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몸을 이야기하기 / 아서 프랭크 / 갈무리
체현된 경험에 대해 말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은 “정체성의 정치학(identity politics)”이라고 불리는, 서로 다른 맥락에서 서로 다른 의미를 갖는 용어의 한 측면이었다. 나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어떤 경험들은 특정한 지식을 전달하는 잠재력을 가진다는 주장이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어떤 지식은 특정한 관점으로부터만 도출 가능하며 그 관점은 개인의 몸의 위치(location)와 경험에 연관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관점으로부터 비롯된 견해는 소통될 수 있는 것이었다. 즉, 그것은 특정한 경험들을 공유하는, 그 위치에 있는 몸들에만 독점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이 그 상황에서 삶이 어떻게 보였는지를 알려주지 않는다면 그곳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은 그 관점에서 삶을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정체성의 정치학은 경험이라는 개념이 전문 지식에는 없는 특정 형태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장애인권리운동(disability rights movement)의 “우리 없이는 우리에 대한 것도 없다”라는 슬로건은 그러한 주장에서 더 나아가 이전까지는 전문가들의 독점 영역이었던 의사결정에 이러한 체현된 경험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p.13-14)
전문 지식은 질병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 방식을 형성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러한 전문 지식을 자신들의 자원으로 사용할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자신들이 전문 지식에 의해 수동적으로 기술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1970년대 초반 〈보스턴여성건강서공동체〉가 쓰고 이제는 세계적으로 번역된 고전인 『우리 몸 우리 자신』으로부터 내가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았는지를 깨닫는다. 그 책의 목적은 여성들이 전문 지식에 종속되었다고 느끼면서 전문 지식의 판단과 권고를 단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의학 전문 지식을 가용한 자원으로 삼음으로써 힘을 기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우리 몸 우리 자신』은 힘 기르기(empowerment)의 실천으로서 이름 붙이기(naming)를 강조했다. 그 책은 여성들에게 자기 몸의 각 부분에 이름을 붙여서 그 부분들이 눈에 보이고 친숙해지도록 만들라고 알려준다. 나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말하고 있는 이야기들의 유형에 이름을 붙이도록, 그리고 그들이 말하고 싶어 하고 말할 필요를 느끼는 이야기들을 할 힘을 기르도록 돕고자 했다. 나는 아픈 사람들이 의학적 서사를 자원으로 이용하면서도 그들의 삶이 의학적 이야기로만 표현되는 것으로 국한된다고 느끼지 않기를 바랐다. 내가 원한 것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다양해지는 것이었다. (p.16-17)
복원의 서사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내가 의료의 식민화라고 부르는 것―어떻게 전문의학이 자신의 어휘, 선호하는 태도, 시간성, 목적을 아픈 사람들의 경험에 부과하고자 하는지―을 인식하는 힘을 기른다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제도의학에 의해 제공되는 용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뚜렷한 매력과 이점을 가진다. 특히 갑자기 삶을 뒤바꾸는 질병을 진단받은 사람들은 그들의 경험을 조직할 일관된 서사를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내가 서사적 잔해라고 부르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의학은 첫째로 진단, 둘째로 치료 계획을 통해 그 잔해를 조직할 것을 권한다. 진단, 치료 계획, 그에 따라 예상되는 결과는 분명히 서사를 제공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위험이 따르는데, 의학적 서사는 아픈 사람이 경험하는 것을 너무 많이 빠뜨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의학적 이야기는 빈약하다. 그것은 삶을 어렵게 만드는 것과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포함하지 못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복원이 많은 사람에게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건들이 진행되면서 치료가 모든 사람을 질병 이전의 삶에 가장 근접한 상태로 복원시키지는 못할 것이며, 질병이 지속되는 상태에서 자아를 재창조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의료 서사는 빈곤한 자원이다. (p.20-21)
질병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질병이나 장애와 함께 더 오래 살아가게 됨에 따라, 의료는 그러한 삶에서의 의료 외적인 요구를 점점 더 수용하지 못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가들은 단지 정해진 만큼의 도움만을 줄 수 있다. 사람들은 그들 삶의 특수함에 형식과 의미를 부여하는 이야기를 할 필요를 느낀다.
