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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마이클 샌델 / 와이즈베리

 

 부유함이 지닌 유일한 장점이, 요트나 스포츠카를 사고 환상적인 휴가를 즐길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라면 수입과 부의 불평등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영향력, 좋은 의학치료, 범죄의 온상이 아닌 안전한 이웃에 자리한 주택, 학력 저하를 보이는 학교가 아닌 엘리트 학교 입학 등을 포함해서 돈으로 살 수 있는 대상이 점차 많아지면서 수입과 부의 분배가 점점 커다란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좋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사고파는 세상에서는 돈이 모든 차별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이 빈곤 가정과 중산층 가정에 특히 가혹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동안 빈부 격차가 커졌을 뿐 아니라, 모든 것의 상품화로 인해 돈이 더욱 중요해지면서 불평등 때문에 발생하는 고통이 깊어지고 있다. (p.26)

 

 암표 거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줄서기가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들에게 유리한 차별"이라고 비판한다. 맞는 말이지만, 시장이 돈 많은 사람들을 유리하게 '차별'한다는 말과 같은 맥락에서만 그러하다. 시장이 자발적으로 돈을 지불하려는 마음과 능력을 바탕으로 재화를 분배하듯, 줄서기는 자발적으로 기다리려는 마음과 능력을 바탕으로 재화를 분배한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가격을 지불하려는 마음이, 자발적으로 줄을 서서 기다리려는 마음보다 더 나은 가치 평가 기준이라고 추정할 근거는 없다.
 따라서 줄서기보다 시장논리가 더 낫다는 공리주의자의 입장은 우연에 상당한 지배를 받는다. 그 가치를 가장 높게 평가하는 사람에게 재화를 분배하는 역할은 시장이 수행할 때도 있고 줄서기가 수행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든 시장이 이 역할을 더 잘 수행할지, 줄서기가 더 잘 수행할지는 추상적인 경제적 논리에 따라 미리 결정할 수 없는 경험적 문제다. (p.56-57)

 

 부패라고 하면 흔히들 부정 이득을 연상한다. 하지만 부패는 뇌물이나 불법 거래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어떤 재화나 사회 관행을 부패시키는 행위는 그 평판을 깎아내리는 행위고, 가치를 합당한 수준보다 낮게 평가하는 행위다. 이러한 의미에서 의회 공청회 방청권에 가격을 매기는 것은 일종의 부패다. 의회를 대의정부의 기관이 아니라 하나의 사업체로 생각하고 다루는 셈이기 때문이다. (p.59)

 

 경제학자들은 흔히 시장은 무기력해서 스스로 통제하는 재화에 관여하거나 이를 손상시키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시장은 사회 규범에 흔적을 남긴다. 종종 시장 인센티브는 비시장 인센티브를 잠식하거나 밀어낸다. (p.98)

 

 부유한 국가들이 자국의 환경파괴적인 습관을 바람직하게 바꿔야 할 의무를 돈으로 벗어던질 수 있게 한다면, 자연에 대한 잘못된 태도를 강화시켜서 지불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자연은 쓰레기장이 되어버린다. 대개 경제학자들은 지구 온난화 문제를 해결하려면 올바른 인센티브 제도를 세우고 각 국가가 서명하게 만들면 된다고 예상한다. 하지만 이러한 예상에는 규범이 중요하다는 핵심이 빠져 있다. 기후 변화에 국제적으로 대응하려면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자연계에 대한 새로운 태도, 즉 새로운 환경윤리가 필요할 것이다. 효율성이 어떠하든 국제시장에서 오염배출권이 거래된다면 책임 있는 환경윤리에 필요한 공동 희생정신과 자제의 습관을 계발하기가 더욱 힘들어질 수 있다. (p.113)

 

 연구자들은 금전적 인센티브가 효과를 발휘한다는 보편적인 가정을 어느 정도 입증했다. 결국 보상금 10퍼센트를 받은 그룹이 1퍼센트만 받은 그룹보다 기부금을 더 많이 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실험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어째서 보상금을 받은 두 그룹이 보상금을 전혀 받지 않고 봉사한 그룹보다 실적이 좋지 않는가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이유는 좋은 행동을 한 대가로 보상금을 주는 것이 그 행동의 특징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방문하며 자선기금을 모으는 행위의 성격이 시민의 의무를 수행하기보다는 보상금을 벌기 위한 수단 쪽으로 기울었다. 재정적 인센티브가 공공정신에서 우러난 활동을 보상받기 위한 노동으로 바꾼 것이다. 이스라엘 학생들도 스위스 마을 사람들의 경우와 같이 시장 규범이 도입되면서 그들의 도덕적·시민적 헌신은 밀려나거나 최소한 꺾여버렸다. (p.166)

