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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한 아프리카 공부 / 우승훈 / 힐데와소피

 

 우간다의 새로운 난민 패러다임을 따라 아직 가보지 않은 영역까지 가보기 위해선 더 많은 국제 연대가 필요하다. 1951년에 만들어진 난민협약에서 난민은 국제사회 공동의 문제이며 각국이 함께 책임져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우간다 정부를 포함한 많은 난민 수용 국가 정부와 난민 지원 기관은 난민 지원을 위한 재원 부족에 오랫동안 시달리고 있다. 2020년 유엔난민기구의 우간다 난민 지원 프로그램의 예산 대비 확보 재원은 44%에 그쳤다. 그럼에도 우간다는 여전히 국경을 열어 난민과 유럽을 보호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왜 우리도 유럽처럼 문을 걸어 잠그지 않느냐’고 물어봅니다. 우리는 ‘문을 닫는 것은 사람들에게 자기 나라로 되돌아가 죽으라는 것과 같기 때문에 닫을 수 없다’고 답합니다. 이 사람들은 우간다에 소풍을 오는 것도, 휴가를 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의 나라에서 박해당하기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많은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은 유럽의 일부를 보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 우간다 재난 대비·난민부 부장관, 무사 에크웨루

(p.69-70)

 

 완벽하지는 않지만 우간다와 탄자니아의 열린 국경 정책,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 안에 형성된 수많은 지역 공동체처럼 나름의 방법으로 국경 넘어서기를 실천해 왔다. 같은 시기 한국과 다른 선진국들은 더욱 좁은 세계에 스스로를 가둔 것만 같다. 저출생으로 인구가 줄어들면 ‘국가 경쟁력’이 떨어질 것을 걱정하고, 교육, 관광, 제조업 등 모든 분야에서 국제화를 해야 한다고 외치지만 정작 이주자가 우리 사회에 들어오는 것은 반기지 않았다.
 특히 남반구 국가 출신은 한국 정부가 외국인의 영역으로 정해 놓은 틀에 맞는 사람만이 이주를 허락받을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이 하지 않으려는 일자리에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거나(외국인 노동자), 한국 사람과 결혼을 하거나(결혼 이민자), 외국에서 한국 정부 기관의 일을 도운(아프가니스탄 특별 기여자) 사람이어야 ‘재한외국인’이 되어 한국에서 오래 머물며 살아갈 수 있다. 이렇게 이주자에 대해 조건과 장벽을 만드는 방식은 이주자는 영영 이주자로 남긴 채 사람들의 편견을 강화해 이주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강화하는 악순환을 일으킬 것이다.
 남반구에 더 많은 이주자와 난민이 있지만 그동안 우리는 남반구에서 일어나는 이주와 난민에 대해선 무지했다. 북반구 중심의 세계화를 좇아 왔지만, 이 세계화의 이면에는 난민에 대한 자국의 책임 그 이상을 져온 남반구 국가들이 있고 이주 과정에서 수많은 차별을 겪어야 했던 사람들이 있다. 이주위기가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된 지금, 우리가 먼저 할 일은 이주위기의 최전선을 찾는 것이다. 아프리카가 시도하고 있는 국경을 넘어선 연대에 함께하며 그들의 경험과 새로운 패러다임을 배워야 할 때이다. (p.74-75)

 

 케냐에서는 일회용 비닐봉지를 쓸 수 없다. 2017년 케냐 환경부 장관이 일회용 비닐봉지의 생산, 판매, 사용을 금지하는 시행령을 발표함에 따라 일회용 비닐봉지의 국내 사용이 전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중대형 슈퍼마켓에서만 비닐봉지 사용이 금지되어 있지만 케냐에서는 비닐봉지를 수입하고, 제조하고, 판매하고, 들고 다니는 것이 전국에서 불법이다. 케냐 이외에도 현재 약 30개 이상의 아프리카 국가에서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이 금지되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케냐의 비닐봉지 규제는 처벌의 강도가 강해 ‘세계에서 가장 일회용 비닐봉지 규제가 강한 나라’라 불리기도 한다. 이 시행령에 따르면 일회용 비닐봉지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사람들에게는 최대 4년의 징역 혹은 몇 천만 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고, 단순히 일회용 비닐봉지를 가지고 다니기만 한 사람에게도 최소 50만 원가량의 벌금 혹은 1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할 수 있다. 이 법이 있기 전에는 슈퍼마켓에서도 길거리 노점상에서도 일회용 비닐봉지가 널리 쓰이고 아무렇게나 버려졌다. 포장되지 않은 길에는 버려진 비닐봉지가 풀처럼 박혀 있고, 임의로 소각한 비닐봉지의 재가 여기저기 날아다니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비닐봉지가 배수로를 막아 물난리를 일으키기도 하고, 동물이나 해양 생물의 목을 막거나 내장으로 들어가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법령 시행 직전, 케냐 환경관리국이 시행한 조사에 따르면 도시 지역 가축 50%의 내장에서 비닐봉지 조각을 발견했을 정도다.
 처벌이 과하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일회용 비닐봉지 규제 이후, 사람들은 여러 번 쓸 수 있는 부직포 봉투나 종이봉투, 천 가방, 종이상자 등을 활용하며 비닐봉지 없는 삶에 적응해 나갔다. 그 결과 케냐의 길거리는 훨씬 깨끗해졌고, 규제 전 연간 1억 개 정도가 사용되던 비닐봉지는 지금 80% 이상 그 사용량이 줄었다. 케냐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플라스틱 사용을 더 줄이는 방안을 계속해서 만들어 나가고 있다. 2020년 6월부터 국립공원과 해변, 숲, 보전지역에서는 일회용 페트병, 플라스틱 그릇 등 모든 종류의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 사용이 금지되었다. 그리고 일회용 비닐봉지가 금지되면서 부직포 가방의 사용이 늘어났는데, 케냐 정부는 이런 부직포 가방도 너무 얇은 것은 환경에 부정적일 수 있다며 품질 관리를 위한 기준을 준비하고 있다. (p.119-120)

