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 전혜원, 오건호 / 서해문집
그런데 국민연금 같은 제도를 시행하면서 의무가입이 아닌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칠레는 공적연금을 민영화했는데, 거기서도 소득이 있으면 연금 가입은 의무예요. 연금을 운용하는 민간 보험사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죠. 그럼 국가가 왜 시민들을 연금에 의무적으로 가입시킬까요? 근대사회 이전엔 그런 제도나 의무가 없었어요. 하지만 근대국가의 헌법은 국가라는 공동체가 모든 시민이 일정 수준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합니다. 특히 노후에는 소득활동이 어렵기에 빈곤층으로 전락할 위험이 높죠. 따라서 국가도 노력하겠지만, 일반 시민들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의무적으로 노후 대비에 참여해야 하는데, 기왕이면 민간 보험사보다는 국가를 통해 함께 준비하자는 취지로 연금 제도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어요. (p.32-33)
그렇게 좋은 취지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당장의 보험료가 부담스러운 사람이 적지 않잖아요? 소득이 낮을수록 더욱 그럴 텐데….
그렇죠. 저만 해도 부담이 만만찮으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국민연금 가입을 선택에 맡긴다면, 보험료를 내기 어려운 계층부터 공적연금에서 빠져나가게 될 겁니다. 당장 먹고살기 힘들고 미래를 생각할 여유가 없으니까요. 결국 저소득층일수록 노후빈곤으로 빠질 가능성이 더 커지고, 소득이 가장 높은 이들만 공적연금의 혜택을 누리게 되겠죠. 일각에서는 인간이 본래 당장 눈앞의 문제에 집중할 뿐 노후라는 30~40년 뒤의 미래에는 무관심한 성향임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국가가 시민들에게 강제로라도 노후대비 책임을 부여하는 게 오히려 합리적이라는 거죠.
물론 정말 보험료 납부가 어려운 사람들은 사회가 지원해야죠. 지금도 저임금 노동자들을 위한 두루누리 사회보험료 지원제도가 있고, 농어민들은 1995년부터 보험료 절반가량을 국가가 내줍니다. 실업급여를 받는 사람도 국민연금 보험료를 계속 내고자 하면 정부가 75%를 지원해요. (p.36)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예요. 우리처럼 연금을 얼마 준다고 미리 확정하는 나라들도, 경제·인구 여건이 바뀌면 액수를 조정해요. 핀란드는 은퇴할 때 연금액이 확정되긴 하지만, 이후 늘어난 기대여명만큼 액수를 줄입니다.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 즉 수급개시연령을 늦추기도 해요. 이것도 결과적으로 생애 총 연금액을 줄이는 방식이죠. 결국 애초 약속한 금액을 지급하려면, 그게 가능한 재정적 토대를 만들어야 해요. 단순히 법조항을 손보는 걸로는 달성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지급보장 법제화는 오히려 연금개혁을 향한 치열한 논의를 가로막을 수 있어요. 미래세대의 불안을 해소한다면서 지급보장 법제화를 강력히 주장하는 분들이 정작 현세대의 책임, 즉 보험료 부담을 높이는 데는 너무도 소극적 행보를 보이는 게 이를 방증하죠. 민주노총·한국노총·참여연대·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진보 진영 가입자단체들이 결성한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과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전문가·교수 집단이 대표적입니다. (p.52-53)
그런데 오늘날의 공적연금 환경은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인구·경제 여건이 나빠지는 거죠. 공적연금을 도입하고 성숙시킨 서구 복지국가들도 이런 변화에 맞춰 현세대의 기여도(보험료율)를 높이고 돌려받을 연금액은 깎는 방향의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저는 현 단계에서 미래에 받을 만큼은 내자는 연금개혁이 사적연금의 논리가 아니라 공적연금의 붕괴를 막기 위한 선도적 조치라고 봐요. 이게 성공해도 미래세대는 의료비·기초연금 등 노년부양에서 우리보다 훨씬 큰 부담을 집니다. 말 그대로 현세대가 져야 할 책임의 최저치죠.
