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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도시의 얼굴을 만드는가 / 리처드 윌리엄스 / 현암사

 

 베네치아의 압도적이고 복잡한 현재의 스펙터클은 누군가가 의식적으로 설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무도 개입하지 않은 프로세스의 결과이다. 영국의 미술 평론가 로런스 앨러웨이는 이를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앨러웨이는 이미 1968년에 베네치아를 전시회나 미술관과 같은 문화적 매체로 이해했다. “도시는 그 자체로 매체, 더 자세히 말하자면 유명한 건축물, 끊임없이 열리는 축제들, 관광 산업들로 뒤섞인 매체가 되었다. 베네치아는 그 자체로 의사소통의 패턴이고, 공간적이고도 시간적인 미술 작품이다.”
 이는 앨러웨이가 지나가듯이 가볍게 쓴 부분이지만, 도시를 고정불변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프로세스의 측면에서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상당한 통찰의 깊이를 보여준다. 앨러웨이가 암시하는 또 하나는 프로세스의 측면에서 도시를 이해할 때도 도시의 구체적인 요소들을 보는 것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점이다. 도시는 “미술 작품”, “건축물”, “의사소통의 패턴”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도시를 완료된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현재진행형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공간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 베네치아는 역사적인 건축물과 문화유산이 만들어낸 과거의 도시이기도 하지만, 관광객과 베네치아 비엔날레와 거대한 크루즈선이 만들고 있는 현재의 도시이기도 한 것이다.
 그럼 ‘프로세스’가 어떻게 이상하고도 모순적인 도시 베네치아를 만들었다는 것일까? 베네치아의 프로세스에 해당하는 관광산업은 다차원적이고 초역사적인 프로세스다. 또 이 프로세스는 숙박 제공이나 크루즈선의 정박과 같은 경제적 행위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를 둘러싼 여러 신화화된 관념들로 이루어져 있다. 베네치아에서 연구 활동을 하는 교수이자 작가 도미닉 스탠디시는 베네치아가 여러 사람들이 방문하기 좋아하는 도시가 되면서 정치적이거나 문화적인 이유에서 비롯한 신화들이 만들어졌는데, 이 신화가 베네치아를 특정한 조건에 묶어놓았다고 주장한다. 스탠디시는 낭만주의 시대에 그랜드 투어를 위해 베네치아에 온 문학 청년들(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도 젊은 시절 오랫동안 베네치아에 머물던 이 중 한 명이었다)이 베네치아가 지니고 있는 몰락이라는 관념에 깊이 빠진 나머지, 베네치아 특유의 쇠락해가는 도시의 이미지를 사랑했다고 쓴다. 이들에게 베네치아의 쇠락하는 이미지는 인간 존재의 나약함, 더 나아가 역사 진보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좋은 대상이었다. 스탠디시는 베네치아에 붙은 이런 신화화된 관념이 이 도시가 현대화하는 것을 막았다고 주장한다. 베네치아를 좋아하는 이들은 거의 대부분 이곳이 계속해서 전근대의 모습에 머물기를 바란다. 내가 앞에서 베네치아가 싫다고 한 것은 이런 맹목적인 숭배에 비판적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내 입장과 관계없이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프로세스가 베네치아의 모습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찬란한 건축물과 유적을 설계하고 만든 이들의 의도만 생각해서는 이런 베네치아의 면모를 결코 깊이 이해할 수 없다. 베네치아에서 겪는 경험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도시를 프로세스라는 측면에서 생각해야 한다. (p.19-21)

 

 비뇰리는 이 건물을 설계하면서 건물에 공공적 기여를 할 수 있는 요소를 반드시 포함시켜야 했다. 그래야만 도시 계획 당국으로부터 건축 허가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1층에는 이미 가용 공간이 없었다. 비뇰리는 대신 건물의 꼭대기층에 런던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무료 전망대 ‘스카이 가든’을 지었다. 비뇰리는 스카이 가든을 시민들을 위한 ‘공공재’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전망대가 그의 말대로 공공적 가치를 충분히 수행하고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이 전망대는 하루 중 제한적인 시간 동안만 열려 있다. 또, 이곳을 이용하려면 원하는 날짜보다 한참 전에 높은 경쟁률을 뚫고 어렵게 예약을 해야 한다. 예약에 성공한다 해도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은 한 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전망대 안에서 지켜야 하는 규정도 많다. 스카이 가든 전망대는 자본이 도시에서 작동하는 방식을 잘 보여준다. 이 전망대의 주요 목적은 자본이 가지고 있는 막강한 힘을 공공에게 과시하는 것이다. 프랑스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는 널리 인용되는 자신의 책 『비장소: 초근대성의 인류학 입문』에서 이런 공간을 ‘비장소’로 부른다. 오제는 비장소가 그곳에 머무르는 이들에게 끊임없이 머무를 권리를 증명하도록 요구한다고 비판한다. 비장소에 머물기 위해서는 신분증, 표, 예약증 등을 계속해서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비장소는 표면적으로는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지만, 실제로는 엄격한 통제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p.80-81)

 

