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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건설 엔지니어 시점 / 양동신 / 김영사

 

 가끔씩은 생각한다. 가급적 현재 상황을 견디어내고 버티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 버티는 힘이 힘겨울 때면 다른 환경으로 이동을 하여 상황을 타개해보는 것도 현명한 일이 아닌가.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일과 다양한 환경이 존재한다. 나에게 맞는 업의 종류가 어떤 것인지는 여러 과정을 통해 찾아보는 시도도 때로는 필요한 법이다. 아니다 싶으면 과감하게 다른 길을 개척하는 것도 본인의 실력일 것이다. (p.71)

 

 다행히 우리나라의 사고성 사망만인율(사고사망자/피고용자수×10,000)은 해가 지남에 따라 급격하게 낮아지고 있다. 고용노동부 통계가 기록된 1998년 사고성 사망만인율은 2.19명이었는데, 2020년에는 0.46명으로 4분의 1 가량 낮아졌다. 이게 영국 수준으로 가자면 0.045명으로 줄어들어야 되는데, 어서 빨리 우리 사회도 안전에 있어서도 선진국이 될 수 있길 바란다.
 안전은 분명 비용을 증가시키며, 제품의 가격을 상승시킬 수 있는 요인이다. 하지만 그 안전에 대한 관심과 제도, 그리고 비용을 증가시킬 때, 사회 구성원이 조금 더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있고 다양한 직업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이미 선진국이라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가 가야 할 안전의 수준은 길이 멀다. 부디 건설 현장도 조금 더 안전해져서 직업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희미해지길 기원한다. (p.92-93)

 

 이것을 노하우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일을 하며 어떤 새로운 정보를 처음 접할 때는 잘 이해되지 않더라도 가급적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을 듣고만 있으려고 노력한다. 어떤 정보든 처음에 접하면 단어가 익숙하지 않아 제대로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일단 처음에는 그저 듣기만 하고 대강 정보의 크기와 특성 정도만 파악한 후, 자리에 와서 차분히 해당 문서를 세세하게 살펴본다. 그렇게 한나절 정도 스스로 공부하고 다시 설명해준 사람에게 가면, 처음에는 들리지 않았던 것들이 들리기 시작한다. (p.118)

 

 간혹 영문 보고서의 경우, 너무 많은 전문용어에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 보고서 서두에 정리된 용어정리(Terminology)만 제대로 이해하면, 오히려 해석이 훨씬 더 쉬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전문 분야 보고서는 대부분의 문장 패턴이 정해져 있어, 단어에만 친숙하면 보고서 저자가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파악하기 쉽다. 아울러 대부분의 논문이 그러하듯, 결론부 이전은 해당 결론을 내기 위한 빌드업 과정이라 정말 중요한 내용은 결론부에 대부분 존재한다. 일을 할 때에도 이 결론부와 연관된 보완 작업이 필요한데, 그런 과정에서 속독할 때에도 어느 정도 완급 조절을 할 필요가 있다. 괜히 배경 설명 문장 하나하나를 생선 토막 내듯 한 단어 한 단어 해석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학생이라고 한다면 굳이 찾아서 보지 않고서는 이런 전문 보고서를 접하기 쉽지 않다. 이런 경우 글로벌 회사의 연차보고서를 읽어보는 일도 예행연습 차원에서 괜찮은 대안이다. 우리가 평소에 사용하는 제품을 만드는 회사 정도면 연차보고서는 쉽게 접할 수 있다. 미국증권거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도 있고, 각 기업 IR(Investor Relations)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국 회사의 연차보고서는 ‘Form 10-K’이라는 파일을 보면 되는데, 평소 관심 있는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연차보고서를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보고서의 논리 구성 방식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아이폰이나 맥북에 매료된 학생이라면 적어도 애플의 연차보고서 정도는 읽어보며 객관적인 데이터나 위험 요소의 전개 방식을 습득하는 것이 회사 업무 예행연습의 일환이 될 수 있다. 기업의 밸류에이션에 관심이 있다면 새로 상장하는 회사의 투자설명서를 읽어보는 것도 괜찮다. 모든 상장회사의 투자설명서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인 DART(dart.fss.or.kr)에 등재되어 있다. (p.121-122)

 

