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고, 낳고, 나아가기 / 이한나
‘닭 대가리’라는 말을 누가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틀려도 한참은 틀린 말이라는 사실을 닭들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나도 그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된 일화가 있다. 추수날 타작을 끝내고 남은 짚풀을 한가득 얻어와 꼬꼬댁 마당에 쌓아둔 날이었다. 신이 나서 마른 짚풀을 쪼아대던 꼬꼬 한 마리가 목구멍에 짚풀 가지가 콕하고 박혀 도무지 빠지지 않는지 고개를 이리저리 꼬아대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깜짝 놀란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그 모습을 본 맞은편의 꼬꼬가 부리로 그 짚풀가지를 집어 쏙 빼내 주는 것이었다. 동료 닭의 고통에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반응한 명장면을 포착한 나는 그때부터 꼬꼬를 달리 보기 시작했다. 닭은 서로를 보살필 줄 아는 사회적 동물일 뿐 아니라 스스로를 돌보는 데에도 탁월함을 보이는 동물이다. 매일 깃털을 다듬고, 윤기를 내고, 모래나 흙으로 목욕을 하며 위생과 스트레스를 관리한다. 낮에는 꼭 햇볕을 쬐며 비타민 D를 보충한다. (p.18)
나는 ‘해야 한다’의 나라의 오랜 거주자였다. 집안의 장녀로 태어나 모범적인 딸, 학생, 동료, 선생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이 국가의 유일한 헌법인 ‘해야 한다’에 맞추어 일과를 보내고, 미래를 계획했다. 가족, 친구, 연인,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의 어미는 ‘해야 한다’로 끝이 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1년여간의 북유럽 유학 시절 만난 한 선생님은 “너는 ‘Have to’를 정말 많이 쓰는구나”라는 말을 남기셨다. 의미심장하게 들렸지만 그때는 미처 선생님이 건넨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는 못했다. ‘해야 한다’는 모든 행위의 기반을 의무와 책임에 두고, 선택의 여지를 자동적으로 제거하는 마법의 표현이다. 삶이 메마를수록 일상에 난무한다. (p.21)
그날로 나는 외출할 때면 늘 친구가 선물해 준 스카프를 머리에 두르고 다녔다. 봄에 시작된 항암 주사 일정은 어느덧 무더운 여름으로 이어졌고 스카프는 뜨거운 햇빛을 가릴 때에도 아주 유용했다. 보드라운 실크가 머리에 부드럽게 감길 때엔 내 마음도 포근하게 감싸지는 듯했다.
찌는 듯한 여름이 지나가고 약간의 소강상태를 이루던 때였다. 여느 때와 같이 피검사를 위해서 멍투성이의 팔을 내밀고 주사 바늘을 기다리고 있는데 베테랑인 나이 지긋한 선생님이 환하게 웃으시며 “이런 멋진 스카프는 처음이에요. 보는 사람까지 기분이 좋아지네요!”라고 하셨다. 이름과 대기 번호를 확인하는 것 외에는 그 어떤 말도 나누어 본 적 없던 주사실에서 처음으로 의료진과 주고받은 짧은 ‘대화’였다. 새하얗기만 하던 병동이 순간적으로 내 스카프와 닮은 상큼한 초록으로 물들었다. (p.39-40)
나는 내 몸이 이렇게나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그러면서도 내 몸의 안과 밖 모든 부분을 이미 알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반면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심장의 실체를 본 것은 30년 넘게 사는 동안 오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내 존재가 기능할 수 있게 애쓰고 있는 ‘잘 모르는 나의 일부’가 얼마나 많을까. 나의 무지에 아찔하다. (p.50)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 일어난 수많은 협력이 있어 내 몸은 기능해 왔다. 몸의 안과 밖 모든 부분을 나의 ‘소유’라고 생각해 온 숱한 낮과 밤들은 착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의 몸은 작은 신전이었다. 그 앞에서 경배해야 마땅한. (p.51)
보글보글 끓인 물에 담가 깨끗이 소독한 병을 마련하고, 좋은 품질의 천일염을 사다가 고이 씻은 황매실을 절여 두었던 참이다. 그 병을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들여다보며 곰팡이가 생길까 오매불망 보살폈다. 우메보시를 만드는 일은 손이 많이 간다. 하지만 그 어떤 명상보다 더 명상적인 활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조차 흐르지 않는 고요함 속에서 소금에 절여진 매실이 터질세라 조심스레 매실 식초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하나씩 하나씩, 신성하고 고귀한 어떤 것을 건져 올리는 기분으로 내 손의 감각에 집중한다. 미리 닦아둔 싸리나무 채반에 차례로 둥그렇게 올려놓고는 흐뭇하게 그 광경을 즐긴다. 황매실은 소금에 잔뜩 절여졌는데도 쉬이 터지지는 않았다. 아주 얇은 황매실 껍질이 최후의 탄성을 갖고 그 안의 과육을 단단히 머금고 있는 상태였다. 한 알 한 알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그 알알이 누구의 입으로 들어갈지는 모르는 일이다. 뜨거운 태양열을 잔뜩 머금어 나날이 말라간 시간을 가늠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큰 감흥 없이 꿀떡 넘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무렴 나는 상관이 없다. 그저 우메보시를 곁들인 음식을 가운데 두고 소소하게 일어날 만남들이 기다려질 뿐이다.
