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사회 / 에릭 클라이넨버그 / 글항아리
2005년 로테르담시는 제2회 국제건축비엔날레를 개최했다. 주제는 '홍수'였다. 전 세계에서 온 설계사들은 미래에 도시가 어떻게 홍수에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기획을 제안했다. 그리고 전시가 끝나자 몰레나르의 팀은 실제로 가치 있는 기획들을 구현하기 시작했다. 로테르담시는 이제 수용의 건축을 실험하고 있다. 도심지에서 테니스장 4배 크기의 전시 공간을 갖춘 세 개의 은빛 반구로 만들어진 물에 뜨는 가건물, 평소엔 놀이터로 사용되지만 엄청난 비가 내리면 물을 저장하는 시설로 변환되는 워터 플라자, 운하를 따라서 지어진 물이 넘칠 수 있는 테라스와 조각공원, 건물 정면과 차고 그리고 1층이 물에 견디도록 지어진 건축 등이 그것이다.
여기서 엔지니어와 도시계획가들이 한 도시 혹은 국가의 주요 기반 시설 투자 여부나 투자 방법에 대해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할 만하다. 그런 결정은 국가가 내린다. 그리고 특정 정치 형태 안에서 시민의 가치와 이익, 시민단체, 기업의 로비 등과 기후과학의 지위까지 다양한 사회적 요인이 지구온난화 시대에 맞게 에너지와 교통망을 개선하겠다는 관료들의 정치적 의지를 형성한다. 미국에서는 세금을 낮추라는 요구가 팽배한 데다 해외의 전쟁과 국내의 사법정의 시스템에 대한 막대한 지출이 더해져 기반시설을 현대화하는 데 필요한 자원이 부족하다. 게다가 기후과학의 의혹을 불식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치밀하게 조직한 선전 캠페인은 재난과 가뭄으로 큰 피해를 입은 지역에서마저 선출직 지도자들로 하여금 지구온난화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도록 만들었다. 국내에서나 국제관계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미국인의 반응은 잘해야 자기만족이고 보통은 의사 방해로 나타났다.
"탄탄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일은 공공의 관심사입니다. 그리고 이쯤이면 업계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두는 방식으로는 그럴 수 없다는 게 명백하죠." 전력이나 교통 같은 통신 분야에 기업가들을 규제 없이 자유롭게 방치하는 것은 위협을 해결하는 우리 능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정부건 시민단체건 도시를 보호하는 가장 좋은 기술은 단지 재난 피해를 줄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평상시에도 건강과 번영을 촉진하는 네트워크를 강화한다. 이를 9·11 이후 국가 보안에 어떤 식으로 접근하는지와 비교해보라. 검문소, 차량진입 방지용 말뚝, 감시 카메라, 출입금지 구역 등. 이러한 장치들이 미국 도시에 대한 공격을 예방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사회학자 하비 몰로치가 『안보에 반대한다(Against Security)』에서 주장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잘 흘러가던 사회에 정부는 "거의 아무런 가치"도 제공하지 않으면서 측정하기 애매한 비용을 부담하게 했고, 결과적으로 사회를 지루하고 비효율적으로 만든 것만은 분명하다.
마침내 시카고시는 7월 14일에서 20일 사이에 시카고 주민 485명이 고온과 직접 관련된 원인으로 사망했으며, 결과적으로 7월 총 사망자 수는 521명이라고 발표했다. (이 수치는 부검과 경찰 조사에 의해 사망 원인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경우만을 계산한 것이다.) 7월 평균보다 1000명이나 많은 사람이 열사병, 탈수증, 탈진, 신부전, 전해질 불균형 등으로 지역 병원에 입원했다. 열사병에 걸린 사람들은 독립적인 기능의 손실이나 복합장기부전 등과 같은 영구적인 손상을 입었다. 그밖에 고온으로 인한 다른 질병에 걸린 수천 명의 사람이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열기가 사그라들자 역학자들은 검시소를 거치지 않은 사망자를 고려하여 7월 사망자 수의 패턴에 대한 통계 자료를 수집했다. 역학자들은 부검에만 기반한 사망자 수가 피해 규모를 축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7월 14일에서 20일 사이에 평소보다 739명이 더 사망했다. 실제로 공중보건학자들은 시카고에서 고온으로 사망한 사람의 수가 미국에서 고온으로 인해 발생한 그 어떤 재난의 사망자 수보다 많다고 인정했다.