 432 파크 애버뉴 아파트는 주거용 빌딩임에도, 아파트에 상시 거주하는 세대는 전체 세대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전 세계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도시에서 100명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들이 평균 3,800제곱미터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뉴욕 맨해튼은 전 세계에서 부동산이 가장 비싼 곳이다. 제한된 공간에서 임대료를 최대한 끌어내는 것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뉴욕에서 마천루, 철강 건축, 엘리베이터 기술이 발달하게 된 것도 모두 이런 사정에서 기인한다. 432 파크 애버뉴는 부지는 무척 좁은 데 비해 높이는 매우 높아, 부지 대 높이의 비가 다른 건물에 비해 압도적으로 크다. 이 아파트도 궁극적으로는 주거용 건물이 아니라 부동산 투자를 위한 건물이다. 가령 이 아파트에 입주자가 한 명도 들지 않는다고 해도 이 아파트의 투자자들은 조금도 개의치 않을 것이다. 432 파크 애버뉴는 사람의 거주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일종의 안전 금고이기 때문이다. 비뇰리는 자신의 빌딩이 이런 역할을 하는 것에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비뇰리는 건축 시장에는 “초호화 주택 시장과 정부 보조 공영주택 시장”, 단 두 가지 종류의 시장만 있다고 믿는 건축가다. 432 파크 애버뉴는 물론 전자인 초호화 주택 시장에 해당하는 건물이다. 경제지 《포춘》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아파트는 “불평등의 집”인 것이다.
 432 파크 애버뉴에서 또 놀라운 점은 세대 수가 104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포춘》에 따르면, 이 빌딩의 입주자들 상당수는 자국 은행에 돈을 예치하는 것을 불안하게 여기는 러시아와 중국의 슈퍼리치(고액 순자산 보유자)들이다. 이 빌딩은 고액 순자산 보유자들의 개인 금고나 마찬가지다. 이 아파트에서 중요한 것은 주거 공간으로서의 가치가 아니라, 돈을 묻어둘 수 있는 금고로서의 가치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432 파크 애버뉴는 철저히 자본의 필요에 맞춰 생산된 기능적 건물이다. (p.84-85)

 

 대중문화에서 물질적 부는 텅 비어 있는 상태로 표현되기도 한다. 많은 영화들이 소수에게 집중된 자본을 이미지화할 때 이를 인간이 거주하지 않는 공간으로 그린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자본 집중의 정점으로 나오는 초거대기업 타이렐 사는 인간의 온기라고는 느낄 수 없는 차갑고 텅 빈 공간으로 그려진다. 이는 마르크 오제가 『비장소: 초근대성의 인류학 입문』에서 자본주의가 가장 고도로 발달한 공간들을 텅 비어 있고 생명이 부재하는 곳으로 설명한 것과 부합한다. 텅 비어 있음은 새롭게 건설되고 있는 도시들에 대한 설명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이런 텅 빈 도시 공간의 이미지는 몇몇 중국 신도시들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중국 정부가 허허벌판에 신도시를 짓고 그곳에 아파트를 대량으로 건축해놓았으나, 분양이 되지 않아 도시 전체가 유령도시처럼 되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자본투기가 아무것도 회수하지 못한 사례다. 아무도 살지 않는 중국 유령도시의 모습은 지금도 예술사진들의 단골 소재가 되고 있다. 텅 빈 도시 공간의 이미지를 볼 수 있는 또 다른 곳은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일어나면서, 두바이에서는 진행 중이던 건물의 건축이 중단되고, 아파트 분양과 사무실 임대도 멈추면서 도시 여기저기서 사용되지 않는 빈 공간이 갑작스럽게 증가했다. 두바이의 높은 공실률에는 구조적인 측면도 있다. 마천루의 경우, 높은 층들은 임대료는 높은 반면 면적은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협소하다. 이런 비싸기만 하고 사용할 수는 없는 마천루 공간을 ‘배너티 스페이스(vanity space)’라고 한다. 2017년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두바이는 이런 식으로 생긴 마천루 공실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도시다. 두바이 마천루들의 3분의 1이 이렇게 사용되지 않는 공간이다. (p.86-87)

 

 브뤼셀은 다음 세 가지 면에서 흥미롭다. 첫째, 브뤼셀이 유럽연합의 수도라는 현재의 정치적 지위를 누리게 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우연이었다. ‘B’로 시작하는 벨기에는 유럽경제공동체 회원국 중 알파벳 순으로 가장 앞선 국가다. 벨기에는 단지 그 이유만으로 유럽경제공동체의 최초 의장국이 되었다가, 그게 굳어지면서 지금과 같은 도시로 성장했다. 르네 마그리트의 도시에 어울리는 초현실적인 일화다. 둘째, 브뤼셀의 이런 부조리는 브뤼셀이 권력을 재현하는 역사적 전통에서도 드러난다. 작은 도시 규모에도 브뤼셀에는 유럽, 아니 세계에서 가장 웅장한 기념비적 건축물이라고 칭해도 될 만한 건축물이 몇 있다. 그중 으뜸은 건축가 요서프 풀라르트가 1866년에서 1883년 사이 마롤 지구에 지은 정의궁(Palais de Justice)이다. 정의궁은 19세기에 건축된 단일 건물 중 가장 큰 건물로 여겨지는 궁전이다. 풀라르트는 이 거대한 건물을 짓기 위해 마롤 지구의 상당 부분을 강제 철거했다. 떠도는 말에 의하면, 이에 분노한 마롤 주민들이 이때부터 마롤 방언으로 ‘건축가’를 뜻하는 ‘architek’을 심한 욕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셋째, 현재 브뤼셀에는 위에서 본 과거의 웅장함이 없다. 지금의 브뤼셀은 브라질리아 같은 도시가 아니라는 말이다. 유럽연합의 권력이 브뤼셀의 외관에 두드러진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방식은 권력이 도시에서 재현되는 전통적인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브뤼셀에는 ‘내러티브’가 없다. 이제 서서히 연구자들이 지적하기 시작했듯, 브뤼셀에는 전통적인 권력의 상징이 거의 없으며, 이 상징의 부재는 브뤼셀이 놓쳐버린 기회다. 렘 콜하스는 이를 존재론적인 ‘아이콘의 부재’라고 표현했다. 유럽연합이 지닌 권력의 성격과 작용에 대해 말해 주는 이 표현이 암시하는 것처럼, 유럽연합은 권력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유럽연합은 권력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다. (p.122-123)