이야기하기는 언제나 상처에서부터 시작해 왔고 치유의 한 형태였다. 사람들은 이야기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요구하지만 이야기 없이는 그들의 요구를 체계화할 수 없다. (p.26)
복원은 환자로서의 내 삶을 보여 준다. 의료 종사자들은 어떤 경험이든지 그 경험이 건강을 회복해 가는 과정의 서사 안에서 이해되기를 바랐다. 내게 일어난 일은 무엇이든 모두 건강이라는 성취할 수 있는 목표를 향해 가는 필수적인 단계로서만 이해될 수 있었다. 나는 낫고 싶었고, 그렇게 될 거라고 안심시켜 주는 말이 고마웠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회복은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그 특별한 순간에 겪고 있던 내 고통을 정확히 인식해야 했다. 나는 그러한 복원 서사에, 무엇보다도 의사를 주인공으로 세우고 나를 그 영웅적 업적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방식에 점차 저항해 나갔다. 나는 분명 그 이야기에 속해 있었지만, 그것은 결코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없었다.
복원 서사에는 내 질병의 혼돈을 다루는 대목이 없었다. 혼돈에 해당하는 시기는 급속도로 악화하는 고환암이 처음에는 운동에 의한 부상인 근육 긴장으로, 이어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암은 아닌 듯한 어떤 알 수 없는 질환으로 오진받은 수개월의 시간이었다. 이 혼돈은 내 삶을 통제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며 점점 심해지던 고통과, 심각한 병이 아니라고 했지만 훗날 오진으로 판명된 의사들의 주장 사이의 괴리에서 기인했다. 또한 혼돈은 내가 그처럼 분명하게 느끼는 것을 보지 못하는 다른 이들의 무능력과 마주할 때 생겨나는 일종의 폐소공포증에서 기인했다. 만성 질환, 그중에서도 다발성 경화증을 앓고 있는 많은 사람이 의료 진단의 불확실성과, 실제로 증세가 얼마나 심각한지 의사가 확인해 주었을 때 느낀 안도감에 대해 썼다. 즉, 심각한 병이라는 진단만큼이나 치명적인 것이 바로 진단의 불확실성인 것이다.
내가 경험한 혼돈도 상당히 괴로운 것이었지만, 불행에 또 다른 불행이 따라오는 것만 같은 상황에서 마치 덫에 걸린 것처럼 느끼는 수많은 다른 사람들의 혼돈만큼은 아니었다. 병 때문에 직장을 잃고, 집에서 나앉을 위기에 처하고, 이어서 다른 가족 구성원까지 병에 걸리는 식의 불행 말이다. 하지만 나도 혼돈이 강요하는 침묵과 절망을 안다고 할 만큼은 겪어봤다. 혼돈 속에서 사는 이들은 미래가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자기 이야기를 꺼내기가 어렵다. 삶은 끊임없이 현재 시제의 습격을 받아 궁지에 몰린다. 서사가 시간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라면, 혼돈은 반-서사인 것이다. (p.32-34)
이 책에서 아픈 사람들은 상처 입은 스토리텔러들로 제시된다. 나는 질병에 대한 지배적인 문화적 관념이 수동성―아픈 사람이 질환의 “희생양”이자 돌봄의 수혜자라는 것―에서 능동성으로 옮겨 가기를 바란다. 아픈 사람은 질병을 이야기로 만듦으로써 운명을 경험으로 전환시킨다. 자신의 몸을 타인들로부터 분리시키는 질환이, 이야기 속에서는 서로 공유하는 취약함을 통해 육체들을 연결시키는 고통의 공통분모가 된다. (p.38)
피에르 부르디외의 인류학적 연구에 인용된 북아프리카 여성은 질병의 전-모던(pre-modern) 경험이 모더니티로 이행한 것을 보여 주는 좋은 예인데 이러한 이행은, 단순하게 말하자면, 유용하다. 부르디외가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받아 적은 내용을 담고 있는 다음 인용은 전-모던, 모던, 그리고 포스트모던 간의 근접성과 중첩성을 보여 준다. 그 여성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옛날에 사람들은 질병이 뭔지 몰랐어요. 사람들은 잠자리에 들어서 죽었죠. 우리가 간, 폐, 위 같은 단어들을 배운 건 겨우 최근의 일이에요. 그리고 나는 그것들이 뭔지 몰라요!”
