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 체제와 정보 기술의 원리 / 반효경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예를 들어 컴퓨터 시스템 내에서 여러 프로그램이 수행중일 때 CPU 및 메모리를 어느 프로그램에게 우선적으로 할당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CPU 스케줄링 및 메모리 관리 기법은 컴퓨터 시스템의 전체적인 성능 향상을 통한 효율성의 극대화도 중요하지만 일부 프로그램이 지나치게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형평성 문제까지 다루므로 사회적 통치 규범까지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조금 넓게 보면 컴퓨터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통치의 축소판이라고도 볼 수도 있다.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컴퓨터 세계의 통치 원리를 이해한다는 것은 실세계의 상황에 대한 해결 능력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p.14-15)
운영 체제 자체도 하나의 소프트웨어로서 전원이 켜짐과 동시에 메모리에 올라간다. 하지만, 운영 체제처럼 규모가 큰 프로그램이 모두 메모리에 올라간다면 한정된 메모리 공간의 낭비가 심할 것이다. 따라서 운영 체제 중 항상 필요한 부분만을 전원이 켜짐과 동시에 메모리에 올려놓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필요할 때 메모리로 올려서 사용하게 된다. 이 때, 메모리에 상주하는 운영 체제의 부분을 커널(kernel)이라고 부르며 이를 좁은 의미의 운영 체제라고도 부른다. 즉, 커널은 운영 체제 코드 중에서도 핵심적인 부분을 뜻한다. (p.44-45)
컴퓨터에서 연산을 한다는 것은 CPU가 무언가 일을 한다는 뜻이다. 입출력 장치들의 I/O 연산은 I/O 컨트롤러가 담당하고, 컴퓨터 내에서 수행되는 연산은 메인 CPU가 담당하게 된다. 이 때 입출력 장치와 메인 CPU는 동시 수행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B라는 프로그램이 현재 CPU를 할당받고 프로그램 코드를 수행중이고, A라는 프로그램은 하드 디스크에서 어떠한 정보를 읽어오는 작업을 수행하는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경우 두 가지 일이 다른 곳에서 발생하므로 동시에 수행되는 것이 가능하다. 한편, 각 장치마다 이를 제어하기 위해 설치된 장치 컨트롤러에는 장치로부터 들어오고 나가는 데이터를 임시로 저장하기 위한 작은 메모리를 가지고 있다. 이를 로컬 버퍼(local buffer)라고 부른다. (p.66-67)
세상에 나쁜 곤충은 없다 / 안네 스베르드루프-튀게손 / 웅진지식하우스
모든 종은 생명으로서 잠재력을 온전히 성취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은 어떤 종이 귀엽거나 유용하다, 또는 역겹거나 쓸모없다는 근시안적 판단으로 종의 다양성을 가벼이 여길 권리가 없다. 우리에게는 이 행성에 존재하는 무수한 생명을 최대한 잘 보살필 도의적 의무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눈에 보이는 가치를 창출하지 않는 생물, 털이 부드럽지 않거나 눈이 큰 갈색이 아닌 곤충, 존재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 종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p.9)