 

 지역 공동체와 생태계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대규모 나무심기는 비용이 많이 들고 잘 관리되지도 않을 뿐더러 환경에 역효과를 낼 수 있다. 1980년대 정부와 유엔식량농업기구는 케냐 서부의 바링고 카운티의 건조 지역을 ‘복원’하기 위해 외래종인 마텡게를 들여와 대규모로 심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초반에 마텡게는 모래바람이 이는 걸 막는 데 도움을 주고, 땔감이나 가축 사료로 유용하게 활용되며 긍정적인 효과를 냈지만, 1990년대 후반 마텡게 씨앗이 무분별하게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외래종인 마텡게를 먹는 야생 동물이 없는 상황에서 마텡게는 여기저기에 엄청난 덩굴을 뻗치며 원래 있던 생태계를 파괴했고, 마텡게의 가시 때문에 가축들은 병들었다.
 케냐를 포함한 아프리카 대륙에는 사막과 건조 지역이 많은데, 사람들은 이 버려진 땅을 고쳐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대규모 나무심기 활동을 하곤 한다. 바링고 카운티에서 일어난 일도 이런 생각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건조지: 역사, 권력, 지식》을 쓴 미국의 지리학자 다이애나 데이비스는 사막화 현상이 과장되었다고 말하며 세계 대다수의 건조 지역은 벌목이나 화재, 과도한 방목으로 사막화가 된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는 사막과 건조 지역이 문제라는 편견은 식민지 시절 식민주의자들이 파괴된 숲과 식민지의 건조 지역을 동일시하고, 생산성을 위해 건조 지역을 ‘복원’하려는 데서 시작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이미 건조 지역에 적응하며 살아가던 사람들의 지식과 경험은 무시되었고, 심지어 벌목이나 방목으로 땅을 망쳐놓았다는 비난까지 받게 되었다. 건조 지역을 복원하겠다고 지역 환경에 대한 진지한 분석 없이 진행되는 관개 사업은 지하수의 염류가 농지 표면까지 올라오는 염류화를 일으키거나 작물의 침수를 일으킬 수 있고, 무분별한 나무심기 사업은 자칫하면 심은 나무가 더 많은 물을 빨아들이면서 주변 땅을 말려버리거나 바링고 카운티에서처럼 기존의 생태계를 파괴할 수도 있다.
 건조 지역은 가치 없는 불모지라는 오래된 편견에서 벗어나 수백 년간 그 땅에 적응하며 살아온 사람과 동식물을 본다면, 그들 삶의 환경을 크게 바꿀지도 모르는 나무심기는 생각만큼 쉬운 실천 방안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동안 많은 국제개발협력 단체와 정부, 사회공헌 활동을 해온 기업들은 엄청나게 많은 나무를 심었고 사막화 방지에 기여했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그 이후 그 나무와 지역이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그중엔 제2의, 제3의 바링고 카운티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p.123-125)

 

 그동안 많은 사람들은 구직을 위해 직업교육을 받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거나 임금 노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을 증명하지 않아도 지원금을 주는 조건 없는 소득 보장제도가 확장되면, 사람들이 일하지 않으려 할 것이고 ‘복지병’에 걸려 나라가 병들 것이라고 말해왔다. 이런 믿음 아래 정부는 일하지 않는 사람들을 취업시키기 위해 구직활동을 증명해야만 지급되는 실업급여와 각종 직업 훈련, 취업 멘토링 프로그램을 끊임없이 만든다. 심지어는 오직 사람들을 취업시키려고 만든 게 아닐까 싶은 임시 일자리를 만들어 사람들을 취업시키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마치 연극을 하듯 취업자의 역할을 맡곤 한다.
 조건 없는 지원이 많아지면 사람들이 나태해지고 지원에 더 의존하게 될 것이란 믿음은 국제개발협력 분야에도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국제개발협력 기관들은 ‘퍼주기’를 피하려고 현금이나 현물 지원보다는 ‘역량강화’라는 이름의 교육 활동을 주로 펼치고, 현금이나 현물 지원을 하더라도 성실하게 교육에 참여하거나 일정 금액의 자기분담금을 낼 것을 조건으로 걸고는 한다. 이와 같은 국제개발협력 분야의 기조는 ‘물고기를 주기보다는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줘야 한다’는 격언으로 대표된다.
 하지만 많은 학자들은 이런 믿음과는 반대되는 연구 결과를 반복해서 내놓고 있다. 2019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아비지트 배너지와 에스테르 뒤플로는 책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에서 미국 워싱턴, 시애틀, 덴버, 알래스카, 체로키 인디언 보호 구역 등에서 진행된 소득 보장 프로그램에 관한 여러 연구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들 연구는 공통적으로 소득 보장 프로그램이 사람들의 노동 성향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음을 결론으로 내놓았다. (p.150-151)