 

 이것은 산업화된 세계에서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패턴이다. 과거 물건을 생산하던 도시들은 이제 다른 곳에서 생산된 물건들을 소비하는 도시가 되었다. 공장이나 물류 공장과 같은 생산의 공간이 이제는 유흥과 주거의 소비 공간이 되었다. 이 변화에 가장 먼저 주목한 이는 미국의 사회학자 샤론 주킨으로 그는 1982년 저서 『로프트 리빙』에 이 과정을 상세히 기술한다. 그는 이 책에서 노동이 여가로, 생산이 소비로 바뀌고 있는데, 이 과정에는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우리의 감각이 동반한다고 서술한다. 『별난 공간들』이라는 책을 쓴 로버트 하비슨은 이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감각과 관련하여 이렇게 쓴다. “우리는 런던의 부둣가는 방문하지만 로테르담의 부둣가는 방문하지 않는다. 우리가 교역을 낭만적이라고 느끼기 위해서는 그 교역이 이미 사라진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는 이들은 공장이라는 공간을 낭만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공장이었던 공간에서 쾌락을 느낄 수 있는 이들은 오직 공장 노동과는 무관한 이들, 그것을 현대적 숭고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들이다. 사람들은 탈산업화를 화사한 색으로 묘사하곤 하지만, 과거의 산업 공간을 현재 어떤 활동들이 채우고 있는지, 또 이 활동들이 어떻게 새로운 형태의 노동이 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p.172-173)

 

 보안에 대한 우려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은 공항의 보안시설이다. 전 세계 공항에서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승객에 대한 보안 검색 절차는 한편으로는 승객과 보안 요원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행하는 일종의 퍼포먼스에 가깝다. 공항 보안 절차에 실제로 어느 정도의 보안적 가치가 있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한 대형 미국 항공사의 보안 담당자는 보안 검색 절차가 실제 보안에는 크게 기여하지는 않는다고 말하면서 이 절차를 ‘쇼(show)’라고까지 불렀다. 하지만 이 절차에 큰 효과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는 우리의 일상에 전쟁이 얼마나 깊숙이 들어와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쇼임에는 틀림없다. 실제로 항공기 테러의 위협은 가볍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 한 건의 항공기 사고로도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을 수 있다. 공항은 가장 높은 수준의 보안 설계를 요구하는 공간이다. 비행기 연료탱크의 폭발 가능성, 그리고 1960년대(이른바 ‘항공기 납치의 황금시대’) 이후 비행기가 그 자체로 무기가 되어 왔던 역사를 생각해보면 이는 당연한 일이다. 보안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많은 항공기 제조업체가 방위산업체로 몸집을 불렸다(영국의 BAE 시스템스도 그렇게 탄생한 방위산업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항 보안 설계가 도시의 보안 설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상파울루의 은행들에서는 2017년부터 모든 고객이 공항 수준의 보안 절차를 통과해야 한다. 중국의 경우, 주요 도시의 철도역과 지하철역에는 공항 스타일의 수하물 검색대가 있다. 또, 천안문 광장에 출입하는 관광객들 역시 엄격한 보안검색대를 지나야 한다. (p.233-234)

 

