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을 연결한 여성들 / 클레어 L. 에반스 / 해나무
나는 소니 바이오를 들고 대학에 가면서 델과 결별했다. 미래에 기술 박물관을 채우게 될 바이오는 중간에 낀 비극적인 노트북 모델로, 내 허벅지를 데우는 데 주로 쓰인 분리형 밑판이 장착되어 있었다. 미국에서 버려진 거의 모든 가전제품의 운명처럼 내 델은 땅속에 매립되었거나, 컨테이너선에 실려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 케냐로 보내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생닭 손질하듯 전선을 잘라내고 쓸모 있는 금속이나 광물을 발라내 해체했을 것이다. 오늘에서야 나는, 가공되지 않은 유독한 전자폐기물 더미 속에서 내 델을 플라스틱 가루로 갈아버렸을 저임금 노동자의 눈에, 반짝이 껍질을 입은 내 모니터가 어떻게 보였을지 떠올려본다. 컴퓨터는 완벽하게 구식이 된 다음에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다른 누군가의 짐이 된다. 대량 생산된 이 컴퓨터들은, 내 델처럼 누군가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내가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매킨토시처럼 전반적인 개인용 컴퓨터 역사에 관한 문화 기억의 일부이자 아바타를 형성한다. 이것이야말로 중국의 주판부터 성실한 노동자들이 돌보는 방 하나 크기의 캐비닛까지, 브라운관 모니터가 달린 냉장고 크기의 컴퓨터부터 마침내 한 손에 잡히는 크기로 줄어든 실리콘과 플라스틱의 초소형 장치까지, 우리가 기술의 역사를 매번 더 똑똑해진 기계가 등장하는 과정으로 생각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이 과정을 좇아가며 네모 상자를 찬양하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 우리는 상자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한다. "이것을 만든 사람들이 세상을 바꿨다"라고. 하지만 이 책은 그 사람들에 대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여성들에 대한 책이다.
그리고 컴퓨터의 활용에 관한 책이다. 실용적인 측면에서든, 그 잠재력에 관해서든 말이다. (p.13-14)
오늘날의 컴퓨터처럼 과거의 인간 컴퓨터들도 복잡하고 규모가 큰 수학 문제들을 매일 조금씩 해결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혼자 일하지는 않았다. 새로 고용된 컴퓨터는 팀의 일원이 되어 모두 제 몫의 숫자들을 아작아작 씹어 삼키고, 누군가는 추가 수당을 받기 위해 다른 사람의 작업을 수정했을 것이다. 서양 세계 각지에 있는 또 다른 계산실에서 탄도학, 해상 항법, 그리고 순수 수학을 발전시킨 것처럼, 해군천문대 팀은 펜과 종이만으로 하늘을 기록했다. 이 컴퓨터들은 각자의 공을 인정받지는 못했겠지만 문제가 무엇이든 그것을 해결하는 데 한몫했을 것이다.
계산실은 생각하는 공장이었다. 19세기 영국의 수학자 찰스 배비지는 증기를 사용한 수학 계산을 꿈꾸었고, 마침내 기계식 계산의 중요한 초기 발전을 이루었다. 그는 당시 계산실에서 하는 일을 "정신노동"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망치질이 팔로 하는 일인 것처럼 계산은 뇌로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계산은 조직화된 체계에 따른 힘들고 지루한 노동이었다. 구닥다리 퇴물로 취급받기 전까지 원래 인간 컴퓨터들은 미국 육군에서 탄도 궤적을 계산하고, 영국 블레츨리 파크에서 나치의 암호를 해독했으며, 하버드에서 천문학 데이터를 처리하고,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핵분열 수치를 분석했다. 이와 같은 업무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인간 컴퓨터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여성이었다. (p.27)
수학자 찰스 배비지는 조제프 마리 자카르의 초상화를 소장했는데, 그 초상화는 2만 4,000장의 천공카드를 사용해 수천 가닥의 명주실로 짠 것이었다. 그 짜임새가 너무나 정교하고 복잡해서 손님들이 종종 판화로 오인할 정도였다. 자카르의 초상화는 훌륭한 소장품이었지만, 실제로 배비지의 상상력에 불을 지핀 것은 베틀 자체와 천공카드 프로그램이었다. 배비지는 "인간의 상상이 닿는 한, 자카르 직기로 모든 디자인을 엮어낼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라고 선언했다. 그 상상을 패턴으로 번역할 수만 있다면, 어떤 크기로든, 어떤 재료로든, 어느 정도의 정밀도가 요구되든, 어떤 색깔을 조합하든 변함없는 품질로 무한히 복제할 수 있다. 배비지는 천공카드 프로그램의 강력한 힘을 잘 알고 있었다. 수학 공식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수없이 반복해서 돌리더라도 절대 바뀌지 않는다. (p.31)
그러나 에이다는 해석기관의 기술적인 작동 방식만 설명한 게 아니었다. 그녀는 그것이 세상에 가져올 충격을 상상했고, 범용 계산의 함의를 파악해 소프트웨어의 혁신적인 힘을 예측했다. 에이다는 해석기관이 기호를 다룰 수 있게 된다면 숫자와 논리는 물론이고 음악에 이르기까지 기호로 나타낼 수 있는 모든 것이 이 기계 안에서 놀라운 일을 해낼 거라고 믿었다. 에이다는 이것을 직물에 비유해 "자카르 직기가 꽃과 잎을 짜듯이 해석기관은 대수적 패턴을 짠다"라고 썼다. 가능성은 무궁무진했고, 에이다는 그 가능성을 명확히 표현해내려는 마음뿐이었다. 수학적으로 뛰어나고 시적으로 신랄하게. (p.43-44)
에이다의 작품은 비록 한 세기가 지나서야 제대로 인정받긴 했지만, 아버지의 시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 자신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컴퓨터 시대 초기에 영국에서 개최된 한 컴퓨터 심포지엄에서 그녀의 주해를 재출판해 그녀와 배비지의 혜안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게 했는데, 그때까지 에이다에 대한 평가는 지연되었다. 1953년, 주해의 편집자는 "에이다의 발상이 너무나 현대적이어서 새삼 커다란 화제가 되었다"라며 감탄했다. 에이다는 운 좋게도 부유하고 한가한 귀족으로 태어났다. 전문적인 길을 걷지는 못했어도 스스로 깨우칠 수 있었고 자신의 열정을 좇을 개인적인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에이다는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고, 자신이 그러길 바랐던 것도 사실이다. 어긋난 시기에, 어긋난 곳에서, 어긋난 분야에 영향을 미치길 바랐던 많은 뛰어난 여성들은 비슷한 운명을 겪었거나 더 나쁜 운명으로 괴로워했다. (p.47)
노동은 오랫동안 그 자체로 보상이 될 것이다. 에이다가 살던 세기가 끝날 무렵 그녀처럼 기술 면에서 재능 있는 여성들은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양 대륙에서 컴퓨터로 취업할 수 있었지만, 이들의 공식적인 직함에는 그에 합당한 지위나 보상이 따르지 않았다. 예를 들어 1880년대에 미국의 천문학자 에드워드 찰스 피커링은 하버드 대학 연구실에서 천문 데이터를 분석하고 분류하기 위해 하녀였던 윌리어미나 플레밍을 포함해 오로지 여성만 고용했다. 이후 피커링은 천문대에서 일한 여성들을 옹호하고 심지어 천문학회에서 플레밍을 대신해 논문을 발표하기까지 했지만, 애초에 이들을 후원할 목적으로 연구실에 고용한 건 아니었다. 그저 당시에는 여성의 임금이 통상의 절반이었기 때문에 같은 비용으로 두 배의 직원을 고용하고 싶었을 뿐이다. "하버드의 컴퓨터들은 거의 다 여성입니다." 남성 컴퓨터만 고용한 경쟁 천문대 소장이 동료에게 불평하며 말했다. "그 사람들은 거의 무보수로 일해요." (p.48-49)
