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 투쟁기 / 우춘희 / 교양인
사람이 온다는 건 한 사람의 일생이 오는 것이라는 시구를 좋아한다. 이주노동자는 단순히 ‘인력’이 되어 우리 사회의 노동력 빈칸을 메우러 오는 것이 아니다. 이주노동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한 보따리 짊어지고 오는 사람들이다. 그 보따리 안에는 삶도 있고, 꿈도 있고, 울음도 있고, 웃음도 있다. 특히 이주노동자의 인권이 있다. 이주노동자의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밥상도 건강하다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p.15)
나는 2018년부터 경기도, 충청도, 경상남도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 특히 농업 이주노동자들을 직접 만나 왔다. 보통 내가 그들의 기숙사에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기숙사는 거의 대부분 마을과 떨어져 그들이 일하는 농지 바로 옆에 지어진 가설건축물이었다. 그 형태는 비닐하우스 안에 옅은 노란색의 샌드위치패널로 만든 것이거나 컨테이너인 경우가 많았다.
2020년 7월 어느 여름 날, 캄보디아 여성 다섯 명이 함께 사는 집에서 한 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컨테이너 두 개가 붙어 있는 열 평 남짓한 공간에 방, 부엌, 샤워실이 하나씩 있었다. 햇빛도 제대로 들지 않았고 환기도 전혀 되지 않았다. 집 안 곳곳에 온갖 벌레가 우글거렸다. 다양한 크기의 바퀴벌레가 여러 군데서 몰려들었고, 한 사람이 건성으로 잡은 파리가 금방 바닥에 쌓일 정도였다. 부엌은 각종 곰팡이가 마치 작은 생태계를 이루는 것 같았다. 관리를 안 해서가 아니라 환경이 그랬다. 그 공간에서 세 명은 방에서 자고 나머지 두 명은 방이 좁아 부엌 앞 공간에서 잔다고 했다.
이런 기숙사 안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볼일을 보려면 집 밖으로 나가 근처 간이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다. 재래식 화장실의 고약한 냄새가 몸과 머리에 배서 두꺼운 비닐 헤어 캡을 쓰고 간다고 말한 이들도 있었다. 화장실을 만들려면 관할 지자체의 정화조 설치 허가가 나지 않는 불법 건축물이었기 때문이다. 컨테이너 집 내부에도 화장실이 없는 경우가 많았는데, 설치 조건이 까다롭거나 비용이 많이 들어서 만들지 않았다. (p.21-22)
이주인권단체들은 기숙사비 과잉 책정에 대해 정부에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2017년 2월 고용노동부에서는 ‘외국인 근로자 숙식 정보 제공 및 비용 징수 지침’을 만들었다. ‘숙식비 징수 상한선’을 만들어 사업주가 이주노동자에게 과도하게 숙식비를 받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이 지침은 사업주가 제공하는 기숙사가 비닐하우스, 컨테이너 등 임시 주거 시설인 경우에도 숙박비 공제가 가능하다고 명시했다. 당사자가 공제에 동의해야 적용할 수 있다는 조건을 달았지만, 이를 말해주지 않는 사업주도 많은 데다 낯선 땅에 와 당장 집이 필요한 이주노동자들은 공제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지침에 따라 고용주는 임시 주거 시설을 제공하고 월 통상 임금의 8퍼센트까지 기숙사비를 받을 수 있다. 상시 주거 시설의 경우 월 통상 임금의 15퍼센트까지 받을 수 있다. 기숙사와 식사를 모두 제공하면 상시 주거 시설은 월 통상 임금의 20퍼센트를 받을 수 있고 임시 주거 시설은 13퍼센트를 받을 수 있으나, 식사까지 제공하는 농촌 사업장은 거의 없었다. 이 지침이 시행되자 기존에 기숙사비를 받지 않던 고용주까지 기숙사비를 최대로 받기 시작했다. 상한선이 기준선이 되어버린 것이다. (p.30-31)
이주노동자는 한국에 와서 4년 10개월 동안 ‘임시’로 살다가 본국으로 돌아간다. 그의 자리를 채우는 다른 이주노동자가 다시 4년 10개월 동안 ‘임시’로 산다. 비닐하우스, 컨테이너 같은 거주 시설은 변함없이 ‘상시’적인데, 이주노동자들만 ‘임시’로 거쳐 가며 그 자리를 채운다. 영원한 ‘임시’ 거주 시설에 이주노동자가 ‘상시’로 사는 것이다.
