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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한국 드라마 시장을 바꾸다 / 유건식 / 한울아카데미

 

 일반적으로 지상파 TV에서 드라마를 결정할 때는 많은 시청자가 봐서 시청률이 높을 만한 드라마를 선택한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연령 구분 없이 누구나 많이 보는 드라마보다 타깃층을 향한 스토리에 더 의미를 둔다.

넷플릭스는 많은 사람이 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 처음에 넷플릭스를 만났을 때 왜 좀비물을 하려고 하느냐고 물어보니 넷플릭스에서 이야기하기를, 좀비물은 풀어놓으면 전체 가입자 중에서 10%는 무조건 본다고 답변했다. 5~10%가 무조건 보는 장르가 있다면 콘텐츠를 만든다고 한다. 지상파에서는 시청률이 5%, 10%가 나와야 하기 때문에 이런 장르는 안 된다. _AA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수급하는 드라마를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과 넷플릭스에서 투자하여 확보하는 구매 오리지널로 구분한다면, 대체적으로 넷플릭스 오리지널은 기존 방송사에서 방송하기 어려운 소재를 택하고, 구매 오리지널은 한국에서 인기 있을 스토리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p.83-84)

 

 그동안 국내에서 드라마 외주 제작이 이루어지면서 기획과 제작은 제작사가 하는데 권리는 방송사가 소유하는 것이 불공정 관행이라고 주장되고는 했다. 점차 제작비가 증가하면서 제작사 쪽으로 권리와 수익 배분의 비율을 높이는 일이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넷플릭스가 국내에 진출하면서 그나마 기존 방송사와 제작사 간에 이루어지던 이러한 권리 관행이 오히려 퇴행하는 측면이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계약은 저작권을 독점하고, 구매 계약은 계약 기간이 10년으로 알려져 있다. 제작사들은 넷플릭스가 많은 제작비를 지급하고 일정 이윤을 보장하고 있어서 넷플릭스를 선호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저작권을 독점하는 데 불만도 존재한다. 2021년 디즈니+를 포함하여 HBO 맥스, 애플TV+ 등이 국내 진출을 추진하면서 한국 오리지널 제작을 추진하고 있다. 글로벌의 수요가 증가하기 때문에 국내 제작사들에는 저작권에 대한 합리적인 배분을 요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셈이다. (p.87-88)

 

 제작자들은 넷플릭스 오리지널의 경우 저작권을 독점하는 것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중국, 일본 시장이 막혀 있는 상황에서 OTT가 대안 시장이 되고 있음. 그러나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시 IP는 OTT 업체에 귀속되기 때문에 무조건 좋은 거래라고 할 수는 없음. _드라마 C 제작사(한국콘텐츠진흥원, 2020: 108)

 넷플릭스의 저작권 독점에 대해서는 2018년부터 외주제작사 대표 등 제작전문가를 인터뷰한 결과 동일한 문제가 제기되었고, 이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노창희·이찬구·성지연·이수연, 2018: 55).

넷플릭스는 제작비를 100% 지급하고(무리한 협찬 불필요), 안정적인 제작 환경을 마련해 주어 다양하고 퀄리티 높은 프로그램 제작이 가능. 또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데 과도하게 관여하지 않고 제작사에 맡기는 구조이며, 투자 규모 또한 한국 콘텐츠 업계의 10배에 달하는 규모. 제작사 입장에서는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아 프로그램을 제작하고자 하는 유인이 높기 때문에 방송사 중심의 국내 제작 환경의 질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을 것. 그러나 넷플릭스는 수익 배분 9:1 구조와 해외 판권 독점 형태의 계약을 맺어 제작사는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는 대신 추가적인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의 경우에는 극본에 대한 저작권까지 넷플릭스가 소유. _전문가 A(제작사 협회)

