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 / 김원영 / 문학동네
초라하고 폐쇄적인 내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때면 쓸모없는 상상을 했다. 어린 시절부터 도시에서 공교육을 받았다면 다르지 않았을까? 방에서만 생활했더라도 우리 할아버지가, 이를테면 한문학자였다면? 그에게서 나는 어떤 종류의 문화적 전통을, 최소한 한자를 읽는 방법은 배웠을 테다. 그 작은 동네에 프랑스인 선교사가 방문해 우연히 마을에 사는 장애인 소년을 보고 프랑스어라도 가르쳐주었다면? 혹은 삼촌이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며 학생운동에 참여하느라 다락방에 온갖 급진적이고 불온한 책들을 쌓아두기라도 했다면?
어린 시절을 지적,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보내는 일은 중요하지만, 나의 불만은 ‘능력’에만 집중한 결과였다. 춤과 연극 공연을 하고, 워크숍에 참여해 몸을 쓰며 다른 몸을 만나는 일이 늘어갈수록 어린 시절부터 내 몸에 깃든 오랜 힘을 자각한다. 아픈 나를 어머니와 아버지, 할머니가 안아주고, 쓰다듬고, 업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그들은 내 안에 무엇인가를 남겨주었다. 베토벤을 즐겨 듣는 사람이 아니어도, 한문학자가 아니라도 돌보는 몸은 돌봄을 받는 몸에게 자기보다 더 큰 힘을 전해준다. 청소년기를 보낸 특수학교에서, 장애가 있는 우리는 원어민 선생님에게 외국어를 배우거나 미술관에서 그림을 본 적은 없어도 각자의 몸짓과 말하기 방식, 삶을 향한 독특하고 드문 태도를 나누었다. 계단과 언덕으로 가득한 고등학교 생활에서 내 휠체어를 밀어준 친구들의 몸은 내 몸의 한곳에 새겨졌다.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상 우리의 몸에는 늘 구체적인 타인이 깃든다.
이 힘이 그 어떤 규범적 논변이나 멋진 이념보다도 나를 인간의 평등에 관한 그럴듯한 믿음으로 이끈다. 이때 ‘힘’은 ‘능력’과 달리 구체적인 개인의 한계와 가능성에 닫혀 있지 않다. 힘은 보편적이고, 개개인보다 더 크다. 힘은 능력의 외부에 머물며 능력의 전제가 되거나, 능력에 관한 세상의 척도를 전복하거나 재구성한다. 누군가의 능력 앞에서 우리는 종종 좌절하지만, 누군가의 힘을 목격하면 더 큰 세상에 접속하는 경이로운 체험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p.8-9)
외줄을 타기 직전의 순간, 능숙하고 훈련된 곡예사는 자신의 모든 주의를 한 점으로 잘 ‘모으는’ 걸까? 오히려 뛰어난 곡예사의 주의는 어느새 ‘모아질’ 것이다. 일상에서 가끔 마주하는 영웅적 순간도 그렇게 작동한다. 2007년 1월 뉴욕의 지하철역에서 한 젊은 남성이 심한 경직 상태에 빠졌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일어섰지만 다시 비틀거리며 걷다가 결국 선로 아래로 떨어졌다. 열차가 승강장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한 남성이 번개처럼 선로 아래로 뛰어내려갔고, 쓰러진 남성을 온몸으로 감싸고 선로 옆 공간으로 굴러들어갔다. 전동차의 바퀴가 두 사람의 옷깃 옆을 아슬아슬 지나쳤다. 두 사람은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전동차가 지나간 직후 뛰어내려갔던 남성이 선로 아래서 소리쳤다. “여기 우리는 괜찮아요. 그런데 위에 제 딸아이 둘이 있어요. 애들한테 아빠가 괜찮다고 해주세요!” 승강장에서 탄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번개처럼 달려가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한 쉰 살의 건설노동자 웨슬리 오트리(Wesley Autrey)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단한 일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단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았을 뿐입니다”라고 답했다. 두 딸을 옆에 두고도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한 이 영웅적인 인물은 심지어 겸손했다. 하지만 이 말은 그저 겸손이 아니라 진실에 가깝다. 드물지만 영웅적인 행위를 한 인물들은 “스스로를 그런 행동의 원천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 행동은 우리말로는 조금 어색해도 수동형으로만 적절히 표현할 수 있다. 오트리는 그 순간 ‘선로로 뛰어내려가졌다’. (p.24-25)
