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루됨 / 조문영 / 글항아리
오늘날 온·오프라인에서 배설되는 차별과 혐오 표현에 넌덜머리가 난 사람들의 선택은 정치인의 쉰내 나는 화합도, 활동가의 철 지난 연대도 아닌 말 그대로 ‘거부’가 된 것 같다. 주변에서 만난 학생들이 생각하는 ‘안전한 공간’이란 남녀노소가 질펀하게 뒤엉키는 푸릉 같은 마을이 아니라, 위협이 될 만한 요인들을 애초에 걷어낸 무균지대에 가깝다.
한국만 유별난 건 아니다. 근래 인류학자들은 세계 곳곳에서 ‘거부(refusal)의 정치’를 목격 중이다. 반복되는 억압, 통제, 폭력, 낙인에 지친 원주민, 홈리스, 여성 등은 연결 대신 단절을 선택하고, 거부 행위를 함께 실천하는 ‘우리’ 안에서 소속감을 느낀다. (p.31)
출로가 막혔을 때 연구 욕심이 더 간절해지는 법일까. 중국이 개혁개방에 착수하고 냉전체제가 동요하던 1980년대 초,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활동하며 미중 관계 정상화에 깊이 관여한 정치학자 미셸 옥센버그는 학술 연구를 위해 농촌 한곳에 자리를 내달라고 덩샤오핑한테 요청했다. 인구 60만의 산둥성 쩌우핑현이 낙점됐다. 30년 동안 인류학, 정치학, 역사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쩌우핑현 정부에서 마련해준 주택에 머물며 가족, 여성의 지위, 재산권, 토지, 축산업 등 다양한 주제를 연구했고, 이후에도 지역의 변화를 보러 학생들과 다시 이곳을 방문했다. 이 연구기지를 너무나 소중히 여겼던 옥센버그는 현지 책임자 스창샹이 골초란 점까지 걱정했다. 스창샹이 그보다 14년을 더 살았지만.
하지만 중국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중국 땅을 밟아야 할까? 인류학자 크리스 바산트쿠마르는 냉전 시기 중국에 접근하지 못한 까닭에 타이완, 홍콩, 화교 집단을 중심으로 현지조사가 이뤄진 역사를 마을 중심의 고전적 연구나 국가 단위에 기반한 전통적 접근을 재고하는 계기로 해석했다. 그에 따르면, 목숨 걸고 헤엄쳐 홍콩에 도착한 광둥성 농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구술사 연구는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한 이해를 어떻게든 확보하기 위한 고육지책이 아니라, 그 자체로 냉전 시기 중국의 공간적·역사적 역동을 드러내는 귀중한 작업이었다.
‘중국’은 사실 어디에나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 길목에서 폭염에 아스팔트를 깔고 있는 기사도 중국 사람이고, 이 글을 쓰기 위해 만지는 키보드도 중국인, 중국 부품과의 연결을 통해 완성됐다. 스창샹의 과거 인터뷰는 중국 웹사이트에서 찾았다. 같은 국적이라도 프로게이머, 특파원, 불법체류자의 삶에 등장하는 중국이 모두 같을 리 없고, 오늘 등장한 중국이 내일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 대상들이 그것들을 조작하는 실천과 함께 출현하기도 사라지기도 한다는 점에서, 중국이란 실재는 존재론적으로 일종의 다양체(multiple)다. 그럼에도 중국을 논할 때 시진핑, 코로나, 타이완, 경제 같은 주제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면, 이 주제를 중심으로 엮인 지식 생산자들의 동맹이 그만큼 견고하기 때문일 테다. 다른 중국을 출현시키고 싶다면 다른 배치를 만들어야 한다. (p.34-35)
사회혁신(중국에서는 ‘사회창신’)은 이들의 마음이 연결되는 지점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용어다. 한국이든 중국이든, 기업과 정부기관, 대학과 비정부기구(NGO)에서 자신의 일을 사회혁신과 연결 짓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다. 이들은 기존 방식으로는 현재 우리가 직면한 난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각종 규제, 국회의 이전투구, ‘운동 세력’의 편 가르기에 고별을 선언하면서, 다양한 행위자가 경계와 위계를 허물고 창의적·효율적인 방식으로 사회문제 해결에 동참할 것을 제안한다. 소모적인 적대와 비판을 거두고 비전과 아이디어로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자고 호소한다. 정주영 회장의 기업가 정신부터 중국 공산당의 병참술까지, 좌우와 고금을 막론하고 사회혁신의 모범으로 재탄생한 사례 또한 적지 않다.
