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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배신 / 바버라 에런라이크 / 부키

 

 그런데 이곳 구직 행사장에서의 '자기 관리'는 고통 관리, 구조화된 비통함이었다. 커다란 기업 조직에서 내팽개쳐져 자기에게 부족한 부분을 깊이 생각해야만 하는 사람이 사소한 과업들로 하루를 채우고 다른 누군가의 감독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일자리를 찾는 행동을 통해 무언가를(뭐라도) 해야 한다는 칼뱅주의적인 열망, 일을 우선시하는 본성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생각해 보자. 미국인은 특히 이런 칼뱅주의적 고뇌가 강하다. 가만있는 것보다는 바쁘게 움직이는 게 낫다는 이유만으로 무언가를 하기도 한다. 결과와 무관하게 바쁘다는 것 자체를 바람직한 상태로 여긴다. 나중에 하비 매케이의 베스트셀러 『해고당했다! 지금까지 겪은 일 중 최고다(We Got Fired! And It’s the Best Thing That Ever Happened to Us)』를 읽고 알게 되었는데 구직 활동을 제대로 하려면 실제 직장 생활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한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는 사치를 누린다. 하지만 직장을 찾으려는 사람은 구직에 12~16시간씩 투자한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p.65)

 

 7개월 가까이 구직 활동을 하고, 이미지 변신을 꾀하고, 비싼 돈을 들여 이력서를 거듭 수정하고, 4개 도시에서 네트워킹을 위해 애쓴 결과 내게는 Aflac과 메리케이, 2개의 일자리 제안이 들어왔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규정한 '일자리'의 기준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었다. 급료도, 복지 혜택도, 작업 공간도 제공되지 않았다. 수수료만이 아니라 기본급과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영업직도 있긴 하다. 그런 '진짜' 직장은 고용주가 위험을 일부분 떠안고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투자한다. 반면 부동산 중개업, 프랜차이즈 사업, 수수료만 지급하는 영업직은 모든 위험을 구직자가 감당해야 한다. 착수금을 내고 제 돈을 들여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러고 나서는 시장이 어려워지지는 않을까, 본사에서 내 지역에 다른 영업 사원을 파견하거나 가맹점을 내주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오롯이 떠안아야 한다. (p.237-238)

 

 직위나 급료에 까탈을 부리지만 않으면 미국에는 일할 자리가 많다. 해마다 수십만 명의 이민자가 미국으로 몰려와 잔디 관리, 건설 현장, 가사 도우미, 청소부, 고기 포장 일을 한다.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는 와중에서도 저임금 직종은 이직이 심하기 때문에 잽싸고 절박한 사람들에게는 일자리가 안정적으로 공급된다. 화이트칼라 구직자에게는 이런 일자리가 '생존용 일자리'로 알려져 있다. '진짜'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임시변통으로 하는 일이란 뜻이다. 문제는 그런 명칭이 지나친 낙관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9월 말, 내 구직 활동은 실질적으로 종료되었다. 나는 그간 명함을 받은 동료 구직자들의 형편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구직을 계속하면서 약간이라도 돈을 벌기 위해 경제 잡지에 화이트칼라 구직자에 대한 기사를 쓴다는 핑계를 댔다. 11명이 응답을 했지만 '진짜' 일자리를 찾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 자기 이야기를 아끼던 사람들도 다시 연락하자 취업 전략을 열심히 털어놓았는데 대부분이 생존용 일자리까지 구직 범위에 포함시키고 있었다. (p.255)

 

 캐서린 뉴먼이 『추락(Falling from Grace)』에 쓴 대로다. "계층이 하향 이동한 사람들은 이전의 자아를 떨쳐 내는 지침이 없고, 새로운 자아를 위한 지시 또는 훈련도 없으므로 사회적, 문화적 진공 상태에 놓이게 된다." 어느 정도 리더십과 혁신이 요구되는 책임 있는 직위에 걸맞게 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지위의 상실에 대처하기 어렵다.
 게다가 아무리 낙관적이라 해도, 또 아무리 독창적이고 유연해도 실업자와 불완전취업자는 등 뒤에서 째깍째깍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소리를 의식하고 있다. 실업 기간이 길어질수록 괜찮은 일자리를 구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판매원, 리무진 기사, 웨이터로 일한 기간은 늘어난 이력서의 공백을 메울 매력적인 내용이 되지 못한다. 그러는 동안 사정없이 나이가 들면서 기업에서 선호하는 연령의 상한을 넘어서게 된다. 요즘에는 대개 그 상한이 30대 중반쯤이다. 리처드 세넷이 기업 고용을 분석하면서 "경력이 쌓일수록 그 사람의 가치는 저하된다."라고 말한 그대로다. 그러므로 일단 저임금 생존용 일자리라는 올가미에 걸리게 되면 빠져나오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널찍하고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음지로 강제 이식된 식물과 같은 처지다. (p.262-263)