이 책은 1995년 시카고 폭염에 대한 사회적 부검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의학적인 부검이 몸을 열어 사망의 직접적인 병리학적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라면, 이 책에서는 도시의 사회적 기관(器官)들을 조사하여 그해 7월 수많은 시카고 주민을 죽음에 이르게 한 조건을 파악하려고 한다. 사회적인 부검을 실시한다는 개념이 생소하게 들린다면, 그것은 현대 정치와 의료 제도가 삶과 죽음을 공식적으로 설명·정의·분류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혹은 외면하는 방식을 구조화하는 용어 및 범주를 확립하는 데 있어 독점적인 역할을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스통 바슐라르의 말처럼 "중요하지 않은 현상이 자주 일어나는 이유는 그것을 고려하지 않고 분석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폭염을 이해하는 데 있어 놓치고 있는 차원이 있다면 이처럼 진단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시카고에서 일어났던 일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며, 도시 괴담의 하나로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 1995년의 폭염은 일종의 사회극이며, 늘 존재했지만 알아채기 어려웠던 일련의 사회적 조건을 드러낸 사건이다. 폭염에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사람들과 장소, 단체 등(사망자들의 집, 사망자가 밀집되어 있거나 사망자가 극히 적었던 지역과 건물, 응급 대응 시스템을 만들었던 도시 당국, 사망 원인을 찾으려 했던 검시소와 과학연구센터, 이 사건이 의미하는 바를 상징적으로 재구성하려 했던 기자와 편집인이 있던 뉴스 편집실 등)을 조사하면서 위기에 처한 사회질서가 드러났다. 이 연구는 폭염으로 인한 죽음이 폴 파머가 말하는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 책임져야 하는) '사회적 단층의 생물학적 반영'을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우리 모두가 1995년 여름 그토록 많은 시카고 주민을 사망하게 한 사회적 조건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그러한 죽음이 간과되고 잊힐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만들고 있다. 우리는 힘을 합쳐 그런 조건을 되돌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관습적으로 당연시하고 숨기려 했던 사회적 기반에 생긴 균열을 인지하고 면밀히 조사할 때에만 가능하다.
사람들은 허리케인이나 지진, 토네이도, 홍수처럼 화면을 통해 장대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재난에 큰 관심을 기울인다. 하지만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다른 극단적인 기상이변의 사망자 수를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많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 폭염이 대중적인 관심을 거의 받지 못하는 이유는 막대한 재산 피해를 내지 않거나 다른 기상 재난처럼 엄청난 볼거리를 제공하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폭염의 희생자들이 노인, 빈곤층, 고립된 이 등 대개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말 없고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의 목숨을 소리 없이 앗아가는 폭염을 치명적으로 만드는 사회적 조건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기자와 뉴스 독자(재난에 관한 사회과학 전문가 등을 포함하여)의 인상에 남지 않은 것이다.
도너휴는 과거에 발생했던 폭염 사태에 대한 지식 덕분에 폭염 관련 사망자를 올바르게 진단하는 데 필수적인 두 가지 절차를 알 수 있었다. 첫째는 폭염으로 사망했는지를 판단하고, 조사관과 검시관을 교육할 수 있도록 기준을 명확히 세우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기준을 정하기가 쉽지 않았던 이유는 1995년에 연방 정부나 검시관 협회에 폭염 관련 사망에 대한 일관된 정의가 없어 결과적으로 미국 전역의 도시에서 일관되지 못한 진단을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너휴는 최신 과학 표준에 따라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준을 확립했고, 그중 한 가지를 충족하면 폭염에 의한 사망으로 분류했다. "⒜ 사망 당시 혹은 사망 직후의 체온이 섭씨 41도 이상, ⒝ 실질적인 환경 및 상황 증거(예를 들어 에어컨이 없고, 모든 창문이 닫혀 있고, 실내 온도가 높은 방에서 발견된 사망자), ⒞ 폭염 기간 전에는 살아 있다가 다른 원인 없이 부패된 채로 발견된 사망자."
폭염을 연구하면서 읽어본 일련의 책과 학술지 등에서는 혼자 살기의 어려움, 특히 나이 들어 혼자 살기의 어려움을 대단찮은 것으로 간주하며, 삶을 풍성하게 가꾸면서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동체를 구축하여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칭송했다. 로버트 콜스, 알리 혹실드, 바버라 마이어호프 같은 유명 작가들은 가족이나 오랜 친구와 떨어져 지내면서도 잘 살 수 있는 능력에 관하여 많은 이의 공감을 사는 멋진 책들을 출판했다. 1990년대에 혼자서 볼링을 하는 미국인이 증가하는 현상을 개탄하며 대중의 관심을 받았던 로버트 퍼트넘조차 은퇴한 노인은 다른 집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집단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독거노인이 잘 사는 것을 칭송했던 작가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의 연구 대상이었던 노인들이 일반적인 경우인지 아니면 특별한 경우인지를 확신하지 못했다. 사실 혹실드는 연구 대상인 노인들이 흥미로웠던 까닭을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이 대부분의 노인을 대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다른 작가들은 질문을 회피했다. 그들의 책은 잘 나이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을 성공적으로 설명한 훌륭한 저서이지만, 그런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들의 운명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는다. 집 안에 고립되어 사는 노인이 이러한 인기 저서에 나오는 노인들보다 일반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들 책에 나오지 않는 고립된 노인들의 삶은 유산관리소의 기록이 채워줄 것이다.