현재 지구에는 인구 한 명당 2억 마리가 넘는 곤충이 있다. 독자 여러분이 이 문장을 읽는 순간에도 세상에는 바닷가 모래알 수보다 많은 1000조에서 1경 마리의 곤충이 날고 기어 다닌다. 좋든 싫든 곤충은 우리 주위에 널려 있다. 지구는 엄연한 곤충의 행성이니까. (p.15)
잠자리의 뇌도 엄청난 시력을 뒷받침한다. 인간은 1초에 약 20개 이상의 이미지가 연속적으로 지나가면 이를 영화처럼 움직이는 동작으로 본다. 그러나 잠자리는 1초에 최대 300개까지 분리된 이미지를 보고 각각을 해석한다. 잠자리의 눈에 영화는 수많은 분리된 스냅숏 또는 장면이 지나가는 빠른 슬라이드 쇼일 뿐이다. 그러므로 영화표는 이들에게 휴지 조각이나 마찬가지다. (p.41)
마지막으로 중요한 사실은 곤충의 놀라운 번식력이다. 신이 인간에게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창세기」 1장 28절)라고 말씀하셨다는데, 이 말을 엿들은 초파리가 자기에게 한 말로 여긴 게 틀림없다. 잘 들어보시라. 초파리 암수 한 쌍을 이상적인 조건에서 1년간 키웠다고 해보자. 초파리는 1년에 25번 번식할 수 있고, 초파리 암컷은 한 번에 알을 100개 정도 낳는다. 알이 부화해 모두 성체가 되고 그중 절반이 암컷이며 짝짓기하여 각각 100개씩 알을 낳는다고 하자. 1년이 지나 25번째 세대가 되면 그것만으로도 1트레데실리온 마리의 작고 귀여운 빨간 눈의 초파리가 된다. 트레데실리온은 10의 42승, 즉 1 뒤에 0이 42개 붙는 수다. 이 수를 보다 실감 나게 표현하자면, 1트레데실리온 마리의 초파리를 한데 모아 최대로 압축해 커다란 초파리 공을 만들면 지름이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보다 긴 구체가 된다. 초파리에게 적이 많은 것은 참으로 잘된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구에는 인간이 발을 딛고 살 장소가 없을 테니까. (p.57)
이 베짱이(점박이베짱이)가 하는 일이라곤 저녁거리를 위해 노래를 부르는 것뿐이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저녁 식사가 곧장 달려와 일요일 저녁, 굶주린 영혼의 입안으로 들어간다. 도대체 무슨 노래길래 그럴까? 로미오가 발코니 아래에서 부르는 세레나데를 생각해보자. 베짱이는 자기와 아무 상관없는 종인 매미가 구애할 때 보내는 신호를 흉내 낼 줄 안다. 이 신호는 근처에서 돌아다니던 순진한 매미 수컷을 불러들인다. 노래에 이끌려 찾아가지만 사랑스러운 매미 아가씨 대신 덩치 큰 적이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기다린다. 일요일 저녁 끼니가 스스로 자신을 갖다 바친 꼴이다. 과학 용어로 이것을 '공격형 의태'라고 한다. 포식자 또는 기생체가 다른 종의 신호를 흉내 내 신호 수신자를 이용하는 행동을 말한다. (p.83-85)
거미의 경우는 전 세계 거미가 1년에 잡아먹는 곤충의 추정치가 정식으로 발표되었는데, 결코 가볍게 볼 수준이 아니다. 곤충의 다리 여덟 개 달린 친척들은 1년에 4000억에서 8000억 톤의 곤충을 먹어 치운다. 이는 어류를 포함해 인간이 소비하는 전체 육류량을 초과한다.
달리 말하면, 지구의 거미들은 1년에 인류 전체를 먹어 치우고도 남는다는 뜻이다. 거미가 사람이 아닌 곤충을 즐겨 먹는다는 사실이 참 다행이다. (p.93-94)
하지만 다음에 소개하는 큰꿀잡이새에 관한 얘기는 분명히 사실이다. 인디카토르 인디카토르(Indicator indicator)라는 적절한 이름의 이 아프리카 종은 벌꿀을 찾는 사람들을 돕는다. 이 새는 꿀과 밀랍을 모두 좋아하고, 소량의 벌 유충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독특한 행동으로 유명하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동물과 인간에게 꿀이 있는 곳을 알려주고, 자기보다 크고 강한 동물이 벌집을 부수면 노획물의 일부를 제 몫으로 챙긴다. (p.122-123)