무엇보다 사회혁신이란 주술을 거치고 나니, ‘청년 실업의 위기’가 ‘청년 창업의 호기’로 탈바꿈했다. 사회가 만성화된 고용 불안정에 시달리는 청년에게 책임을 지우는 게 아니라, 청년이 활력을 잃어가는 사회를 돌보고 새롭게 변화시킬 책무를 자임하게 되었다. ‘소셜벤처 밸리’ 서울 성수동과 ‘중국의 실리콘밸리’ 선전에서 내가 만난 젊은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이 기대에 어떻게 응답했는지 간단히 답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들 사이의 교감이 한국과 중국 간 규모나 체제의 차이를 잊게 할 만큼 뚜렷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디지털 세계의 어법에 능통하고 영어 조기교육을 받은 엘리트 청년들은 서로의 모국어를 몰라도 자유롭게 소통했다. (중국 소셜미디어) 위챗과 페이스북을 통해 온라인 친구를 맺고, 세계 도처에서 열리는 각종 스타트업 행사와 사회혁신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오프라인의 교류도 넓혔다. 자기 자신을 당당히 브랜드화할 수 있는 개성, 상대에 대한 적당한 예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코즈모폴리턴 감수성을 갖춘 젊은이들은 자국의 권위적인 시스템과 유연히 밀당하면서 세계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기업가로 성장하길 꿈꿨다. 서울 성수동부터 선전 난산(남산)구까지, 친환경 텀블러부터 영문 닉네임까지, 이심전심으로 탄생한 엘리트 청년들의 코워킹 스페이스(공유 오피스)는 기묘하게 겹쳐졌다. (p.41-43)
페미니스트 학자 세라 아메드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들이 원래부터 두려운 존재여서가 아니다. “공포의 ‘기호들’(사인)이 도처에 유포되면서 (예컨대) 흑인 타자는 두려운 존재가 ‘되고’ 만다.” 혐중을 부추기는 기호들도 자의적으로 선택되고 유통된다. 바이러스 감염이라는 불가역적인 표식에 미개함, 불결함, 뻔뻔함 등 예전의 기호들이 덧씌워지고 마구잡이로 조립되면서 혐오는 증식한다. 감염 증상이 나타나도 혐오 바이러스가 더 두려워 신고를 주저할 판이다. 당황스러운 것은 혐오정치의 문법이 지구 곳곳에서 반복되다 보니 한국인과 중국인이 동양인으로 묶이고, 어느새 서구인의 ‘저들’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우리 ‘한국인’은 아니라고 하소연할 것인가, 아니면 분리와 배제를 답습하는 일상의 공포정치를 극복하기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댈 것인가. (p.58-59)
순간 감정이 동요하면서 지난 십수 년 동안 리핑 가족과 맺어온 인연이 떠올랐다. 칭화대 교정에서 리핑을 처음 만난 게 2004년이다. 개혁개방 이후 공장 노동자들의 삶의 변화를 논문 주제로 만지작거리던 무렵 그는 자기네 일가친척 모두가 실업자라며 둥베이의 공업도시 푸순으로 나를 안내했다. 국영기업의 구조조정이 가속화되고 ‘사회주의 노동자’가 시장경제의 낙오자로 매도되던 시절, 가족들은 노점상, 건설 일용직, 파출부로 하루하루 버티면서도 내게 아낌없는 환대를 베풀었다. 푸순시 소재 연구기관 직원들은 외국인인 내가 이상한 취재라도 할까 싶어 일거수일투족을 캐물었지만, 팔순이 다 된 리핑의 할머니는 내가 행여 강도라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 관공서로, 박물관으로, 노천 탄광으로 힘든 동행을 자처했다. 몇 년 뒤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급격히 야윈 리핑의 아버지는 아들의 결혼식에서 손수 쓴 편지를 온 힘을 다해 읽었다. 명절 때 또 보자 하셨지만, 마지막 만남이란 걸 예감한 듯 피로연 때 손을 꼭 잡아주셨다. 할머니와 아버지는 모두 떠났고, 리핑은 모두의 소원대로 수도 베이징에 정착했다. 코로나 사태 전 베이징에 들렀을 때 손주를 돌보러 온 리핑의 어머니는 오래전 둥베이에서 그랬던 것처럼 만두를 빚어주셨다.