물론 전-모던 시대의 사람들은 질병과 그 치료법에 대하여 풍부한 서술 어구들을 가지고 있었다. 전통 의술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대단히 구체적이다. 그러나 나는 화자가 말을 맺을 때의 느낌표를 그녀가 압도당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녀는 말 그대로 그것들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그녀가 말하는, 사람들이 겨우 최근에서야 알게 된 전문적인 의료 용어들은 그녀의 경험을 압도하는데, 그 용어들은 다른 어딘가에서부터 왔기 때문이다. 모더니티로의 이행은 의료 문화로의 경계 건너기를 의미하는데 이러한 의료 문화는 그 여성의 질병 경험에 있어 낯선 것이다.
질병의 모던(modern) 경험은 대중의 경험이 치료의 복잡한 구조를 포함하는 전문적 기술에 의해 대체되었을 때 일어난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잠자리에 들어서 죽거나 치료에 재주가 있는 가족 구성원이나 이웃에 의해 돌봄을 받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제 그들의 고통을 증상으로 해석하며 낯설고 위압적인, 전문용어를 사용하는 전문가들을 찾아가 돈을 낸다. 환자로서 그들은, 대부분의 경우 그들이 읽을 수도 없고 읽도록 허락되지도 않은 의료차트에 항목들로서 축적된다. 차트는 질병의 공식적인 이야기가 된다. 다른 이야기들은 흩어져서 퍼진다. 아픈 사람들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의사로부터 들은 것을 이야기하고,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비슷한 경험들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응답한다. 전문적인 것과 일반적인 것 모두에 있어 질병은 이야기들의 순환이 되지만, 모든 이야기가 동등한 것은 아니다. (p.56-58)
아픈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가능성―심지어 필요성―은 이러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없는 바로 그 모던 시대에 등장해서 자리를 잡았다. 나 자신의 암 투병 경험을 썼던 이야기의 말미에서, 나는 나처럼 잘 나았지만 절대 완쾌된 것으로는 볼 수 없는 사람들을 가리키기 위하여 “회복사회”라는 표현을 썼다. 이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지만,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공항의 검사대에서 내 뒤에 있던 남자가 자신이 심박조율기를 가지고 있다고 신고했을 때, 갑자기 그의 보이지 않는 “상태”가 문제로 떠올랐다. 일단 금속 탐지기를 지나자 그의 “회복” 상황은 배경으로 사라졌다.
