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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방의 시간을 찍는 여자 / 린지 아다리오 / 문학동네

 

 리비아에서의 그날, 나는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질문을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나는 왜 사진을 위해 목숨을 거는가? 10여 년간 분쟁지역을 돌며 취재했지만 아직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분명한 사실은 천성적으로 이 일을 하도록 태어난 사람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우연히 이 일을 발견했고, 서서히 천직으로 삼게 된다. 이 독특한 삶과 특별한 임무를 맛본 다음에는, 아무리 기진맥진하거나 스트레스를 받고 위험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계속 일하고 싶어한다. 이 일은 엄연히 하나의 직업이지만 직업이라기보다는 헌신이나 책임, 소명처럼 느껴진다. 이 일은 목적의식을 부여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일을 하면서 행복을 느낀다. 우리는 역사의 현장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정책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동시에 그로 인해 엄청난 대가를 치르기도 한다. 특히 다른 기자들이 총격전에서 목숨을 잃거나 지뢰를 밟아 다리를 잃거나 납치되어 가족들과 지인들의 마음이 찢겨나가는 일이 발생하면, 나는 내가 왜 이러한 삶을 선택했는지 자문해본다. (p.29)

 

 점심식사가 끝난 뒤, 모하메드는 나를 여자아이들을 위한 비밀학교로 데려다주었다. 탈레반은 여자아이들의 학교 교육을 금지시켰지만 딸의 교육을 간절히 원한 일부 아프가니스탄 부모는 민가의 지하실에 임시학교를 만들었다. 그 집의 가장이 현관에서 우리를 맞아주었다. 안쪽에 젊은 여성들이 있었기 때문에 모하메드는 집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지만, 나는 집주인의 안내를 받아 젊은 여자 선생님들이 동굴과도 같은 공간에서 녹색과 보라색, 주황색 등 형형색색의 옷을 두른 소녀들에게 수업을 하고 있는 방 세 개를 둘러보았다. 스물다섯 살 정도로 보이는 한 선생님은 칠판 하나와 손으로 쓴 포스터 몇 장으로 수업을 진행하면서 팔에는 아기를 안고 있었다. 아이들은 지저분한 바닥에 앉아 있었다. 책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p.90-91)

 

 유엔은 이 여성들을 비밀리에 고용하여 이 지역의 과부와 가난한 엄마들에게 뜨개질, 바느질, 직조기술 등의 직업훈련을 가르치도록 했다. 여성들은 바닥에 앉아 내게 차와 비스킷을 권하고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전혀 시골에 사는 여성 같지 않았다. 교육을 받았으며 탈레반이 권력을 잡기 전에는 정부기관에서 일한 경력도 있었다. 이 여성들은 자유의 억압,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들이 집밖에서 일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는 사실에 크게 좌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중 한 여성이 이렇게 설명했다. "수도가 파괴되기 전에 탈레반이 도시를 재건했지요. 아프가니스탄 가정에서는 여성들이 가장 불쌍합니다. 여성들은 아이들에게 밥 먹일 생각만 할 뿐이지요. 하지만 지금은 남성들도 여성들과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수염을 충분히 길게 기르지 않았다고 거리에서 매를 맞기도 하고, 기도를 하지 않았다며 감옥에 갇히기도 하지요. 고통받는 것은 여성들뿐만이 아니에요."
 또다른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부르카를 쓰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죠."
 이 여성들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를 놀라게 했다. 일할 수 없는 것이나 교육받을 수 없는 것 등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받은 그 모든 억압을 고려하고서야 그들의 가장 큰 불만이 부르카를 입는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지나치게 순진했음을 깨달았다. 그들에게 부르카는 피상적인 장벽일 뿐이었고 마음이 아닌 몸을 숨기기 위한 물리적 수단에 불과했다. 이 여성들은 또한 기회와 독립, 자유라는 특권을 누릴 수 있는 나의 삶에 대한 언급도 잊지 않았다. 미국 여성인 나는 일을 하고, 결정을 내리고, 독립적으로 행동하고, 남자와 연애하고, 스스로를 섹시하다고 느끼고,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끝내고, 여행하는 등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었지만, 너무나 많은 것을 누린 나머지 감사하는 마음을 잊고 있었다. 나는 고작 스물여섯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평생 동안 새로운 경험을 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p.102-103)

 

 미군을 향한 차량폭탄과 거리공격의 빈도가 갈수록 잦아지자 미군은 공포에 휩싸인 나머지 거의 맹목적으로 선제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미군은 도로 여기저기에 영어로 '정지'라고 쓴 푯말을 세운 후 임시검문소 앞에서 정지하지 않는 차량을 향해 무조건 총을 발사했다. 이라크인 중에는 영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미군들은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나는 불과 이십 분 사이에 똑같은 검문소에서 두 가족이 전원 몰살당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p.202)

 

 이제 나는 스스로 내 목숨을 걸고 대중에게 깨우침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취재하는 사진기자가 되었다. 나는 사람들이 생각하고 마음을 열게 하는 것은 물론,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전반적인 일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서 저마다 미군의 이라크 주둔 지지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내가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찍어온 사진이 뉴욕의 푹신한 사무실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검열당할 때마다 머리끝까지 분노가 차올랐다. 이들은 사람들이 보기에 너무 가혹한 것이 무엇인지를 제멋대로 결정했으며, 대중들이 미국 젊은이들이 싸우고 있는 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볼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가고 있었다. 팔루자의 부상 군인 이야기 같은 사건을 취재할 때마다 나는 눈물이 차오르고 감정적으로도 약해졌지만,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현장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은 더욱 굳어질 뿐이었다. (p.231)