(…)
하지만 중국에서 보낸 그해 여섯 달은 내 삶에서 가장 찬란한 시절로 남았다. 덩샤오핑 서거, 홍콩 반환 같은 굵직한 사건으로 정치적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사람들은 생기가 넘쳤다. 충칭행 기차를 탔을 땐 한국에서 온 대학생을 보겠다고 승객들이 몰려들어 혼쭐이 났다. 잔뜩 들뜬 채 한국에 대해 묻고 중국을 논하는 사람들과 서른 시간 눈도 못 붙인 채 대화를 계속했다. 인정 넘치는 사람들은 내 안전을 우려해 도착해서도 한동안 동행을 자처했다. 여행 중 우연한 만남이 또 다른 여행으로 이어지다 보니 결국 학교가 아닌 길에서 중국어를 배웠다. 연구자로서 중국에 한 발짝 더 다가가고 싶어 인류학을 공부했고, 꾸준히 현지조사를 하며 리핑 가족처럼 다양한 세계를 품은 중국인들과 만났다.
현지조사를 하면서 만나온 평범한 중국인들은 중국을 ‘중국 국가’, ‘중국 정부’와 곧바로 등치시키는 위험한 유혹에서 벗어나도록 도움을 준다. 내가 바라는 삶의 경관이 배타적 주권을 내세우면서 국가 간의 힘겨루기에 매몰되어 있는 세계가 아닌 인간이 서로에게, 다른 생명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공생을 약속하는 세계였음을 다시 상기시켜준다. 중국이든 한국이든 근대성의 폭력이 누적된 공간에서 버텨오는 동안 ‘좋은 삶’의 기준이 얼마나 협소해졌는가를, 그럼에도 삶의 취약성을 딛고 타인에게 손을 내미는 평범한 을이 얼마나 많은가를 환기해준다. 무엇보다 그들은 섣부른 경계와 비난이 관심과 비판을 압도해선 안 된다는 자명한 원칙을 일깨운다. (p.61-63)
영화제 폐막작인 「감염병의 무게」는 2020년 초 코로나바이러스가 대구를 삼켰을 때 장애인과 장애인 지원단체 활동가가 직면했던 초현실적 상황을 담았다. 두 사람이 2미터 거리를 두기 어려운 좁은 방에 살던 한 장애인은 결국 활동지원사 없이 두 주를 버텨야 했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코로나 지원책이 없다 보니 위험을 감수하는 건 활동가들의 몫이었다. 그들은 방호복을 직접 갖춰 입고 장애인 확진자를 지원했고, 자가격리가 필요한 장애인과 아예 동거하기도 했다. 장호경 감독이 강조했듯, ‘중산층’ ‘비장애인’ ‘정상 가족’을 표준으로 삼은 정부의 방역대책은 장애인의 감염을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면 그만인 예외 상태로 제쳐두었다.
상영마다 감독, 관객, 활동가, 빈민과 장애인이 자리를 함께한 덕분에 영화제는 단순한 감상 자리가 아닌 연대의 장이 되었다. 노들장애인야학 명희 활동가는 코로나 시기 중증장애인이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거리두기가 더 큰 생존의 위험이 될 수 있다면서 “우리는 뭉쳐야 사는데 흩어져야 산다고만 말하는 상황”을 좀 더 비판적으로 볼 것을 제안했다. 앞으로도 코로나19와 같은 위기가 반복된다면 ‘무조건 멈춤’이 능사일까? 자기만의 방을 갖춘 사람들에게만 지속가능한 매뉴얼 대신, 모든 사람이 멈추지 않고도 적당한 시차와 간격을 지켜가며 공생할 준비가 필요하지 않을까? 반빈곤영화제는 삶을 살 만한 가치가 있게 만드는 노력이 좌절된 채 강요되는 안전 수칙이 결국 누구를 위한 것인지 되묻게 했다. (p.95-96)
나는 불안정 주거를 끝장내야 한다는 논의가 팬데믹을 계기로 일보 진전될 수 있다는 기대를 품었다. 기후재난, 불평등, 바이러스 감염이 얽히면서 어떻게 거주할 것인지가 시대의 화두가 됐다. 현재도 문제이거니와, 주거 불안이 최소한의 안전과 존엄을 짓밟는 상황은 앞으로 더욱 전면화되지 않겠는가. 불편한 상상이긴 하지만, 집에서 온전히 머물 수 없는 사람들이 초래할 감염 위험 때문에라도 주택정책을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코로나 상황에서 집에만 있으라는 요구에 따르기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은 감염에 취약할 뿐 아니라, 감염을 확산시킬 수도 있다. 앞으로 정체불명의 역병이 더 자주 찾아든다면, 모두에게 살 만한 집을 보장하는 게 더 나은 방역이 아닐까. 빈곤이 경제발전과 안정을 위협하지 않도록 제도를 만들고 수정해 온 게 자본주의 사회보장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부동산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논쟁을 보면 가난한 사람이 ‘감염 위험’이 될 수 있으니 거처를 제공하자는 불온한 제안마저 사치라는 생각이 든다. 자본주의 욕망이라는 바이러스가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더 독한 걸까. “집을 원합니다”를 재산 증식의 의지로 번역하는 사람은 외려 많아졌다. 