그레이스는 자신이 작성하는 코드가 점차 까다로워지자 습관적으로 마스터 코드표에 참고 사항, 코드가 짜인 문맥, 사용된 방정식을 주석으로 달아 나중에 동료들이 자신의 작업을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했다. 이 문서화 시스템은 프로그래머들에게 표준 관행이 되었고, 여전히 그러하다. 훌륭한 코드는 언제나 문서로 남는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접근하는 방식을 단순화하고 그 접근성의 폭을 넓히는 이런 노력은 그레이스의 대표적인 특징이었다. 전쟁이 터지기 전 아직 배서 대학의 교수였을 때, 그녀는 학생들에게 수학 문제에 대한 에세이를 쓰게 했다. 수학의 가치를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지 못한다면 수학을 배우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민간인의 세계로 돌아가 최초의 상업용 컴퓨터 회사에 몸담게 되었을 때도 그레이스는 계속해서 같은 관점을 유지했다. 그레이스가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라는 신생 분야에 이바지한 것 가운데 가장 길이 남을 공로는 프로그래밍의 민주화와 관련되어 있다. 사람들이 컴퓨터와 이야기 나누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프로그래밍 발전을 추진했던 것이다. 그녀의 도움으로 사람들은 고급 수학 용어, 아니 심지어 0과 1도 필요 없게 됐다. 오직 단어만 필요할 뿐. (p.71-72)
에니악 6총사는 모두 무어 공과대학의 계산 연구실에서 차출된 전직 인간 컴퓨터였다. 이 연구실은 수학에 재능이 있는 약 100여 명의 여성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레이스는 기초적인 훈련만 받고 곧바로 하버드로 갔지만, 이들은 이미 전시에 지하실에서 사표(firing table)를 손으로 계산하며 몇 년을 보낸 터였다. 사표는 최전방으로 보급되는 모든 신무기에 딸려 갔던 작은 인쇄 책자다. 병사들은 목표 대상을 맞히려면 정확히 어느 각도로 포를 발사해야 하는지를 이 책자를 보고 결정했다. 한 에니악 역사학자가 표현한 대로 "비디오게임 〈앵그리 버드〉의 실사판"이었던 셈이다. 〈앵그리 버드〉의 발사체가 그리는 호와 마찬가지로 공기 저항에 의한 항력이나 날씨와 같은 외부 요인이 탄알 도달 지점에 영향을 미쳤고, 이러한 변수는 고국의 최전방에서 수학 모델을 계산하는 여성 컴퓨터들에 의해 반영되었다. (p.75)
두 베티의 완벽한 프로그램 덕분에 탄도 궤적 시연은 크게 성공했다. 조금은 구식이지만 모클리와 에커트가 만든 현란한 장치도 한몫했다. 그들은 탁구공을 반으로 갈라 에니악의 네온 표시등 위에 덮었다. 시연이 진행되는 동안 스태프들이 방 안의 조명을 낮춰 열정적으로 깜빡거리는 구체의 빛을 통해 에니악의 생각하는 얼굴을 보여주었다. 프로그램은 말 그대로 날아가는 총알보다 빨랐다. 에니악은 불과 20초 만에 궤도를 계산해냈고, 이는 진짜 포탄이 그 궤도를 따라가는 것보다 빠른 속도였다. 두 베티와 케이 맥널티는 서둘러 제표기로 가서 인쇄물을 출력했고 청중들에게 기념품으로 나누어주었다.
시연은 대서특필되었다. 이 여성들은 남성 동료들과 나란히 사진을 찍었다. 그들은 카메라의 플래시 전구를 기억했지만, 정작 신문에 실린 사진에는 정장을 입고 군 장식을 단 채 유명한 기계 옆에서 포즈를 취한 남성들만 보였다. 언론은 에니악에 대해 떠들어대며 미국인의 더 나은 삶을 위해 공개된 전시동원의 결실이라고 발표했다. 컴퓨팅 분야에 생소한 기자들은 에니악을 "거대한 뇌" "생각하는 기계"라고 불렀다. 생각하는 기계로서의 컴퓨터는 이후에 과학소설 작가들의 열렬한 지지로 대중에 깊이 각인되었지만 사실은 왜곡된 해석이다. 에니악은 생각하지 못했다. 1초에 수천 번 곱하고 더하고 나누고 뺄 수는 있을지언정, 추론하지는 못했다. 그것은 거대한 뇌가 아니었다. 만약 그 방에 거대한 뇌가 있다면, 그건 기계를 제작하고 작동시킨 사람들의 것뿐이다.
기계 자체가 영리하다고 주장하는 신문 기사는 에니악 여성들을 자극했다. 그들은 에니악이 그저 강철과 전선으로 가득 찬 상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생각이란 걸 한다는 이 기계가 돌아가기까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작업을 한 것은 우리였다. 진심으로 짜증이 났다." 베티 진이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짜증 유발을 넘어서는 사건이었다. 사실상 그녀들의 존재를 지워버렸던 것이다. 1946년 〈뉴욕 타임스〉에 게재된 에니악 시연 취재 기사는 "에니악에게 … 숙련된 남성도 푸는 데 몇 주나 걸릴 어려운 문제를 주었다. 에니악은 정확히 15초 만에 해냈다"라며 숨 가쁘게 보도했다.
역사학자 제니퍼 S. 라이트가 지적했듯이, 저 보도는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다. 일단, 애초에 "몇 주나 걸릴" 문제를 푼 것은 남성이 아니었다. 무어 공과대학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여성 컴퓨터들이 수행한 작업이었다. 다음으로, 에니악이 "정확히 15초 만에" 해결했다는 주장은, 그것이 무지의 소치였든 고의적인 묵살이었든 이날의 시연이 사람들 앞에서 문제가 컴퓨터에 입력되기 전에 여성들이 몇 주 동안 문제를 프로그래밍하고 공들여 실행한 결과였다는 사실을 깡그리 무시했다. 언론은 저 마법 같은 15초 외에 코딩과 디버깅을 하는 시간, 프로그래머와 유지 보수 작업자와 오퍼레이터의 노동 시간은 고려하지도 않았다. 제니퍼 라이트의 말을 빌리자면, "시연을 준비하기 위해 필요했던 숙련된 노동과 그 일을 해낸 능력 있는 여성의 성별 모두 기자 회견과 후속 취재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p.91-93)
여성과 소프트웨어 사이의 역사적 연관성을 살펴보다 보면 둘 사이에 본질적인 친화력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떨치기가 힘들다. 여성은 프로그래밍의 가변적이고 언어 지향적인 측면의 진가를 알아보지만, 남성은 하드웨어의 실용적이고 직접 만질 수 있는 특성에 끌린다고 말이다. 혹자는 배비지와 러브레이스의 파트너십, 그로부터 한 세대가 지난 뒤 하워드 에이킨과 그레이스 호퍼의 긴장 관계, 또는 에니악에 관여한 남성 하드웨어 기술자와 여성 오퍼레이터 사이의 성별화된 노동 분업으로부터 동일한 가설에 도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모든 경우에,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일이 여성에게 더 적합해서가 아니라 당시에 아직 하드웨어에 종속되어 있던 소프트웨어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분야가 아니었기 때문에 여성이 소프트웨어 쪽의 일을 책임졌던 것이다. 당시의 사람들이 생각했던 소프트웨어는 계산에 필요한 코드를 작성하고 케이블을 연결하는 일종의 하드웨어 조작에 불과했다. 또한 "프로그래머"라는 직종도 전통적으로 여성들이 도맡았던 "오퍼레이터"라는 단순한 사무직에서 분리되기 전이었다. 더 나아가 에니악 같은 컴퓨터를 다루기 위해 여성을 고용했다는 사실은 대학이나 연구 집단에서 응용 수학과 씨름하며 여성이 컴퓨터 그 자체로 존재했던 오랜 역사를 반영한다. 여성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계산을 해왔다. (p.94-95)
어떤 전쟁이든, 특히 이처럼 추악한 전쟁을 일신의 기회로 삼는다는 생각은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군 관련 계산 업무를 맡아 수행하면서 베티 진 제닝스, 베티 스나이더, 그레이스 호퍼, 그리고 이들의 동료들은 가르치고 결혼하고 비서가 되는 것 이상을 인생에서 성취했다. 여성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전문 분야가 열렸다. 이 분야의 중요성은 그들이 사람과 계산 기계가 한 지점에서 합류했을 때 얼마나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는지 보여준 뒤에야 명백해졌다. 그러나 변화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전쟁이 이 여성들에게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결혼생활과 꿈도 희망도 없는 비서 일에서 벗어날 티켓을 쉽게 주었던 것처럼, 평화는 이 모든 것을 도로 빼앗겠다고 위협했다. (p.97-98)
