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 Read Code

 

공부가 되는 글쓰기 / 윌리엄 진서 / 유유

 

 나는 작가로서, 단순히 한 문장 한 문장을 써 내려가는 과정을 통해, 즉 그 주제의 의미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추론의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이 얼마나 자주 이전까지는 전혀 몰랐던 분야의 주제를 명확히 이해하게 되었던가를 떠올렸다. 하다못해 편지 쓰기 같은 가장 단순한 방식의 글쓰기조차 얼마나 자주 불분명한 생각을 명확하게 만들어 주었던가. 마침내 나는 글쓰기와 생각하기 그리고 배움이 동일한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학생들은 종종 다른 누군가의 글을 모방하면서 죄책감을 느낀다. 남의 글을 흉내 내는 것을 비윤리적인 행위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칭찬받아 마땅한 일인데도 말이다. 또는 다른 사람의 글을 모방하면 자신의 개성이 사라질 것이라 염려한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우리는 결국 본보기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필요로 하는 것을 취한 뒤, 허물을 벗고 우리가 되고자 하는 모습이 된다. 그 이전에 언어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고 기능하는지 그 감각을 익혀 체화하지 않고는 절대 글을 잘 쓸 수 없다. 이것이 이 책의 기본 전제다.

 

 글쓰기는 사고를 명료하게 정리하고 조직하는 행위다. 글쓰기는 우리가 어떤 주제에 접근해 그것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과정이다. 글쓰기는 내가 배우고자 하는 것에 대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깨닫게 한다. 개념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창에 서린 성에를 닦아 내는 작업과 비슷하다. 흐릿하고 모호했던 개념이 글을 쓰면서 서서히 명확하게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나는 글을 쓰는 과정 자체는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침내 글을 끝냈을 때, 마치 수학 문제의 풀이 답안처럼 그 이상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완벽한 한 편의 글을 완성했을 때 커다란 기쁨을 느낀다. 글쓰기만큼 즐거움을 뒤로 미루는 작업도 없을 것이다.

 

 포츠 교수가 언급한 최근의 두 가지 교육 경향(과학기술의 사회적 책임에 더욱 깨어 있는 미래의 과학자 양성, 우리 같은 일반인이 좀 더 과학에 친숙해지도록 돕는 교육적 노력)을 들으며 내가 반가움을 느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든 걸 과학자의 '소관'에 맡겨 둔 채 막연히 위기의식만 느낀다면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인지 과정의 기적이라 할 그 순간을 경험하면서 나는 글쓰기가 망각 속에 묻혀 있던 과거를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바로 그 모습으로 현재에 불러낸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사람들은 잔뜩 허세 부리는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는 정신과 함께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문장이 이처럼 무겁고 생기 없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안에 어떤 인간도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엔 오로지 '숙고', '결론', '능력', '경향' 같은 개념뿐이다. 개념을 나타내는 명사는 글의 생동감을 죽인다. 좋은 글쓰기는 명확하고 구체적이다.

 

 "유머러스한 글을 쓰는 데 필요한 것은 대담성과 활력 그리고 유쾌함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대담성이지요."
 이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작가가 즐거워하고 있다고 독자가 믿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의 이 말을 들은 순간, 특히 문득 떠올랐다는 듯 덧붙인 다음과 같은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무언가에 세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뭐,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말이지요."
 나는 실제로 그의 인생에 즐겁지 않은 날이 많았다는 것을, 그 역시 남들 이상으로 우울과 감정적인 고통에 시달려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무려 40년 동안 매일 아침 타자기 앞에 앉아 독자들의 시름을 날려 버릴, 롤러코스터처럼 짜릿한 글을 썼던 것이다. 하기는, 세상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작가라면 어찌 행복하게만 살 수 있겠는가.