 우리는 당연히 누리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기 쉽지 않다. 맑은 공기, 깨끗한 물, 원활히 공급되는 전기와 같은 것들이 그러하다. 하지만 이것들이 단 1분 1초라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큰 분노감을 표출하기도 한다. 이렇게 당연히 누리는 것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기술이 건설 엔지니어링이다.
 미세먼지를 줄이면서 원활히 전기를 공급하려면 우리는 화석연료 발전기 가동을 줄여나가면서 재생에너지 생산 시설을 늘려야 한다. 간헐성이라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재생에너지와 더불어 수소연료전지, 에너지저장시스템(ESS) 등의 시설을 건설해야 하며, 더 촘촘하고 튼튼한 전력 그리드망을 건설해야 한다. 깨끗한 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고도의 정수장 건설이 필요하며, 악취를 없애기 위해서는 지하 하수처리장의 신설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물들을 건설하는 일은 끊임없는 주민 반대와 마주하는 일이다. 누구나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에 송전선로가 들어오는 것은 반대하며, 누구나 포크레인과 덤프트럭, 그리고 레미콘이 자주 다니며 구조물이 건설되는 것을 싫어한다. 사실 우리가 아주 나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이러한 저항과 마주하게 되면 가끔 자괴감이 느껴진다.
 이러한 인프라 시설은 대부분 국가기반시설로서 네이버지도나 카카오맵에서도 표시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다. 전시 상황에서 적군의 주요 공격 시설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학교 교육과정에서도 그 중요성이 간과되며, 많은 사람이 존재 자체를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가 다니는 보도나 도로 밑에는 대부분 공동구라 하는 콘크리트 박스가 존재하며, 그 공동구 안에는 전력, 통신, 수도, 가스, 난방 등의 시설이 존재한다. 심지어 각 지자체 시설관리공단은 24시간 순찰 및 점검을 하며 매일같이 해당 구조물의 안전을 점검한다. 이렇듯 당연히 안전하게 존재해야 하는 시설물은 매일같이 누군가의 유지관리를 받고 수십 년간 잘 가동되는데, 어느 한순간 홍수나 한파로 인해 고장나면 엄청난 죄를 지은 것 같이 비난을 받는다.
 개인적으로 바라는 점이 하나 있다면, 학교에서 우리 주변에 있고, 있어야 하는 사회 인프라 시설물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가르치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어느 지역이든 상수도 시설인 정수장과 배수지, 상수도관 등이 거미줄과 같이 연결되어 있으며, 하수처리시설과 하수관 및 우수관 역시 거미줄과 같이 연결되어 있다.
 지역의 역사를 별도의 교과서를 통해 배우듯이 지역의 인프라 역시 별도의 교과서를 통해 배운다면 같이 사는 공동체에 대한 인식을 조금 더 높일 수 있지 않을까. 특강의 형식으로 지역의 하수처리 및 정수장 관리 공무원, 전력구 관리 담당 한전 직원, 소각시설 담당 공단 직원과 같은 분들이 1년에 한 번씩 설명해주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겠다.
 1990년대 이후 형성된 도시의 지하는 대부분 앞서 언급한 공동구에 각종 인프라망이 존재하며, 이들의 존재 덕분에 우리는 매일 편하게 샤워하고, 인터넷을 이용하며, 따뜻하고 시원한 주택 안에서 거주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프라 메커니즘을 보편적으로 가르쳐 일깨워주는 것은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더 많은 사람이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알아줄 때, 그때 직업인들은 더 기쁨을 느낄 것이다. (p.135-138)

 

 2022년 여름에는 수도권에 폭우가 쏟아졌는데, 8월 8일 서울시 신대방동 일대는 시간당 최고 141.5밀리미터라는 기록적인 수준을 보여줬다. 이는 공식 기록인 1942년 118.5밀리미터 이후 80년 만에 가장 많이 내린 비라고 한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집중호우로 인해 전국에 14명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되었다고 한다. 이재민은 서울, 경기를 중심으로 1,901명이며, 도로사면 및 하천제방의 피해가 이어졌다.
 이러한 기록적인 폭우에 대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평소보다 더 높은 수준의 안전한 구조물을 설계해야 한다. 대표적인 예가 서울 양천구와 강남구에 조성되는 대심도 빗물저류배수시설과 같은 것들이다. 2010년 9월 폭우 이후 취약성이 드러난 서울 양천구에 조성된 이 대심도 빗물저류배수시설은 7년간 공사비 1390억 원을 들여 완공했고 연간 6억 원대의 유지보수비용으로 관리하고 있다. 이 시설은 2020년 5월에 완공되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완공 후 2년이 지난 후 구조물의 목적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서울의 대표적인 침수 구역이었던 양천구가 이번 폭우 때는 피해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당 폭우기간 동안 빗물터널의 용량은 53퍼센트 가량 쓰였다고 하며, 해당 구조물이 없었다면 양천구 역시 피해를 비껴가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한다. 반면 2020년 당시 양천구 외 여섯개 지역에도 대심도 터널이 계획되었는데 비용과 건설 과정의 위험성을 이유로 건설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 폭우 때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피해가 커진 것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 (p.145-146)