폭염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폭염 발생 한 주 전 시카고에서 살인 사건이 급증하여 사건이 발생한 장소 부근에 사는 사람들에게 경계심을 키웠다는 점이다. 1995년 7월 7일 금요일에서 7월 13일 목요일 사이에 24건의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시카고 트리뷴』은 "온도계의 눈금처럼 살인 사건이 늘고 있다"는 제목으로 매년 여름 폭력 사건이 늘고 있으며, 대부분의 살인 사건은 "치명적인 폭력범죄가 다른 지역보다 훨씬 빈번한 사우스사이드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다음 주에는 같은 지역에서 폭염 관련 사망자가 이례적으로 많이 발생했다. 비록 노인들이 총에 맞을 가능성은 낮았지만, 우범지역에 살면서 폭염 기간 중 집을 떠나길 거부하는 노인들이 거리에서 맞닥뜨릴 위험을 우려하는 것은 충분히 그럴 만했다.
최근 몇 년간 여러 연구에 따르면 위험하고 퇴화된 도시지역에 사는 노인들이 안전한 지역에 사는 노인들에 비해 고립되거나 범죄를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환경적으로 피폐하고 정치적으로 복지가 부족한 지역에 집중적으로 범죄에 대한 공포와 고립이 나타나는 구조적인 이유는 상업지구가 부족하고 사람들을 거리에 나오게 할 만한 복지 서비스가 없거나, 계단에 문제가 있고 인도가 부서지고 조명 시설이 형편없는 등 물리적으로 이동하기 어려운 점이 있거나, 무질서의 징후 속에서 살아가며 심리적 영향을 받는다거나, 정부 기관이 지역기반시설에 대해 잘 모르거나, 범죄가 많이 발생하면서 신뢰가 줄어드는 상호 관계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사회노년학자 에스티나 톰프슨과 닐 크라우스에 따르면, 극단적인 경우 열악한 공공시설 때문에 "노인들 사이에 '회피 행위'가 너무 많이 나타나 다수의 노인은 사실상 '스스로 가택연금' 상태로 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범죄에 대한 공포 때문에 바깥활동에 약간의 제한만 가하더라도, 다른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며 관계를 맺을 기회는 적어진다. 그렇게 얼굴을 마주하며 관계를 맺는 행위는 복지 지원을 받을 때도 중요하다."
유진 리처즈는 70세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으로 1950년대 말부터 노스론데일에서 살았다. 그는 이곳에 살기 시작한 무렵을 회상했다. "날이 더우면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가필드 공원에 가서 잠을 잤지요. 담요와 베개를 들고 나와 벤치나 잔디밭에서 잔 겁니다. 개는 그냥 마당에다 두고 왔어요. 그게 답입니다." 나는 유진에게 1995년 폭염 때는 사람들이 공원으로 가지 않았는지 물었다. 그는 나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며 웃었다. "여기서요? 요즘 같은 때에? 제정신이오? 그런 일은 절대 없죠. 아무도 밖에서 자지 않아요. 나는 밤에는 밖에 나가지도 않습니다. 너무 위험해요. 안이하게 살면 안 됩니다. 새벽 두세 시에 밖에 있는 사람은 무슨 짓을 할지 몰라요. 조심해야 해요."
이렇게 조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폭염 기간 중 별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러 자신을 찾아온 자원봉사자와 시 공무원에게 다수의 노인이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시장이 주도한 기상이변대책위원회에서는 그러한 행동이 자신이 혼자 살 능력이 없다는 것을 남에게 보이기 싫어하거나 자신의 약한 모습을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노인에게서 나타난다며 불만을 표했지만, 이런 행동에는 더 깊이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도시 전역에 사는 노인들은 낯선 사람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것이 도시에서 혼자 살아가기 위한 생존 전략의 일부가 되었다고 말한다. "누군가 문 앞에 와 있어도 열어주지 않아요." 지역 교회에서 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한 70대 여성이 말했다. "문을 사이에 두고 말을 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잖아요."