한예종은 시각장애가 있는 피아니스트 출신 국회의원의 질의에 대해 이러한 ‘상식’에 기반한 답변서를 제출했다. 무용원과 전통예술원은 “전공 특성상 고도의 신체능력과 음악·주제를 바탕으로 다른 사람과 안무를 짜는 등 긴밀한 협업능력이 필수적”이고 “신체적·지적 장애학생에게 일반 학생과 같은 수준의 수업을 진행하거나 소수 장애학생만을 위한 별도의 수업을 하기 어렵다”고 답했고, 전통예술원은 이에 덧붙여 “전통악기를 배우고 다각도로 실험하며 창작곡을 써나가는 과정은 정신적으로 고통스럽게 몰두하며 끊임없는 인내를 감수해야 한다. 이성적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만들어가는 작업이라 신체적·지적 장애학생은 실행하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분명히 말하고 싶다. 나는 예술교육기관이 장애가 있는 지원자의 현실적인 조건을 고려하고 이들의 가능성에 주목해 입시제도를 운영하기를 바라지만, 그것이 별도 정원을 할당해 선발하는 형식이어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어떤 입학제도가 필요하고 적합한지는 논쟁적이다. 다만 한예종이 일부 전공에서만 장애학생을 적극적으로 선발하지 않는 이유라며 답변서에서 밝힌 공식적인 입장은 충격적이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예술교육기관이 장애가 있는 신체를 어떻게 ‘응시’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선 이 답변이 주로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학부과정(예술사)에 입학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데 주목하자. 답변서는 갓 10대를 벗어날 즈음의 장애인 학생들이 “고도의 신체능력”이나 “협업능력”이 부재하고(무용원, 전통예술원) “고통과 인내”를 감수하고 “이성적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만들어가는 작업”을 할 수 없다(전통예술원)고 전제하고 있다. 특정한 장애 유형이나 정도, 구체적인 작품, 장르에 한정하지도 않았다. 현대적인 춤과 연기, 한국전통예술 일반을 배우기에 장애가 있는 사람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p.107-108)
공연은 라이브로 진행되므로 영상의 경우보다 접근성을 고려하는 비용과 노력이 크게 든다. 2010년대 후반까지 일부 장애인극단들을 제외하면 한국 공연계는 관객 가운데 장애인이 있다는 점을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 내가 2018년 런던을 방문했을 때 〈라이온 킹〉이 연 1~2회 수준이나마 음성해설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알고 큰 감명을 받은 이유다. 하지만 2019년경을 기점으로 한국 공연계에서도 소수의 공연창작자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실천이 시작되었고, 2024년 현재는 아르코·대학로 예술극장 등 국공립 극장, 두산아트센터를 비롯한 일부 민간 공연장들도 공연 접근성을 중요한 화두로 삼고 있다. 이들은 연 7~8회 다양한 관객을 위한 접근성을 기획 단계부터 고려해 접근성(배리어프리) 공연을 제작하고, 공연 홍보 시에는 내가 영국에서 본 것처럼 어떤 접근성을 지원하는지 알린다. 음성해설, 이동지원, 문자통역을 언제 어떻게 제공한다는 정보가 이 극장들의 온라인 공연예매 페이지에 게시된다.
