내고 건넨 작은 칭찬 한마디였다는 것도. 다음 그리기 잔치에 참여할 어린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지 물었을 때 이 열한 살 어린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니까 자기가 볼 때는 망친 것같이 보여도, 일단은 좀 기다려보면 좋을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이 봤을 때는 좋을 수도 있으니까요.” (p.53-56)

 

 지금은 블라인드 면접이 도입되고, 지원자와 출신 학교나 근무 이력이 겹치지 않는 외부 면접관이 들어오지만, 당시엔 합격하면 같이 일하게 될 학예사나 연구관이 직접 면접에 들어왔다. 그래서일까, 불합격 통보를 받으면 면접관들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저 내 능력이 남들보다 부족해서 떨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마음은 자꾸 ‘면접관 마음에 못 들었다’고 말했다. 그 구겨진 생각에서 헤어 나오기까지 1년 남짓한 시간이 걸렸다.
 그런 생각 탓이었을까. 드디어 박물관에 합격해 일을 하게 되었을 때, 어느 날 사수에게 물었다. 면접에서 나의 어떤 점을 보고 ‘뽑아야겠구나’ 생각했는지 궁금했다. 답은 예상 밖이었다.
 “화음이 기대가 되어서요.”
 다른 사람에게 없는 지식이나 실력을 갖기보단, 오선 위에서 서로 어우러질 수 있는 내 자리를 찾는 것. 그건 누구의 마음에 들게끔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에 다른 사람들을 들이는 일이다. 나와 다른 소리들과 어울리는 방법을 익히면서 내 소리는 어떤 것인지도 더 선명하게 알아간다. (p.101-102)

 

 미술품이나 문화재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도 미술사 전공자의 수난은 계속된다. 대학 시절 한국미술사 수업에서 교수님이 고구려를 배경으로 한 사극에 조선 후기 양식의 청화백자가 나오더란 이야길 하며 혀를 차시곤 했다. 그때는 ‘어차피 드라마 아닌가?’ 했지만, 아는 게 병이라고. 결국 학교를 졸업할 때쯤엔 나 역시 삼국시대 주막에서 백자 술병이 나오거나, 조선시대에 열심히 고려청자를 만드는 장인이 등장하면 적잖이 고통받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드라마임을 알아도 시대적 오류를 참기가 괴로운 것이다.
 “저거 봐봐, 천 년 뒤에 나오는 물건이 저 시대에 있으면 어떡해? 시간 차를 따지면 차라리 이방원이랑 정몽주랑 카톡하는 게 훨씬 덜 이상하다고.” (p.139)

 

 미술 전공자들이나 애호가들은 알아서 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모든 전시들에서 나름의 중요성을 찾아낸다. 그러나 정말 어쩌다 한번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보는 사람, 혹은 ‘그런 곳이 있는 건 알지만’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들은 어떨까. 그 전시를 보는 것이 이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전시의 시의성을 따져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왜, 지금, 이것이라는 세 단어를 이리저리 조합하며 자문자답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전시가 이 시점에 열리는 데 어떤 의미가 있을까를 생각할 때, 단 두 글자 차이로 질문의 방향은 완전히 달라진다. 이런 전시가 왜 ‘지금에야’ 열리는가를 감탄할 수도 있고, 이런 전시가 왜 ‘지금까지’ 열리는가 탄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전시를 보는 게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다. 궁금했던 전시를 보는 것일 수도 있고, 별 생각 없이 보러 왔다가 새로운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 전시를 재미있게 보고 싶으십니까? 시의성을 생각하며 보십시오. 눈길마다 느낌마다 감칠맛을 더해주는 마법의 양념이니까요.
 어떤 전시가 좋은 전시일까. 꼭 보아야 할 사람이 대번에 생각나는 전시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지금 이 전시를 보면 상처받을 사람들이 너무 많이 떠오른다면, 아무리 훌륭한 작품들이 나와 있어도 의심스런 눈길을 던지게 된다. 물론 어떤 전시를 보느냐보다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 마음이 회복되는 사람들도 있다. (p.157-158)

