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 Read Code

 

워터 / 맷 데이먼, 개리 화이트 / 애플북스

 

 내 생각은 자꾸만 파란 원피스를 입은 소녀와 함께 우물까지 걸어가던 장면으로 돌아갔다. 소녀가 처한 상황과 물에 대해 배운 모든 것들을 생각할수록 물이 다른 모든 것들의 근간임을 깨닫게 되었다. 물 없는 삶은 불가능하다. 깨끗한 물이 없다면 인류의 진보도 불가능하다.
 여행 중에 마주쳤거나 뉴스에서 본 다른 모든 문제들도 결국 물로 수렴되는 듯했다. 보건 문제를 예로 들면 수인성 질병의 가장 흔한 증상인 설사는 말라리아와 홍역, 에이즈를 합친 것보다 많은 아동들을 죽음으로 내몬다. 또 다른 수백만 명의 아동들은 수인성 질병으로 유발된 심각한 영양실조 등으로 신체 및 정신적으로 영구적인 장애를 입는다. 또한 물을 길어 나르는 여자와 소녀들에게는 훨씬 심각한 건강 문제가 따른다. 유엔 여성기구 부국장 아사 레그너는 이렇게 말한다. “보통 어린 나이부터 이런 것들을 들고 나르다 보면 목과 척추, 등, 무릎의 마모가 누적됩니다. 사실상 여성의 몸이 식수 공급 기반 시설의 일부로 파이프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셈입니다.”
 물은 더 많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는 근간이기도 하다. 수인성 질병으로 학교에 결석하는 경우가 한 해에 4억 4,300만 건에 이른다. 욕실과 위생용품이 미비한 탓에 소녀들은 생리 기간 중 여러 날을 집에 머물러야 한다. 더구나 하루 중 상당 시간을 물을 길으러 다니다 보면 학교에 가기도 힘들다. 아이들이 교실에서 친구들과 공부하길 바란다면 당신부터 나서서 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p.37-38)

 

 본질적인 문제는 물과 위생 프로젝트의 대부분이 지역사회와 함께가 아니라 지역사회를 위해 건설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 당시 미국 정부 프로그램의 상당수는 기획에서 재료 조달까지 미국 회사들이 맡았다. 실제로 미국국제개발처(USAID)는 이 내용을 의무화했다. ‘물의 10년’ 동안 국제개발처에서 진행하는 대다수 개발 사업에 미국 사업자를 이용해야 한다고 법률로 규정한 것이다. 이 논리라면 미국이 현지인들을 돕는 모든 활동에서 무언가를 챙긴다는 뜻이다. 2000년대 들어 미국 정부는 이것을 문제가 아닌 미덕으로 보았다. 국제개발처 홍보 자료에서도 이렇게 과시할 정도였다. “미국의 해외 원조 프로그램의 주요 수혜자는 늘 미국이었다. 국제개발처 계약과 지원금의 80퍼센트는 미국 기업들에 직접 이전된다.”
 이론적으로 보면 남을 도움으로써 나도 이득을 얻는 일종의 윈윈(win-win)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전 국제개발처장은 의회에서 정한 이 규칙들이 골칫거리라고 인정했다.) 왜냐하면 우물을 만드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물을 계속 사용하다 보면 어느 순간 몇몇 부분이 고장 날 것이다. 미국산 부품으로 만든 우물이라면 현지 주민들이 무슨 재주로 고칠 것인가? 부품 파는 곳을 알아내 해외 주문을 해서 새 부품으로 갈아 끼우려면 평소 주민들에게 유지관리비를 징수해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는 한 남는 것은 결국 고장 난 우물뿐이다. 당시에는 우물 설치에 급급한 나머지 이런 가능성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그렇게 많은 우물들이 사용할 수 없는 채로 방치되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물 프로젝트로 우물을 완성한 지 2년에서 5년 사이에 약 30~50퍼센트가 고장 난다고 한다. (p.61-62)

 