넷플릭스 등 해외 거대 제작사는 많은 제작비를 투자하여 국내에서 드라마 제작을 많이 하고 있는데, 단기적으로는 제작사의 기업 이윤을 보장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저작권을 모두 가져가기 때문에 결국에는 근간을 흔드는 행위이며, 그 결과는 결국 하청. 문제는 국내에서만 국내 제작 콘텐츠에 대한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 해외에서는 해외 제작사와 저작권을 나눠 가지는 구조. 해외에서는 권리 배분을 하지 않으면 제작사가 콘텐츠를 제작하지 않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은 구조적 문제 때문이기도 함(국내 제작사 및 지상파, 종편 사업자들도 권리 배분하는 경우 거의 없음). 해외 거대 자본(중국 시장)이 막히면서 넷플릭스 등 거대 제작사에 의존하는 형태가 더욱 심화되고 있음. _전문가 B(독립제작사 협회)

우려할 만한 점은 손쉽게 넷플릭스와 거래하고 큰돈을 벌어들이면서, 한국 기업들이 다양한 글로벌 유통 채널을 확보해 갈 수 있는 역량을 잃어갈 수도 있다는 점임. 그렇게 되면, 국내 콘텐츠사와 방송사는 넷플릭스에 종속되게 될 우려가 있어, 다각도로 대비하면서 거래해야 할 것임. _전문가 J(학계)

(p.95-97)

 

 제작사에게 넷플릭스가 수익 배분을 해야 하는 이유는 제작사가 향후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밑거름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익 배분을 통해 생산 기지로의 전락을 방지하고, 잘 만들어 부가적인 수익으로 최선을 다하게 해야 좋은 콘텐츠가 만들어질 것이다. _EA

드라마의 가능성에 따라 협상의 여지를 열어두어야 한다. 만약 중국 시장이 풀리게 된다면 넷플릭스 이상의 수익을 낼 수도 있을 것이다. _EC

 반면, 제작자들이 넷플릭스가 저작권을 100% 갖는 것에 동의하는 주된 이유는 넷플릭스가 막대한 제작비를 부담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가 얼마나 리스크를 감당하느냐에 따라 권리를 다 가질 수도 못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_FE

넷플릭스가 권리를 100% 갖는 것은 많은 제작비와 적당한 경상비를 인정하는 부분 때문이다. _ CD / DD2

넷플릭스는 필요한 제작비를 주고 그에 대한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해 준다. 프로젝트에 대한 안정적인 수익을 확신할 수 있다면 굳이 넷플릭스를 선택하지 않지 않을까? _CA

콘텐츠 수명을 고려할 때 제작사가 저작재산권을 가지고 있어도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음. OTT 사업자가 모든 IP를 갖게 되더라도 단기적으로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그 방법이 더 나을 수도 있음. 또한 글로벌 OTT와 거래하게 되면 제작사에 속한 작가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감독도 제작사 판단하에 섭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음. 이와 달리 방송사 편성을 받기 위해서는 방송사 소속 감독과 일할 수밖에 없는데 아주 큰 차이임. 국내와 해외를 가리지 않고 OTT 사업자 문은 계속 두드려볼 생각. _드라마 D 제작사(한국콘텐츠진흥원, 2020: 108).

(p.98-99)

 

 “국내 OTT와 넷플릭스의 차이는 화질과 더빙·자막 등이 포함된 ‘포스트 프로덕션’에서 생긴다. HD(고화질)나 FHD(초고화질)를 기본으로 하는 국내 콘텐츠와 비교해 넷플릭스 콘텐츠는 4K UHD(초고선명화질·FHD의 4배)로 제작되고 있다. 넷플릭스를 보다가 국내에서 제작된 콘텐츠를 보면 상대적으로 화질이 낮아 보이는 이유이다”(강소현, 2021).
 넷플릭스 서울 사무소도 넷플릭스의 제작 방식에 대해 “넷플릭스는 창작자의 비전이 실현될 때 비로소 작품의 완성도도 높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지니고 있다. 창작자의 자유를 존중하며 창작 의도를 최대한 실현할 수 있는 제작 환경을 조성하고자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존의 성공 공식과는 다른, 그동안 쉽게 만나볼 수 없었던 색다른 장르 및 포맷의 스토리부터, 국내 스튜디오와의 기술 교류를 통해 최첨단 특수시각효과(VFX) 기술을 적용해 창작자의 창작 의도를 구현한 콘텐츠까지 다채로운 오리지널을 선보이는 중”이라고 밝혔다(넷플릭스 서울 사무소, 2021).
 실제로 제작사들은 넷플릭스와 계약을 맺고 드라마를 납품하면서 넷플릭스의 납품 규격을 맞추기 어려워한다. 넷플릭스와 계약을 할 때는 넷플릭스 디지털 워크플로우를 지켜서 납품할 것이라는 조건이 있는데 넷플릭스는 현재 방송국에 남품하는 코덱인 Prores 422를 받아주지 않는다. 메인 카메라의 경우에도 넷플릭스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ACES의 파이프라인을 준수해야 하며, 데일리 리포트 작성 등 꽤나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송군, 2017).