 

 사막에 세워진 난민캠프를 살피다보니 영양상태가 좋은 건강한 백인 여성이 비참한 난민들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다는 자의식이 들었다. 이곳 사람들은 내가 외국인 기자라는 사실을 이해해주었지만, 나는 어떻게 하면 난민들의 존엄성을 손상시키지 않고 사진을 찍을지 고민했다. 이곳의 비극을 이라크의 참상과 비교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지만, 사실상 비교가 불가능했다. 이라크와 다르푸르는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세계였다. 하지만 나의 역할은 언제나 같았다.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경의를 표하며, 대상이 불편함을 느끼거나 객체화된다는 기분을 최대한 받지 않는 한도 내에서 심층취재를 한다. 나는 항상 상대방 문화권의 인사법을 사용하며 얼굴에는 미소를 띠고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수단에서는 아랍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인사법은 나에게도 익숙했다. "살람 알라이쿰(신의 평화가 당신에게)"이라고 인사한 뒤, 간단한 아랍어로 "안녕하세요? 저는 기자입니다"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그러면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웃어 보였다. 절대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p.240-241)

 

 나는 2008년에 예술과 미디어에 비친 여성 및 성 문제를 연구하는 컬럼비아칼리지시카고의 앨런스톤벨릭연구소의 보조금을 받아 다시 콩고를 방문했고, <콩고/여성Congo/Women>이라는 순회 전시회를 위해 전쟁무기로 사용되는 성폭력의 실태를 기록에 담았다. 론 하비브, 제임스 나트웨이, 마커스 블리스데일 등의 동료 사진기자들이 콩고에서 찍어온 사진으로 구성된 이 전시회는 미국과 유럽의 20개가 넘는 도시를 순회했고, 성폭력 피해를 당한 콩고 여성들이 누공을 치료하기 위한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기금을 모금했다. 다르푸르 취재를 위해 게티이미지에서 보조금을 받은 것은 이보다 몇 달 후였기 때문에 이것은 내가 처음으로 받은 보조금이었고, 동시에 마감과 뉴스속보 취재라는 의무에 구애받지 않고 현장에 가서 온전히 하나의 프로젝트에 집중할 수 있었던 첫 사례였다. (p.259)

 

 

축출 자본주의 / 사스키아 사센 / 글항아리

 

 정규 조사에서 급격한 경제 위축 현상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상 '경제'의 범주를 재규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가진 것(직장, 집, 의료보험)을 모두 잃은 실업자는 이른바 '경제'로 간주되는 범위의 가장자리로 내몰려 절벽 밑으로 추락한다. 빚더미에 올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동네 상점 주인이나 영세 공장주들, 유럽을 떠나 해외로 이민을 가는 전도유망한 학생과 전문직 종사자 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회적 움직임은 기존의 경제 공간을 재정의한다. 경제 공간이 축소되면 많은 실업자와 저소득층이 정규 조사에서 제외된다. 즉 경제 공간의 재정의는 '경제'를 보기 흉하게 만들지 않고 1인당 GDP가 상승한 듯한 착시 효과를 낸다는 얘기다. 말하자면 골치 아픈 요소는 제거해버리면 그만인 인종 청소의 경제판과 비슷하다. 경제 공간을 재정의하고 축소하면 유럽연합 회원국과 다른 국가들의 경제 현황이 '제자리로 돌아온 것'처럼 비칠 수 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런 회복과정에서 IMF와 유럽중앙은행이 구심점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이 사안에 대해 큰소리를 내는 유일한 기관인 한, 이들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것은 사실이다. 이들은 늘 경제 위축이 아닌 경기 회복을 부르짖는다. 실제로 2013년 초 유럽중앙은행은 그리스가 다시 성장세로 돌아섰다고 말했고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그리스의 신용 등급을 한 단계 상향 조정했다. 물론 그리스의 신용 등급은 여전히 낮은 상태이지만 등급 조정은 투자가들에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하다. 그렇다면 그리스가 성장세로 들어섰음을 알려주는 이 통계에서 무엇이 빠져 있을까? 수많은 가계와 기업, 장소가 통계로 측정되는 경제 공간으로부터 퇴출되었다. 이렇게 퇴출된 대상은 공식적인 평가에서 제외되고, 따라서 이들이 경제성장률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소거된다. (p.56-57)

 