공공임대주택을 늘리는 방안을 두고 “너나 사세요”라며 조롱하고, 주택이 화수분 역할을 했던 산업화 세대의 축복을 왜 자신들은 누려선 안 되냐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집에의 바람은, 재건축 규제를 풀고 저금리 시대에 자산화 가능한 주택을 늘리라는 외침 앞에 너무나 무기력해졌다. 최경호가 『어쩌면, 사회주택』에 썼듯, 모두가 “대한민국 집값은 잡혀야지. 하지만 내 집값은 올라야지”라고 생각하는 한, 집값을 잡으려는 정책은 성공하는 순간 실패하는 정책이 될 게 뻔하다. (p.99-100)
대한민국 역사에서 도시 빈민의 생존권이 얼마나 무시당해 왔기에 동자동에 (작디작은 평수의) 임대아파트를 짓겠다는 정부 결정에 우리는 그토록 환호했을까? 한국 사회의 연대성이 얼마나 취약하기에 이 소박한 결정마저 격렬한 반대에 휘둘리고 있을까? “이 세상에 집 없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는 한, 호화 주택을 지을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최소한의 삶의 자리를 마련해야 하는 의무가 있을 뿐이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 1992년 6월 3일 무주택자의 날에 한 말이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지금, 선진국으로 용트림한 이 나라에서 어떤 거주자들은 아직도 반지하, 비닐하우스, 컨테이너에 살다 목숨을 잃고, 쪽방, 고시원, 각종 시설에서 사실상 결박된 삶을 살며, 전세 사기로 미래를 빼앗기고 있다. (p.121)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청년 실업과 고용 불안정성은 더더욱 돌이킬 수 없는 흐름으로 굳어지고 있다. 사회 전반에 무력감의 에토스가 짙어질수록 ‘새로움’은 요란한 구호처럼 반복된다. 중국 당국은 청년들에게 일을 포기하고 드러눕는 ‘탕핑’의 나약함을 버리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 분투하자고 호소하는가 하면, 비공식적으로 50퍼센트에 육박하는 청년 실업의 대책으로 왕홍 인플루언서를 제안하는 지경이다. 한국 정부는 ‘청년 실업’과 ‘지방 소멸’이라는 두 난제를 일거에 해결하겠다며 각종 지원사업을 통해 대학 졸업자의 지역 이주를 독려하고, 이른바 로컬 크리에이터를 MZ 세대의 유망한 직군으로 띄우느라 부산하다. 하지만 새로움이 강조될수록 전망 부재의 좌절감은 사그라들기는커녕 이 사회의 공기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양국은 고등교육이 국가 경쟁력이라며 우후죽순 대학을 만들었고, 성장이 고용과 무관해진 시대가 되면서 고학력 ‘백수’ 집단을 양산했다. 그리고 위기를 호기로 바꿀 마법을 창업과 혁신에서 찾았다. 하지만 그게 누군가에게는 할 만한 일일지언정 모두에게 강요할 수 있는 처방은 아니다. 더구나 스타트업 청년이 대거 뛰어든 플랫폼 생태계는 소수의 IT 기업이 플랫폼 자산을 점유해 독점적 이익을 거두는 지대 자본주의(rentier capitalism)의 핵심 현장이 되어가고 있다. 알고리즘에 종속된 플랫폼 노동에서 비빌 언덕을 찾는 창업가의 지원금 ‘분배 노동’, 생계를 벌충하기 위한 알바 노동까지, 노동 또한 이 ‘힙한’ 무대에서 사라지기는커녕 더욱 다양하고 복잡한 모순을 만들어내고 있다. (p.139-140)
기본소득운동에 적극적인 청년들은, 기본소득을 자기 삶의 결정권을 획득할 기반으로 바라보면서 임금노동보다 자율적인 ‘활동’에 더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만난 인터뷰 참여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여전히 ‘일’, 특히 안정적인 일자리였다. 이 일은 자기 삶의 가치를 승인하는 절대 규범인가 하면, 때로 노동 윤리에 대한 강박을 부추기며 열심히 노력한 ‘나’와 그렇지 않은 ‘남’을 구분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인터뷰 참여자 중에는 공무원시험 준비생이 제법 많았다. 혹자는 부모님의 집요한 조련에 항복했다며, 이런저런 꿈을 키우다 나이를 먹으면서 불안이 밀려왔다고 변명하듯 답했다. 하지만 공무원시험이 ‘부모 찬스’를 쓰지 않아도 되는 ‘공평한 기회’라고 주장하는 청년도 제법 많았다. 한 참여자는 보편 기본소득의 먼 미래를 상상해보자는 우리의 바람을 일거에 무너뜨렸다. “기본소득이 있다면 9급 시험을 건너뛰고 바로 7급 시험을 준비할 겁니다.”