채반에 올린 젖은 매실들을 밤낮으로 뒤집어 주다 보니 문득, 이 모든 시간이 앞으로의 행복을 ‘예약’하는 것과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 어떤 행위보다 확실한 행복을 보장해 주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가을과 겨울 내내 시원하고 푸르렀던 지난 여름을 떠올리기 위해 청귤청을 담고, 가을에는 무화과를 허브와 졸여 무화과 잼을 만든다. 시나몬 향이 펄펄 나는 짜이를 끓이며 곧 들이닥칠 친구의 반가운 얼굴을 떠올릴 한겨울의 시간들… 그런 시간들이 모여 가까운 미래의 행복을 예약하는 티켓이 될 터였다. (p.57-58)
오늘 저녁은 요리 준비로 두세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두고 천천히 잡채를 만들어 보았다. 남이 만들어 둔 잡채만 먹다가 막상 만들어 보려고 레시피를 찾아보니, 각각의 재료를 모두 따로따로 불리고, 데치고, 볶고, 윤기 나게 섞는 것이 보통 정성으로는 되지 않는 음식이었다. 나는 천천히, 그리고 느긋하게 요리에 집중했다. 적적하기만 했던 초저녁 나절이 깨소금 냄새와 함께 평화롭게 흘러갔다. 마지막에 손으로 쓱쓱 버무려 한입 베어 무니, 와! 하고 감탄이 나온다.
식사는 단순히 배를 불리는 행위를 넘어 일상을 받치는 세 개의 기둥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뭘 먹고 싶니?’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그렇게 정해진 세끼를 중심으로 일과를 배치했다. 오직 나를 위한 음식을 이렇게나 정성을 들여 준비해 본 것은 생전 처음 있는 일이다. 다른 사람의 요구를 듣는 것에는 철저하면서도 정작 내가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무엇이 필요한 상황인지를 듣는 것에는 서툴기만 했던 나로선 이 시간이 정말 중요하게 여겨졌다. 나와 잘 지내는 시간이 소복소복 쌓여갔다. (p.64-65)
오늘은 육안으로만 검진하는 날이었다. 그냥 병원에 들르기만 했을 뿐인데도 기가 쏙 빠진다. 병원이란 공간이 갖는 장소성이 있으려니 한다. 병원에는 새로 지은 건물이 하나 있는데 지하 3층 벽 한쪽을 미술관과 연계한 전시를 여는 데 활용하고 있다. 나는 미술을 전공했지만, 벽에 그림을 걸고 전시를 하는 일을 ‘나의 일’로 진지하게 꿈꾸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그 탓을 굳이, 삭막하고 시니컬하기 그지없었던 학과 분위기에 돌리고 싶지는 않다. 그냥, 나는 평면 앞에 진득이 앉아 있기엔 너무 가벼운 엉덩이를 갖고 있었을 뿐이다.