 대규모 수감은 한때 지독한 독재정권하에서나 목격되는 현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것은 오히려 선진 자본주의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공식적으로는 범죄라는 연결 고리를 거치지만 말이다.) 수감자 중 대부분은 직업이 없으며, 이 시대에는 그들을 위한 일자리를 더 이상 찾기 어렵다. 재소자의 교정 가능성이 높고 그들에게도 일할 권리가 있다고 믿던 20년 전까지만 해도 상황이 이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았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미국과 영국의 재소자들은 무자비한 초기 자본주의 시기에 흔히 볼 수 있었던 잉여 노동력의 현대판이라 할 수 있다.
 긴 역사를 보유한 수감 시스템에서 우리는 세 가지 동향을 발견할 수 있는데, 오늘날 나타난 한 가지 동향은 민간 영리 교도소를 비롯한 수감 시설의 다양화와 규모의 확장이라는 새로운 질서다.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수감 인구의 급증으로, 여러 국가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 중에서 제일 극적인 변화가 목격되는 미국은 (늘 그렇듯이) 이런 흐름이 얼마나 악화될 수 있는지를 가늠케 한다. 미국의 수감 인구는 지난 30년 동안 600퍼센트나 증가했다. 230만 명에 달하는 미국의 재소자는 전 세계 수감 인구의 25퍼센트를 차지하며 절댓값으로도 세계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두 번째 동향은 어떤 형태로든 일정 기간 교정을 위해 관리・감독을 받는 인구가 전 세계적으로 급격히 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만 500만 명이 보호관찰 또는 가석방 상태에 놓였는데, 이는 그들이 사회적 약자이며 직장 혹은 안정적 거주지를 구하기 힘들다는 의미다. 세 번째로 교도소 및 수감시설이 빠르게 민영화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주로 미국에서 시작됐으나 점점 더 많은 국가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경찰, 법원, 공동체적 감시(전자기기를 이용한 모니터링)와 가석방, 보호관찰, 조기 출감자를 위한 재사회화 시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민영화가 이뤄지고 있다. (p.86-87)

 

 미국의 민영 교도소 및 민영 교정 서비스 기업들은 평범한 회사와 똑같은 방식으로 그들 자신의 목표를 추구한다. 2000년대부터 2010년 선거 주기까지 양대 사설 교도소 회사가 워싱턴 DC에 정치 후원금으로 뿌린 금액은 자그마치 수백만 달러에 달하며 전국적으로는 이 금액을 훨씬 웃돈다. 민영화의 경제적 효용을 믿는 경제권에서는 민영 교도소가 훨씬 더 쉽게 지지를 얻는다. 그러나 감옥은 평범한 상업시설이 아니다. 민영 교도소는 감방의 자리를 채우고 주 교도소에 교도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수익을 거둔다. 수감자의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뇌물이 오간다는 실질적인 증거도 있다. '키드 포 캐시(Kid for Cash)' 판결이 극단적인 예다. 2011년 펜실베이니아 고등법원은 마크 차바렐라 판사가 내린 약 4000건의 판결을 번복했다. 그는 민간 소년원 업자로부터 100만 달러의 뇌물을 받고 자신의 재판에서 소년 범죄자들을 업자의 소년원으로 보냈던 것이다. 그 정도로 악질은 아니더라도 미국 전역에서 이와 유사한 사건이 수없이 발생했다. 수감 인원을 채우기 위해 경범죄에도 지나치게 가혹한 판결을 내리거나, 삼진아웃법(세 번 잇달아 유죄 판결을 받으면 무조건 종신형)을 적용하거나, 노인과 장애인을 수감하는 사례가 예전에 비해 확연하게 증가했다. 이 같은 추세는 수감자의 증가로 이어지고, 그 결과 또다시 수감시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게 된다.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민영 교도소와 민영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사법 제도를 악용하는 경우가 빈번한데도, 민영화가 비용을 낮추고 안전을 확보한다는 어리석은 신화가 여전히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 있다. (p.95-97)

 

 대규모 토지 취득은 엄청난 규모의 상흔을 남길 것이다. 그것은 마을과 영세농 같은 작은 단위의 무수한 축출을 야기하고, 해당 토지 위에 건립된 플랜테이션 주변의 땅과 물을 오염시킨다. 집을 잃고 고향을 떠나는 이들이 늘고 시골 주민들은 도시 빈민가로 뿔뿔이 흩어지며, 마을과 농촌 경제가 파괴되고 장기적으로는 더 많은 땅이 죽어간다. 280만 헥타르의 땅을 취득한 주인이나 임대인(내국인이 됐든 외국인이 됐든)이 그곳에 바이오 연료용 야자나무를 재배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수많은 마을과 농지, 제조업 공장이 그 지역에서 추방된다. 일부는 배상금을 받고 비슷한 환경의 다른 지역에 재정착할지도 모르지만 대개 그들이 받는 배상액의 수준은 손실에 한참 못 미친다. 그리고 마침내 플랜테이션의 단일 재배 작물에 쫓겨난 식물군과 동물군이 자취를 감출 것이다. 뒤이어 곤충군의 다양성이 떨어지고 토양이 피폐해져 생산성이 저하될 것이다. 수십 년 뒤면 중남미와 카리브 해, 아프리카의 옛 플랜테이션 지역이 그러했듯이 토지는 황폐화되고 죽어갈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땅은 회복될지 몰라도 추방당한 농부와 제조업자들의 후손은 빈털터리가 되어 대도시 근방의 비좁은 빈민가에서 살아가야 한다. (p.107)

 

 IMF와 세계은행, WTO가 경제성장을 위해 필수적이라며 남반구 국가들에 이식한 프로그램들도 실제로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들의 조언은 발전을 가져오지도 못했고 강력한 민주 정부를 수립하는 데 도움이 되지도 못했다.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시행한 대부분의 국가가 맞이한 현실은 막대한 외채 증가와 교육, 의료, 사회기반시설 등에 대한 정부 투자의 급격한 축소였다. 민간 경제에서도 그리 결과가 좋지 못했다. 풍부한 자본으로 무장한 외국의 대기업이 밀고 들어오자 국내 기업들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결국 IMF도 이 같은 사실을 인정하고 외채 과다 빈곤국 41개국에 외채 탕감 프로그램을 도입할 수밖에 없었다. (p.111)

