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러시에 낀 먼지를 떼어낸다는 것은 / 요리후지 분페이 / 안그라픽스
데생도 숙달되면 평범한 종이 한 장이 무한한 깊이를 가진 공간처럼 느껴진다. 내가 입체를 다루는 제품 디자인이나 건축이 아니라 평면을 다루는 그래픽 디자인을 하게 된 것도 그런 텅 빈 하얀 공간을 좋아해서였다. 일하는 것처럼 보여도 어쩌면 나는 그 하얀 평면에서 놀고 싶은 것뿐일지 모른다. (p.22)
나는 로트링을 손질하거나 하이브리드의 펜촉을 돌리면서 잉크가 종이에 스며드는 모습을 지켜보곤 한다. 이 작은 행복, 이 시간만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돈을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로트링을 손질하며 작은 행복을 느끼다가 언젠가는 굶어 죽을 것이다. (p.38)
보통은 직장에 새로운 직원이 오면 어디에서 왔느냐, 열심히 해라 같은 대화를 나누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건 일본에서나 해당하는 이야기일까. 프랑스인 요리사들은 타국에서 온 요리사를 완전히 무시한다. 프랑스어를 못해도 도와주거나 봐주지도 않는다. 지은이는 어떻게 해서든 일을 배워서 자신이 맡은 바를 완수하지만, 온종일 그 누구하고도 대화를 나누는 일 없이 집에 돌아온다. 마음이 가장 편해지는 시간은 브러시에 낀 먼지를 깨끗하게 제거할 때뿐이었다고 회상한다. (p.167)
디자인 일에서는 사진을 다루는 경우도 많다. 가장 다루기 어려운 사진은 안개가 드리워 바다가 희미하게 보이는 사진이다. 희미한 음영의 아름다움은 해상도가 높지 않으면 재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품질을 유지하면서 인쇄물로 만드는 데는 고도의 기술과 경험이 필요하다.
복잡한 이야기는 이런 사진과 같다. 복잡한 이야기를 알기 쉽게 한다는 말에는 사진을 흑백으로 인화해 흰색과 검은색으로만 나누는 것과 같은 난폭함이 있다. 그러면 바다의 수평선은 확실하게 보일 것이다. 대신 그 사진이 본래 가지고 있던 음영은 사라진다. (p.182)
어쩌면 '알기 쉽게 전한다는 것'에는 '그 훌륭함을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 내포되어 있을지 모른다. 어떤 것을 '안다'는 말도 달리 표현하면 그것을 '좋아하게 된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p.192)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 제현주 / 어크로스
나 역시 일해온 시간만큼 내 안의 수많은 모순된 욕망과 씨름해왔다. 일을 좋아하지만 일만 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돈을 잘 벌고 싶었지만 돈이 아니라면 의미 없을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배울 것이 있는 일에 구미가 당겼지만 너무 어려워 실패가 뻔한 일은 싫었다. 모두에게 열심을 다그치는 세상에 화가 나지만 더 잘하고 싶어 자신을 다그치기도 한다. 모순투성이 마음인 걸 안다. 그 속에서 균형의 지점을 찾아내려고 여전히 씨름 중이다. 이 씨름은 일하면서 살아가는 한,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매슬로의 이론은 세상의 상식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일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상의 상식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다. 세상이 말하는 우선순위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세상이 내 인생의 결정에 권력을 행사하도록 내버려두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다각적인 욕구와 그 사이의 우선순위, 그리고 그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것이다.
무슨 일을 어디서 누구와 얼마나 오랫동안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 재미있는 일을 원한다면 나는 어떤 것에서 가장 큰 재미를 느끼는가? 나는 어떤 상황을 가장 견딜 수 없어하는가? 돈을 벌어야 한다면 얼마를 벌어야 하는가? 나에게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어째서 그것을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가?