그랬던 내가 병원에 드나들면서 가장 많은 위로를 받은 것이 벽에 걸린 이름 모를 작가들(작품에 캡션도 달리지 않은 경우도 많다)의 평면 회화였다. 질끈 눈을 감고 표적치료 주사를 맞고 난 뒤, 가까스로 눈을 떴을 때 보이던, 구름이 그려진 풍경화는 내게 위로를 건네주는 유일한 존재였다. 사방으로 하얀 주사실에 혼자 남아있으니 그림의 존재감이 더욱 도드라졌다. 어릴 적부터 전시회에 그림을 걸 줄만 알았지, 누군가의 그림을 이토록 순수하게 감상해 본 일이 몇 번 되지 않았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늘 전시는 내게 의무적으로, 공부하듯이, 진이 빠지도록 생각하게 하는 것일 때가 많았다. (p.73-74)
그렇지만 수녀님과 약속한 만 보 걷기를 하러 옷깃을 여미고 문 밖을 나서는 순간만큼은 침몰하는 배에서 내릴 수 있었다. 운동화를 신고 나선 집 밖은 언제나 내 상상 속 세계보다 나았다. 재발에 대한 끝 모를 걱정과 두려움이 지어놓은 안개 같은 환상에서 깨어나 발 닿는 대로 걷다 보면 거짓말처럼 하늘이 개고 지나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피어나는 것 같았다.
“오늘도 걷길 참 잘했어.”
두 시간이 넘도록 걷고 돌아오는 길. 어느샌가 몸과 마음에 꼭 맞는 리듬감이 생겨났다. 그때부터는 만보계의 숫자를 들여다볼 필요도 없다. 콧노래가 새어 나온다. 무언가로 꽉 들어차 빈틈이 없던 정신에 구멍이라도 난 것 같다. (p.79-80)
백화점은 기본적으로 물건이 돋보이도록 디자인된 공간이다. 물건이 사람이라면, 가장 살(to live) 만한 곳이 백화점이지 않을까? 인권과 같이 물질권이 있다면, 이들이 가장 존중을 받는 곳이 백화점일 것이다. 물건을 고르는 것에 지나치게 열중하다 보면 내 존재는 일순간 사라지고 이 물건을 살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만 현재를 채우게 된다. 그러는 사이 존재는 점점 허기가 진다. 그래서인지 나는, 백화점에 다녀오면 얼마간 얼이 빠지는 것 같다. (p.82-83)
오늘날 우리는 물건들이 넘쳐나는 세상에 산다. 인류 역사상 지구에 물건들이 이렇게 넘쳐나던 시절은 없었을 것이다. 물건들을 고르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사고, 리뷰를 올리고, 리뷰를 읽는다. 물건을 사기(to buy) 위해 사는(to live) 지경에 이른 사람들을 본다. 더 좋은 물건들을 더 많이 사기 위해서, 누구보다 더 빨리 갖기 위해서 몇 시간이고 줄을 서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내 존재를 감각할 수 있게 된 이후로는 어떤 것을 소유하기 위해 애쓰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진다. 더 많이 소비하기 위해 더 많이 벌기보다 더 많이 존재하고 싶다. 예쁜 물건들은 세상에 넘쳐나지만, 물건은 그저 물건이다. 500년이 넘은 백자도 결국엔 물건일 뿐, 세상의 어떤 예술 작품도 지금 살아 있는 현존재를 대체하지는 못한다. (p.85-86)
죽음은 내게 더 이상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죽으면 별이 된다’던 그 별도 아니었고, 철학적 의미의 ‘무한한 평온’도 아니었다. 죽음은 다름 아닌 ‘이별’이었다. 한 번도 떨어져 본 적 없던 가장 친한 친구들과의 이별,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이별, 지구를 비추는 따뜻한 햇살과의 이별, 당연한 듯 함께하는 내 몸과의 이별… 암을 경험하면서 새롭게 체감하게 된 죽음은 내게 아주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사건이 되어 있었다. (p.91)
신부님의 ‘반전 있는’ 강론 끝에 내가 주운 말은 “죽는 순간까지 우리는 사는 것입니다”라는 한마디였다. 병기가 어떻게 되었건, 어느 부위에 어떻게 전이가 되었건, 환자이건, 보호자이건, 우리 모두의 공통점은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 말은 그날 이후 나의 갈비뼈가 되어 내 몸속에 자리 잡았다. 그 갈비뼈에 의지해 살점을 붙이고, 배에 힘을 주고, 다리에 힘을 주어 또박또박 천천히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나의 의지를 그 말 위에 세워 보기로 했다. ‘미리’ 죽지 않기로 했다. (p.94)