남성이 친척이나 친구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여성보다 어려움을 겪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폭염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당시 시카고 주민 세대의 전통적인 사회 관습을 따르자면, 남성 사이에 친밀한 유대관계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성별에 따라 교육이나 양육 패턴이 달라 여자아이들에게는 사회활동을 보조하고 집안을 돌보는 능력을 개발하게 한 반면, 남자아이들은 사회적인 노력이 덜 필요한 분야에 에너지를 쏟도록 훈련받는다. 그리고 노동의 성적 구분 탓에 여성은 대부분의 가사를 책임지고 사교적인 역할을 하는 반면, 남성은 일터에서 중요한 관계를 키워갔다. 남성이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 늘 해오던 가장의 역할을 잃을 뿐 아니라, 하던 일을 기반으로 다져진 인맥에서 떨어져 나가고 배우자의 사회적 친분관계와 지원에 의지하게 된다. 부인이 사망했거나 이혼한 남성은 혼자 남겨진 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이 나빠지지만, 이혼했거나 남편이 사망한 여성은 친분관계에서 도움을 받곤 하며, 사회적 신분이 달라져 건강이 나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자식을 둔 남성은 가족의 도움 없이 살기보다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족과 다시 합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직접 아이를 돌보거나 나이 들수록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하는 여성과는 달리, 혼자 사는 남성은 다른 사람과 함께 살지 못하게 되거나 자녀에게 의존했다. 남성이 비공식적 관계의 사람들과 사이가 멀어지면, 지역 정부나 사회복지 단체가 후원하는 공식 프로그램에서도 배제되곤 한다. 그들은 복지국가의 안전망보다는 형사사법 체계의 수사망에서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
리틀빌리지의 활기찬 거리는 노인과 젊은 주민을 밖으로 끌어냈다. 이곳 거리에서는 서로 격의 없이 교류하며 한가로이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모습이 사회적 화합의 전형적인 형태다. 내가 인터뷰했던 많은 노인은 폭염이 오자 평소와 마찬가지로 26번가에 있는 냉방시설이 된 상점에 가서 더위를 피했다. 리틀빌리지의 노인들은 노스론데일 주민들처럼 인도나 거리에 대한 공포심이 별로 없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밖으로 나가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에 가려고 했다. 다양한 상업시설과 풍부한 거리 문화는 지역 전반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현지조사를 할 때면 거리에는 늘 식료품과 물건을 담은 작은 봉투로 가득한 손수레를 밀고 가는 노인과 사람들이 있었다. 제럴드 서틀스의 주장처럼 "거리의 생활은 지역의 소통을 이어주는 중요한 관계이며, 결과적으로 주민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리틀빌리지의 인도는 사회적 접촉과 통제를 위한 주요 통로다. 이처럼 안전한 공공장소 덕분에 (백인 노인들을 포함한) 리틀빌리지 주민들은 이웃과 관계를 맺고 공동체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안전한 인도, 지역 소매상, 식료품점, 활기 넘치는 공공활동은 사회적 통합을 촉진하는 도구로서의 역할 외에도 지역 주민들(특히 노인)에게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건강과 복지 혜택을 제공한다. 지역 의사인 존 허먼은 이렇게 설명했다. "이곳 사람들은 많이 걷습니다. 건강에 좋은 일이죠. 햇빛을 많이 쬐어서 비타민 D도 많이 흡수해 골다공증도 적게 나타납니다. 기분도 좋아지고요." 노스론데일의 의료인들은 노인들에게 운동을 시키기가 어려웠다. 노인들이 집 밖에 나서길 두려워하기 때문이었다. 반면 리틀빌리지에서는 내가 인터뷰했던 대다수의 노인에게 걷기는 일상이었고, 날씨가 따뜻해지는 계절에는 특히 그러했다. 많은 주민이 교외나 리틀빌리지에 차를 몰고 가서 쇼핑을 하는 노스론데일과는 달리, 리틀빌리지의 노인들은 집 밖에 나갈 이유가 충분했다. 리틀빌리지 상공회의소가 발간한 기업 명부에 따르면, 1998년 이 지역에는 다양한 규모의 식료품점 71곳, 제과점 15곳, 음식점 96곳, 할인점 30곳, 백화점 2곳이 있었다. 보건 의료 서비스업 또한 활기차고 현금 중심의 시장이 형성되어 있을 뿐 아니라 대여섯 곳의 비영리 단체가 수십 곳의 의료소 및 대안적인 의료기기 업체와 함께 건강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주민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상업활동은 특히 노인들에게 중요하다. 물건이나 서비스가 필요할 때 밖에 나갈 수 있을 뿐 아니라, 외롭고 심심할 때 외출할 구실을 주기 때문이다.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이자 구급대원인 로버트 라이카는 소방총감의 말을 일축했다. "그들은 '우리 잘못'이라고 말하지 않고, 거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잘못이라며 비난했습니다. 지휘 단계에 총체적인 소통의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구급대원들의 주장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시카고 관료와 소방부 임원들이 구급차 지원과 의료 지원 인력 요청을 거부한 이유가 "새로운" 시 정부가 어떤 긴급한 요청이든 거부할 수 있도록 관리자들 사이에 긴축재정이 최선이라는 의식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스케이츠는 시의 관료들이 "사람의 생명이 걸려 있는 일에도 돈을 아끼려" 한다며 맹비난하면서, "시민들의 안전에 무관심"했다는 혐의로 소방부 관리자들을 고발했다. 스케이츠와 스태튼 등 구급대원들은 시에서 응급 지원 시스템을 개선하거나 확장하지 않고, 비번인 대원들을 소환하지 않으려 한 점, 폭염 기간 중 구급차를 추가로 투입하지 않으려 한 점 등은 생명을 지키는 일보다 비용을 아끼는 것을 우선시하는 시스템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불만을 표했다. "우리는 돈을 쓰지 않을 것이고, 최소한의 인력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올리길 바란다는 건데, 공공의 안전을 다루는 입장에서는 정말 웃긴 소리입니다. 적절한 인력을 투입하지 않으면 건물을 잃고 말 테니까요. 소방부에는 예산의 최소 5퍼센트를 절약해야 좋은 관리자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 말을 지켜 예산을 절약해 되돌려주면 시장이 머리를 쓰다듬어주겠죠." 스케이츠와 그의 동료들은 그러한 관행이 자신이 속한 기관의 사명을 더럽히고 있다고 확신했다. "우리 일은 환자를 돌보는 거죠. 우리가 소방부입니다."