정부는 이주노동자를 일손이 필요한 곳에 데려다가 채우는 ‘인력 수급 정책’의 대상으로만 본다. 오로지 어떻게 농촌의 부족한 인력을 채울지 골몰하며, 일하는 사람은 온데간데없고 수요와 공급의 숫자에만 관심을 쏟는다. 이주노동자가 어떤 곳에서 사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일하는지,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우를 받기는 하는지, 그 실상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이들이 다치거나 죽어서 본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이 빈자리를 채울 노동자를 ‘인력 수급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데려오면 그만인 듯하다. (p.38)
고용주들은 이들이 ‘가난하고 못사는 나라’에서 왔기 때문에 열악한 주거 시설에 사는 것이 괜찮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정부는 이런 시설을 방관함으로써 그런 고정관념을 강화했다. 고용주들은 말로는 자신들이 이주노동자들과 ‘한 가족’같이 지낸다고 강조했지만 그들도 그들의 자녀도 이런 임시 주거 시설에 살지는 않았다.
2019년 나는 캄보디아에서 직접 현장 연구를 수행하며 지역 곳곳에서 여러 사람을 만났다. 캄보디아는 남한의 두 배 정도 되는 면적에, 인구는 남한 인구의 3분의 1인 약 1670만 명이어서 인구 밀도가 높지 않다. 대부분 널찍한 공간에 나무로 집을 짓고 마당이 있는 곳에서 생활했다. 화장실은 집 내부에 있거나 외부에 있기도 했는데, 모두 깨끗하게 관리했다.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은 종종 내게 고향에서 짓고 있는 자신들의 집을 사진으로 보여주곤 했다. 시멘트로 기둥을 올려 2층 정도 되는 높이에 있는 집이었다. 깨끗하고 아늑해 보였다. 저개발국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컨테이너 집, 비닐하우스 집, 샌드위치패널로 만든 집에서 사는 것이 괜찮을 거라는 생각은 편견이자 인종 차별적 착각이다. 그들도 자신들이 사는 집이 더럽고, 열악하고, 좋지 않다는 것을 당연히 안다. (p.41-42)
‘지구인의 정류장’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던 김이찬 감독이 2009년 경기도 안산에 세운 이주인권단체이다. ‘지구인’이라면 누구든 편히 와서 쉬고 놀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로 이름 지은 ‘지구인의 정류장’은, 김이찬 감독이 다큐멘터리 제목으로 구상한 데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본래는 이주노동자가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미디어 교육을 진행하는 곳이었는데, 이주노동자들이 임금 체불, 성폭력, 열악한 주거 환경을 비롯한 생존 문제로 곤란을 겪는 것을 본 김이찬 감독과 최종만 감독이 답답한 마음에 캄보디아어를 직접 배워 그들을 직접 지원하기 시작했다.
나는 김이찬 감독과 무료 변론을 맡기로 한 최정규 변호사 그리고 MBC 취재팀과 함께 쓰레이응 씨의 농장을 찾았다. 최정규 변호사가 “3년 넘게 돈을 안 주신 거죠?”라고 묻자 50대 남성 농장주는 그렇다고 수긍했다. 기자가 “미안하지도 않습니까?”라고 말하자 농장주는 오히려 반문했다. “왜 미안 안 합니까? 미안하죠. 그런데 당신이 한번 농사 지어보라고. 사정이 그렇게 되었을 때는 이유가 있죠. 그렇다고 내가 잘했다는 게 아니잖아요. 그럼 내가 한국은행이라도 털어요?” (p.49)
2020년 4월 9일, MBC 뉴스데스크에 “수천만 원 떼먹고도 ‘당당’… 빈손으로 울며 귀국”이라는 제목으로 쓰레이응 씨 사건이 보도되었다. 다음 날 최정규 변호사는 고용노동부 외국인 인력담당실 소속 사무관에게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사무관이 저에게 전화해서 대뜸 이렇게 물었어요. ‘도대체 3년 동안 임금 못 받으면서, 거기 왜 있었대요?’ 정말 이 이야기를 듣고 화가 났어요. ‘그게 고용노동부 사무관이 할 말입니까? 왜 3년 동안 노동자가 임금 체불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는지 조사해야 하지 않습니까?’라고 따져 물었죠. 그러자 그 사무관이 저한테 고용주 연락처를 알려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죠. ‘알려주지 않겠습니다. 경기도 이천 전수 조사를 하면 고용주가 누군지 나올 겁니다. 전수 조사를 하세요.’ 그게 맞잖아요.”