직장을 휴직하고 병원과 집만 오갈 거라 예상한 나는 집에서 버스로 꼬박 한 시간은 가야 하는 곳에 작은 텃밭을 분양받았다. 멀리 떨어진 농장에 일주일에 여러 번 오가다 보니 괜한 일을 벌였나 하고 후회하기도 했지만, 일 년간 텃밭놀이를 하면서 얻은 위안이 정말로 컸다. 미생물이 가득한 흙을 만지는 순간 몸의 긴장이 누그러지고, 씨앗부터 발아시켜 정성껏 심어둔 가지, 오이, 호박, 콩, 고수, 각종 잎채소, 토마토 등이 자라나는 모습을 관찰하다 보면 두세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쏟아지는 소나기를 고스란히 맞으며 잡초를 뽑던 날에는 거대한 무지개를 만나기도 했다. 비를 맞아 더욱 영롱하게 빛나는 열매와 이파리들은 내가 치료 중이라는 사실도 까맣게 잊게 할 만큼 아름다웠다. 특히, 요리사로 일하는 친구가 내 텃밭을 구경하러 온 날, 함께 수확한 작물들로 뚝딱 만들어 먹었던 즉흥 파스타의 맛과 멋은 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p.96-97)
이제 나는 질병을 사람들의 행복을 가로막는 쓸모없는 불운으로만 여기지 않는다. 더욱 고양된 기쁨과 사랑, 그리고 우정에 감사하며 내게 주어진 시간을 마음껏 누릴 귀중한 기회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아직은 서툴고 괴로운 순간도 많지만, 질병과 고통 그리고 쇠락 또한 삶의 과정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조금씩 배우는 중이다. 우리는 모두 이미 어딘가 아프고 언젠가 병들어 죽는다. 영원하지 않고 불완전하다. 쓸쓸해하며 가슴 아파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에서 아름다운 구석을 찾아내 쓰다듬는 것. 가을의 끝을 향해 가는 텃밭에서 내가 배운 것이다. (p.98)
암 산정 특례기간인 5년이 모두 지났다. 마지막 진료일에 만난 간호사 선생님은 다음 진료일을 적어 주시던 안내문에다 매직펜으로 굵직하게 ‘졸업’이라는 두 글자와 커다란 하트를 그려 주셨다. 덤덤하게 ‘졸업장’을 받아 들고 병원 정문을 나서는데, 마음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하고 올라왔다. 대학 졸업식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나에 대한 대견함과 자부심이었다. 이제 ‘졸업’ 이후의 삶 속으로 나아가기 위해 나 자신을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안다. 삶으로 저절로 두둥실 떠오를 수 있도록 열심히 숨을 불어넣어 주기만 하면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줄 수 있게 된 지금이 참 좋다. 신체의 건강뿐 아니라 정신, 마음, 영혼을 아우르는 건강을 돌보며 삶으로 계속 나아가고 싶다. (p.104-105)
미술 구술 / 이여로, 임가영 / White River
이것을 “좋지 않다”고 말하는 언어는 자신의 기준이 무엇인지 밝혀야 한다. 그러나 단일 구술 체계는 자신의 기준을 당연시하며 밝힐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작품의 핵심 따위를 운운하는 비평, 글쓰기의 고행을 강조하는 자의식, ‘순수한 무목적의 마음으로 대상 자체를 느끼라’는 서구근대예술의 이데올로기…
그런데 내가 비평가나 미학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던가? 그것이 더 나은 관람이라는 관람 기준의 기준은 무엇인가?
즉 어떤 말하기가 개인적이라 부적합하다는 말은 그 부적합한 말의 논리가 무엇이며 무엇을 말하려는지 이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말 또한 개인적이고 부적합하다는 역설에 처한다. 무한하게 이어지는 개인성의 상호부적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목적과 기준을 투명하게 나누어야 한다.
