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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가 만든 세계 / 빈스 베이저 / 까치

 

 수백만 년이 넘는 세월 속에서 모래는 새로운 침전물 아래에 묻혀 있다가 새로운 산의 일부로 솟아오르고는 다시 침식되고 운반된다. 지질학자 레이먼드 시버는 자신의 책 『모래(Sand)』에서 이렇게 썼다. "모래 알갱이는 영혼은 없지만 환생한다. 침전, 퇴적, 융기, 침식되는 과정에서 새로 태어나고 조금 더 둥글어진다." 이 과정은 보통 200만 년을 주기로 일어난다. 그러니 다음번에 신발에서 모래를 털어낼 때에는 조금이나마 경건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좋겠다. 그 모래 알갱이들은 공룡보다 앞서서 이 세상에 나타났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p.17)

 

 모래와 자갈로 도로를 만드는 사업은 미국을 근본적으로 뒤바꿔놓았다. 포장도로는 수많은 미국인의 주거지와 주거방식, 일터와 일하는 방식, 가치관, 그리고 먹는 음식의 종류마저도 결정지었다. 그리고 그런 경향은 점차 전 세계로 번져갔다. (p.71)

 

 고속도로는 교통사고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떨어뜨렸는데 그 점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공학적으로 계산된 횡경사도, 넓은 차선, 완만한 곡선도로, 상하행선 분리, 세심하게 계획된 합류부 덕분에 고속도로는 기존 도로보다 훨씬 안전했다. 실제로 연방고속도로국에 따르면, 고속도로는 주행거리 1억 6,000만 킬로미터당 사망자 발생률이 0.8이어서, 전국 평균보다 거의 절반가량이 낮다. 주간 고속도로가 착공된 시기인 1956년에는 교통사고 사망자 발생률이 6.05였다고 하니 확연히 차이가 난다. (p.90-91)

 

 유리는 우리가 일하고 살아가는 건물, 밖을 내다보는 창문, 방 안을 밝히는 전등, 음료수를 담는 용기,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텔레비전, 시간을 확인하는 시계, 손에서 내려놓지 않는 휴대전화를 제작할 때에 사용된다. 유리는 그야말로 황홀한 물질이다. 20톤짜리 평판에서부터 머리카락보다 가느다란 가닥에 이르기까지, 섬세한 수정체에서부터 방탄막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형태로 제작할 수 있다. 또한 광학섬유와 맥주병, 현미경 렌즈와 유리섬유 카약, 초고층건물의 외장재와 휴대전화의 초소형 카메라 렌즈를 만들 수도 있다. (p.101-102)

 

 사람들은 흔히 해변을 땅과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있는 장소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해변을 비롯한 여러 해변은 돈을 벌기 위해서 인공적으로 조성한 것이다. 그곳은 인간이 살기 이전에 존재하던 자연 상태 그대로의 해안선이 수입산 모래에 묻혀 지워진 해변이다. 브로워드 카운티는 그런 사실을 거리낌 없이 털어놓는다. "해변은 사회기반시설과 같아요. 도로에 구멍이 나면 메우듯이, 해변도 모래로 메워주는 거죠." 샤프가 말했다. (p.192-193)

 

 "어느 시점에 이르면, 해빈 조성은 지속될 수가 없어요." 젠킨스가 웨스트 팜비치에 있는 회사 회의실에서 말했다. "지금부터 100년이 될지 200년이 될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때가 되면 손에 닿는 모래란 모래는 모조리 퍼낸 상태일 거예요." 그는 모래의 유입을 가로막는 인공 운하, 수로, 방파제를 개선하면 그 시기를 늦출 수 있지만 결국은 그보다 더 큰 문제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래는 강을 통해서 가장 많이 유입됩니다. 모든 강에 댐이 들어서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강을 통해서는 더 이상 모래가 유입되지 못하겠죠. 하지만 그런 사실은 100년쯤 지나야 피부에 와닿겠죠." (p.211)

 