 

 남아시아 국가들의 농촌 경제를 오랫동안 연구한 일본의 경제학자 나카무라 히사시는 사람은 의존할 대상이 충분하지 않을 때 더욱 쉽게 종속되므로, 자립은 결국 잘 의존하는 것이라는 독특한 주장을 내놓았다. 남아공과 한국의 맥락에서 본다면 사회적으로 의지할 곳이 별로 없는 사람들은 의존할 대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위험한 일자리, 건강하지 않은 식단, 사채와 같은 것들에 종속된다. 일을 하는 사람도 일을 하지 않는 사람도 모두 고통받는 일자리위기도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일자리에 종속되며 생긴 위기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소득을 회사나 개인의 선의가 아닌 국가에 의존하게 된다면 일자리위기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지 않을까? 현금 지급을 통해 일자리의 종속에서 해방된 사람들은 자신과 주위를 돌볼 여유를 가질 수도 있고, 더 넓어진 선택지 속에서 사회활동에 나서고 창업하고 일할 수도 있다.
 물론 남아공의 현금 지급 제도는 아직 국내의 심각한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지 못했고, 나미비아의 기본소득 실험은 제대로 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아 얻을 수 있는 교훈이 거의 없다. 하지만 이 실험의 경험과 그들이 추구하는 이상은 탈산업화와 임금노동의 위기를 겪으며 대안을 만들어 나가야 할 우리 모두에게, 특히 한국 사회에 큰 의미를 갖는다. 선진 복지국가나 기본소득과 관련된 논의에서 자주 사례로 언급되는 북유럽의 경우 풍부한 천연자원과 이미 세계적으로 탄탄한 기반을 닦아 놓은 제조업을 동력으로 복지 재원을 충당하고, 높은 수준의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래서 북유럽을 사례로 두고 복지국가 모델을 논하다 보면 복지국가라는 것이 굉장히 어렵고 한국의 현실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느껴진다. 한편, 남아공이나 나미비아의 사례는 ‘이 정도로 효과가 있겠어?’라고 느껴질 정도로 작은 규모지만, 이 현금 지급 제도는 시민의 기본 권리 관점에서 도입되고 확장된 것이라는 점을 특징으로 한다. 대부분의 제도는 나이와 소득 수준처럼 최소한의 조건만을 내걸 뿐, 구직 활동을 하는지 안 하는지, 과거 연금을 원천 징수하는 직장에 다닌 적이 있는지 없는지, 어떤 가족의 형태로 살아가고 있는지는 따지지 않는다. 시민들은 오직 자신의 존재만으로 권리를 누린다. 어린이를 돌보고 있고 노인이고 실업자라면 지급되는 현금은 시민들의 ‘믿는 구석’이 되어 사람들 삶에 꼭 필요한 부분을 채우고 있고, 남아공 사회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보편적 기본소득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 (p.184-185)

 

 일부러 마을 이름을 피한 에볼라와 달리 코로나19 초기, 사람들은 이 새로운 감염병에 첫 확진자가 확인된 중국의 도시 이름을 붙여 불렀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는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 폭력이 줄을 이었다. 해외에서 피해를 입은 한국인들도 많았다. 이와 같은 아시아 혐오는 케냐에서도 있었는데, 아시아인, 특히 중국인에 대한 괴롭힘이나 혐오 발언이 잦아지자 보건부의 무타히 카궤 장관이 케냐 시민들에게 이렇게 호소하기도 했다.

“케냐 사람들, 제발, 제발 친절해집시다. 사람들을 챙깁시다. 우리는 공감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아프리카 사람으로서, 누군가를 차별하거나 막 대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이런 차별을 많이 당해 왔기 때문에, 차별을 정말 잘 이해하잖아요. 이번엔 (차별)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지 맙시다.”


 카궤 장관의 말처럼 특히 전 세계를 위협하는 전염병이 유행할 때 가장 자주, 많이 차별받는 사람들은 아프리카인이었다. 2013-2016년 서아프리카 에볼라 대유행 시기에도 미국에 살던 모든 국적의 아프리카인들은 크고 작은 차별을 겪었다. 단지 국적이 시에라리온이라는 이유로 무급 휴가를 강요당한 사람도 있었고 다른 학부모들이 걱정한다는 이유로 며칠 동안 학교에 오지 말라는 통보를 받은 르완다 출신의 초등학생도 있었다. 에볼라 발병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아프리카 국적의 국제 학생은 지원서를 낼 수 없다고 발표했다가 나중에 사과한 대학도 있었다. (p.233-234)

 