메뚜기 떼는 주로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여전히 비정기적으로 출몰하며, 지구 육지 표면의 최대 20퍼센트까지 영향력을 미친다고 추정된다. 메뚜기 역병의 메커니즘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사이에서 일방적으로 일어나는 변신 과정과 같다. 정상적인 메뚜기는 얌전하고 수줍음이 많으며 작물에 아무 해도 끼치지 않는다. 그러나 특별한 날씨 조건하에서 수가 급증하면, 좁은 공간에서 서로 반복해서 부딪히면서 특별한 호르몬이 분비된다. 이 호르몬은 불과 몇 시간 만에 이들의 생김새와 행동 방식을 바꾼다. 메뚜기들은 몸집이 커지고 색이 검어지고 배가 고파진다. 그리고 돌연 서로에게 강하게 끌린다. 들뜬 메뚜기 무리가 크게 무리 짓고 경관을 가로질러 이동하다 다른 무리를 만나면 더 큰 무리가 된다. 떼로 다니는 행동이 굶주림으로 인한 동족 포식에 대한 대안으로 진화했다는 이론이 있다. (p.128)
딸기를 예로 들어보자. 식물학적으로 딸기는 장과가 아니고 화탁(꽃턱)이 다즙성으로 부풀어 오른 것으로 열매(식물학적으로 말하면 견과)가 점점이 박혀 있다. 딸기 바깥에 있는 깨알처럼 작은 '씨'가 진짜 열매인데, 딸기가 크고 즙이 풍부해지려면 되도록 열매가 많이 발달해야 한다. 이 '씨'가 덜 발달하면 딸기는 작고 울퉁불퉁해진다. 수분이 잘된 딸기는 400~500개의 '씨'가 있는데 그러려면 곤충이 필요하다. (p.136)
균류와 곤충, 이끼와 지의류, 세균이 이주를 마치면 죽은 나무에는 살아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살아 있는 세포가 존재하게 된다. 그러므로 아이러니하게도 죽은 나무는 우리가 숲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생명이 넘치는 존재인 셈이다. 그리고 모든 종이 각각 특별한 청소 업무를 맡는다. 각자 살고 싶고 먹고 싶은 나무가 구체적이고 명확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p.151)
토양은 중요하다. 그러나 매년 엄청난 양의 토양이 사라진다. 조깅하는 사람들이 신발에 조금씩 묻혀가기 때문이 아니다. 바람과 물에 의한 침식 때문이다. 일부는 자연적인 현상이지만, 많은 지역에서 토양 소실이 일어나는 이유는 인간이 자연 식생을 제거하기 때문이다. 땅에 식물의 뿌리가 없으면 흙은 어딘가에 단단히 붙들려 있지 못하고 바람에 날리거나 하천과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결과적으로 매년 수십억 톤의 표토층이 사라진다. 동시에 분해자 다양성까지 함께 사라진다. 다양한 분해자는 토양 영양소들을 지속적으로 회복해준다. (p.157)
생물 다양성이 낮을 때보다 온전할 때 시간이 지나면서 생태계가 더욱 안정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늘고 있다. 여기에는 종마다 각기 다른 장점이 있다는 사실을 포함해 많은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여름이 시원한 지역에서 잘 자라는 종이 있는가 하면, 구워질 정도로 뜨거운 여름 태양 아래에서 빛나는 종도 있다. 종이 감소하거나 절멸하면 자연이 작용할 수 있는 변이가 줄어들고, 우리는 자연의 변동 및 기후 변화 같은 인간이 만든 변화를 준비가 미흡한 상태로 맞닥뜨릴 것이다. (p.230)
우리 인간은 오랫동안 곤충의 서비스를 당연하게 여겨왔다. 집약적 토지 사용, 기후 변화, 살충제, 침입종을 통해 우리는 환경을 너무 빨리 바꿔왔고, 그래서 자연의 놀라운 적응력에도 곤충들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생활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우리는 이들의 건강과 안녕에 신경 써야 한다. 곤충을 보살피는 행위는 아이들과 손주들을 위한 일종의 생명 보험이다.