따라서 우리는 ‘덜 내는 보험료’에 문제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공적연금을 ‘다단계 사기’ 같은 범죄에 빗대는 게 적절하진 않지만, 거기에 담긴 불편한 진실을 부정하기도 어렵습니다. 다음 세대에 굉장히 불공평한 제도 운영이라는 점을 직시해야 해요. (p.58-59)
군인연금은 1973년, 공무원연금은 1993년부터 재정 적자가 발생했습니다. 그걸 각각 1973년, 2001년부터 국고로 충당하고 있죠. 공무원연금 적자규모는 2023년 6조1000억 원(GDP 대비 0.27%)에서 2093년 15조 원(0.35%)으로, 같은 기간 군인연금 적자는 1조9000억 원(GDP 대비 0.08%)에서 4조5000억 원(0.1%)으로 늘어날 전망이에요. 사학연금은 사정이 좀 낫다지만 2029년부터 적자로 전환되고, 2093년에는 그 규모가 5조3000억 원에 이를 걸로 전망합니다. 특정 직군을 악마화해서는 안 되지만, 아무리 특수직역의 연금이라도 공동체가 감당 가능해야 하고 일반 시민과의 형평도 확보해야 합니다. 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공공부문 노동자(public sector worker)와 민간부문 노동자(private sector workers)의 연금을 완전히 분리해 운영하는 경우는 소수입니다. 한국·벨기에·프랑스·독일 4개국뿐이에요. 그리스·이탈리아·일본·포르투갈·스페인 등 대부분은 오래전부터 공적연금을 통합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가야죠. (p.66-67)
1988년 국민연금 제도가 도입된 이후 2022년까지의 누적 연환산 수익률은 5.11%예요.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나쁘지 않습니다. 국민연금공단 자료를 보면, 2008~2022년 평균 수익률은 캐나다 연기금 CPPI가 7.6%, 노르웨이 GPFG가 5.5%, 네덜란드 ABP와 한국 국민연금이 5.1%, 일본 GPIF가 3.8%예요. 최근 5년은 어떨까요? 캐나다 연기금 8.1%에 이어 한국 국민연금이 4.2%로, 노르웨이 연기금과 동률이고 일본·네덜란드보다 높습니다. 어떻게 잘라서 보든 한국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성과를 낮게 평가하긴 어려워요. (p.74-75)
기금수익률·물가상승률은 경제성장률이나 임금상승률과 동행하는 변수입니다. 소득이 늘어나는데 물가가 하락하거나 기금수익률이 떨어지는 일은 흔치 않잖아요. 그밖에도 오차를 만들 변수가 존재하겠지만, 그것들이 미래 재정의 전체 밸런스를 좌우하는 관건은 아니에요.
물론 이 변수들이 미치는 영향을 살펴볼 필요는 있겠죠. 그걸 ‘민감도 분석’이라고 해요. 예컨대 기금수익률을 가정치보다 올리거나 낮춰서 전망해보는 거죠. 그렇게 해도 미래 연금재정의 추이는 대동소이합니다. 5차 재정계산에서 가정한 기금수익률이 연평균 4.5%인데요, 같은 기간에 기금을 아주 잘 굴려서 5.5%의 수익률을 거둔다 해도 소진 시기는 2060년으로 5년 연장되는 정도예요. 매년 수익률 1%p를 더 올린다는 게 말이 쉽지, 굉장히 공격적인 목표입니다. 그런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식 기금운용이 공적연금에서 적절한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분분하고요.
어떻든 일정한 기금수익을 기대하더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국민연금 재정의 핵심은 보험료 수입과 연금 지출이고, 둘 모두 소득이라는 동일 변수에 연동된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해요. 따라서 경제성장률·임금상승률 등 경제 변수의 구체적 수치가 달라지더라도 70년 뒤를 예측한 재정 계산 방법론은 충분한 타당성을 가집니다. 수십 년 전부터 주요 선진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방법이고, 우리도 그들에게 배워온 거예요. (p.81-82)
현세대가 지금부터 수입-지출의 균형을 맞춰서 수익비를 1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수익비 1에 근접한 나라는 많아요. 스웨덴, 노르웨이, 이탈리아 등은 아예 보험료 수준에 연금 수준을 맞추는 ‘확정기여형(DC, Defined Contribution)’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그렇게 하더라도 사적연금보다는 가입자에게 훨씬 유리한 제도입니다. 사용자가 보험료의 절반을 부담하고, 저소득층은 국가가 보험료를 지원해 주고, 군복무·출산·실업 등의 시기를 가입기간으로 인정해주는 크레딧 제도도 존재하니까요. 물가에 연동한 금액을 평생 지급해주는 것도 공적연금의 강점이에요. (p.94-95)
이처럼 국민연금의 전반전, 그리고 기금 소진 연도만 봐서는 제대로 된 재정평가를 할 수 없습니다. 연금 문제는 쉽지 않아요. 긴 실타래와 같죠. 대중은 착각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뻔히 알면서도 소득대체율을 올려도 재정에 문제가 없을 것처럼 눈속임하는 일부 전문가들이죠. 너무 무책임합니다.