언어 활동이란 이러한 끝없는 순환에 있다. (p.53)
우리는 자신의 주관성에 쉽게, 혹은 독점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우리는 아주 쉬운 질문을 하듯 ‘저마다의 감상’을 묻곤 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이런저런 것들에 대한 의견이나 감상의 요청에 곧잘 말문이 막히고 ‘할 말이 없다’거나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드는 걸까?
사실 주관성은 낯선 것이 아닐까? (p.88-89)
미술 말하기의 공동 수련은 낯선 주관성, 주관적 감상을 탐색하기 위한 자리이다. 또한 이것을 서둘러 익숙한 세계로 끌어들여 기존의 세계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감각들을 모두 놓쳐버리는 게 아니라, 마치 샛길을 찾듯 탐색의 경로를 함께 만들어가는 자리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낯선 현대미술을 통해 나 자신조차 모르는 나를 알아가자’는 말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사실 그 비슷한 말을 하고 있는 게 맞다.) 다만 여기서는 이것이 단지 ‘나’만이 아닌, 어떤 지배적인 기준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여러 통로를 통해 우리에게 무수히 주어지는 ‘다수의 주관성’을 알아가는 과정―즉 공동의 일임을 주장한다. (p.94-95)
마가렛은 언제나 첫인상을 기록해 두고, 나중에 세련되게 다듬어질 때 비웃으며 버리는 대신에 몇 장의 첫 노트를 보관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왜냐하면 뭔가를 아는 눈은 처음엔 별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고 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적어 두렴, 어머니가 한 말이다.
(p.106)
―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의 딸 베이트슨의 기록
‘본다는 것’에 숨겨져 있는 시간의 문제가 있다. 특히 이 보는 것이 다름 아닌 예술 작품, 특히 러닝 타임이 존재하는 매체가 아닌 조각이나 회화 매체일 경우 더욱 그렇다.
1분, 2분, 3분… 작품을 보는 시간이 이어진다.
한 점의 그림을 보는 데는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가? 그림 안의 요소를 모두 ‘식별’할 수 있으면 될까?
4분, 5분… 이제 ‘다 봤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림 속 붓질은 화가가 대상을 관찰하고, 그리기라는 움직임을 통해 해석한 시간을 표시(Marking)하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따라서 무수한 붓질로 이루어진 하나의 회화 작품은 자기 안에 무수한 시간을 축적하고 있는 시간 전지(電池, Battery)와 같다. (p.137-138)
이 관람자의 카메라에 찍힌 작품의 이미지는 이후에도 계속 감상될 수 있을까? 그의 작은 핸드폰 스크린 안에서…
조슬릿은 관람자의 사진 찍기가 작품 감상을 위해 소비해야 하는 ‘시간’을 하나의 거대한 ‘지연된 경험의 저수지’에 저장하고 축적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았다. 대형 기획전에 첩첩이 쌓인 작품들, 혹은 거대한 미술관 소장고, SNS 및 디지털 아카이브가 표상하는 막대한 축적의 의지가 있다. 전시장을 찾은 우리가 작품의 앞에서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고 싶어지는 것은, 이 단독으로 소모 불가능한 막대한 볼거리의 축적에 대응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 (p.141-143)
예술에 대한 이야기에서 ‘관람자’가 어떤 역할을 맡거나 기대를 받는다는 것, 이것은 어쩌면 ‘자리’가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이 자리에 걸맞는 역을 할 수 없을까봐 부담을 느끼거나 겁을 낼 수도 있다.
이제까지 앞에서 ‘관람자’의 이런저런 위치의 경험을 추적하고, 말해 보자고 제안했다. 실제 전시 관람에서 내 몸의 경로에 대한 구술은 하나의 주관적 주체를 강조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강조하고 있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전시장의 내가 물리적으로 분열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동 수련을 통해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가능하다. 또한 문장이라는 매개를 통해서도 가능하다.
타인의 경로를 걷기 위해서도 우리는 일부나마 분열되어야 할 것이다. 없었던 것과의 연결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도. 지금 한 차례 마무리되어 가는, 미술을 보고 말하는 이 이야기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을 상상하기 위해서도. 지면 위에 있던 공동 수련의 자리 역시 안내서의 마지막 페이지 이후에는 흩어질 수 있다. (p.167-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