이 변화는 급격했지만 당연히 그 바탕에는 오랜 시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가운데 공연의 접근성을 높이고자 노력한 사람들의 실천이 있었다. 아마도 돈과 시간이 제일 부족했을 연극인들 사이에서 일어난 변화 덕에, 공연을 상징하는 서울 대학로는 이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신뢰하고 안정감을 느낄 만한 장소로 탈바꿈했다. (p.140)
공연장의 접근성과 관련해서 우리나라의 편의증진법에 해당하는 미국의 법령은 ‘연방접근성표준(Uniform Federal Accessibility Standards)’이다. 이 규정이 제시하는 휠체어 관람석 기준은 꽤 흥미롭다.휠체어 구역은 모든 고정식 좌석 배치 계획의 일부로 포함되어야 하고, 전체 좌석에 분산하여 배치되어야 한다. 긴급 상황시 출구 역할을 할 접근 가능한 경로에 인접하여야 하며, 모든 관람 구역과 동등한 수준의 시야가 확보된 곳에 설치되어야 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장애인들은 사회라는 무대에 오르기 위해 치열하게 저항하고 협상하고 싸우고 연대했다. 그 과정에서 1991년 「미국장애인법(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이 제정되었고 연방접근성표준의 구체적인 내용이 마련되었다. 이러한 역사 덕분에, 이 규정에는 20세기 후반 미국의 장애인들이 세상에 품었던 네 가지 열망이 반영되었다. 첫째, 우리는 분리를 거부하고 통합을 원한다. 즉 공연장에서도 우리의 자리는 (우리를 제외한) 관객들을 위해 사전에 고려해 설치된 ‘고정 좌석’ 안에 포함되어야 한다. 둘째, 선택의 자유를 원한다. 즉 우리는 미리 정해진 단 하나의 장소를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의 선호와 취향과 무관하게 할당받지 않을 것이다. ‘좌석의 분산 배치’. 셋째, 안전. ‘긴급 상황시 출구 접근’이 가능해야 한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위험에 취약한 존재가 되지 않을 것이다. 넷째, 평등한 대우를 원한다. 즉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누리는 만큼, 장애가 있건 없건 공연장에서 무대를 ‘동등한 수준의 시야’로 바라보고 느끼고 경험할 것이다. (p.148-149)
2020년대 접근성을 고려하는 공연들 일부는 위에서 예시한 것들을 시도한다. 먼저 무대와 배우의 의상, 소품 등을 만져서 촉각으로 확인하는 터치투어(touch tour) 시간을 공연 전 개방한다. 무대 모형을 3D프린터로 제작해 극장 앞에 설치해 놓는 공연팀도 있다. 음성해설을 듣는 시각장애인 관객에게는 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를 마련해두기도 한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는 먼저 무대에 관한 기본정보를 안내한다. 시계방향으로 어디에 탁자가 있고, 어디에 커다란 의자가 있고, 어느 방향에서 배우가 나오는지를 미리 안내한다(프리쇼 노트). 그리고 공연이 시작되면 라이브 음성해설이 시작된다. 라이브 해설은 보통 해설자가 리허설을 여러 차례 보고 대본을 쓴다. 때로는 공연 제작 초기 단계부터 해설자가 참여한다(영국의 경우 무용 전공자들이 음성해설 전문 작가로 활약한다). 이때의 음성해설 대본은 그저 건조한 사실의 전달이 아니라 그 자체로 공연의 일부다. 터치투어, 프리쇼 노트, 라이브로 진행되는 해설(공연)이 무대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느껴지는 진동과 소음, 음악과 함께 전달된다. 우리는 이러한 일련의 시도 전반을 일컬어 시각장애인을 위한 무용 음성해설이라고 부른다. 이는 시각장애인이 무용을 조금이라도 더 잘 경험하도록 제공하는 보조적인 서비스일까? 그렇지 않다. 이러한 음성해설과 춤이 통합된 공연은 이미 기존의 ‘무용 공연’에 대한 관념으로는 담아내기 힘든 창작물이다. (p.165-167)