 

 어느 분야나 이론이 있고 그에 따른 전문용어가 있기 마련이다. 이는 어찌 보면 인류 전체의 유산일 수도 있고, 뉴턴이 말한 거인의 어깨일 수도 있다. 영화든 건설이든, 반도체든 기계공학이든, 이러한 누적된 이론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안전한 기계나 건축물, 유려하고 잘 직조된 영화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간혹 이론의 가치를 지나치게 무시하는 실무자들이 눈에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이론을 등한시하고 잘되는 경우는 보기 어렵다. 직관적으로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우리 선배들이 만들어놓은 이론을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기본을 잘 세워나가는 자세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그 이론을 어느 정도 내 것으로 만들었을 때, 창조성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p.165-166)

 

 자존감이라 하는 것은 없었던 것이 갑자기 나타나는 개념이 아닙니다. 아무런 경험과 능력이 없는데 자신감만 있다고 하면, 그것은 그야말로 ‘근자감’이지 진정한 의미의 자신감은 아닐 것입니다. 세상의 허들은 생각보다 높을 수도 있고, 낮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끝없이 많은 허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 허들을 넘을 수도, 혹은 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직업의 자존감은 이러한 허들을 계속해서 마주하면서 극복하는 경험을 쌓아나가며, 그 극복의 타율을 올려나가는 과정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높은 산과 같이 보였던 허들이 한 번 넘고 두 번 넘다 보면 그다음부터는 아무리 높은 허들이라도 넘어보려는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용기가 생깁니다. 그 용기의 집합이 결국 ‘직업의 자존감’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p.209-210)

 

 우리가 세계여행을 하면 보통 랜드마크라 하는 구조물을 중심으로 여행을 다닙니다.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금문교부터 보며, 호주에 간다면 하버브리지와 오페라하우스, 런던에 간다면 런던아이와 대영박물관을 먼저 찾습니다. 이러한 랜드마크를 중심으로 숙소도 예약하고, 맛집을 탐방하기도 하지요. 로마에 간다면 콜로세움, 파리에 간다면 에펠탑과 퐁피두센터, 뉴욕에 간다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과 자유의 여신상을 꼭 확인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뉴델리에 간다면 타지마할, 심지어 이집트에 간다면 기자의 피라미드를 봐야 진정 인도나 이집트문명을 제대로 봤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렇게 우리가 만드는 건설 구조물은 시대를 관통하며 세계인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객체입니다. 아울러 화려하진 않아도 우리 주변에서 살아 숨쉬며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구조물이 존재합니다. 이는 하루라도 없다면 우리가 살아 숨쉬기 어려운 것들이지요. 정수장에서 만들어진 물,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되어 방류되는 물, 매일 출퇴근을 도와주는 지하철, 고속도로, KTX, 우리가 거주하는 아파트나 빌라 역시 살아 있는 문명의 화석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가 하면 인프라, 예를 들어 고층 오피스 빌딩, 전기를 생산해주는 발전소, 송배전망, 땅 밑의 광통신망과 지역난방관 등은 어느 하나 한 시간이라도 멈추면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존재들입니다.
 이런 소중한 구조물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되는 직업이라니, 가슴이 벅차오르지 않나요? 물론 이러한 구조물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기쁘고 슬픈 일도 많이 있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존재합니다. 결국은 생활인으로서의 건설 엔지니어가 우리네 모습이기 때문에, 매 순간 가슴이 뛰고 벅차오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돌이켜봤을 때, 내가 하는 일 하나하나가 그래도 인류 역사에 벽돌 한 장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뿌듯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p.212-214)

 

 

작은 목소리, 빛나는 책장 / 쓰지야마 요시오 / 돌베개

 