 

 미덕에 대한 경제주의의 견해는 시장에 대한 신념을 불타게 하고 원래는 속하지 않았던 영역으로 시장을 확대시킨다. 하지만 비유가 잘못되었다. 이타주의·관용·결속·시민정신은 사용할수록 고갈되는 상품이 아니다. 오히려 운동하면 발달하고 더욱 강해지는 근육에 가깝다. 시장 지향 사회의 결함 중 하나는 이러한 미덕이 쇠약해지게 방치하는 것이다. 우리의 공공 삶을 회복하려면 좀 더 부지런히 미덕을 행사해야 한다. (p.180)

 

 민주주의는 완벽한 평등을 필요로 하지는 않지만 시민에게 공동체적 생활을 공유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려면 배경·사회적 위치·태도·신념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매일 생활하며 서로 마주하고 부딪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서로의 차이를 견뎌내고 이를 놓고 협상하고 공공선에 관심을 쏟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따라서 결국 시장의 문제는 사실상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싶은가에 관한 문제다. 모든 것을 사고팔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고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도덕적·시민적 재화는 존재하는가? (p.275-276)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 윤상욱 / 시공사

 

 그러나 우리가 아프리카를 안다고 하기에는 아직 교류와 지식이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와 아프리카의 첫 만남은 60여 년 전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의 일원인 에티오피아군의 파병 형식으로 이루어졌고, 이후로도 오랫동안 우리는 서구가 제공하는 영화나 드라마, 뉴스를 통해 머나먼 대륙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뿐이다. 아프리카 대륙이 서구 열강의 지배로부터 독립한 지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 왜 그토록 가난한지, 사람들은 왜 병이 드는지, 왜 서로 다투고 죽이는지, 그저 "아프리카니까, 흑인이니까"라는 동어 반복적이면서 인종주의적인 답변만을 할 수밖에 없는 것도 아프리카를 직접 만나지 못한 상황에서 서구인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만 전해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계사에서 아프리카는 용두사미 그 자체다. 세계사 개론은 항상 아프리카로부터 시작한다. 인류의 어머니인 호모 사피엔스 루시의 해골과 그녀가 발견된 동부 아프리카 지도가 항상 첫장을 장식한다. 그러나 아프리카에 대한 이야기는 15세기 대항해 시대를 다루는 대목에 이르러서야 다시 등장한다. 그것도 마치 유럽 탐험가들이 위대한 도전 끝에 얻어낸 전리품처럼 묘사되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사에 이르러 간략하게나마 기술된다.

 

 헤겔에 의해 아프리카는 유아기의 인류, 고차원적 사고 능력이 없는 흑인들의 땅이자 어두운 밤의 장막에 둘러쳐 있는 대륙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흑인들의 검은 피부는 어둡고 몽매한 밤의 이미지와 함께 어우러져 '흑 아프리카'라는 부정적 개념을 정형화하는 데 일조했다. 헤겔은 아프리카 흑인들의 인간성마저 부인하면서 인간의 존엄성과 도덕적 기준을 적용할 수 없다고 보았다. 또한 그는 아프리카인에게 종교적으로도 편향된 시각을 투영했다. 고차원적인 기독교는 야만인들에게 적합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슬람교가 더 잘 어울릴 것이라고 한 것이다. 이러한 흑인의 인간성에 대한 부정은 19세기 노예 무역업자와 노예를 필요로 했던 이들에게 양심의 가책 내지는 죄책감의 방파제가 되어주었다.

