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길로 돌아갈까? / 게일 콜드웰 / 문학동네
“집까지 먼길로 돌아갈까?” 차에 오를 때면 캐럴라인이 말하곤 했다. 그럼 우리는 서둘러 헤어지지 않으려고 서머빌이나 메드퍼드의 혼잡한 길로 접어들었다. 긴 드라이브 끝에 클레먼타인이 뒷자리에서 가볍게 코를 골 즈음, 둘 중 어느 쪽이든 차에서 내려야 할 사람 집 앞에 앉아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다 각자 집으로 들어가서는 다시 전화기를 붙잡았다. (p.40-41)
이 주일 뒤, 나는 당일치기로 킹스턴에 다녀왔다. 돌아올 때는 친구가 운전하는 사브 승용차 뒷좌석에 클레먼타인과 함께 앉았다. 당시 몸무게가 5킬로그램이던 클레먼타인은 일 년 만에 다섯 배 크기로 자란다고 했다. 녀석을 집에 데려오고부터 새로운 동물 식구와 함께 어김없이 찾아오는 광란의 적응기가 시작됐다. 흡사 새끼 늑대 한 마리를 집에 풀어놓은 것 같았다. 녀석은 고집 세고 겁도 없고 지칠 줄을 몰랐다. 무게가 55킬로그램이나 되는 아이리시울프하운드가 집에 놀러 왔을 때도 녀석은 그 개 아래쪽에 버티고 서서 무려 열 배에 이르는 체중 차이에도 기죽지 않고 사납게 짖어댔다. 녀석의 입성으로 첫날 스물네 시간을 뜬눈으로 새운 뒤, 뒷베란다에 앉은 내 무릎 위에서 녀석이 널브러져 잠이 들자―속눈썹이 하얗네! 하는 생각이 들면서―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평생을 동물과 함께 살았지만, 이렇게 분명한 사랑에 마음을 빼앗기기는 처음이었다. (p.64-65)
나는 아직 모험을 갈구할 만큼 젊고 용감한 나이에 이곳 동부 연안으로 왔다. 그보다 몇 해 앞서 처음 뉴욕에 발을 디뎠을 때 나는 이미 성인이었고, 이 도시는 언제나처럼 마법의 약을 내밀었다. 행복감에 취해 구겐하임에서 그리니치빌리지까지 여든 블록을 내리 걸었다. 눈발이 날리는 길모퉁이, 줄지어 선 택시들, 자라면서 영화와 TV에서 봤던 온갖 대중문화의 아이콘, 그 한복판에 내가 서 있었다. 이 모든 게 실재하는 현실이라는―이 휘황찬란한 광경으로 걸어 들어가 나도 일부가 될 수 있다는―생각에 겸허해지고 인생이 달리 보였다.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아직 걸려 있다는 현대미술관에 찾아갔을 때 계단에서 돌아서서 처음으로 그 작품을 본 순간, 나는 난간에 기대지 않고는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아무리 스스로 교양 있는 사람이라 자부했어도 나는 밀밭과 교외의 풍경을 시각적 상수로, 그리고 예술은 주로 책 속에 존재하는 무엇으로 여기며 자랐다. 맨해튼에 있는 시간은 나 자신의 삶을 향해 돌진하는 경험, 혹은 스스로 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경험이었다. 이것을 외면했다면 영영 기회를 놓쳐버리는 실수로 남았을 것이다. (p.89-90)
작가가 되는 상상을 현실로 만들리라 생각하며 살던 다락방은 가로수가 늘어선 거리의 엘리베이터 없는 삼층 건물에 있었다. 타자기가 놓인 자리는 거실이었고, 그곳에 난 건물 전면 창밖으로 지붕들과 뉴잉글랜드의 하늘이 이어졌다. 아래로는 사람들이 삶을 꾸려가는 거리 풍경―우편배달부,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 도시생활의 후경을 이루는 친숙한 타인들―이 내려다보였다. 부러진 갈비뼈 때문에 집에서 꼼짝을 못하던 어느 겨울 오후, 그저 주류판매점에 걸어가 버번 한 병만 사올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는 심정으로 창가에 서서 눈발이 휘날리는 바깥을 내다보는데, 문득 내 꿈의 경로가 이만큼 어그러졌다는 생각에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작가가 되겠다는 의지로 아무런 일자리도, 가족도, 발판도 없는 이곳까지 그 먼길을 와놓고 지금은 저 아래 세상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어 비좁은 내 삼층 독방에 발이 묶인 채 어서 술을 마실 수 있도록 이 하루가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다니. 수년간의 자유낙하가 끝이 났고, 불안은 절망이 되었고, 나는 정말로 더는 버틸 힘이 없었다. (p.102)