 

 다운사이징, 정리 해고, 아웃소싱, 그리고 경영진의 변덕으로 말미암아 모든 일자리가 임시직 성격이 강해진 요즘에는 아무도 안심할 수 없다. 피할 방법이 없는 성가신 소음처럼 정리 해고의 위협은 끊임없이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19세기에 마르크스는 일자리에서 밀려나 빈곤에 시달리는 '산업예비군'의 존재가 노동계급을 유순하게 길들이는 채찍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는 이 산업예비군 병력이 축소되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쨌든 일자리를 갖고 있다. 대신에 갑작스러운 해고(그리고 그에 따른 의료보험 상실) 위협이 채찍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제기해도 잘난 전문가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해고와 기업 복지 축소, 워킹 푸어의 쥐꼬리만 한 임금은 기업이 세계 경제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필수적인 요소라는 대답만 늘어놓는다.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기업이 민첩해야 하고, 즉석에서 직원이나 한 부서 전체를 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장기고용, 의료보험 및 연금 혜택을 제공해 온 구식 기업들은 경제와 기업의 복지 혜택을 상호 의존적인 것으로 보았지만, 요즘 기업들에게는 복지가 치명적인 부담일 따름이다. 한때 구식 복지 기업의 대표적 모델이었던 제너럴모터스(GM)가 어떤 꼴이 되었는가.
 이른바 권위자들은 청년층 노동자의 해고를 쉽게 한 노동법 개정에 거세게 반발해 시위를 벌인 프랑스 청년들을 비웃는다. "저 프랑스 애들은 요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도통 모르는군. 해고할 자유가 없으면 고용주들이 고용 자체를 꺼린다는 걸 모르나?" 이 논리에 따르면 개인은 경영진의 욕구 변화에 순종하면서 유연하게 대처하고, 그런 변화의 흐름에 항상 주의를 기울여아 한다. 개인과 대비되는 거대한 추상적 관념인 경제가 번창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다. (p.299-300)

 

 

하틀랜드 / 세라 스마시 / 반비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키가 작고 삼각형 모양의 파마머리에 앞머리를 뒤로 넘겨 잔뜩 부풀려 고정한 분이었는데 나를 딱 찍어서 괴롭혔어. 아마 내가 말대답을 가장 잘하는데다가, 자기 애 혼냈다고 부모가 학교에 와서 소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가장 낮은 애였기 때문이겠지. 우리 반에 지적 장애가 있는 남자아이가 있었는데 선생님이 걔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바닥에서 일으켜 세우는 걸 본 적도 있어.
 나는 선생님이 부당하거나 편파적인 행동을 하면 지적하곤 했거든. 그러면 선생님은 나를 복도로 내보내고 나중에 초콜릿 우유와 크래커를 나누어줄 때 그 일을 꼭 다시 꺼내서 간식을 받으려면 잘못했다고 사과하라고 했지.
 자격 없는 선생님들이 교실을 차지하고 있을 때 크게 피해를 받는 아이들은 따로 있어. 장애가 있어 부모에게 자기가 당한 일을 전할 수 없는 아이들, 부모가 무관심하거나 술에 취해 있거나 너무 바빠서 학교에 신경 안 쓰는 집 아이들. (p.168-169)

 

 나는 선생님한테 찍혀서 구박을 당하면서도 배움에 대한 욕구가 너무 컸기 때문에 숙제와 공부에 온 힘을 쏟았어. 나에게는 학교가 전부였기 때문이기도 했어. 학교에 괴물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고 장애에 맞서야 했어. 그렇지만 이렇게 어렵게 심지어 상처를 받아가면서 얻어야 하는 무언가를 그렇게 절박하게 원한다는 사실이 때로 서글프기도 했지. (p.170)

 