 미국은 영원한 재료가 없다는 사실을 비싼 대가를 치르며 배우고 있다. 미국 토목공학협회가 미국의 사회기반시설에 대해서 가장 최근에 펴낸 보고서에서는 미국 내 도로에 평점 D를 주었다. 미국 고속도로의 5분의 1과 도시 도로의 3분의 1은 상태가 "좋지 않아서" 미국 운전자들은 도로 보수비와 운영비로 1,120억 달러를 부담해야 한다. 연방고속도로국에 따르면, 미국 내 교량의 약 4분의 1이 구조적으로 결함이 있거나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p.288)

 

 바츨라프 스밀은 전 세계의 건물, 도로, 교량, 댐 등에 사용한 조악한 콘크리트 1,000억 톤이 향후 10년 안에 다른 콘크리트로 대체되어야 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이 과정에는 예산 수조 달러와 모래 수십억 톤이 들어갈 것이다.
 로버트 쿠얼랜드는 『콘크리트, 지구를 덮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콘크리트 구조체는 수명에 한계가 있다. 현존하는 그 어떤 콘크리트 건물도 200년을 넘기지 못하며, 대개는 50년이 지나면 슬슬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제작 과정에서 온실가스 수백만 톤을 내뿜는, 수명이 짧은 재료로 일회용품과 같은 세상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20세기 초에 지어진 콘크리트 건물은 대개 허물어지기 시작하고 있으며 어떤 것은 이미 철거되었고 또 어떤 것은 앞으로 철거될 것이다."
 우리는 모래로 콘크리트를 만들어 이 세계를 건설했다. 이제 그 세계가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다. (p.290-291)

 

 때로는 환경을 보호하려는 선의의 노력이 법망이 느슨하고 혜택을 많이 누리지 못하는 나라의 사람들에게 환경 피해를 안겨주기도 한다. 1990년대 초반 캘리포니아 주의 샌디에이고 카운티에서는 모래 채취가 샌 루이스 레이 강의 생태계를 훼손하는 것이 분명해지자 연방 정부, 주 정부, 지방 정부가 나서서 모래 채취업체를 엄중 단속했다. 곧 대다수의 광산들이 문을 닫았다. 샌디에이고의 콘크리트 업체들은 지역 안에서 모래를 구할 수 없게 되자 인근에 있는 멕시코의 바하칼리포르니아 주에서 모래를 수입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그 주에는 합법 광산과 불법 광산이 급격히 늘어나게 되었다. 이 업체들이 강바닥에서 모래를 마구 퍼나르는 통에 바하칼리포르니아 주에서는 건설용 모래가 부족해졌고, 마을 주민들은 모래 채취 때문에 아이들이 호흡기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며 거리 시위에 나섰다. 2003년, 멕시코 정부는 어쩔 수 없이 캘리포니아 주에 대한 모래 수출을 일시적으로 금지했다. 이후 상황은 다소 진정세에 접어들었지만 지역 언론에 따르면, 불법 모래 채취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p.296-297)

 

 환경을 해치는 기업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런 기업들이 생산하는 석유나 모래 같은 자원은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하다. 골재업계 전문가들은 곧잘 "선무당 같은 지역 활동가"나 "무엇이든 모조리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불만을 털어 놓는다. 골재업계 전문가들의 말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현대식 생활의 편리함 속에서 자란 사람치고 그런 생활을 포기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석유나 가스가 없다면 자동차나 트럭도 없을 것이며, (풍력 발전소나 태양열 발전소를 늘리지 않는 한) 사용 가능한 에너지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모래가 없다면 현대적인 도시나 현대적인 생활방식은 누릴 수가 없다. 지구는 천연자원을 순순히 내주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환경에 피해를 주고 변화를 가하지 않는 한, 채굴 작업은 불가능하다. 제아무리 70억 인구 중의 일부라고 해도 그들이 지구에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고서 일정 수준 이상의 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식의 태도는 위선이거나 순진무구한 생각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로 생각해야 할 것은 적정선을 어디에 둘지의 문제이다. 어느 곳에서 어느 정도의 피해를 감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p.315-316)