넷플릭스는 방송 콘텐츠에 대한 기술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있음. 즉, 일정 수준으로 콘텐츠 품질이 떨어지면 방송이 불가. 카메라 품질과 화면 품질의 기술 가이드라인은 고사양·고품질의 콘텐츠 제작을 유도. 현재 국내 방송사에서 제작하는 콘텐츠 대부분은 넷플릭스의 기술 가이드라인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
  콘텐츠 제작 환경은 그 내용도 중요하지만, 시각적인 품질과 효과에 있어서도 경쟁력을 갖추어야 하는데, 국내의 경우 그러한 의지와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투자가 부족. 미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글로벌 콘텐츠 기술과 비교했을 때 경쟁이 가능하도록 새로운 기술에 대한 인력 양성이 필요해 보임. _전문가 H(외주제작사 대표)(노창희·이찬구·성지연·이수연, 2018: 63~64)

(p.104-105)

 

 자막과 관련된 지침인 “넷플릭스의 자막(Timed Text AT Netflix)”에서 넷플릭스가 자막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넷플릭스가 글로벌에 동영상을 전송하는 서비스의 핵심은 전 세계의 다양한 청중과 문화가 훌륭한 넷플릭스를 똑같이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시청자 경험의 핵심 구성 요소인 고품질의 현지화 자막을 위해 i18n(internationalization, 국제화) 등급의 단일의 표준 코드를 개발했고 계속 정교화하고 있다. 이 파이프라인은 개별 대본과 언어의 고유한 특징뿐만 아니라 글로벌 넷플릭스 플랫폼이 가져오는 확장성을 충족시킬 수 있다.” 넷플릭스 선정 업체에 대한 단가표도 공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4K용 IMF(Interoperable Master Format) 패키지 오디오/영상의 경우, 30분은 450달러, 69분은 900달러, 영화 1800달러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이 체계화된 지침들이 넷플릭스 파트너십 사이트에 잘 정비되어 있다.
 BBC의 2015년 연구에 의하면 자막 형태에 따라 자막 속도가 고객 만족도에 영향을 준다. 블록(Block) 형태와 스크롤(Scrolling) 형태의 자막을 음성과 비교해 보면, 블록 형태는 분당 177단어일 때, 스크롤 형태와 음성은 분당 171단어일 때 가장 만족도가 높았다(Sandford, 2015). 이러한 분석을 통해 자막의 속도를 조정하여 이용자의 만족도를 극대화하고 있다. (p.109-110)

 

 한국의 드라마가 16부작을 기본으로 하고, 20부작, 24부작 등이 주로 제작이 되었다면, 넷플릭스가 제작하는 오리지널은 스토리에 맞게 편수를 정하고, 좋은 반응을 얻으면 미국처럼 시즌으로 제작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는 주로 6~12부작으로 제작되었으며, 〈킹덤〉은 6부작으로 시즌3를 제작하고 있고, 〈좋아하면 울리는〉은 시즌1이 8부작, 시즌2가 6부작으로 제작되었다.

넷플릭스 드라마를 제작할 때는 안정적인 제작비를 바탕으로 다양하고 경쟁력이 있고 횟수에 제한이 없는 콘텐츠를 선택할 수 있다. _ED

 넷플릭스 드라마는 회별로 편집 시간에도 제한이 없다. 〈미스터 션샤인〉의 경우 1회는 72분, 2회는 69분, 3회는 67분, 21회는 80분, 심지어 마지막 24회는 96분이다. 최근 인기를 끈 〈오징어 게임〉도 2회는 62분이지만 8회는 32분에 불과하다.