그분들은 이렇게 반박해요. 기업에게 세금을 거두자거나 국가재정을 투입하면 된다고요. 다시 강조하지만 이 역시 미래세대의 부담입니다. 소득대체율을 올리자고 주장하고 싶다면 적어도 우리 세대가 받을 액수에 부합하는 보험료를 내고서 말을 꺼내야 합니다. 그게 없는 소득대체율 인상론은 현세대의 몰염치이고 이기주의예요. 나만, 우리 세대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거죠. (p.104-105)
물론 국민연금은 재분배 기능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어요. 설명해주신 대로 연금액을 정할 때 절반은 가입자 소득에 비례해서 결정되지만, 절반은 전체 가입자 평균소득(A값)에 연동해서 주니까요.
그런데 보통 국민연금에 ‘재분배’ 기능이 있다고 설명할 때는 ‘받는 돈’만 고려하는 경향이 있어요. 개개인이 매달 받는 연금만 보면 하위계층일수록 소득대체율이 높습니다. 누진적이죠.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최종 결과, 즉 평생 낸 보험료에 비해 누가 더 많은 연금을 받느냐 하는 겁니다. 이걸 계산한 지표가 ‘순혜택’인데요, 은퇴 이후 받을 연금 총액(현재가치)에서 젊어서 낸 보험료 총액(현재가치)을 뺀 값입니다.
소득이 많고 오래 가입한 사람일수록 순혜택이 커요. 낸 돈에 비해서 더 많이 가져간다는 뜻입니다. 왜 그럴까요. 받는 돈뿐만 아니라 ‘내는 돈’을 함께 보기 때문이에요. 국민연금은 재분배 구조(고소득자에게 상대적으로 낮은 소득대체율을 적용)로 설계되었지만, 내는 돈(보험료+가입기간)을 감안하면 노동시장 중심부 가입자에게 더 큰 혜택이 돌아가는 역진성이 나타납니다.
왜 그럴까요? 국민연금은 은퇴 후 받을 연금액을 보험료율과 무관하게 정합니다(확정급여). 따라서 보험료율 수준이 낮으면 노동시장 중심부에 자리한 장기 가입자일수록 납부하는 절대 액수에서 부담이 줄고, 그만큼 더 큰 순혜택을 가져가는 겁니다. 결국 이런 역진성은 낮은 보험료율과 가입기간 차이가 만든 ‘국민연금의 역설’이에요. (p.110-111)
그런데 어떤 정책을 선택할 때는 목표와 효과를 둘 다 고려해야 합니다. 연금개혁에서 포기할 수 없는 두 가지 목표는 노후소득 보장과 지속가능한 재정이죠. 그런데 노후소득 보장이란 목표를 위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올린다지만, 정작 미래에 빈곤할 가능성이 높은 노인들의 소득을 올리는 데는 (절대 액수에서) 효과가 미미해요. 현재 빈곤한 노인들에겐 무용지물이고, 가입기간 10년을 못 채운 국민연금 제도 바깥의 노인들에게도 가닿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연금 재정의 지속가능성에는 100% 부정적이에요.
재정 불안을 감수하고서라도 소득대체율을 올려야 하고, 그 불안은 국고를 투입하면 그만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어떤 계층에 그 혜택이 돌아갈지 따져봐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낸 세금을 쓰는 일이잖아요. 국민연금이 역진성을 보이는 상황에서 보험료 부족분을 국고로 충당하는 건, 결국 세금이 더 여유 있는 집단을 위해 쓰이는 결과밖에 안 됩니다. (p.112-113)
따라서 국민연금에 국가재정을 투입한다면, 모자라는 보험료를 메꿔 중상위계층의 연금액을 높이기보다, 곳곳에 산재한 이런 연금 취약계층을 위해 써야 합니다. 국민연금 바깥으로 튕겨나가 있는 사람들, 최소 가입기간 10년을 채우지 못하거나 간신히 채우는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는 게 더 효율적이고, 동시에 정의롭다고 생각해요. 예컨대 보험료를 9%에서 15%로 올리되 도시 지역가입자 인상분의 절반(3%)을 국가가 지원하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현행 국민연금이 지닌 역진성을 해소하면서도, 제도의 그물망을 넓고 촘촘하게 만들어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습니다. (p.116)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들은 노무현 정부의 연금개혁이 ‘역대급 개악’이었다고 평가해요. 이렇게 폭력적으로 소득대체율을 깎은 전례는 없었다면서요.