 

 

인생의 특별한 관문 / 폴 터프 / 글항아리

 

 벤은 대학 입시를 치르면서 특이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사회계층과 대학 교육의 관계를 독특한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인맥 좋은 몇몇 유력 인사가 벤에게 호감과 신뢰를 갖고 자기 일처럼 돌봐준 덕분에, 벤은 권력과 재력을 갖춘 특권층이 대학 입시를 어떻게 준비하는지 용케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리고 벤은 나중에 솔직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 벤은 자기가 "엄청난 행운아"라고 하면서 도와준 사람들에게 고마워했다. 하지만 이런 말도 덧붙였다. "그런데 나 말고 다른 애들은? 내가 누구를 배신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겼어요. 저는 정말 운 좋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벗어났지만, 어째서 제게만 평평한 운동장이 주어졌을까요? 그걸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어요. 어째서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제가 이런 행운을 누리게 됐을까요? 왜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이런 혜택을 더 많이 당연하다는 듯이 받는 걸까요?" (p.146)

 

 회사에서 지원자를 이렇게 분류하는 이유는 최상위권 대학 입학처에서 신입생을 제대로 선발하고 있을 것이라는 관념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일류대학을 졸업하려면 그 전에 일류대학에 입학해야 한다. 리베라 교수가 만나본 채용 담당자들은 10대에 불과한 시기라 해도 일류대학에 합격했다는 사실 자체가 지원자를 판단하는 데 많은 정보를 준다고 입을 모았다. 가령 일류대학에 합격했을 정도면 당연히 똑똑할 테고 일머리도 좋을 테고 힘든 업무도 척척 해낼 것이라고 기대한다. 대학에 와서 얼마나 열심히 했고 무엇을 얼마나 배웠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대학 입시 결과다. "일류 학생이 일류대학에 가는 겁니다." 어떤 변호사가 리베라에게 한 말이다. (p.195)

 

 엘리트 회사에 채용되려면 만능 스포츠맨이 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이야기도 리베라는 들었다. 스포츠 종목도 중요했다. 채용 담당자들은 대체로 레슬링이나 농구, 축구처럼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스포츠를 했던 지원자는, 제아무리 수준이 높아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라크로스나 필드하키, 테니스나 스쿼시, 조정 경기처럼 특수 장비 또는 비싼 입회비 때문에 진입 장벽이 높은 스포츠를 했던 지원자를 선호했다. 물론 리베라 교수가 지적했듯이, 이런 스포츠 종목들은 부자와 중상류층 백인들의 전유물이다. 그리고 보통 이런 종목을 하려면 중학교 혹은 그보다 어린 나이부터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도 상당히 많은 시간과 비용을 쏟아부어야 한다. (p.197)

 

 이들은 빈곤층 학생들이 기회를 얻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공급(대학) 측에서, 특히 대학 입학처에서 진입 장벽을 높였기 때문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입학관리를 담당하는 실무자들은 엘리트 명문대학에 지원할 자격이 충분한 학생이 빈곤층에도 꽤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해마다 그런 학생들을 손수 탈락시키기 때문이다. 입학사정관들이 우수한 빈곤층 학생을 뽑지 않는 것은 대학 재정이 빠듯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저소득 가정/상위권 성적' 학생보다 '고소득 가정/중하위권 성적' 학생, 즉 CFO-특화 학생들을 찾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다. 그것이 대학에서 예산을 짜는 방법이자, 수지타산을 맞추는 방법이다. (p.234)

 

 TIP의 성공을 경험한 후, 로드는 교수로서 그리고 졸업률 책임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전에는 자기 수업에서 낙제생이 나오면 항상 다른 누군가를 탓했다. 학생이 수준 낮은 고등학교 출신이거나, 가정사가 불행하거나, 학생 자신에게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어떤 학생이 자신의 수업에서 낙오했다면, 그것은 자신이 그 학생을 방치했기 때문이었다. (p.293)