 

 이처럼 글쓰기는 종종 특별한 세계로 진입하는 유일한 통로가 된다. 모두가 그림이나 피아노나 춤에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글쓰기를 통해 예술가의 의식에 접근할 수 있고, 그가 가진 문제의식과 해법을 이해할 수 있다. 또는 또 다른 작가의 글을 통해, 가령 지금처럼 존 러셀의 글을 통해 제임스 터렐의 의식에 접근할 수 있다. 글은 우리가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복잡한 개념을 명료하게 만드는 도구다.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발견하기 위해서다. 이것이 목적지에 도달하는 '올바른' 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탐구를 계속해 나간다면 우리는 훨씬 더 편안하게 글을 쓸 수 있다. 또한 목적의식이 뚜렷할수록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수학적 모델은 '시민으로서 우리가 그 문제를 제대로 통제하고 있는가'를 성찰할 기회를 줘요. 병 속의 박테리아에 관한 한, 수학적 모델은 그것이 가정한 결과를 실제로 입증할 수 있어요. 이때의 수학적 모델은 올바른 답을 제공하죠. 하지만 하산이 지적한 것처럼 수학적 모델을 세상에 적용할 때는 신중해야 해요. 대부분의 경우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으니까요. 학생들이 단순히 수학적 계산법만으로 답을 구했다면 이처럼 좀 더 큰 이슈에 대해 고민할 수는 없었겠죠. 글쓰기 덕분에 수학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대해 고민할 수 있게 된 거예요."

 

 "아이들과 그들이 쓴 글에 대해 따로 얘기를 나누기도 해요. 만약 나중에 공학도가 되어 글을 써야 할 때가 온다면 지금 이 글쓰기 연습이 도움이 될 거라고 얘기해줘요. 도움이 되는 건 그것만이 아니죠. 글쓰기는 머릿속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좋은 방법이에요. 교실에 도착한 아이들의 머릿속은 온갖 생각으로 가득하죠.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10분 정도 글을 쓰면서 이런 생각들을 정리하면 수업 내용을 훨씬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어요. 한 동료 선생님은 그러면 수업 시간이 10분씩 줄어서 가르쳐야 할 내용을 다 전달하지 못할까 걱정하더군요. 실제로 해 보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요."

 

 아인슈타인의 본보기를 따르라. 소로의 충고("단순화, 단순화하라!")에 귀 기울이라. 어떤 분야가 됐든, 당신이 연구한 내용을 간결하고 논리적인 문장으로 표현하라. 그럼으로써 당신이 하는 연구가 남들뿐 아니라 당신 자신에게도 더욱 명확하게 이해될 것이다. 글쓰기는 당신이 실제로 무엇을 알고 있으며,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만약 당신이 모르는 부분이 있다면 당신의 지식이나 추론 과정 어디에 허점이 있는지 알려줄 것이다.

 

 "글쓰기는 사고력을 키우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개념을 글로 설명하려면 먼저 머릿속으로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글을 쓰며 머릿속에서 정리된 개념들은 더 이상 교사나 교과서 저자의 것이 아니라 글쓴이 자신의 것이 된다는 점에서 글쓰기는 자존감을 높이는 도구가 된다."

 

 생생하고 구체적인 언어로 작곡 과정을 설명하면서 세션스는 마지막으로 음악뿐 아니라 글쓰기, 회화, 조각을 비롯한 모든 예술적 창조 작업, 나아가 수학, 과학, 인문학을 아우르는 학문 영역 전반에서 이루어지는 창작 과정의 핵심 수수께끼로 우리를 이끈다. 작곡가, 화가, 작가는 창작 과정에서 스스로 설명할 수도, 재연할 수도 없는 일종의 몰입을 경험한다. 이들 못지않게 수학자, 과학자, 철학자도 글쓰기와 사유를 통해 문제의 핵심에 육박해 들어가는 과정에서 이러한 몰입을 경험한다. 결국 그들을 이끄는 진정한 힘은 그들이 완성한 작품이 아니라 그 작품을 완성하는 행위 자체에 깃들어 있다.

 

 

쫓겨난 사람들 / 매튜 데스몬드 / 동녘

 

 오래전부터 그랬다. 1800년대 중반에 뉴욕 시에서 공동주택이 등장하기 시작할 무렵, 최악의 슬럼가 임대료는 시 외곽보다 30퍼센트 더 높았다. 1920~30년대에는 밀워키와 필라델피아, 그 외 북부 도시의 흑인 게토에 있는 다 허물어져가는 주택의 임대료가 백인 동네의 더 나은 주택보다 비쌌다. 1960년대에도 주요 도시의 임대료는 유사한 주거 조건이라 해도 백인보다 흑인들에게 더 비쌌다. 빈민들이 슬럼에 모여드는 건 임대료가 싸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에게 허락된 곳이 거기뿐이기 때문이다. 특히 가난한 흑인들은 더욱 그렇다. (p.109-110)