 

 IMF는 1980~1990년대에 구조조정에 참여한 가난한 국가들에게 수출 이익의 20~25퍼센트를 외채 상환에 할애할 것을 요구했다. 반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53년에 연합국 측은 독일의 전쟁 채무 중 80퍼센트를 면제하고 수출 이익의 3~5퍼센트만을 외채 상환에 할애하라고 제안했다. 1990년대에 중부 유럽 국가들의 외채 상환액 비율은 8퍼센트였다. 이에 비해 1980년대 빈곤국들이 감당해야 했던 외채 상환 비율은 문자 그대로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이는 과거에 유럽(제3차 세계대전 이후의 독일과 최근의 중부 유럽) 국가들에 대한 정책이 자본주의 경제로의 재편입을 목표로 했던 반면, 1980~1990년대 남반구 개도국에 부가된 정책들은 경제 개편 및 국제 금융 기구로부터의 융자를 강요함으로써 체제 전환을 부추기는 엄격한 훈육에 가깝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그런 점에서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단순히 외채 상환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목적은 자연자원에서 구매력에 이르기까지 가난한 국가로부터 자원을 착취하고 정치경제 시스템을 개편해 입맛대로 다듬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지금 그런 외부 세력이 해당 국가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는 데 필요한 기본 요소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했음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국가가 사회기반시설과 학교, 병원, 일자리 등 국민을 위한 정책을 수행하기보다 외채 상환을 우선시하면서 축출의 논리는,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외채 상환 이상의 체제 개편을 초래하는 메커니즘이 되었다. 그것은 기존의 경제 시스템을 망가뜨리고 중산층과 서민의 상당수를 붕괴시켰으며 많은 국민을 빈곤하게 만들었다. 어느 정도 차이가 있긴 하나 오늘날 유럽을 비롯한 다른 선진국의 긴축 재정 정책도 많은 부분에서 이 같은 흐름을 연상케 한다. (p.116-117)

 

 지하 깊숙이 흐르는 보이지 않는 개념적 동향은 이미 수많은 국가와 장소를 초월하고 있다. 나는 국지적인 사례에서조차도 그 기저에 범세계적인 조직성이 작용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것은 우리가 지상에 구축한 경제 시스템이나 지정학적 체계보다도 더 깊고 근본적이다. 지구 생태계는 삶의 공간에서 점점 더 축출되고 땅과 물은 죽어간다. 그런데 이 생태계란 무엇인가? 아무리 이 지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들 마치 여기 속하지 않는 별개인 양 취급되고 있지만, 사실 그 생태계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p.255)

 

 내가 주장하는 바는 우리가 경제성장에 대해 위험할 정도로 좁은 개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성장은 복지국가의 대규모 프로젝트를 실현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또한 공익을 확대하고 많은 사람이 번영을 누릴 수 있게(설령 그중 일부가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번영을 누린다 해도) 만드는 수단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와 달리, 오늘날의 제도와 전망은 기업의 경제적 성장을 뒷받침하는 데에만 맞춰져 있다. 이것이 오늘날의 새로운 체제적 논리다. 전부는 아닐지언정 많은 기업이 오로지 이익 추구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만으로 공익적 제도를 포함한 규제에서 벗어날 방도를 강구하며, 사람과 사물, 제도와 사회운동을 가리지 않고 이익 추구에 방해가 되는 것이라면 무작정 배제한다. 다시 말해 주류에서 퇴출시키는 것이다. 이런 경제 논리의 변화야말로 아직까지 여러 연구에서 온전히 포착되지 못한 거대한 체제적 동력이다. (p.258)

 

 겉으로는 '러시아'나 '미국'에서 발생한 일처럼 보일지라도 그러한 케케묵은 지리적 구분이 우리 시대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인가? 이 책에서 논한 모든 파괴적 힘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런 파괴력이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개념적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정치, 경제, 다양한 국민국가와 공산주의, 자본주의 체제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이데올로기의 기준과 범주를 모두 아우른다. 그것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적인 방식으로 모든 경계를 넘나들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를 개념적 지하 동향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복잡성은 그런 지하 동향의 한 가지 특징일 뿐이다. 체제란 구조가 복잡할수록 이해하기 힘들고 책임자를 지목하기도 어려우며 따라서 구성원들이 책임의식을 느끼기도 쉽지 않다. 파괴적 힘이 마침내 눈앞에 드러날 때, 중요한 것은 그에 대한 해석이다. 해석 도구가 이미 낡아 있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익숙한 범주 안에서만 받아들이게 된다. 가령 정부가 재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고 가계는 감당하지 못할 수준의 부채를 졌으며 자본 분배가 효율적이지 못한 것은 지나친 규제 때문이라고 말이다. 물론 그것들이 실제 원인일 수도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그에 대한 훌륭한 실증적 학문 연구도 있고, 나 또한 그런 연구에서 발췌한 자료에 어느 정도 의존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또 다른 동력이 있건 없건 어쨌든 우리에게 익숙한 기존의 개념적, 역사적 경계를 가로질러 흐르는 동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p.261-262)

 

