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현대인 치고는 유튜브를 정말 안 보는 편인데 (임영웅에 빠진 우리 엄마가 나보다 훨씬 많이 보신다...) 그래도 요즘 계속 보는 채널이 딱 두 개 있다. 김민경님의 운동뚱과 편집자K님의 채널이다. 편집자K님의 이 영상을 한가로이 보다가 『아무튼, 메모』를 충동구매했다.
<아무튼 시리즈>는 리디셀렉트에 올라오는 것만 가끔 살펴보았지 크게 관심이 있지도 않았고 돈 주고 사서 읽은 적은 더욱이 없었다. 그럼에도 동영상에 등장한 이 책은 왠지 정말 좋을 것 같았고, 그래서 전자책으로 나왔지만 종이책으로 샀는데... 나의 책에 대한 촉은 어쩜 이리 좋을 수가 있단 말이냐. 우선 5점 만점에 10점 주고 시작하자.
제목에 '메모'가 들어가지만 메모만을 주요하게 다룬 글의 비중은 그다지 높지 않다. 메모 자체를 두고 얘기하기보다는 메모를 시작점으로 두어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것 같았는데, 그 글들이 정말 저엉말 좋았다. 책이 작고 얇으니 여기서 긴 말을 하는 것은 좋지 않겠다. 이 구석진 블로그에서 누군가 이 글을 읽는다면, 그리고 이 책에 관심이 생긴다면, 꼭 이 책을 빌려서든 구입해서든 읽어보셨으면 좋겠다. 분명 책을 통해 위로받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만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마음의 중심에는 어두움이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자기만 아는 것들—거의 이해하는 것이 없다는 것, 실수했다는 것, 후회스럽다는 것, 말만 앞선다는 것, 유치하다는 것, 속이 좁다는 것. 수시로 자기비하의 유혹에 빠진다는 것, 거의 모든 사람에게 잘 보이고 사랑받고 싶어 한다는 것, 칭찬에 중독되었다는 것, 중요해 보이고 싶어 한다는 것. 무조건 이기고 싶어 한다는 것, 돈을 심하게 밝힌다는 것, 남과 비교를 너무 많이 한다는 것, 비판을 감당 못한다는 것, 지나치게 방어적이라는 것,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한다는 것.
우리 안의 어두움이 다 나온다면 세상은 인류 멸망의 아침처럼 어두워질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슬퍼할 줄 아는 것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다. 이 씁쓸함은 여행으로도 쇼핑으로도 해소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어둠 속에서 함께할 것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쓰다듬을 머리카락 같은 것, 파고들 품 같은 것, 나눌 체온 같은 것, 이를테면 온기 같은 것. 우리 마음의 밝음이란 게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 지상에 존재하는 가장 부드러운 밝음, 마치 어려운 용서와 화해처럼 부드럽고 좋은 것, 그것은 더 나은 방향으로의 변화와 절대로 뗄 수 없다. (p.46-47)
아무튼, 메모 / 정혜윤 / 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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