진 세멧의 평가에 따르면, 그레이스는 "기술적인 관점은 물론이고 행정 및 관리 차원에서 이 구상을 홍보하기 위해 누구 못지않게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이유로 그레이스는 코볼의 할머니로 기억된다. 손주를 사랑하는 할머니처럼, 그녀는 코볼을 직접 낳지는 않았으나 관심을 갖고 보살폈다. 그레이스의 외교술은 경쟁자, 프로그래머, 전문 기관, 군, 고객을 모두 하나로 모았다. 이정표가 시장 점유를 위한 경쟁이 아닌 협력을 통해 세워져야 한다는 그녀의 고집은 시대를 30년이나 앞섰다. 다음 세대 프로그래머들은 코볼의 거추장스러운 문법을 비웃었을지 몰라도,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분산형 혁신 모델을 채택할 것이다. 그레이스의 전기 작가가 주목했듯이, 그레이스가 자신이 동원한 프로그래머 자원자들의 네트워크와 협력적 개발을 강조했다는 사실은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운동을 40년이나 앞선 것이다. 더 나아가 파란만장한 하드웨어 변천사 속에서 여전히 변함없는 공용 언어를 만든다는 것은 컴퓨팅 분야의 발전에 필수적이라는 점이 증명될 터였다. 만약 프로그래머가 새 컴퓨터가 출시될 때마다 매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면, 그들은 영원히 따라잡기 놀이만 하다 끝날 것이다. 그러나 자동 프로그래밍―그리고 그것의 밑바탕이 된 효율성, 접근성, 기계로부터의 독립―은 프로그래밍이 기능적 예술의 한 형태로 발전할 가능성을 확실히 다져놓았다. (p.130-131)
당시 60대 초반이었던 그레이스 호퍼는 해군으로 복귀해 해군정보시스템 기획부에서 프로그래밍 언어 팀을 이끌었다. 〈코스모폴리탄〉 기사에 인용된 것처럼, 그레이스는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일을 저녁 만찬 준비와 비교하면서 여성과 프로그래밍에 관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비유를 들었다. "필요할 때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미리 계획하고 모든 일정을 짜두어야 한다." 이후 함대 규모의 핵잠수함 전술 시스템까지 개발하게 될 사람의 지나친 겸손처럼 들리지만, 이것이 그레이스의 방식이었다. 그녀에게는 현실적인 적용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고, 따라서 언제나 컴퓨터를 살아 숨 쉬는 일상생활과 연결했다. 그러나 〈코스모폴리탄〉 기사의 마지막 문장은 남성 프로그래머의 말이다. "'당연히 여자들이 주위에 있으면 좋죠.' 그가 단언했다. '우리보다 예쁘니까요.'" (p.135)
일부 역사학자들은 "소프트웨어 위기"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불균형하게 발전한 탓으로 돌렸다. 더 빠르고 튼튼한 컴퓨터가 프로그래머들이 미처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출시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프로그래머들과―여성이 아니라면, 독보적으로 창의적이고 까다롭고 때때로 오만한 남성들―이들의 예의범절을 따지는 산업 및 정부 담당자들 사이의 성격 차이 때문이라는 학자도 있었다. 그러나 컴퓨터 산업 전반에서 높은 직책에 있는 여성 프로그래머의 감소 추세와 소프트웨어 위기가 일치한다고 보는 세 번째 관점이 있다.
1960년대 후반에 〈코스모폴리탄〉이 사무실에서 전화받는 일을 대신할 꽤 괜찮은 직종으로 프로그래밍을 밀고 있을 때조차 컴퓨팅 분야의 여성들은 남성 동료보다 훨씬 적은 돈을 받았다. 이는 인간 계산실이 돈을 절약하기 위해 여성을 고용했던 19세기부터 이어진 전통으로, 여성 프로그래머들은 같은 일을 하는 남성이 1년에 평균 1만 1,193달러를 받을 때 불과 7,763달러의 급여를 받았다. 이러한 임금 차별은 육아 공간을 제공할 의무에 대한 컴퓨터 회사들의 비협조적 태도와 함께 컴퓨팅 산업에서 여성들을 몰아냈다. 그사이 소프트웨어 위기는 더욱더 심각해졌다.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68년에 국제회의를 소집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 회의에 여성들은 아무도 초대받지 못했다. (p.136-137)
그렇지만 소프트웨어 위기는 예상할 수 있는 결과였다. 프로젝트가 만성적으로 지연되고 예산이 초과된 이유는 그것이 불안정한 기대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성장을 위한 초기 전제 조건을 제대로 다져놓으려면 고객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현실 세계의 복잡한 문제를 실행 가능한 프로그램으로 분석하고, 비전문적인 사용자의 요구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내성적인 완벽주의자들의 세계라는 대중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래밍에는 사회성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이 점을 잘 알았던 그레이스 호퍼는 젊어서 기술과 관련 없는 다양한 분야에서 독학한 것이 그녀를 그토록 유능한 프로그래머로 만든 밑바탕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그녀가 1968년에 한 역사학자에게 말했듯, 소위 "컴퓨터 하는 사람들"을 바깥세상의 고객, 문제, 무궁무진한 활용 방안과 연결하려면 "더 많은 어휘를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
그 어휘들이 본질적으로 여성의 것은 아니지만, 원활한 의사소통 기술은 확실히 여성의 가치로 사회화되었다. 소프트웨어 위기가 진행되던 시기에 "의사소통 및 개인 간의 상호교류라는 전형적인 여성의 능력"에 의존하는 소프트웨어 설계의 여러 측면들은 남성 프로그래머들에 의해 무시되어 "가치가 폄하되고 방치되었을" 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공학 커리큘럼에서도 누락되었다. 그 결과, 컴퓨터 산업은 고통을 겪었고 아마 여전히 그럴 것이다. (p.139-140)
에코는 여전히 BBS다. 웹에서 찾을 수 없다는 뜻이다. 대신 스테이시의 서버에 직접 전화를 걸어 접속할 수 있게 해주는 텔넷이라는 프로토콜을 사용해 접속한다. 그러려면 터미널이라는 명령줄 응용 프로그램을 열어야 하는데, 이는 운영체제로 통하는 일종의 텍스트 기반 창구다. 여기에 다음과 같은 명령어를 입력해 에코를 호출한다.$ ssh claire@echonyc.com
에코의 웰컴 꾸러미에는 유닉스 명령어가 요약된 쪽지가 들어 있는데, 익히는 데 한나절이 걸린다. 나는 이런 것들에 꽤 익숙한 편인데도 에코에 접속하는 동안 영화 속 해킹 장면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마침내 나는 완전히 감을 잡았다.j mov
를 치면 영화 및 텔레비전 게시판에 들어가고,sh 222
를 치면 이곳에 게시된 222번째 글을 읽을 수 있다. 나는 에코에서 아직도 진행 중인 〈스타트렉〉 논쟁 글을 읽었다. 무려 10년짜리 글타래다. 접속자를 알려주는 명령어O
를 누르자 몇 명이 스테이시의 서버 안에서 나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광고도, 클릭을 유도하는 미끼도 없는 곳. 낯선 명령줄 일색인 에코를 쓰다 보니 칼로 데스크톱 메타포를 가르고 환상을 쪼개고 구름을 헤치는 기분이 들었다. 순수한 채널, 소셜 미디어의 요체다.