 한 가지 질문으로 이 책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어떠한 공간들이 퇴출되었는가? 그것은 현대 국가와 경제의 일반적인 정책으로는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반드시 명백한 개념으로 규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축출의 힘이 커질 때, 그리스의 위축 경제든 앙골라의 약탈적 상류층이든 또는 장기 실업자의 증가나 미국 내 영리 교도소의 확산이든, 퇴출되는 공간은 점점 더 늘어나고 다른 공간들과 차별화될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눈에 보이지 않는 검은 구멍이 아니라 현존하는 장소이며, 그러므로 퇴출된 이들의 공간은 개념적으로 정의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인간의 경제 발전이 초래한 환경오염 때문에 생겨난 죽은 땅과 물에 대해서도 같은 주장을 하는 바다. 그 또한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이며, 죽은 땅을 개념화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비공식적으로라도 하나의 전문 영역으로 취급해야 한다. 더 많은 곳에서, 축출의 공간들은 개념적 확립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그 장소들은 이미 여러 군데 있으며, 점점 증가하고 있는 데다 종류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축출의 공간은 지표면으로 끄집어내야 하는 개념적 지하 동향이다. 그리고 어쩌면 지역 경제와 역사, 구성원을 재편할 새로운 공간일지도 모른다. (p.268-269)

 

 

나는 침묵하지 않는다 / 오리아나 팔라치 / 행성B

 

 '일'이라는 말에서 나는 어떤 이미지가 떠오른다. 대여섯 살 때로 기억하는데, 나는 침대 위에 똑바로 서 있었고 엄마는 내게 양모 내의를 입혀주고 있었다. 양모 내의는 꺼칠꺼칠하고 따끔거렸다. 내 머리는 엄마의 목 정도에 닿았는데 엄마 얼굴을 보려면 머리를 뒤로 젖혀야 했다. 그렇게 엄마를 바라보자니, 엄마는 화를 억누르며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너는 나 같이 살아서는 안 돼! 아내도 엄마도 무식한 노예도 되어선 안 돼! 넌 일하러 나가! 일해! 돌아다녀! 세상을! 마음껏!" 나는 엄마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엄마는 일을 많이 했고 언제나 일했기 때문이다. 그게 일이 아니고 뭐람? 내가 좀 더 자란 어느 날 엄마에게 그날 일을 들려주며 물었다. "엄마가 했던 건 일이 아니었어?" "아니었어, 그건 노예였어." (p.61)

 

 서양 여자가 엄격한 무슬림 국가, 가령 파키스탄과 같은 나라에 도착해서 받는 첫인상은 세상의 모든 여자가 빠져 죽은 대홍수에서 자기만 유일하게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노처녀도, 사랑해서 하는 결혼도 없으며, 수학이 곧 생각이 되는 지구의 이 지대에는 6억 명이 살고 있다. 절반가량은 베일의 짙은 안개 뒤에서 사는 여성이다. 베일이라기보다는 수의처럼 머리부터 발까지 덮는 천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인데, 남편이나 아이, 또는 허약한 노예를 제외한 다른 모든 남자의 시선으로부터 몸을 가리기 위한 것이다. 푸르다, 부르카, 푸시, 쿨레, 젤라바라고 불리는 이 천은 눈높이에 구멍이 두 개 뚫려 있거나 가로 6센티미터, 세로 2센티미터의 조밀한 망이 달려 있다. 여성들은 감옥의 창살처럼 그 구멍이나 망을 통해 하늘과 사람을 본다. 이 감옥은 대서양에서 인도양까지 뻗어 있으며, 모로코, 알제리, 나이지리아, 리비아, 이집트,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이란,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등 이슬람의 광대한 왕국에 펼쳐져 있다. (p.82-83)

 

 심사위원들은 내게 백지장을 보여주며 물었다. "이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나는 눈 덮인 밭이라고 대답했다. 아마도 오하이오주나 롬바르디아주, 혹은 우크라이나의 밀밭일 거라고. 그리고 밀알 뿌리들이 눈망토를 뚫고 첫 싹을 틔우려고 힘겹게 싸우는 동안 농부가 초조하게 기다리는 상황을 열정적으로 묘사했다. 농부는 수확을 망치는 혹독한 겨울을 원망하고 있다는 등의 상상을 덧붙이면서. 농부가 혹독한 겨울 날씨에 악담을 퍼붓는 것까지 말했을 때 심사위원이 진저리치며 말을 막았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죠? 이건 종잇장이라고요!"
 한 장의 종이라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다. 시각 장애인이 아니니까. 하지만 내 지능 유형은 그 종잇장을 종잇장 그대로 인식하지 않았다. 밀알 뿌리가 지면을 뚫고 싹을 틔우려고 고군분투하는 눈 덮인 밭으로 보았다. 나는 우주비행사가 아니다. 나는 작가다. 작가는 나뭇잎을 떨군 겨울나무를 바라보면서 잎이 없는 나무만을 보지 않는다. 봄이 되면 그 나무에 달릴 잎들과 나뭇잎 사이에서 필 꽃들을 본다. 그리고 운이 좋은 작가라면 나무가 땅속에 숨긴 뿌리까지도 본다. (p.93-94)

 

 용기 있다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두려워도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전쟁과 위기에서 언제나 두려워했고, 항상 두려움을 느낀다. 지독한 두려움이다. 어떤 이들은 두려워서 화장실로 간다. 내게 두려움은 다른 증세로 나타난다. 위와 장이 수축하고 경련을 일으켜서 화장실에 가고 싶은 욕구가 없어진다. 나는 베트남에서 화장실에 잘 가지 못했다. 두렵지 않은 날은 없었다. 전쟁에서 두렵지 않다고 말하는 자는 비열한 거짓말쟁이, 위선자이다. 거짓말쟁이! 위선자! 어떻게 전쟁이 두렵지 않겠는가?
 모두가 전쟁을 두려워하고, 전쟁에서 두렵지 않은 군인이나 영웅은 단 한 명도 없다. 폭탄에 대한 두려움, 총격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나는 모두에게 물었다. "겁나세요?" 모두가 하나같이 대답했다. "네. 많이요." 그러면 나는 "저도 그래요."라고 말했다. (p.109)