어느 여름 저녁, 보스턴 커먼공원을 가로질러 또다른 교회 지하실을 찾아가고 있을 때였다. 공원은 어딘가를 향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지난 수년간 나는 실재하는 삶처럼 보이는 순간들을 향해 바삐 걸어가는 이런 인파에서 나만 동떨어져 있다고 느꼈다. 이제는 더 깊고 다양한 진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 중 몇몇은 AA 모임을 향하고 있다는 것. 이것은 어렵사리 얻은, 하지만 삶이 언제나 알려주고 싶어 하는 훌륭한 가르침이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은 공개된 버전일 뿐이라는 깨달음. 교회든 병실이든 담배연기 자욱한 지하실이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들도 엄연히 이 세계를 떠받치는 한 부분이다. 내 손에 마스터키가 쥐어졌고, 나도 그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p.107-108)
죽음이 이야기의 끝이 아님을 이해하기까지 나는 몇 년이 걸렸다. 죽음은 이야기를 바꾸어놓는다. 일방적인 대화체의 오류와 통찰을 수정하고 고쳐쓴다. 우리 대부분이 서로의 삶을 드나드는 건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가 아니라 거리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다―시공간과 마음의 권태야말로 인간관계에서 더 냉정한 사형집행인이다. (p.183)
메멘토 모리. 죽은 자를 상기시키는 것들. 우리가 이런 지나간 시간의 표지―무덤에 남겨진 야구공과 장신구, 카드―를 갈망할 수밖에 없는 건 고인이 남긴 자리를 이것들이 메워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가 떠난 뒤의 물리적 공백은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거리에서 집 한 채가 사라지는 것 같은 물리적인 현상과 대단히 흡사했다. 클레먼타인은 수년간 캐럴라인이 몰던 도요타 RAV 특유의 경적을 들을 때마다 꼬리를 흔들며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내가 보기에 이 순수한 조건반사는 세상에 있다가 사라진 존재에 대한 하이쿠였다. (p.233-234)
그러다가 마침내 부지불식간에 죽음의 수용이 심장을 감싸안는다. 그해가 가기 전 나는 오픈하우스가 진행 중인 이웃집을 두리번거리다가 파블로 네루다의 소네트가 끼워진 액자를 보았다. 상실을 그렇게 공간적으로 표현한 글은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었다. 캐럴라인의 죽음은 심장에 뚫린 빈자리였다. 나는 그 자리를 채울 수도 없고 채우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녀의 부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실재이고, 범죄현장처럼 보존된 기억이었으며, 이 현장보존선을 제거하는 것은 무도한 행위일 터였다. 이런 생각들이 고개를 들며 나는 혼란을 겪고 있었다. 그때 네루다의 시를 보았다. 그는 애도하는 이들에게 죽음을 거처 삼아 그 안에 기거하기를 청하고 있었다.부재라는 집은 너무 광막해
(p.237)
그 안에서 당신은 벽을 통과하고
허공에 그림을 걸리라.
클레먼타인이 좋아하던 뒤뜰의 은신처는 커다란 주목 밑이었다. 관목이 아주 무성하게 우거져서 바로 옆의 찔레나무가 주목 가지 사이를 구불구불 뚫고 위쪽으로 자라났다. 봄에 이층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주목이 흰 꽃을 피워낸 듯 보인다―뾰족한 잎과 꽃과 상록의 마술적 교배종이랄까. 요술이든 조물주의 조화든 이런 환상적인 광경은 어디나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중요한 건 이런 게 아닐까. 인생의 근본적인 슬픔 속으로 곤두박질치지도 말고, 그것이 나의 남은 나날을 규정하리라 지레짐작하지도 말고 그저 그 슬픔을 포용하는 것. 이런저런 일상적인 실수와 후회에도 불구하고 삶의 여정이 그 최후보다 한결같이 더 신비롭고 매력적일 수 있게 하는 것, 이게 진짜 요술이다. (p.266-267)
옛날 나바호족 사람들은 러그를 짤 때 어울리지 않는 실을 한 가닥씩 넣고 그 도드라지는 색이 바깥 테두리로 이어지게 했다. 이 의도된 결함은 러그 안에 갇힌 에너지를 풀어주고 또다른 창조로 이어지도록 길을 낸다는 뜻에서 영혼의 줄이라 불렸으며, 이 줄의 유무로 진품을 가릴 수 있다.