 

 

누구도 멈출 수 없다 / 멜린다 게이츠 / 부키

 

 결혼을 할지 말지, 한다면 언제 누구와 할지를 결정할 권리. 학교에 갈 권리. 자기 돈을 쓸 권리. 스스로 예산을 짤 권리. 사업을 시작할 권리. 대출을 받을 권리. 재산을 소유할 권리. 이혼할 권리. 병원에 갈 권리. 공직에 출마할 권리. 자전거를 탈 권리. 차를 운전할 권리. 대학에 갈 권리. 컴퓨터를 배울 권리. 투자자를 찾을 권리. 이 모든 권리가 일부 지역의 여성들에게는 여전히 부정되고 있다. 때로는 법적으로 금지되고, 허용되더라도 여성에 대한 문화적인 편견 때문에 여전히 부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느 마을 근처를 차로 이동하면서 보았던 한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앞뒤로 아이를 하나씩 안고 업고, 머리에는 장작더미를 이고 있었다. 그는 신발도 신지 않은 채로 먼 길을 걸어온 것이 분명해 보였다. 반면에 남성들은 슬리퍼를 신었음은 물론, 머리 위에 장작을 이지도 않고, 안고 업은 아이들도 없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여자들이 더욱더 많이 보였고, 그럴수록 그들의 삶이 왜 그런 모습일 수밖에 없는지 이해하고 싶어졌다.

 

 가장 어리둥절했던 것은 우리가 이런 문제에 대해 너무나도 무관심하다는 사실이었다. 빌이 자주 드는 비행기 사고의 예시를 보자. 비행기 사고가 일어나 300명이 사망하고 그들의 가족이 비통함에 빠지면 모든 신문에 이 사고에 대한 기사가 실린다. 같은 날 3만 명의 아이들이 사망하고 그들의 가족이 비탄에 빠져 있는데도, 기사 한 줄 실리지 않는다. 가난한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즉 부유한 나라에서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이 아이들의 죽음을 알 수 없다. 내 양심에 가장 충격을 주었던 것은 바로 이 사실이었다. 수백만 명의 아이들이 가난하기 때문에 죽어 가는데, 그들이 가난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 소식을 들을 수조차 없다는 것.

 

 비록 본인은 모르겠지만 어머니도 내 선택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내게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다. "스스로 삶의 목표를 세우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대신 네 삶의 목표를 세울 거야."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로 일정을 채우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로 나의 일정이 채워질 것이다.

 

 2019년 현재 약 7억 5000만 명의 사람이 극빈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1990년의 18억 5000만 명에서 많이 줄어든 수치다. 정책 입안자들은 극빈 상태에 있다는 것을 누군가가 하루에 1.9달러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라 이해한다. 그러나 이 숫자들은 그들의 삶이 얼마나 절박한지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극빈이라는 것은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 해도 그 덫에서 헤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절대 벗어날 수 없으며 노력은 무의미하다. 그들은 끌어올려 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서 버려졌기 때문이다.

 

 극빈은 하루에 1달러로 연명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이 죽어 가는 순간에도 며칠씩 걸려 병원에 가야 하는 것, 목숨을 구해서가 아니라 시신을 마을로 돌려보내 줘서 의사를 존경하는 그런 것이었다.

 