 내가 참석했던 물 프로젝트 가동식 대부분은 기쁨으로 가득했고, 앞에서 소개한 사례보다 만족도가 훨씬 오래 지속되었다. 이런 지역사회는 주민들의 삶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여성들은 더 이상 물을 길으러 다니지 않아도 되니 일할 시간을 되찾았다. 소녀들은 학교를 다녔고, 수인성 질병으로 안타깝게 죽는 아동도 줄어들었다.
 물 그 자체에도 소박한 기쁨이 있었다. 마침내 깨끗한 식수원을 확보하고 안전한 물을 부족함 없이 이용할 수 있게 되면, 처음에 주민들은 머뭇거리다가도 뜨거운 얼굴을 식히려 몇 방울을 얼굴에 튀겨보기도 하고 서로에게 뿌리며 장난도 치고 손바닥으로 흘려보기도 한다. 그렇게 신기해하고, 그렇게 감격한다. 스트레스와 질병과 심지어 죽음을 일으키던 무언가가 갑자기 기분을 즐겁게 하고 생명을 지키는 원천이 되었으니 말이다. (p.71-72)

 

 깨끗한 물을 이용할 수 있게 되면 우리가 측정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사회의 생활양식이 변화한다. 그중 가장 중요하고 고무적인 것이 여성의 역할 변화이다. 깨끗한 물이 부족하면 언제나 현지의 여성들이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물 때문에 여성들의 삶이 무시당하고 더 나아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또한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인권과 권능도 앗아간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하는데, 깨끗한 물이 부족하면 여성들이 학교에 갈 시간이 없으므로 배움의 기회마저 박탈당한다. 돈도 권능을 낳는데, 깨끗한 물이 부족하면 돈을 벌 기회조차 빼앗긴다. 깨끗한 식수원이 만들어지면서 그 모든 상황들이 놀라운 방식으로 역전되었다. 물은 여성의 일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보니 식수관리위원회 의석의 상당수를 여성들이 차지하고 일부는 의장 역할도 수행했다. 그만큼 지역사회의 주요 자원에 대한 여성들의 권한이 강화된 것이다. 또 어떤 여성들은 공공보건 단체를 결성하여 깨끗한 식수 공급을 더욱 확고하게 뒷받침했다. 여성들은 한때 박탈당했던 권능을 되찾았고, 직접 대화를 나눠보면 그들의 달라진 태도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 여성들이 운영하는 어느 지역사회 단체 회의에 남성도 참석할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평생 잊을 수 없다.
 “그럼요, 당연하죠. 뒷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기만 하면요.” (p.73)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깨끗한 물과 위생 시설을 사용할 수 있는 세상. 너무 특별한 세상이어서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이론이 아닌 경험에 근거한 데이터를 통해 우리는 예상할 수 있다. 깨끗한 물을 이용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여성들이 스스로의 노동력으로 소득을 얻고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들의 지위가 향상되면서 많은 여성들이 임신을 늦추고 자녀 수를 줄임으로써 가족을 더 훌륭하게 부양할 수 있다. 그리고 당연히, 소득원이 여럿인 가정은 빈곤에서 벗어날 가능성도 높다.
 수인성 질병이 줄어들면 자녀를 잃는 참기 어려운 비극을 겪는 부모도 줄어들 것이다. 발육장애도 점점 줄어든다. 아이들의 신장은 점점 늘어나고, 만성적 건강 문제는 줄어들며, 건강한 신체와 정신은 아이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것이다. 어쩌면 졸업생 수도 늘어날 것이다. 가족이 사용할 물을 구하느라 학교를 자퇴하는 소녀들, 수인성 질병으로 결석하는 소년 소녀들이 훨씬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더 좋은 보건 및 교육 혜택을 받고 성장해 그들의 가족과 지역사회와 세상 전체에 기여하는 모습도 보게 될 것이다.
 정말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계량화하기는 어렵지만 측정 자체보다 훨씬 중요한 변화들도 있다. 화장실을 혼자 쓸 수 있을 때의 안전함과 편안함처럼. 또는 야외의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일하다 시원한 물 한 잔을 마실 때의 고마움처럼. 또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무언가가 없어서 몸져눕거나 시력을 잃거나 죽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처럼. 또는 다른 길을 찾고 다른 목표를 추구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느낌처럼. (p.247-248)

 