왜 하필 연극이었을까? 공공장소로 용기 있게 나선 장애인들의 몸이 곧 ‘소란’을 일으켰다면, 현대연극이란 본래 소란, 즉 사건이기 때문이다. 공연학자 에리카 피셔리히테는 1960년대 이후 연극과 무용을 포함한 공연예술 전반에 이른바 ‘수행적 전환’이 일어났다고 지적한다. 우리 시대 공연은 흥미로운 이야기나 교훈, 의미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예술이라기보다 공연자와 관객이 현실의 시공간에서 직접 만나 새로운 현실을 창출하는 ‘사건’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사건은 크든 작든 우리 삶을 그 사건이 벌어지기 이전과 이후로 구별하는 현실의 계기다. 우리가 매일 하는 수많은 경험이 ‘사건’이 되려면 그것이 비록 사소할지라도 내 삶의 현실과 결부되어야 한다. 우크라이나전쟁은 엄청난 비극이지만 영상으로 소식을 접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사건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서울 지하철 4호선으로 출근하는 당신 앞에 장애인 시위대가 기어서 지하철에 탑승하고 그것 때문에 회사에 지각했다면 이것은 사건이 된다. 당신은 지하철을 타도 지각할 가능성이 있는 세상에서 살게 된 것이며, 일상에서 직접 본 적이 없는 장애인의 신체가 바로 그 원인이 될 수 있는 세상에 살게 된 것이다. 그 시위의 방법론과 대의에 대해 당신 입장이 어떠한지와 무관하게, 그것은 사건이다. 사건을 지향하는 현대 공연예술은 사건을 촉발하는 힘을 지닌 공연자의 몸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긴다. 공연자는 관객 앞에 현존(presence)해야 한다. 현존이란 바로 그 유일무이한 순간에 존재함을 뜻한다. 강렬한 현존이 드러나는 공연은 허구적인 이야기를 연기하더라도 관객을 그 순간의 진실로 데려간다. 몸의 현존성은 전통적인 공연자의 신체적 조건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프릭쇼’의 전시 대상이 되었던 인종적 소수자들이 주로 백인들이 지나다니는 거리에서 쇠창살에 갇힌 채 자신의 몸을 전시하는 공연을 떠올려보라. 공연자들은 실제 노예가 아니지만 그들의 몸이 역사적 진실을 바로 그 시공간으로 불러온다. 장애가 없고 젊고 딕션이 좋고 키가 크고 팔다리가 균형 잡혔다는 사실이 곧 현존의 힘을 보장하지 않는다. (p.180-181)
냉소적인 척 그만하고 이제 정신을 차려보겠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황량한 무대 위에서 백우람의 연기는 경이롭지 않았던가? 우리 삶은 대개 평범하고 지루하지만 그렇기에 드물게 찾아오는 비범한 순간이 은하 반대편에서 폭발한 초신성 못지않은 빛을 낸다. 이 책 초반부에 소개한 뉴욕 지하철역의 영웅 웨슬리 오트리를 보라. 누군가가 지하철 선로로 추락하는 걸 목격한 순간 그는 거침없이 뛰어내려가 떨어진 사람을 끌어안고 전동차를 피해 생명을 구했다. 그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수천 년 전 초신성 폭발을 목격한 사람 못지않은 경이로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이렇게 비범한 인물까지 가지 않아도 좋다. 고교 시절 그날 새벽 천명륜이 나를 안고 구급차를 향해 달렸을 때, 봄날의 체육시간 이신형이 내게 말을 걸었을 때, 나는 마음과 몸이 조금 붕 떠오르는 어떤 고양감을 느꼈다. 이렇듯 삶에서 이례적인 사랑과 우정, 이해할 수 없는 연결감을 경험할 때 우리는 설명하기 어렵고 설명하더라도 반감되지 않을 경이로움에 참여한다.