 전달 시스템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사람들 옆에서 새로운 도구나 방법을 사용하도록 가르치고 독려하며,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쥐여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전달 시스템이다. 이는 중요하지만 꽤 복잡한 일이다. 빈곤, 거리, 무지, 의심, 낙인, 종교적・성적 편견 같은 장애물들을 우회해야 할 때도 있다.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하고 있고, 어떤 것을 믿고, 어떤 장벽에 직면해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생명을 살릴 도구나 기술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전달 시스템이야 말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에 사크샴은 우수한 학생들을 모아 팀을 꾸렸다. 이들은 6개월 동안 지역 사회에서 함께 지내며 출산과 관련된 기존의 관습이나 미신 등을 파악했다. 비슈와지트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그들의 잔은 비어 있지 않습니다. 당신의 생각을 그들의 잔에 마구 쏟아부을 수는 없어요." 만약 여러분이 지역 사회 특유의 관습에 숨은 의미와 신념을 무시하고, 그들의 가치관과 관심을 벗어난 의견을 제시한다면,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그 어떤 말도 듣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회피하고 싶은 감정을 유발하는 사람들에게 낙인을 찍고 그들을 주변부로 밀어낸다. 수많은 노인, 약자, 병자, 빈자들이 소외되어 주변부로 밀려나는 이유는 그것이다.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는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자질을 가진 사람들을 밀어내는 경향이 존재한다. 때로는 자기 것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자질들을 근거도 없이 특정 집단에게 돌리며 그들을 밀어낸다. 말하자면 자기 안에 특정 자질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남을 이용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지배적인 집단이 인종과 종교가 다른 집단들을 사회 주변부로 밀어내게 된다.

 

 남보다 나은 상황에 있다면 겸허한 마음으로 우월감을 버리고, "나는 타인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말해야 하지만, 이는 자존심에 상처가 되는 일이다. 그러는 대신 우리는 타인을 배제시키려는 욕구를 정당화할 변명들을 만들어 낸다. 그리하여 사실 자신의 특권과 오만을 지키고 있는 것일 뿐이면서, 그것이 능력이나 전통의 문제라고 말한다.

 

 가족계획은 모든 사람이 가진 이런 욕구들을 충족시키는 데 있어 더없이 중요하다. 사는 곳이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용기 있는 여성 덕분에 이 메시지를 마음 깊이 각인시킬 수 있었고, 그의 고통이 재단 사업에 전환점을 가져다주었다. 누군가 내게 가혹한 진실을 이야기하면, 나는 그가 자신만큼 대담하지 못한 다른 이들의 목소리까지 대신하는 것이라 확신한다. 그래서 나는 그 목소리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게 되고, 다른 사람들도 내내 같은 말을 하고 있었음을, 그저 목소리가 작았을 뿐임을 깨닫게 된다. 사실은 그동안 내가 충분히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에 듣지 못한 것이었다.

 

 

똥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진지하게 / 로즈 조지 / 카라칼

 

 보통 인간은 자기 일생에서 평균 3년 정도의 시간을 화장실에서 보낸다.

 

 아이들은 재래식 화장실 모델이 전시된 곳 맞은편에 있는 술랍 학교의 학생이었다. 이 학교가 특별한 이유는 학생 중 3분의 2가 수거자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술랍 학교에서 교육받은 아이들은 부모의 직업을 물려받지 않을 것이다. 무척 행복한 장면이지만, 그 배경에는 한 사람의 40여 년에 걸친 끈질긴 노력이 있었다. 분변 수거를 인도 문화의 수치로 여겼던 그는 화장실 문제를 해결하면 수거 문화도 바뀔 것으로 확신했다.

 

 영국과 가장 가까운 나라의 수도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자전거 대여, 센 강변의 인공 해변 조성과 같은 여러 기발한 사업으로 유명한 베르트랑 들라노에 시장은 공중화장실에 주목했다. 2006년, 도시의 모든 무인 공중화장실을 무료화했다. 이후 석 달간 이용자 수는 240만 명에서 800만 명으로 증가했다. 대신 노상 방뇨 벌금을 500유로로 올렸다. 하지만 벌금 인상과 무료 화장실은 긍정적 효과를 발휘하진 못했다. 파리에서 럭비 월드컵이 열렸을 때 많은 파리지앵 남성들은 근처에 62개나 되는 공중화장실을 놔두고 시청 건물에 노상 방뇨를 했고, 이에 들라노에 시장은 크게 실망했다. 결국 시장이 꺼내든 무기는 '노상 방뇨 방지 벽'이었다. 정교하게 설계된 각도로 기울어진 노상 방뇨 방지 벽에 소변을 보면, 물줄기가 소변을 보는 사람을 향해 그대로 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