 

 사람들이 혼자 힘으로 깊은 수렁 같은 가난을 이겨내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가족에게 의지할 수 없을 경우 모르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일시적인 유대 관계를 맺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p.226)

 

 2008년과 2009년 밀워키 경찰은 서른세 시간에 한 번씩 주거용 부동산 소유주들에게 소란부동산 소환장을 발부했다. 가장 흔한 소란 행위는 '주민과의 마찰'이었다. 하지만 이는 주거지를 떠나지 않겠다고 버티며 격론을 벌이는 사람 등, 다양한 사건에 적용되는 너무 두루뭉술한 표현이었다. 두 번째는 소음 불만이었다. 세 번째로 흔한 소란 행위는 가정폭력이었다. 가정폭력 사건의 수(이 가운데 대부분은 물리적인 폭력이나 무기와 연루되어 있었다)는 다른 모든 종류의 폭행과 풍기문란 기소, 마약 관련 범죄를 합친 것보다 많았다. 한 여성이 얼굴에 표백제를 뒤집어쓴 사건도 있었고, 역시 여성이 '음식 캔으로 머리를 맞은' 사건도 있었다. 임신한 여성을 구타한 사건도 두 건이었다. 상자 절단기・칼・총 등이 사용되었다. 어떤 사건에서는 "신고자가 자신의 남자친구가 자신에게 라이터 연료를 분사하고 종이에 불을 붙였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
 대다수 사건(83퍼센트)에서 가정폭력 때문에 소란부동산 소환장을 받게 된 집주인들은 세입자를 퇴거시키거나 앞으로 경찰에 전화하면 퇴거시키겠다고 위협하는 방식으로 대처했다. 커플 모두를 퇴거시킨다는 의미일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집주인들은 다른 곳에 사는 남성에게 학대를 당한 여성을 퇴거시켰다. (p.263-264)

 

 2층에 있는 카말라의 아파트는 컴컴한 동굴처럼 보였다. 창문은 깨져 있었고 지붕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 지지대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소방물을 뒤집어쓴 외장재에는 회색 더께가 기다란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눈이 남아 있던 지면은 재 때문에 검게 변해 있었다. 지붕널과 긴 나무조각, 뼈만 남은 가구와 다른 가재도구들, 완전히 타버린 채 소방 호스에서 나온 거품이 굳으면서 얼룩을 남긴 울퉁불퉁한 고물 자동차 같은 것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물이 얼면서 주위 나뭇가지 끝에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수천 개의 얼음 덩어리들이 맺혀 있었다. 도린은 눈을 내리깔고 앞쪽 현관에 크림색 리본이 달린 여섯 송이의 흰 백합을 바라보았다. 죽음의 겨울 속에서도 봄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p.278-279)

 

 러레인에게 무언가에 예약을 건다는 건 저금과도 같았다. "난 은행에 돈이 있는 꼴을 못 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SSI로 살아가면서도 은행에 아주 많은 돈을 넣어둘 수는 있어. 그게 1,000달러 미만이어야 하지. 왜냐면 그보다 많은 돈이면 그 돈을 쓸 때까지 수당을 삭감하거든." 러레인은 SSI의 '자원 제한'을 이야기했다. 그녀가 은행에 넣어둘 수 있는 금액은 그녀의 생각처럼 1,000달러가 아니라 2,000달러까지였다. 어쨌든 그보다 많은 금액이 있을 경우 그녀는 수당을 못 받게 될 수도 있었다. 러레인은 이 규정이 저축 의지를 꺾는 분명한 조치라고 생각했다. "내가 은행에 돈을 갖고 있을 수가 없으면 그만 한 걸 사는 게 낫지… 내가 그걸 돈 주고 사면 그건 내 꺼가 된다는 걸 알잖아. 아무도 나한테서 그건 빼앗지 못하지. 내 귀금속처럼." 하지만 이글무빙만은 예외였다. (p.296)

 