 

 나는 우주비행사들을 영웅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영웅적 행위란 수많은 기술자와 과학자, 정밀한 장치의 도움을 받아 마지막 볼트 하나까지 점검한 뒤 99.99퍼센트의 안전도를 갖춘 로켓을 타고 달에 착륙하는 것일까? 만약 일이 잘못되어 달에서 죽으면, 전 세계가 당신을 칭송하고 당신을 찬양하고 당신을 위해 눈물 흘리는 가운데 세상 사람들의 눈앞에서 죽는 것이 영웅적 행위일까? 아니다. 나는 이곳에서 진정한 영웅들을 보았다. 꿈의 이름으로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베트콩. 죽을 것을 알면서 언덕의 전쟁터로 돌격하다가 숲 속의 한 마리 개처럼 파멸하는 군인. 조롱을 당할지언정 소화기라도 들고 불을 지르려 달려드는 소녀와 승려. 이들의 행위야말로 영웅적 행위이다. (p.110-111)

 

 내 살은 엄마의 살이고, 내 피는 엄마의 피고, 내 몸은 엄마 몸의 연장이다. 엄마가 죽는 순간에 내 한 부분 혹은 나를 분리하려고 잘라낸 탯줄도 필요 없이 내 시작이 육체적으로 죽는다. 나는 내 죽음의 예고였던 엄마의 죽음을 거부하기 위해 깨어 있었다. 깨어 있으려고 엄마를 깨어 있게 했다. 나는 끊임없이 말을 했다. 엄마에게 그동안 내가 말하지 않았던 것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내 상처와 후회, 의심, 그리고 그 자체로 소중한 내 삶의 무게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러한 상처와 후회, 의심이 있었음에도 나는 인생을 매우 사랑한다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기쁘다고 말했으며, 엄마에게 무릎을 꿇고 나를 낳아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선함과 너그러움으로 좋은 일을 한껏 베풀지 못했더라도 내게 삶을 선물한 것만으로도 엄마는 내게 충분히 은혜로운 존재라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감사가 그동안 내가 엄마에게 안겨주었을 모든 근심에 대한 보상이 되길 바랐다. 자신이 이룬 가장 아름다운 업적을 칭송하며 행복하고 뿌듯하게 해준 것에 화답이라도 하듯 엄마가 내 손가락을 힘껏 잡는 바람에 나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나중에 아버지가 왔을 때 엄마는 미소 지으며 검지로 아버지를 가리켰다. 은혜가 아버지에게서도 비롯되었다는 점을 알려주려는 것 같았다. (p.148-149)

 

 나는 나를 위해서 낙태에 찬성하는 것이 아니다. 낙태를 원하는 자를 위해서 찬성하는 것이다. 우리가 선택의 기회를 주려고 이혼을 찬성하듯이, 나는 자유로운 결정, 자유의 일관성, 자유의 권리를 위해 낙태를 찬성한다. 나는 자유로운 선택 또는 자유로운 것으로 정의되는 선택을 허락하지 않는 나라를 거부한다.
 생명윤리의 관점에서 낙태를 반대한다면 낙태보다 더 나쁜 전쟁을 한번 생각해보라. 나는 전쟁을 경험했고, 베트남에서 3년간 있었다. 나는 알코올 잔에 떠 있는 배아보다 스무 살의 나이에 죽음의 전쟁터로 내몰리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더 많이 울었다고 장담한다. 전쟁은 더 비극적이라고 단정한다. 20년을 연기한 영아 살해이다. 공교롭게도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전쟁은 허용한다. (p.189-190)

 

 하지만 나는 작가이므로 회고록이나 자서전을 쓰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회고록이나 자서전에서는 하고 싶은 말을 다 담을 수 없었다. 나는 그 이상을 말하고 싶었으므로 소설 형식이 필요했다. 자서전이 무엇인가? 한 사람의 인생을 구성하는 모든 일, 장황하기도 한 전체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그러면 회고록은? 이 또한 한 사람의 인생에 관한 모든 사건을 역사적으로 세세하게 기록한 일대기이다. 그렇다면 소설은 무엇인가? 일대기에서 끌어내어 정교하게 다듬고 재창조하여 더 심오하고 더 큰 진실로 옮겨놓은 이야기이다.
 특별한 사람의 특별한 일화는 객관적인 잣대로 설명될 수 없다. 저널리즘은 축소하지만 소설은 확장한다. 저널리즘은 당신에게 그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 시간, 그 장소, 한정된 사람이나 도시, 국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준다. 맨 앞에서 찍은 사진도 제공한다. 셔터를 누른 순간에 포착한 한 장의 사진. 하지만 소설은 시와 같다. 그 시간과 그 장소, 그 사람을 초월해서 내일과 모레에도 유효하게 남아 있으며, 사진이 보여줄 수 없는 풍경 속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이야기이다. (p.197-198)

 