 

 “처음부터 완벽하게 잘 쓸 수는 없는 것이고, 그래도 목표는 아주 높은 곳에 두고, 노력은 긴 시간 계속해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이미 자신이 그 이상으로 삼은 지점에 근접했음을 느끼고 뿌듯해하는 때도 온다.”
 연구자로 남지 않은 나는 교수님이 강조하시던 그 목표에도 뿌듯함에도 이르지 못하였다. 과분한 격려를 받았던 것조차 갚지 않은 빚처럼 우울의 원천이 되곤 했다. 그러나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후, 훌륭한 글을 읽고 기가 죽고 그래도 관두고픈 충동을 참는 밤이면 찬 새벽의 짙은 라일락 향기와 H 교수님의 말씀을 떠올린다. 이제 밤은 새우지 않지만. (p.180)

 

 도자기의 빛깔은 바탕이 되는 흙인 태토(胎土) 색에 유약층의 빛이 겹쳐져 결정된다. 조선 초기 만들어진 백자들의 유태에는 특유의 푸르스름한 기운이 감돈다. 중국 도자기 산지의 최종 보스 격인 경덕진 가마에서도 북송 대부터 청백자라고 불리는 푸른 백자들을 만들었지만, 거의 청자에 가까운 푸른색이라 우리 백자의 서늘한 푸른 기(氣)와는 다른 빛깔이다.
 누가 보아도 하얀색인데, 살짝 그늘지듯 비치는 파르스름함이 정말 한겨울 움푹움푹 발자국이 팬 눈밭의 빛깔 그대로이다. 바라보고 있으면 명치 부근까지 오스스하게 서늘한 기운이 끼쳐오는 것 같은 그 설백색에서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시기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p.200-202)

 

 20대엔 빛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30대엔 그 빛들 사이에서 제 빛을 내는 사람들이 보인다. 정진 끝에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 그들 가운데는 그냥 실력이 뛰어난 게 아니라 그릇도 남달리 커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훌륭한 인격을 타고나거나 물려받거나 활동 기반을 스스로 쌓아올렸거나, 치열한 고민의 결과 올바른 방향성을 얻기도 한 사람들이다. 저 사람은 앞으로 훨씬 더 성장하겠구나, 아직 젊으니 계속 더 훌륭한 작업물을 내놓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감탄을 하다 보면 문득 나의 작은 그릇이 비쳐 보인다. 꽉꽉 채워도, 넘치게 담아도 그릇이 작아 결국은 작은 사람에 머물고 말 것 같은 나의 미래를 본다.
 타고난 그릇이 작은걸, 하고 멈춰 있던 시간. 그런 한편으로는 큰 그릇 하나가 꼭 좋은 걸까 하는 의심도 있었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한 가지 목표를 위해 다 쏟아붓지 않으면 안 된다는 외침들에 나는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린다. 큰 그릇이었던 적이 없어 잘 모르겠다. 살아가며 얻은 모든 것들이 한데 비벼지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p.230-231)

 

 

최재천의 공부 / 최재천, 안희경 / 김영사

 