회복사회의 구성원들은 암을 앓았던 사람들, 심장 회복치료를 받으며 사는 사람들, 당뇨병 환자, 알레르기와 환경적 민감함 때문에 식이요법이나 다른 자기관리를 해야 하는 사람들, 인공기관과 기계적 신체조율기와 함께 사는 사람들, 만성질환자, 장애인, 폭력과 중독으로부터 “회복 중인” 사람들, 그리고 이 사람들을 위해 걱정과 또 하루를 잘 지냈다는 기쁨을 공유하는 가족들을 포함한다. (p.61-62)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자신들의 고통이 의학의 일반적이며 단일화하는 시각으로 환원되는 것에 대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의혹을 표현―그들이 의혹을 얼마나 명료하게 표현하고 그 의혹을 어느 정도로 행동에 옮기는지는 다양하지만―한다. 의학을 내부에서부터 알고 있는 회복사회의 구성원들은 의학적 서사 내에서 자신들의 위치에 대해 질문한다. 그들의 질문은 정치적으로 식민화된 사람들에 비유함으로써 뚜렷해진다. 가야트리 차크라바티 스피박에 의하면, 식민화된 사람들은 “주인텍스트(master text)가 어떻게 스스로를 구성하는 데 우리를 필요로 하는지,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 필요를 인정하지 않는지를 살펴보는” 노력을 한다. 의학이라는 주인텍스트가 인정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구강암 때문에 턱과 얼굴에 광범위한 재건 수술을 해야 했던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의 치료는 대단히 특별한 것이어서 그의 외과의는 그에 관한 의학 학술지 논문을 재건 과정의 단계를 보여 주는 사진들과 함께 출판했다. 그가 그 논문에 관해 내게 말하고 그것을 보여 주려고 했을 때, 나는 그 논문이 실제로 그에 관한 것이라고, 즉 이 절단―그것이 그의 삶을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면―의 시련 전체에 걸친 그의 고통에 대한 것이라고 상상했다. 그 논문을 봤을 때 나는 그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아마도 그 의사와 학술지는 그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이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설령 그의 사진들이 실렸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리하여 “그의” 논문에서 그는 단지 몸일 뿐인 어떤 사람으로, 사실상 어떤 사물로, 체계적으로 무시되었다. 의학적인 목적에서 보자면 그 논문은 전혀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외과의의 논문이었다. 이것이 바로 스피박이 말하는, 의학 학술논문이라는 주인텍스트가 고통받는 개인을 필요로 하면서 그 고통의 개별성은 인정하지 않는 식민화다. (p.67-68)
인간 존재로서 우리의 가장 어려운 의무 중 하나는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아픈 사람들의 목소리는 무시되기 쉽다. 이러한 목소리들은 종종 어조가 흔들리고 메시지가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흔들림과 뒤섞임은 건강한 사람들이 읽도록 편집자들이 조정해야 하는 구어 형식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이러한 목소리들은 우리 대부분이 스스로의 취약성을 잊어버리기 쉬운 체현의 조건을 보여 준다. 듣는 일은 어렵지만 근본적으로 도덕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포스트모던 시대에 최고의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듣기의 윤리가 필요하다. 나는 타자를 귀 기울여 들음으로써 우리 자신을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한다. 이야기에서의 증언의 순간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상호성을 확고히 하는데, 이때 우리는 서로를 위해 존재한다. (p.91)
사람들은 자신들의 몸을 통제할 수 있는 정도에 따라 스스로를 규정한다. 이러한 능력이 예측 가능하다면 행위의 문제로서의 통제에는 자의식적인 관찰이 필요 없다. 그러나 질병은 그 자체로 예측 가능성의 상실이며, 이는 또 다른 상실들을 가져온다.―요실금, 숨 가쁨 혹은 건망증, 떨림과 발작, 그리고 아픈 몸이 겪는 여타의 모든 “실패들”. 아픈 사람들 중 일부는 이러한 우연성에 쉽게 적응한다. 다른 사람들은 통제의 위기를 경험한다. 질병은 통제를 상실한 채로 살아가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p.99)
낙인에 대한 어빙 고프먼의 고전적인 연구는 사회가 그 구성원들에게 높은 수준의 몸의 통제를 요구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러한 통제의 상실에는 낙인이 찍히며, 통제의 결여를 다루기 위한 특별한 작업이 요구된다. 고프먼은 낙인이 찍힌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낙인에 직면하여 반응을 보여야 하는 사람들에게도 낙인은 당황스러운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므로 낙인이 찍힌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은 단지 통제가 기대되는 상황에서 하지 못함으로써 부끄러워지는 것을 피하는 것뿐만이 아니다. 그 사람은 또한 다른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는 것을 피해야 하는데, 그들은 몸의 통제를 상실한 광경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p.100)
아프리카로의 첫 의료 선교 원정 및 1차 세계대전 당시 적국인으로 감금되는 동안 발생한 심각한 질병의 투병기가 지난 후 1921년에 슈바이처는 그의 가장 유명한 구절 중 하나가 된 글을 썼다.우리 중 누구라도, 고통과 불안이 정말로 무엇인지를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배운 사람이라면, 자신이 예전에 받았던 것과 마찬가지의 도움을 육체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받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는 이제 자기 자신에게만 속하지 않고 고통받는 모든 이들의 형제가 되었다. 인도적인 의료 봉사를 요구하는 것은 이러한 “고통의 표식을 짊어진 사람들의 형제애”다….
