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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살리는 옷장 / 박진영, 신하나 / 창비

 

 나는 비건이 되기 전에도 고기는 거의 닭과 해산물만 먹었다. 특별히 신념을 가지고 그랬던 건 아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내가 고기를 그다지 즐기지 않은 데도 심리적인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랐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옆집의 돼지와 우리 집의 오리, 혹은 누구네 집의 개가 도축당하는 걸 종종 볼 수밖에 없었다. 담장 너머 들리던 돼지, 오리, 개의 비명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상 위에 고기가 푸짐하게 올라왔다. 우리 집 식구들은 맛있게 먹었지만, 나는 사 먹는 고기는 먹어도 직접 잡은 고기는 도저히 먹기가 어려웠다. 폴 매카트니가 “도축장에 유리벽이 있다면 모두가 채식주의자가 될 것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동물을 직접 잡아먹는 일이 흔하던 내 어린 시절의 시골 풍경을 돌이켜보면 꼭 그럴 것 같지는 않다. 폭력은 자주 노출될수록 둔감해지기 마련이다. (p.18-19)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소유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또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자체로 귀한 일이기에 그저 예뻐서 사는 것, 정말 가지고 싶은 제품을 순수하게 소장하는 것이 꼭 나쁘고 무가치한 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만약 어떤 것의 가치를 유용한가, 무용한가의 쓸모로만 판단한다면 보석이나 예술 작품 같은 것들은 전부 쓸모없는 것일 테다. 옷뿐만이 아니라 CD와 LP, 예쁜 그릇, 엽서, 자석 등 그동안 그저 좋아서 사 모은 것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그렇게 순수하게 좋아서 모은 많은 물건들이, 딱히 실용적이지는 않다 해도, 사람의 정서를 풍요롭게 한다.
 하지만 어떤 물건들은 가지고 나면 물건의 가격과 상관없이 오히려 마음이 가난해진다. 그 허무한 느낌을 정확히 말로 표현하기는 조금 어렵다. 나에게는 앞서 예로 든 소비가 그랬다. 랑방의 수석 디자이너 알버 엘바즈는 랑방의 부활을 이끈 주역이자 당시 가장 각광받는 디자이너였고, 나 역시도 그를 존경했다. 그의 디자인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다만 나는 그 옷들이 진짜 좋아서 가졌다기보다는 남들이 다 귀하다고 하는 것을 싼값에 소유하고 싶은 욕심으로 손에 넣었던 것 같다. 그 후로도 이렇게 자주 입을 옷이 아니거나 내 취향이 아닌데도 싸고 트렌디하기 때문에 무조건 구입하고 보는 일들이 점점 잦아졌다.
 모든 것을 실용성과 품질로만 판단할 수는 없으며, 싸고 유행하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제품들과 쉽게 사고 버리는 소비 방식이 시장의 주류가 된다면 환경에는 당연히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옷을 부패하기 쉬운 상품으로 취급하는 태도, 잠깐 즐기고 버리기 위해 구입하는 과도한 소비문화와 지속가능하지 않은 생산 방식은 패스트 패션의 등장으로 인해 아주 빠르게 확산하기 시작했다. (p.30-31)

 

 한 벌에 만 원도 안 하는 티셔츠, 3만원 안팎밖에 안 되는 재킷, 5,000원짜리 스카프… 이렇게 옷이 저렴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옷이 너무 싸다 보니 소비자들은 단순히 ‘이렇게 싸게 팔아도 남는 거면 원가는 훨씬 싸겠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스파 브랜드들의 가격의 비밀을 대량생산이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단순히 대량생산을 한다고 해서 원가가 드라마틱하게 내려가는 건 아니다. 파격적인 원가 절감의 비밀은 대량생산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저렴한 소재와 인건비가 낮은 나라로 눈을 돌린 데 있다.
 인건비가 싼 나라에서 제품을 제작하는 것은 원가를 낮추는 손쉬운 방법 중 하나다. 문제는 클라이언트가 공장에 굉장히 많은 양을 발주하면서 상식 밖으로 싼 공임을 제시할 때 그 제안을 거절할 수 있는 공장주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공장들은 일감을 얻기 위해 스스로 몸값을 낮추는 경쟁을 벌인다. 그리고 많은 일감을 싼값에 받아 온 공장주는 조금이라도 더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 노동자를 압박하게 된다.
 스파 브랜드들은 그 ‘착한’ 가격이 디자인, 생산, 유통, 판매의 전과정에 이르는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였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한 장에 겨우 만원밖에 하지 않는 서양의 의류를 만들기 위해 열악한 조건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저개발국가 노동자들의 피와 땀, 그리고 저렴한 임금이 있었다. 이렇듯 싼 물건의 가격에는 언제나 그 가격이 가능하도록 만든 보이지 않는 외부 비용이 결여되어 있다. 오늘날 싼값으로 트렌디한 옷을 즐긴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제공한 값싼 노동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p.35-36)