월드 와이드 웹의 의미론 안에서 자란 우리들에게 에코 같은 시스템은 전혀 직관적이지 않다. 웹은 우리에게 세계의 디지털 정보가 이동하는 방식에 대한 유일한 기준틀이기 때문이다. 마우스로 가리키고 클릭하는 인터페이스가 내 안에 너무 견고하게 배선되어 있어서, 에코의 텍스트 세계에 대해 배우고 난 뒤에도, 심지어 거기에 연결되어 있는 동안에도 내 손가락은 계속해서 트랙패드 위를 더듬는다. 에코는 웹에 있지 않다. (1993년에 스테이시는 도약할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에코의 "완전히 복고적인 소프트웨어"는 놀라울 정도로 생경하다. 링크도, 클릭할 것도, URL도 없는 이곳에는 현대의 정보 전달매체 경험의 근간을 이루는 무언가가 빠져 있다. 너무 익숙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있는 줄도 모르는 것. 우리가 온라인이라는 바다를 헤엄치는 물고기라면, 에코에는 물이 없다. 에코에는 하이퍼텍스트가 없다. (p.263-264)
인터넷은 문화, 코드, 기반시설이 합류하는 곳에 존재한다. 기술사학자 재닛 아바테이가 썼듯이, "통신매체는 주로 기술을 비물질화하여 전자가 아닌 생각을 전달하는 시스템으로서 사용자에게 자신을 선보인다." 통신매체는 사용자와 생산자,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사이에서 양쪽이 서로 효과적으로 침투할 수 있게 투과성 경계를 형성한다. 앞에서 하이퍼텍스트 이야기가 보여준 것처럼, 기술만으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 기술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구현되어야 하고, 그것에 주인 의식을 가지는 사용자 커뮤니티에 의해 설계자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새로운 응용 프로그램으로 재탄생할 수 있어야 한다. 간단히 말해, 성공적인 링크를 만들려면 링크할 가치가 있는 것들이 필요하다.
웹은 그보다 먼저 세상에 나온 더 복잡한 하이퍼텍스트 시스템들의 빛이 바래게 했지만, 웹이 혼자서 세상을 변화시킨 것은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좋아하는―혹은 미워하는―방대한 상호의존적 네트워크의 바탕에는, 영리하고 창의적인 유저들이 전문적인 교육과 기술 없이 한 세대에 걸쳐 이루어낸 연결이 있었다. 용기에 내용물을 채우기 위해 유저들은 컴퓨터와 문화 모두에 정통해야 했고, 짓고 연결하는 방법을 알아야 했다. 또한 정보를 구성하는 것이 사고에 영감을 줄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어야 했다. (p.305-306)
인터벌에서 브렌다는 개인용 컴퓨터가 이끄는 세계에서 성장하는 세대, 즉 자신의 딸들과 같은 또래의 아이들을 연구하는 데 집중했다. 인터벌에서의 첫 4년 동안 브렌다는 작지만 의미 있는 질문을 던졌다. 왜 소녀들은 컴퓨터 게임을 하지 않을까?
많은 아이들이 게임을 통해 처음으로 컴퓨터를 접한다. 그러나 브렌다가 인터벌 리서치에 막 들어갔을 무렵 초등학교 4~6학년 아이들 사이에서 컴퓨터를 주로 사용하는 건 압도적으로 남자아이들이었다. 당시 연구원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여자아이들은 컴퓨터를 문서 편집 같은 과제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반면에, 남자아이들은 "게임하고 프로그래밍하면서 가지고 노는 장난감"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행동은 친숙함을 기르고, 이는 곧 능숙함으로 이어진다. 컴퓨터를 공붓벌레 남학생들이나 좋아하는 것으로 사회화하는 경향은, 오랫동안 천천히 진행된 소프트웨어 공학화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또한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 대중문화에 자리매김했고, 자신감 없는 남자애들이 이상형의 여성을 "프로그래밍"하는 〈위험한 게임〉 〈기숙사 대소동〉 〈신비의 체험〉 같은 영화, 그리고 컴퓨터 및 컴퓨터 게임 마케팅에서 계속해서 재현됐다.
4년간 미국에서 1,000명에 가까운 아이들과 500명의 성인을 설문한 결과, 브렌다는 컴퓨터에 대한 접근 가능 여부나 심지어 미디어에서 컴퓨터가 다뤄지는 모습이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것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학교나 집에 컴퓨터가 있는데도 사용하지 않는 여자아이들이 많았고, 또한 여자아이들이 선천적으로 컴퓨터 게임 능력이 부족하거나 게임에 관심이 없다는 주장을 입증하는 연구는 없었다. 브렌다가 보았을 때 문제의 근원은 소프트웨어였다. 여자아이들이 컴퓨터 게임을 하지 않는 건 남자아이들을 위한 게임밖에 없기 때문이다. (p.394-395)
탁자 위에 다양성이 더 많이 올라갈수록, 화면 속 결과가 더 흥미로워지고 사람이 더 많아지고―스테이시 혼은 냅둬!라고 말하겠지만―더 낫다. 가치 있는 일에 이바지하기 위해 반드시 도달해야만 하는 합당한 유형의 공학자도, 특별한 차원의 사고도 없다. 합당한 교육도, 합당한 경력도 없다. 때로는 심지어 계획도 없다. 인터넷은 사람에 의해,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다. 그리고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한다.
우리는 세계를 새로이 만들 수 있다.
그러려면 첫 번째 단계는 명확하게 보는 것이다. 창고에서 부를 일군 사람들, 천재적인 컴퓨터 괴짜, 브로그래머의 신화를 당연하게 여기는 대신, 기술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점에 실제로 누가 있었는지 보아야 한다. 다음 단계는 선배들의 승리와 생존 전략을 전부 익히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이 도움이 되는 전략을 몇개나마 찾아냈길 바란다. 러브레이스의 인습타파적 사고방식, 그레이스 호퍼의 미래지향적 끈기, 리소스 원 여성들의 동지애, 변화하는 네트워크 세계의 혼돈 속에서 제이크 파인러가 보았던 선명한 비전, 용기에 대한 제이미 레비의 펑크록 정신의 밑그림, 그리고 늘 그랬듯이 인터넷은 거칠고 요상하고 혼란스러운 놀이터라는 비너스 매트릭스의 구체적 자기 확신이 주는 든든한 지원까지.