인생에서 굳게 품을 가치가 있는 이야기에는 모두 이런 영혼의 줄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희망이라 부르든 내일이라 부르든, 내러티브의 뒷이야기라고 부르든 상관없다. 다만 이것 없이는―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미지의 선명한 불협화음 없이는―우리의 의식과 함께 모든 것이 안으로 무너져 파열될 것이다. 우주가 역설하는바, 모든 고정된 것은 유한하다. (p.271)
죽는 게 참 어렵습니다 / 김영화, 김호성, 나경희, 송병기 / 시사IN북
정신장애인에 대한 낙인과 편견이 심하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정신장애인을 ‘이웃’으로 인정하고 더불어 살아본 경험이 쌓이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했다. “언론이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을 위험한 사람으로 자주 지목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기 쉬워요. 하지만 제가 만난 사람들은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보다 내 잘못은 없었는지 되묻는 사람들이고 세상이 내는 작은 목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었어요.” 박목우 씨가 동료 상담을 위해 직접 준비한 자료에는 ‘당신은 시민으로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 고립되어 스스로를 탓하고 있을 정신장애인 동료들에게 박씨가 전하고 싶은 말이다. (p.23-24)
겉으로 보이는 장애가 아니었으므로 의심받기 일쑤였다. “청춘은 건강한 남성의 얼굴을 하고 있더라고요.” 가까운 이들은 ‘군대 안 가도 되는 병’이라거나 ‘치킨이랑 술 못 먹는 병’ 정도로 크론병을 이해했다. 그러나 정작 그를 힘들게 한 건 자신이었다.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두고 무능하다고 자책하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아파도 이만큼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었어요. 그렇게 일을 마구 벌여놓고 수습하지 못하는 내가 다시 원망스러웠죠.” 경쟁사회의 시선을 내면화하고 있던 그는 자신의 아픈 몸을 미워했다.
건강했던 몸을 마냥 그리워하지 않게 된 건 ‘느린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부터다. 장애인권동아리 활동을 하며 걷고, 말하고, 문자를 치는 데에는 사람마다 속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동안 자신이 빠른 속도로 추월해왔던 사람들이 머릿속에 스쳤다. 새로운 관계 속에서 안씨는 아픈 몸을 감추며 ‘괜찮은 척’하지 않았다. “아프고 약한 사람들이 강해져야 하는 게 아니에요. 아프고 약한 채로 살다가 편하게 죽고 싶어요.” (p.30)
김호성 우리 사회는 질병의 상태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터부시하죠. 저는 조한진희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질병권’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합니다. 건강이 삶의 목적이 아니고, 질병을 가지고 삶에 적응하는 것도 중요하죠. 언제든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근대 과학적 사고에 영향을 받은 의학 문화는 기본적으로 멸균 시스템입니다. 균 없이 깨끗해야 하고 건강해야 하죠. 그게 현대사회 시민들이 생각하는 문화적인 ‘정상’의 기준입니다. (p.42)
조한진희 통계를 봐도 남성 노인이 아프면 아내가 돌보고, 여성 노인이 아프면 딸이 돌봐요. 노부부가 같이 아픈 상황에서도 돌봄은 아내 몫이에요. 암 환자들이 가는 요양원도 4050 중년 여성들이 많이 가요. 이유가 있어요. 암 환자의 경우 운신이 가능하더라도 항암 과정에서 체력이 많이 떨어집니다. 집안일을 하기가 힘들어요. 요양원에 들어가야 그나마 집안일을 안 할 수 있는 거죠. 집안일의 부담에서 벗어나려면 요양원에 가는 수밖에 없는 거예요. (p.47)
조한진희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돌봄 공간도 이분화돼 있는 것 같아요. 치매, 암 환자 같은 어떤 큰 질병이 있어야 요양원으로 가게 되는데, 저는 일상적인 요양 공간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에 제가 다리를 다친 적이 있어요. 저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주택 건물의 3층에 살고 있었는데 다친 다리로 외부 출입을 하기가 어려우니 끼니 챙겨 먹는 게 아주 큰 일이더라고요. 동네에 돌봄공간이 있다면 어땠을까요. 중증환자가 아니기 때문에 입원 치료는 필요 없잖아요. 병원에서도 ‘집에 가서 잘 쉬세요’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집에서 ‘잘’ 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냐는 거죠. 