 

 많은 기업이 저렴한 가격을 원하는 소비자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더 낮은 공임으로 제품을 제작할 수 있는 중국,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으로 생산 공장을 옮겼고, 한국에 있는 공장은 일거리가 없어졌다. 공장주들은 작은 일부터 시작해 그 자리에 가기까지 다양한 기술을 익히고 드디어 전문가가 되었지만, 꿈을 가지고 무리해서 들인 비싼 기계들을 헐값에 처분하고 결국은 문을 닫은 곳이 많다. 어떤 기계들은 더 이상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없어 폐기되거나 외국에 판매되기도 한다. 반면 스파 브랜드의 옷을 주로 만드는 나라에서는 품질이 낮고 만들기 쉬운 의류를 제작하느라 현지에 고급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
 내가 알던 한 신발 공장도 최근에 문을 닫았다. 또 방문할 때마다 사장님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하는 곳들도 있다. 한때는 직원이 많았지만 이제는 정기적으로 임금을 줄 수 없을 뿐더러, 일감이 너무 적어지다 보니 가끔 일이 들어와도 지출을 메꾸기 급급한 경우가 많아 재단사나 다림질 전문가를 부르지 않고 사장님 혼자 모든 일을 한다. 비교적 탄탄한 다른 공장의 사장님도 미래가 걱정되기는 마찬가지다. 공장에 새로 유입되는 젊은 사람은 전혀 없는 한편, 지금 일하고 있는 오래된 기술자들은 나이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막연한 미래가 아니라 코앞에 닥친 걱정이다.
 또다른 공장의 경우는 3~4년 전까지 20년 전 공임과 거의 차이가 없다가 최근에야 겨우 조금 올랐다고 했다. 한국도 기술자들이 가진 실력과 노동량에 비해 공임이 매우 낮은 편이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공장 사장님은 늘 사람 비싸다는 이야기를 한다. 한벌당 공임은 거의 오르지 않았는데 노동자들의 임금은 인상되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어떤 공장을 막론하고 성수기에도 비수기처럼 일이 없는 곳이 많다. 직접 여러 공장에 다니면서 느끼는 바다.
 가끔 마트에서 장을 볼 때면 왜 국내산보다 멀리 외국에서 수입한 농산물이 더 싼지, 한국에도 당근이 많은데 왜 당근을 중국에서 수입해 와야 하는지 순수하게 신기할 때가 있다. 사실 이유야 물론 짐작이 가지만 말이다. 옷도 마찬가지다. 먼 거리를 돌고 돌아 날아온 이 옷이 왜 국내에서 만든 옷보다 훨씬 더 싼 걸까? 정말 기이한 현상이다. (p.39-40)

 

 디자인이든 가격이든 더 매력적인 쪽으로 소비가 이동하는 것은 시장의 자연스러운 생리다. 이런 흐름을 두고 전부 소비자 탓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그랬듯이 많은 이들이 싼값에 물건을 살 수 있는 것을 하나의 혜택이자 소비자의 권리라고 여긴다. 그런데 모든 사람은 소비자이기 전에 한 분야의 생산자이기도 하다. 자기 노동의 값어치를 싸게 매기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소품종 소량생산으로 컬렉션을 꾸려나가는 작은 업체들에 로컬의 건강하고 풍부한 환경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장 사장님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한국에 있는 공장들과 기술자들이 모두 사라진다면, 사라지는 것은 결코 공장 하나만이 아닐 것이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작은 브랜드들은 소규모 공장들 없이 홀로 존재하기 어렵고, 그런 브랜드들이 없다면 자신만의 취향과 수준 높은 안목으로 물건을 선정해 파는 작은 편집 숍들 역시 다양하게 존재하기 힘들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선택지도 줄어든다.
 H&M이나 자라 같은 거대 스파 브랜드들은 처음에는 얼핏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나도 훌륭한 디자인, 훌륭한 문화를 싼값에 누릴 수 있는 평등한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열악한 환경에서 제품을 만들며 낮게 책정되는 노동의 가치 때문에 한편으로는 모두가 손해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생각은 내가 로컬에 더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p.41-42)