이 “형제애”에 대한 몸의 감각을 지칭하는 나의 용어는 이항(二項, dyadic)의 몸이다. 슈바이처와 동시대인이었던 마르틴 부버는 나무를 인식하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그 나무는 나의 맞은편에 실재하고 있으며(is bodied), 내가 그 나무와 연관되어 있듯이 그것도 나와 연관이 있다.” 이항의 관계는 설령 타자가 내 몸 밖에, “나의 맞은편에” 있는 몸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그 몸과 연관되어 있듯이 그 몸도 나와 연관되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질병은 이항의 몸이 되도록 하는 특정한 시작점일 수 있다. 왜냐하면, 아픈 사람이 겪고 있는 고통은 완전히 개인적인―나의 고통은 나만의 것이다―동시에 공유되기 때문이다. 아픈 사람은 자기 주변에, 자신의 이전과 이후에, 자신과 똑같은 질병을 앓으면서 온전히 그들만의 것인 고통을 겪은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겪는 것을 알게 된다. 이야기하기는 하나의 매개체로 작동하는데, 이야기하기를 통해 이항의 몸은 자신이 겪은 고통을 다른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동시에 무엇이 그 몸을 괴롭히는지를 다른 사람들이 인지한다고 안심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야기하기는 이항의 몸에서 특권을 갖는 매개체이다. (p.107-108)
의학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일항의 몸을 권장한다. 병원은 모든 유의미한 사생활을 제거할 만큼 환자에게 가까우면서, 동시에 모든 유의미한 접촉을 제거할 만큼 먼, 그런 거리에서 환자를 치료한다. 어떤 경우에는 대기실에서 혹은 룸메이트 사이에서 친교가 형성되기도 한다. 그러나 암센터를 관찰한 결과, 환자 사이의 접촉은 대부분 미미하고 일시적이다. 환자들은 집합적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병원 직원과 관계를 맺는데, 이러한 양식의 관계 맺음은 의료 공간이 어떤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고 그 안에서 어떠한 움직임이 일어나는지에 따른 결과이다. 모더니스트 행정 체계는 일항의 몸을 선호할 뿐 아니라 의료 실천의 토대를 이루는 질환 모델은 다른 어떤 종류의 몸의 개념도 인정하지 않는다.
의학의 일항의 몸은 교육이나 시장에서 개인의 성취에 중점을 두는 모더니스트 사회와 잘 연계된다. 그러므로 이항의 몸은 타인들과의 다양한 관계 속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윤리적 선택을 표상한다. 이 선택은 다른 몸들을 위해 몸이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는 것은 개인의 자아와 몸을 “고통의 공동체”(슈바이처의 경구를 현대식으로 표현하자면) 내에 위치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는 연속체들은―몸 결합의 변화하는 특성에서 드러나듯이―직선이 아닐 뿐만 아니라 윤리적 선택의 이념형들이기도 하다. 이항의 몸으로 살기로 한 선택은 몸의 윤리를 지향한다. 이항의 몸은 서로를 위해 존재한다. 그 몸은 다른 몸을 위해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찾기 위해 존재한다. 이항의 몸은 단순히 개념적인 윤리적 이상이 아니라 삶을 겪어 온 실재다. 슈바이처는 고통의 공동체의 이상을 실제화하는 것에 자신의 삶과 몸을 헌신했던 사람으로서 글을 썼다. 그러나 타자를 위해 행동하는 것은 이 행동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는 나아갈 수 없다. 슈바이처는 계속해서 글을 쓰기 위해 의료 행위로부터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떨어져 지냈다. (p.109-111)
대중문화와 사회학에서 복원 서사의 배후에는 의학이 있다. 의학이 치료를 유일한 목적으로 추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대단히 많은 연구가 있다. 그러므로 나는 어떤 확실한 임상적 출처를 간접적으로 다루어서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의사인 한 친구가 괴로워하면서, 암으로 죽어가는 자기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내게 해준 적이 있다. 그 의사의 괴로움은 환자가 죽어간다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너무 젊은 나이에 죽는다. 그가 싫어했던 것은 그의 환자가 의료 전문가들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었는데, 그 세계의 전문가들은 그 환자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어떤 성공 가능한 치료법으로도 이어질 수 없는 수많은 검사를 계속했다. 