편집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시청자가 자유롭게 시청 시간을 정할 수 있는 점이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_EB

 또한 기존 방송 드라마는 드라마 마지막에 다음 회를 보게 하기 위해 클리프행어(cliffhanger, 궁금증을 유발하는 엔딩)를 중요하게 설정하고, 예고편을 넣는다. 그러나 넷플릭스 오리지널은 몰아보기를 강조하기 때문에 클리프행어가 약하고 크레디트를 안 보고 다음 회로 넘어가는 ‘다음회 보기’가 기본 옵션이고, 2회부터는 ‘오프닝 건너뛰기’ 옵션도 제공하고 있다. (p.135-136)

 

 〈킹덤〉을 제작한 이상백 에이스토리 대표는 《이코노미 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넷플릭스와 일하기 시작했다. 기존 한국 방송사와 일하는 것과 어떻게 달랐나”라는 질문에 계약서 분량이 30장 정도로 구체적이라고 답했다.

넷플릭스는 법률적인 권리 관계를 아주 구체적으로 짚고 넘어간다. 계약서 양부터 다르다. 한국 방송사와 쓰는 계약서 분량이 5~6장 정도라면, 넷플릭스는 30장 정도는 됐다. 저작권, 기술 등 분야별로 계약이 세분화돼 있다. 선진 시장에서 콘텐츠 사업자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 또 제작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의사결정도 매우 빨랐다. 넷플릭스 측이 우리 대본을 보더니 소속 프로듀서랑 미팅 한 번 하고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시켰다(이민아, 2019d: 20).

 CJ ENM의 강호성 대표가 ‘비전 스트림’ 행사에서 “K콘텐츠는 글로벌 수준으로 인정받는데, 이를 지탱하는 산업 구조는 성장하지 못해 비대칭이 발생한다”라고 주장한 것도 이와 일정 정도 맥을 같이한다. 제작사들이 기존 플랫폼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바탕으로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지 못하면 글로벌 사업자에게 기대게 되고, 결국 해외 플랫폼에 IP를 공급하는 하도급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유승목, 2021). (p.142-143)

 

 〈킹덤〉을 제작한 이상백 에이스토리 대표는 《이코노미 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넷플릭스와 작업 이후 달라진 점을 밝혔다.

작가의 상상력을 제약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요즘에는 에이스토리 소속 작가들에게 ‘써보고 싶었던 이야기, 아무거나 재밌게 써봐라’라고 한다. 예전에는 판타지 장르나 괴물이 등장하는 이야기들 같은 것은 ‘이런 걸 지상파에서 어떻게 틀어?’ ‘바보 아냐?’ ‘미국 가서 해’라는 식으로 비아냥거리는 농담을 했다. 이제는 그런 문화가 없어졌다(이민아, 2019d: 21).

(p.143)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그동안 제작사가 방송사에 제기해 온 가장 큰 불만이 기획과 제작을 다 책임지고도 저작권을 방송사에 넘긴다는 것이었다. 물론 국내외 판매 수익의 일정 부분을 일정 기간 동안 배분하거나 제작사가 모든 권리를 갖고 방송사가 방송권만 갖는 구조도 있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이보다 더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의 경우 모든 권리를 넷플릭스가 갖는다는 원칙을 적용하고 있고, 구매의 경우에도 영원히 서비스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제작에 참여하는 작가나 배우도 저작인접권에 따라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 국내 드라마를 제작하여 방송하면 작가와 배우는 재방송이나 국내외 드라마 판매에 따라 저작권 신탁 단체인 작가협회나 실연자협회에서 일정 비율의 저작료를 받았는데, 넷플릭스 드라마를 하게 되면 이에 대한 수익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물론 국내 드라마에 비해 작가료나 출연료를 많이 받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금액을 미리 받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드라마가 흥행했을 때 창작자가 장기적으로 누리는 혜택을 감안하면 충분한 보상이 안 될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지금 넷플릭스가 말도 안 되게 월권을 부리는 부분들이 있어요. 한국의 작가들은 작가협회 회원이니까 신탁이 돼 있어서 따박따박 재방료가 있어요. 그리고 배우들도 배우조합에서 재방료를 받기도 하고, 특히 문제가 되는 게 음악 저작권이에요. 근데 방송사는 큰돈을 들여서 저작권협회와 계약을 해가지고 자신에게 써먹은 만큼 페이(지급)를 한단 말이죠. 재방할 때마다 페이를 주고요. 넷플릭스는 거기에서 걸리는 게 하나도 없어요.
 거기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어쨌든 다른 작품을 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받고 했기 때문에 영원히 내 권리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제가 볼 때는 그다지 많이 주지 않았는데 작가나 음악가들이나 배우들이나 다 오케이를 하고 이렇게 가는 것이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어요. _BA