오랜 기간 임금 체불을 당했다고 하면 일부 사람들은 왜 그렇게 될 때까지 버텼냐고 되물으며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 질문은 피해자가 처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의 잘못을 탓하는 부적절한 반응이다. 문제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질문을 재구성해야 한다. 어떻게 고용주는 이주노동자에게 3년 넘게 월급을 주지 않고 붙잡아놓을 수 있었을까? 왜 그동안 이주노동자는 도움을 받을 수 없었을까? 외국인 인력 수급을 관할하는 고용노동부는 임금 체불 문제에 어떤 대책이 있는가? (p.50-51)
쓰레이응 씨는 이 말을 듣고 너무 허망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동의가 없어도 사업장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몰라, 고용주에게 사업장을 바꿀 수 있게 해 달라고 계속 요청했다고 했다. 그러나 고용주는 끝까지 받아주지 않았고 오히려 쓰레이응 씨에게 협박을 했다고 했다.
“사장님 말해요. ‘너 일하기 싫으면 나가. (사업장 변경에) 사인 안 해줘. 너 불법 만들어버릴 거야.’”
쓰레이응 씨는 아토피 상처로 딱지가 앉은 손을 쥐어뜯다가 이내 눈물을 터트리며 말했다.
“사장님이 나에게 ‘멍청이’라는 말도 많이 했어요. 사장님이 사인 안 해주면 나는 불법 사람이 돼요. 다른 비닐하우스에 가서 일을 하다가 잡히면 나는 돈도 못 받고 캄보디아로 가야 해요. 사장님한테 돈도 못 받고 쫓겨나요.”
많은 고용주가 임금 체불을 하고도 ‘불법’ 체류 신분을 만들겠다고 소리치며 노동자를 협박했다. 실제로 이주노동자가 5일 이상 사업장을 무단이탈할 경우 사업주에 의해 당국에 신고되면 체류 허가가 취소되고 출국 조치를 당했다. 이주노동자들은 행여 잘못되어 곧바로 추방당할까 봐, 그래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릴까 봐,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참고 참으며 전전긍긍했다. 이처럼 직장을 옮길 수 있는 권한이 노동자가 아니라 고용주에게 있다는 것은, 이주노동자의 현실에서 막강하게 작용한다. (p.54-55)
“이주노동자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게 뭐예요?”
내가 이주노동자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하면 사업주들은 종종 이런 질문을 했다. 사업주를 탓하는 말을 할 수밖에 없어 나는 약간 망설이며 대답했다.
“사실 제일 힘든 건, 임금 문제인 것 같아요. 농촌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분들이 보통 하루 10시간씩 일하는데, 사장님들이 2시간은 빼고 하루 8시간만 쳐서 임금을 계산하잖아요. 이게 제일 불만이에요. 8시간만 일을 하든지 10시간 일을 하고 임금을 높게 받든지 하면 좋겠다. 보통 이렇게 말해요.”
그러면 많은 사업주들은 정부의 노동 정책이 농촌의 현실과 맞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특히 최저임금이 너무 높게 책정되어 월급을 주기가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어떤 사업주는 가난한 나라에서 왔으니 월급 적게 벌어 가야 한다며, 이주노동자들 때문에 한국 돈이 유출된다고 걱정하기도 했다. 캄보디아 노동자 세 명을 고용한 류미란(가명, 50대) 씨는 이렇게 말했다.
“농장주 입장에서는 8시간만 일을 시키고 8시간 돈을 주고 싶어요. 그런데 (이주노동자들이) 그만큼의 실력이 안 되잖아요. 8시간 안에 15박스를 따준다면 8시간만 시키고 싶어요. 진짜 그게 제일 편해요. 깻잎을 딸 때 조건(환경)이 있잖아요. 깨가 정리가 잘 되었다든가, 벌레가 잎을 안 먹었다든가, 그러면 15박스가 쉽게 나오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나 아무리 능숙한 솜씨로 깻잎을 따더라도 물리적으로 8시간 안에 15상자, 즉 1만 5천 장을 따기는 쉽지 않다. 이주노동자들 사이에서는 깻잎밭에서 일하는 것이 힘들고 고되기로 악명이 높았다. 깻잎밭에서 사람을 구한다고 연락을 받으면 이주노동자들은 일단 고개부터 절레절레 저었다. 오전 6시 30분에 밭에 나가서 오후 5시 30분까지 하루 종일 쉬지 않고 깻잎을 따야 1만 5천 장을 딸 수 있다고 그들은 말했다. 간단한 빵과 두유를 허겁지겁 먹고 밭에서 걸어서 5~10분 걸리는 간이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것 말고는 쉴 수 있는 시간 자체가 없다고 했다.