 

 산업의 규모가 큰 만큼 패션이 지구온난화에 끼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패션 산업은 작물 재배, 동물 사육, 제조, 염색, 봉제, 운송, 판매 등 전반적인 과정에서 많은 탄소발자국을 남긴다. 연간 전세계 탄소 배출량의 10퍼센트를 패션 산업이 차지하는데 이는 모든 국제항공 및 해상운송을 합친 것보다 많은 양이다.
 물 소비의 측면에서 보면 패션은 전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산업이다. 면은 티셔츠, 청바지, 셔츠 등에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소재인데, 면화는 재배부터 아주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하다. 1킬로그램의 면을 생산하는 데는 약 2만 리터 정도의 물이 사용된다. 면 셔츠 한 장을 만드는 데는 약 2,650리터의 물이 필요하다. 하루에 물을 여덟 잔 마신다고 가정할 때 한 사람이 3년 6개월 동안 마실 수 있는 물의 양과 비슷하다고 한다. 또 청바지 한 벌을 만들기 위해서는 약 7,580리터의 물이 필요한데 이는 한 사람이 10년 동안 마시는 물의 양이다.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아랄해는 한때 아시아에서 네 번째로 큰 호수였다. 그러나 목화 생산을 위해 이 호수의 물을 사용한 지 50년이 지난 지금은 거의 말라 기존 크기의 10분의 1 정도만 남아있다.
 물 사용만큼이나 수질오염 문제도 심각하다. 원단의 표백과 염색에는 많은 화학물질이 쓰인다. 이 공정을 거친 후 남은 물을 도랑, 개울, 강 등으로 버리면서 엄청난 수질오염을 일으킨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수질오염의 17~20퍼센트는 원단 표백이나 염색이 원인이라고 한다.
 패스트 패션이 발전함에 따라 아크릴, 나일론, 폴리에스터 등 저렴한 합성섬유의 수요가 크게 증가했고, 현재 전체 의류의 약 60퍼센트가 합성섬유로 만든 제품들이다. 합성섬유 중 가장 흔하게 쓰이는 폴리에스터는 생산 과정에서 면화보다 물은 적게 사용하는 반면, 화석연료를 원료로 하기 때문에 2~3배 이상의 탄소를 배출시킨다. 면 티셔츠 한 장의 탄소 배출량이 2.1킬로그램이라면 폴리에스터 티셔츠 한장이 내뿜는 탄소 배출량은 5.5킬로그램으로 추정된다.
 생산 과정뿐만 아니라 세탁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합성섬유로 만든 의류를 세탁함으로써 매년 50만 톤의 미세플라스틱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는데, 이는 생수병 500억 개와 맞먹는 양이다. 세계자연보전연맹은 2017년 보고서에서 바다로 흘러가는 미세플라스틱의 35퍼센트가 합성섬유의 세탁으로 인한 것이라고 추산했다. (p.51-52)

 

 패스트 패션 및 패션 산업의 환경오염과 인권침해를 다룬 「더 트루 코스트」(The True Cost, 2015)라는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직업에 종사하는 인류의 6분의 1이 어떤 형태로든 패션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패션 산업은 엄청난 규모의 산업이다. 세계 패션 시장의 가치는 3조 달러(약 3,690조 원)에 달하며, 이는 세계 GDP의 약 2퍼센트에 해당한다. 패스트 패션으로 인해 패션 산업이 어마어마하게 성장하며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했지만 빠른 성장 뒤에는 언제나 크고 작은 문제들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패스트 패션은 빠른 성장에만 초점을 맞추며 소비를 조장하고 그 뒤에 따라오는 문제들을 더욱 가속시켰다. 그리고 이제는 그 문제들이 켜켜이 쌓여 쉽게 건드릴 수 없는 거대한 산이 되었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쓰레기다. 쉽게 구입하고 쉽게 버려지는 저가 의류 쓰레기는 지구의 골칫거리다. 글로벌 패션 어젠다의 2017년 보고에 따르면 전세계 의류 소비량은 연간 약 6,200만 톤으로 증가했으며 2030년에는 1억 200만 톤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5,000억 장 이상의 티셔츠가 더 추가되는 것과 같은 수치다. 패스트 패션의 옷은 판매된 후 1년 이내에 50퍼센트가 매립되거나 소각된다.
 과잉 생산은 패스트 패션 브랜드만의 문제는 아니다. 2018년 버버리가 전년도에 팔리지 않은 2,860만 파운드(약 415억 원) 상당의 재고를 소각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버버리는 더이상 재고를 소각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지만, 많은 명품 브랜드들이 재고를 주로 소각하는 쪽을 택한다. 싸게 판매해서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는 것보다 태워버리는 게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하는 데 훨씬 낫기 때문이다.
 어떤 나라보다 유행에 민감한 한국도 의류 쓰레기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환경부 자원순환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17년에 일평균 224톤이었던 폐섬유류 규모가 2018년에는 1,239톤으로 5.5배 이상 급격히 늘어났고, 그중 67톤 정도가 매일 소각된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패션 산업이 유발하는 환경 유해성에 대한 별다른 기준이 없어 규제가 어렵다. (p.58-60)