 내가 속한 계급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우리가 없는 것으로 취급받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거잖니. 거기에서 수치심이 생겨. 중산층과 상류층의 서사가 가득한 곳에서는 가난하게 산다는 것에 깊은 수치를 느끼고 스스로를 패배자라고 느낄 수 있어.
 내 주위에서 이런 말을 입에 올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 불평하는 사람도 물론 없었고. 자기가 어려운 처지에 놓인 게 자기가 부족해서라고 생각하는 노동자는 고용주나 정책이나 제도에 불만을 갖고 항의하거나 파업하거나 임금 인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낮겠지. 게다가 내가 자라난 중서부 가톨릭 정서에서는 조용히 있는 것을 미덕으로 취급했어. 우리가 고통을 우리 탓으로 생각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미국 산업은 부유한 사람들의 이익을 중심으로 발전했어.
 하지만 내가 느낀 수치는 내 죄에서 오는 게 아니었어. 사회 전체에서 가난한 사람을 멸시하기 때문이지. 경멸이 미국 법에 아예 명시되어 있어.
 빈민에 대한 멸시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예가 복지 제도에 대한 태도일 거야. 공공 정책이나 언론에서 복지 프로그램에 의존해 살아가는 걸 혐오스러운 것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혜택을 받을 자격이 되어도 지원을 안 했어.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 빌 클린턴이 대통령에 취임하고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복지 개혁' 시대를 열겠다고 했어. 연방 법으로 주 정부에서 복지 수혜자에게 소변으로 약물 반응 검사를 받게 하고, 복지 혜택을 받는 동안에는 아기를 갖지 않겠다고 서약하게 하고, 사회에 '기생'하는 만큼 자원봉사로 '갚게' 하고, 개인 정보를 경찰이 관리하는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하게 하고, 사회보장번호로 범죄 기록을 조회할 수 있게 했어.
 이런 개혁을 통해 주 정부 재량으로 자금을 분배할 수 있게 되기도 했어. 그래서 일부 주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던 돈을 중간 계급을 상대로 한 결혼 워크숍 지원 같은 데로 돌리기도 했지. 가족의 가치를 드높이면 빈곤을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로.
 1994년에 캘리포니아주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복지 수혜자의 전자 지문을 등록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어. 전문가들이 불필요한 제도고 부정 수혜자를 가려내 절약하는 돈보다 시스템 관리 비용이 더 많이 든다고 비판했지만 입법자들한테는 비용을 아끼는 것보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중요했던 거야.
 전국의 가난한 사람들이 그 메시지를 확실하고 뚜렷하게 들었어. 그 뒤 20년 동안 복지 혜택을 받는 사람의 수는 확 줄었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전혀 줄지 않았는데도. (p.193-194)

 

 크리스가 실패했다면 크리스를 구하지 못한 제도의 책임은 없나? 사법 제도는 건강 문제로 고통받는 크리스를 도와주기는커녕 수갑을 채우고 벌금을 물렸어. 1980년대에 크리스는 고등학교 졸업장을 땄지만 그때 이미 인력 시장에서 고졸 학력의 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크리스가 받는 임금은 물가 상승을 쫓아갈 수가 없었지. 이윤만 추구하는 의료 산업계는 마약성 진통제를 계속 처방해 배를 불렸고. 크리스에게 수년 동안 약을 처방해 주고 결국에는 철창신세를 지게 된 의사도 그 시스템의 일부였어. (p.243)

 

 가난한 여자들은 살아가기만 해도 폭력을 당할 수밖에 없어.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임신하고, 서빙을 하면서 예사로 성희롱을 당하고, 반복적인 육체노동으로 몸은 통증에 시달리지. 그리고 남자들에 의한 폭력이 있어. 가난한 계급 남자가 중간이나 상위 계급 남자보다 더 폭력적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경제적 수단이 없는 여자가 폭력에서 벗어나기가 더 힘든 것은 사실이야.
 나는 나를 뒤쫓아 오는 남자를 죽이는 꿈을 꾸곤 했어. 가끔 현실에서도 그런 상황을 상상하면서 그럴 때 어떻게 싸워서 빠져나올까 생각하곤 했지. 하지만 맞서 싸우는 것보다 두려움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게 가장 큰 힘이라는 걸 알게 됐어. (p.344)

 