 요즘 텔레비전 뉴스나 트위터 타임라인을 보면 마음이 차갑게 식는 일이 너무 많아서 나도 모르게 기분이 가라앉는다. Title이 문을 연 지도 벌써 몇 년이 흘렀다. 최근 급속도로 세상을 뒤덮고 있는 ‘빈곤’은 우리 서점과도 무관하지 않다.
 빈곤이라고 하면 돈을 상상할지도 모르지만 여기서 그 문제는 언급하지 않겠다. 사소하지만, 서점에서 모르는 책에 손을 대는 사람이 줄었다는 것도 빈곤 현상 가운데 하나다.
 책이나 영화나 여행지 풍경도 마찬가지일 텐데, 일반적으로 지식과 체험의 양이 증가하면 똑같은 것을 보면서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런 까닭에 “들어본 적 없는 책이라서.” 하고 미지의 책에 손을 대지 않게 되면, 그 사람에게 보이는 세계는 점차 좁아진다. 이는 그야말로 갈수록 일상 곳곳에서 드러나는 모습이다. 사회가 경제나 효율을 우선시하고 거기 포함되지 않는 것을 잘라낸 결과, 사람들의 사고가 단순화되고 있다.
 책은 본래, 이런 빈곤과 정반대에 놓인 것이었다. 어떤 책을 계기로 세계가 이전과 완전히 다르게 보이는 경험을 한 사람이 있을 텐데, 이는 몰랐던 지식이나 감정에 자극을 받아 세계의 해상도가 높아진 까닭이다.
 책의 세계에서 쉽고 편한 성질만을 가져오려 한다면 인간의 정서를 건드리고 읽는 이를 뿌리부터 뒤흔드는 책은 경시된다. 그 대신 이해하기 쉽고 수월한 책만 수요가 늘어난다. 간단히 얻은 지식은 쉽게 잊히며, 독자의 내실을 넓혀주기 어렵다. 편리하지만 빈곤한 사회 현상에 책을 둘러싼 세계도 휩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p.54-55)

 

 책장은 몸 바깥에 부착된 두뇌와도 같아서 풍부하게 만들어두면 지식과 감정의 총량도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 살 수 있을 때 사놓고 아직 읽지 않은 책이라고 해도 책장에 꽂혀 있는 것으로 충분히 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인터넷 서점에서는 지금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손쉽게 찾을 수 있지만, 그에 반해 지금 당장 읽을 필요는 없어도 앞으로 어딘가에서 이어질 법한 책을 만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인터넷이 지닌 우월한 편리성은 언제나 ‘지금’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당장 읽을 책은 지금의 나를 긍정하기는 해도, 아직 싹이 나지 않은 가능성에 물을 주는 일은 하지 못한다. 책장에 지금 필요한 책밖에 없는 상황은 어쩐지 내게는 조금 쓸쓸하게 여겨지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p.101-102)

 

 서점을 운영하다 보면 한 아이가 찾는 책의 변화도 감지할 수가 있다. 소다 오사무를 읽던 아이가 모리 에토를 거쳐 시게마쓰 기요시를 사고, 그러다가 생텍쥐페리나 펄 벅으로 바뀐다.
 그럴 때면 그 아이의 책상 한편에 놓인 작은 책꽂이를 상상해본다. 마을에서 서점을 한다는 것은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 책장을 책임지는 일이나 마찬가지기에 어린이가 혼자서 책을 살 때면 어른들이 살 때보다 살짝 더 긴장된다. (p.118)

 

 Title에서는 매일 아침 8시에 ‘오늘의 책’을 업데이트하고, 정오가 되면 셔터를 올려 서점 정경을 사진으로 찍어서 오픈을 알린다……. 이것은 어느 틈엔가 생겨난 이 서점 고유의 시스템이다. 설령 작업이 밀리더라도 무심하게 루틴을 따르다 보면 그 정체가 해소되고, 일은 다시금 앞으로 나아간다.
 나날이 변화하는 하루도 즐겁겠지만, 나에게는 정해진 틀 속에서 작은 변화를 포착하는 일상이 잘 맞는 것 같다. (p.124)

 

 “과거의 음악이나 문학도 시간을 뛰어넘어 지금과 이어져 있습니다. 인간은 그것들 없이는 살 수 없어요. 쓰지야마 씨도 그렇게 믿기 때문에 서점을 여신 것 아닌가요?”
 그런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는 인간이 책을 손에 쥘 때 느끼는 순수한 마음의 움직임이 좋다. 크게 의식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인간이 되길 바라며 눈앞에 있는 책을 손에 쥔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도 설령 같은 날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내일은 조금 더 나은 서점을 만들고 싶다. 화려하지 않아도 변함없이 오래 계속하고 싶다…….
 ‘오늘은 잘 안됐지만 내일은 꼭.’이라고 생각할 때 인간은 저 멀리 어렴풋한 무지개를 본다. (p.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