코로나 이후 다행히 여러 백신이 빠르게 개발되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생존 바이러스’에 맞서 백신을 개발할 의지가 있기나 한지 의문이다. 나를 포함해, 이 바이러스 감염자들은 오늘도 학교와 학원에서, 공장과 회사에서 자기 안전을 확보하느라 필사적으로 공부하고 일한다. 어떤 삶이 살 만한 삶인지 스스로 결정할 자유를 포기한 채, 과한 연결로 다른 바이러스의 출몰을 조장하고, 임기응변으로 피한다고 야단이고, 서로에게 책임 씌우기를 반복하며 우리는 지구의 소멸을 앞당기고 있다. 억울한 감이 없지 않지만, 상처뿐인 생존 대신 만물의 숨통을 틔울 백신 개발은 결국 감염자의 몫으로 남았다. (p.144-145)
홍콩에 기반을 둔 글로벌 NGO나 홍콩의 노동운동 조직은 중국 노동운동사에 거대한 자취를 남겼다. 『전태일 평전』도,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도, 삼성 반도체 공장의 백혈병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도 홍콩을 경유해 대륙의 노동운동가들에게 전해졌다. 이들의 활동에 중국 정부가 언제나 적대적이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한국과 달리 국가 조직인 중국의 노동조합(공회)은 때때로 홍콩과 연결된 비합법적인 NGO로부터 기층 노조를 운영하기 위한 혜안을 얻기도 했다. 2010년 애플의 하청업체 폭스콘에서 젊은 노동자들이 연달아 목숨을 끊었을 때, 베이징과 타이완, 홍콩의 학자들이 공동으로 연구팀을 조직한 일도 있다. 타이완계 기업의 횡포와 글로벌 노동 체제의 폭력을 고발하고 생존자들을 보살핀 이들의 범중화권 연대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새로운 상상과 실험 역시 홍콩과의 교류에 빚지고 있다. 광둥성에서 내가 만난 젊은 창업가 대부분은 홍콩을 통해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등 대안적 시장의 실례를 접했다. 홍콩과 선전의 청년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지혜를 맞댄 덕에 윤리적 책무와 창의적 아이디어를 결합한 사회혁신 스타트업이 탄생하기도 했다. 선전 텐센트의 IT 개발자였던 내 친구는 홍콩의 사회적 경제 포럼을 부지런히 드나들더니 ‘잘나가는’ 회사에 사직서를 던지고 광저우에 사회적 기업을 만들었다.
도시 연구자인 앤디 메리필드는 “지속하는 마주침이 일어나면 그 어떤 것도 예전과 동일해지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들을 생성의 과정 속으로, 뭔가 다른 것이 되어가는 과정 속으로 쏘아보낸다”고 말한다. 중국과 홍콩의 마주침이 그동안 반목과 냉소로 점철된 것만은 아니다. 새로운 제도를 실험하고, 민주를 고민하고, 혁신을 도모하는 생성의 과정은 홍콩이 중국과 가까웠기에, 그러면서 문턱 너머 바깥으로 한 발을 디뎠기에 가능했다. (p.151-153)
기업가에게 단절은 위기이고 연결은 정상성의 복원이다. 하지만 폭스콘 노동자들에겐 연결도, 단절도 속도와 방향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불투명하긴 매한가지다. 중국 선전에서 만난 노동자들은 아이폰에 관한 한 모든 게 비밀이기 때문에 언제 초과근무를 하게 될지, 언제 일감이 줄어들지 알 수 없어 답답해했다. 비밀주의는 스마트폰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지만 노동자들의 자기결정권을 박탈한다. 관리자는 결함 없는 제품을 완성하기 위해 혹독한 노동 규율을 강요하고, 고향이 서로 다른 노동자들끼리 기숙사 한방에 배정해 잡담과 쟁의의 여지를 줄인다. 적시 생산에 최적화된 방식으로 모든 시설을 배치해서 수돗물처럼 제 맘대로 노동자를 틀고 잠근다. 전 세계 아이폰 마니아들이 새로운 기능과 디자인을 앞세운 애플의 깜짝 쇼를 기대하며 들떠 있는 동안, ‘무균실’에 격리된 인간-로봇들은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환경에서 신원 미상의 부품 조립을 반복한다. 마니아를 흥분시키는 불확실성이 이들에겐 고통이다. (p.155-156)
