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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충격적인 뉴스가 있었다.

 

 사실 이런 뉴스에 '충격적인'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 자체가 참 기만이다. 충격은 무슨 충격. 우리는 이와 비슷한 뉴스를 수도 없이 접해왔다. 하지만 '충격'을 받고 '분노'하는 것도 그때뿐. 비슷한 뉴스는 매년, 매달 반복되며 심지어 보도조차 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할 것이다. 그래도 세상은, 그리고 우리는 변하지 않는다. 이렇게 좌절과 죄책감 근처를 이리저리 오가다, 『임계장 이야기』를 만났다. 최근 이 사건과 맞물려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이었다.

 

 나는 퇴직 후 얻은 일터에서 '임계장'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는 '임시 계약직 노인장'이라는 말의 준말이다. 임계장은 '고・다・자'라 불리기도 한다. 고르기도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쉽다고 해서 붙은 말이다. 고용주들에게 이 고다자 임계장들은 시급만 계산해 주면 다른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매력적인 노동력이다. 석 줄짜리 구인 광고를 내면 일자리를 원하는 노년의 노동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고용주는 이 중에서 "고분고분한 자, 뼈와 근육이 튼튼한 자"를 고르기만 하면 된다. (p.7)

 

 이 빌딩에 근무하는 사람의 90퍼센트는 단기 비정규직이다. 용역 회사의 미화원, 우리와 같은 주차 관리원 겸 경비원, 콜센터 상담원, 인터넷 쇼핑 업체의 텔레마케터들, 그리고 보험회사의 설계사 등 모두가 비정규직들이다. 이제는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훨씬 많은 세상이 된 것 같다. 하기야 비정규직을 합법적으로 쓸 수 있는데, 휴가 챙겨 줘야 하고 상여금 줘야 하고, 아프면 치료해 줘야 하고, 자르기도 어려운 정규직을 뽑아야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이 빌딩을 관리하는 용역 회사의 비정규직만 해도 72명에 이른다. 거의가 백발인 고령의 노인들이다. (p.146)

 

 우리나라에서 노년의 노동자들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보통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다. 나는 작년에 인천에서 잠실로 8개월 동안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매일 첫차에 가까운 차를 탔었는데, 그 어두컴컴한 새벽에도 언제나 지하철엔 사람이 한가득이었다. 그리고 절반 이상이 노인이었다. 뉴스에서 고민도 없이 흔하게 다루는, 할 일이 없어 무료로 지하철을 타는 노인들이 아니었다. 세상이 깨어나기도 전에 마쳐져야 하는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었다. 아침에 건물에 들어갈 때면 언제나 누군가는 경비를 서고 있었고, 누군가는 주차장을 관리했으며, 누군가는 청소를 하고 있었다.

 

 이런 험한 직종은 젊은 사람들이 지원하지 않는다. 지원했더라도 2, 3일 하다가 견디지 못하고 나가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젊은이들이 견뎌 내지 못하는 일과 기피하는 일은 고령자의 차지가 된다. 젊은이가 못 견디는 일을 노인들은 견뎌 내기 때문이다. 견딜 만해서가 아니다. 견디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p.250)

 

 시급 노동자의 최저임금이 조금 오르자 고용주들은 업무량은 그대로인데도 인원을 줄이고 또 줄였다. 한 사람에게 두세 사람 몫을 하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쉬지도 못하는 휴게시간을 대폭 늘림으로써 무급의 노동시간을 늘려 가고 있다.
 서울 평화시장에서 하루 16시간씩 미싱을 돌리던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보듬어 안고 분신했다. 전태일 시대의 가혹한 노동은 현 시대에 단기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이 시대의 비정규직이 없어지려면 또 얼마나 많은 전태일이 스스로를 태워야 하는 것일까? (p.251)

 

 물론 이분들의 노동 환경이 절대 좋을 리 없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 내 미래도 막막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걱정할 여유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이 책으로 접한 그들의 노동 실태는 상상 이상이었다. 저자의 은퇴 후 첫 일자리였던 버스 회사의 탁송 및 배차 업무는 한 사람은커녕 세 사람이 해도 힘들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모든 일을 혼자 담당해야 했다. 게다가 일을 하다 크게 다쳐 무급 휴가를 달라고 하자, 회사는 일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라며 해고를 했다.