폭염 위기에 대한 시카고시의 대응이 이례적으로 문제가 많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역 정부가 평소에 빈곤과 취약성에 대해 어떤 식으로 접근하는지 알게 된다면 폭염 재난 때 일어났던 일은 그리 놀랍지도 않을 것이다. 시의 대응은 도시 문제를 관리하는 지역 정부의 방법론에 대한 근본적인 특성을 보여준다. 이들 가운데 몇몇은 민간 부문에서 개발한 기술과 시스템을 최근 공공 기관에 적용한 새로운 시 정부의 시대에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것이다. 재화와 서비스가 경쟁 시장에 있는 상황이므로 기업가적인 정부는 고위 관료, 관리자, 직원, 하청 업체, 심지어 서비스를 받는 시민까지 시스템에 속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1990년대 중반의 시카고시 정부는 기업가적인 정부의 전형적인 사례다. 기업가적인 정부의 특징은 ⑴ 품질 관리와 효율성을 중시한다. 그러기 위해서 ⑵ 민간 단체에 유례없이 많은 부분의 서비스를 아웃소싱한다. 이를 통해 ⑶ 시민을 공공 재화 시장의 고객이나 소비자로 대한다. 이런 경영 전략은 ⑷ 주민들이 시의 서비스를 '영리하게 구매하는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고 요구하며, ⑸ 정부 프로그램과 정책에 대한 정보에 접근하여 숙지하는 주민에게는 보상을 해준다. 하지만 ⑹ 이미 사회·문화적 자본의 형태로 관료주의 시스템을 헤쳐나가는 데 필요한 권력을 보유하고 있는 주민에게 과도한 권력을 줄 수도 있다. 반면 재화와 서비스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얻는 데 필요한 사회적 능력과 자원을 결여하고 있다면 사실상 그들에게는 고통이 된다. 여론 관리가 통치의 주요 목표가 되어버린, 철저한 언론 검증 시대에 운영되는 새로운 지역 정부는 대중에게 보여지는 이미지와 공공장소에서의 이미지에 특히 관심이 많다. 홍보 전문가와 도시계획 설계자들은 지역 정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으며, 그들이 하는 일은 도시 정치에서 핵심 요소다.
폭염에 의해 곧바로 제기된 정치적 과제가 응급치료 제공과 취약계층 지원에 관한 것이었다면, 더 근본적인 질문은 가족이나 친구의 부재, 경제 사정 등으로 사회적 욕구 및 의학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원자화되거나 고립된 시민들로 구성된 고령화 사회에 대처하는 현대 정부 기관의 능력과 관련 있다. 오늘날 도시의 노인들에게 새롭게 등장한 수많은 위험, 이를테면 사회적 지원의 부족, 가족과의 연락 부재, 전문적 의료 서비스 부재, 고가의 약품, 주문형 대중교통의 부재 등은 지역 정부나 연방 정부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설계한 프로그램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 있다.
마지막으로, 폭염을 둘러싼 정치적 논쟁이 보여주는 것은 정부가 어느 정도까지 노인과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지원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면적 '복지 개혁'의 시대에 시민과 정부 관료들은 정부가 어느 선까지 대중의 건강과 복지를 책임져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재고해보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예를 들어 니카라과에 홍수가 나 1000명에 가까운 사람이 사망하자, 대통령이 오랫동안 재난 문제로 골치를 앓았던 마을을 방문해 상징적인 도움을 주려고 했을 때 시민들은 한데 모여 대통령에게 "살인자"라고 외쳤다. 하지만 시카고를 비롯해 재해로 큰 타격을 입은 미국의 다른 도시들에서는 개인적인 책임을 중시하는 정치 문화가 주류를 이뤄 니카라과처럼 재난을 받아들이는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폭염은 미래에 우리가 겪게 될 온갖 공공보건 문제를 유발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독거노인이 많기 때문이다." 미국공공보건협회 전임 회장이자 시카고 주민 퀜틴 영의 주장이다. 고립의 증가, 극단적 불평등, 흩어지는 가족, 주거 불안정 등의 추세가 노인들 사이에 지속된다면 시카고 같은 도시의 주민들은 어떤 유형의 위험을 감수하고 어떤 유형의 정부 보호를 기대할 것인지 결정해야 할 것이다.