집에서 혼자 잘 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나이와 상관없이 많은 사람이 집에서 잘 못 쉬어요. 일상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 마을에 단기 요양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바로 돌봄의 사회화가 아닐까요. 아픈 몸으로 사는 데 있어 선택지가 많아야 할 것 같아요. 죽음도 마찬가지고요. 각자 가진 세계관이 다르고 삶의 방식이 다르다는 건 죽음에 대한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의미잖아요. 선택지를 많이 만들어주는 사회가 좋은 사회죠. 이분법을 벗어나야 질병이든 죽음이든 풍요로워질 수 있어요. (p.59-60)
박중철 의대생 대부분이 마치 육군사관학교나 특전사들이 훈련 받는 것처럼 훈련을 받아요. 생명에 대한 지고지순한 지상주의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그게 신념이 돼요. 배운 걸 마음껏 펼쳐 보이려 현장에 가죠. 그런데 소위 ‘바이탈(vital) 잡는다’는 중요한 과에서는 실패와 성공이 반반이에요. 성공하더라도 절반의 성공이 많아요. 환자 목숨은 살려도 의식이 깨어나지 않거나, 후유증이 남는다든가. 그럴 때마다 자존감 위축을 겪으면서 생명에 더 집착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의료적 집착’이라고도 얘기하는데요. 의사가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신과 같은 존재가 아니잖아요. 의사도 사람이라 취약하고 흔들리거든요. 거기다 죽음과 삶을 바로 앞에서 목도하기 때문에 환자의 상황이 자기에 대한 불안으로 전이돼요. 죽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려니 그게 의사라는 정체성에 대한 배신이기도 한 거예요. (p.81-82)
박중철 간병 문제는 특별해요. 간병인이 없으면 그 역할을 누가 할 수 있나요. 환자 옆에 하루 종일, 혹은 12시간 이상 매여 있는 사람이 자기 삶에서 유의미한 시간을 갖는 건 어려워요. 가족이 간병하든 외주를 주든 결국 환자를 통해 자기 삶의 의미를 찾아보려고 노력을 해요. 환자에 개입하는 방식으로요. 욕창이나 가래 뽑는 일, 혈압, 소변 이런 거 하나하나 집착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의료진에게 보고만 하는 역할을 벗어나고자 하는 거죠. 인간이 그래요.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되죠. (p.91)
호스피스 단계 이전에는 ‘고통’이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병의 진단과 치료를 거치는 과정에서 고통의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전문가들이 부족하다. 사회적으로는 환자와 가족들이 가지고 있는 질병과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질병은 오직 치료해야 할 대상이며 삶의 장애물로 여겨진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환자가 고민하는 삶의 의미는 파편적으로 부서지거나 위축되고 만다.
이 세상의 모든 이들은 크고 작은 각자의 고통 속에 살아간다. 누구나 저마다의 고통을 섬세하게 다루고 위로해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바란다. 코로나19로 인해 대다수 시민들이 한 번쯤 죽음을 자신의 실존적 문제로 인식하게 됐다. 조금 더 상상의 지평을 넓혀보자. 우리가 함께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말기 환자’들과 연대하는 상상을 해본다. 미래의 우리 대부분은 말기 환자가 된다. 생애 말기 돌봄 기간에 경험하게 될 우리 자신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지금의 현실을 파악하고, 문제를 지적하고 움직여야 한다. 호스피스를 담당할 완화의료 전문가의 확충과 말기 돌봄 시설의 개선을 지속적으로 정부에게 요구하자.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가능하면 끝까지, 고통을 최소화하여, 의미 있게 잘 ‘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진실로 잘 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p.97-98)
연명의료결정법의 저편에는 또 다른 기준에 근거한 ‘연명’이 존재한다. 소득 상위 20% 인구의 기대 수명은 소득 하위 20%에 비해 6년 더 길다. 전자의 건강 수명은 후자보다 11년이나 더 길다. 전자는 후자보다 담배도 덜 피우고, 덜 우울하고, 고혈압과 당뇨병 유병률도 덜하다. 또한 전문대 이상 학력 소지자들의 자살률은 초등학교 졸업 이하 학력 소지자들보다 낮다. 서울시 자살률은 강원도와 충남보다 낮다. 이런 통계를 ‘세게’ 요약하면, ‘서초구 고소득층은 화천군 저소득층보다 15년 더 산다.’