경이(wonder)에 관한 한 가지 설명은 우리가 그것을 체험할 때 개인을 초월하는 경험을 한다는 것이다. 웨슬리 오트리의 사례를 언급하며 철학자 드레이퍼스는 이런 사람이 ‘스스로를 그 행동의 원천으로 생각하지 않’기에 겸손한 반응을 보인다고 말한다. 어떻게 그런 일을 해냈느냐는 질문에 오트리가 “대단한 일을 해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단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았을 뿐입니다”라고 답한 이유다. 그는 움직인 것이 아니라 ‘움직여졌다’. 니진스키가 관객의 물음에 한 대답도 떠오른다. “어렵지 않습니다. 당신도 높이 뛴 다음에 공중에서 잠깐 멈추면 됩니다.” 니진스키는 사회생활에 서툰 천재이지만, 놀라운 일을 하는 사람들은 평소 자신을 초월해 놀라운 그 순간의 일부가 되므로 종종 천진난만해 보인다. 누군가를 위기에서 구한 우리나라 사람들도 뉴스 인터뷰에서 비슷하게 말한다. “대단한 일이 아니고요. 누구라도 아마 그 상황이면 그렇게 했을 겁니다.” (p.271-273)
이 차이가 중요하다. 우리가 경이로운 우정, 경이로운 사랑, 경이로운 춤, 경이로운 정치적 순간을 경험할 때,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로 우리의 몸과 정신은 고양되고, 지루하고 공허한 삶에 예상치 못한 의미가 들어선다. 그 순간 우리 개개인은 협소한 자아를 초월해 더 큰 세상의 일원이 되는, 어딘가 ‘저절로’ 존재하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런 준비, 훈련, 누군가의 도움과 교류, 연마의 과정 없이 어느 영역에서든 자기 혼자 황홀경에 취하면 그 세상은 진실과 거리가 멀 뿐 아니라 그저 꼴사나울 수 있다. 누군가에게 완전히 매료되어 홀린 듯 사랑의 편지를 보내는 사람을 생각해보라. 그 편지는 참고 읽어주기 어려운 내용일 것이다. 더 나아가 밤늦게 짝사랑하는 사람의 집을 찾아가 운명적인 사랑 앞에 용기를 내는 자신에게 도취된 남자를 생각해보라. 이런 종류의 주관적이고 폐쇄적인 도취는 꼴사나움을 넘어 타인에 대한 폭력이다. 춤도 그렇다. 관객, 동료 무용수, 공간, 작품의 문화적 맥락과 상호작용하지 않은 채 혼자 황홀경에 빠져 저절로 몸을 움직이면 주위 사람들은 그저 어안이 벙벙할 것이다. 심한 경우 그 춤은 성적이고 물리적인 폭력을 촉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p.275-276)
모드리스 엑스타인스는 니진스키가 “극도로 과장되게 안쪽으로 향한 발, 구부린 무릎, 안쪽으로 구부린 팔, 몸은 앞을 본 상태로 옆으로 돌린 머리”를 기본자세로 삼아 고전 무용에서 이탈하고자 했다면서, “비대칭성이야말로 〈봄의 제전〉의 본질이었다”고 강조한다. 이런 서술에서 ‘정상과 표준’을 이탈한 신체 이미지를 ‘문명’을 위협하는 힘과 연결 짓는 흔한 경향을 본다. 나는 장애인의 몸에 문명이니 문화니 합리성이니 하는 이름이 붙은 고상한 가치들의 위선을 폭로하고 그 한계를 전복하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장애인의 몸에서 억압적인 규범과 질서에 맞서는 해방적 가능성을 본다. 그렇다고 그 몸과 움직임이 항상 모든 종류의 질서나 규범에서 벗어난 상태라는 뜻은 아니다. 장애인의 몸이란 ‘다른 방식으로 질서 잡힌’ 것이다(1부에서 인용했던 배우 강보람의 말을 다시 가져오겠다. “나는 비틀거리는 게 아니라 나만의 균형을 찾아 걷고 있는 거야”). 모든 문화적 형식, 규범에서 이탈한 ‘원시적인 충동’은 장애와 별 관련이 없다. 장애가 있는 몸, 그 몸의 실존과 춤은 오히려 ‘시민적인’ 삶을 상징한다. 196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전개된 민권운동은 이 상징을 공고하게 만들었다. 장애인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기 위해 워싱턴에서 백악관 계단을 기어서 오르고, 런던 도로 한복판에서 버스를 세우고, 서울역을 온몸으로 점거하며 권리를 외치는 장애인의 신체는 진부한 문화적 규범에서 멀리 이탈하면서도 압도적으로 ‘시민적’이다. 2022년 봄 대한민국 여당의 당대표는 출근길 지하철 시위에 참여하는 장애인들을 ‘비문명적 행동’이라고 비판하며 역설적으로 진실을 드러냈다. 장애인들의 지하철 시위에 관한 다양한 논쟁이 가능하겠지만, 바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대중교통 한가운데 등장해서 ‘시민들의 출근길’을 붙잡을 수 있기에 이 공동체가 문명의 일부로 남는 것이다. (p.290-291)
접근성을 위한 실천은 모종의 규칙들로 정리할 수 없는, 수영이나 자전거 타기처럼 ‘육성’되는 기술이다. 또한 이 기술은 혼자서 일정한 루틴과 범례에 맞춰 훈련하는 것만으로는 통달할 수 없다. 구체적인 개개인과의 만남을 통해 각각의 개별적인 접근성이 어떻게 확보될 수 있는지 경험을 쌓고, 그 각각의 다른 경험을 상호 연결하고 통합해야 탁월함에 근접할 수 있다. 이 기술을 익힌 구성원이 사회에 많아진다면, 장애인을 포함해 다양한 조건을 가진 사람들은 여러 분야에 더 깊이 통합될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기술은 우리가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고 지속하는 데 근본적으로 필요한 기예(art)의 바탕이 된다.