 우리는 문화를 단순히 도시의 사건들이 벌어지는 배경 정도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2차대전 후반 이후 문화가 하나의 산업으로 재발명된 일은 그 시기에 일어난 가장 커다란 정치적 프로세스 가운데 하나였고, 도시 경관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1980년대 중반, 나는 템스강 남쪽에서 살았다. 당시 나는 템스강을 따라 서쪽에서 동쪽으로 자전거로 달리는 것을 좋아했다. 복스홀 브리지에서 출발해, 사우스뱅크 센터의 로열 페스티벌 홀과 로열 내셔널 시어터를 지나면, 경공업 공장들이 늘어서 있는 지역과 작은 주택 지구가 나왔다. 그곳을 지나 블랙프라이어스교를 지나면 강변의 공터에 있는 파운더스 암스(The Founder’s Arms)라는 펍이 나온다. 파운더스 암스는 1970년대 초 이 근방에 중층 높이의 공공주택들이 개발되기 시작하자 문을 연 곳이다. 여기서 아주 조금만 더 가면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Bankside Power Station)가 나왔다. 사용되지 않는 폐발전소였다. 중후한 벽돌 건물이었고, 웬만한 성당보다도 커서, 일종의 숭고한 분위기까지 자아냈다. 밤에 맥주를 한두 잔 마시고 보면 특히나 더 장관이었다. 나는 이 발전소를 친구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좋아했다. 그곳은 당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후 이 발전소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1990년대 영국 정부는 이 발전소를 현대미술관을 지을 장소로 낙점하고 국제 건축 공모전을 열었다. 그리고 스위스 건축회사 헤어초크 & 드 뫼롱의 안을 선정했다. 그 결과 개관한 미술관이 2000년 문을 연 테이트모던(Tate Modern)이다. 테이트모던은 개관 1년 만에 관람객 수에서 뉴욕 현대미술관과 파리 퐁피두 센터를 앞지르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테이트모던이 생기는 과정을 지켜본 이로서, 또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를 기억하는 이로서, 나는 테이트모던의 성공에 양가적인 감정을 느낀다. 내가 과거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에서 본 것은, 궁지에 몰리고 위협에 빠지긴 했지만 진정성을 지닌 문화의 모습이었다. 내가 지금 테이트모던에서 보는 것은 훨씬 안전한 자리를 확보한 문화의 모습이다. 그 문화는 더 형식화되었고, 더 전문화된 문화의 모습이다. 테이트모던에 가는 경험은, 또는 테이트모던과 비슷한 시기에 세워진 다른 문화 시설들에 가는 경험은 진정한 문화를 체험하는 경험이라기보다는, 쇼핑몰이나 공항에 가는 것과 비슷한 경험처럼 느껴진다. 여러 사람이 안전하게 먹고, 마시고, 즐길 수 있는 곳에 가는 경험 말이다. 이제 건축설계사들은 이런 문화예술 공간을 설계할 때 공항을 설계한 경험을 적극적으로 참고하기도 한다. 건축회사 포스터 & 파트너스는 홍콩 국제공항(1998년 개항)을 설계하면서 익힌 음향 설계 기술을 이후 영국박물관의 그레이트코트(Great Court, 2000년 개관)를 설계하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1990년대, 문화는 세계도시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런던에서도, 뉴욕에서도, 베이징에서도 문화는 세계도시의 중요한 측면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문화의 의미는 크게 달라졌다. (p.247-249)

 

 두 철학자가 ‘문화 산업’을 다룬 장의 제목을 ‘문화 산업: 대중 기만으로서의 계몽’이라고 단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은 문화 산업을 자본주의 체제에 복무하는 활동으로 보았다. 그들은 문화 산업이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상품, 시장, 생산자, 소비자, 유통수단, 이윤 창출에 대한 기대치를 가지며, 문화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이윤창출을 위해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들은 “영화나 라디오는 더 이상 예술인 척할 필요가 없다”고 비판한다. “대중매체는 그들이 고의로 만들어낸 쓰레기들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데올로기로 만든 장사일 뿐이다.” 설령 이 같은 점들을 그 이전부터 이해하는 이들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과감하게 표현한 이들은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처음이었다. 이들은 문화 산업을 다형적인 모습을 띤 것으로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획일화된 것으로도 이해했다. 그들에게 문화 산업은 영화, 음악, 잡지 등 모든 형식을 아우른다는 점에서 다형적인 것이었고,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다른 의견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강철의 체제’를 만드는 데 이바지한다는 점에서 획일화된 것이었다. 그들은 이 체제가 사회를 통제한다는 점에서도 전체주의적이지만, 문화를 군사력으로 매끄럽게 변환시킨다는 점에서도 전체주의적이라고 보았다(“자동차, 폭탄, 영화는 전체가 해체되지 않도록 유지시켜주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괴팍한 글에서 도널드 덕을 비난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미키 마우스, 찰리 채플린, 제너럴 모터스의 자동차들, 재즈에 이르기까지 무차별적으로 신랄하게 공격한다(심지어 재즈에 대해 쓸 때는 재즈의 당김음을 ‘흐느적거리는 음’이라고 폄하하는가 하면, ‘재즈’라는 발음 자체까지 공격한다).
 두 철학자는 문화 산업에 무조건적인 혐오를 보이긴 했지만, 동시에 문화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에 대해 상당히 정확히 내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그들 입장에서는 끔찍한 일이었겠지만) 고급문화와 저급문화의 경계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 지배체제에 순응하는 문화와 지배체제에 저항하는 문화 사이의 경계도 모호해질 것이라고 보았다. 그들은 만화 캐릭터 도널드 덕이 실은 억압의 주체라고 본다. “만화 영화는 모든 저항이 분쇄되는 것이 이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삶의 조건이라는 교훈을 사람들의 머릿속에 주입한다. 현실의 불행한 사람들처럼 만화 영화 속의 도널드 덕이 채찍질을 당하는 데서 관중들은 스스로가 받는 벌에 익숙해진다.” 두 철학자는 문화가 도시에 큰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도 정확히 예측한다. 두 철학자는 “기업의 장식적인 본사 건물이나 전시장”, “온 사방에 솟아 있는 으리으리한 기념탑”, “국제 상품 전람회장에 세워진 임시 구조물처럼 도시 변두리에 새로 지어진 간이 주택들”을 예로 들며 대도시에 끊임없이 지어지고 있는 문화 산업을 위한 건물들의 이미지를 나열한다.
 「문화 산업: 대중 기만으로서의 계몽」을 읽은 사람은 많지 않을지라도, 문화 산업에 대한 이들의 분석은 이제 세계 문화의 한 부분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당연하게도 문화를 산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제 문화를 생산, 유통, 소비의 측면에서 생각한다. 우리는 문화 상품을 비용의 측면에서 생각한다. 지금 이 사회의 문화예술 기관은 기본적으로 모두 문화가 산업이라는 전제하에 작동한다. 1988년 런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이 세계적인 광고대행사 사치 앤드 사치에 발주해 만든 광고문구는 이렇다. “멋진 카페가 있는 최고의 미술관이 아닙니다. 멋진 미술관이 있는 최고의 카페입니다.” 문화예술은 이제 소비자 경험의 여러 요소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최근, 문화가 산업이라는 수사는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한 예로 스코틀랜드의 예술위원회인 ‘크리에이티브 스코틀랜드’는 자신들의 사명을 ‘스코틀랜드 경제 성장의 지렛대’라며 경제적인 측면을 중심으로 정의하고 있다. 유럽연합 역시 1985년부터 실시해오고 있는 ‘유럽 문화수도’ 프로그램을 설명하며 그 목적을 ‘유럽 도시의 개발’, ‘유럽 도시의 재생’, ‘유럽 도시의 관광산업 개발’처럼 경제적인 항목으로 정리한다. 실제 1990년 ‘유럽 문화수도’로 선정된 글래스고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괄목할 만한 경제적 성공을 거두었고, 그 이후 영국 정치 담론에서 ‘문화’와 ‘산업’ 두 단어는 더 이상 어떤 부끄러움이나 혼란 없이 나란히 쓰이고 있다. 이처럼 문화 산업이라는 개념이 받아들여지게 된 데는 한 인물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다. 컨설턴트인 찰스 랜드리다. 랜드리는 문화, 특히 유럽 문화의 맥락에서 ‘창조도시’라는 개념을 주창한 인물로, 글래스고시에 자문을 제공하여 시가 유럽 문화수도로 선정되는 데 도움을 주었고, 그 이후로도 계속 여러 도시들에 창조도시와 관련한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p.251-254)