 

 하지만 모피에 대한 이미지는 점점 나빠지고 있다. 모피가 더이상 멋있지 않게 된 것은 흔해져서라기보다는 페타(PETA), 퍼 프리 얼라이언스(Fur Free Alliance), 휴메인 소사이어티(Humane Society) 같은 동물권 단체들의 노력 덕분이다.
 특히 페타는 패션쇼마다 훼방을 놓으며 모피의 잔혹함에 대해 꾸준히 알렸다. 페타는 특정 디자이너를 타깃으로 정하고 압력을 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례로 마이클 코어스는 더 이상 모피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2017년 겨울 이전 약 1년간 페타의 운동을 지지하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15만 통 이상의 항의 이메일을 받았다. 2018년 모피 사용을 중단하겠다고 한 버버리의 발표 뒤에도 페타가 10년 넘게 이어온 캠페인이 있었다. 페타는 2007년 버버리 연례 주주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회사의 주주가 되기까지 했다. (p.89)

 

 실제로 가짜 모피는 분해되기까지 수백 년이 걸리는 아크릴이나 나일론, 폴리에스터와 같은 플라스틱 섬유로 만들어지며 오염물질을 남긴다.
 하지만 동물의 모피 역시 천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화학 처리를 거친 소재다. 죽은 동물의 피부는 바로 부패가 시작되기 때문에 절대 그대로 쓸 수 없다. 따라서 부패하지 않고 소재로 사용할 수 있도록 피부에 화학 처리를 해야 하는데, 이때 쓰이는 주요 물질인 폼알데하이드와 크롬은 백혈병과 암을 유발하는 위험물질이다.
 에너지 측면에서 봐도 모피는 전혀 친환경적이라고 할 수 없다. 인조모피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석유와 에너지, 생분해되지 않는 소재로 인해 발생하는 많은 환경적 비용에도 불구하고, 동물성 모피를 만드는 데 드는 에너지는 인조모피의 약 15배나 되기 때문이다. 공장식 축산업 시스템을 떠올리면 이해가 빠르다. 모피 생산은 땅을 개간하고 동물을 사육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모피 농장들은 식용 가축 농장들과 마찬가지로 환경과 동물을 고려하기보다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는데, 오늘날 전체 모피 중 80~85퍼센트 정도가 공장식 농장에서 생산된다.
 밍크는 자연 수명이 10년 정도지만 오직 소재로 만들기 위해 태어난 지 약 6개월 만에 죽임을 당한다. 1킬로그램의 밍크 퍼를 만들기 위해서는 열한 마리 이상의 밍크가 필요하고, 밍크 한 마리는 살아 있는 동안 약 50킬로그램의 사료를 먹는다. 모피 1킬로그램당 약 550킬로그램 이상의 사료가 필요한 셈이다. 밍크 사료의 주재료는 닭과 어류다. 그렇기 때문에 다량의 사료 사용은 해양동물의 개체 수를 위협하기도 한다. 그밖에 방충, 사료 운반, 배설물 운반, 시설 유지, 항생제, 도살, 세척, 가공, 농장에서 제조 업체와 공장으로 운반할 때 필요한 에너지, 냉장 보관하는 데 드는 에너지 등을 고려할 때, 환경에 끼치는 영향 또한 인조모피 제작에 비해 10배 정도 높다고 예측된다. 이 모든 시스템이 화석연료에 의존하기는 마찬가지다. 만약 밍크코트의 수명이 인조모피 코트의 5배라고 가정하더라도, 밍크코트 한 벌이 끼치는 환경적 영향은 인조 코트보다 최소 3배가 높다. (p.93-95)