한편 노동조건도 ‘연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19년 한 해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 수는 무려 2020명이다. 이 중에서 질병이 아닌 업무상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만 해도 855명이다. 사망자 수의 산업별 분포를 보면 건설업이 428명, 제조업이 206명, 운수·창고·통신업이 59명을 차지한다. 이들은 대개 높은 곳에서 떨어지고(347명), 어딘가에 끼이고(106명), 무언가에 부딪히고(84명) 또 깔려서(67명) 죽었다. 이보다 더 열악한 사업장 노동자들의 죽음은 산재보험 미적용, 회사의 비협조, 재해자 입증 책임 원칙에 묻혀서 통계 숫자로도 보이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하루 ‘연명’하기 위해 빨리빨리 ‘단명’하고 있다. 요양보호사·간병인·환경미화원·배달 기사일 가능성이 큰 이들은 저임금, 장시간 근로, 특수고용 같은 위태한 근로조건 속에서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코로나19 시대 필수노동’을 맡고 있다. (p.104-105)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진료를 기다리는 이들로 북적였다. 한쪽 벽면에 ‘기계가 아니라 관계로 건강해진다’는 문구가 보였다. 유여원 살림의료사협 상무는 이 문구를 ‘살림의 스피릿(정신)’이라고 소개한다. 병원은 물리적 공간일 뿐이다. 더 중요한 건 의료인·환자·조합원과 지역 주민이 만나고 연결되는 일이다. 너무 춥거나 더울 때 안부를 확인할 사람이 주변에 있나, 끼니를 챙길 여력이 되나, 지역사회에서 고립돼 있지는 않나…. 의사가 병을 치료한다면 병을 예방하고 회복하는 데는 이런 돌봄이 필요하다. 그래서 살림의료사협의 정관은 ‘여성들에게 떠넘겨지고 평가절하되어온 돌봄은 모두가 정의롭게 나누어 질 노동이자 기꺼이 참여할 가치가 있는 권리’라고 말한다. (p.123)
노쇠하고 쇠약해졌을 때 결국 남은 건 요양원 혹은 병원에서 홀로 맞는 죽음뿐일까. 홍종원 씨는 ‘건강’이라는 개념을 돌봄의 관점에서 재정의했다.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차근차근 잘 맺어놓으면 그들이 나를 도와주고 돌봐줄 수 있어요. 비록 그게 가족이 아닐지라도요. 거꾸로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줄 수도 있고요. 결국 우리는 건강한 관계 속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거죠. 곁에서 돌보는 사람들이 우리를 살아가게 할 거예요. 그 삶이 아플 수도 있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고 힘겨울 수도 있고 희망이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살아가야 하고, 실제로 살아갈 수 있어야 건강한 거죠. 그렇다면 거기서 의사의 역할이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볼 수 있고요.” (p.130)
김희강 아이, 노인, 장애인을 돌보는 일을 행복하고 보람된 일로 만드는 것도 결국 국가와 사회가 할 일이죠.
송병기 보통은 인구학적으로 접근하죠. 저출생 문제가 심각하다면서 ‘아이 낳으면 얼마 준다’는 식의 희한한 정책으로 돌아옵니다. 상상력이 그 정도에 머물러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맘고리즘에서 벗어나려면 돌봄이 ‘외주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입니다. 간병 같은 경우는 중국 동포 여성이 90% 가까이 차지하고 있고요. 이주노동과도 연결돼 있죠.