 

 영국에서 가장 초기에 산업용 건물을 개조해 사용한 미술관은 1961년, 19세기에 지어진 대형 창고를 개조해 만든 브리스틀의 아놀피니 갤러리(Arnolfini)다. 그 이후로 가장 적극적으로 산업용 건물을 개조해 미술관으로 사용한 곳은 테이트 재단이다. 테이트 재단은 리버풀 항만 재개발 지구인 앨버트 독에 위치한 1850년대에 지어진 창고를 개조하여 1988년 테이트 리버풀(Tate Liverpool)을 개관했다. 리버풀을 설계한 건축가 제임스 스털링은 최소한의 포스트모더니즘적 개입을 제외하면 원래 창고 건물의 구조와 외관을 거의 손대지 않고 그대로 사용했다. 이 프로젝트는 상징적으로 여러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첫째, 1981년 리버풀시에서 대규모 폭동이 일어난 이래 가장 먼저 진행된 도시 개발 프로젝트인 테이트 리버풀은 향후 리버풀시의 정책이 문화에 의해 주도될 것이라는 공적인 선언에 해당했다. 둘째, 19세기 창고 건물의 재사용은 19세기 세계적 무역항이자 영국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였던 과거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셋째, 테이트 리버풀은 1960년대 뉴욕의 이미지를 끌어옴으로써 현대적인 의미도 획득하고자 했다(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리버풀 출신 명사라 할 수 있는 존 레넌의 이미지만 해도 앤디 워홀의 팩토리와 밀접하게 엮여있지 않은가). 1850년대에 지어진 창고를 현대 미술 갤러리로 만든 이 프로젝트는 처음에는 많은 이들에게 도착적인 시도로 여겨져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결국 매우 현대적인 시도로 판명되었고, 테이트 리버풀은 리버풀의 세계성을 잘 보여주는 훌륭한 기표가 되었다.
 산업용 건물을 개조하여 사용하는 미술관은 많다. 스위스 샤프하우젠주의 할렌 신미술관, 뉴욕 허드슨 밸리의 공장을 개조해 만든 디아 비컨 미술관, 미국 피츠버그의 앤디 워홀 미술관, 18세기 조선소였던 곳을 개조해 베네치아 비엔날레가 사용하고 있는 아르세날레 디 베네치아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테이트 리버풀과 그보다 이후에 지어진 테이트모던의 특별한 점은 테이트의 미술관들이 이들보다 규모가 더 크기도 하지만 세계화의 문제를 직접 제기한다는 데도 있다. 상당 부분 공적 예산으로 지어진 두 테이트 미술관의 목적은 그 미술관이 속한 도시의 국제성을 표현하고 승인하는 것이다. 테이트 리버풀이 19세기 세계적 무역항이었던 때의 입지를 다시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테이트모던은 현재 세계 금융의 중심으로서 런던의 위치를 확고히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두 미술관 모두 많은 부분이 벽돌로 지어진 물질적으로 강력한 건물이고, 산업을 진정성을 지닌 것으로 표현하는 건물이다. 마치 건물의 실제 무게가 건물 안에 있는 것들의 내용의 무게라고 말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 사이에 지어진 건물들은 이미 상당수가 문화적 건물로 개조되었고, 이에 따라 산업 시대에 지어진 창고나 공장 건물은 즉각적으로 문화적 공간을 연상시킬 정도가 되었다. 과거의 미술관이나 박물관들이 주로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졌다면, 지금의 갤러리들은 주로 산업 시대의 공장과 창고를 활용해 지어진다. 심지어 문화적 공간이 되기 위해 창고나 공장같이 보이지 않는 건물을 의도적으로 더 그렇게 보이게 만드는 일도 있다. 브라질 건축가 파울루 멘데스 다 로차는 폐교된 미술 학교를 리모델링해 상파울루 피나코테카 미술관(Pinacoteca do Estado)을 설계했다. 하지만 빅토리아 시대의 창고 느낌이 생각만큼 잘 나지 않자 벽돌을 더 노출시키는 방식으로 창고를 원래 모습보다 더 창고처럼 보이게 해야 했다. 과거 산업을 상징하던 재료가 지금은 문화예술을 상징하는 재료가 된 경우도 있다. 내후성 강판은 배를 건조할 때 주로 쓰이는 재료였다. 미국 조각가 리처드 세라는 1969년부터 이 강판을 사용해 공공조각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내후성 강판은 대기 중에 노출되면 녹이 발생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녹이 특수한 막을 형성해 더 이상의 부식 진행을 방지하는 방식으로 자연스러운 색깔의 보호막을 갖춘다. 세라는 그 막의 독특한 느낌을 살려 작품을 만들었다. 영국 북동부 도시 게이츠헤드에 위치한 발틱 현대미술관(Baltic Centre for Contemporary Art)도 이 강판을 사용했다. 이 미술관은 영국 식품회사 랭크 호비스 맥도걸사가 1930년대에 사용하던 제분소 건물을 개조한 공간인데, 산업적 공간의 분위기가 충분히 나지 않자, 제분소였을 때는 사용되지 않았던 강판을 미술관에 사용한 경우다. 도착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 문화예술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더 산업적 공간처럼 보여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p.263-265)