 아프리카에서 최초로 진행된 코로나19 백신 임상 실험을 이끌었던 백신 전문가이자 남아공의 비트바테르스란드 대학교 백신학 교수인 샤비르 마디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오미크론 변이를 처음 발견했다고 발표한 직후 미국과 유럽 등 여러 나라에서 남아프리카 국적 시민들의 입국을 막는 조치를 내린 것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변이종 발견은 어느 정도 변이 바이러스 전파가 이루어져 샘플링 조사 과정에서 드러났을 때 이뤄진다며, 발표한 시점에 변이가 시작된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어 이런 부당한 조치로 인해 남아프리카의 국가 경제와 사람들의 생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나계 철학자 콰메 안토니 아피아는 가디언에 기고한 〈두 범유행 이야기〉에서 선진국에서는 코로나19의 직접 영향을 받은 확진자나 사망자가 중요하겠지만, 개발도상국에서는 코로나19 방역 조치로 인해 영향을 받는 사람들도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코로나19로 사람들이 병원을 찾기 어려워지면서 원래도 많은 사람들을 감염시켰던 말라리아나 결핵 같은 질병을 치료받을 수 없어 고통받고 사망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일자리를 잃거나 길에서 노점을 할 수 없게 되어 수입이 줄어든 가족도 많다고 말했다. 아피아는 코로나19 이야기를 했지만, 코로나19 대신 에볼라를 넣어도 이야기는 똑같이 이어진다. 실제로 2015년 시에라리온의 인구주택총조사 자료를 보면 1만 5,142명의 응답자가 에볼라가 유행하던 때 아팠던 적이 있지만 에볼라 감염이 두려워 병원을 찾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그리고 응답자의 55%가 에볼라로 수입이 줄었다고, 13.6%는 심각하게 줄었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p.236-237)

 

 2022년 1월까지 아프리카 각국이 ‘코백스’, ‘아프리카 백신 확보 태스크팀’, 그리고 국가별 협상을 통해 확보한 백신의 수는 4억 9,000회분에 달하지만, 이중 65%만이 실제 접종으로 이어졌다. 접종 완료율이 40%를 넘어선 르완다의 경우에는 보유 백신의 활용률이 75%에 달하지만, 우간다는 백신 활용률이 46%이고, 콩고민주공화국은 27%, 차드는 24%, 부룬디는 1% 등으로 이보다 낮았다.
 하지만 아프리카 국가의 낮은 백신 활용률을 온전히 그 나라 정부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아프리카 국가에 전해지는 다른 나라의 백신 지원은 종종 급하게 이루어질 때가 많다. 백신을 기부하는 측은 자국 백신 재고 상황에 맞춰 지원 시기와 양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아 아프리카 각국 정부는 체계적인 백신 접종 계획을 세우기가 어렵다. 심지어는 유통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백신을 버리듯 지원하기도 하는데, 아스트라제네카의 경우 유통기한이 6개월에 이르는데, 유통기한이 4주에서 6주 정도 남은 백신을 아프리카 국가에 기부하는 식이다. 이런 문제가 반복되자 2021년 12월엔 코백스를 통해 지원될 예정이었던 백신 중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1억 회분을 수혜국이 거절하는 일도 있었다. (p.240-241)

 

 서아프리카의 에볼라 종식 이후는 코로나19 방역 지침이 완화되어가는 지금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다. 코로나19 유행이 정점에 다다랐을 때, 사람들은 ‘포스트 코로나’를 상상하며 노동, 민주주의, 환경, 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변화를 말했다. 어떤 사람은 코로나19로 사람들이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게 되어 삶의 양식이 변할 거라 말하고, 어떤 사람은 ‘메타버스(가상세계)’가 사회 전반으로 확장될 거라 말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자본주의 체제를 근본부터 다시 생각하게 될 거라 말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진자가 줄고 방역지침이 조금씩 완화되는 지금, 우리의 시간은 코로나 이후가 아닌 이전, 그 전과 똑같은 일상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역행하고 있다. 정부는 ‘일상 회복’을 코로나19 정책의 목표로 내놓았고, 사람들은 그동안 참았던 소비와 여행 욕구를 분출하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기후위기나 환경 파괴, 불평등 심화처럼 대규모 감염병 유행을 부추기는 요인은 다시 강화될 것이고, 우리는 곧 또 다른 대규모 감염병을 겪게 될 것이다.
 코로나19는 전무후무한 사례가 아닐 뿐 아니라 오히려 감염병 전성기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에 가깝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은 코로나 이전이 아니라 ‘포스트 코로나’이고, 그 길을 걷는 방법은 서아프리카 에볼라 경험에서, 우리 모두의 코로나19 경험에서 어느 정도 제시되었다. 감염병은 그 시작과 전파 모두가 연결에 관한 것이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창의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질 때 온통 연결된 우리 사회의 면역력은 높아질 수 있다. (p.247-248)

 

 

한국인들의 이상한 행복 / 안톤 숄츠 / 문학수첩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학교 행사에 간 적이 있다. 아이들이 순서대로 앞에 나와 미래에 무엇이 되고 싶은지 발표하는 시간이 됐다. 각자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 대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첫 번째로 나선 아이가 말했다. “저는 의사가 될 거예요.”
 두 번째 아이는 “변호사가 되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다음부터가 문제였다. 마치 선택지가 의사 혹은 변호사밖에 없는 객관식 문제인 양 아이들은 두 직종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한 아이가 “요리사”라고 말했다. 우리 아들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은 정말 변호사나 의사가 되고 싶은 걸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변호사나 의사 같은 사회적으로 그럴싸한 직업을 장래 희망으로 말한 것은 순전히 부모의 생각이 주입된 결과라고밖에 달리 볼 수 없다. 몇 년 전부터 초등학생들의 장래 희망은 좀 더 노골적으로 바뀌었다. ‘천만 유튜버’를 거쳐 ‘건물주’가 되고 싶단다. 여전히 순수한 아이들의 꿈과는 거리가 있다. 정말 아이들은 이런 직업을 원하는 걸까? 꿈꾸는 그 미래를 실현할 수 있을까? (p.30-31)