 새미나 대릴 목사 같은 사람들이 보기에 러레인이 가난한 것은 돈을 막 쓰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진실에 가까운 건 그와 정반대였다. 러레인이 돈을 막 쓰는 것은 가난하기 때문이었다.
 (…)
 러레인 같은 사람들의 삶에는 복합적인 제약이 워낙 많아서 좋은 행동 혹은 자기통제를 얼마나 많이 해야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헤어날 수 없는 가난과 어느 정도 안정된 가난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너무 멀어서, 어쩌면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자린고비처럼 굴어도 가난에서 헤어날 가망이 거의 없는지 모른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자린고비처럼 굴지 않기로 선택한다. 돈 한 푼에 벌벌 떠느니 고통에 즐거움이라는 양념을 곁들여 화려한 생존을 시도한다. 마약에 약간 취하기도 하고 술을 마시거나 도박을 하거나 텔레비전을 사기도 한다. 식료품 구매권으로 랍스터를 살 수도 있다.
 (…)
 러레인은 요리하는 걸 좋아했다. "내겐 살아갈 권리가 있어. 그리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살 권리가 있지," 그녀는 말했다. "사람들은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맨날 똑같은 것만 먹으면 질린다는 걸 모르나봐. 그러니까 난 핫도그를 말 그대로 증오해. 어릴 때 맨날 핫도그만 먹었거든.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는 거야, '어른이 되면 스테이크 먹어야지.' 이제 어른이 된 거고, 그래서 스테이크를 먹는 거지." (p.298-299)

 

 의회가 1968년에 통과시킨 공정주거법에서는 아이가 있는 가정을 보호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집주인들은 계속해서 공공연하게 이들을 거부하거나 퇴거시킬 수 있었다. 가족이 많은 집에는 기본적인 임대료 외에 '아동 피해 보증금(children-damage deposits)'을 부과하는 방식의 비용 제한을 두는 집주인들도 있었다. 워싱턴디시의 한 주택 단지는 아이가 없는 세입자들에게는 150달러의 보증금을 내게 했지만, 아이가 있는 집에는 보증금 450달러에 아이당 월 50달러씩을 더 내게 했다. 1980년 주택도시개발부는 문제의 규모를 파악하기 위해 전국적인 연구를 발주하여 임대주택 가운데 가족 단위에 아무런 단서를 달지 않는 곳은 네 곳 가운데 단 한 곳뿐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8년 뒤 의회는 마침내 아이들과 가족을 상대로 한 주거 차별을 불법화했지만, 팸이 확인했듯 이 관행은 아직도 폭넓게 퍼져 있었다. 아이들이 있는 가정이 집을 구할 때 열 번 가운데 일곱 번은 거절을 당했다. (p.312-313)

 

 "미안,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네"라는 말만 숱하게 하다가는 결국 자신이 무력한 사람으로 느껴지기 시작하고 점점 한계를 향해 치닫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니, 난 안 도와줄 거야"라고 말하는 방법을 찾음으로써 반사적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려 한다. 난 널 도울 수가 없다. 그러니까 난 널 도움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으로 여길 거다.
 흑인 동네에 있는 목사와 교회의 부인들, 사회복지사와 정치인들, 교사와 이웃들, 경찰과 가석방담당관들은 당신이 그렇게 하는 것이 옳고, 이런 어린 흑인 애들에게 필요한 건 가혹한 손길이라고 말하곤 한다. 매를 아끼지 마라. 이렇게 생존을 위해 시작된 일이 문화라는 이름으로 지속되었다. (p.327-328)

 