(p.150-151)

 

 

유럽 최후의 대국, 우크라이나의 역사 / 구로카와 유지 / 글항아리

 

 지금까지 키예프 루스 공국의 역사는 러시아(소련)사의 문맥 안에서만 다루어져 왔다. 러시아(소련)는 대국이고, 우크라이나는 독립조차 하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자연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는 다른 개별 국가로 독립하자 다시금 키예프 루스는 누구의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부상한다. 즉,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중 어느 쪽 역사에 속하는지,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 중 키예프 루스 공국의 직계 후계자는 누구인지에 대한 문제였다.
 이건 러시아 입장에서는 이미 해결된 문제였다. 러시아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키예프 공국이 멸망한 후, 우크라이나의 땅은 리투아니아와 폴란드 영토가 됐고 나라 자체가 소멸해서 계승하고 싶어도 계승자가 없었다. 이에 반해 키예프 루스 공국을 구성하던 모스크바 공국은 단절되지 않고 존속하여 키예프 루스 공국의 제도와 문화를 계승했으며 훗날 러시아 제국으로 발전했다. 이것만 보더라도 러시아가 키예프 루스 공국의 정통 계승자임은 새삼스럽게 논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키예프 루스 공국의 정통 계승자 여부에 따라, 자기 나라가 1000년 전부터 이어온 영광의 역사를 가진 나라인지, 아니면 지금까지 러시아의 한 지방에 불과했던 단순한 신흥국인지를 가늠하는 국격에 관련된 중요한 문제가 된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의 논리는 이렇다. 모스크바를 포함한 당시 키예프 루스 공국의 동북 지방은 민족도, 언어도 달랐고 16세기가 되어서야 핀어 대신에 슬라브어가 사용됐을 정도였다. 15세기의 모스크바는 키예프 루스 공국의 지배 아래에 있었던 비(非)슬라브 부족의 연합체이지, 키예프 루스 공국의 후계자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한 가혹한 전제 중앙집권 체제인 러시아·소련의 체제와 키예프 루스 공국의 체제는 전혀 다르므로 별개의 국가다. 키예프 루스 공국의 정치·사회·문화는 몽골에 의한 키예프의 파괴(1240) 이후에도 1세기에 걸쳐 현재 서우크라이나 지역에 번성한 할리치나·볼린 공국으로 계승됐다. (p.43-44)

 