‘접근성’을 의식하면 어디를 가든 나와 다른 몸의 존재 방식을 상상한다. 어떤 지인은 휠체어를 타는 나를 알게 된 후 “가게에 턱이 있는지 엘리베이터는 있는지 이런 거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해주었다. 연극 연출가 구자혜는 2018년 공연팀이 상주하는 극장 근처의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관람 온 것을 계기로 “구체적인 관객”을 의식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구체적으로 어떤 관객이 올 거라는 것을 예측하고 만든 적이 처음이었던 거예요. 그전까지 저한테 관객은 그냥 관객, 그리고 다 개개인이니까 좀 추상성을 가진 존재였는데 실체로서의 관객이 온 거죠. 뭉뚱그려서 생각하겠다가 아니라 누가 온다, 어떤 관객이 온다는 걸 알고 시작한 첫 공연이었어요. (……) 시각장애인 관객이 실제로 왔고, 거칠게 얘기하면 그때 이후로 접근성이 정말 피부에 와닿는 실제로 온 거죠. 내가 만드는 연극이 누군가한테는 애초에 접근성 자체가 차단되어 있다는 걸 정말 그 공연을 통해서 절감한 거죠.
그후 구자혜 연출이 속한 ‘극단 여기는 당연히 극장’ 팀은 거의 모든 공연에서 배우들이 시작하기 전 무대 상황과 자기 모습에 대해 상세한 음성해설을 진행하고, 수어통역사가 공연 내내 무대 위에 같이 오르고, 공연일마다 대사가 무대 위 스크린에 문자로 송출된다. 평균 수준 이상의 청력을 지닌 사람에게 문자통역은 공연을 방해하는 요소로 여겨지기도 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문자통역이 나오는 공연에 익숙하지 않다. 구자혜도 이를 알고 있고 그런 문제를 제기한 관객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 가운데 수어나 문자통역, 음성해설이 필요한 어떤 관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의식한 후부터 이 관객들의 접근성을 공연제작 과정에서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p.297-298)
누구도 이 세상의 모든 시공간에, 모든 종류의 경험에 완벽히 접근할 수 없다. 나는 관악산 정상을 내 다리로 등반하는 경험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내 ‘접근성’을 위해 관악산 주위를 빙글빙글 둘러 경사로를 만들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시각적 체험이 중요한 어떤 공연은 시각장애인에게 접근이 제한될 것이다(물론 지금까지 장애인들은 너무 많이, 지나치게 많은 곳에 접근하지 못했으므로 접근이 가능한 공간과 경험의 절대량을 늘리는 노력은 중요하다). 어떤 공연예술가는 장애인 접근성을 고려하기 위해 자기 창작물을 변형하거나 어떤 창작적 시도를 포기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접근성을 여러 측면에서 고려한 공연을 보는 관객 중 일부는 접근성을 높이려는 의도는 좋지만 “비장애인 관객의 관람을 너무 방해한다”며 극장 측에 문제를 제기한다.