 

 미국의 소설가 폴 볼스는 모험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미국의 중산층에서 태어난 볼스는 파리를 거쳐 모로코에 정착해서 죽을 때까지 52년을 살았다. 그는 소설 《The Sheltering sky》에서 말했다.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르면서도 삶을 무한한 우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일은 특정한 횟수만큼, 그것도 손에 꼽을 만큼 일어난다. 당신은 어린 시절의 오후를 얼마나 기억하고 있나? 기억에 뚜렷하게 각인되어 그날의 오후가 없었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든 날은 과연 얼마나 있었나? 나흘? 닷새? 어쩌면 이보다 더 적게 기억하고 있을지 모른다. 당신은 앞으로 보름달이 떠오르는 풍경을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기껏 스무 번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도 인생의 모든 것은 여전히 무한하게 보인다.”
 나는 기억나는 오후가 그리 많지 않은 날들보다 아름다운 보름달을 자주 볼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싶었다. 지금도 그러하다. 부지런히 자유로운 삶을 누리고 싶다. 누구든지 죽음 앞에서 인생이란 통장을 열어보게 되면 그동안 미뤄두었던 자유가 얼마나 들어 있는지 알게 된다. 안전한 인생을 사느라 더 이상 쓸모없어진 수많은 선택의 순간은 얼마나 많을까? 모험적인 일상을 살 수 없더라도, 낯선 곳에서 떠오르는 보름달을 최소한 스무 번은 볼 수 있는 여행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p.73-74)

 

 여행이든 인생이든 나를 풍요롭게 하는 것은 결국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얼마나 여유롭게 나눌 수 있느냐 하는 마음가짐이다. 한국의 여행사 사무실 달력 속 사진에서 비롯된 여행 계획을 실현한 나는 미얀마의 만달레이에서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만났다. 길은 금세 진흙탕이 되어버렸다. 신발이 젖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쓸모없게 된 그날, 결코 잊을 수 없는 노인을 길거리에서 만났다.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노인은 나를 보며 빙긋이 웃어주었다. 답례의 의미로 내가 살짝 고개를 숙였는데, 그렇게 절을 하는 서양 사람이 신기해 보였는지 노인이 말을 걸었다.
 “우리나라가 좋아요?”
 “네, 선생님. 미얀마는 멋진 나라입니다.”
 내가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그는 다시 너털웃음을 짓더니 들고 있는 봉투를 나에게 내밀었다. 그러고는 “고마워요”라는 말을 남기고 가던 길을 가버렸다. 호기심에 들여다본 봉투에는 잘 익은 망고가 가득 들어 있었다. 나는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싶은 얼떨떨한 자세로 가만히 서 있었다. 그 시절 나는 돈을 아껴서 여행을 다녀야 하는 가난한 학생이었지만, 그래도 미얀마의 평범한 시민보다 상대적으로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이렇게 받아도 될까, 뒤늦게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보다 더 잘 살고 있고 그들로부터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런 선입견 없이 그들에게 다가간다면 우리를 기다려 온 소중한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다. (p.81-82)

 

 요즘은 외식이 일상이 되었고, 배달 앱을 통해 음식을 주문해 먹는 것도 흔한 일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유행은 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음식과 나의 거리는 너무나 멀어졌고, 심지어 단절되기까지 했다. 배달 앱으로 음식을 소비하는 경우, 전화를 하거나 인사를 나누는 일도 없다 보니 인간적인 소통까지 사라졌다. 내가 먹을 음식을 배달해 주는 사람과도 대면하지 않는다.
 마술처럼 문 앞에 놓여 있는 음식, 음식을 만드는 것과 소비하는 것 사이에 어떤 유대감도 남아 있지 않는 음식에 어떤 이야기를 빚어 넣을 수 있을까? 내게 마법처럼 나타난 이 음식은 먹거리에 대한 존중도, 감사도 담지 못하는 흑마법의 결과일 뿐이다.
 더구나 한국 음식은 해가 거듭될수록 특별한 감각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맛과 향이 너무도 자극적이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에 비하면 음식점 내부는 훨씬 화려하고 세련돼졌다. 음식에 맞춰 조명과 테이블의 연출도 미각을 깨우고 근사한 분위기에 젖게 한다. 하지만 음식의 맛과 질이 그만큼 좋아졌는지는 의문이다. 좋은 재료로 오랜 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들던 식당들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p.102)

 

 집 안에 어스름이 깔릴 때쯤 재즈 음악이 들리고 와인 한 잔 따르는 소리가 들리면 내가 요리할 시간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장을 봐둔 재료들을 다듬고 프라이팬에 불을 올리면 나도 모르게 몸에 활력이 솟는다. 가족들과 함께 먹을 요리를 만드는 동안 오늘 하루 쌓였던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기분이다. 요리책을 사서 본 적도, 요리 학원을 다녀본 적도 없지만 오랫동안 요리하면서 알게 모르게 내 요리 실력은 발전했을 거라 생각한다. 자주 장을 봐서 제철 식재료가 무엇인지, 어떤 것이 잘 익었는지 식재료를 보는 안목도 생겼다.
 내가 머릿속으로 조합해 낸 소스를 만들고 가족들이 맛있어하는 모습만 봐도 행복하다. 후식으로 아이스크림 위에 민트 잎을 올리고 핑크색 후추룰 뿌려 식사를 마무리하면 기분도 상쾌해진다. 아들 역시 나름의 요리법을 한창 개발하고 있다. 요리를 해보고 그 즐거움을 가족들과 함께 나누면 어렵지 않게 행복을 만끽할 수 있다. 요리가 지닌 마법 같은 힘이다. 이렇듯 가족의 특별한 문화가 서로를 더욱 돈독하게 하고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p.107)