 그리고 아이티에서 프로젝트를 통해 만난 소녀도 떠오른다. 다른 많은 경우처럼 그 소녀도 가족을 위해 멀리 떨어진 우물까지 물을 길으러 다녔다. 몇 살이냐고 물었더니 소녀는 열세 살이라고 답했다. 그 당시에 내 큰딸의 나이와 같았다.
 이제는 물을 구하러 오후 내내 걷지 않아도 되니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이냐고 소녀에게 물었다. “숙제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쓸 거예요?”
 소녀는 대책 없는 어른을 만났을 때 아이들이 흔히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단호히 대답했다. “아뇨!” 그리고 덧붙였다. “내가 우리 반 일등인걸요.” 소녀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거짓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고는 앞으로 그 시간을, 수도꼭지가 소녀에게 돌려준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이야기했다.
 “연주를 할 거예요!”
 나는 “물은 생명이다”라는 격언을 또 한 번 되새겼다. 어떤 이들은 이 말을 인간이 살기 위해 물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깨끗한 식수원은 단순히 생존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물은 자유를 부른다. 물은 기쁨을 부른다.
 마지막으로, 물은 살아가기 위한 기회를 부른다. (p.249)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 / 박한슬 / 북트리거

 

 2020년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는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 회장인 김웅한 교수가 증인으로 참석했습니다. 외과 계열 진료과 중에서도 가장 큰 기피 대상인 흉부외과 전문의인 그는 ‘기피과’ 문제에 대한 질의를 이어 가다 이런 어려움을 토로합니다.

… 의료사고 생기면 무조건 소송입니다. 저도 지금 소송 중인 게 있고, 제가 신이 아닌 다음에는 100% 다 살릴 수 없는데 환자가 잘못되면 소송이 무조건 10억 이상입니다. … 이러면 병원장이 (사망 위험이 큰 과는) 폐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전국에 지금 소아 심장 수술하는 데가 대여섯 군데밖에 안 남았습니다.

 의사도 사람인 이상, 어려운 외과 수술을 하는 것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이 기본적으로 있는데 실패에 대해 심각한 수준의 법적인 책임을 지게 될 수도 있다는 부담까지 덧씌워진다는 거죠. 물론 일부에선 이런 위험이 과장되었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의사들의 의료 소송 패소율이 낮다는 건데요. 국내에서는 직접적인 의료 소송이 이루어지기보다는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통해 조정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한국에서 연간 제기되는 의료 소송은 900건 정도인데, 2019년에 새로 의료분쟁 조정이 신청된 건수는 무려 2,824건이거든요. 이 중 86.5%가 조정이 성립되었으니, 법적 책임에 대한 공포가 과장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당사자인 의사들은 이런 상황을 큰 부담으로 인식하고 있기에, 굳이 위험부담을 더 크게 져야만 하는 외과계 전문의 수련을 받지 않으려는 거고요. (p.36-37)

 

 어쨌거나 현행 의료비 책정 구조는 의료인이 정량화하기 힘든 방식으로 수행하는 업무에 대해서는 보상이 무척 인색하지만, 정량화가 가능한 진단·검사 장비는 사용량에 비례하는 명확한 금전적 보상이 돌아오는 방식입니다. 그 원인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신뢰가 낮은 탓에 정량화되지 않은 행위에 대한 비용 청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이 강해서일 수도 있고, 애초에 전문적 상담의 가치를 그리 높게 두지 않는 사회적 인식이 반영된 것일지도 모르죠.
 결과적으로 주어진 조건이 이러니 의사는 개별 환자를 최대한 짧게 진료하고, 짧아진 진료 시간으로 인해 명확히 파악하지 못한 환자의 상태에 대한 정보를 벌충하기 위해 다양한 검사를 처방함으로써 진단에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모아야만 합니다. 그런 결과들을 받아 최종 진단이 나오면 빠르게 약을 처방하고 다른 환자를 봐야만 하죠. 종합병원에서 의사의 대면 진료는 잠깐이지만, 이런저런 검사를 한다고 몇 시간씩 병원 안을 떠돌아다니는 데는 이런 사정이 있습니다. 묘한 냉대에 환자들도 불만이 많지만, 진료하는 의사들도 불만이 많은 건 마찬가지입니다. 병원의 수익 구조가 그렇게 돼 있으니 어쩔 도리가 없을 뿐이죠. (p.50-51)