 

 앞서 이야기했듯이 동물의 피부는 자연 상태 그대로는 절대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소재로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화학 처리를 해야 한다. 가죽을 만들 때는 태닝(tanning, 무두질)이라는 공정을 거친다. 동물의 피부에서 살, 지방, 털을 제거하고, 가죽에 유연성과 내구성을 더하고, 쉽게 부패하지 않도록 화학 처리를 하고 다듬는 공정이다. 이 과정에서 가죽도 모피처럼 크롬, 납, 비소, 코발트, 아연 등의 독성 화학물질을 사용한다. 제혁 산업에서 가장 위험한 부분은 크롬을 다루는 것이다. 크롬은 인간에게 흡수되는 방법에 따라 폐암, 비강암, 천식, 기관지염, 후두염, 호흡기 질환, 피부염 등 무수히 많은 질병을 일으킨다. 동물 가죽에 식물성 물질로 태닝을 한 베지터블 가죽이라는 것도 있지만, 전체 가죽의 85퍼센트는 크롬 태닝을 한다.
 이러한 위험성 때문에 유럽의 많은 국가들과 미국은 가죽 가공을 점차 중단하는 추세다. 현재 태닝은 대부분 중국이나 인도, 방글라데시와 같은 저개발국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나라에서 태닝을 할 때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이 나라들은 노동과 환경에 대한 기준이 매우 느슨하고, 오염물질을 처리할 자본과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재 크롬은 첨단기술을 적용한다면 회수하여 재사용하는 방식으로 오염을 94퍼센트까지 감소시킬 수 있지만(오염물질을 완전히 회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개발국가에는 이와 같은 시설이 거의 없다. (p.105-106)

 

 흔히 모피나 가죽은 동물을 죽여서 소재로 만들지만, 계속 자라나는 양털은 그저 깎을 뿐이고 양은 스스로 털갈이를 하지 못하니 양털을 사용하는 것은 양과 인간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동물은 자연환경에 맞게 진화하고, 야생에서 살아가는 양은 추위와 더위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적절한 양의 털을 가지고 있으며, 스스로 털갈이를 한다. 우리가 아는 스스로 털갈이를 하지 못하는 양은 울을 생산하기 위해 개량된 품종이다. 특히 ‘메리노 울’로 알려진 ‘메리노’라는 품종은 피부를 쭈글쭈글하게 만들어 더 많은 면적의 양모를 얻기 위해 개량된 품종으로, 메리노 울의 75퍼센트가 호주에서 나온다.
 메리노 양은 쭈글쭈글한 피부와 빽빽한 털 때문에 피부 통풍이 잘 안 된다. 그래서 파리가 그 축축한 피부의 틈에 알을 까 구더기가 생기는 경우가 흔하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어린 양들은 배설물이 잘 묻는 항문 주위의 피부를 도려내는 뮬싱(mulesing)이라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 일은 마취 없이 행해지고 사후 치료 과정도 없다. 또 노동자들은 보통 정해진 시간 안에 수확한 양털의 무게로 임금을 받기 때문에 양을 함부로 다루어 털을 깎는 과정에서 양이 다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뉴질랜드에서는 전 세계 최초로 2021년부터 뮬싱을 법으로 금지했지만, 전체 울 생산량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울 생산 1위 국가인 호주에는 아직 뮬싱을 제재할 수 있는 관련 법이 없다. 그래서 뮬싱의 잔혹함에 반대하는 일부 브랜드들은 호주 울을 사용하지 않거나 뮬싱 프리 양모로 제품을 만든다. (p.121-122)

 