경찰은 전례없이 규모가 확대되었지만, 노인부는 상근 직원을 줄이고 값싼 비상근 임시직을 고용했다. 시 정부는 오랫동안 많은 복지 서비스를 민간 조직에 하청을 줘왔고, 1990년대에 시카고 노인부 역시 더 많은 주요 프로그램에 쓸 수 있는 예산이 한정되어 있는데도 정부 일을 하기로 동의한 민간 비영리 단체에 위탁되었다. 나는 사회복지사 및 자택요양복지사와 함께 노인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시카고의 빈곤층 노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서비스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 구조상 어쩔 수 없는 일이며 일상의 규범이 되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시와의 계약을 따내려는 경쟁 시장이 형성되자, 서비스 비용은 지나치게 낮게 평가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신들의 능력은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려는 그릇된 의도가 드러났다. 내가 봤던 기관들은 힘든 일을 누가 맡을 것인지 자기네끼리 흥정하고,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능력이 필요한 일을 떠맡거나 물려받았다.
내가 알게 된 가난한 노인들은 만일 에어컨이 있었다면 여름철 공과금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질병통제예방센터의 역학 조사원들은 "각 가정에 에어컨이 작동하고 있었다면 폭염 관련 사망 가운데 50퍼센트 이상은 막을 수 있었"으리라 추정했고, 이는 분명 효과적인 폭염 대응 전략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근근이 먹고사는 노인들은 에어컨이 있더라도 전기료를 감당 못 해 사용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당장 에어컨을 구입할 현금이 없기도 했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 에어컨을 공급하는 시범 계획의 수혜자들이 에어컨을 설치도 하지 않은 채 팔아버리는 이유는 주로 전기료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상의 에너지 위기는 기온이 온화할 때도 시급했다. 내가 방문했던 빈곤층 노인들은 낮에 불을 켜는 대신 변함없는 친구가 되어주는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빛으로 방을 밝히고 있었다. 사용료를 내지 않으면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노인들은 불안과 위협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정책 입안자와 대중이 이를 눈치채기는 어려웠기에 이러한 일상의 위기를 의식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기자들이 노인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에 대해 질문했을 때, 앨버레즈는 시에 개설된 냉방 센터가 몇 군데인지도 몰랐고, 정부가 노인들이 그곳을 찾아가도록 어떻게 도와주고 있는지도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데일리가 코먼웰스에디슨에 대한 분노로 공감대를 이뤄 대중의 호감을 얻으려 애쓰는 와중에, 앨버레즈는 대담하게 폭염에 희생당한 사람들의 사망 책임은 희생자 자신에게 있다고 말한 것이다. "그들이 사망한 이유는 스스로를 방치했기 때문입니다."라고 그는 단정적으로 말했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앨버레즈의 말은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들이나 폭염 희생자의 가족들을 분노하게 했지만, 개인에게 생긴 문제는 개인의 행동에 문제가 있어서 일어났지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일반적인 정치적 입장을 정확하게 드러내주었다. 더위로 인한 재난은 복지부장의 관점으로는 사회적 재난이지 정치적 사건이 아니었다.
매체를 관리하는 기술이 현대의 정치인과 행정가에게 필수적이라는 정치학자들의 말은 아주 정확한 표현이지만, 홍보를 잘한다고 해서 좋은 (단순히 인기가 많은 게 아닌) 정부가 되리라는 근거는 없다. 행정 연구가 모데카이 리는 주장한다. "효율적이려면 현대의 관료들은 기업인처럼, 특히 정책과정의 문제 정의 단계에서 기업인처럼 행동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무엇에 효율적이라는 거지? 폭염 기간 중 시카고의 정치 지도자들은 홍보술을 이용해 자신들이 이끄는 기관의 정당성을 방어하며, 그들 나름대로 기업인처럼 정책을 세우고 문제를 규정하는 단계에 참여했다. 그리고 이는 비상시 보건 대처를 향상시키기보다는 약화시켰다. 1979년 폭설과는 달리 시장과 관료들은 폭염으로 인해 중대한 정치적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그래서 시가 캠페인을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책임을 분산시키고 관리나 부주의에 대한 공격을 잘 방어한 것처럼 보인다. 시의 관료들은 홍보에 의한 통치를 함으로써 정치적 재난은 피했지만 적절한 공공보건 대응은 이끌어내지 못했다.