좋아하는 일이라고 모든 면이 좋은 것도 아니다. 어떤 일을 좋아하는 일이라고 부르면서도 '그래도 싫은 부분'을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다면 아직은 그 일을 잘 모르는 것이다. '그 좋아함이 성립하는 조건'을 충분히 구체적으로 규정할 수가 없다면 '좋아한다고 지금 생각하는 일'일 가능성이 크다. 열정이나 꿈, '좋아하는 일' 같은 말이 절대적 목표인 양 추구되니, 일의 리얼리티 앞에서 모두가 속수무책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말은 그래서 위험하다. 그 일이 놓인 조건, 일이 포함하는 다양한 활동, 그 안에서 맺게 되는 관계를 아우르며 총체적으로 일을 바라보아야 한다. 일이 놓인 조건에 만족하는 것과 일 자체에 만족하는 것은 다르지만 그 둘은 늘 서로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 손열음 / 중앙북스
또, 가지고 태어난 탓에 쉽게 논리를 설명하기 힘든 다른 재능들에 비해, 누구에게라도 상세하게 그 원리를 설명해 줄 수 있을 정도로 꼭꼭 씹어 삼킨 능력엔 또 다른 자신감이 붙었다.
단단한 영어공부 / 김성우 / 유유
반면에 언어학습에서 생태적 접근을 추구하는 관점에서는 언어를 금이나 석유 같은 자원보다는 대자연과 같은 환경에 가깝게 봅니다. 이에 따르면 언어는 취해야 할 자원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으로, 특정 언어와 학습자를 소유가 아니라 관계(relation)의 관점에서 파악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계를, 산과 바다를 소유할 수 없듯 언어는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누리는 것입니다. '누림'이 학습의 중심이 된다면 많이 가지고 적게 가지고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더 많이 소유하려 조바심을 낼 필요도 없습니다. 세계는 언어로 충만하고 우리는 그것을 잘 누리면 되니까요. 중요한 것은 그 언어와 내가 엮이는 방식, 내가 그 언어를 통해 하고자 하는 일, 그 언어가 나의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결국, 내 삶과 해당 언어가 맺는 관계를 살펴야 합니다.
원어민이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널리 사용되지만 파이크데이의 말대로 '죽은' 개념일 때가 많습니다. 우선 실제로 누가 원어민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사회적,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위해 만들어진 비현실적이고 애매모호한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원어민' 개념이 사회적으로 힘을 가질 때, 나아가 '원어민'과 '비원어민'이 명확히 구분되는 상황에서 특정 집단은 이익을 봅니다. 원어민은 '고급 상품'으로 포장하고 비원어민은 언제까지나 부족한 존재로 그리며 학습법을 홍보하는 이들이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것이지요. 이는 영어 교수법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정확성과 형식은 지나치게 강조하는 반면, 언어학습이 더 깊이 추구해야 하는 목표인 의미와 소통을 등한시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하지만 공부의 본령은 언제나 과정에 있습니다. 외국어 공부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광고에 흔들릴 필요가, 조바심 내고 초조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루하루의 공부 속에서 소박하지만 단단한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일. 공부에는 그 길뿐입니다.