 20세기 초반 몇 십년 동안 자유와 번듯한 일자리를 원했던 아프리카계 미국인 가정들은 대이동(Great Migration) 물결에 참여하여 남부의 시골에서 시카고・필라델피아・밀워키 같은 도시들로 대거 이동했다. 이들은 도시의 게토에서 바글거리며 모여 살았고, 대다수는 임대업자들이 빌려준 집에서 살았다. 게토의 집주인들에게는 특정 인종으로 한정된 포로나 다름없는 세입자 집단이 있었고, 무너져가는 집을 손봐줄 이유가 전혀 없었다. 이들은 가지고 있는 부동산을 간이 주방이 딸린 작은 집들로 나누기 시작했고, 합판 벽을 얼마나 많이 세웠는지 아파트는 '토끼 사육장'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난방과 제대로 된 배관이 안 된 집들이 많았다. 그래서 흑인 가정들은 겨울 코트를 입고 요리를 해서 먹었고, 옥외 변소나 직접 만든 화장실에서 볼일을 봤다. 이들은 기침 소리만 들어도 결핵 환자인지 알 수 있었다. 1930년 밀워키에 사는 흑인의 사망률은 도시 전체 사망률보다 60퍼센트 가까이 높았는데, 대체로 불량한 주거 환경이 원인이었다. 뉴딜 정책은 미국 역사상 최초로 백인 가정에 내 집 장만이 꿈이 아닌 현실이 되게 해주었지만, 흑인 가정들은 이런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연방정부가 흑인 동네는 너무 위험해서 보험이 포함된 모기지를 적용하지 못하게 한데다, 짐크로(Jim Corw)에 충실한 관료들이 흑인 퇴역 군인들은 군인 모기지를 이용하지 못하게 막았기 때문이었다. 300년에 걸쳐 체계적으로 토지에서 흑인들을 몰아낸 결과 반영구적인 흑인 임대 계층이 만들어졌고, 도심 빈민가 아파트의 수요는 인공적으로 높게 유지되고 있다. (p.342-343)

 

 "나아지지 못했군요," 판사가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좀 솔직히 말해서 전 그때 이후로 상황이 좋아진 게 있는지 모르겠어요. 이후 일어난 일들을 보면, 그러니까 집에서 쫓겨나고 여기저기 전전한 걸 보면 조금 더 나빠졌다고 할 수 있겠죠."
 판사의 말을 추리면 이런 거였다. 우리는 모두 당신이 그 폭력적이고 상처 주는 행동을 했을 때 가난하고 겁먹은 상태였다는 건 알겠다. 당신이 스프 냄비를 다시 채우고 엎질러진 냉동 요구르트를 걸레로 훔치면서 올드컨트리뷔페에서 한 주에 닷새씩 계속 일을 했더라면 지금 여기에 우리가 모여 있는 일은 없었을 거다. 만일 그랬다면 당신은 돈을 모아서 마약상 대신 안전한 학교가 있는 동네의, 납이 제거된 깨끗한 아파트로 옮길 수 있었을지 모른다. 시간이 흐르면 발작을 자주 일으키는 보보에게 필요한 치료를 받게 해줄 수도 있었을 것이고, 항상 바라던 대로 간호사가 되기 위해 야간 수업을 듣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누가 알겠는가, 당신은 실제로 간호사가, 유니폼을 입고 모든 것을 갖춘 진짜 간호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럼 당신은 당신의 엄마가 당신에게 준 것과는 차원이 다른 유년기를 아이들에게 줄 수 있었을 것이다. 만일 그런 상황이 되었다면 당신은 고개를 높이 쳐들고 이 차가운 도시를 당당하게 걸어다녔을 것이고, 어쩌면 마침내 당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당신에게 강도질을 하라고 총을 빌려주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당신을 도와주는 남자나 최소한 문을 부수고 들어와 아이들 앞에서 당신을 구타하지 않을 남자를 만날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느꼈을지 모른다. 어쩌면 당신은 안정된 직업을 가진 누군가를 만나 작은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을 수도 있다. 신랑 앞에는 켄들이 자랑스럽게 서 있고, 당신이 항상 꿈꾸던 대로 템비는 화려하게 옷을 입혀 화동을 시키고, 보보는 활짝 웃는 모습으로 반지를 들고 아장아장 걸어다녔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부터 당신의 신랑은 당신을 '내 아내'로 소개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현실이 아니었다. 현실에선 당신의 근무시간이 단축되었고, 전기가 끊기기 일보 직전이었으며, 당신과 당신의 아이들은 집에서 쫓겨날 참이었고, 당신의 친구가 지나가는 여성의 얼굴에 총을 겨눈 상태에서 당신은 그녀의 지갑을 빼앗았다. 그리고 만일 범죄의 원인이 가난이라면, 당신이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당신은 그때도 가난했고 지금도 가난하다. 우리 모두 근본적인 원인을 알고 있고 이 법정에서 매일 그걸 확인하지만, 사법 시스템은 자선기관도, 취업 프로그램도, 주택당국도 아니다. 우리가 잡초를 뿌리까지 뽑아낼 수 없다면 최소한 줄기 아래쪽을 잘라낼 수는 있다. (p.361-363)