마지막 단계가 가장 어렵다. 지금 시작하는 것이다. (p.417-418)
우리는 독점 기업 시대에 살고 있다 / 데이비드 데이옌 / 열린책들
『반독점의 역설』에서 보크는 독점에 대항하기 위해 흔히 쓰이는 주요 법률인 셔먼 반독점법(Sherman Antitrust Act)을 재해석했다. 그러면서 셔먼법은 시장 권력에 대항하기 위한 법 집행 구조가 아니라 〈소비자 복지〉를 위한 안전판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보크에게 소비자 복지란 사실상 가격 인하를 의미했다. 따라서 합병의 결과로 만들어지는 사업체가 효율성이 높아져서 가격을 인하하면서도 수익을 벌어들일 수 있다면, 그 합병은 승인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가 보기에 규모가 커지면 대체로 효율이 향상되었다. 이런 주장은 완전히 순환 논법이다. 독점을 우려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훨씬 단순한 이론을 내놓았다. 지배적인 기존 기업이 권력을 남용하면 (여기서 권력 남용이란 가격 인상을 의미한다. 보크의 사고 틀에서는 가격 인상을 넘어선 어떤 남용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자연스럽게 경쟁자들이 생겨나서 앞다퉈 그 피해를 메울 것이다. 책 제목에 붙은 〈역설〉이란 반독점법을 시행하면 소비자들의 형편이 나빠진다는 말이었다. 따라서 기업 집중은 미국에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오히려 집중은 커다란 이득을 주었다. 오늘날 현 상태를 지지하는 이들에게서도 이런 태도가 여전히 눈에 띈다. 월마트에 가면 8달러에 10켤레짜리 양말을 살 수 있다면서 가능한 모든 세계에서 지금이 최상의 세계라고 선언한다. 독점은 좋은 것이고, 경쟁은 루저들이나 하는 짓이다. 로버트 보크만이 아니라 누구나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보크의 협소한 정의에 따르더라도 어떤 주장도 타당하지 않다. 합병을 하면 기업의 생산성이 향상된다는 실질적인 증거는 전혀 없다. 생산성이야말로 효율성에서 〈효율적인〉 부분일 텐데 말이다. 노스이스턴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인 존 쿼카는 2015년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서 승인된 합병을 돌아보면서 산술적 계산을 했다. 그가 연구한 46건의 합병 가운데 38건이 가격 인상으로 귀결되었다. 평균 7.29퍼센트 인상이었다. 「누군가 제 연구가 합병 찬성론의 심장에 말뚝을 박는 행위라고 묘사했지요.」 쿼카에게 들은 말이다. 「제 연구는 시카고학파에서 내세우는 조건대로 대결해서 그 이론이 오류라고 설명합니다.」 2018년 얀 더 로커, 얀 에쿠트, 가브리엘 웅거 등이 발표한 논문에서도 비슷한 추세가 발견되었다. 『반독점의 역설』이 출간되고 불과 2년 뒤인 1980년 무렵부터 이윤폭(markup, 이윤(profit)의 다른 표현)이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p.19-20)
독점은 경제를 약화시킨다. 모든 미국인이 웹 사이트나 앱을 개발하고 있다는 가정과 정반대로 스타트업 창업은 1970년대 말 이래 곤두박질치고 있다. 새로 문을 여는 업체가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신생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의 비중은 반 토막이 났다. 결과적으로 고임금 일자리를 창출하는 핵심 엔진이 힘을 잃었다. 많은 신생 기업은 기껏해야 대기업에 인수되는 꿈을 꿀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짓밟혀서 죽어 나갈 게 빤하기 때문이다. 하이테크 스타트업들이 활동하는 〈교전 지구(kill zone)〉는 언제든지 기술을 도용당하거나 기존 기업들에게 목이 졸릴지 모른다는 공포로 가득하다. 탁월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어느 기업가가 독점 기업들이 쌓아 올린 장벽을 보고 포기하고 만다면, 우리 모두에게 손해이다. 합병 역시 대체로 혁신의 저하로 이어진다. 경쟁이 존재하지도 않는데 독점 기업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자본가는 수익 증대를 좋아하며, 여러 세기 동안 자본가들은 판매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든 투자를 통해 수익 증대를 달성했다. 자본가들이 말하는 대로, 돈을 벌려면 돈을 써야 한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가 않다. 오늘날에는 시장을 깔아뭉개고 앉아서 경쟁 업체를 인수하거나 다른 기업이 소비자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막는다. 그러면 수익이 굴러 들어온다. 소작료를 거둬들이면서 지주 행세를 할 수 있는데 왜 굳이 투자를 하겠는가?
실제로 세전 수익은 역사적 고점을 찍는 반면, 투자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기존 기업들은 굳이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투자를 하지 않으며, 경쟁 후보들은 겁이 나서 투자를 하지 않는다. 세계 곳곳에 막대한 사회적·경제적 문제가 널려 있는데도 투자자들은 실제로 어디에 돈을 넣어야 할지 당황스러워한다. 동맥경화증에 걸린 저투자 경제는 그만큼 빠르게 성장하지 않는다. 실제로 21세기에 경제 성장은 오름세가 멈췄다. 요컨대 독점 경제는 경제 악화를 의미한다. (p.24-25)
시민들이 따라야 하는 규칙이라는 의미에서 어느 나라 경제든 간에 규제가 존재한다. 〈탈규제〉라는 말은 잘못된 표현이다. 탈규제를 한다 함은 그저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표자들로부터 대기업 중역실과 투자자들에게로 권한을 이전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민주당과 공화당을 막론하고 잇따른 정부는 기업 통합을 허용함으로써 규제를 고위 경영진에게 넘겨주고 있다. 이미 명문화된 법률만 가지고도 이 책에서 서술되는 모든 일을 저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법률을 집행하는 무관심한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리고 금권 정치인을 위해, 금권 정치인이 운영하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와 전혀 닮은 구석이 없다. (p.29)
보험업체들은 다른 모든 사업체가 굴러가게 만드는 기반이다. 보험료로 쌓인 돈이 곧바로 보험금으로 청구되어 지급되는 게 아니다. 버핏은 현금으로 쌓인 보험료를 자본 시장에 투자할 수 있다. 이렇게 적립된 보험료를 〈유휴 자금(float)〉이라고 하는데, 버크셔 해서웨이의 유휴 자금은 1970년 3900만 달러에서 오늘날 10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액수로 늘어났다. 세계 최대의 이자 없는 대출금에 해당한다. 버핏은 다른 사람들의 돈으로 제국을 건설하고 있다.
본인이 거듭 공언하는 것처럼, 버핏은 그 돈을 활용해서 자기 성 둘레에 해자를 쌓는다. 독점을 가리키는 귀여운 완곡어법이다. 「우리는 그 해자에 대해, 그리고 아무도 넘어오지 못하게 널찍하게 해자를 관리하는 일에 대해 생각합니다.」 2000년 버크셔 해서웨이 연례 주주총회에서 버핏이 한 말이다. 「우리는 관리자들한테 매년 해자를 더 넓히라고 말합니다.」 거대 기업들은 다른 장점도 있다. 버핏은 독점 기업에 투자하고 사들이는 쪽을 선택한다. 정부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탓에 그런 전략에 전혀 위험성이 없기 때문이다.