국민연금의 보장성이 약해진 건 분명합니다. 그런데 기초연금 도입을 함께 보면 달라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20%p 내리고(60%→40%), 소득대체율 10%짜리 기초연금이 추가되었으니까 언뜻 마이너스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당시에 국민연금 평균 가입기간이 20년밖에 안 되는 걸로 전망했어요. 즉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20%p 내려도 그건 40년 가입일 때 얘기고, 실제 효과는 10%p 깎는 데 그친다는 거죠. 대신 기초연금에서 10%p가 보완되고요. 기초연금은 가입기간이 없으니 법정 소득대체율 10%를 그대로 연금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평균소득 및 평균 가입기간의 가입자를 기준으로 보면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예요. 물론 중상위계층은 국민연금에서 깎이는 금액이 좀 더 큽니다. 기초연금을 못 받는 상위 30%는 국민연금만 줄어드는 거고요. 반면에 중간 아래 소득자들은 국민연금에서 깎인 액수보다 기초연금 금액이 더 높아요. 아예 국민연금 울타리 바깥에 있는 노인들은 기초연금만 새로 받게 되었죠.
이렇게 보면, 당시 국민연금 단일체계에서 노동시장의 중심부-주변부와 연금 사각지대로 각각 나뉘어 있던 노인 계층에 ‘하후상박’ 형태의 노후보장 변화가 일어난 겁니다. 상위계층의 연금은 줄고 하위계층은 늘었죠. 재정 안정을 꾀하면서도 그간 국민연금에서 중상위층이 더 큰 순혜택을 가져가는 ‘재분배의 왜곡’을 개선한 거죠. 굉장히 잘된 개혁으로 평가합니다. 2007년의 연금개혁 덕분에 기금고갈 시점을 2047년에서 2060년으로 미룰 수 있었어요. 또한 그때 만든 기초연금이 없었다면 오늘날 노인빈곤 문제는 훨씬 더 심각했겠죠. (p.183-185)
그런데 일부 전문가는 연금의 복잡성을 지렛대로 아전인수식 해석을 남발해왔습니다. 국민연금 논의 기구에는 항상 가입자단체의 추천권이 행사되는데요. 그렇게 위촉된 전문가와 가입자단체가 펴는 논리가 과연 ‘세대 간 계약’으로서 공적연금의 가치에 부합하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드는 거죠. 이 분들은 말합니다. 미래세대는 충분히 부담을 감당할 수 있으며, 따라서 지금 소득대체율을 더 올려도 된다고요. 현세대야 받을 돈이 커지니 좋겠지만, 정작 미래에 그 돈을 마련해야 할 아이들은 무슨 죄일까요? 여기에 ‘괜찮다’ ‘할 수 있다’ ‘괜찮을 거다’ 대책 없는 낙관만 설파하는 건 전문가의 역할도, 언어도 아니죠. (p.194)
결국 가입기간이 관건이네요.
맞아요. 실제 연금액(실질 소득대체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가입기간을 늘려야 합니다. 앞서 소개한 여러 옵션을 정리하면, 우선 국민연금 보험료가 부담스러운 계층에게는 국가가 개입해 가입 단절을 막아야 해요. 특수고용직·프리랜서·플랫폼 노동자·영세 자영업자 등 지역가입자에게 보험료를 지원한다면, 실질 소득대체율을 올릴 수 있어요.
출산·실업·군복무 연금크레딧도 가입기간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되는 정책들이에요. 현재 둘째 자녀부터 제공하는 출산 크레딧을 첫째부터 2년씩 대폭 강화해야 해요. 프랑스는 자녀 1인당 2년, 독일은 3년이고 최대 한도도 없습니다. 세계 최악의 저출생 국가가 이 정도 지원을 못할 이유가 없죠.
실업 기간 중 국민연금 보험료의 78%를 지원하는 실업 크레딧은 생애 1년으로 제한돼 있어요. 현실은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는 불안정 취업자가 너무 많습니다. 제한을 풀어야죠. 6개월만 인정하는 군복무 크레딧도 당연히 복무 기간 전체로 확대해야 해요.