시의 성공적인 홍보 캠페인에 따른 다른 결과도 있었다. 정부 관료들이 행한 위기 상황에서의 침묵과 다양한 정치적 부인으로 대응하는 규약 때문에 시의 기관이 응급 프로그램을 활성화하여 시급히 개입해야 할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것이다. 시청에서 사망보고서를 감추려 하지 않고 비상경보를 발령했더라면, 소방부는 상호 공조 경보 시스템을 통해 경보를 발령하고 구급대원과 소방관을 더 많이 요청하지 않았을까? 시에서 기관들이 협력하여 대응하도록 조율했더라면 경찰의 노인 부서와 지역 관련 프로그램이 활성화되지 않았을까? 시청에서 추정 사망자 수를 통제하라고 요청하지 않았더라면, 보건부는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을까? 이들 각 기관의 직원들은 질문에 대한 대답이 모두 '예'라고 믿는다. 그들이 옳다면, 폭염의 정치사는 홍보에 의한 통치의 위험과, 이러한 위험에 대해 정밀한 조사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다양한 언론 매체에 폭염에 관한 기사를 썼던 기자와 편집인들의 직업적 책임은 무엇이었을까? 전통적인 뉴스 미디어 이론, 특히 기자들이 직접 발전시킨 이론에 따르면, "진정한 저널리즘의 정수는 (…) 대중에게 유용한 정보를 찾는 것이다." 제이 로젠은 이렇게 썼다. "통념에 따르면, 기자들은 우리에게 공통적으로 중요한 문제에 대해 시의적절한 정보를 제공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우리를 즐겁게 하고 교훈을 주며, 많이 배우고 힘 있는 사람들 앞에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솔직한 답을 요구하며 우리의 대리인이자 감시견처럼 행동하고, 악행과 대중의 신뢰를 저버린 사례를 들춰내며, 토론장을 통해 우리에게 다양한 관점을 소개한다." 하지만 실제로 뉴스를 보는 사람들은 언제나 기자들에게 책임감 있는 민주 시민으로서 행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기를 요구한다.
기자들은 폭염 같은 공적인 사건을 보도하는 데 자신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다. 위기 상황에서 지역 뉴스 보도국은 관심을 끄는 볼거리를 이용해 독자를 늘리려는 편집자와 실질적인 뉴스 보도를 하려는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는 현장이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싸우는 당사자들도 뉴스 보도에는 선정적인 시각 자료, 도발적인 제목, 약간의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극적인 이야기 같은 저널리즘 특유의 기본적인 요소가 있어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뉴스 시청자들은 미디어가 세상에 활기를 불어넣는 볼거리로 자신들을 즐겁게 해주길 기대한다. 대니얼 부어스틴은 이렇게 썼다. "이제 세상을 재미있게 만드는 책임은 신이 아니라 신문 기자에게 있다." 그리고 저널리즘에 충실하려는 대부분의 조직은 이런 역할을 수행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주요 보도 단체들, 특히 저명하고 수상 경력을 지닌 『시카고 트리뷴』 같은 신문은 일반적으로 엄격하고 진지한 저널리즘을 가치 있게 여기는 직업윤리가 있다. 새로움, 드라마, 스펙터클 등 시장의 요구와 좋은 기사를 생산하려는 저널리즘적인 의무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보도국의 중대한 과제다.
신문 기자들은 마감 시간을 절대 어길 수 없기 때문에 정보에 대한 접근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팩트가 제한적이거나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면, 기자들은 성급한 판단과 섣부른 분석을 피할 수 있다. 그럼에도 지식의 현대적 분류에서 공무원과 뉴스 독자들은 뉴스 기관에서 주요 사건에 관한 근거 있는 해석을 제공해주길 기대하며, 기자들은 (보도라는 그들만의 영역에서, 혹은 전문가이자 비평가, 칼럼니스트로서의 역할에서) 공개적인 토론의 조건을 정할 기회를 잡곤 한다. 하지만 힘이 넘치고 자극적인 전면 기사를 급하게 정하는 과정 중 화요일 판 편집자와 기자들은 폭염에 대한 기사에서 명백히 잘못된 용어를 사용했다. 헤드라인은 특히 핵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미디어학자들이 보여주었듯, 뉴스 기사의 중심 프레임은 기자들이 쓰는 기사에 따라 정해지지 않고, 독자의 주목을 받으며 주요 사안을 다루는 가운데 기사 내용을 소개하는 헤드라인과 그래픽 또는 사진 이미지에서 정해진다. 헤드라인이 중요한 이유는 헤드라인이 뉴스의 내용을 선택적으로 읽도록 구성함으로써 어떤 사건이나 이슈가 가장 중요한지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헤드라인과 사진을 훑어보는 것이 일과인 사람은 많다. 헤드라인과 사진은 또한 마케팅적 기능도 한다. 도발적인 헤드라인과 사진은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를 독자가 신문을 사거나 주목하도록 유혹한다. 다른 많은 신문처럼 『트리뷴』에서는 교열 담당자가 대개 헤드라인을 정한다. 1면에 나는 기사가 아니라면 기자와 편집자가 이 과정에 참여하는 일은 거의 없다. 때로 이 과정에서 나온 헤드라인이 내용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기사 내용을 요약하기보다는 호도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키어넌과 질린스키가 화요일 자 신문에 기사를 제출했을 때, 그들은 교열 담당자가 "폭염 사상자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어떤 형태의 도움도 거부했다"라는 제목을 붙일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가장 크고 굵은 활자로 그날 1면에 올라간 헤드라인은 명백하게 잘못되었을 뿐 아니라 기사 내용이나 함께 실린 이미지와도 부조화를 이루었다.