 친환경 소재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폐페트병이나 폐어망 등을 재활용한 폴리에스터, 나일론은 시중에서 구매가 가능해졌고, 꽃이나 오렌지 같은 과일 껍질 등으로 만든 식물성 원사는 개발 중에 있다. 선인장, 망고, 와인, 사과, 파인애플, 옥수수, 버섯, 한지, 코르크, 꽃으로 만든 가죽 등 식물 기반의 가죽 대체 소재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식물 기반 대체 가죽은 대부분 독성 유해물질이 들어가지 않고, 재생하는 잎만을 사용해 제작하거나 과일 껍질 등 다른 산업에서 남은 폐기물을 사용해 순환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어 더욱 기대감이 높다.
 버려질 위기에 처한 재고 원단이나, 낙하산과 포장 덮개 등 이미 다른 산업에서 쓰였던 소재, 버려진 옷으로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업사이클링 브랜드도 늘고 있다. 재고 원단을 사용하는 것이나 업사이클링은 이미 생산된 소재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새 제품을 만드는 것보다는 에너지가 훨씬 적게 들어간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을 그저 트렌드로 이용하는 ‘그린 워싱’에 대한 우려 또한 만만치 않다. 플라스틱 중에서도 최악의 플라스틱인 PVC 소재를 지속가능한 에코 가죽으로 둔갑시켜 판매하거나, 현재 기술로 재활용이 불가능한 혼방 소재에 재활용 가능 표기를 해서 판매하는 경우도 있는가 하면, 기업이 발생시키는 커다란 문제는 감추거나 축소하고 일부 사용하는 친환경 소재의 장점만을 부각해 친환경 기업인 척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지속가능성을 위한 다양한 시도와 노력은 매우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에코’라는 이름하에 무분별한 과잉 생산을 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문제는 너무 많이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p.137-138)

 

 이렇게 우리가 세운 원칙 안에서 주어진 겨우 몇 가지의 선택지 중 가장 나은 선택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매번 새로운 대안을 찾아가며 회사를 운영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우리의 원칙이 완벽하다고 볼 수도 없고, 저마다 우선하는 가치에 따라 회사를 운영하는 방식은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건 우리가 경험을 통해 배운 가장 소중한 사실 하나는 아주 작은 실천이라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늘 낫다는 점이다.
 우리도 처음에는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바꿀 수 있는 힘도 결국에는 이러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다고 일단은 결론 내렸다.
 브랜드를 시작한 지 4년이 지나 되돌아보니 얼마 안 되는 그 짧은 기간 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다. 몇 년 사이 동물성 소재를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친환경 소재가 출시되었고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소재도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 친환경 포장재도 마찬가지다. 아직 그 수가 많지는 않지만 시장이 변화하는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체감한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의식 있는 패션, 지속가능한 패션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 패션 브랜드들은 앞다투어 앞으로 환경을 위해 회사의 시스템을 어떻게 바꾸어나갈 것인지 자신들의 비전을 소비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어느 날 갑자기 깨우친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전에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움직여온 사람들로부터 이어진 것이다.
 ‘지속가능한 패션’이라는 개념도 생소했던 척박한 땅 위에서 조금이라도 더 환경친화적인 제품을 내놓고자 고군분투하며 길을 닦고 목소리를 높인 사람들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왔다. 비록 당시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더라도,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있다, 없다’의 차이는 ‘크다, 작다’의 차이보다도 훨씬 크다. 존재는 인식이 생겨나는 씨앗이기 때문이다. 작든 크든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인 우리 개개인이 가지고 있다. (p.149-151)

 

 하지만 이러한 불합리함 속에서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죄스러워하는 것은 우리가 가장 예민하게 경계해야 하는 일이다. 죄책감과 절망감을 운동의 동력으로 삼게 되면 어려운 실천을 이어갈수록 스스로 훌륭한 운동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고, 나를 평가하는 버릇은 곧 남에 대한 평가로 이어진다. 실천을 훌륭한 실천과 보잘것없는 실천으로 나누어 가치 있는 실천의 허들을 높이고, 하나라도 실천해보고자 하는 사람들의 기를 미리 꺾어버린다. 이러한 운동은 나와 남 모두를 지치게 만들기 때문에 지속가능하지 않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완벽한 실천을 하는 소수보다 작은 실천을 하는 다수가 세상을 바꾸는 데 더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실천은 특별히 훌륭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누구나 지금 여기, 자기의 삶 속에서 활동가가 될 수 있다. “여기 비건 옵션이 있나요?” “두유로 바꿀 수 있나요?” “오리털이 아닌 건 없나요?”라고 질문을 던지는 것 또한 운동이다. 이 말 한마디는 동물성 재료가 기본값인 시장에 작은 균열을 내는 일이고,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이며, 다른 사람들이 더 쉽게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 (p.155)