김희강 여성의 경제활동을 장려하면서도 공적 돌봄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다 보니 돌봄이 외주화됩니다. 말씀하신 대로 주로 이주노동자 여성들이 돌봄 공백을 메우고 있죠. 한편에서는 여성 지위가 향상됐고 사회경제적으로 여성들이 참여하고 있지만 돌봄의 젠더화를 근본적으로는 극복하지 못하는, 돌봄을 착취하는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글로벌 케어 체인(Global care chain)’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른바 선진국의 돌봄 공백을 메우기 위해 발생한 이주노동이 본국에서도 돌봄 공백을 만든다는 거죠. 불평등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겁니다. 한편으로는 돌봄을 가치 있고 의미 있다고 장려하는 흐름이 있습니다. 이 입장 역시 돌봄의 젠더화를 극복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니까 (여성인) 네가 계속 해라’가 되거든요. 이를테면 ‘아이가 첫 발자국 떼는 걸 보는 게 10억 원보다 의미 있다’고들 하면서요. 의미와 별개로 그 자체에 가치를 두면 여성을 결국 집 안에 가두는 거죠. 이런 긴장과 딜레마를 푸는 게 숙제로 생각됩니다. 돌봄을 특정 성별이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과 의무로 인식하는 것, 그리고 그 책임에 대한 재분배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p.158-159)
우리는 모두 죽음의 이해당사자다. 질병과 나이 듦, 돌봄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내 부모가 아프면 누가 돌볼 것인가, 또 나는 누구의 돌봄을 받을 것인가.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터부시될수록 가족 내 약자, 여성 혹은 불안정한 저임금 노동자에게 전가되고 있을 뿐이었다. (p.179-180)
내가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낼 때 나를 돌봐줄 의료인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너무 감정적이지 않은 사람이면 좋겠다. 말기 돌봄의 경험이 많아서 숙련된 사람이면 좋겠다. 통증이 있을 때 적절하게 진통제를 주고 가족들과 연명계획에 대해 충분한 대화를 해주면 좋겠다. 단순히 ‘노인의학’ 전문가가 아닌 돌봄의 가치를 아는 의료진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의료시스템에서 그런 일을 하는 의료진을 원활히 배출할 수 있을까. 이것은 개인의 도덕성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시스템이 존재해야 하며, 그 시스템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문화의 변화가 필요하다.
문화의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각자 달리던 길 위에 잠시 멈추어 서야 한다. 하루 종일 건강 정보와 명의 프로그램이 나오는 텔레비전을 끄고, 새벽의 깊은 침묵 속에서 우리 안의 거대한 탑을 응시해야 한다. 절대로 무너지지 않고 하늘을 올라 ‘신’이 되게 하는 그 탑. 모든 이들이 우러러보며 올라가길 원하는 그 탑에서, 어느 순간 혼자 내려와 깊은 숲속의 호수를 거닐며 호수에 비친 자기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 오직 스스로만이 오롯이 결정할 수 있는 실존적 결단(決斷)이다. (p.224)
백종원의 장사 이야기 / 백종원 / 서울문화사
간혹 사람들이 나에게 20대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겠느냐고 물어본다. 나는 20대로 돌아간다면 공부, 특히 외국어 공부를 하고 싶다.
젊었을 때만 해도 난 영어가 싫었고 못했다. 그래서 영어 공부 같은 건 절대 필요 없을 거 같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업, 그 가운데서도 나름 자신 있는 식당을 창업했다. 그런데 막상 식당을 운영하다 보면 중국이나 미국으로 나갈 일이 많이 생겼고, 그 사람들의 음식을 먹고 그 나라 사람처럼 되어 보고 싶었다. 또한 먹어 보고 싶은 메뉴를 정확하게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외국어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외국어 공부를 하고 싶다.
내가 평소 생각했던 불만 사항이나 원하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가장 빠른 성공의 지름길이다. 모든 것에 정답은 없다. 전혀 새로운 것을 하면 오히려 남들보다 몇 배는 더 힘들다.
메뉴를 선택하는 일은 사실 쉬운 게 아니다. 그런데 경험이 없는 초보자들은 메뉴를 쉽게 선택한다. 쉽게 선택한 메뉴는 문을 열고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잘못된 거라는 것이 밝혀진다. 문을 열자마자는 사람들이 많이 찾지만, 메뉴가 몇 개 안 되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바로 한계가 나타난다. 그럴 때 단골이나 지인이 옆에서 한마디씩 툭툭 던지는 말은 그대로 고민이 된다. 바지락칼국수 하나로 승부를 보겠다던 첫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국물이 없는 비빔면도 해야 할 거 같고, 밥을 찾는 손님이 있으니 그것도 있어야 할 것 같다.
예를 들어 보자. 우주선이 출발하여 지구궤도를 벗어나려면 여러 개의 연료통이 필요하다. 그래서 궤도를 벗어날 때까지는 추진력을 얻기 위해 여러 개의 연료통을 가지고 가야 하지만, 일단 궤도를 벗어나면 연료통을 하나씩 버리고 가볍게 하고 나서야 목적지를 향해 갈 수 있다. 다 쓴 연료통을 그대로 매달고는 목적지를 향해 갈 수는 없다.