 

 원칙적으로 ‘입원’이 필요한 질환이 아니면 굳이 병원을 갈 필요가 없고, 그중에서도 종합병원은 정말 중증이나 응급 질환 및 희귀 질환처럼 동네 의원의 ‘시설’로는 감당하기 힘든 질환을 앓는 환자를 위해 많은 인력과 장비를 갖춘 곳입니다.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만성 질환 환자는 동네 의원을 다니는 게 의료이용체계(healthcare delivery system) 측면에서 훨씬 더 바람직하죠. 그런데 동네 병원 의사가 실력이 없다는 식의 ‘오해’를 하게 되니, 이런 환자들도 무조건 대형 종합병원을 찾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 건강을 위해 기왕이면 더 실력 있는 사람한테서 진단을 받고 싶다는 욕구가 부당한 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애초에 ‘실력’에 대한 인식이 오해에 가까운 데다, 이 오해로 인해 종합병원 진료가 몇 달씩 밀리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중증 질환자 혹은 희귀 질환자처럼 종합병원에서만 진료받아야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 자리를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죠. 마치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은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수 없어 엘리베이터를 탈 수밖에 없는데, 비장애인들이 계단 대신 엘리베이터를 일상적으로 이용하다 보면 장애인들이 되레 더 불편을 겪는 것과 구조적으로 같은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p.58-59)

 

 종합병원 약제부의 일상적 업무 중 하나는 의약품 식별 업무입니다. 환자가 평소 복용하던 약을 가져오면 그 약이 무엇인지 파악해서 주치의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일이죠. 그런데 이런 업무는 환자 자신이 평소에 어떤 약을 먹고 있는지를 알면 해결되는 불필요한 추가 업무에 가깝습니다. 환자들은 매일 약을 먹고 있음에도 그저 파우치 형태로 포장된 약만 보다 보니, ‘노란색 길쭉한 혈압약’, ‘M자가 적힌 동그란 하얀색 당뇨병약’이 정작 무슨 약인지는 잘 모릅니다. 차라리 종합병원은 사정이 좀 낫지, 동네 의원에서는 식별을 의뢰할 약사도 없으니 이를 의사가 직접 검색해서 확인하는 게 의사의 일상적 업무가 된 지 오래죠.
 물론 노란색 길쭉한 혈압약이 발사르탄 성분의 디오반이라는 약이고, M자가 적힌 동그란 하얀색 당뇨병 약이 메트포르민 성분의 글루코파지라는 약임을 모두가 알아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진단 이후에 거의 같은 약을 계속 먹고 있다면, 최소한 약의 명칭과 그 약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과 대처 방법은 알고 있어야 합니다. 평소 가던 곳과 다른 동네 의원에 방문하거나 수술 등으로 인해 입원하는 경우뿐 아니라, 특정한 약과 의도치 않은 상호작용이 발생한다거나 특정 약물과 함께 복용해서는 안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죠. (p.69-70)

 

 실제로 복약지도의 주된 목적 중 하나는 약마다 아주 흔하게 일어나는 부작용과, 드물지만 아주 위험한 부작용을 환자에게 알려 주고 만약 그런 일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성실히 교육하는 겁니다. 특정한 약을 먹다가 그만 먹어도 되는지, 혹시나 특정한 부작용이 발생했는데 이 약은 빼고 먹어도 되는지를 네이버 ‘지식in’에 물어보는 게 아니라 처방된 약을 조제받을 때 약사에게 들어야만 하는 거죠. 물론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서비스직 종사자와 고객 같은 관계가 형성되는 탓에 고객의 ‘빨리빨리’ 요구를 뚫고 약사가 이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습니다. 전문가와 서비스업 종사자라는 두 개의 사회적 지위가 충돌하는 딜레마 상황이 발생하는 겁니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복약지도조차 이렇습니다. 분명 외연만 봤을 때는 개인의 자발적 권리 행사가 이루어졌지만, 실제로는 그 선택이 그리 자발적이지도 않거니와 되레 개인과 사회 전체에 유해한 결과를 낳는 문제가 발생하죠. (p.74)

 