 경제적 궁핍은 여러 종류의 가난 가운데 하나일 뿐이잖아. 어떤 배경에 속한 사람들이라도 빈한함을 느낄 수 있지. 돈으로 살 수 없는 무언가가 부족하고 결핍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사회에서 수치를 부과하는 궁핍은 경제적 빈곤뿐이야. 사회에서, 문화에서, 자본주의 경제에서, 공공 정책에서, 사람들의 일상적 대화에서 가난은 수치로 다루어지지. 부유한 나라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다면 경제적 실패는 곧 정신이 실패했다는 뜻이라는 말을 흔히 듣게 될 거야.
 가난하다, 곧 poor라는 단어가 돈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나쁘다는 뜻으로도 쓰여. '건강이 나쁘다(poor health)', '시험 점수가 나쁘다(poor test results)' 등과 같이. 개인이 능력만 있으면 부를 창출할 수 있다고 믿는 나라에서 가난한 사람은 스스로를 나쁜 사람이라고 여기기 쉽지. 나를 키워준 분들도 스스로를 나쁘다고 생각하는 일이 많았어. 그래서 나도 나쁜 아이인 것처럼 취급받았지.
 내 삶 최대의 행운이라면 내가 그게 옳지 않음을 알았다는 거야. 내가 어딘가에서 빠져나왔다면 그건 사실 결핍감, 사회경제적 범주와 무관한 그 감정이었어. (p.406)

 

 

시간과 물에 대하여 /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 / 북하우스

 

 "하지만 종말론적 예언과 암울한 의견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게 문제입니다. 의사가 환자에게 당신은 초기 단계의 암에 걸렸다고 말하기 싫어한다고 상상해보십시오. 환자가 목숨을 구하려면 당장 금연하고 생활 습관을 바꾸고 심지어 1, 2년간 만사를 제쳐두고 수술과 방사선 요법과 재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기를 싫어한다면요. 선생이 겁먹을까 봐 두려워서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의사가 솔직하게 말하려 들지 않는다고 상상해보십시오. 대신에 잎담배와 페퍼민트 차를 권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거 그럴듯하군요."
 "그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심각한 문제가 계속 커져만 가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환자는 생활 습관을 바꾸지 않은 채 에센셜 오일 향만 맡으면 치료되리라 믿습니다. 우리는 죽느냐 사느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거론되는 해결책은 대부분 위약입니다. 동종요법이라고요. 플라스틱 빨대를 금지하고 플라스틱을 분리수거 하는 것 따위는 모두 시답잖은 방안입니다. 훨씬 급진적인 조치가 필요합니다." (p.77-78)

 

 지구 기온의 섭씨 2도 상승이 동식물에게 얼마나 심각한지 실감하고 싶다면 우리 자신의 몸을 자세히 살펴보라. 인간의 체온이 언제나 39도였다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지구 온도가 2도 올라가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를 아주 간단하게 보여준다. 특정 조건에 적응해야 하는 종은 갑자기 덥고 지치고 쇠약한 느낌을 받는다. 죽는 종도 있다. 또 어떤 종은 더위에 맞서 몸을 방어하느라 에너지를 다 써서 더는 번식하지 못하기도 한다. 2도는 지구 전체의 평균 온도 상승이므로 지역에 따라서는 6도 넘게 오를 수도 있는데, 그러면 생물상의 토대 자체가 허물어질 것이다. 어떤 종은 이주하겠지만, 조류 이주나 부화, 발아, 개화의 시기가 어긋나면 생태계가 카드로 만든 집처럼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이미 세상 끝까지 내몰려 갈 곳이 전혀 없는 동물도 있다. 어떤 종의 이상적 서식처가 아이슬란드 북부 해안이라면 더 북쪽으로 올라가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곳에는 거친 바다뿐이니까. (p.165)

 

 화폐, 산업, 생산 능력을 바탕으로 세상을 정의하는 사람들은 생물학, 지질학, 생태학을 굳이 이해하려 들지 않는 듯하다. 그들은 통계를 계산하여 상황을 낙관한다. '바람직한 경제 전망'이라는 말 속에는 지구에 치명적이고 미래에 지속 가능하지 않은 것들이 숨겨져 있다. 석유 생산량을 늘리는 것은 경제에 유익하다. 알루미늄 생산량을 배가하는 것도 유익하다. 경제성장은 지속 가능성과 지속 불가능성을 구별하지 않는다. 튼튼해지는 것과 뚱뚱해지는 것, 자궁에서 태아가 자라는 것과 종양이 자라는 것을 구별하지 않는다고 상상해보라. 그들에게 성장은 무조건 좋은 것이다. 양성이든 악성이든. (p.249)

 