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토론할 부분이 많을 테지만, 이런 의견을 내는 사람들을 “장애인이 배제되는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몰지각한 사람들”이라는 식으로 비난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접근성은 삶의 여러 분야를 규율하는 특정한 형식의 집합이 아니며 모종의 이념도 아니다. 접근성을 높인다는 건 애초에 너무 다양한 사례와 존재에 관련한 실천이므로 일련의 규칙도 체계적인 논리나 이념의 목표가 되기 어렵다. 오히려 반대다. 접근성은 우리가 어떤 압도적인 이념에 매혹될 때, 우리가 자칫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구성원이나 다양한 맥락에 대해 문을 닫고 자아도취적(집단도취적) ‘황홀경’에 빠져 어딘가로 떠밀려갈 때 우리를 붙잡는 닻이다. 자기 작품, 예술적 신념, 예술에 생명까지 바치는 파우스트적인 예술가상이 유행하던 시대에 세계가 어떻게 파국으로 치달았는지 생각해보라. (p.299-300)
장애가 있는 몸이 분투하는 모습은 종종 절박하고 처절한 인정투쟁의 상징으로, 혹은 인간의 우스꽝스럽고 무용한 시도로 해석된다. 이 의미와 상징들에 사로잡혀야 할 필연적인 이유란 없다. 토마스 만이 프리데만을 묘사한 방식이 얄팍하다고 느끼면서도, 한편으로 이 소설이 지닌 주제의식과 그 소설적 상징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건 나 자신이었다. 공연과 춤에 부여된 상징적 의미에서 자유로워질수록, 오히려 그 안에서 만나는 경이로운 순간들을,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 필요한 작은 훈련의 방식을 마주한다.
그렇다고 “가슴아 불거지지 마라”라는 오래된 명령을 그저 자연스럽고 사소한 계기들을 거치면 누구나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우리 모두 하나의 공동체를 지배적으로 규율하는 사회적 안무의 영향을 받으며, 그 힘에서 벗어나기란 간단하지 않다. 외줄 앞에서 추락을 감수하는 결의까지 필요하지는 않지만, 기존의 ‘안무’에 저항하고 새로운 춤을 추기 위해 우리 몸은 변해야 한다. 그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는 걸까? 아마도 우리가 만난 구체적인 몸들이 얼마나 우리에게 ‘깃들어’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여러 한계와 논쟁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펴본 춤의 혁신가들을 떠올려보라. 공옥진의 춤에 깃든 몸들, 니진스키에게 깃든 실재하는 ‘유령들’의 흔적을. 최승희는 그저 제국의 타자로서만 훌륭했던 것이 아니라 제국의 주변부에 연결되어 있었기에 춤을 혁신할 수 있었다. 김태훈과 307호에서 보낸 시간이, 천명륜이 나를 안고 뛰었던 날이, 지하철역 바닥을 기어가는 장애인들의 몸이, 손을 잡고 바닥을 굴러준 관객이 없었다면 휠체어에서 바닥에 내려와 춤을 추는 일이 가능했을 리 없다.