고용주들은 불가능한 목표치를 마음대로 정해놓고 이주노동자들에게 주어진 시간 안에 일을 끝마치라고 강요했다. 그래놓고 목표치를 채우지 못하면 노동자의 책임으로 돌렸다. 어떤 고용주는 하루에 15상자만큼 깻잎을 따지 못하면, 한 상자당 4천 원씩 월급을 깎기도 했다. 매일 농막 왼편에 걸려 있는 하얀색 칠판에 누가 하루에 몇 장을 땄는지 기록해 이에 따라 돈을 주는 고용주도 있었다. 사실상 도급제였다. 근로계약서에는 노동 시간과 최저임금이 명시되어 있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근로기준법 위에 ‘고용주의 법’이 있었다. (p.75-77)
현장에서는 사업장 변경으로 인한 손해가 이주노동자에게 자주 전가된다. “우리가 손해를 봤으니까 너희는 사장이 손해본 것을 주고 가야 해.” 고용주는 사업장 변경 동의에 대한 대가로 이주노동자에게 적게는 1백만 원에서 많게는 3백만 원을 요구했다. 사업장을 옮기고 싶은 이주노동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냈다. 고용주가 사업장 변경을 이유로 금품을 요구하는 것은 불법이며, 이주노동자는 이에 대해 부당이득반환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런데도 다수의 농민들은 노동자가 일을 그만두면 예상되는 손해를 그 노동자가 배상해야 한다고 강하게 믿었다.
사업주는 자신의 사업체를 운영하는 것이지 이주노동자와 함께 협동조합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다. 사업주가 이주노동자 때문에 손해를 보았다고 배상해야 하면, 그와 반대로 이주노동자 덕분에 이익이 나면 그 이익을 이주노동자와 나눌 것인가? 이주노동자에게 앞으로 예상될 손해에 대해 금전적 보상을 강요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p.82)
쓰레이응 씨, 니몰 씨, 짠나리 씨와 소팔 씨 모두 운이 좋지 않아서 임금 체불을 당한 것이 아니다. 쓰레이응 씨는 2020년 기준으로 임금 체불을 당한 이주노동자 31,998명 가운데 한 명이었다. 많은 이주노동자가 임금을 받지 못하고 일했다. 정보공개청구로 얻은 고용노동부의 자료에 따르면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포함한 전체 이주노동자의 임금 체불 현황은 다음과 같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매년 임금 체불을 신고한 이주노동자 수와 임금 체불 금액이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임금 체불을 신고한 노동자 수는 2016년 21,482명에서 2020년 31,998명으로 5년 만에 약 1.5배 증가했다. 임금 체불 금액은 2016년 686억 원에서 2020년 1287억 원으로 5년 만에 1.9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 통계에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포함되어 있지만, 대체로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임금 체불이 발생하면 불안정한 체류 지위 때문에 고용주에게 문제 제기를 하기보다 사업장을 떠나는 것을 선택한다. 따라서 신고하지 못한 임금 체불 금액까지 합하면 임금 체불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p.89)
2019년 고용노동부는 최저임금 차등 적용은 타당하지 않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최저임금 차등 적용이 가능한지 알아보기 위해 전문가 18명으로 구성된 ‘최저임금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그 타당성을 살펴보았다. 결론적으로 말해 다수의견은 최저임금 차등 적용은 어렵다는 것이었다. TF의 권고안에는 자세한 이유가 나와 있다. 업종별 구분은 어떤 업종을 차등하든 그 타당성을 찾기 어려운 데다 최저임금보다 낮은 저임금 업종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낙인 효과가 발생한다. 지역별 구분은 사람들이 그 지역에 가서 일하는 것을 회피하게 만들 것이고 지역 균형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연령별 구분은 우선 청년층의 생산성이 다른 연령에 비해 특별히 낮지 않기에 임금을 감액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 고령층에 대한 감액은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이자 다른 선진국에서도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의 일부 주의 경우 주로 17~20세 미만 노동자에게 일정 기간에 한해서만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권고안에는 이주노동자 차등 적용은 국적, 인종과 관계 없이 균등한 대우를 규정한 국제노동기구 제111호 차별 협약에 위반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외국인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 적용은 일자리를 구하는 국내 노동자에게도 결코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다. 사업주는 더 적은 임금을 주면서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려고 하지 내국인 채용을 꺼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악영향을 문제 삼지 않더라도 본질적으로 최저임금 차등 적용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어긋난다. 최저임금은 한국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국적, 인종, 성별, 성적지향 등에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받아야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그야말로 ‘최저’ 기준이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 지급은 ‘차등’이 아니라 ‘차별’일 뿐이다. (p.95-96)