 의료인들의 과로에 밀려 그리 크게 부각되지 못했지만, 한국이 비교적 성공적으로 코로나 방역을 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막강한 공무원 동원력이었습니다. 전국의 보건소는 코로나19 대유행 3년 내내 상시 동원 상태를 유지했고, 각 구청이나 동네 주민센터에서 일하는 공무원들도 동원되어 코로나19 방역 업무에 참여했죠. 언론에서는 연일 국내 방역 행정이 처리 속도가 더디고 이런저런 오류가 있다며 질타했지만, 세계적으로 봤을 때는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도 말이 안 되는 수준으로 잘 해낸 편입니다.
 당장 이웃 나라 일본의 사례만 봐도 그렇습니다. 기이할 정도로 작은 ‘아베마스크’를 국민들에게 보급한다거나, 행정기관에서 수작업으로 확진자 수를 집계하는 등의 방식이 이상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유럽 선진국이나 북미도 크게 다를 바가 없었죠. 이게 ‘선진국’의 평균적인 행정 수준인 겁니다.
 반면에 한국은 보건소 공무원만이 아니라 지방직 공무원과 보건 직무에서 일하는 사무관도 모두 동원해서 굴린 결과, 이 정도로라도 업무 처리를 해냈다고 봐야죠. 평시에는 공무원을 두고 ‘철밥통’이라느니 ‘하는 일이 없다’느니 하며 감원 얘기가 나오곤 하는데, 이런 예비적 인력 마진은 코로나19 대유행과 같은 위기 시에 진정으로 빛을 발합니다. 안정성 높은 장기 고용 형태가 아니라면 이 정도 인력을 고강도 단기 노동에 끌어 쓰기도 난망한 일입니다.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공공 영역이니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것에 가깝습니다. 어찌 보면 국가적 차원에서 위기 시를 대비해 감내해야만 하는 비효율성이라고도 할 수 있죠. (p.112-113)

 

 원칙적으로 심평원에서는 ‘재정’에 대한 부분보다는 의학적인 부분만 따지면 됩니다. 어떤 질환에 대해 특정한 의학적 처치를 한 것이 적절했는지 따져 보고, 해당 조치가 의학적으로 타당하면 보험 적용을 해 주는 게 맞다는 판단만 내리면 되는 식이죠. 그런데 심평원 심사는 그리 이론적으로만 돌아가질 않았습니다. 심평원에서 판단하는 보험 적용 여부, 삭감 여부 등은 건강보험 재정의 밀접한 영향을 받았거든요.
 가령 특정 진료 비용이 예년에 비해 지나치게 증가하면, 심평원에서는 의료 기관이 예년과 똑같은 기준으로 의학적 필요성이 있는 행위를 제대로 수행했음에도 삭감을 하는 일이 많습니다. 이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의료계 전반에서 꾸준히 보고되는 현상입니다. 두 기관이 명목상으로는 분리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그렇게 독립적이지 못한 상태라서 심평원이 암암리에 건강보험 재정 절감 압박을 잔뜩 받은 탓입니다.
 이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게 바로 심평원의 삭감 인센티브 제도입니다. 심평원에서는 직원들에 대한 성과 판단 지표 가운데 하나로 ‘건강보험 재정 절감 성과 지표’를 2001년부터 2017년까지 무려 16년간 이용했습니다. 이런 제도가 익명 심사 제도와 병행되다 보니 어떻게든 절감을 최대한 많이 하는 방식이 직원 개개인에게 유리하도록 유인 설계가 된 겁니다. 결과적으로 의사들은 학교에서 배운 대로 교과서에 따라 진료했을 뿐인데 삭감이라는 패널티를 무는 경험을 계속 하게 됐습니다. 말이 패널티지, 2만 원짜리 치킨을 팔고 보험공단에서 받아야 할 1만 4,000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일의 연속인 겁니다. ‘의학’이 아니라 심평원 청구 기준에 맞는 방식의 진료만 수행하는 ‘심평의학’을 공부했어야 했다는 자조적 한탄이 나올 정도의 경험을 반복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 이런 상황을 더는 견디지 못하겠다며 대대적 파업도 하고, 건강보험제도 폐지와 같은 극단적 주장에도 마음이 쏠리게 되는 겁니다.
 그렇지만 그런 극단적 주장보다는 심평원의 독립성을 실질화하는 게 현재 의료 현장에서 발생하는 모순적 상황과 부당함을 개선하는 데 훨씬 더 도움이 될 겁니다. 정말 의학적 필요에 의해서만 보험 적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주는 게 낫다는 거죠. (p.148-150)