 앞서 농노제도가 폐지됐어도 농민의 생활은 개선되지 않았다고 설명했지만 그럼에도 우크라이나는 최대의 곡창지대를 이루어 ‘유럽의 빵 바구니’가 됐다. 기존의 농촌이 피폐했던 것에 반해 18세기 말 이후 드네프르강 유역과 남우크라이나의 스텝 초원지대가 일부 귀족, 자산가 등에 의해 규모 있게 조직적으로 개간되면서 오직 수출만 목적으로 한 농업 비즈니스로 개발된 결과다. 스텝 초원지대는 당시만 해도 경작자가 없었기 때문에 광대한 토지를 저렴하고 손쉽게 취득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토양이 비옥하고 적출항과의 거리도 가까웠다. 19세기 초에는 스텝 초원지대에 80만 헥타르의 농지가 있었지만 1860년대에는 600만 헥타르까지 확대됐다. 이로써 이 지역은 러시아 제국에 가장 중요한 곡물 생산지가 됐다. 최대 작물인 밀을 보면 1812년부터 1859년 사이에 러시아 밀 수출의 75퍼센트가 우크라이나에서 수출됐다. 1909년부터 1913년까지 러시아 밀 수출의 98퍼센트, 옥수수의 84퍼센트, 호밀의 75퍼센트가 우크라이나에서 수출됐다. 또한 세계 곡물 생산의 비중에서도 우크라이나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여 1909년부터 1913년 사이 전 세계 보리의 43퍼센트, 밀의 20퍼센트, 옥수수의 10퍼센트가 이곳에서 생산됐다. (p.175-176)

 

 앞서 기술한 것처럼 스탈린은 오히려 농민을 사회주의에 대한 저항 세력으로 여긴 때가 있어, 농민을 자신이 생각하는 사회주의 체제에 편입시키기 위해서는 거친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즉, 정치적으로는 개인주의적이고 독립의식이 강한 농민을 상의하달 방식의 조직 안에 봉쇄할 필요가 있었다. 또한 경제적으로는 국가의 기본 방침인 공업화를 서두르기 위해 저렴한 식량을 농촌에서 조달하여 공장 노동자에게 공급해야 했고 기계 수입에 필요한 외자를 벌기 위해 곡물을 수출해야 했다. 그 수단이 된 것이 1928년에 시작되어 1929년부터 강제화된 ‘농업 집단화’다.
 농업 집단화란 지금까지 자신의 토지를 경작하여 자활해왔던 농민을 국영 농장(우크라이나어로 ‘라도호스프’, 러시아어로 ‘솝호스’) 또는 집단 농장(우크라이나어로 ‘콜호스프’, 러시아어로 ‘콜호스’)에 넣어 그 일원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농민을 토지에서 분리하여 농업 노동자나 프롤레타리아트로 바꾸는 것이었다. 농민들은 저항했다. 어쩔 수 없이 집단 농장에 들어가게 된 농민들은 기르던 가축을 도살하여 식용으로 삼거나 팔아버렸다. 1928년에서 1932년 사이에 우크라이나는 가축의 절반을 잃었다. 그러나 당과 정부는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집단화를 추진했다. 저항하는 이는 체포되어 시베리아로 보내졌다. 또한 자활 농민이 될 수 없도록 높은 세율을 부과하거나 갖은 방법으로 괴롭혔다. ‘쿨라크(kulak)’로 불리는 비교적 부유한 농민들은 농민 중의 부르주아라는 이유로 농민계급, 나아가 인민의 적으로 몰아 토지를 몰수하거나 수용소로 보내거나 처형하는 등 철저히 탄압했다.
 우크라이나에서 이 집단화는 1930년과 1931년에 급속도로 진행됐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에서 집단화된 농가 비율은 1928년 3.4퍼센트에서 1935년에는 91.3퍼센트에 달했다. 집단화는 스탈린과 당 지배의 영속화에는 이바지했을지언정 우크라이나에는 참혹한 결과를 초래했다. 그 결과가 바로 1932년~1933년에 일어난 대기근이다. (p.232-233)

 