 

 미국은 우리 자신과 가족,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번영시킬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가능하려면 우리에게 안정된 집이 필요하다. 게스트하우스의 영구주택 프로그램으로 적당한 가격의 아파트를 제공받은 스콧은 헤로인을 멀리하고 노숙인들을 위한 주거 관리인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며, 독립적인 삶을 위해 노력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그는 안정된 주거지에서 술과 마약을 멀리한 채 살고 있다. 힝스턴네 사람들은 어떤가. 말릭 주니어가 태어난 뒤 패트리스와 도린은 결국 인구 만여 명의 테네시 주 브라운스빌로 옮겼다. 그곳에서 이들은 침실 세 개짜리 좋은 집을 구했다. 패트리스는 그 쥐구멍만 한 집을 벗어나 고졸학력인증서를 땄고, 선생님을 크게 감명시켜 올해의 성인 학습자라는 영예까지 안았다. 패트리스는 지역 커뮤니티 칼리지에 등록해서 언젠가 가석방담당관이 되겠다는 꿈을 안고 컴퓨터와 형사행정학 수업을 온라인으로 들었다. 그녀는 이런 말을 반쯤 농담 삼아 즐긴다. "나한테 있는 많은 범죄자 친구들한테 곧 내 도움이 필요할 거야!"
 미국의 끈질기고 잔혹한 가난은 사람들의 용기를 빼앗고 해법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스콧과 패트리스가 보여주듯 좋은 집은 가장 든든한 발판이 될 수 있다. 살 곳이 생긴 사람들은 더 좋은 부모가, 노동자가, 시민이 된다.
 알린과 바네타가 소득의 70~80퍼센트를 임대료로 갖다 바칠 필요가 없다면 이들은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길거리에 나앉지 않게 지킬 수 있을 것이다. 한 동네에 정착하여 한 학교에 아이들을 등록시키고 친구들과, 롤모델과, 선생님들과 오랜 관계를 형성할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저축 계좌를 만들거나 아이들에게 장난감과 책, 어쩌면 가정용 컴퓨터를 사줄 수 있을지 모른다. 임대료를 구하느라, 퇴거를 지연시키느라, 노숙자가 되었을 때 새로운 거처를 찾느라 쏟아붓는 시간과 감정적 에너지는 커뮤니티 칼리지의 수업이나 운동, 괜찮은 일자리 찾기, 어쩌면 괜찮은 남자 찾기 같은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해줄 수 있는 것들에 대신 사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 상황은 "더 나은 것을 위해 태어난 사람들을 빈곤으로 격하시킨다." 거의 한 세기 동안 미국 내에는 가구별로 소득의 30퍼센트 이상을 주택에 지출해서는 안 된다는 폭넓은 합의가 있었다. 최근까지도 대부분의 임차가정들은 이 목표를 달성했다. 하지만 밀워키에서, 그리고 미국 전역에서 시대가 바뀌었다. 미국에서는 매년 자신의 집에서 퇴거당하는 사람이 수만 명도, 수십만 명도 아니고 수백만 명에 달한다. (p.399-400)

 