헌법재판소 결정문을 읽는 동안 많은 이주노동자의 얼굴이 스쳐 갔다. 전북 미나리밭에서 일을 한 캄보디아 남성 노동자 두 명은 한겨울에도 물이 차 있는 밭에 고무장화를 신고 들어가서 미나리를 수확했다고 말했다. 일이 너무 힘들어서 고용주에게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더니 사업주는 1백만 원을 내놓고 가라고 윽박질렀다고 했다. 전남 담양 딸기밭에서 하루 12시간 넘게 딸기를 따다가 정말 이렇게 일하다가는 죽을 것 같다는 생각에 ‘지구인의 정류장’으로 도망친 여성 노동자도 있었다. 경남 깻잎 밭에서는 하루 10시간씩 매일 깻잎 1만 5천 장을 따야 하는데, 정해진 양을 채우지 못하면 월급에서 깎는다며 도움을 요청한 이주노동자가 있었다. 서울 서대문구 떡집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는 근로계약서에는 오후 3시부터 12시까지 일한다고 나와 있는데, 새벽에 갓 만든 신선한 떡을 납품해야 한다는 이유로 오후 5~6시쯤부터 새벽 4~5시까지 하루 12시간을 일하고 한 달에 하루만 쉬었다고 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입에 들어가는 떡을 밤새 만들어냈지만, 정작 본인들은 일하느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적도 많다고 하소연했다. 이들은 모두 사업장을 옮기고 싶었지만 고용주가 사업장 변경에 동의해주지 않아서 발이 묶여 있었다. 고용허가제는 그리고 우리 사회는 사실상 이들의 강제 노동으로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헌법 정신에 부합한다 말할 수 있는 것일까? (p.123-124)
그동안 정부는 이주노동자의 인력만 이용할 뿐 그들이 한국에 정주해서 살 수 있는 기회는 결코 주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 왔다.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에게 ‘인력’만을 요구한다. 이주노동자의 삶은 ‘영원히 일시적인(permanently temporary)’ 상태이다. 이주노동자는 한국에 와서 일을 하지만 여기에서 정착해서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지는 못한다. 정해진 기간이 다 되어 비자가 만료되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며, 그 빈자리를 다른 이주노동자가 와서 채운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는 단순히 ‘인력’ 그 자체가 아니다. 정현종 시인의 시 〈방문객〉에 이런 구절이 있다.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이주노동자는 그의 손과 더불어 그의 일생이 함께 온다. 이 나라의 국민은 아니더라도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간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해먹고, 축제를 열고, 마을과 사회에 어울려 우리와 함께 살아간다. 이주노동자가 온다는 것은 단순히 ‘인력’이 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오는 일이다. 이주노동자의 손과 함께 삶과 꿈도 온다. (p.127-128)
란 페이치아 국립대만대학 사회학과 교수는 대만의 단기 이주 노동 정책을 분석하면서, 이주노동자가 노동력만 제공하고 장기적으로 거주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과 제도가 이들을 보호하기보다는 오히려 ‘노예와 같은 상태’로 만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현상을 ‘합법적 노예 상태와 자유로운 불법성’이라고 명명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주 노동 정책의 각종 규제가 이주노동자를 법과 제도에 얽매이게 만들고, 불법의 영역을 형성하도록 유인하는 장치가 된다. 이주노동자는 노동 시장에서 자유롭게 직업을 선택할 권리를 빼앗겨 종속적인 계약 관계에 묶이게 되고, 고용주로부터 불합리한 대우를 당하더라도 참아야 한다. 정부의 규제 장치로 인해 고용주와 노동자의 불평등한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노동자가 계약 기간을 넘겨 초과 체류(‘불법 체류’)를 선택할 경우 추방의 위험은 있지만 노동 시장에서 일종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 계약에 묶인 상태에서 벗어나면 더 나은 노동 조건과 주거 환경을 고용주와 협상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런 협상 가능성은 ‘합법 체류’ 노동자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란 페이치아 교수의 분석은 이주노동자가 ‘도망’가는 이유를 개인이 아닌 사회제도적 측면에서 바라보게 한다. 특히 대만과 비슷한 단기 이주 노동 정책을 실시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그의 분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의 합법 체류 자격의 이주노동자는 임금 협상의 여지가 거의 없다. 사업주가 제시한 노동 조건에 동의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러면 고용되지 못한다.
반면 체류 기간이 지난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자신이 ‘합법적’ 체류 기간(보통 4년 10개월)에 쌓은 전문성과 사업장을 이동할 수 있는 약간의 자유를(그들은 정식 계약을 맺은 상태가 아니라서 상대적으로 쉽게 그만둘 수 있었다) 토대로 삼아 일손이 부족한 사업주와 노동 조건과 주거 조건을 협상할 수 있다. 란 페이치아 교수의 말대로,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노동자는 온갖 제도와 법이 구속하는 노예 상태에 놓이지만 ‘불법적’으로 체류하는 노동자는 이런 구속에서 벗어나서 협상력을 갖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19로 일손 부족이 심해지자 이런 모순은 한국 사회 곳곳에서 더 극명하게 드러났다. (p.153-155)
홍선주 씨네 농장에서 일하던 쏘콤(가명, 20대) 씨는 내게 왜 자신이 농장을 ‘도망’쳤는지 솔직하게 말해주었다.