 

 이렇듯 역사란 그 누구도 아닌 당사자에게 가장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문자 기록의 존재나 인류 문명에 대한 기여도를 기준으로 타국의 역사를 평가하는 것은 너무나도 오만한 사고방식이다. 아프리카인들 역시 자신들만의 호흡과 흐름이 담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만의 방식으로 이를 기억하고, 또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서양 노예무역의 이미지가 너무나도 강렬하기 때문인지 대부분은 유럽인만을 아프리카 노예 거래의 주범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아랍인들의 아프리카 노예 거래는 대서양 무역 뒤에 가려져 왔지만 최근 조금씩 그 잔혹한 실상이 드러나면서 유럽에 못지않았음이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1441년 포르투갈의 서아프리카 해안 탐사를 아프리카 노예무역의 출발로 서술하는 역사서들은 진실의 절반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다.

 

 대서양 노예무역은 단기간에 아프리카 노동력을 감소시켰고, 아프리카의 근대화 과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역사학자 올란도 페터슨 Orlando Paterson 의 표현대로 노예 생산 과정은 '사회적 죽음'의 생산 과정이었다. 우선 노예를 포획하는 것 자체가 폭력적이어서 그 과정에서 많은 수의 사상자가 생겨났다. 청년과 어린아이들이 사라져버린 마을에 남겨진 부녀자와 노인, 영유아들은 그 고통을 떠안은 채 고된 삶을 살아야 했다. 공급 과정 역시 참담했다. 내륙 지방에서 생포된 노예들은 항구까지 가는 길에서, 그리고 대서양을 건너는 중간 항해 과정에서 죽어갔다. 이러한 부수적 피해까지 감안하면, 실제 아프리카 대륙에서 소실된 인구는 신대륙 항구에서 인도된 노예 수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일부는 그 수치가 두 배가 넘을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실제로 다른 대륙의 인구가 증가하는 동안 아프리카의 인구는 1850년까지 정체되어 있었다. 종속주의 사학자 월터 로드니 Walter Rodney 가 대서양 노예무역이 아프리카의 저발전을 고착화시켰다고 주장하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인구 감소의 치명적 효과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노예제도를 통해 국가가 강성해지고 부유해진 경우가 다수 있었지만, 아프리카 노예들은 아프리카가 아닌 서양을 위해 일했기에 그 어떤 노예제도와도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보았다.

 

 한편 유럽이 아프리카 왕국들의 정복 전쟁 승리와 영토 확장에 기여했고, 소규모 부족 단위로 쪼개져 있던 아프리카인들의 통합을 도왔다는 주장은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정복 전쟁이 끝나 더 이상 전쟁 포로가 잡히지 않자, 이제 아프리카의 권력자들은 자신의 사람들을 팔기 시작했다. 이미 유럽제 물건에 중독되어버린 권력자들은 노예를 끊임없이 팔지 않고는 견디지 못했다. 유럽 역시 17세기 신대륙 개발로 노예 수요가 급증하고 있었던 차에 흑인 노예가 어떻게 어디서 잡혀왔는지 따질 필요가 없었다. 아프리카의 왕들은 군대로 하여금 아무나 노예로 잡아올 것을 지시했다.
 이제 아프리카 전역은 폭력이 난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히는 상황에서 아프리카 부족과 마을들은 과거에 사이가 좋지 않았던 마을을 습격했다. 어떤 곳에서는 그다지 사이가 나쁘지 않지만, 단지 먼저 당하지 않기 위해서 이웃을 습격하기도 했다. 전쟁에 이긴 쪽은 포로를 노예로 팔았는데, 그 대가로 얻은 것은 주로 칼과 창 같은 무기류였다. 또 언제 누군가로부터 닥칠지 모르는 습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폭력과 불신이 증폭하고 무시무시한 공포가 주변을 떠도는 곳에서 사람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은 누구인가. 가족밖에는 없다. '아프리카인들이 아프리카인들을 잡아먹는' 시대에 신뢰할 수 있는 공동체의 범위는 부족, 씨족, 가족 단위로 좁혀졌다. 아프리카의 파편화는 이를 표현한 것이며, 인근 부족, 이웃 마을 사람들 간 불신과 증오의 기억은 훗날 국민 국가 형성 과정에 결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
 이 모든 사회적 죽음의 생산 과정은 200여 년 뒤 아프리카 신생 독립국에서 일어났던 비극들과 너무나도 닮았다. 독립 이후 아프리카 권력자들이 국가를 사적 소유물로 여기면서 개인 재산 축적에 열을 올린다거나, 다이아몬드나 자원을 팔아 무기를 산다거나, 특정 부족에 대한 인종청소가 일어난다거나, 마치 언제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이 20세기에도 재현된 것이다.