다수의 환경학자에 따르면 더욱 파괴적인 여름 날씨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고, 그 영향력은 1995년 여름만큼 심각하지는 않더라도 끔찍할 것이다. 이를테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는 최근 "21세기에는 최고 기온이 더 높아지고 더운 날이 더 많아지며 폭염이 거의 육지 전체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90에서 99퍼센트라고 예상했다. 그 결과 "노인과 도시 빈곤층의 사망 사건 및 심각한 질병이 증가"하고 폭염과 지구온난화의 원인 가운데 하나인 냉방장치에 크게 의존하게 될 것이다. 비록 지구온난화에 회의적인 기후학자들은 1995년 시카고를 강타했던 극심한 날씨가 당장은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하긴 하지만, 기상학자 폴 더글러스처럼 1995년 시카고에서 벌어진 일이 "단지 앞으로 다가올 일의 예고편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폭염은 오랫동안 미국에서 가장 치명적인 환경 사건이었지만, 앞으로 더욱 파괴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
더위가 우리의 유일한 관심사는 아닐 것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기후 같은 극단적인 외부의 힘이 그토록 파괴적인 이유는 부분적으로 새롭게 나타난 고립과 민영화, 극단적인 사회적·경제적 불평등, 현대 도시 여기저기에 퍼져 있는 부와 가난이 집중된 구역 등이 취약한 주민에게 사계절 내내 위험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시카고의 폭염을 분석하는 것이 유용한 이유는 이 사건이 표현하고 드러낸 조건이 늘 존재하지만 인지하기는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 부검의 주된 가치가 고립과 죽음을 초래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과정에 대한 우리 지식을 심화하는 것이라면, 사회적 부검의 더욱 근본적인 공헌은 도시 주민이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에 대한 우리 이해를 확장시키는 것이다.
더글러스 매시의 주장처럼, 미국의 불평등의 새로운 환경은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정치적인 운동의 성장을 막고 있다. 중산층과 상류층이 "지난 20년 동안의 그 어느 때보다 균질적으로 특권화된 사회 환경"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 성장과 인구 증가가 최근 미국의 도시 재활성화에 관한 번지르르한 미사여구에 약간의 구실을 제공하긴 했지만, 이러한 집단적인 믿음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핵심 조건은 극심한 가난과 고통을 마주하는 환경에서 벗어나려 하는 상류층의 분리다. 20세기 말 주요 인구통계학적 추세에 관한 매시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도시 지역에 사는 부유층 주민들은 일상에서 다른 부유층 사람들과 교류하려 하며, 점차 다른 계급, 특히 빈곤층과는 교류하지 않으려고 한다." 부유층이 독점적이고 분리된 환경으로 혜택을 받는다면, 집중화된 빈곤과 유기는 빈곤층을 범죄 위험과 질병, 폭력, 고립에 노출시키는 한편 빈곤층과 빈곤층이 사는 지역을 눈에 띄지 않게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자신을 버린 도시를 버리고 은둔하여 밖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이처럼 사회적으로 생산되고 공간적으로 구조화된 불평등의 유일한 피해자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시카고에서 그들의 운명은 극단의 도시에 나타날 디스토피아적 가능성의 징후다.
최근 저명한 기자와 언론 비평가들은 『트리뷴』의 전임 편집자 제임스 스콰이어스의 말을 빌려 "기업이 미국의 신문사를 인수할 수 있다는 데"에 주의를 환기시켰다. 벤 배그디키언에 따르면 "언론 독점"의 등장은 뉴스 기관의 통합성을 약화시켰다. 수익과 시장 점유율의 극심한 경쟁이 전문적인 뉴스 가치에 대한 편집자의 약속과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대기업 경영 체제에서 주류 언론 기관들(명망 있는 신문사나 지역 텔레비전 방송국까지도)은 이제 서둘러 다양한 유형의 콘텐츠에 대한 수요를 해결하고 있다. 폭염은 편집자와 기자에게 스펙터클한 보도와 함께 진지한 현장 기사를 제공할 기회도 주었다. 하지만 가장 철저하고 통찰이 돋보였던 몇몇 기사는 눈길을 끄는 선정적인 사진과 극적이지만 내용을 오도하는 제목, 재난의 사회적 측면을 덮으려는 그릇된 정치적 토론 때문에 빛을 보지 못했다. 『트리뷴』의 몇몇 직원에 따르면, 폭염 희생자를 심층적으로 다루었던 어떤 기사는 신문 지면에 발표도 되지 못했다. '여름 이야기'는 가을에 관심을 끌지 못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얼마나 많은 빈곤과 고통에 대한 기사가 같은 이유로 보도국에서 매일 거부당할까? 극적이지는 않지만 사진 촬영이 가능한 도시 빈민을 다룬 사건이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