이외에도 초고령 사회를 맞아 돌봄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집이나 지역사회에서 돌봄에 전념하는 사람에게는 노인돌봄, 장애인돌봄 등 돌봄 크레딧을 제공해야 해요. 역시 유럽에선 이미 시행하고 있는 제도입니다. 연금 크레딧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거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 하지만 이로 인해 국민연금 가입이 힘든 사람들을 위한 지원입니다. 국민연금의 재분배, 연대 가치에 완전히 부합하는 제도죠. 국민연금에 국고 지원이 필요한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p.205-206)
보험료율 인상을 미룰 수 없다는 데는 적어도 전문가들 사이에선 공감대가 있어요. 말씀드렸듯 1차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의 막내인 1963년생들이 국민연금 보험료 납부를 졸업했습니다. 몇 년 뒤 수급자로 전환되는 일만 남은 거죠. 1차 골든타임을 놓쳤습니다. 더 늦기 전에 보험료율을 올리긴 해야 하는데, 소득대체율 인상을 주장하는 분들은 이렇게 말해요. ‘보험료를 올리려면 반대급부를 제공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러니 소득대체율을 단 몇 퍼센트라도 함께 인상해야 한다.’ 이걸 정말로 보험료를 올리기 위한 충심이라고 말하는 분도 있어요.
물론 그게 협상하기 쉬운 길이긴 합니다만, 여기서 소득대체율을 같이 올려버리면 당장은 좋아도 지속가능성 측면에서는 또 마이너스가 생기잖아요. 오래잖아 또 지속가능성 문제가 불거질 텐데, 그때 가서는 무슨 명분으로 보험료율 인상을 꺼낼 수 있을까요?
정공법으로 가야 합니다.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은 오래 가지 못해요. 국민연금 재정이 불안하다는 걸 어차피 금세 알게 될 테니까요. 오히려 내 자식, 내 손주들과의 공존을 위해서 우리가 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고 호소하는 편이 가능성이 높다고 봐요. 소득대체율 인상론자들이 ‘반대급부의 보상’을 강조한다면, 이쪽은 ‘세대공존의 가치’로 설득하는 거죠. (p.213-214)
하지만 대기업과 부자에게만 걷어서 될 일은 아닙니다. 2020년 기준 근로소득자의 37.2%가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어요. 물론 본인들은 꼬박꼬박 세금을 냈겠지만 나중에 공제·감면을 받은 겁니다. 통념과 달리 한국은 GDP 대비 법인세·재산세 비중은 높고 소득세 비중은 낮아요. 정확히는 최고소득세율은 높은데, 공제·감면 항목이 많아서 실효세율이 낮습니다. 부가가치세율 10%도 OECD 평균(19.2%)이나 북유럽(24~25%)에 비해 크게 낮죠.
국채 발행, 즉 나랏빚을 내서 쓸 수도 있겠지만 지속적으로 필요한 복지 지출이라면 증세를 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법인세 감세를 되돌리고, 소득세의 각종 공제를 축소해서 평범한 사람들도 더 세금을 내게 해야 해요. 그래도 소득세는 누진체계여서 인상하면 고소득자일수록 과세액이 커집니다. 이를 통해 국가재정을 키우면서 동시에 소득 수준에 따른 책임을 강화하는 거예요.
부가가치세율도 점진적으로 높여가야 합니다. 같은 세율이라도 고소득자의 소비액이 커서 납부하는 절대액도 훨씬 큽니다. 이 재원을 복지에 사용한다면 부가가치세도 재분배에 기여할 수 있는 거죠. 북유럽 복지국가들이 부가가치세율을 높게 유지하는 까닭입니다. (p.220-221)
2022년에 ‘국민의힘은 초부자감세를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국민감세를 하겠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내걸렸습니다. 두 거대 정당이 서로 감세하겠다고 경쟁하는 모습이 씁쓸했어요. 시민 개개인의 삶에 유의미한 사회안전망을 만들려면 이제는 증세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누구보다 대통령이나 정부가, 어떤 정책에 어느 정도 추가 비용이 필요한지 정교하게 엮어서 지속가능한 국가재정 지출 운용 계획에 대한 그랜드 플랜을 내야 합니다. (p.222-223)
진보 진영의 노동·시민단체에서는 나를 ‘재정안정론자’로 부른다. 공적연금의 본령인 보장성을 소홀히 한다는 비판이 담긴 호명이다. 재정안정과 보장성은 공적연금이 동시에 달성해야 할 두 목표인데, 어째서 우리나라 연금개혁에서는 양자택일 구도가 형성될까? 개혁의 강조점이야 다를 수 있지만, 우리의 연금정치 지형은 지나치게 대립적이다.