 

 이렇듯 아프리카에서 가난의 문제는 그저 배고픔만으로 그치지는 않는다. 절대 빈곤은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뜨리는가 하면, 국가와 사회를 증오와 폭력, 범죄로 물들인다. 약하고 배고픈 자가 많을수록 힘을 가진 이들은 더욱 잔인해지고 탐욕스러워지기 마련이다. 매일 매일 끼니거리를 걱정해야 하는 하루살이 국민들은 민주주의나 양성 평등, 교육과 복지와 같은 사회적 가치를 바라거나 이해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힘과 돈이 있는 권력자에게 순종하게 된다. 아프리카의 독재자는 절대적 빈곤 속에서 피어나는 곰팡이와 같은 존재다.

 

 이렇듯 아프리카에 젊은이들이 많은 이유는 슬프게도, 사람들이 일찍 죽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프리카는 젊은 대륙'이라는 표현을 접할 때마다 이렇게 반문하고 싶어진다. '당신들의 눈에는 아프리카인들이 노동자와 소비자로만 보이는가?'

 

 한편 식민 지배 시절의 획일적 농업 생산 구조도 빈곤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당시 유럽인들은 아프리카의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아프리카를 식량과 원료의 공급지로 만들었다. 그 결과 아프리카 국가들의 농업 생산은 수출용 작물, 즉 돈이 되는 특정 작물에 집중되었는데, 면화, 땅콩, 코코아, 커피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예다. 먹을 수가 없거나, 먹어도 영양 공급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다.
 세네갈의 땅콩을 예로 들어보자. 프랑스는 요리용 기름과 공업용 윤활유를 얻기 위해 세네갈에서 대규모 땅콩 경작을 시작했는데, 그 후로 150년이 지난 지금도 세네갈 농업은 땅콩 생산과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사하라 사막 언저리에 위치한 세네갈은 국토의 12퍼센트 정도만이 경작 가능하다. 그런데 그 소중한 경작지의 절반 정도는 땅콩 재배에 사용되고 있다.
 국제 땅콩 가격의 하락 때문에 몇 번의 적자를 경험한 정부가 뒤늦게나마 다른 농작물을 재배하려고 시도하지만 이것마저도 쉽지는 않다. 한번 땅콩을 재배한 땅에서는 다른 작물이 자라기 힘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땅콩 농사가 인접한 곳의 삼림을 파괴하고 사막화를 앞당긴다는 연구 결과까지 나왔지만, 그렇다고 당장 땅콩 농사를 그만두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다. 땅콩을 팔지 않으면 농민들의 소득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니는 전 세계 보크사이트(철반석) 매장량의 절반과 막대한 철광석, 금, 우라늄을 가진 축복받은 나라지만, 과거 군부 정권은 각종 광산을 외국 기업에게 헐값에 넘기는 대신 막대한 이권을 챙겼다. 다행히 2010년 12월 최초의 민주적 선거로 당선된 알파 콩데 Alpha Conde 대통령은 그동안 잃어버린 국부를 다시 찾기 위해 광업법을 보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정비했고, 채굴된 광물의 정부 지분도 두 배로 올렸다. 기니의 광산에 투자를 계획하던 다국적 기업들은 지나친 자원 민족주의라 비난했다. 이 소식을 접한 한국 기업인도 '그런가요, 그럼 별로 재미없어지겠는데요?'라며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가만히 앉아서' 돈 버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일까. 아프리카에서는 이것 때문에 많은 문제들이 생긴다. 정부는 여기저기 묻혀 있는 자원만 팔아도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농업이나 제조업과 같은 다른 산업에는 관심이 없다. 아프리카의 농업이 아직도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제조업이라고 해봐야 전통 공예품이나 고무, 플라스틱으로 만든 단순 생활 용품, 직물류에 한정되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가 산업이 어느 한 쪽으로 쏠리면 반드시 그 부작용이 나타난다. 이른바 화란병 Dutch Disease 은 아프리카에도 여실히 나타났다.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곳으로만 사람들이 모이는 탓에 정작 국민 생활에 필수적인 상품 생산은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그것들은 죄다 외국에서 수입해서 써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가봉의 열대림에는 바나나가 지천으로 널려 있지만, 가봉 사람들은 이웃 카메룬 바나나를 수입해서 먹는다. 가봉에서 석유 붐이 일자 노동자들이 죄다 유전으로 몰려, 바나나 농장들이 하나둘씩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공간 혁명 / 세라 W. 골드헤이건 / 다산사이언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어떻게 바뀌는지 떠올려보라. 멋진 그림을 보면 다른 세상에 온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독특한 형태의 가구를 보면 거기에서 휴식을 취하는 인체를 떠올리고, 댄스 공연을 보면 움직이는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멋진 조각품은 꼿꼿이 서 있거나 미끄러지듯 움직이거나 떠다니는 상상을 유발한다. 좋은 영화는 우리의 삶을 스토리와 드라마로 채운다. 방금 언급한 예술 하나하나는 우리에게 실제적이고 강력한 영향을 주지만 이는 우리가 능동적으로 이들과 관계를 맺을 경우에만 그렇다. 그리고 그런 경우는 어쩌다 가끔, 짧은 시간 동안만 일어날 뿐이다.
 반면 건축 환경과 우리의 관계는 예술과 맺는 관계와는 다르다. 건축 환경은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때도 항상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건축 환경은 다른 예술이 미치는 영향을 모두 결합한 방식으로 우리가 인생을 살며 내리는 여러 선택에도 영향을 미친다. 건축 환경은 우리의 기분과 정서, 공간 내에서의 신체감각과 움직일 때의 신체감각에도 영향을 준다. 그리고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며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데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 (p.28)