제가 지금 교육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세 번째 이유를 말해야겠네요.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 삶을 돌려주고 싶습니다. ‘도대체 삶이 뭔데, 이렇게 학교와 학원을 돌고 돌며 살아야 하나?’ ‘무엇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무엇을 성취해야 하기에 쉼 없이 배워야 하나?’ 사실 교육이란, 먼저 살아본 사람들이 다음 세대에게 ‘살아보니까 이런 게 필요하더라’ 하고, 조금은 준비하고 사회에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가르치는 거잖아요. 옛날 같으면 기성세대가 사냥을 해보니까 활을 잘 쏴야 한다는 이치를 깨달았고, 활쏘기 연습을 하자 사냥을 잘하게 되어, 다음 세대에게 활쏘기 연습을 시키는 거고요.
지금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모든 내용이 사회에서 정말 필요한 것일까요? 솔직히 아무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삶의 중요한 시기에 있는 아이들의 시간을 우리가 지금처럼 빼앗아도 될까?’ 자주 의문을 가져요. 저는 어른들이 그들의 삶을 유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걸 인권 문제라고 보는데요. 청소년 시절에는 왜 인권을 보호받지 못할까요? 먼저 살아봤다는 이유로 기성세대가 청소년에게 ‘삶을 접고 공부만 해라’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의 교육 제도는 위 세대가 아래 세대를 압박하는 장치가 됐습니다. 이제라도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게 뭔지 고민하고, 모두가 삶을 즐기면서 자라나도록 길을 내야 합니다. 왜 우리가 교육하고 공부하는지를 숙고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p.45-46)

 

시험은 두 가지 실력을 테스트하죠. 풀 수 있는가, 그리고 정해진 시간 안에 푸는가. 중학교 3학년인 제 딸이 시험을 보고 오더니 묻더라고요. “왜 정해진 시간 안에 풀어야 해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정해진 시간 안에 반드시 뭘 해야 하는 경우가 그렇게 많은 건 아니잖아요. 물론 정해진 시간 안에 모든 일을 마감해야 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한 시간 안에 모든 해법을 찾아야 하는 긴박한 삶을 평생 살지는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문제를 인식하고 숙고할 시간이 충분히 있어요. 그러니까 ‘어떤 자원을 동원해서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갈까’를 가르쳐야 하는데, 우리는 주어진 문제를 한정된 시간 안에 어떻게 푸는지를 가르치죠.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선거 중에 후보자 토론회를 보면 답답합니다. 토론회는 임기응변의 달인, 어떤 순간에도 당황하지 않는 후보를 뽑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전시 사령관 뽑듯이 돌발 질문을 하며, 서로를 궁지로 몰고 나서 토론을 완벽하게 해낸 듯한 표정을 지어요. 진행자는 후보들이 충분히 의견을 말할 수 있게끔 질문다운 질문을 하지 않아요. 반론이 나오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진의를 알 수 있게 되묻지도 않고요. 자꾸만 극한 상황에 대처하는 순발력을 테스트하는데, 저는 엉뚱한 시험을 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p.63-64)

 

제가 하는 ‘환경과 인간’ 수업에서 저는 ‘환경’을 ‘자연환경’이라고 규정하지 않고, ‘광의의 환경’으로 생각하자고 제안해요. 환경이라는 개념을 활짝 펼쳤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은 분석하고 보살필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요. 그래서인지 ‘환경과 인간’ 수업에 별의별 위원회가 있습니다. 자전거도로개선위원회, 여성지위개선위원회, 인터넷문화개선위원회, 저출생고령화대책위원회, 국립자연사박물관건립준비위원회, 패스트패션대책위원회 등등요. 학생들 스스로가 위원회를 꾸립니다. 온갖 전공생들이 조를 짜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니까 별의별 생각들이 나와요.
학생들은 수업 시간 외에도 모여서 모의를 해요. 서로 다른 전공의 선후배가 함께 가르치고 배웁니다. 그 시간이 진짜 수업이죠. 지금은 아현동이 재개발되어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는데요. 여러 해 전, 도시재개발위원회 학생들이 온종일 거기 가서 있었어요. 졸업하고 나서도 젠트리피케이션을 어떻게든 막아보겠다며 그 일에 뛰어든 학생이 둘이나 됩니다. 제가 가끔 겁나요. ‘남의 인생을 너무 휘저어놓는 건 아닌가’ 하고요. 지난 15년 동안 제 수업을 듣고 진로를 정한 아이들이 제법 많습니다. 그래도 저는 ‘이런 게 교육이지, 다른 게 있을까’라고 생각합니다. (p.70-71)

 

공부의 구성 요소이군요.