 

 

건축의 정석 / 명지대학교 건축대학 교수 20인 / 집

 

가로변 모습이 곧 도시의 표정이다.
전 세계의 어느 도시든 간에 오랜 세월의 흔적과 그곳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사회, 문화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도심 가로변의 문화적, 역사적, 도시적 맥락을 충분히 알고 존중해 주는 것은 건축가가 가져야 하는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이런 자세를 가진 건축가의 고민 끝에 만들어지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쾌적한 공간, 기능과 만날 때 좋은 가로변 건축물이 탄생합니다. 이 건축물은 앞으로 도심 거리와 오랫동안 공생하면서 가로변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공간 환경과 기능을 제공할 것이고 가로변을 대변하는 도시의 표정이 될 것입니다. (p.37)

 

단순함에서 풍부함으로
설계에서 고려할 사항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의 건축물에 포함되어야 할 이야기도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수많은 이야기를 머릿속에 넣고 한 번에 해결해보겠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효과적이지도 않습니다.
한 번에 하나씩 단계별로 해결해야 할 문제와 고려사항을 단순화시켜 해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반복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처음에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도 떠오르고 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작은 씨앗에 물과 비료를 더해 무성한 나무로 키우듯, 단순하게 출발해 미시적인 아이디어와 효과를 더하면서 다양하고 풍부한 이야기를 가진 결과물로 키워내야 합니다. (p.59)

 

건축은 체험해봐야 한다
요즘은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가 발달해 좋은 건축물에 대한 시각 자료가 넘쳐납니다. 그럼에도 건축물을 직접 찾아가서 체험해야 그 건축물에 대한 실제 느낌을 알 수 있습니다. 몸으로 체험하는 건축물의 실제 공간 크기는 사진을 보고 느낀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시각뿐 아니라 청각, 후각, 촉각, 공감각을 통해 느끼는 공간에 대한 실제 분위기는 시간과 계절에 따라 매우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고 기억에도 오래 남습니다.
독창적인 건축물을 지으려면 좋은 건축물을 체험해 얻은 자신만의 감각 데이터베이스를 축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건축대학에서는 건축 역사, 이론과 기술에 대한 지식을 주는 다양한 이론 전문 과목을 제공할 뿐 아니라 이런 이론을 실제 적용할 수 있는 여러 건축 관련 동아리, 답사, 해외 프로그램 등 체험 위주의 비교과 및 교과 활동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p.95)

 

생산의 역사로 보는 건축의 역사
“건축은 시대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건축물에는 정치·경제·문화·예술·기술 등 그 건축물을 생산한 시대와 사회의 모든 속성이 반영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유럽 중세도시에 서 있는 대성당, 프랑스 파리를 대표하는 에펠탑. 왜 이들이 그 도시와 그 나라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건축물일까요. 언제 누가 왜 그런 건축을 애써 건축했을까요.
건축물의 형태적 특징을 중심으로 하는 건축양식의 역사는 건축 역사의 일부일 뿐입니다. 어떤 사회 세력이 왜 그 건축물을 건축했는가, 그 건축물이 어떤 재료와 어떤 건축기술로 건축되었는가 라는 질문이 그 시대 그 사회와 그 건축물의 성격을 보다 명쾌하게 밝혀줄 수 있습니다. 우리 시대 우리 사회에서 어떤 건축을 해야 하는가를 공부하고 고민하는 건축가라면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p.109)

 