1초만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도 이것이 단순히 유용성이라는 가치 이상이 있음을 알 것이다. 우리가 아는 한 이 행성은 우주에서 생명이 있는 유일한 장소다. 많은 이가 우리 인간이 지구에 대한 지배를 통제하고 우리의 수백만 생물 동료들에게 작고 경이로운 삶을 살아갈 기회를 부여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말할 것이다. (p.248)
아득히 먼 옛날의 어느 시점에는 인간과 곤충의 조상이 같았다. 곤충이 인간보다 수억 년 먼저 나타났지만 우리는 좋았던 시절과 힘들었던 시절의 오랜 역사를 공유했다. 우리에게 곤충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버드대학교 교수 에드워드 윌슨은 이렇게 썼다. "진실은, 우리는 무척추동물이 필요하지만 그들에게는 우리가 필요하지 않다는 데 있다. 인간이 당장 내일 사라진다고 해도 세상은 거의 변화를 겪지 않을 것이다. …… 그러나 무척추동물이 사라진다면 인간이 불과 몇 달이나마 버틸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p.249)
긴축 / 마크 블라이스 / 부키
긴축에 항상 따라오는 낯익은 스토리는 바로 각종 사회 지출의 삭감과 그로 인한 사회 전체의 고통 분담, 특히 저소득층과 취약 계층의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생활고이며, 이로 인해 발생하게 되는 사회·정치적 불안과 갈등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로 시끄러워지고 정치적 혼란이 야기될 때마다 다시 긴축을 주장하는 이들은 이럴 때야말로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때'이며 이에 따르지 않는 이들에게 강력하고 엄혹하게 대처할 것을 주문한다.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와 심지어 기본적 인권마저 유린되는 권위주의 통치가 나타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요컨대, 국가재정의 적자와 부채가 생겨나게 된 다양한 원인에 따른 탄력적이고도 정치적으로 책임 있는 처방이 주어지는 대신, 긴축이라는 천편일률의 노랫가락과 함께 힘없는 이들만 고통을 떠안는 똑같은 비극이 벌써 몇십 년째 전 세계에서 반복되고 있다.
현재 나는 미국의 한 아이비리그 대학의 교수이다. 확률적으로 봤을 때, 나는 세대 내 사회적 이동성의 극단을 보여 주는 사례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바로 지금 위기의 근원이라 지탄받고 있는 바로 그것, 즉 국가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제할 줄 모르고 비대한 데다 온정 일변도이며 통제 불능 상태에 놓여 있다는 복지국가가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전 세계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교수가 되는 경우가 좀 더 많아져야 한다. 그래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거짓말을 못한다.
경제학자들은 자원 배분의 문제를 다룰 때 빌 게이츠가 술집에 들어가는 상황을 가정하곤 한다. 일단 빌 게이츠가 술집에 들어선 순간, 그 술집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백만장자가 된다. 모두의 평균 자산가치가 훌쩍 올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통계적으로는 사실이지만 실제로는 아무 의미 없다.
이른바 '낭비성 지출'이라는 이유로 정부 서비스를 감축할 때,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상황에 놓이는 사람이 소득분포상 최상위에 위치한 사람들일 리 없다. 오히려 1979년 이래 임금이 실질적으로 거의 오르지 않은 소득분포상 하위 40퍼센트에 위치한 사람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게 된다. 이들이야말로 실제로 정부 서비스에 의존하고 있는 사람들이고, '재정건실화'의 타격 대상인 소득에 비해 상대적으로 엄청난 규모의 부채를 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긴축정책은 일차적으로 재정 회계와 관련된 경제적 문제라기보다 분배와 관련된 정치적 문제인 것이다.
달콤한 소금 / 프랑수아즈 에리티에 / 뮤진트리
살아서 존재한다는 단순한 사실에는, 일을 넘어서, 심각한 느낌을 넘어서, 정치활동이나 모든 질서를 넘어서는 어떤 가벼움과 축복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것이 이 책에서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유일한 것입니다. 이 약간의 보너스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이며 그것이 인생을 더 살맛나게 하는 달콤한 소금입니다. (p.10-11)
이 글은 그저 단순한 인생의 에피소드를 아름답고 은혜로운 보물로 만드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보물은 끊임없이 혼자서 자라나고, 우리는 거기서 매일 근원적인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지요. 그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요? 이 들쭉날쭉한 감정의 잡동사니 안에는 분명 당신이 이미 맛보았고 또 언제나 맛보고 있는 느낌과 감동과 행복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에게는 앞으로 있을 모든 일에 동반자가 되어 당신을 응원하기 위해서라면 언제고 모습을 드러내는 순수한 추억이라는 양식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알아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의, 풍미로 가득한 푯말들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알아볼 때, 갑자기 인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풍성하고 흥미진진해지지요. 그리고 특히 당신은 이 중에 그 어떤 것도 결코 빼앗길 염려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p.74-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