 이로써 기근은 1933년 봄이 되어 절정에 달했다. 기근은 소련 안에서도 우크라이나와 북캅카스 지역에서 발생했다. 도시 주민이 아니라 식량을 생산하는 농민이 굶주리고 곡물 생산이 적은 러시아 중심부가 아니라 곡창 우크라이나에서 기근이 발생한 몹시 비정상적인 사태였다. 농민들은 빵이 없어서 쥐, 나무껍질, 잎사귀까지 먹었다. 인육을 먹었다는 이야기도 다수 전해진다. 마을 전체가 절멸한 곳도 있었다. 흐루쇼프의 회상록에는 한 대의 열차가 굶어 죽은 사람들의 사체를 가득 싣고 키예프 역으로 들어왔는데, 폴타바에서 키예프까지 계속해서 사체를 실었기 때문이라는 일화가 실려 있다.
 이 기근으로 발생한 아사자의 수는 소련 정부가 감추고 있었던 탓에 정확히 알 수 없다. 어느 학자는 300만 명에서 600만 명 사이로 추계했다. 독립 후, 우크라이나의 공식 견해와 쿠치마 대통령(1938~)의 머리말이 실린 『우크라이나에 대한 모든 것』(1998)에 따르면 이 기근으로 우크라이나 공화국에서는 350만 명이 아사했고 출산율 저하를 포함한 인구 감소는 500만 명에 달했으며 그밖에 북캅카스에 거주한 우크라이나인 약 1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북캅카스 출신이자 외가 쪽이 우크라이나계로 추정되는 고르바초프(1931~)에 따르면 자신의 마을에서도 이 기근으로 3분의 1이 사망했다고 한다.
 이 기근의 첫 번째 특징은 강제적인 집단화와 곡물 조달로 인해 발생한 인위적인 기근이며 필연성은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기근은 유대인에 대한 홀로코스트에 필적할 만한 제노사이드라고 지적하는 학자도 있다. 두 번째 특징은 러시아 자체는 이 기근을 거의 겪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스탈린이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를 약화시키려고 의도적으로 자행했다는 설이 제기됐다. 그 증거로 “민족 문제는 농민 문제를 말한다”라는 스탈린의 발언과 1930년 『프라우다』 지의 “우크라이나의 집단화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개인 소유 농가의 농업)의 기반을 파괴하는 특별한 임무를 갖는다”라는 구절을 들었다. 세 번째 특징은 이 기근이 소련에서는 가능한 한 감춰져 있었다는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여기에 영향을 받은 서방의 역사서에도 최근까지 이 기근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1986년에 이르러서도 소련 관제의 우크라이나사는 ‘지독한 식량 문제가 있었다’고만 서술했을 뿐 기근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당시 소련은 대외적으로 약점을 보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외국의 원조 제안까지 거절한 점이 피해를 더 확산시켰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나아가 더 놀라운 것은 이 시기에도 소련은 태연하게 곡물 수출을 계속했다는 점이다. (p.235-236)

 

 독일은 동부 전선에서 식량과 노동력의 공급원이 되어준 우크라이나를 중시했다. 독일이 소련 점령지역에서 징발한 식량의 85퍼센트는 우크라이나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독일은 소련 점령지역에서 ‘오스트 아르바이터(동방 노동자)’라 불리는 노동자들을 독일로 강제 연행하여 가혹한 노동을 시켰다. 독일 경찰은 우크라이나의 시장과 교회, 영화관 등에서 젊은이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들여 독일로 보냈다. 전체 280만 명으로 추정되는 구소련령에서 보내진 오스트 아르바이터 중 230만 명이 우크라이나에서 온 노동자였다.
 나치 독일은 우크라이나인에게도 몰인정했지만 유대인에 대한 조치는 철저했다. 유대인 사냥은 조직적으로 이루어졌고 강제수용소로 보내진 후 대다수가 살해됐다. 강제수용소로 보내지기 전에 살해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그중 가장 규모가 큰 학살로 꼽히는 것은 바비 야르 사건이다. 1941년 9월, 유대인 3만4000명을 키예프 교외의 협곡 바비 야르에 몰아넣고 사살한 후 구덩이에 묻었다. 이 사건은 전후 흐루쇼프 시대에 문제로 거론됐고 특히 이르쿠츠크 출생의 우크라이나인 4세이자 시인 예브게니 옙투셴코의 시 「바비 야르」(1961)를 통해 알려졌다. 이 지역은 지금도 유대인 순난(殉難)의 땅으로 알려져 있다. 나치 독일은 우크라이나에서 85만~90만 명의 유대인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된다. (p.244-245)

 