 미국은 인간에게는 '생명과 자유, 행복 추구 같은 어떤 양도할 수 없는 권리'가 있다는 숭고한 이상을 발판으로 건국되었다. 양도할 수 없는 이 세 가지 권리(이는 미국인의 성격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보니 건국자들은 이를 천부의 권리로 볼 정도였다)는 모두 안정적인 집이 있어야 실현 가능하다.
 생명과 집은 워낙 불가분의 관계라서, 하나가 없는 다른 하나를 생각하기는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집은 프라이버시와 개인적 안정을 마련해준다. 보호와 양육의 기능도 맡는다. 자유라는 이상에는 항상 종교적 자유와 시민으로서의 자유뿐 아니라 번영의 권리, 즉 어떤 종류의 선택을 하든 간에 생계를 꾸리고 새로운 기술을 습득・개발할 권리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안정된 집은 우리가 자립을 위해 노력하고 개성을 표출할 수 있게 유급 일자리를 찾고 개인적인 자유를 만끽할 수 있게 해준다.
 행복은 어떤가? 행복은 알린이 조리에게 새 운동화를 사줄 수 있게 되자 조리의 얼굴에 번지던 미소 속에, 그럴싸한 요리로 식사를 차릴 수 있게 된 러레인이 흥얼거리던 교회 찬송가에, 훈훈한 장난 뒤에 힝스턴네 집에서 터져 나오던 웃음 속에 깃들어 있었다. 행복의 추구에는 물질적 안녕의 추구, 그러니까 최소한 기본적인 생필품의 확보가 포함된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이 땅에서 가난이 확산되고 안정된 기본 거처를 모든 시민에게 제공하지 않기로 집단적인 결정을 내리면서 얼마나 많은 행복이 유실되었는지, 얼마나 많은 능력들이 공중분해되었는지를 생각하면 기가 막힐 뿐이다.
 우리는 기본적인 노인 복지와 12년간의 공교육, 기초 영양 공급이 모든 시민의 권리임을 인정한다. 인간의 존엄은 이런 근본적인 인간 필요의 충족에 좌우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거가 인간에게 근본적인 필요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기본적인 조건이 충족된 적정 가격의 주택은, 미국에서 만인의 기본권이 되어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안정된 쉼터가 없으면 모든 것이 다 허물어지기 때문이다. (p.406-407)

 

 어째서 어떤 사람들은 공책과 펜을 든 낯선 사람 앞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놓는지, 어째서 문을 열고 나를 안으로 들이는지 그 진짜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노숙 위기에 몰린 세입자들의 경우 자동차와 전화 같은 걸 얻어 쓸 수 있다는 물질적인 혜택과 심리적인 이득 같은 게 있었다. 몇몇은 나를 자신들의 정신과 의사라고 부르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또 다른 진실도 있다. 삶의 밑바닥까지 내려간 어떤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들에겐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한다. 스콧이 두어 달 술과 마약을 끊고 지냈던 알데아 갱생원에서 어느 날 저녁 그는 내가 공책에 휘갈겨 적는 모습을 지켜보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알코올중독자 갱생회의 여사제 안나 알데아에게 물었다. "맷이 여기 있으면 신경 쓰이지 않아요?"
 "망할, 신경은 무슨 신경," 안나는 말했다. "내 인생은 펼쳐진 책이나 마찬가지야."
 그러자 스콧이 이렇게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예요. 있잖아요, 나한텐 자존심 같은 건 눈꼽만큼도 남아 있지 않아요." (p.428-429)

 

 밀워키에서는 사람들이 내게 먹을 걸 사주면 나도 사람들에게 먹을 걸 사줬다. 사람들이 내게 선물을 사주면 나도 선물을 사줬다. 한번은 힝스턴네 사람들이 보일러를 고칠 수 있는지 봐달라며 나를 지하실로 내려 보낸 적이 있었다. 내가 수확 없이 돌아왔을 때는 생일 케이크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알린은 내게 쿠키 한 통과 웃긴 노래가 나오는 카드를 사준 적이 있었다. 우린 그걸 내 차에 놔두고 웃고 싶을 때면 열어보곤 했다. 스콧은 노숙자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 큰아들 생일이 되면 생일 카드에 10달러 지폐를 끼워서 보내준다.
 현장연구자에게는 현장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운 게 떠나는 것이다. 그리고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보다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을 받았을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가 더 어려운 윤리적 딜레마다. 난 밀워키에서 만난 사람들이 베풀어준 셀 수 없는 선의의 행동으로 축복이 뭔지 알게 되었다. 그 모든 행동은 이들이 고난 앞에 무릎 꿇기를 얼마나 우아하게 거부하는지를 내게 상기시켜 준다. 가난이 아무리 만연했다 해도 그들의 뿌리 깊은 인간성까지는 건드리지 못했다. (p.451-452)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 아툴 가완디 / 동녘사이언스

 