네. 제가 생각하는 ‘공부가 이루어져 가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위대한 학자들이 벽돌을 착착 쌓아가듯 빈틈없이 공부하셨을까요? 저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학문하면 생애에 못 끝냅니다. 지나친 완벽주의자들은 어느 단계까진 도달하지만 더 나아가지 못하더라고요.

자기만의 언어로 한 분야를 설파하거나 학문의 꼭짓점을 끌고 앞으로 나아가는 단계까진 못 간다는 건가요?

그런 것 같아요. 제가 대가들과 조금 깊이 이야기를 나눠본 경험이 있는데, 대가인데 이런 것도 모르나 싶을 만큼 그분들에게도 구멍이 있어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의 양이 있다고 봅니다. 대가는 능력이 출중해서 하나씩 모두 쌓아가며 지금의 자리로 올라갔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분들도 꼭 완벽하지는 않다는 제 나름의 확신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공부의 구성 요소를 이렇게 생각합니다. ‘젊은 친구들,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 어차피 조금은 엉성한 구조로 가는 게 낫다. 이런 것에 덤벼들고 저런 것에 덤벼들면, 이쪽은 엉성해도 저쪽에서 깊게 공부하다 보면, 나중에는 이쪽과 저쪽이 얼추 만나더라.’ 깊숙이 파고든 저쪽이 버팀목이 되어 제법 힘이 생깁니다. (p.82-83)

 

뭐든 한참 하면 엉성한 곳들이 슬금슬금 메워지더라고요. 조금이나마 그런 걸 허용하면 좋겠어요. 외나무다리를 비틀비틀 아슬아슬하게 건너가는 사람을 응원해주면 좋겠습니다. 마음을 졸이며 바라보더라도 ‘어! 저 녀석 보게. 결국엔 건너갔네!’라고 말하는 뿌듯한 경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 돼’ ‘균형을 잡아야 해’ ‘실수하면 안 돼’라는 말만 하고, 외나무다리를 건너가도록 도와주지도 못하면서 준비만 잔뜩 시키는 그런 교육을 이제는 그만해야죠.

그 대신 떨어지더라도 밑에 튼튼한 그물망이 있어야겠죠. 사회적 안전망이 만들어져서 성적이 미래를 좌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럼 더 좋고요. 어쩌면 이런 것이 다양성이겠죠. 이런 길도 있고, 저런 길도 있어요. 모두가 한결같이 외길을 강요하는 방식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p.86-87)

 

네. 5일 후에 마칠 일을 5일 전에 끝낸다는 겁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5일이라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했어요. 미리 끝내고 틈날 때마다 리포트를 다시 들여다보며 조금씩 고친다고 하더군요. 그러면 질이 좋아질 뿐 아니라 돌발 변수가 생겨도 대처할 시간이 있다고요.
그날부터 저는 ‘미리 한다’가 습관이 되도록 노력했습니다. 1주일을 앞서 끝내고자 결심했는데, 처음엔 잘 안 되더라고요. ‘실제로 1주일이 있다’라는 생각이 제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연습하니까 자동 입력이 됐어요. ‘언제까지 끝내야 하는 일’은 ‘1주일이나 2주일 전까지 끝내야 하는 일’이 됐어요. 미리 다 해놓습니다. 남은 기간 저는 다른 일을 하다가 갑자기 30분 정도 여유가 생기면 그때 다시 그 일을 살펴봅니다. 한 번 더 읽어 보고, 조금 고치고, 파일을 저장하죠. (p.102)

 