버핏은 자본주의를 찬양하길 즐기지만 진심으로 응원하지는 않는다. 살아온 역사 내내 그는 이른바 자본주의의 미덕, 즉 경쟁, 혁신, 능력주의 등을 존중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 그 모든 미덕 대신에 버핏은 시장 지배력을 지닌 기업을 발굴해서 공격적으로 지배력을 행사하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믿는다. (p.35-36)
델타의 최고 경영자가 인정한 것처럼, 항공사들은 대체로 합병 이후에 정보 기술을 업그레이드하지 않고, 대신에 예약과 비행기 출발, 승무원 일정을 담은 기존 시스템을 그냥 합쳐 버린다. 수십 년 전부터 여러 합병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결국 컴퓨터 네트워크마다 1990년대부터 임시 수정된 데이터가 쌓여 있다. 미국 반독점 연구소(American Antitrust Institute)의 다이애나 모스가 작성한 보고서를 보면, 컴퓨터 시스템 다운 현상이 합병 이후에 더욱 빈번함을 알 수 있다. 모스의 말이다. 「거대한 IT 시스템을 보유한 거대 항공사가 제대로 작동할 리 없죠.」 놀랍게도, 이 모든 합병이 〈효율성〉 증대를 근거로 내세웠다. 특히 만성적으로 결함이 있는 컴퓨터 시스템을 통합해서 효율을 높인다고 홍보했다. 물론 합병의 언어에서 〈효율성〉이란 그저 돈을 절감한다는 뜻이다. 승객들에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한 허구한 날 고장 나는 시스템을 고칠 이유는 전혀 없다. (p.56)
2014년, 제트블루는 항공 산업 전반의 추세를 거스르기로 결정했다. 최고 경영자 데이비드 바저는 널찍하고 편안한 좌석과 무료 위탁 수하물, 고속 와이파이 등을 갖춘 고품격 항공사를 추구한다고 선언했다. 창립 때부터 제트블루에서 일한 그는 기업의 〈서비스 지향〉 문화를 설계하는 데 힘을 보탰다. 지역 신문에 밝힌 대로 〈승객에게 바가지를 씌우지 않고도 충분히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증권 애널리스트들은 그런 생각을 혐오했다. 그들은 주주의 수익보다 고객을 〈지나치게 걱정한다〉는 이유로 바저를 호되게 두들겼다. 결국 바저는 쫓겨났다. 바저가 사임하고 두 달 뒤, 제트블루는 다리 뻗는 공간을 다시 줄이고 수하물과 와이파이 요금을 인상했다. 애널리스트들은 〈개선〉의 성과를 잔돈까지 분석했다. 위탁 수하물 요금으로 주가가 26센트 오르고, 와이파이 유료화로 다시 9센트 오른다는 것이었다. 코웬 앤 코의 애널리스트 헬레인 베커는 연구 노트에 급작스러운 요금 인상으로 〈제트블루가 언론에서 평이 나빠질지 몰라도 회사가 거둬들이는 수입은 분명 고객의 반발을 능가할 것〉이라고 썼다. (p.63)
주식 애널리스트들은 항공사들이 〈공급 증가를 억제〉하기를 갈망하는 보고서를 작성한다. 그러면서 항공사들이 직원들을 위해 푼돈을 챙겨 두면 불만을 터뜨린다. 「실망스럽군요. 이번에도 노동자들이 먼저 돈을 받다니요. 주주들한테는 찌꺼기만 주고 말이죠.」 아메리칸 항공이 2017년 소폭의 임금 인상을 발표했을 때 시티은행 애널리스트 케빈 크리시가 투덜대면서 한 말이다. 아메리칸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주요 항공사의 주가도 폭락했다. 항공 산업 지도자 중 한 명이 감히 직원들 편을 들자 투자자들이 산업 전체를 응징한 것이다. (p.66)
육가공 공장에서 일하는 이들의 삶이라고 더 나을 게 없다. 공교롭게도 이런 노동자는 대부분 유색 인종이며 거의 3분의 1이 미국 밖에서 태어난 이주 노동자다. 예리한 칼, 축축해서 미끄러운 바닥, 위험한 장비, 조립 라인의 빠른 속도, 계속 움직여야 하는 압박 등 온갖 끔찍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도 식품 가공 노동자의 평균 연봉은 빈곤선 언저리에 머무른다. 2018년 스미스필드는 한 노동자가 조립 라인에 오줌을 누는 장면이 촬영된 뒤 고기 약 2만 2,680킬로그램을 폐기해야 했다. 생산직 노동자의 65퍼센트가 작업 중에 부상을 입었다고 말하면서도 많은 이들이 상관에게 이야기하는 건 두려워한다. 국외 추방을 당할까 봐 두려운 나머지 스스로 알아서 예속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이런 상황은 점점 악화될 게 분명하다. 2019년 미국 농무부는 조립 라인 속도 제한을 대부분 폐지하는 한편 정부 감독관을 40퍼센트 감축하고 안전 점검 업무를 공장 직원들에게 떠넘겼다. 아프다고 알리거나 휴식 시간을 챙기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라면 돼지가 병들었거나 감염된 걸 발견한다고 생산을 멈출 것 같지는 않다. 이런 변화가 일어나기 전에도 돼지 도살장은 위생의 무덤이었다. 감독관은 숨 돌릴 틈 없이 눈앞을 지나가는 고기 몸통을 보면서 건강한 상태에서 도살된 개체임을 입증하는 데 3.5초가 걸렸다. 그 시간을 줄인다고 당신이 먹는 음식의 상태가 개선되지는 않을 것이다. (p.90-91)
물론 맞춤형 광고가 오싹할 정도로 개인적일 수 있고, 연령과 인종, 성별 차별의 수단, 아이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방법, 수상쩍은 사기, 이용자가 응급실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로펌이 맞춤형 광고를 보낼 때처럼 분명한 사생활 침해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온라인에서 신발을 한 켤레 사고 10분 뒤에 똑같은 신발의 광고를 화면에서 마주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맞춤형 광고는 반응이 느리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지 오래인 사람들에게 어버이날 선물 광고를 보여 주고, 자녀를 잃은 부모에게 양육 물품 광고를 내보낸다. 광고의 바탕이 되는 추론이 항상 제대로 풀리는 것은 아니다. 2018년의 한 연구에서 밝혀진 것처럼, 데이터 중개업체들이 언뜻 쉬워 보이는 맞춤형 광고의 대상 성별을 제대로 맞추는 확률도 42퍼센트에 불과했다. 세계 최대의 광고주인 프록터앤갬블(P&G)이 디지털 광고의 효과가 크지 않다는 판단 아래 2018년 해당 예산을 2억 달러 삭감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P&G는 페이스북 이용자가 한 모바일 광고를 보는 평균 시간이 1.7초에 불과하다고 추산했다.
IT 플랫폼들은 광고주들에게 광고의 도달 범위와 효과에 관해 거짓말을 하다가 여러 번 들통이 났다. 〈그들이 말하는 숫자는 전부 가짜고, 계량 분석도 엉터리고, 성실 의무를 감독해야 하는 기관들은 거짓말쟁이들이 가짜 숫자로 폭리를 취하고 있고 실제 사용자 규모로 볼 때 어떤 모델도 말이 안 된다는 걸 다 안다.〉 2018년 말에 트위터에 관해 애럼 저커샤프가 한 말이다. 그냥 흔한 트위터 이용자의 말이 아니라 『워싱턴 포스트』의 광고 기술 부장이 한 말이니 믿어도 된다. 그리고 그는 가짜 이용자, 가짜 관심도, 가짜 광고 노출 빈도 등등 자기 주장을 뒷받침할 데이터를 갖고 있다. 한 예로, 페이스북은 읽는 데 소요된 시간에서부터 추천 트래픽, 동영상 시청에 이르기까지 수년간 광고주들에게 수용자 측정치를 허위 보고했다. 심지어 페이스북의 계산에서는 동영상 시청 〈시간〉도 연속적일 필요가 없다.
대다수 광고주들은 이런 사항을 면밀히 검토하지 않으며, 구글과 페이스북은 확실히 아무런 단서도 제공하지 않는다. 따라서 광고주들은 이용자 맞춤형 광고를 위해 계속 상당한 액수를 지불한다. 하지만 중간 상인들이 이 돈을 전부 가로채고 있다. 2019년의 한 획기적인 연구는 인터넷 미디어들이 무작위 광고보다 맞춤형 광고를 가능케 해서 겨우 4퍼센트를 더 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광고당 0.00008달러에 해당한다. 시장은 완전히 불투명하고, 연구 보고서 작성자들도 돈이 어디로 가는지 해독하느라고 애를 먹는다. (p.132-133)
기업들은 특허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한 독점 이윤을 벌기 위해 이런 술책을 확고히 틀어쥔다. 이윤 극대화는 가장 기본적인 공학에도 적용된다. 만약 당신이 녹내장이 있다면, 당신 눈에서 계속 뺨으로 액체가 떨어지는 이유는 기업들이 눈물방울을 크게 만들어 사람들 눈에서 저절로 떨어지게 했기 때문이다. 흘러내리는 눈물방울 하나는 소소한 이윤이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다.