식사에 대한 생각 / 비 윌슨 / 어크로스
개인이 하는 음식 선택의 이면에는 그 누구도 요청한 적이 없는 경제적 환경이 자리하고 있다. 근처에는 신선 식품을 파는 가게도 없고 점심에 사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곤 샌드위치와 자판기 과자밖에 없는 콜센터에 갇혀 일하고 있다면 포크로 투표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사실상 우리가 섭취하는 대부분의 음식은 우리가 통제할 수도 없고 그저 희미하게 알고 있을 뿐인 공급의 힘이 우리 목구멍에 밀어 넣는 것이다. 여러모로 음식에 대한 우리의 선택은 경제적 조건에 따라 형성되고 제한된다. (p.139)
세 아이를 둔 나의 지인은 "우리 가족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고도 지출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항목이기 때문에 식품비를 아끼는 것"이라고 말한다. 부동산 담보대출, 자동차 주유비, 아이들의 교복 값, 보험료, 세탁기 수리비, 휴대전화 다섯 대의 요금, 신발 다섯 켤레와 겨울 코트 다섯 벌을 비롯해서 다섯 개씩 준비해야 하는 다른 모든 생활용품 등의 생활비 항목은 대개 고정되어 있어 줄일 수가 없다. 하지만 식품비는 여기저기서 허리띠를 졸라 줄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항목 중 하나다. 이런 가구는 대형 브랜드의 자체 생산 티백과 냉동 채소를 구매하고, 방목해서 기른 닭고기 대신 가장 저렴한 닭고기를 선택한다. 예산이 빠듯할 때 어른들은 특가로 나온 아무 식빵에나 땅콩버터와 잼을 발라 며칠간 점심을 때울 수도 있다. 딱히 이 빵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빠듯한 예산에서 몇 푼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음식은 연료야"라고, 그녀는 말한다. (p.174)
도시에 거주하는 전 세계의 부유층 사이에서 육류 문화에 등을 돌리고 주요 곡물과 채소로 돌아가 새로운 식습관을 실험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삶이 점점 풍족해지고 기근의 공포에서 벗어날수록 사람들은 주식에서 멀어지고 고기 같은 과거의 고급 식품을 선호하게 된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보다 더 풍족해지고 건강에 더 많은 관심을 쏟기 시작하면 값싼 육류는 전과 같은 인기를 잃고 부유층은 5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갑자기 이들은 작은 혼합 씨앗 한 봉지에 상상 이상의 돈을 지불하려 하고, 조와 귀리 같은 과거의 여러 주요 식품이 값비싼 건강식품으로 재탄생한다. (p.185)
음식과 사랑은 절대 따로 떼어놓을 수가 없다. 항상 아이의 부탁을 거절할 수밖에 없는 저소득 가정에서 저렴한 스낵은 아이에게 보상을 제공할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사회학자 프리야 필딩 싱(Priya-Fielding-Singh)은 다음과 같이 썼다. "가난한 삶은 청소년기 자녀의 요구에 '예스'라고 답할 기회를 저소득층 부모에게서 빼앗아간다. 그 요구는 새 신발을 사달라는 것일 수도, 디즈니랜드로 놀러 가자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음식은 중요한 예외일 수 있다. …… 없는 돈으로도 치토스 한 봉지는 거의 항상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p.243-244)
하지만 식품 트렌드에 대한 이야기가 아무리 하찮게 들릴지라도 유행에는 우리 모두의 생활방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이 있으며, 그건 그 유행이 아보카도 토스트처럼 그리 대단치 않아 보일 때에도 마찬가지다. 입맛의 변화는 소비자뿐만 아니라 음식을 생산하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유행하는 음식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은 농부나 소비자에게 좋지 않은 경우가 상당히 많다. '슈퍼푸드'라는 이름으로 광고되는 식품 중에 실제로 특히 몸에 좋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그리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식단을 바꾸면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난다. 마치 노 젓는 배의 맨 끝에서 너무 많은 사람이 일제히 일어나면 배가 뒤집히는 것과 같다. (p.265)