 

 이제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져보자. 지금 눈에 보이는 건물과 거리, 공원 가운데 80퍼센트가 지금보다 기능과 구조가 뛰어났다면 당신과 당신의 부모, 형제, 자녀의 삶은 어땠을까? 모든 동네가 활기 넘치고 주민들끼리 어울리기 쉬운 환경이었다면 어땠을까? 저렴하고 편리한 대중교통을 쉽게 이용할 수 있다면 어땠을까? 모든 주택과 아파트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디자인이 뛰어나고 잘 관리된 공원이 있거나 집에서 공원이 보인다면? 모든 집과 직장, 교실에 자연광이 들어오는 커다란 창문이 있다면? 이 모든 게 가능했다면 당신과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은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개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복잡한 고층 빌딩 숲 어딘가에 위치한 어둡고, 좁고, 특색 없으며 창문조차 없는 상자에서 살았다면 그 삶도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p.36-38)

 

 내게 건축은 항상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하는 가장 중요한 예술로 느껴진다. 우리를 둘러싼 건물과 조경, 도시 경관은 건축을 의뢰하거나 자금을 댄 사람들의 삶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투자 목적으로 건설된 건축 환경은 보통 투자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사용한다). 이들은 수많은 사용자와 행인에게 영향을 준다. 게다가 대부분의 건물과 조경, 도시 지역의 수명은 인간의 수명보다 길어서 건축 환경 조성에 실제로 관여한 사람들은 물론 그다음 세대, 때로는 그 이후 세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p.53)

 

 형태와 표현이 독특한 건축물은 자신의 프로젝트가 환경이나 도시 맥락과 분리된 개별적인 대상이며 현실에서 사람들이 건축물을 어떻게 이용하고 경험하는지와 크게 관련 없다고 생각하는 신진 디자이너들의 인식을 강화한다. 영향력 있는 도시 계획가 제프 스펙은 디자이너들의 이런 인식이 거대 규모의 프로젝트를 개념화할 때 악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건축학도들은 블록 단위의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블록 전체를 하나의 건물처럼 보이게 만드는 게 그들의 권리일 뿐 아니라 건축가로서의 의무라고 배웁니다. 하지만 비슷한 건물이 늘어선 거리를 180미터 걷는 일보다 8미터 간격으로 다른 경관이 펼쳐지는 거리를 걷는 일이 훨씬 흥미롭죠." 디자인에 CAD를 이용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규모에 대한 학생들의 감각은 더욱 무뎌졌고 그 결과 건물을 고립된 개별 대상으로 디자인하는 일이 늘어났다. 손으로 직접 설계도를 그리면 실물 크기로 디자인하는 기술과 지각 능력을 익힐 수 있지만 이 방식은 거의 컴퓨터에 밀려났다. (p.95-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