혐오가 도처에 가득하다. 사회적 경제, 사회적 기업, 사회혁신 등 ‘사회’란 수식은 범람하지만, 우리가 날마다 목도하는 것은 상호의존의 사회를 더 이상 용인하지 않는 비사회적 풍광이다. 국토에 난민 유입을 막겠다고, 동네에 청년임대주택 건립을 막겠다고, 캠퍼스에 불온한 강연이 생기는 걸 막겠다고 항전을 치른다. 댓글이든 국민청원이든, 모두가 ‘피해자’임을 주장하면서 다름을 거부하기 위해 직접 행동을 불사한다. 이렇게 계속 빗장을 걸어 잠그다 보면 어떤 공동체가 남을까? 가족이라고 안전할까? (p.167)
이런 배경들이 기본소득을 공론화하는 데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하나, 기본소득은 여전히 동상이몽의 의제로 남아 있다. 생태적 전환을 위한 새로운 이행 전략인가? 원치 않는 일과 조직에 종속되는 대신 개인의 자율성을 발양하는 기회인가? 기존 복지 시스템을 축소하거나 간소화하기 위한 전략인가? 기술 발전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고 구매력 있는 소비자를 재생산하기 위한 기제인가? 아니면 이미 수명을 다해가는 자본주의의 연명장치에 불과한가? 정당성의 논리가 다르다 보니 실험이나 제도화, 재원에 대한 생각도 제각각이다. 논의의 스펙트럼이 진보와 보수를 가로지르다 보니 갑작스레 찬사를 받다가도 한순간 잊히고 만다. (p.168-169)
아프리카에서 공식 부문에 종사하는 임금노동자는 전체 성인 인구 중 극소수에 불과하며, 실업률은 기약 없이 치솟고 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 대부분은 임시로 잡일을 하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적당히 손을 벌리거나 자잘한 소매치기를 하며 ‘땜질’을 반복한다. 과거 식민 지배자들이 ‘부랑자’라 불렀고 마르크스가 ‘룸펜 프롤레타리아트’란 경멸적 표현으로 호명했던 이들은 이제 남아공에서 나이가 40대든 50대든 상관없이 ‘청년’으로 통한다. 청년이 단순히 세대 범주가 아니라 공식 부문에 고용될 기회를 박탈당한 채 결혼과 출산, 양육을 통해 가족을 구성할 기약이 없이 만성적으로 유예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일반에 대한 통칭이 된 것이다.
남아공이 극단적인 사례일까? 실물경제와 무관한 금융자본주의가 대세가 되면서 기업이 일자리 대신 각종 인턴십과 자원활동 기회만 선물처럼 남발하는 한국 사회에서 청년들이 살아갈 사회가 남아공보다 낫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못사는’ 남아공은 동정과 연민의 대상으로 남겨둔 채 이미 파산선고를 한 유럽 복지국가 체제의 파편들을 짜깁기하는 게 유일한 대안일까? (p.173-174)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복지국가를 파괴한 주범으로 곧잘 거론되나, 남반구의 많은 나라는 이 흐름 속에서도 역설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사회 지원체계를 실험 중이다. 과거의 차별정책이 종식되고 첫 흑인 대통령이 선출된 1994년 이후 남아공의 사회적 부조체계는 계속 확대되어 왔다. 2000년대 초반에 이미 전체 인구의 30퍼센트에 달하는 1600만 명의 국민이 정부의 사회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보조금을 받았고, 극빈 지역에서는 이 수치가 전체 가구의 75퍼센트나 됐다.