(…) 제가 뜻밖에 자주 하는 행동이 있는데요. 읽다가 ‘재미없네. 뭔가 밋밋하네’라는 생각이 들면 문단 순서를 바꿉니다. 가끔 기막힌 맛이 살아납니다. 아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단도직입적으로 툭 던지고 나간다고 했잖아요.
어떤 날은 매우 조신하게 깔끔한 순서로 쭉 씁니다. 그러고 계속 읽으면 아주 재미가 없어요. 그때 마지막 문단을 쓱 뽑아서 맨 앞에 던져놓으면 갑자기 재미있는 글이 되는 거예요. 읽는 사람이 처음에 충격을 탁! 받고, ‘아, 이 양반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라고 생각하며 언짢은 기분으로 제 글을 읽겠죠. 그러다가 마지막에 설득되면 성공입니다.
저는 독자를 함정에 살짝 빠뜨려놓고 ‘제가 요렇게 이야기할 줄 알았죠? 아니에요. 저는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라는 식으로 쓴 글들을 좋아합니다. 또 하나는 계속 읽으면 멋진 한 문장이 탄생하는 수가 있습니다. 단어 한두 개를 바꾸면 사람들이 아주 좋아하는 문장, 사람들이 안 좋아해도 스스로 감탄하는 문장이 탄생합니다. (p.115-116)

 

처음 미국에서 입학사정관 제도를 만든 의도는 나빴어요. 아이비리그에서 학생을 성적으로 뽑았더니 그동안 배제된 유대인이 많이 들어왔고, 늘 우대받은 백인 명문가 자제들, 그러니까 졸업생 자제들이 들어오지 못해서 인성과 교내외 활동뿐 아니라 여러 가지를 평가하겠다며 만든 제도입니다. 슬금슬금 기부금을 많이 낸 학생을 우대했고요. 이런 부분을 지적받으면서 다듬어왔습니다. 세월이 한참 흐르고 나니 긍정적 면이 생긴 겁니다.
제가 하버드대학교에서 기숙사 사감을 할 때, 공부를 봐준 학생이 있었습니다. 사감이 그런 일까지는 하지 않는데, 그 학생이 하도 못 따라가서 제가 가르쳤어요. ‘너 어떻게 들어왔느냐’란 말이 턱밑까지 올라왔지만 참고 도와줬죠. 그 학생은 자기소개서에 하버드대학교에 오고 싶어서 서부 끝 태평양 연안 도시,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자기 집에서부터 동부 끝 대서양 연안에 있는 하버드대학교를 향해 걸었다고 썼습니다. 중간 지점인 캔자스시티에서 응급실로 실려 간 사연을 적었어요. 입학사정관들이 인상적으로 읽곤, 이런 학생 한 명 정도 넣어보자고 합의했습니다. 라크로스를 제법 잘하니까, 그걸 특기 삼아 입학시켜줬습니다.
워낙 매력이 넘치는 학생이라 또래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는데, 공부는 그리 잘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제가 주말마다 가르쳤어요. 졸업할 즈음 의대를 가겠다고 말하더군요. 성적이 안 되는데 갈 수 있나요? 하여간 제가 다섯 장짜리 추천서를 열심히 써줬고, 그 학생은 별의별 활동을 넣어서 원서를 썼습니다. 의대에 갔어요. 도대체 어떻게 들어갔는지 몰라요. 하버드대학교에 들어온 것처럼 매력이 넘치니 호감을 샀겠죠.
십몇 년 전, 제가 미국에 가서 그 친구가 초청해준 하키 경기를 봤어요. 알고 보니, 하키팀 주치의가 되었더라고요. 그 친구는 지금 너무 신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버드대학교는 거름을 뽑는데, 그 거름이 또 꽃을 피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서울대학교에서 댄서 한 명을 뽑으면, 그 친구가 다른 아이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줄 뿐 아니라 그 자신도 뭐가 될 거라고요. 우리나라 교육에 숨구멍을 틔워야 합니다. (p.248-250)

 

이야기를 하게끔 하는 재주가 저에게 약간 있습니다. 조직을 경영하는 데도 무척 도움이 되더라고요. 제가 국립생태원장으로 일할 때 가장 명심했던 경영 십계명 중 하나가 ‘이를 악물고 듣는다’였어요. 조직의 리더가 되면 말이 많아집니다.

다들 잘 들으니까요.