“농장에서 일하는 거 정말 힘들어요. 한 달에 두 번 쉬고 하루에 9~10시간씩 일해야 해요. 여름에는 비닐하우스 안이 너무 더워요. 겨울에는 너무 추워요. 그래서 힘들어요. 월급도 180만 원이에요. 그런데 제 친구가 공장에서 일해요. 거기서 일하면 한 달에 네 번 쉬고 월급을 250만 원 준다고 했어요. 거기로 가려고 농장 일을 그만뒀어요. 만약 사장님한테 미리 말하면 공장에 못 가게 할까 봐 몰래 나왔어요.”
농업 노동자는 근로기준법 제63조에 의해 근로 시간과 휴식에 관한 규정들(근로기준법 제4장과 제5장)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예외근로자’로 분류되어 장시간 노동에도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고용주는 법적으로 한 달 내내 쉬지 않고 하루 24시간 노동자에게 일을 시켜도 되고 이때 연장 근로 수당, 야간 근로 수당, 휴일 수당을 주지 않아도 된다. 제63조는 1953년에 근로기준법이 처음 제정되었을 당시 규정되었고, 70년 넘게 변함없이 유지되었으니 현실에 맞게 개정될 필요가 있다고 인권단체에서는 주장한다. 이 제도로 인해 똑같이 오래 일해도 농장보다 공장에서 일하면 돈을 더 받으니, ‘공장’ 선호도가 더 클 수밖에 없다. 게다가 공장은 보통 농촌이 아닌 도시에 있기에 생활하기에도 편했다. (p.161-162)
김이찬 감독은 성폭력 피해에 관해 도움을 요청하는 여성 이주노동자들의 연락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사업주의 성폭력으로 임신을 한 사례들도 있었고, 이후에 사업주의 강요로 임신 중단 수술을 받은 여성들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피해 여성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라고 했다.
“사장님한테 말해서 다른 농장에서 일하게 해주세요.”
대부분의 여성 노동자들은 성폭력 문제 해결을 체념했고, 돈을 벌지 못할까 봐 걱정했다. (p.186-187)
“원래부터 이주노동자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 왔어요. 한 달에 두 번 쉬는데 그 쉬는 동안 사람을 만나면 몇 명이나 만나겠어요. 농촌 사회에서는 아주 보이지 않는 존재예요. 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니라 완전히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으니, 역설적이게도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한 상황인 거지요.”
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닌 사회적 고립. 농업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는 적절한 문구였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이들은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 동네나 마을이 아닌, 비닐하우스 근처 기숙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데다, 정말 가끔 시내에 장을 보러 가기 때문에 마주칠 환경 자체가 안 되었다. 분명 사회 어딘가에는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였던 것이다.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에서 만난 농업 이주노동자들에게 혹시 한국 사람들에게 차별당한 경험이 있는지 조사할 겸 물어본 적이 있다. 그들의 답은 내 예상과 달랐다. 사업주 말고는 다른 한국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못하기에 차별당한 경험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어쩌다 시내에 가더라도 한국인들이 가는 카페나 식당이 아닌 자기네 사람들이 하는 식당에 주로 간다고 했다. 사회적 고립 상태에서 선주민과 접촉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내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었다. (p.195-196)
정책 변화는 긍정적인 측면이 분명히 있다. 건강보험 의무 가입을 통해 국적에 따른 차별을 없애고, 내국인(선주민)뿐만 아니라 외국인(이주민)도 건강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 조영관 변호사에 따르면, “모든 인간의 보편적 건강권 보장이라는 관점”에서 건강보험 의무 가입은 바람직하며 “시민단체와 유엔 인권 기구에서도 장기 체류 외국인에 대한 차별 없는 건강보험 적용을 여러 차례 권고”했기 때문에 올바른 방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현재 건강보험 의무 가입 제도가 인종 차별적이라고 비판했다. 첫째, 2020년 기준으로 보험료가 최소 113,050원으로 높게 책정되어 있다. 내국인은 소득과 재산 수준에 따라서 보험료가 산정되지만 외국인은 이런 과정 없이 내국인 보험 가입자의 평균 보험료를 낸다. 2017년 기준으로 외국인 노동자의 월평균 근로소득은 147만 원으로 내국인의 67퍼센트밖에 안 되지만, 보험료는 내국인의 평균 보험료와 똑같이 냈다. 외국인은 더 적게 벌고 상대적으로 보험료를 더 많이 내는 셈이다.