 적이 없는 기자, 귀찮게 하지 않는 기자, 역경(전화기 도청 같은 가벼운 것에서 파시스트들의 사형선고 같은 최악의 것까지) 가운데 살지 않는 기자가 훌륭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좋은 기자는 절대 호의적인 사람일 수 없다. 순진한 사람은 더욱 아니다. 기자에게 모든 일이 순조롭게 돌아간다는 것은 권력의 마음에 든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임무는 권력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임무는 사람들의 정치의식을 일깨우는 것이다. 권력이 항상 잠재우려 했던 정치의식을 일으키는 것이다. 기자에게는 하루하루가 워터게이트 사건이다.
 기자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치면서 문화적, 정치적 활동에 복무해야 한다. 고발하고 설명하고 항의하는 행위는 곧 문화적, 정치적 행위이다. 문화형성 과정은 언제나 정치형성 과정이다.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둘은 동일시된다. 그런데 이 이중적인 작용이 저널리즘이 아닌 어디에서 대대적으로 일어나겠는가? (p.210)

 

 나는 글쓰기를 싫어한다. 사실이다. 쓰는 것을 싫어한다. 다른 작가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게 글쓰기는 매우 고단한 작업이다. 나는 글을 잘 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진실한 책을 쓰려고 노력한다. 허접스러운 내용의 책을 내려고 아름다운 포플러나무 숲이 베어져서는 안 된다. 그리고 매끄러운 글일수록, 그러니까 쉽게 술술 쓴 글로 보일수록 더 많은 힘이 든다. 고뇌하고 번민한다. 나는 책을 쓸 때 책과 함께 자러 간다. 같이 잠들고 같이 꿈꾼다. 타자기로 작성한 텍스트를 꿈에서 보고, 내가 쓰고 있는 단락, 잘 풀리지 않는 대화나 줄거리를 읽으며 다시 글을 쓴다. 그러고 나서 아침에 일어나면 그전날 밤보다 더 피곤하다. (p.222)

 

 노년은 매우 아름다운 시기이다. 인생의 황금기다. 자유라는 특권의 사치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시기이다. 나는 어릴 때 스스로 자유롭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내 미래를 걱정했고, 수많은 사건이나 사람들에게 좌우됐으며, 실제로는 복종하며 살았다. 부모님에게, 선생님들에게, 열여덟 살부터 일했던 신문사 국장들에게……. 어른이 되어서도 자유롭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미래를 걱정했고, 악의적인 평가에 영향을 받고 지배됐으며, 내 선택의 결과를 두려워했다……. 이제 그것들이 더는 두렵지 않다. 악의적인 평가는 나를 통제하지 않으며, 미래는 걱정을 안기지 않는다. 왜 그래야 하는가? 미래는 이미 도달했다. 헛된 욕망, 부질없는 야망, 잘못된 환상을 치워버리고,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자유롭다고 느낀다. 완벽하고 완전한 자유의 상태이다. (p.261)

 

 내 자신에게 물어보는 게 옳을 것이다. 죽는 게 싫어? 나는 '그래, 무척'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인생은 험난할지라도 아름답다. 태양, 숲, 하늘, 음식과 음료의 맛, 키스의 향기…….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나는 삶을 단념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내가 배아라고 상상했을 때, 누군가 내게 "있잖아, 오리아나, 만약 네가 태어난다면, 배를 곯다가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에서 여섯 살에 죽게 될 거야. 그래도 태어날 거니?"라고 묻는다면, 나는 "네, 6년이라도 살 수 있으니까요. 그동안이라도 숲과 태양과 하늘이 어떤지 보고 삶의 냄새를 맡을 수 있으니까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가장 지독한 고통을 겪더라도 아무것도 아닌 존재보다는 나으니까. (p.264-265)

 

 나는 항상 품위에 집착했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품위 있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나는 품위 있는 삶보다 더 어렵고 더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다. 품위 있게 죽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고뇌의 진정한 시험대일 것이다. (p.266)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고요 / 홍수열 / 슬로비

 

  쓰레기매립장에서 발생하는 환경문제는 크게 4가지로 냄새, 벌레, 침출수, 매립 가스입니다.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주범들이니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죠. 이런 문제를 잘 관리할 수 있는 매립장을 위생 매립장이라고 하는데요. 우리나라는 1990년대 전까진 모두 비위생 매립지였고 제대로 된 위생 매립장은 1990년대 초에 만들어집니다.
 위생 매립장은 만들 때 침출수가 밖으로 새지 않도록 바닥에 두꺼운 비닐을 깔아요. 침출수가 비닐 위에 고이면 펌프로 퍼 올려 정화 처리 후 방류하고, 매립장 곳곳에 파이프를 박아 안에서 만들어진 가스를 밖으로 빼낸 후 태워버립니다.
 매립장에 가면 곳곳에 꽂힌 파이프와 불꽃들을 볼 수 있는데요. 매립가스에 메탄 성분이 많아 태울 수 있는 거죠. 소규모 매립지에서는 그냥 태워서 날려 보냅니다. 반면 수도권매립지나 광역지자체의 대규모 매립지는 매립가스를 모아서 발전기나 버스 연료 등의 에너지로 활용합니다. (p.65)

 