 해수 산성도가 8.1pH에서 7.8pH로 바뀌었다는 경고를 들어도 우리는 그 차이를 실감하지 못한다. 0.3은 화폐, 퍼센티지, 미터, 연도에 쓸 때는 분명히 작은 양이기 때문이다. 100만 달러와 비교해도 0.3은 큰 양이 아니다. 0.3은 어떤 계산에서든 주로 오차 범위 안에 든다. 아이의 체온이 0.3도 올랐으면 그날 학교에 가야 한다. 0.3은 반올림하면 0이다. 이렇게 중요한 사안에 로그 척도를 쓰는 것은 언어에서 수식어를 없애버리는 것과 같다. 이를테면 인간의 혈액이 감당할 수 있는 산성도 변화는 7.35pH에서 7.45pH 사이다. 한계치보다 높아지거나 낮아지면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수치가 한계를 넘으면 장기 부전이나 사망의 위험이 있다. 많은 동물 종에게 해수 산성도는 인체 혈액의 산성도만큼 중요하다. 실제로 0.3pH의 변화가 얼마나 심각하냐면 이를 묘사하는 표현은 대문자에 볼드체를 적용하고 이모티콘을 스무 개는 붙여야 마땅하다. 0.3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다. (p.272)

 

 해결책에는 여러 측면이 있으며 어느 것은 비할 데 없이 아름답다. 자기 농장의 습지를 복원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는 자연이 얼마나 빨리 되살아나는지 말해주었다. "도랑을 메우고 연못을 만들었습니다. 이듬해 봄에 아비가 나타났고, 도랑과 벌판만 있던 곳에서 50종의 조류를 보았습니다." 많은 해결책이 새로운 연결을 만들고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고 생태를 개선함으로써 인간과 동물의 복리를 두루 발전시킨다. 이는 활기, 자각, 안정감을 낳을 것이다. 몇몇 해결책은 '접시를 깨끗이 비워라, 옷을 물려 입어라, 양말을 기워 신어라, 아껴 써라'처럼 우리의 할머니들이 늘 말하던 것이기도 하다. 해결책의 많은 부분은 희생을 요한다. 아무것도 대가로 요구하지 않은 채 남들에게 무언가를 해주어야 할 수도 있고 아이슬란드 구조대와 빙하연구회의 정신에 입각하여 단체와 집단, 조직을 만들어야 할 수도 있다. 우리는 과거에서 교훈을 배울 수 있다. 과소비가 횡행하기 전, 행복이 만발하던 지점을 찾아야 한다. 그곳 어딘가에서 우리는 균형과 만족을 발견할 것이다. (p.349-350)

 

 

나를 믿고 일한다는 것 / 우미영 / 퍼블리온

 

 글로벌 IT 기업들은 지원자의 역량을 검증하기 위해 '상황 인터뷰'를 진행한다. 우선 검증할 역량을 정의한 다음 지원자에게 그러한 역량을 발휘했던 경험을 설명해보라고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터뷰어는 '매니저와 상의할 시간이 없는 상황에서 중요한 결정을 했던 경험을 이야기해보라'고 한다. '시간이 없을 때도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리더십 원칙을 실천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지원자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요소들을 고려하고 평가하여 의사 결정을 했으며, 결과는 어떠했는지,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 설명해야 한다.
 인터뷰어로 나서는 자리가 많아지다 보니 글로벌 IT 기업의 접근 방식이 매우 설득력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원자들이 이런 방식으로 본인의 이력서에 쓴 경험을 설명하면 훨씬 입체적으로 지원자의 경험을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원자가 이력서에 'YYYY.MM ~ YYYY.MM OO 제품 마케팅 매니저'라고 썼다면, '그 기간 동안 어떤 제품을 맡아 시장에서 어떻게 포지션을 향상시켰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으며,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다르게 할 것인지' 분명하게 설명해달라고 한다. 사실 이렇게 자신의 경험을 해석하고 설명하려면 평소에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생각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p.27-28)

 

 새로운 일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만 하면 두려움만 증폭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일이나 선택을 앞두고 두려움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머릿속에 떠올려본다. 맞닥뜨릴 어려움이나 잃을 것들을 미리 생각하고 대비하다 보면 실제로 그것들이 현실화되더라도 충격이 덜한 법이다. 게다가 실패하든 성공하든 경험을 통해 우리는 배우고 성장할 수 있지 않은가?
 '실패했을 때 내가 잃을 것은 무엇인가?' '결과에 상관없이 이 경험을 통해 무엇을 배울 것인가?' 이 2가지는 내가 힘에 부칠 만큼 어려운 도전을 앞두고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을 던지고 나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고,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최악의 결과가 나오더라도 이미 예상해본 것이기에 당황하지 않는다. 실패를 매몰비용이 아니라 배움과 성장을 위한 R&D 투자로 만들 수 있다. (p.48)