 

 그들은 걸핏하면 나한테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산재를 입은 직원을 치료해 주는 것은 그들이 알아야 하는 세상 물정이었다. 그들은 세상 물정이라는 말로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만들어 버렸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소송을 하든, 노동청에 진정을 하든 법에 호소한다면 이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긴다 해도 회사는 더 이상 다닐 수 없을 것이고 내가 얻는 이득도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자른 사람이 얼마나 될까. (p.45)

 

 코로나19 예방 수칙 중 하나는 '아프면 쉬기'이다. 이 얼마나 한가한 소리인가. 정규직 직장인들조차 지키기 참 어려운 일인데, 비정규직 시급 노동자 대부분에게 휴식은 곧 해고다. 저자 역시 다쳐서 해고되었지만 살아가기 위해선 다시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그렇게 그는 18명의 후보를 제치고 아파트 경비원이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파트 경비원을 하려 한 내게 세상은 준엄한 경고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대체 아파트 경비원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목숨까지 내던지게 되었을까? 그가 견디지 못한 "민원과 폭언"이 무엇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순간적 분노로 저지른 일은 아닐 것이다. 켜켜이 쌓인 울분이 퇴적층의 가스로 농축되어 있다가 불티가 던져지자 한순간에 타오르고 만 것이리라. 만일 어제 아침에 이 뉴스를 봤더라면 나는 아파트 경비원으로 지원할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p.64)

 

 하지만 첫 퇴근 후 그는 뉴스에서 한 아파트 경비원의 자살 사건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는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그 "민원과 폭언"이 무엇인지, 첫날 선임자가 말했던 "등쌀"과 "오래된 아파트의 잡역"이 무엇인지 점차 깨닫는다.

 

 작은 공간이라도 보이면 바로 주차장이 된다. 불법 주차한 외부 차량이 너무 많아 경고 스티커를 몇 장 붙였다. 스티커를 붙여 놓으면 비단 그 차량뿐만 아니라 다른 불법 주차 차량에 대한 경고로서 효과를 발휘한다. 이내 사람들이 몰려와 스티커를 떼라고 아우성이다. 어르신을 문안하러 온 자녀의 '효도 차량'에 경비원이 겁도 없이 스티커를 붙였다며 욕을 한다. 그것은 저주에 가까웠다.
 "너 이 자식, 대대손손 아파트 경비나 해처먹어라."
 잠시 후, 이번에는 어느 할머니가 쫓아와 고함을 질렀다.
 "내 아들 차를 누가 박아 버리고 도망갔어! 너 뭐하느라고 그것도 못 봤어? 당장 박은 사람 찾아내!"
 외제차라면서 도망간 차를 못 찾으면 내게 수리비를 변상시키겠단다. 이럴 때가 제일 두렵다. 멱살을 잡히고 욕설을 퍼붓는 건 견딜 수 있으나 원인 불명의 파손에 대해 경비원 책임이라면서 견적서를 내밀면, 그것은 그저 견딘다고 해서 끝나지 않는다. 변상하라고 일주일 내내 다그치는 분도 있었다. (p.78)

 