건축가의 눈으로 우리 건축의 역사 들여다보기
건축물을 제대로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우리가 건축가의 입장이 되어 그의 눈으로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의 건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건축은 인간이 지금보다는 덜 복잡한 삶을 살고, 더 겸손한 자세로 자연을 대했고, 덜 이기적이었을 때 만들어진 모습으로 현재에 남아있습니다.
우리가 당시에 활동했던 건축가라고 생각하고 이 땅에 남아있는 과거의 건축을 자꾸 들여다보면 어느 순간 군더더기를 벗어던진 건축의 본질적인 요체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단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당시 사회문화와 건축구조에 관한 약간의 지식과 여러 번 반복해서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거 건축의 진면목과 함께 복잡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잊고 있던 소중한 가치가 보일 것입니다. 우리 건축의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p.119)

 

건축가는 도시의 기억과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전승자이다
건축물에는 세월이 흐르면서 너와 나의 추억이 조금씩 깃들게 됩니다. 그리고 시나브로 우리가 기억하는 하나의 장소가 됩니다. 도시는 이러한 장소의 집합입니다. 기억할 만한 장소가 적은 도시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낯선 곳이기만 합니다. 금속판과 유리로 꾸며진 세련된 빌딩보다 담쟁이 우거진 낡은 벽돌 건축이 친근한 이유이겠죠.
초라하고 더러워 보이더라도 그 안에는 어쩌면 놀라운 이야기가 숨어있을 수 있습니다. 건물 한 채가 철거되는 것은 우리의 소중한 기억이 한 조각 사라지는 것이고 도시라는 오래된 이야기책에서 한 장이 뜯겨 나가는 것입니다. 유럽의 역사도시가 아름다운 이유는 기억의 그릇인 건축을 보존하면서 세대를 거쳐 조금씩 도시라는 이야기책을 채워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건축가는 도시의 기억과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전승자여야 합니다. (p.121)

 

건축의 가치는 무엇일까
건축은 예술일까, 공학일까? 의견이 분분합니다. 유럽 르네상스 시절에는 예술이었는데 지금은 아니라고도 합니다. 예술이라면 예술적 가치가 있어야 하고 공학이라면 공학적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건축은 예술적 가치를 가지고 있을까요 아니면 공학적 가치를 가지고 있을까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건축이 꼭 예술적 혹은 공학적 가치를 가지고 있을 때 빛이 나는 것만은 아닙니다. 동네 어귀에 있는 작은 정자는 큰 사회적 가치를 갖습니다. 장애인에게 우선권을 주도록 세심하게 만들어진 입구는 그 자체로 사회정의의 표현일 수 있습니다. 건축이 그 자체로 정치적 가치를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역사적 가치를 품은 건축도 소중합니다. 경제적 가치를 올려주는 현실적인 건축도 역시 중요합니다.
예술적 가치가 빛나는 건축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술적 가치가 모자랄지라도 훌륭한 건축도 있습니다. 건축의 가치란 여러 가지가 될 수 있고 좋은 건축을 판단하는 기준도 여러 가지라는 것이지요.
분명한 것은 하나의 가치만이 건축의 본질적 가치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p.125)

 

건축은 중요한가
건축가들은 건축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왜 중요하냐고 물으면 답하기 쉽지 않습니다. 좋은 건축을 통해 우리 삶이 개선되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건축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찾아보면 증거는 많습니다. 미국에서는 1990년대에 저소득층 가족에게 주거보조금을 지급해 더 나은 주거환경으로 이사하도록 하는 사회실험(Moving to Opportunity Experiment)을 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더 나은 주거로 이사한 가정의 아이가 그렇지 않은 가정의 아이보다 성인이 되어 벌어들인 소득이 더 높았습니다. 물론 건축 자체만의 효과라고 할 수는 없지만 좋은 집이 주는 안정감이 분명 기여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사무실의 평면배치는 어떨까요? 사무실의 배치 디자인에 따라 업무 생산성이 올라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합니다. 커다란 하나의 공간 안에서 칸칸이 나누어진 사무실은 업무 효율에 도움이 될까요? 이러한 사무실 배치는 업무 소통을 저하시킨다고 합니다. 오피스 부동산 가치가 상승하면서 공간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건축 연구가 필요합니다.
주거환경, 사무실 평면만 보아도 건축이 중요하다고 생각되지 않나요? (p.127)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그 건축이 다시 우리를 만든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런던 대공습으로 인해 영국 하원 의사당이 파괴됩니다. 의사당 회의실을 재건하면서 의원들에게 각자 넉넉한 자리도 주고 책상도 마련하고 배치를 바꾸자는 의견이 나옵니다. 좀 더 근대적인 디자인으로 바꾸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수상이던 윈스턴 처칠은 파괴되기 이전 회의실의 전통적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자고 합니다. 전통적 배치의 핵심은 양측에 좁고 빽빽하게 배열된 벤치입니다. 영국 의회는 전통적으로 양당제입니다. 처칠은 좁은 회의장에 벤치가 이렇게 배열되어야 양 진영이 마주 보고 앉아 치열하게 논쟁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처칠의 의견은 받아들여집니다. 1943년 하원 재건위원회에서 하원 회의실 재건 방향을 승인하는 회의가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처칠은 유명한 연설을 합니다.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그 건축이 다시 우리를 만듭니다.”
만약 하원 회의실이 다른 모습으로 재건되었더라면 지금 영국 민주주의는 다른 모습이었을까요? 대답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건축의 의사결정이 매우 정치적이고 또한 그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주자의 관계, 행동, 태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p.135)