나는 식당을 창업하기 전 준비 기간이 100이라면 반 이상은 안되는 가게에서 일을 하면서 스스로 멘토링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러 곳에서 일을 하다 보면 분명히 내가 생각한 대로 운영을 하는데도 전혀 손님이 없는 경우가 있다. 경험은 돈을 주고도 배울 수 없는 값진 것이다. 하물며 내가 가게를 차려서 이 모든 걸 배운다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준비가 끝난 다음에 나머지는 대박집에서 정말 잘되는 방법을 배워도 된다.
창업을 준비하는 많은 사람들은 머릿속에서 완벽한 구상을 한다. 메뉴에서부터 운영까지 머릿속에는 다 있다. 그렇게만 하면 대박이 나도 크게 날 거라고 믿는다. 반 이상의 준비 기간을 겪다 보면 이 구상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너무나 쉽게 깨닫게 된다. 경험만큼 좋은 준비는 어디에도 없다.
식당을 준비하는 데 있어 제일 중요한 ‘경험’을 했다면, 그다음은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다. 이때는 욕심을 버리는 게 필요하다. 식당을 만들면서 모든 소비층에게 만족을 주려고 하면 안 된다. 즉 내 식당에 모든 사람이 찾기를 바라면 절대 안 된다는 뜻이다.
식당을 창업할 때는 소비층을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아침은 저렴한 가격으로 적게 먹고 싶은 사람, 음식을 빨리 먹고 나가고 싶은 사람, 국물에 밥이나 국수를 말아먹고 싶은 사람 등 소비층을 세분화하는 것이다. 남자 손님, 여자 손님, 어른 손님, 아이 손님 같이 단순한 구분이 아니다.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소비자의 정확한 상황에 따른 요구를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수가 작다면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것을 끊임없이 개발해내야 한다. 작은 평수면 인건비를 줄여야 하니까 혼자 할 수 있는 것, 포장할 수 있는 것, 이런 것들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더 생각해야 할 게 재고관리이다. 이 말은 오늘 열 개가 나가고 내일은 백 개가 나가도 괜찮은 메뉴여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 준비했는데 모두 만들지 못해도,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내일 바로 꺼내서 만들 수 있는 그런 아이템을 선정해야 한다. 보통은 식당 창업을 할 때 맛만을 생각한다. 물론 맛은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바로 재고관리이다. 그래야 처음 가게를 시작할 때 일어나는 심한 굴곡을 슬기롭게 넘겨 살아남을 수 있다.
음식을 만들거나 메뉴를 만들 때 절대로 ‘이 정도는 다 알 거야’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리고 프랜차이즈를 만들 때 내 주변 사람들이 먹는 수준이나 즐기는 수준에 맞춰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음식의 눈높이를 맞추는 것은 쉽지 않다. 일단 나를 버리고 그 메뉴에 맞는 소비자 입장에서 봐야 한다. 소비자의 눈높이에서 벤치마킹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절대 내 주관을 섞어 분석하면 안 된다.
나는 예전에 항상 밥을 사 먹으러 다녔다. 물론 지금은 어디를 가도 식당 주인들이 알아보기 때문에 쉽지 않다. 식당에 가면 그 가게의 장점 한두 개씩은 머리에 담아오곤 했다. 국물을 담았을 때 유난히 양이 많아 보이는 그릇이라던가, 김치를 좀 더 먹음직스럽게 담는 노하우 같은 그 가게의 장점을 기억해 둔다. ‘간판을 저렇게 썼더니 내공 있어 보이네’, ‘메뉴를 저렇게 했더니 괜찮아 보이네’ 하는 것들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렇게 담아온 장점을 그대로 따라한다. 하지만 그렇게 따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나는 절대 그러지 않는다. 담아온 내용을 바탕으로 내 것으로 다시 만든다. 식당에 가서 연구하는 자세로 음식을 먹으면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다. 손님의 마음으로 똑같이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소비자의 마음이나 심리를 제대로 이해해야 된다.
화려한 치장과 돈이 많이 드는 장식품으로 꾸미는 것만이 인테리어가 아니다. 직원들이 일하기 편리하고 점주는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으며, 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동선과 배치를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나는 매장을 열 때마다 동선에 대한 생각을 정말 많이 한다.