둘째, 내국인은 배우자, 직계존속, 직계비속 등이 피부양자로 묶일 수 있지만, 외국인은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만 피부양자로 묶일 수 있다. 따라서 성인인 외국인 자녀가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경우, 세 명 각자에게 113,050원으로 보험료가 부과되어 한 달에 적어도 339,150원을 내야 한다.
셋째, 보험료가 체납되면 체류 자격에 불이익을 준다. 보험료가 3회 초과 체납되면 비자 연장이 안 되고 출국 조치를 당할 수 있다. 건강보험료를 체납하면 의료 시스템 사용에 불이익을 주어야지(보험료를 완납할 때까지 건강보험 급여가 제한되기에 의료 시스템 사용에도 불이익을 주고 있다), 이주민의 체류 자격까지 엮어서 불이익을 주는 것은 합당한 조치가 아닌 명백한 차별 대우이다.
넷째, 이것이 가장 큰 문제인데, 이렇게 보험료를 매달 내더라도 이주노동자들은 이에 합당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주민의 의료 서비스 접근을 위한 정책 지원이 대단히 부실하다. 기본적인 통역 서비스조차 거의 지원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 건강보험료 납부에 대한 정보 제공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 어떤 캄보디아 노동자는 건강보험료 납부 방법을 몰라서 계속 내지 못하다가 채권압류통지서가 날아와서 통장이 가압류되기도 했다. 그는 연체금을 다 지불하고 나서야 통장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건강보험료 관련해서 물어보려고 해도, 공단의 고객 센터 통역은 ‘영어, 중국어, 베트남어’만 제공했기에 상담을 신청할 수 없었다고 했다.
건강보험료 고지서를 받지 못하거나, 보험료 체납금을 내고 싶은데 어떻게 할지 몰라서 내게 문의하는 이주노동자가 많았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16개국의 이주노동자가 한국으로 오고, 외국인 가입자가 120만 명이 넘는 상황을 고려해볼 때, 더 많은 언어의 통역 서비스와 정보 제공이 꼭 필요하다. (p.201-203)
이주민, 특히 미등록 이주민과 관련한 기사에 가장 많이 달리는 댓글이 있다. “너희 나라로 가.” 심지어 인권과 차별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사람들은 말한다. “힘들면 너희 나라로 가.”
그러나 우리는 이주민(외국인)이 선주민(내국인)이 일하고 싶어 하지 않는 자리를 메우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마트에서 사는 식품들, 음식점에서 사 먹는 반찬들은 밭에서, 공장에서 일하는 이주민들의 손을 거쳐 온다. 한국인의 얼이 담긴 ‘김치’는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이주노동자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지 이미 오래다. 그들 중에는 미등록 노동자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우리 사회에 이주민이 없다고 상상해보자. 한국인들은 더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최저임금에 준하거나 그보다 못한 돈을 받고 일하려 하지 않는다. 이주민이 없다면 자연스레 인건비가 올라갈 것이고, 올라간 인건비는 우리 밥상과 온갖 필수품에 고스란히 반영될 것이다. 물가가 지금보다 두세 배 오른다면 우리는 과연 쉽게 감당할 수 있을까?
코로나 시대에 우리 마스크가 K-방역의 상징으로 떠올랐고 수출길에 올랐다고 언론들이 자화자찬을 했다. 그러나 그 마스크에는 이주노동자의 땀이 배어 있다. 마스크 공장에서 일을 하는 이주노동자가 없다면, 1천5백 원도 비싸 보이던 마스크에 우리는 3천~4천 원을 지불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주민들은 출입국관리법상에 등록되건 등록되지 않건 분명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한국에서 코로나가 걱정되어 마스크를 구입하고 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식당에서 밥을 먹는 한 이주노동자의 보이지 않는 노동을 벗어날 방법은 없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이주노동자의 값싼 노동력에 기대어 살고 있는 것이다. (p.236-237)
9년 넘게 ‘지구인의 정류장’과 ‘크메르노동권협회’에서 활동하면서 이주노동자의 노동권과 처우 문제를 한국 사회에 적극적으로 알려 온 쓰레이나 씨가 이주민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사장님들은 돈만 생각해요. 한국 사회는 돈만 우선시합니다. 옆에 있는 이주노동자가 사람이라는 것을 까먹나 봐요.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이주노동자를 많이 무시합니다. 이곳에서 이주민에 대한 차별 문제는 심각해요. 우리가 인간으로서 평등하다는 점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쓰레이나 씨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이주민, 특히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혐오 발언이 쏟아져 나오는 때에 이렇게 당부하기도 했다.