그런데, 리더가 입을 열면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아요. 집단지성을 이루고 창의성을 끌어내려면, 리더는 어금니가 아프도록 입을 다물어야 합니다. 제가 국립생태원을 연구 중심의 센터로 만들겠다는 포부로 초대원장을 맡았는데요. 서천에 내려가보니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있어 전시를 열어야 했습니다. 전시 개막일이 3주도 채 남지 않았는데, 직원들이 준비해놓은 짜임새가 아쉬웠어요. 할 수 없이 한마디를 했습니다. 시간이 촉박하지만 이런 것도 생각해보면 어떠냐고 넌지시 건넸죠.
그랬더니 며칠 후에 기획회의를 하는데, 그동안 논의했던 내용을 다 버리고 제가 말한 내용으로 정리해서 가져왔더라고요. “아니, 그동안 논의하셨던 내용은 다 어디 갔어요?”라고 물었더니, “원장님 말씀이 가장 좋아 보여서 그 방향으로 잡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조직의 장이 말하면 모든 게 무너져요. (p.280-281)

 

어찌 보면 저는 집 안에서 제 공간이 거의 없는 느낌으로 사는 것 같아요. 저는 공부도 하고 장도 보고 설거지도 하죠. 아들이 학교에 다닐 때는 학부모 회의에 아내 대신 제가 많이 참석했습니다. 아들은 밤중에 필요한 게 생기면 엄마가 아니라 저를 깨웠어요. 엄마는 늘 공부해야 하고 피곤해서 자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하지만 삶 전체를 보면 저는 끊임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누려왔습니다. 오히려 제 아내가 자기 공간을 빼앗겼죠. 저 때문에 뜻을 꺾고 미국에서 우리나라로 돌아와 새로 시작해야 했으니까요.
제 아내는 우리나라에서 수차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여성, 학력, 서열의 편견에서 번번이 고통받아야 했어요. 저는 일이 잘 풀렸고요. 남자였고 편견에 맞는 이런저런 조건을 갖췄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내가 고생한 상황을 잘 아는 동료로서, 미국에서도 우리나라에서도 함께 부당함에 맞섰는데요. 서로 각자 가고자 하는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공부의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합니다. 진입장벽 자체가 허물어져야 해요. 제 연구실에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제자들이 많아요. 분자생물학을 공부하고 싶다면 찾아갈 교수가 많지만, 제가 연구하는 분야의 교수는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국에서 몰려옵니다. 어느 해에는 80명이나 찾아왔어요. 그중에서 두세 명을 뽑아야 하니 경쟁률이 만만치 않았죠. 가끔 저에게 원색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제자들이 있습니다. 왜 어중이떠중이 다 받아들이냐고요.
한 번은 이유를 물었어요. 기본을 갖추지 못한 신입생이 있다고 하더군요. 지방 대학을 졸업한 학생이 박사 과정 신입생으로 들어왔을 때입니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할 것 같은데……. 쟤는 시골에서 산을 타고 구르며 자란 아이라서, 어느 정도만 갖추면 굉장히 잘할 거야.” 그렇게 말하고 돌려보냈어요. 얼마 지난 뒤 또 저를 찾아와서 불평했습니다. “쟤는 논문도 제대로 못 읽어요.” 그때는 이렇게 말하며 돌려보냈어요. “기초 영어가 부족해서 그렇지. 조금 더 오래 공부하면 되는데 뭘 그러느냐.” 제 연구실에서 자주 있는 일입니다.

그 학생들은 선생님 안목대로 성장했나요?

다 잘했습니다. 오래 걸렸지만 자기 분야를 찾았어요. 그 분야에서 성과를 만들며 우리나라 생물학계를 폭넓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니 무작정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로, 학연이나 성별로 자격을 만들어주는 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 제 경험으로 확인했습니다. 진정으로 공부한다면, 그런 선입견으로 상대를 바라볼 수 없어요. (p.291-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