무용의 역사에 장애가 있는 몸들이 진입하는 계기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엄청나게 혁명적인 장애인 무용수가 실존을 건 용기 있는 도전으로 기회를 열어젖힌 것이 아니었다. 위대하고 영웅적인 천재 예술가들의 시대가 저물던 20세기 중반, 무용수들은 일상적으로 이 ‘타기’의 전문가였기에 무용계 진입의 문을 열 수 있었다. 혼자 열에 들떠 파멸로 달려가다 강물에 빠져 죽는 예술가 대신 타인의 손을 잡고 파도를 타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서로에게 적극적으로 깃들기 시작하자 어느새 무대가 열렸다. (p.321-323)
내가 바라는 세상은 루게릭병이 상당히 진행되어 안구 마우스로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도 실제로 ‘좋은 춤’을 출 가능성(다시 말해 ‘좋은 춤’이라는 선물을 받을 기회)이 열린 세계다. 일단 그 사람이 ‘잘’ 추기 위해 애써야 함은 물론이다. 그 사람은 자기 몸에 어떤 병이 있든, 어떤 배경에 있든, 어떤 조건에 있든 자신에게 주어진 ‘몸’을 가장 잘 움직이기 위해 책임을 다하는 무용수여야 한다. 이런 무용수가 있다면 이제 그 무용수가 얼마나 ‘좋은’ 춤을 출 수 있는지 여부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가 속한 공동체에 달렸다. 그 공동체는 춤을 위한 접근성을 얼마나 다채롭게 상상할 수 있는가? 접근성에 관해 숙련된 기술을 연마한 사람은 얼마나 있는가? ‘좋은 춤’에 대한 편협한 기준을 성찰하고, 중증장애가 있는 사람도 자신을 표현하고 기존에 존재하는 예술에 대한 담론·전통·역사에 자기 경험과 한계를 적절히 통합하는 훈련 기회를 어느 만큼 얻을 수 있는가? 개개인을 바로 그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막연한 공감이 아니라 그의 탁월성에 주목하는 시선이다. 이때 탁월성은 평등의 반대말도, 성찰 없는 능력주의와도 관련이 없다. 탁월성은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 안에서, 자신만이 가능한 가치를 육성하고자 책임을 다하는 사람에게 열린 세계가 우리 모두에게 주는 선물이다.
드워킨은 좋은 삶과 잘 사는 삶이라는 두 개념을 상호통합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좋은 삶과 무관한 잘 사는 삶은 폐쇄적이다. 히틀러도 잘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런 삶은 너무나 나쁜 삶인데, 그럼에도 (자기 책임을 다했으니) 잘 사는 삶이기는 하다고 인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제주도 몽돌해변의 모래 알갱이를 하나하나 손수 세는 일을 평생의 소명으로 생각하고 그 일을 해냈다고 하자. 이는 ‘잘 산’ 삶인가? 한 사람이 해내기 아주 어렵고 구조적으로 복잡한 일을 책임감 있고 성실하게 해내더라도 그 일이 외부와 연결되지 않는다면, 어떤 의미도 가지지 못할 것이다. 반면 좋은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잘 사는 삶의 개념을 통합해 해석해야 한다. 우리에게 완벽한 쾌락과 행복을 제공하고, 심지어 뿌듯하고 보람있는 경험까지 제공하는 고도의 가상현실(VR)에 접속한 채 평생을 보내는 걸 ‘좋은 삶’이라고 선뜻 말해도 될까? 잘 사는 삶, 즉 자기 삶에 대한 책임과 무관한 좋은 삶의 개념관은 불충분하기 짝이 없다.
좋은 춤과 잘 추는 춤에 대한 생각 역시 상호 관련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어떤 춤이 좋다고 말할 때, 어떤 무용수가 자신의 신체적·정신적 조건, 그로부터 비롯된 고유한 춤의 스타일을 책임감 있게 구현하려 분투한 흔적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오직 외부에 드러난 고난도의 기술과 시각적 형상으로만 좋은 춤과 나쁜 춤을 분별한다면, 테슬라의 7세대 로봇이 등장할 즈음 인간 무용수는 전혀 쓸모없는 존재일 것이다. 더 복잡하고 기교적인 동작을 완벽히 수행하는 로봇이 있고 몇 분 만에 고전발레 레퍼토리의 한 장면을 거의 완벽히 재현하는 가상의 무용수를 창조하는 시대에, 인간 무용수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다행히 어떤 춤을 ‘좋은 춤’이라고 느낄 때 우리는 분명 개별 무용수들의 테크닉이나 동작의 집합(앞서 언급한 ‘복잡한 종이접기’ 같은 것)으로 환원할 수 없는, ‘잘 추려는 개인’의 존재에 영향을 받는다. 내가 상상하는 세계에서, 중증장애인 무용수는 잘 추려고 노력하기에 좋은 춤을 추고, 좋은 춤을 추는 데 필요한 경험과 기술을 연마할 기회를 가지기에 더 잘 출 것이다. 그 가운데서 그 무용수만의 ‘탁월성’이 발현된다. 이런 세계에서는 테슬라의 20세대 로봇도 루게릭병을 가진 탁월한 무용수를 쉽사리 대체하지 못할 것이다. (p.339-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