 한가위에는 정이 넘쳐 난다. 그리고 정을 나누는 음식도 넘쳐 난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장만한 음식물은 음식물 찌꺼기라는 달갑지 않은 잔해를 남긴다. 명절이 되면 그런 음식물 찌꺼기가 종이 상자 안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버려진 과일 상자마다 온갖 음식물 쓰레기가 가득했다. 택배로 배달된 과일 상자의 표면에는 택배물의 수취인이 표시되어 있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고 생각되는 몇몇 세대를 방문했다. 노크를 하고 종이 상자에 음식물 쓰레기를 넣어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바로 험한 말이 날아왔다.
 "음식물 쓰레기가 너무 많아서 임시로 종이 상자에 담아둔 거예요. 나중에 음식물통에 버리려고 했어요. 왜 명절 아침부터 시비를 걸어요? 우리 그렇게 몰상식한 사람들 아니에요!" (p.88)

 

 여느 때처럼 음식물 쓰레기통을 수돗가에서 씻고 있었다. 갑자기 어떤 남자의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경비! 이 새끼, 너 전에 공기업에 근무했었다며? 거기서 국민 세금을 마구 쓰던 습관을 아직도 못 고쳤군! 주민들 피 같은 돈 들어가는 공동 수돗물을 펑펑 써? 이 새끼, 당장 잘라야 할 놈이네. 네가 버린 수돗물 값은 네 월급에서 까게 해주마. 너 오늘 아주 제대로 걸렸어."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음식물 쓰레기통 깊숙이 달라붙은 찌꺼기는 팔이 닿지 않아 수압을 세게 해서 물을 뿌려야 조금씩 씻겨 내려가게 된다. 실은 조금 전만 해도 설비 부장이 내가 음식물통 씻는 것을 보더니 물을 더 세게 뿌려서 제대로 씻으라고 타박을 주고 간 터였다.
 하지만 그의 기세가 너무 험해서 나는 시정하겠다고 했다. 그는 나를 세워 놓고 한 시간이 넘도록 훈계를 했다. (p.98-99)

 

 "자네는 경비원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네.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폐기물 더미에서 숨을 쉴 수 있겠는가?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초소에서 잘 수 있겠어? 사람이라면 어떻게 석면 가루가 날리는 지하실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겠는가? 자네가 사람으로 대접받을 생각으로 이 아파트에 왔다면 내일이라도 떠나게. 아파트 경비원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경비원은 할 수가 없어." (p.122)

 

 여기에 인용된 것은 아주 일부에 불과하며 충격적인 사건들이 한가득이어서, 책을 읽는 것조차도 너무 괴로울 지경이었다. 너무 화가 났다. 대체 사람이 사람에게 어쩌면 저럴 수가 있을까? 왜 이 세상은 이 모양일까?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까?

 

 하지만 선의를 가진 사람 몇 명이 이 책을 읽으며 안타까워한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없다. 저자가 책에서도 밝히듯, 그리고 우리도 충분히 경험했거나 상상할 수 있듯, 어느 집단에나 이상하고 악질적인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최근의 그 사건에서도 소수의 선한 사람이 있었지만 그들만으로는 경비원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다. 결국 필요한 건 시스템의 변화와 잘못된 행동에 대한 강력한 처벌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실현되기는 너무도 요원해 보인다.

 

 택시 하차장은 수천 대의 차량이 뿜어내는 배기가스와 아스팔트가 뿜어내는 지열, 그리고 차량 엔진에서 나오는 열기로 후끈거린다. 차량 사이로 여기저기 뛰어다니다 보면 매연과 분진을 종일 들이마시게 된다.
 입사 첫날, 나는 별생각 없이 미세 먼지 마스크를 지급해 달라고 요청했다. 직원이 멀뚱히 나를 쳐다보더니 돌아섰다. 등 뒤로 혼잣말이 들렸다.
 "염병…… 다 늙은 경비가 얼마나 오래 살고 싶어서……." (p.236)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최소한의 품위는 잃지 않고 살고 싶다. 그리고 모두가 그렇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하는 것조차 부끄럽다. 텅 빈 말이기 때문이다. 매일 허황된 바람을 허공에 외치고 있는 것만 같다.

 

 

임계장 이야기 / 조정진 / 후마니타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