하지만 특허 시계가 20년 뒤에 만료되지 않도록 훨씬 더 많은 두뇌와 노력이 투입된다. 「정부가 특허를 보호해 줘서 이 모든 초과 이윤이 가능하면, 특허를 확대하려고 애쓰기 마련입니다.」 정부가 보조금을 주는 독점을 주로 연구하는 경제학자 딘 베이커의 말이다. 에버그리닝(evergreening)―대기업의 소름끼치는 홍보 용어인 〈수명 주기 관리(lifecycle management)〉라고도 알려져 있다―이란 의약품의 효능을 개선하는 게 아니라 화학적 구성을 약간 바꿔서 새로운 특허를 취득하고 특허 보호 기간을 연장하는 것이다. 1968년 국립보건원 특허 프로그램으로 이렇게 특허권을 남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려서 지금까지 널리 활용되고 있다. 제약 회사 셀진은 다발성 골수종 치료제 레블리미드(Revlimid)에 대해 27개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데, 한 특허는 이 약의 코팅에 관한 것이다. 또 다른 기업인 앨러간은 자사가 보유한 특허의 일부를 어느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에게 팔려고도 했다. 특허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주권 면제(sovereign immunity)를 주장하기 위해서였다. 이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특허권을 겹겹이 만들어 놓으면 수십 년 동안 독점권을 연장할 수 있다. 특허는 또한 보건 관련 결정을 움직인다. 2015년 화이자 연구원들은 자사의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제 엔브렐(Enbrel)이 알츠하이머병 치료 효과 가능성이 있다는 결과를 보여 주었지만, 회사는 이 연구를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임상 시험도 거부했다. 엔브렐이 특허권 만료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p.207-208)
익스페리언, 트랜스유니언, 에퀴팩스는 3대 신용 정보 기관으로, 대출 기관이 내리는 전체 결정의 90퍼센트가 세 기관의 책임이다. 무수히 많은 오류를 저지르면서도 전혀 시정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로 데이터를 파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세 독점 기관을 끌어내리지 못했다. 한때 비영리 감독 기관이었던 증권거래소들은 사기업으로 변신해서 시장 데이터에 대한 배타적 지배권을 활용하면서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거래 데이터 피드를 더욱 빠르게 판매하고 있다. 주요 증권 거래소 13곳 가운데 12곳이 단 세 기업의 소유다. 몇몇 기업이 4조 달러에 달하는 지방채 시장의 대부분을 좌지우지한다. 찰스 슈왑이 TD 아메리트레이드를 사들인 뒤로 소매 증권회사 두 곳이 고객 자산의 60퍼센트를 좌지우지한다. 상장 기업 회계를 이중 확인하는 주요 회계법인이 네 곳 있는데, 여러 스캔들이 겹치는 가운데서도 건재하다. KPMG 파트너(임원)들이 임박한 연례 감사에 관한 내부 기밀 정보를 입수한 뒤 사후에 회계 작업을 수정한 거짓말 같은 일이 대표적인 예다. KPMG 직원들은 심지어 내부 윤리·정직성 심사에서도 통과하기 위해 정답을 공유하고 심사 시스템을 조작하는 등 부정을 저질렀다. 윤리 심사에서 부정을 저질렀는데도 KPMG는 여전히 4대 회계법인으로 건재하다.
인덱스 펀드 투자가 늘어나는 추세 덕분에 뱅가드, 블랙록, 스테이트스트리트 같은 자산운용사가 막대한 권력을 누리고 있다. 세 기업이 합쳐서 인덱스 펀드의 81퍼센트를 운용하며, 대규모 상장 기업의 전체 주주 의결에서 절반 가까이를 좌지우지할 게 확실하다. 그리하여 일종의 공동 소유 현상이 심화된다. 애플의 최대 주주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최대 주주와 동일인이 되는 것이다. 하버드 로스쿨의 존 코츠는 이런 현상을 〈12인 문제(Problem of Twelve)〉라고 지칭한다. 가까운 미래에 12명의 개인이 대다수 미국 기업을 소유하고 지배하면서 〈우리 생애에 경제 통제권이 가장 집중된다〉는 것이다. 1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몇몇 연구에 따르면 항공사의 경우에 기관 투자자들이 시장 주도 기업들에게 서로 경쟁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다른 연구들은 공동 소유와 임금 하락, 심지어 경제 성장 둔화와도 상관관계를 발견한다. 물론 투자자들은 주식 배당금을 비롯한 온갖 형태의 돈벌이가 계속 넘쳐나기만 하면 아무 상관이 없다. 하지만 뱅가드 창립자인 고(故) 존 보글은 죽기 전에 자신이 창안한 인덱스 펀드가 〈지나친 성공을 거두어 오히려 독이 되었다〉고 경고했다. (p.251-252)
오늘날 인수합병은 기업이 중역과 주주들에게 남아도는 달러를 살포하는 돈다발 뿌리기 행사와도 같다. 역사적으로 보면, 주식 환매보다 인수합병을 통해 소각되는 주식이 더 많다. 진보주의자들이 주주와 중역들이 기업에서 생산적 가치를 뽑아먹는다고 비난할 때 드는 대표적인 예다. 합병은 더욱 효율적인 가치 추출 방법이며, 최고 경영자 개인에게 천만에서 억 단위 상여금을 안겨 주는 일이 흔하다. 이런 합병을 주선하고 조정하는 월 스트리트 역시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수수료를 확실히 챙기기 위해 사실상 다른 사람들의 돈을 사례금으로 제공한다.
이 모든 요인들이 한데 모이면, 산업 차원에서 독점을 강화하기 위한 추진력이 생겨난다. 물론 인수를 추진하는 주인공이 최고 경영자인지 아니면 주주나 은행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이 구조 내부의 모든 유인이 합병 후보를 찾아내고 성사시키는 쪽으로 향한다는 사실이다. 모든 참가자들에게 보수와 명성, 더 좋은 시절이 온다는 약속이 주어진다. 모두가 한몫을 약속받는다. 그리고 성사되는 거래가 많을수록 더 많은 돈이 흐른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경제 구조 설계는 민주적 기관들에서 은행가와 중역들의 수중으로 이전되고 있다. 두 집단은 기업 통합을 통해 개인적으로 이득을 얻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조화롭게 협력한다.
그 결과로 거대한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 몬산토/바이엘 합병은 모건 스탠리, 골드만삭스, 크레디스위스, HSBC, JP모건 등에 7억 달러의 수수료를 안겨 주었고, 로펌들은 더 많은 수수료를 챙겼다. 하지만 몬산토의 라운드업 제초제 때문에 암에 걸렸다고 주장하는 피해자들이 제기한 수천 건의 소송에 대해 어느 자문역도 관심을 환기시키지 않았다. 여러 차례 평결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수억 달러가 지급되어서 바이엘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중역들이 망가진 기업 이미지를 바로잡느라 애쓰고 있다. 제대로 된 자문 과정을 거쳤더라면 언론에 대대적으로 실릴 법한 악재가 부각됐겠지만, 거래를 성사시키는 게 더 중요해 보였다.