 

 

당신은 이렇게 죽을 것이다 / 백승철 / 쌤앤파커스

 

 매장의 경우 국토 잠식, 자연 훼손, 토양 오염 등의 폐해가 발생했습니다. 매장보다는 화장이 친환경적이라고는 하지만 현재 화장장에서 이루어지는 화장의 경우 자동차로 7700킬로미터를 운전하는 것과 같은 에너지를 소비하며 일산화탄소, 다이옥신, 수은 등의 공해 물질을 대기로 방출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매장과 화장으로 인한 환경 문제는 죽음 이후 남겨진 이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자연으로 회귀하려는 소망과 배치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최근 들어 기존 장묘 방식이 불러온 환경 문제를 피하면서 보다 자연 친화적인 여러 장묘 방안이 고안되고 있습니다. 시신을 물과 알칼리성 용액을 섞은 고온 압력 용기 내에서 서서히 용해시켜 분골만 남기는 ‘수분해장’, 풀과 미생물을 활용하여 냄새나 유독성 물질을 발생시키지 않고 시신을 퇴비화하여 자연으로 되돌리는 ‘자연 유기 환원장’ 등은 이미 미국의 몇몇 주에서 합법화되어 시행 중입니다. (p.76-77)

 

 뇌는 혈액 공급이 4~5분만 중단되어도 영구적인 손상을 입게 됩니다. 뇌졸중으로 인한 후유증은 환자는 물론 가족 모두에게 절망감을 줄 수 있습니다. 뇌졸중의 전조 증상이나 징후인 두통, 구토, 어지러움, 반신 마비, 감각 이상, 실어증, 발음 장애, 걸음걸이 이상, 시야 장애 등이 있다면 신속하게 병원 진료를 받고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치료를 받아야 치명적인 뇌졸중을 피하고 영구적인 뇌 손상을 막을 수 있습니다.
 뇌졸중을 예방하기 위해 평소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흡연, 음주, 과로, 스트레스 등의 위험 요소들에 대한 치료나 관리는 매우 중요합니다. (p.104-105)

 

 2020년 기준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15.7퍼센트로 이미 고령 사회로 접어들었고 2025년에는 20.3퍼센트에 이르러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게 될 전망입니다. 반면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해 2020년 기준 0.83명으로 세계 유일의 출산율 0명대 국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추세라면 2025년에는 국민 5명 중 1명이 노인이 되고, 2040년에는 3명 중 1명은 노인인 사회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초고령 사회로 접어들면서 2025년 노인 진료비는 60조 원에 육박하고, 2060년이 되면 337조 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연사는 무의미하고 무분별한 의료 행위로부터 벗어나 어쩌면 남은 세대에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작은 밀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도 있으나 현대 사회에서는 어떻게든 병명을 찾으려 하기에 무병장수라는 말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치료할 수 없을 바에는 구태여 병명을 알 필요 없이 무지병장수 하다가 자연의 부름을 받고 자연사를 택하겠다는 이들의 바람도 존재함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p.145-146)

 

 최근에는 녹색 장묘에 보다 근접한 장묘 방식으로 자연장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자연장은 화장 후 유골의 골분을 생분해 유골함에 담아 수목, 화초, 잔디 등의 밑이나 주변에 묻어 장사하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자연장은 고인의 이름 등을 기록한 표지 외에 일체의 시설물을 설치하지 않아 자신의 흔적을 세상에 남기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시도와 자연 순환에 밑거름이 된다는 녹색 운동의 목적에도 가장 부합하는 장묘 방식일 수 있습니다. 2019년 통계 자료에 따르면 국내의 자연 장지(수목장림)는 총 144개소로 2만 5753건을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이 수치는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존의 자연장도 자연 장지 구입과 관리에 따른 비용이 발생할 수 있고 연고자의 지속적인 관심과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또 다른 형태의 무연고가 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자연장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자연 장지 설치에 대한 조건을 완화해 주거·상업·공업 지역(주거·상업·공업 전용 지역 제외)까지 자연 장지를 허용하는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제도가 실행되면 집 마당의 나무, 화초, 잔디 밑에 생분해되는 용기에 골분을 담아 지면에서 30cm 이상 깊이로 묻고 작은 표식만을 남기는 자연장도 가능하게 되어 자칫 무연고가 될 여지를 크게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p.215-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