이를 두고 유럽에서 이미 한물간 ‘사회적인 것’이 현재 아프리카에서 등장하고 있다고 여긴다면 오산이라는 게 퍼거슨의 생각이다. 아프리카에서 등장한 ‘사회적인 것’은 유럽 복지국가의 근간이었던 임금노동 및 보험 메커니즘과 거리가 멀며, 대규모 사회적 지원은 오히려 임금노동에서 배제된 다수의 개인을 대상으로 한다. 1998년 이후 대대적으로 시행되어 온 아동 지원 보조금은 결혼 여부를 따지지 않으며, 오직 보조금 지원 대상이 아이를 가장 적극적으로 돌보는 사람인지만 조사한다. ‘규범적’인 혈연 가족을 더 이상 복지 급여의 기준으로 전제하지 않게 된 셈이다. 또한 모든 남아공 국민에게 매달 15달러 수준의 현금을 지급할 것을 제안하는 기본소득 캠페인은 가족구조는 물론 임금노동 수행 여부도 따지지 않는다. 임금이라는 공식적 대가를 지급할 적절한 일자리가 늘지 않는 상황에서 생계를 위해 다양한 형태로 노동하는 다수를 끌어안을 방도가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p.175-176)
한국은 2015년 “국민의 건강하고 안정된 노후생활”을 위해 노후준비지원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노후 준비’를 “노년기에 발생할 수 있는 빈곤·질병·무위·고독 등에 대하여 사전에 대처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노후 삶의 디자인을 돕겠다며 재무 설계, 건강관리 프로그램을 양산했다. 하지만 재부를 악착같이 쌓아서 (정부가 선전하듯) “폐지 줍는 노인”이 아닌 “손자에게 용돈 주는 노인”이 됐다 해도 몸이 점점 말을 안 듣는다는 자명한 사실을 비껴갈 순 없다. 그런데 우리는 열심히 준비해도 안 된다는 걸 모두가 알면서 개인에게 책임을 강요하고, 준비를 못 했다며 죄책감을 씌우고, 노년의 불안과 공포를 자본화하는 데만 전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코로나19 이후에도 노인의 일상이 ‘정상’을 회복했다는 자축만 있을 뿐, 그 일상을 사회적 공론장에 초대하는 움직임은 별반 보이지 않는다.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삶도 생장하는 삶이 그렇듯 모두의 운명이라면, 양자를 대등하게 다루진 못하더라도 전자에 약간의 존엄을 더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p.201-202)
주목할 것은, 대한민국에서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온 가족 중심의 생존 전략이 글로벌 남반구에서 흔히 발견되는 ‘작은’ 정부의 결과가 아니라, 국가의 적극적인 동원과 지원을 통해 뒷받침되었다는 점이다. 공적부조 시스템을 확충하기는커녕 의식 개혁을 강요하고 민간 사회복지법인에 부담을 떠넘기는 데 급급했던 국가는 일반 국민의 주거에 대해서도, 사회보장에 대해서도 같은 방법을 취했다. 김명수의 『내 집에 갇힌 사회』, 김도균의 『한국 복지자본주의의 역사』는 각각 ‘자원 동원형 주택 공급 연쇄’ ‘자산 기반 복지’라는 개념으로 정부가 적극 개입해 가족 중심의 각자도생을 부추긴 대한민국 국가의 민낯을 소묘한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내면서 가족 바깥의 삶에 대한 무심함을 자연스럽게 내면화한 시민은 형제복지원이라는 사건의 공모자이자 피해자요, 피해자이자 공모자다. (p.309-310)
특히 눈길을 끈 것은 기후재난으로 생명을 위협받는 존재들뿐 아니라, 기후재난에 공모하지 않고선 생존하기 어려운 산업현장 노동자들까지 ‘기후위기 최전선 당사자’로 초대됐다는 점이다. 공공운수노조 금화PSC 지부 소속 박종현 씨는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한 지 10년째인 노동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기후위기 주범으로 지목된 발전소가 2030년엔 절반으로 줄어들 텐데, 폐쇄 이후 대책도, 노동자들의 미래에 관한 논의도 없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정의로운 전환이라 외치고 있지만, 저희는 어떻게 해야 정의로운지 모르겠습니다.” 환경을 인간 외부의 자연으로 둔 채 보호만 외쳤던 지난날의 운동에서라면 박 씨는 파괴의 주범, 불가피한 희생양, 성가신 존재로 취급받았을 것이다. 지구 어디서든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영세 공업단지, 공장식 축사, 대형 저인망 어선은 가장 저렴한 노동력으로 유지된다. 기후‘정의’를 요구하는 자리에선, 박 씨 같은 기후파괴 현장의 노동자도, 그 현장에서 도륙되는 다른 생명도, 우리가 함께 책임지고 대담한 전환을 모색해야 할 환경의 일부가 된다. (p.362-363)
전염병은 지역사회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창궐한다. 프랑코 ‘비포’ 베라르디는 오늘날의 정신질환을 ‘사회-소통적 전염병’이라 불렀다. “네트워크에 접속해 끊임없이 증가하는 막대한 양의 데이터 덩어리를 계속 수신·처리”하는 게 생존 방식이 된 것이다. 확진자는 격리 중에도 안전하지 않다. 불성실하다고 흠집이라도 잡히면 누리꾼에게 온갖 모욕을 당하고, ‘착한’ 확진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한다. (p.367)
세계가 “생각하는 인간과 죽은 자연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활동하고 작용하고 판단하는 수많은 원형-행위자들과 인간이 형성하는 역동적 관계의 총체로 구성”된다는 사실은 국가 통치, 도시 행정, 경제·보건 정책에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지구생활자의 책무를 돌아볼 긴박한 시기에 오히려 특정 국가·지역·성별·인종·종교를 표적으로 삼아 사태 발발과 확산 책임을 추궁하는 대중 정치가 미디어의 각종 음모론과 조응하면서 득세했다.