 

 한국 사람들은 왜 선택하기를 싫어할까? 조심스레 짐작하건대, 자신의 취향에 대한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어느 타일이 좋은지, 집 안 분위기에 맞춰 벽지는 어느 재질에 무슨 색으로 할지, 조명은 무엇으로 할지 나 자신의 개인적인 취향을 고려한 세세한 선택에 익숙하지 않은 탓이 아닐까?
 몇 년 후 집값이 올라가고 나서 팔 생각이라면 더더욱 개인적인 선택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 미래를 계획하지 않은 공간에 일부러 공을 들이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투자 목적으로 산 아파트에 자신만의 취향을 반영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더구나 많은 것이 기성품처럼 구비된 ‘빌트인’ 아파트라면 선택할 것도 별로 없다. 구조가 같은 옆집과 다른 점은 소파 색깔 정도뿐일지도 모르겠다.
 아주 가끔 지인들의 집을 갈 때가 있다. 자주 있는 편은 아닌데, 가서 놀랄 때가 있다. 옷차림과 차에 굉장히 신경을 쓰는 사람인데, 집 안은 의외로 평범하다. 무색무취의 취향이랄까, 여느 집과 다른 개성이 보이지 않는다. (p.122)

 

 농작물을 심고 가꾸는 것만으로도 자연을 느끼고, 계절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어린 시절 나는 마당이 있고 나무들이 자라는 집에 살았다. 봄이 되어 땅을 뚫고 나오는 새싹에 매년 감탄하고 어느 나무나 꽃이 가장 먼저 자라고 사라지는지 관찰했다. 달팽이들이 서로 싸우는 모습만 봐도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사과나무에 올라가 잘 익은 사과를 따 먹고, 블루베리, 라즈베리 등 나무딸기류 열매를 손에 쥐고 입에 털어 넣었던 기억이 난다.
 작물이 자라고 과실이 익어가고 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눈여겨보는 것만으로도 배울 수 있는 것은 많다. 자연의 순환 속에서 따뜻함과 희망이란 단어를 느낄 수도 있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과 가깝게 지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요즘 도시 속에 사는 아이들은 다르다. 공원에 나가 나무를 만지려고 해도, 돌멩이를 쥐어보려 해도, 잔디밭에 누우려고 해도 부모들에게 제지받는다. “지지”라는 말과 함께. 고양이를 만져도 “지지”, 강아지를 만져도 “지지”, 자연은 위생적으로 더러운 것, 위험한 것이 되고 만다.
 자연은 왠지 나와 대립되는 것, 조심해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무의식 속에 심어진다. 그러면서 자연을 보호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는다. 뭔가 모순되지 않는가? 무의식은 때론 의식보다 강렬하게 작용할 수 있다. (p.126-127)

 

 모든 것을 누리고 살 수는 없다. 행복은 때로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주말이 되면 교외로 향한다. 자연을 보러 가는 것이다. 하지만 주말에 잠깐 보는 자연은 함께 살아가는 자연과는 다르다. 늘 곁에 두고 바라보고 함께하는 일상의 존재가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방문객이 되는 관계에 가깝다. 나무와 텃밭이 있는 집에는 벌레도 자주 드나들고 새들도 들어온다. 탐스러운 블루베리를 절반이나 먹어 치우고 무화과까지 탐을 내는 욕심쟁이 직박구리 손님도 있다. 지난해 왔던 새 부부가 새끼와 함께 다시 찾아온 적도 있다. 아파트에 살 때 이런 이웃들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자연이라는 이웃은 큰 의미의 가족이다. 함께 살아가니 가족이 맞다. 자연과의 관계가 이러한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마음으로 주고받는 것, 서로를 배려하는 연습을 자연 속에서 배울 수 있다. 마당은 분명 사람다운 사람을 키우는 스승이다. (p.129)

 

 “아빠, 요즘 친구들 중에 1학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애들이 많아.”
 “왜? 그때가 행복했대?”
 “아니, 그게 아니라 그때로 돌아가면 비트코인을 엄청 살 수 있으니까. 1학년 땐 비트코인이 백만 원이었는데, 지금은 4천만 원까지 올랐다고, 돈을 40배나 많이 벌 수 있잖아!”
 “뭐어, 진짜야?”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아들이 들려준 이야기다. 아이들까지 돈의 힘에 눌려버린 한국 사회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다. 아이들의 동심은 누가 훔쳐간 것일까?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이 사회가 과연 어떤 교육을 하고 있는지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의 중요성은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다. 비단 한국에서만 중요시하는 주제도 아니다. 헌데 ‘중요성’에 대한 개념이 한국에서는 다른 것 같다. 교육의 가치, 교육의 질보다 교육의 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좋은 교육을 받게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질 높은 교육을 더 많이 시켜야 한다는 양육자들의 강박이 반영된다. 다만 교육의 범위는 정보, 지식, 기능에 국한되어 있다. 이러한 교육이 아이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들뿐인가?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부모 역시 부단히 노력한다. 열심히 일해서 교육비를 지불하는 것은 기본이고, 어느 시기에 어느 교육을 배정하고 투입해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부모가 세운 설계도에는 자녀가 대학에 입학하고, 심지어 취업할 때까지 그의 일정이 빼곡하게 잡혀 있다.
 한국에서는 모두가 교육을 위해 힘쓴다. 모두가 비슷한 목표를 향해 전력을 다해 자신의 삶과 시간을 쏟아붓는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비슷한 틀 안에서 연마된 사람들. 이제 한국에는 고학력의 머리 좋은 전문가들이 가득하다. (p.146-147)