최근 큰 인기를 끈 새로운 식품들은 대개 그저 마케팅에 돈을 많이 쓴 상품일 뿐이다. 영양학 교수인 매리언 네슬레(Marion Nestle)는 식품 산업이 과학자와 블로거에게 돈을 주고 다른 식품에 피해를 입혀가며 특정 식품을 홍보하게 한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피스타치오가 모든 견과류 중에서 가장 몸에 좋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온다면 그 기사에서 언급한 정보와 '연구'는 피스타치오 업계의 돈을 받고 나온 것일 가능성이 높다. (p.291)
연구에 따르면 히스패닉 어린이와 아프리카계 어린이는 백인 어린이에 비해 과자류와 탄산음료 광고를 두 배 더 많이 본다. 식품 브랜드는 탄산음료와 시리얼 TV 광고에 흑인 배우나 라틴계 배우를 내보내면 브랜드 충성도를 파격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이 인종 집단의 경우 백인이 장악하고 있는 주류 미디어에서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 나오는 광고를 보는 것이 비교적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p.320)
시리얼 상자에서 만화 캐릭터를 없앤 것은 비만을 유발하는 식문화를 전면적으로 공격한 칠레의 여러 식품법 중 하나일 뿐이다. 이러한 규제를 이끈 사람은 소아과 의사 출신인 칠레의 상원의원 귀도 지라디(Guido Girardi)였다. 그는 정크푸드에 들어 있는 설탕을 "이 시대의 독약"이라고 묘사하면서 2007년부터 더 엄격한 식품법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벌였지만 법안은 기업 이익 때문에 통과되지 못하고 계속 지연되었다. 칠레에서 마침내 엄격한 식품법이 승리를 거두자 지라디는 "힘겹게 싸워 이긴 게릴라전"이라고 묘사했다. 이제 칠레의 학교에서는 더 이상 초콜릿이나 감자칩 같은 초가공식품을 판매할 수 없다. 킨더(Kinder) 사에서 만든 달걀 모양의 초콜릿은 학교 안팎에서 전부 판매가 금지됐다. 제품 안에 들어 있는 장난감이 설탕 섭취를 유인하기 때문이다. (p.432)
칠레는 식품 라벨을 더욱 명확하고 분명하게 만들기로 결정했다. 칠레의 라벨 제도는 2014년 맛이 첨가된 우유와 설탕 함유량이 높은 요구르트, 아침 식사용 시리얼 같은 어린이 식품에 경고 라벨을 붙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단순한 육각형 모양의 라벨에는 "경고: 설탕 함유량 높음", "경고: 소금 함유량 높음", "경고: 포화지방 함유량 높음", "경고: 칼로리 높음"이라고 쓰여 있다. 칠레 정부는 자국 시민에게 무서운 트롤의 존재를 경고했다. 미국 식품 라벨의 기준에서 보면 칠레의 식품 라벨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믿기 힘들 정도로 직설적이었다. 뉴욕 대학에서 식품정책을 가르치는 매리언 네슬레는 칠레의 이 조치를 "대단히 충격적"이라고 묘사했다. 하지만 지라디와 칠레의 다른 공중보건 로비스트들이 보기에 칠레의 라벨은 여전히 부족했다. 지라디는 이 라벨을 "쓰레기"라고 불렀다. 그가 보기에 충분히 폭넓은 식품에 적용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제조업체들이 경고 문구를 빨간색이나 파란색, 초록색처럼 많은 소비자에게 긍정적인 연상을 일으키는 색깔로 인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p.433-434)
하지만 새 식품법이 식품업계를 행동에 나서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칠레에서 판매되는 식료품의 거의 20퍼센트(1500개 이상)가 무시무시한 블랙 라벨을 피하기 위해 설탕과 지방을 줄였다. 코카콜라는 현재 칠레에서 판매 중인 음료의 65퍼센트가 전보다 설탕을 줄인 음료라고 말했다. (p.435)
단 한 곳의 학교에서만 식문화를 바꿔도 교실을 넘어 멀리 퍼져나가는 파급 효과를 낼 수 있다. 처음으로 테이스트에드를 연 2017년 여름의 어느 금요일, 워싱버러 아카데미의 교사들은 여섯 살과 일곱 살 아이들에게 서로 다른 품종의 사과를 살펴보고 빨간색인지 초록색인지, 표면이 빛나는지 칙칙한지, 단단한지 물컹한지를 묘사해보게 하고는 아이들과 함께 사과들을 맛보았다. 주말에 아이와 장을 보러 갔던 학부모들은 월요일 아침에 학교에 연락해, 아이들이 사탕을 사달라고 조를 때처럼 열렬하게 여러 종류의 사과를 사달라고 졸랐다는 이야기를 했다. (p.443-4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