이처럼 코로나 위기는 기후재앙에 대비한 ‘리허설’이기는커녕 ‘K-방역’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국민 역량의 시험장이자 인간 대 인간의 적대가 한껏 달아오른 결투장이었다. 하지만 분명 다른 흐름도 등장했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기후는 사회운동의 핵심 의제로 급부상했고, 학계의 자본주의 비판도 경제 시스템 분석을 넘어 인간과 비인간을 아우르는 세계 생태에 관한 논의로 확장됐다. (p.372-373)
인간을 중심으로 구축된 사회는 물론, 인간을 포함한 자연의 세계가 소멸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묵시론적 전망은 문학, 영화, 학술, 언론 등 다양한 장르에서 쏟아지고 있다. 붕괴, 종말, 파국 같은 단어를 심심찮게 접하는 세상이 됐다. 하지만 우리 공동의 세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위기감을 실제로 느끼는 ‘우리’란 누구인가? 나는, 당신은 이 ‘공동’의 일부인가?
인류학자 데이비드 밸런타인과 아멜리아 하순은 ‘공동의 미래’를 섣불리 전제하기 전에 ‘공통적이지 않은 미래들’을 세심하게 고려하길 제안한다. “‘미래’는 누구에게, 어디서, 언제, 어떤 스케일로 등장하는가? 어떤 종류의 수수께끼, 문제 또는 해법으로 등장하는가?” 복수의 미래를 논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이 이미 수 세기에 걸쳐 위기, 억압, 폭력, 박탈에 일상적으로 노출된 채 주변화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글로벌 북반구에서도, 특히 대도시에서 특권적 삶을 누려온 엘리트 백인들한테도 미래가 더는 회피할 수 없는 사회정치적, 생태적 문제가 되고 나서야 붕괴론, 종말론이 급부상했으나, 정작 발전된 미래를 애당초 상상해본 적 없이 현대의 미래성에서 끊임없이 좌초된 역사를 살아온 사람들은 이 격정의 묵시론에 별반 감응하지 않는다. 밸런타인과 하순은 ‘인류세’ ‘자본세’ 등 거대한 분기를 지칭하는 표현들이 서로에게 공통적이지 않은, 장기간에 걸쳐 계급화·분절화된 과거들, 현재들, 미래들을 포착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p.375-376)
하지만 윤리적 의무를 감당하길 요구받는 ‘우리’는, 전술했듯 언제나 같은 세계에 있지도, 같은 미래를 바라보지도 않는다. 감염병과 기후변화를 반성적 사유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다른 미래를 궁구하는 이, 미래라는 시간을 현재의 반보 앞 정도로 축소한 채 연명과 쇠퇴를 감내하는 이가 전부가 아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은 인간중심적 미래와 선형적 시간성에 붙들려 있거나, 재난 현장을 기술 혁신과 자본 축적의 프런티어로 변모시키려고 안간힘을 쏟는다. 팬데믹 시기 대한민국 공론장을 가장 뜨겁게 달군 주제는 기후변화가 아닌 주식과 부동산 열풍, 공정과 능력주의였다. 종래의 투자자는 물론 실직자, 취업 준비생, 가정주부, 코로나로 가게 문을 닫은 자영업자, 학교에 얼씬도 못 한 대학생, 위험한 이동을 대리해준 플랫폼 노동자 등등 상당수가 주식 앱을 깔고 게임을 하듯 금융자본주의의 ‘유저’가 됐다. 그리고 주택, 토지, 식량, 에너지, 교육, 의료 등 인간 삶과 생태의 전 분야를 투자 가치를 지닌 상품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공모했다. 코로나로 고용 불안정성이 더욱 심해지면서, 안정적 일자리를 얻기 위한 투자에 평생 올인해 온 청년들은 자신만큼 ‘노력’했다고 여겨지지 않는 대상의 지위나 보수, 그가 받는 지원에 극도로 민감해졌다. 공인된 능력, 쓸모, 효용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낙오자는 무시당하고 혐오의 대상이 되는 데 다수가 깊이 연루됐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우울, 불안, 스트레스를 잔혹한 온라인 댓글로, 집요한 민원으로, 심지어 ‘이상동기 폭력’으로 배설하는 세상이 됐다. (p.378-379)
댓글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