 가정에서 주로 배출하는 플라스틱 중 재활용이 가능한 재질은 PE・PP・PS・PET인데 재질별 선별 후 각각 재활용됩니다. 서로 섞이면 저마다 녹는 온도가 달라 재활용에 어려움이 있고, 제품의 성질도 제각각이라 플라스틱 강도가 약해지는 등 플라스틱 재생 원료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분리배출한 플라스틱이 모두 재활용된다고 아는 분들이 많은데 실상은 아닙니다. 대개 위의 4가지 재질 위주로 재활용되고 그 외는 재활용이 어렵습니다.
 또 선별장에서 골라내기 어려운 건 재활용되지 않고요. 빠르게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에서 재활용품이 이동할 때 손으로 일일이 선별하므로 부피가 너무 작은 건 고르기 어려워요. 재활용 가능한 재질인 칫솔이나 빨대가 막상 재활용이 안 되는 이유입니다.
 이처럼 선별되지 않은 것들은 쓰레기로 처리합니다. 선별장에 들어온 재활용품 중 적게는 30% 많게는 70%가 쓰레기로 빠집니다. 그러니까 분리배출만이 능사가 아니란 말이죠. (p.75)

 

 어차피 재활용되는데 왜 깨끗하게 버려야 하냐고요?
 우선, 재활용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에 대한 배려입니다. 우리가 버린 물건은 재질별로 선별된다고 강조했는데요. 과정마다 모두 사람 손을 거칩니다. 그러니 음식물이 묻은 채로 배출하면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의 위생 환경이 나빠져요. 위생을 위해 일회용 물티슈까지 쓰는 이들이 재활용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에겐 음식물 묻은 용기를 내놓는다면 너무한 행동이죠.
 재활용품 선별장에는 구더기가 기어 다니고, 곰팡이가 날아다닙니다. 저는 쥐 사체도 봤습니다. 대충 싸맨 똥 기저귀와 비닐봉지에 담긴 족발 뼈다귀가 들어오기도 하고요. 선별장 작업자들이 걸리는 직업병 중 하나가 '손톱 곰팡이'인데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중요한 일에 고군분투하는 분들을 위한 배려가 절실합니다.
 다음은, 재활용 비용을 줄이고 재생 원료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이물질이 많으면 재활용 공정 중 세척 비용이 증가하고 완전히 씻기지도 않거든요. 특히 고추장이나 된장 통은 시간이 지나면 내용물이 딱딱하게 굳어 용기에 들러붙죠. 재활용업체 분들 이야기로는 세척해도 잘 안 떨어진다고 하더군요. 정말 "이런 된장!" 하고 욕이 나옵니다. 세척이 제대로 안 되면 재생 원료의 품질도 낮아져요. 고품질 원료는 깨끗한 분리배출에서 시작됩니다. (p.89)

 

 일회용 컵 보증금제 도입을 위한 법률은 2020년 6월 20대 국회 막바지에 겨우 통과되었는데요. (2022년 6월 시행) 환경단체와 많은 쓰레기 덕후들이 국회를 대상으로 한 노력 끝에 이뤄낸 결실입니다. 꾸준히 일회용 컵 어택을 하고 온라인 서명을 받고 의원들에게 메일을 보냈죠. 버려진 일회용 컵에 식물을 심어 직접 국회를 찾아가 건네기도 했습니다.
 소비자의 간절한 바람 덕에 그나마 일 안 하던 20대 국회가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한 입법 과제를 처리한 거예요. 개개인의 힘은 생각보다 셉니다. (p.114)

 

 지금과 같은 상황도 지구 환경의 변화 탓 아닌가요? 많은 분들이 일회용을 정답으로 여기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초강력 흡수제가 오줌을 바로 흡수해 보송보송한 일회용 기저귀나 플라스틱 생수병이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기저귀를 오래 착용할수록 세균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지고 일회용 생수병에서 유해 물질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은 잘 모릅니다. 눈에 보이는 느낌이 아닌 실질적인 위생을 바라봐야 합니다. 일회용품 남용으로 자원 채굴량이 많아지고 쓰레기가 증가하면 환경파괴도 가속됩니다. 생태계가 무너져 새로운 세균이 더 빨리 나타나고요. 쓰레기가 제때 처리되지 않고 쌓이면 위생이 직접적으로 위협받습니다.
 위생을 위한 기본 단계는 지구 환경을 건강하게 돌보는 행위입니다. 물티슈나 일회용품은 오히려 위생적이지 않은 결과를 낳는 거죠. 코로나19 이후에도 우리는 일회용품을 줄이는 노력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위생을 보는 눈높이가 높아진 만큼 다회용기 관리도 철저히 하고요. 소비자들이 일회용품 없는 위생을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면서 말입니다. (p.118-119)

 

 2017년부터 국내 폐지 가격은 소리 없이 추락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폐지 줍는 이가 고물상에 파는 가격은 2017년 kg당 110원에서 2020년 50원으로 30% 정도 떨어졌습니다. 하루 평균 50kg의 박스를 모을 때 2017년 5,500원을 받았다면 2020년에는 2,000원도 못 받는다는 말이죠.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자료를 보면 폐지를 수집하는 노인은 노인인구의 2.9%(2017년 기준)입니다. 생계 목적으로 폐지를 줍는 노인이 20만 명을 넘는다는 사실은 노인복지의 열악한 실태를 보여줍니다. 폐지 가격을 높여 어르신들의 생계를 돕기는 시장 상황 탓에 불가능하니 노인복지 정책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쓰레기를 알아가다 보면 사회 전반의 열악한 문제들이 연결되어 있어요. 사람이든 쓰레기든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살펴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p.128-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