 

 한국의 아이들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무엇인가를 배우고 익히는 일이 그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길 바란다. 친구들, 선생님과 사랑하는 마음을 나누길 바란다.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식 날이 기억난다. 한곳에 모인 여덟 살배기들이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는지 모른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닌 지 2년 정도 되었을 무렵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어야 할 아이들이 스트레스 완화를 위해 심리 치료를 받고 약을 복용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의 긴 교육 과정을 염두에 두고 보면 초등학교 3학년은 그 긴 여정에 이제 겨우 발을 들여놓은 단계일 뿐이다. 아직 중학교, 고등학교의 본격적인 입시 스트레스는 닥치지도 않았다. 과연 그 아이들이 한국 사회 안에서 제도권과 사교육의 교육 과정을 착실하게 밟아나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p.150)

 

 부모들의 왜곡된 교육열을 보고 있으면 미국의 코미디언이자 거침없는 사회 비평가인 조지 칼린의 독설이 떠오른다. 그가 어느 강연에서 한 말인데 내 귀에 박힌 문장들을 옮기자면 이렇다.
 “나는 오늘 지난 30~40년 동안 이 나라를 지배해 온 특별한 종류의 헛소리를 언급하고 싶다. 무엇인고 하니, 지나친 헌신으로 ‘아동 숭배’라고 할 수밖에 없는 헛소리다. 요즘 전문직 부모라는 인간들 중에는 자녀의 일정을 관리하고 강박적으로 기저귀 냄새를 맡으며 자녀의 어린 시절을 훔치고 있는 자들이 있다.”
 “심지어 유치원 입학시험이 있는 곳도 있다. 불쌍한 어린 것들! ‘자기 성기가 어디 있는지도 모를’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성공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건 정말 정교한 형태의 아동학대 아닌가?”
 자녀에게 이 같은 교육을 시키려는 부모는 항변한다. 이 모두가 아이를 위한 거라고. 하지만 과연 그게 전부일까? 준비된 사회인이 되어 부유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게 하려는 마음도 있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부모로서 자신의 자존심도 작동하고 있다. 숱한 부모들에게 “우리 딸 이번에 ◯◯대학에 들어갔어”, “우리 아들 수학 경시대회에서 우승했어”와 같은 자랑을 듣는다. 아이의 메달이 곧 부모의 메달이 되고, 이는 곧 자식을 잘 키운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아이의 성공이 곧 자신의 성공이라는 등식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p.150-151)

 

 부산의 해운대구에 살고 있는 미국인 친구가 나에게 하소연하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친구의 자녀들은 미국으로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유학을 대비하기 위해 전문 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학원 원장이 돈을 좀 준비해 주면 자원봉사나 인턴 경력을 증명하는 서류를 만들어 주겠다며 그것만 있으면 미국의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돈으로 가짜 증명서를 만들어 주겠다는 거래를 제안한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친구는 황당하기도 하고 화가 나서 혼잣말하듯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도대체 우리 아이들한테 뭘 가르치는 거야!”
 허위 이력서, 가짜 증명서 등은 심심찮게 등장하는 뉴스거리들이다. 한국의 도처에서 이런 노골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건 무얼 의미할까? 남을 이기기 위해 거리낌 없이 거짓을 꾸미고 거짓말을 해서라도 이기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사고방식이 굳어지면, 교육마저 돈으로 거래하고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 과연 타인을 돕고 배려하는 도덕적인 행동을 실천할 수 있을까? 그런 사람들에게 권력이 주어지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한국의 비정상적인 교육 제도는 결국 괴물들을 키우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p.172-173)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바뀔 수 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떤 시스템이든 고정불변의 것은 없고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질 것이라고 믿지만, 가까운 미래에 한국의 교육이 얼마나 바뀔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말했듯이 한국의 교육 산업에는 많은 사람들이 연결되어 있다. 시스템을 위해 많은 돈을 투자한 사람들도 있고, 생업으로 깊이 관여되어 있는 사람들의 규모도 만만치 않다. 누군가 이 시스템을 단박에 바꾸려고 한다면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많은 사람들이 반발하고 싸우려 할 것이다.
 사람들은 교육의 맹점과 폐해를 지적하면 인정한다. “그래, 맞아. 그건 잘못됐어.”
 하지만 교육 시스템을 바꾸자고 하면 말이 달라진다. 여러 말들이 있지만 속내는 결국 한 곳으로 모인다. “바뀌더라도 내 아이가 지금까지 한 건 인정받아야 돼. 내 아이가 일단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바꾸자. 지금까지 투자한 걸 손해 볼 순 없어.”
 이런 태도는 님비 현상과 비슷하다. 녹색에너지는 좋아하지만 우리 집 근처에 풍력발전소가 세워지는 건 반대하고, 외국 노동자들이 필요한 것은 알겠지만 우리 동네를 돌아다니는 건 싫고, 장애인들을 차별해서는 안 되지만 근처에 장애인 학교가 들어서는 건 내키지 않는 것과 같다. 한국의 교육 제도에는 문제가 있지만 내 아이가 그 제도로 인한 혜택을 받고 있다면 되도록 그 체제가 유지되길 바라는 것이다.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바꾸지 않는 것, 이런 자세 때문에 변화는 더디다. 덕분에 시스템은 꿈쩍 않고 유지된다. (p.177-178)