주방에서 동선은 가장 중요한 관점이다. 메뉴를 늘려 매출에 도움을 주는 게 중요할지, 아니면 매출이 좀 낮더라도 조리하는 사람의 스트레스를 줄이는 게 맞을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주방이나 홀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은 힘들어서 일을 못하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슬금슬금 올라오는 짜증을 참지 못한다. 이게 중요하다. 한두 번 서빙으로 끝날 일이 서너 번으로 늘어나면 스트레스가 쌓인다.
스트레스가 왜 문제가 될까? 바로 이직률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종업원들의 스트레스를 줄여야 오래 근무하는 식당이 된다. 물론 월급 차이가 많으면 옮기겠지만 사람은 본능적으로 스트레스가 없는 편안한 곳을 원한다. 그래서 매출이 올라도 그에 따른 스트레스를 줄여야 한다.
매상이 10만 원일 때 1이라는 에너지가 필요한데, 100만 원일 때 그대로 10배의 에너지인 10이 필요하다면 소용이 없다. 10만 원을 팔 때와 100만 원을 팔 때 그대로 10배의 에너지가 늘어나는 메뉴가 아니라, 10만 원을 팔 때는 1이었지만 100만 원을 팔 때 6이나 7, 아니 3~4 정도의 에너지면 충분해야 한다. 그러니까 많이 팔면서 에너지는 점점 덜 쓰게 되어야 한다. 즉 몸의 에너지나 동선, 주방 인력이나 홀 인력이 10만 원을 팔 때 1명이 필요한데, 100만 원을 팔 때 10명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실패한 메뉴다.
사장이 되면 가장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역산이다. 이번 달 월세, 인건비 등등 나갈 돈을 매일 계산하면서 이걸 30일로 나누어서 하루 매출을 따진다. 절대 하면 안 되는 게 바로 이런 계산이다. 특히 하루하루 매출을 계산하면 절대 안 된다. 하루 벌어야 하는 돈이 100이라면 어떤 날은 점심때 70이 들어와서 기분이 좋았다가 저녁에 30도 벌지 못하면 얼굴이 찡그려진다. 식당은 매출이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이건 마치 보이지 않는 틀과도 같다. 점심 때 매출이 오르지 않다가도 저녁때 빵 터져서 좋아지기도 하고, 오늘 잘 터지면 내일이나 모레는 제대로 안 터지기도 한다. 매일매일 계산하지 않아야 가게를 분석할 수 있다.
나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요리를 잘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나보다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정말 많다. 그럼에도 내가 대놓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루 손님 수와 상관없이 식재관리를 일정하게 할 수 있는 메뉴를 개발하는 일이다. 또 그 메뉴들은 오늘 주방장이 나오지 않았을 때 아르바이트라 할지라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단체 급식을 만들 때 가장 큰 문제는 모든 사람이 만족하는 음식, 즉 컴플레인이 없는 음식을 만들려고 하는 데 있다. 모든 사람의 컴플레인이 없는 음식은 맛있는 게 아니라 싱거운 음식이다. 밋밋한 음식은 컴플레인이 없다. 왜냐하면 식탁마다 소금도 있고 간장도 있으니 자기가 알아서 넣으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음식을 먹고 나가는 대부분의 사람은 ‘맛있다, 맛없다, 만족한다’라는 말이 없다. 하지만 이 식단을 짠 사람들은 ‘봐, 아무도 컴플레인을 안 하잖아’ 하는 것이다. 음식 만족도가 높다고 볼 수도 있지만 결국 음식 맛이 없다는 얘기와도 같다. 1,000명이 먹으면, 그 1,000명이 모두 똑같은 맛을 느낄 수는 없다는 것이 내 이론이다.
그래서 식단을 과감하게 조정해서 시큼해야 하는 음식은 시게, 매콤해야 하는 음식은 매콤하게, 달아야 하는 음식은 달게 간을 하게 했다. 조리사나 영양사는 불만이 나오니까 안 된다고 반대를 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기 때문에 그냥 밀어붙였다. 간을 맞추자마자 불만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손님 수는 막 늘어났다.
무언가를 찾으려면 내 식당을 두세 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손님이 왜 우리 가게를 찾을까를 고민해 봐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찾는다면 그 이유도 찾으면 된다. 그 이유를 찾는 방법은 간단하다. 내가 손님 입장이 되면 된다. 어떤 집에 갔는데 장어랑 삼계탕을 동시에 하고 있다. 이걸 전문점이라고 생각할까? 그렇다면 장어를 빼고 삼계탕만 팔면 어떻게 될까? 가격은 싸게 갈 것인가, 아니면 비싸게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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