“미등록 노동자들도 임금 체불 문제를 많이 겪습니다. 사장님들은 이들에게 최저임금을 주지 않고 일을 시키고, 월급을 주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국 사람이 일하기 싫어하는 곳에 미등록 노동자들이 가서 일을 합니다. 어느 누구도 불법으로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꼭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코로나 시대에 세계 곳곳에서 미등록 이주민을 포함해 이주민과 살아갈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어떤 곳은 재난지원금을 통해, 일시적 노동 허가를 통해, 시민권을 주는 방식을 통해 방법은 제각각이지만 공존을 도모한다는 원칙은 하나다. 한국에서도 이주민, 특히 미등록 노동자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 더 늦지 않게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코로나 시대를 건너며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일 것이다. (p.241-242)
고기에 대한 명상 / 벤저민 A. 워개프트 / 돌베개
파타사라시는 실리콘밸리에 나쁜 관행이 생겨나고 있다고 말한다. 투자자들이 스타트업이 극복하겠다고 약속한 과학적·기술적 난제가 정말로 해결 가능한 문제인지 신중하게 고민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목격된다는 것이다. 스타트업 핵심 창립 멤버의 이력에 감탄한 나머지 실제 투자 대상인 과학 문제는 가볍게 넘겨버린다. 이런 사고방식은 디지털 세상에서 파생한 것이라고 파타사라시는 말한다. 많은 투자자가 소프트웨어 기업을 통해 자산을 축적했고, 그래서 기업에 대한 그들의 기대는 컴퓨터라는 통제된 환경을 전제로 한 프로그램 설계의 시간 감각을 답습한다. 소프트웨어 문제는 똑똑하고 젊은(실은 꼭 젊은 필요는 없다고 파타사라시는 정정한다) 소프트웨어 공학자 한 무리를 한 공간에 집어넣고서 시간과 피자만 충분히 제공하면 대부분 해결된다.
그런데 과학 난제도 당연히 해결 가능할 것이라는 전제가 비영리기관이나 학계에도 퍼져 있다고 파타사라시는 지적한다. 예컨대 자폐스펙트럼 연구에 많은 자금이 유입되자 많은 연구자가 그쪽 분야로 전향했지만, 파타사라시의 말대로 자폐증의 효과적인 치료법을 내놓을 정도로 “과학 연구가 아직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았다.”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다 갖추기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자폐스펙트럼 연구에 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부어도 빠른 답을 얻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 당장 치료법이나 치료제가 필요한 이들에게 너무 늦지 않게 적절한 치료법이나 치료제를 제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자폐스펙트럼 연구에 과학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그녀는 강조한다. 다만 짜증스러울 정도로 아주 점진적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파타사라시는 스타트업 업계에서 생물학자는 “패배주의적”이라거나 “성공을 위한 마음가짐”이 부족하다는 평을 듣는다고 전한다. 우리 신체와 그 신체를 구성하는 세포인 소마(soma), 즉 체세포는 컴퓨터 코딩에 비해 더 풀기 힘든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그리고 소마 구역을 비롯해 샌프란시스코의 젠트리피케이션 위기 또한 마찬가지로 컴퓨터 코딩에 비해 더 풀기 힘든 문제처럼 보인다). 이것이 왜 브레이크아웃랩은 특정 의학 분야나 사회 문제에 직접 자금을 투입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 중 하나다. 브레이크아웃랩의 자금 지원 방식은 융통성이 허용되고, 지원 중인 문제가 해결 가능한 문제인지 아닌지 판단하고 그에 따라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주어진다. (p.124-125)
대형동물 전문 수의사의 조수로 일한 적 있는 한 젊은 배양고기 연구원은 내게 자신이 경험한 아주 참혹한 장면을 묘사했다. 어느 농부의 소가 전염성이 높은 눈병에 걸렸다. 아주 소중한 재산인 그 동물을 구하려면 눈병에 걸린 눈알을 제거해야만 했다. 문제는 동물을 마취하는 비용이 소값보다 더 비쌌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 수의학을 전공 중이었던 젊은 연구원은 수의사가 마취 없이 소의 눈알을 제거하는 동안 그 소가 움직이지 않도록 붙잡는 역할을 맡았다. 눈알 제거 수술은 몇 시간이 걸렸다. 목숨을 구하는 치료를 받을 만큼 귀중하지만 고통을 면제받을 만큼 귀중하지 않았던 그 소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아주 확실하게 표현했다. 사람들이 배양고기에 거는 희망은 바로 그런 장면을 없앨 수 있다는 희망을 의미한다. (p.142-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