 사람들이 외과의들을 빈정대며 하는 말이 있다. "때로 틀린다. 하지만 절대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말이 내게는 힘으로 느껴졌다. 날마다 외과의들은 불확실한 것들과 대면한다. 정보는 불충분하고, 과학은 모호하고, 자신의 지식과 능력은 결코 완벽하지 못하다. 가장 간단한 수술조차 성공적으로 끝난다고, 아니 환자의 생명이 무사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처음 수술대 앞에 섰을 때 나는 이 수술이 환자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모든 과정이 예정대로 잘 진행되고, 지혈도 잘 되고, 감염이나 장기손상도 없을 것임을 의사가 어떻게 알까 궁금했었다. 물론, 의사는 모른다. 그래도 그는 가른다. (p.27)

 

 나는 아직도 그날 내가 뭘 다르게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 이후로 중심정맥관은 잘 들어갔다. 연습이라는 건 그런 점에서 요상했다. 몇 날 며칠이고 부분부분, 조각조각만 잡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전체가 잡히는 것이다. 의식적 학습이 무의식적 지식이 되기까지 정확하게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는 알 수 없다. (p.35)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의 연구는 상당히 희망적인 소식을 전해 주었다. 의대실습생이든 레지던트든 관록 있는 전문의든 간호사든 간에 실습과정에 좀더 계획적으로 접근하고 경과를 면밀히 관찰기록하는 등 잘만 하면 학습곡선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연구의 다른 내용들은 덜 고무적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의사라도 새로운 기술을 시도할 때는 정상궤도까지 올라오기 전에 일단 곤두박질쳤으며, 학습곡선은 예상보다 길었고,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여러 가지 요소들의 영향을 받았다. (p.46)

 

 하버드 소아외과의 루시앙 리페(Lucian Leape)는 의료과실에 대한 연구 보고서에서 "전문가들은 문제해결을 점점 자동화시켜 가는 것이 특징이다."라고 썼다. 반복을 거듭하게 되면 많은 정신작용이 무의식화되면서 노력을 요하지 않게 된다. 우리가 매일 다니는 길을 운전할 때 기계적으로 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반면 새로운 상황은 대개 의식적 사고와 새로운 상황별 해결법을 요하는데, 새로운 해결법은 개발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실행하기도 어렵고, 과실을 범하기도 쉽다. (p.59-60)

 

 위험한 소수 의사들에 국한되어 과실이 일어난다면 의료소송도 소수집단의 의사들에게만 집중되어 나타나야 할 것이나 실제는 균일한 종 모양의 분포도를 보인다. 대부분의 외과의들은 의사생활 중 적어도 한 번은 소송을 당한다. 특정 종류의 과실에 대한 연구들 역시 상습범이 문제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병원 환자들을 돌보는 거의 모든 의사들이 매년 중대한 과실을 범하며 심지어 직무태만을 범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의사들은 언론에서 끔찍한 의료사고가 또 났다며 떠들어댈 때도 좀처럼 분개하지 않으며, 대개 보통 사람들과 다른 반응을 보인다. 자신의 일이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나쁜 의사들을 환자들로부터 차단시키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좋은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을 막느냐 하는 것이다. (p.81)

 

 요통과 팔 통증에만 비신체적인 요인이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 상황은 만성 골반통, 측두하악관절 장애, 만성 긴장성 두통 등 수많은 만성통 증후군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연구결과를 만성통 환자들이 꾀병을 부린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멜작의 보고가 말해 주듯 신체적 손상에서 발생되지 않은 통증이라고 해서 신체적 손상에서 발생된 통증보다 현실감에서 전혀 덜하지 않으며, 뇌에서는 둘다 똑같다. 만성통에 대한 지각있는 접근법은 신체적인 좌표뿐 아니라 사회적 좌표까지 연구하는 것이다. 만성통의 해결책은 우리 몸 안에서 진행되는 것보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에 달려 있을 가능성이 더 많기 때문이다. 통증에 대한 새로운 이론이 은연중에 끼친 영향 중에서 가장 묘하고도 광범위한 것은 통증을 정치적인 것으로 만들어 놓은 것인 듯싶다. (p.175)

 

 칼럼쓰기는 내 생활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레지던트 생활은 사람을 완전히 녹초로 만드는 아주 고된 일이다. 온갖 종류의 서류 일과 시도때도 없이 울려대는 호출기, 만성적인 수면부족에 시달리다 보면 지금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그 중요성을 잊어버릴 수 있다. 그런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일주일에 몇 시간이나마 지금 자리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내가 하는 일의 중요성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다. (p.362-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