이 갈라치기의 발원지가 내가 속한 진보 진영이라는 점에서 마음이 더욱 무겁다. 사회의 부정의를 직시하려는 진보에게 비판의식은 소중한 덕목이지만, 연금개혁에서 등장하는 ‘비판’ 논리는 오히려 진보가 거꾸로 가고 있다는 우려를 들게 한다. 여러 논의를 거듭 접할수록 초고령사회의 핵심 제도인 공적연금을 바라보는 인식의 협소함, 어느새 익숙해져 버린 연금급여에서의 기득권을 보기 때문이다. 여기서 ‘협소함’은 연금개혁에서 보장성을 국민연금에 한정해 보는 시야, 오로지 소득대체율 인상에 승부를 거는 집착을 말한다. ‘기득권’은 사회연대를 말하지만 실제는 노동시장 중심부 집단의 이해에 갇히고, 현세대의 책임을 회피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p.231-232)
그런데 국민연금은 ‘내고 받는’ 제도다. 가입자가 납부하는 보험료와 연금을 결합해서 평가하면 결과는 정반대로 바뀐다. 워낙 보험료율이 낮기에 모두가 자신이 낸 보험료 총액보다 더 많은 연금을 받고, 이 순혜택은 가입기간이 길수록 커진다. 결국 노동시장에서 중심부에 있는 중상위계층일수록 더 혜택을 얻는다. 은퇴한 사람들에게 젊은 시절 노동시장의 소득 격차를 줄여주기는커녕 오히려 심화시키는 ‘국민연금의 역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명목 소득대체율을 올리자는 주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미래세대의 과중한 부담에 눈감으면서 현재 노동시장 중심부의 이해에 치우친 개편이다. 노후 불안정, 불평등 시대에 이는 공정한 일인가? (p.232-233)
진보란 무엇인가? 나는 오늘날 불평등 사회에서 불리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진보는 현행 체제에서 향유되는 다양한 기득권에 대항하며 평등과 공존을 지향한다. 그런데 한국의 대표적 진보단체와 학자들의 연금정책에선 ‘거꾸로’ 경향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초고령사회를 눈앞에 두고도 노년부양 부담이 훨씬 무거울 미래세대에게 무심하고, 노후 불평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노동시장 중심부 집단의 이해에 경도되어 있다. 공적연금의 가치가 세대 간 계약, 사회적 부양이라고 역설하면서도, 실제는 ‘현세대’ ‘중심 집단’의 기득권에 안주하는 ‘진보 연금개혁의 역설’이다.
진보의 입장에서 진정한 연금연대가 절실하다. 우선 세대 간 연대에 적극 나서자. 이는 세대별 재정 책임을 공평히 하는 일이다. 20세기 중반에는 미래로 갈수록 노년부양 환경이 우호적이어서 후세대가 공적연금의 추가 부담을 감당하는 세대 간 계약이 가능했지만, 21세기에는 노동시장 불안정과 저출생-고령화로 뒤로 갈수록 노년부양의 무게가 가중되고 있다. 이제는 오히려 현세대가 미래세대의 과중한 부담을 사전에 완화하는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시대적 현실이 이러함에도, 이미 확인되는 국민연금의 재정적자 부담까지 버젓이 후세대로 넘기려는 게 오늘의 한국 진보이다. 미래 시점에 지출 총량이 결정되는 의료비·기초연금 등은 어쩔 수 없이 후세대에 의존하더라도, 최소한 현세대가 보험료율과 연금 수준에 대한 의사결정권을 가진 국민연금에서는 재정 책임을 다해야 한다. 보험료율을 인상해서 가입자의 기여분이 늘어나면 순혜택의 역진성도 개선되어 국민연금의 재분배 기제가 온전히 작동할 수 있고, 재정이 확충되니 당연히 미래세대 부담도 경감될 것이다. (p.237-238)
국가도 연금재정에 기여해야 한다. 이때 국민연금 국고 지원은 현세대 가입자의 책임 방기에 따른 보험료 부족을 메워주는 ‘적자 보전’이 아니라 연금 취약층의 가입기간을 늘려주기 위한 ‘사회적 지원’이어야 한다. 다양한 크레딧을 대폭 확대하고, 도시 지역가입자도 농어민처럼 보험료를 지원받아야 한다. 당연히 저소득 노인을 두텁게 지원하는 기초연금의 재정도 국가 몫이다. 대부분 서구 나라의 연금 재정 지원도 이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p.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