경제의 금융화가 워낙 심하기 때문에 기업 집중이 낳은 또 다른 부산물은 은행들 자체가 소수 독점으로 합병될 때 생기는 현상과 유사점이 있다. 최근 보건의료 부문에서 합병 돌풍이 일면서 해당 부문 전체 투자 적격 등급의 회사채 가운데 절반이 10개 기업의 수중에 몰리고 있다. 보건의료에 하향 추세가 나타나면 이 10개 기업에 위험성이 집중되고 이 기업들의 포트폴리오가 무너질 것이다. 버블은 너무 많은 돈이 너무 적은 자산에 쏠리는 현상으로 정의할 수 있다. 통합된 부채는 이런 불안정성을 우리 경제 시스템에 새겨 넣는다. 독점과 변덕성, 심지어 금융 위기는 서로 잘 맞는다. (p.262-263)
미국의 풍경에 점점이 박혀 있는 텅 빈 쇼핑몰은 황폐화를 재촉할 뿐만 아니라 재산세 세입의 심각한 감소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는 곧 공공 서비스 예산의 제약을 의미한다. 유동 인구가 감소함에 따라 배송 교통은 급증하고 있다. 렌슬러 공과 대학교의 물류·도시화물운송 전문가인 호세 올긴베라스는 2009년만 해도 하루에 인터넷 구매 배송이 25명 당 한 건 이루어졌다고 말해 주었다. 2017년에 이르면 이 수치가 8명당 한 건으로 세 배 늘었고, 뉴욕시에서는 6명당 한 건에 근접했다. 「가정 배송 건수는 이제 상업 시설 배송 건수를 능가합니다.」 올긴베라스의 말이다. 「5,000명이 거주하는 뉴욕시 고층 건물에서는 하루에 750건이 이뤄지는 거죠.」
경비원이 받는 스트레스는 제쳐두고, 애당초 도시 자체가 아마존의 신속 배송을 위해 설계되지 않았다. 1주일치 음식을 사러 슈퍼마켓에 한번 가는 것과 물류 창고에서 가정까지 5~10번 가는 것의 차이를 생각해 보라. 엄청난 교통 혼잡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도로에 나오는 배송 차량이 늘어날 때마다 대기 중에 더 많은 탄소를 뿜어낸다. 아마존이 벌이는 사업 전체에서 되풀이되는 비극이다. 2014년 아마존은 에너지를 집어삼키는 데이터 센터에서 재생 가능한 자원만을 사용하겠다고 공언했지만, 2년 뒤 그 계획을 조용히 철회한 한편 BP, 쉘, 핼리버튼 등에 기술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또한 전하는 바로 아마존은 많은 반품을 폐기한다고 한다. 생산 자원을 낭비하는 것이다. (p.325-326)
아마존 사람한테 물어보면, 이렇게 밀어붙이는 행태가 모두 고객을 위한 것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고객에게 가장 편리하고 값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마존의 지배는 실제 서비스에 관한 냉혹한 사실을 감춘다. 아마존 서비스는 서서히 나빠지는 중이다. 심지어 배송일 준수를 보장하는 아마존 프라임에서도 많은 상품이 제때 배송되지 않는다. 실제 인간과 통화하거나 대화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아마존 사이트 자체에서 고객 서비스에 연결하는 법에 관한 책을 팔 정도다. 온라인 배송을 신청한 홀푸드 고객들은 아무 예고도 없이 주문 물품이 이상한 제품으로 대체 배송되는 경험을 한다. 2일 배송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데도 아마존은 당일 배송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배송 시스템에 더욱 과부하가 걸릴 게 빤하다. 외부 판매자와 배송 기사, 항공기 조종사 등 수백만 명을 관리하는 일은 어떤 사업에서도 벅찬 일일 수 있다. 연방대법원 판사로 반독점 영웅이었던 루이스 브랜다이스가 한때 〈규모의 저주〉라는 말을 만들어 낸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p.353-354)
실제 운영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모펀드 사업도 달라진 게 없다. 차입한 돈으로 기업을 사서 채무를 잔뜩 진 뒤 정리해고와 청산을 통해 비용 삭감을 강요하고, 운영 수수료와 자산 급매 처분 수익금으로 현금을 챙긴다. 사모펀드 관리자들은 자신들이 악전고투하는 회사를 도와 경영 문제를 바로잡아 성장하게 해 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비용 삭감은 보통 노동자를 희생시키면서 이루어진다. 사모펀드는 노동에서 자본으로 부를 직접 이전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몇 년 뒤, 포트폴리오 회사들은 본사에서 분리되거나 파산에 처해진다. 어느 쪽이든 승자는 사모펀드다. 투자자들이 실제로 받는 수익은 보통 수준인데, 관리자들은 돈을 가진 누구도 그 사실을 알아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세계 흐름을 주도하는 KKR, 블랙스톤, 아폴로, 칼라일이 이끄는 가운데 2019년 중순에 이르러 사모펀드가 끌어 모은 펀드는 2조 5000억 달러라는 기록적인 액수로 급증했다. 2012년의 두 배에 달했다. 사용되지 않은 돈은 드라이 파우더(실탄)라고 불린다. 연기금과 각국의 투자 자원에서 끌어온 돈이다. 다시 말해, 노동자들은 기업 인수라는 현대판 노다지의 자금 조성에 기여하고 있다. 이런 엄청난 액수에도 불구하고, 사모펀드의 기업 인수는 여전히 채무를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 세금상으로 이점이 있고(이자는 대개 공제된다) 수익을 짜내는 데서 차입하는 게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p.410-411)
대개 미국에서 가장 지저분한 산업은 사모펀드 기업이 키를 잡고 있다. 사모펀드는 최대 규모의 소액 대부업체 다수를 소유하고 있다. 소액 대부업체는 생활비가 필요한 취약한 대출 이용자를 먹잇감으로 삼아 부채의 악순환에 빠뜨린다. 60세 이상의 미국인을 대상으로 돈세탁과 신용 사기를 사주한 혐의로 끊임없이 거론되는 머니그램 인터내셔널은 사모펀드의 소유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티머시 가이스너가 운영하는 사모펀드 기업인 워버그 핑거스는 매리너 파이낸스라는 회사를 통해 수상쩍은 대출 운용을 지휘했다. 매리너 파이낸스는 사람들에게 수표를 발송해서 이율이 높은 대출로 옭아맸다.
사모펀드 기업 DC 캐피탈 파트너스는 플로리다주 홈스테드에서 한때 이주민 아동을 수용하는 유일한 영리형 구금 시설이었던 곳을 소유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에서 현금 보석금 산업을 보유한 단 두 나라 가운데 하나로서(다른 하나는 필리핀이다), 감옥행을 피하려는 피의자들에게 보석 보증서 대행기관에 높은 수수료를 내도록 강요한다. 사모펀드는 이 시장에도 지분을 갖고 있다. 미국 최대의 보석 대행기관과 전담 보험회사를 소유한 인데버 캐피탈은 이 사업을 금지하는 캘리포니아 주법을 무효화하는 주민투표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기금을 모으기도 했다. 같은 회사인 인데버는 영리형 대학과 대부업체의 네트워크를 운영하면서 학위를 남발하는 한편 대졸자들에게 채무를 떠안겼다. 사모펀드는 약탈적인 영리형 대학에 많은 지분이 있다. (p.412-413)
마지막으로, 사법부는 수십 년 동안 일관된 의견 형성 과정을 거치면서 합병에 찬성하는 사고를 주입받고 있다. 반독점 연구자인 닐 고서치 같은 보수 성향 대법관들은 걸핏하면 대기업 편을 들고, 진보 성향의 스티븐 브레이어 대법관은 테드 케네디를 설득해서 항공산업 규제를 완화하게 만든 인물이었다. 1976년부터 1999년까지 헤리티지 재단이 연 세미나 프로그램인 〈연방 판사를 위한 경제학 연구회〉는 전성기에 연방 판사의 40퍼센트 이상이 수강했다. 최근의 한 연구 논문은 이 프로그램이 반규제, 친기업적 판결을 낳는 데 성공했음을 보여 주었다.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도 세미나에 참석하고 호평을 남겼다. 비슷한 집단이 운영하는, 법학 교수들을 위한 별도의 연속 세미나에서 엘리자베스 워런은 남편 브루스 맨을 만났다.
기록적으로 활발한 기업 합병의 시대에 이런 식으로 반독점 기관의 예산이 점점 줄어든다. 이런 식으로 법무부와 연방거래위원회는 반독점법을 이용해서 오르간 연주자, 스케이팅 코치, 물리치료사, 그밖에 노동자 연합체가 공모해서 소득을 늘린다고 추적·단속하는 한편, 미국에서 가장 거대한 독점 기업들에는 무임승차권을 나눠준다. 이런 식으로 독점 규제 기관들은 공식 법정 의견서에서 우버 기사가 아니라 우버를, 애플 고객이 아니라 애플을 지지한다. 이런 식으로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마존과 구글을 물어뜯는 한편, 독점 규제 기관들은 거대 정보 기술 기업들을 보고 침을 질질 흘리고 그들을 위해 항소 이유서를 써준다. 이런 식으로 2012년과 2013년 몇 달간 연방거래위원회는 직원들의 권고를 무시한 채 독점력을 활용한 혐의로 구글을 기소하기를 거부했으며, 또한 고위 중역이 페이스북이 경쟁자를 제거하려고 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문서가 버젓이 있는데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합병을 봉쇄하기를 거부했다.
독점 규제 기구―정부, 학계, 주류 집단 내의―는 자기 주변에 요새를 쌓아서 은둔 세계를 만들었다. 이 세계에서는 경제 자체에 아무 문제가 없고, 불평등이나 혁신의 저해, 서비스 품질 저하나 정치권력의 집중이 만연하지도 않으며, 그런 좋지 않은 결과를 부추겼을 법한 독점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p.487-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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