 우크라이나에서 소련 체제에 대한 불신이 처음으로 고조된 계기는 체르노빌(우크라이나어로 ‘초르노빌’) 원자력발전소의 폭발 사고다. 1986년 4월 26일, 키예프 북쪽 방면으로 약 100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제4호 원자로가 폭발했다. 192톤의 핵연료 중 4퍼센트가 대기 중으로 방출되어 히로시마형 원자폭탄 500발 분의 방사능이 확산됐다. 사고 자체로도 사상 초유의 재난이었지만 사태를 한층 더 악화시킨 것은 소련의 은폐 구조였다. 고르바초프가 정권을 획득한 지 1년 남짓 됐고 글라스노스트도 아직 정착되지 않은 시기였던 탓에 사고는 28일까지 감춰져 있었다. 이 때문에 좀 더 빨리 공표하여 필요한 조처를 취했다면 구할 수 있었던 많은 생명을 잃었고 몇만 명의 사람은 지금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 사고는 환경 문제에 대한 우크라이나인의 관심을 이끌었다. 소련은 생산지상주의로 그동안 환경 문제에는 거의 무관심했다. 문제가 일어나도 감추기만 했다. 우크라이나는 소련의 제1중화학 공업지대라고 자랑했지만 실상은 공장과 광산이 배출하는 오염물질이 흘러넘치고 있었고 우크라이나 남부와 동부는 소련 유수의 오염지대가 되어 주민들의 건강 문제가 심각해졌다. (p.270)

 

 독립을 달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쿠데타 사건이었다. 1991년 8월 19일, 모스크바의 보수파는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크림의 포로스에 위치한 대통령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던 고르바초프를 구금하여 권력 이양을 압박했다. 같은 날 쿠데타 측은 키예프에 사자를 보내 크라프추크에게 쿠데타 지지를 요청했다. 그는 비상사태가 우크라이나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답했지만 쿠데타에 대한 지지 여부는 표명하지 않았다. 쿠데타는 러시아 최고회의 의장 옐친의 용감한 저항으로 맥없이 실패한다. 이로써 주도권은 고르바초프에게서 옐친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누가 봐도 소련은 지속될 수 없다는 게 분명해졌다.
 쿠데타 실패의 여세를 몰아 8월 24일 우크라이나 최고회의는 거의 만장일치로 독립 선언을 채택했다. 훗날 이날은 독립기념일이 된다. 국명은 간단하게 ‘우크라이나’로 정했다. 최고회의는 쿠데타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공산당을 금지했다. 크라프추크는 탈당했다. 9월에는 최고회의가 민족주의 전통에 입각한 국기, 국가, 국장을 법제화했다. 국기는 위가 하늘을 뜻하는 파란색, 아래가 대지(보리밭)를 뜻하는 노란색으로 구성된 이색기(二色旗), 국가는 1865년 베르비츠키 작곡의 ‘우크라이나의 영광은 사라지지 않으리’, 국장은 볼로디미르 성공의 국장이었던 ‘삼지창’을 가리킨다. 모두 중앙 라다 정부가 제정한 것의 부활이었다. 또한 소련을 구성했던 많은 공화국이 우크라이나를 따라 독립을 선언했다. (p.275-276)

 

 가까스로 손에 넣은 독립은 유혈을 수반하지 않고 평화롭게 이루어졌다. 이 부분은 매우 바람직하지만 한편으로는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온’ 측면도 있다. 우크라이나가 소련에 남았다면 소련이 존속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의미에서는 최후의 단계에서 소련에 마지막 일격을 가한 결정타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소련이 스스로 붕괴해가는 과정에 무임승차한 면이 강하다. 따라서 레닌이나 피우스츠키, 마사리크와 같은 건국 영웅도 등장하지 않았고 흐루셰브스키나 페틀류라와 같은 독립운동을 상징하는 인물도 없었다. 또한 구체제의 중추에 있던 인물들이 독립파로 수월하게 전향했던 터라 구체제가 그대로 독립 국가로 이행되면서 간판만 바뀌고 내용물은 별반 달라지지 않은 상태가 됐다. 수 세기에 걸친 우크라이나 민족의 꿈이었던 독립을 마침내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마냥 경사스럽지만은 않은’ 독립으로 비친 까닭이 여기에 있다. (p.278-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