 

도시도 사람처럼 자기만의 DNA를 가지고 있다
악곡의 한 형식인 교향곡에서는 오케스트라 혹은 합창단이 동원되어 다양한 모티브와 내용이 담겨 있는 악장을 연주합니다. 각각의 악장은 자연 풍경이나 남녀의 사랑 이야기, 전쟁과 평화와 같은 인간사를 묘사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작곡가의 의도에 따라 큰 흐름을 만들어내지요. 교향곡의 작곡가는 악기별 특성 외에도 문학, 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 해박해야 합니다. 그런 지식이 없는 음악가는 멋진 연주자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교향곡을 만들 수는 없지요.
도시설계도 비슷해서 도시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를 이해하고 이상적인 도시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어야만 가능한 작업입니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권에 등장하는 도시의 모습과 그 저변에 깔린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도시마다 지니고 있는 각기 다른 DNA를 파악하는 것이 도시 디자인의 시작이니까요.
율리우스 시저가 아르노 강변에 설치한 로마군단의 막사가 훗날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로 변신한 사실은 모르셨죠? (p.147)

 

모든 다양성의 원천은 개인이다
모든 개인은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모두 서로 다른 존재입니다. 생긴 것도 생각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다른 ‘차이의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모든 개인의 하루하루 삶의 내용 역시 다릅니다. 도시의 하루하루는 ‘상점-집-사무소’ 등 건축물 내부공간 혹은 도시공간에서 펼쳐지는 개인의 서로 다른 삶으로 채워집니다. 도시의 다양성은 이들 개인의 서로 다른 삶에서 비롯하는 것입니다.
매력 있고 활력 있는 거리의 공통적 특징은 건축물 내부 삶의 내용이 적극적으로 거리에 표출된다는 점입니다. 상점, 카페, 꽃집, 빵집, 갤러리 등 저마다 삶의 모습이 거리 풍경으로 펼쳐지는 거리에서 우리는 다양성과 매력을 느낍니다.
건축물 자체가 개성 있는 형태로 도시의 다양성을 더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건축물 안에서 이루어지는 삶의 일단을 밖으로 표출되도록 하는 것, 즉 건축물 밖 도시공간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이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풍성한 다양성을 보장하는 일입니다. 모든 다양성의 원천은 ‘서로 다른 개인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p.149)

 

걷기 좋은 도시가 건강한 도시이다
근대 도시는 자동차 교통을 기본 전제로 합니다. 주민들은 일하기 위해, 장을 보기 위해, 학교에 가기 위해 자동차를 이용해야 합니다. 사실 자동차 이용은 편리합니다. 더 편리해지고 싶어서 길도 넓히고 주차장도 여기저기 설치합니다. 너도나도 자동차를 이용하다 보니 길이 막힙니다. 또 길을 넓히고 주차장도 건설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길을 넓히고 주차장을 만들다 보니 보행자의 공간이 점점 좁아집니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또 자동차를 이용해야 합니다. 악순환인 것이지요.
악순환을 끊어야 합니다. 자동차에 도시를 맞추다 보면 도시가 황량해집니다. 불필요하게 자동차를 위한 공간이 많아지고 그 거리를 메우기 위해 다시 자동차를 이용해야 합니다.
보행자 중심으로 공간을 만들고 대중교통으로 공간을 잇는 도시는 그 악순환을 끊는 도시입니다. 남녀노소 부담 없이 걸어다닐 수 있는 도시가 건강한 도시입니다.
서울을 포함한 우리나라 도시도 걷기 좋은 도시를 만들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p.157)

 

친환경의 탈을 쓴 그린워싱을 구별하자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40%가 건물 건설과 운영에서 발생한다고 합니다. 물론 우리가 건축물 안에서 생활하는 시간을 생각해보면 합당한 수치일 수도 있지만, 환경보호를 위해 인류의 전체 에너지 사용 및 폐기물을 줄여야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비닐봉지보다 에코백이라 불리는 면토트백을 사용하면 친환경적이라 말하지만, 하나의 에코백을 327번 이상 써야 생산에너지를 비교할 때 비닐봉지보다 친환경적이라고 합니다. 집에 에코백이 10개 있으면 더 구매하지 않고 10년은 써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시골의 한적한 곳에서 사는 것이 도시보다 더 친환경적으로 보이지만, 각 주거유닛이 아래위, 옆으로 서로 맞닿아 단열을 도와주는 집합주거가 40% 정도 냉난방 에너지를 덜 쓴다고 합니다(집은 작을수록 당연히 친환경적이기도 하지요). 친환경 건축물은 바람직하지만 시공시에 증가하는 건설비와 추가 에너지를 생각하면 적어도 50년 이상 사용이 되어야 하며, 그전에 허물게 되면 결과적으로 친환경으로 볼 수 없습니다. 친환경을 뜻하는 ‘그린(green)’과 세탁을 뜻하는 ‘화이트 워싱(white washing)’을 합친 ‘그린 워싱’이란 단어는 실제 친환경과는 거리가 있지만 마치 친환경인 것처럼 홍보하는 마케팅 수법을 얘기합니다. 느낌만으로 친환경이라 판단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가장 친환경적인 생활은 결국 아껴 쓰고, 같이 쓰고, 오래 쓰는 것입니다. (p.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