 

 미국에서도 데릴 데이비스라는 흑인 가수가 백인우월주의 집단인 ‘KKK’와 친구가 된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다큐멘터리로도 만들어졌는데 그는 어린 시절 이유 없이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백인을 보며 ‘나를 잘 모르는데 왜 싫어하지?’라는 의문을 품었다고 한다.
 그는 답을 찾고 싶었고 KKK의 조직원들을 만나러 다녔다. 당연히 그들은 만나주지 않았다. 협박 전화나 메시지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그는 계속했고 만나는 조직원들과 논쟁을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주장만을 펼치지 않았고 그들의 얘기도 주의 깊게 들었다. 말싸움으로 토라진 채 헤어져도 며칠이 지나 다시 연락해서 만나기를 반복했다. 시위를 조직하는 데 문제가 생겼다고 하자 도와주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가 만났던 사람들은 하나둘 KKK를 탈퇴하기 시작했다.
 그는 상대를 바꾸려는 목적으로 찾아가지 않았다. 자신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대화는 결국 사람을 바꾼다. “저런 인간들은 죄다 감빵에 처넣어야 돼”라는 말만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갈등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p.183-184)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학생들에게 일부러 논쟁적인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독도는 한국 땅인가요? 아니면 일본 땅인가요?”
 학생들은 1초도 안 돼 들고 일어났다.
 “당연히 한국 땅이지요!”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을 했다.
 “왜 그런가요?”
 헌데 학생들의 대답은 초라했다. 그저 “원래부터 한국 땅이었어요”, “티브이에서 봤어요”, “역사학자들이 그렇게 말했어요”라고 답할 뿐이었다.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를 전혀 대지 못한 것이다. 내가 “일본이 그런 주장을 할 때는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라고 물었을 때는 아무 답도 듣지 못했다.
 뉴스나 유튜브에서 나온 이야기, 누군가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앵무새처럼 반복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생각을 담은 주장이 아니다. 그저 남의 말을 옮기는 것이다. 스스로 깊이 들여다보고 몰두해서 얻은 해답에는 언제나 나름의 근거가 있기 마련이지만 그런 ‘복사해서 붙이기’식의 말에는 자신만의 목소리가 담겨 있지 않다. 이런 사람들은 포퓰리즘의 표적이 되기 쉽다. 결국 말로써 대중을 조종하고 선동하는 사람들에게 ‘내 생각’의 자리를 내줘버리고 만다.
 한 사회의 이슈 혹은 담론이 그런 선동가들에게 넘어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선동가들이 판치는 세상에선 갈등이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사람 사이의 구멍만 깊어지고 싸움만 잦아진다. 지난 역사가 깨우쳐 준 교훈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언제나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생각이라도 거부당하지 않아야 한다. 생각이 다른 친구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 토론하는 힘을 기르는 교육은 우리 아이들을 잠재적인 선동가들, 잠재적인 독재자들로부터 보호하는 길이기도 하다. 토론 교육을 통해 아이들은 악질적인 가짜 뉴스에 휘둘리지 않고 불필요한 트렌드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p.185-186)

 

 어린 시절일지라도 지나친 개입은 스스로 살아갈 자립심을 기르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미 새는 새끼들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지만 대신 날아줄 수는 없다. 날개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어야 하고 스스로 날 수 있을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려야 한다. 아기 새는 제대로 날 수 있을 때까지 몇 번의 충돌을 경험할 것이고, 그때마다 아프고 쓰라릴 것이다. 하지만 잘될 때까지 실수하고 실패하는 것이 인생이다. 실패는 삶의 일부이고 가장 강력한 선생님이다.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하는 아빠를 보고 자란 아들은 한때 요리사가 장래 희망이었다. 그 꿈을 펼쳐보고 싶었는지 한번은 부엌에서 채소 자르는 것을 돕다가 셰프용 칼을 사용해 보고 싶다고 했다. 아이가 사용하기에 칼은 굉장히 날카롭고 컸다. 위험하다고 생각했지만 칼을 건넸다.
 나는 두 가지를 생각했다. 아이가 만약 손을 베이거나 다치더라도 병원에 가면 그만이고 생명에 지장을 줄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 경우 아이는 칼을 조심히 다루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반면 성공적으로 채소 자르는 일을 마친다면 아이는 큰 칼을 다뤄봤다는 자신감이 붙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 자신감을 믿어줘야 한다.
 “네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야.”
 아버지는 항상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귀에 익숙한 “남보다 잘해야 돼!”라는 말과는 전혀 다른 의미가 담겨 있다. ‘잘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남보다 잘’이라는 것은 남이 하는 만큼에 따라 내가 하는 것의 가치를 따지게 된다. (p.189-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