 

 그렇다면 고객의 니즈를 파악해 지갑을 열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수많은 자질 중에서 가장 중요한 2가지를 꼽는다면, '고객의 니즈에 대한 공감'과 '제품에 대한 이해'다.
 첫 번째는 공감 능력이다. 고객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는 고객이 처한 상황과 의미 있는 니즈를 읽어내기 어렵다. 그리고 고객의 입장에 빙의되려면 고객에 대해 많이 알아야 한다. 고객을 만나 좋은 질문을 하는 영업사원들의 실적이 높은 이유는 고객의 상황을 섬세하게 파악해서 니즈를 정확하게 포착해내기 때문이다.
 (…)
 두 번째는 내가 판매하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보험, 자동차, 의료장비, 식품 등 산업 전 분야에서 혁신이 이루어지면서 영업사원들이 팔아야 하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점차 복잡해지고 있다. 내가 일하는 IT 산업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
 영업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고 싶다면 내가 파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내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깊이 이해하면 영업에 필요한 기술과 자질은 오히려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다. (p.54-56)

 

 상사를 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상사가 되어서도 일의 의미와 방향을 서로 이해하고 공유하는 소통이 정말 중요하다. 현재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직원은 업무 지시에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 늘 '네'라고 대답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십중팔구 내가 의도한 것과 다른 결과물을 가지고 온다. 혼자 열심히 한다고는 하지만 마감 기한에 임박해서 수정할 시간도 주지 않고 결과물을 들이미는 직원은 가끔씩 나를 아연실색하게 한다. 의욕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지만 회사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일하는 곳이다. 상사의 입장에서는 피곤하기는 해도 질문을 많이 하고 이해되지 않는 것은 따져 묻는 직원이 오히려 고맙다. 그들은 나와 함께 중간중간 체크해가면서 일하기 때문에 엉뚱한 곳으로 빠지지도 않고 대체로 결과물도 잘 만들어낸다. (p.70-71)

 

 모든 조직이 아마존과 같을 수는 없다. 그래도 기업이라면 최소한 인재를 뽑는 나름의 가치와 기준은 있어야 한다. 특히 팀을 이끄는 리더라면 우선 채용하는 사람이 맡게 될 역할, 필요한 역량, 경험을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인터뷰 프로세스와 질문을 통해 충분히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영업사원을 채용한다면 잠재 고객은 어떻게 발굴해왔는지, 주요 고객들과의 관계는 어떠했는지, 기존에 판매했던 제품의 성격과 우리 회사의 제품은 어떻게 다른지, 상대해야 할 고객층은 유사한지를 확인해야 한다.
 지원자가 이전 직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면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환경도 살펴야 할 것이다. 제품이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고, 회사의 지원 시스템도 잘 갖춰진 곳에서 성공을 거뒀다면 더욱 그렇다. 치열한 경쟁 환경에 놓여 있는 작은 조직에서 많은 것들을 혼자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성공을 반복하리라고 보장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들을 해보았습니까?'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해냈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습니까?'라는 질문들로 그의 경험과 역량을 확인해야 한다. (p.116-117)

 

 조직은 고객의 니즈와 시장의 변화를 예민하게 감지해서 순발력 있게 대응해야 한다. 다양한 고객들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니즈를 쏟아내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의 성공 경험에 매달린다면 기업은 하루아침에 위태로워질 수 있다.
 내부적으로 다양성과 포용의 과제는 외부 환경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조직을 어떻게 만들어내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다양한 경험과 지식, 감각들이 유기적으로 작용하여 외부 변화를 감지하고 대응 전략을 만들어내려면 조직 내에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활발히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한다. 그래야 주류의 목소리가 다양한 목소리를 억압하지 않고 작은 목소리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작든 크든 조직을 이끄는 리더라면 구성원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p.188)

 

 우선 네트워크를 통해 내가 얻을 수 있는 것과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어떻게 참여하느냐에 따라 네트워크에서 얻을 수 있는 자본의 양은 크게 달라진다. 내 장점과 가치를 최대한 발휘해보자. 사람들이 그 가치를 알아줄 때 나를 추천하고 기회도 나눠 줄 것이다. (p.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