 

 건강보험이 됐건 국민연금이 됐건 국가 차원에서 강제로 보험료를 걷어 운영하는 형태의 보험을 사회보험이라고 부릅니다. 사회보험에는 두 가지 재정 운영 방식이 있는데, 첫 번째는 적립식이라 불리는 방식으로 국내에서는 국민연금이 이와 같은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적립식 사회보험은 우선 사람들에게 걷은 보험금을 모아서 재정을 운용하고, 나중에 대상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필요가 있을 때 차차 지불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니 ‘적자’가 나지 않도록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지속 가능성이 계속 의심받기도 합니다. 내는 사람보다 받는 사람이 많아지게 되니까요.
 두 번째는 적립식과 달리 그해 쓸 돈을 걷어서 그해 모두 소진하는 부과식 방식입니다. 국민건강보험은 이런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원칙대로라면 그해 쓸 돈만큼만 걷어야 하니 남는 금액이 발생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만 건강보험은 지출 규모를 잘못 계산해서인지, 아니면 모종의 고의인지, 필요한 금액보다 더 많은 금액을 걷어 왔고 그렇게 남은 차액을 ‘잉여금’ 형태로 쌓아 두고 있었을 뿐입니다. 돌발 상황에 사용하려 모아 둔 예비비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많은 금액을 말입니다. 다시 말해 원래는 쌓이면 안 됐을 금액이 줄어드는 것이지, 애초에 그해 걷은 돈을 그해에 다 쓰는 형태로 설계된 부과식 사회보험이라는 면에서 고갈이란 표현은 부적절합니다. 의료비 증가로 인한 금액을 벌충하기 위해 건강보험료 상승이 필요한 건 맞겠지만, 건강보험 재정이 고갈되어 망한다는 건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이죠.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 살펴본다면, 8장에서 설명한 한국의 의료 서비스 가격 책정 방식과 묘한 괴리가 있다는 걸 쉽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아무리 의료 행위 횟수당 가격을 매기는 ‘행위별수가제’라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곤 하더라도, 실제로는 건강보험제도 설계상 의료 기관에 내어줄 돈이 ‘그해 걷은 돈’만큼밖에 없는 겁니다. 그러니 겉으로는 심평원에서 오직 의학적 필요성만 따져서 보험료 지급 여부를 결정한다고 해도, 예상된 건강보험 재정 총액을 넘어서는 의료비가 청구되지 않도록 삭감을 남발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계속 받는 거죠. 어쨌거나 그해 걷은 건강보험료에 따라 건강보험 지출 가능 ‘총액’이 정해진 건 맞으니까요. (p.153-155)

 

 앞서 설명했듯, 행위별수가제는 의료인이 과잉 노동을 하도록 만들어 일종의 비용 효율성을 높인다고 할 수 있지만 큰 문제점을 한 가지 내포하고 있습니다. 흔히 ‘기피과’라 불리는 과에 대한 지원이 곤란하다는 겁니다.
 가령 흉부외과 수술비를 현행보다 크게 높이도록 조치하더라도, 흉부외과라는 본인 전공을 살리기 위해서는 최소 종합병원급에 고용된 상태로 일을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병원에 그런 자리가 많이 나지도 않거니와, 막상 병원에 남더라도 며칠 건너 계속 당직을 서는 식의 고된 업무 강도를 감당해야 하니 정말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상황을 계속 견디긴 힘듭니다. 이런 기피과에 한해서라도 수술 건당 높은 금액을 지급하는 방식이 아닌, 해당 진료과 전문의에 대해 국가가 인건비를 보조하는 다른 보상 방식을 택할 수가 있습니다. 꼭 필요하지만 발생 빈도가 아주 높지는 않은 질환에 대한 고난도 수술이 가능한 인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이런 방식이 거의 유일하다고 생각합니다. (p.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