물론 그러한 치료가 소용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의 판단이고 전문가들은 다르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정말 많이 말해졌고 계속해서 다시 말해지고 있는 똑같은 이야기가 있다. 치료에 집착하는 의학의 관점에서 그 여성 환자의 이야기는 다른 어떤 서사도 되지 못한다. 방대한 재원이 들어갈 뿐만 아니라, 의사인 내 친구의 입장에서 더욱 중요한 문제는, 그의 환자가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죽음으로 가는 길을 찾도록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복원에 대한 의학의 희망은 다른 어떤 이야기도 설 자리가 없도록 만든다. (p.186-187)
아픈 사람처럼, 노숙인은 양가성을 표상한다. 힐피커는 워싱턴 D.C.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에 대해 기술하면서 “건강의 주요한 문제는 질환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의학적 범위 바깥에 있는 아픔의 삶들에 대하여, 힐피커는 파슨스의 환자 역할을 전치시킨다. 그의 관찰에 의하면, “엄격히 의학적인 요소들이 치유에 가장 중요한 경우는 거의 없다”. 그가 내린 진단은 내가 “버거운 고난과 고통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사회는 사회적 진단보다는 의학적 진단을 선호한다. 의학적 진단은 치료를 승인하는 반면, 사회적 진단은 그 사회체가 무엇을 자신의 일부로 포함시키는지에 대한 전제들이 크게 변화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의료 전문직은 고칠 수 있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극빈층과 중환자들은 전체 치료 대상 중 주변적 위치에만 놓인다. 힐피커는 이러한 선호가 의대에서 어떻게 강화되는지를 기술한다. 그의 강연 후에 “흰색의 긴 가운을 입은, 소아과 수술 분야의 저명한 교수”가 빈민층을 위한 그의 의료 실천이 그가 받은 의학 교육의 “낭비”가 아닌지 질문했다. 힐피커는 그가 하는 의료 실천의 조건에서 자신의 과학적 기술을 발휘할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또한 그 교수가 “자신의 학생과 레지던트 들이 내가 하는 일과 같은 ‘쓸모없는’ 일을 선택함으로써 그들이 받은 교육을 ‘낭비’하지 않도록 설득하기 위해” 그 질문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나는 그 교수가 단지 이 특정한 의대생들에게만 경고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덧붙이고 싶다. 첫째로, 그 교수는 고칠 수 있는 것에 주목하고 그 나머지는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모더니스트 의료 기획을 옹호한다. 둘째로, 그 교수는 사회체의 분명한 경계들을 단언한다. 사회에는 의료 전문 기술을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마지막으로, 그 교수는 프리모 레비에게 그가 어떻게 탈출할 수 있었는지를 말했던 아이를 반향하고 있다. 힐피커가 기술하는 혼돈으로부터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 교수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혼돈의 몸의 진실은 다른 이야기들이 갖는 자만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혼돈의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들이 의존하고 있는 버팀목이 얼마나 빨리 쓰러져 버릴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혼돈의 한계는 그것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프레더릭 프랭크는 그 특유의 지혜를 담아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가난은 실존에 대한 종교적 태도에 상당하는 것일 수 있다. 빈곤, 기아, 전적인 굴욕은 실존을 부정한다.” 최근의 의료 저술가 중 가난의 비인간화의 효과를 가장 오래 꾸준히 바라보는 사람이 데이비드 힐피커다. 극도의 빈곤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질병은 혼돈이 아닌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p.235-238)
아트의 생존의 한 가지 메시지는 우리 중 누구도 타인의 증언에 대해 거리를 둔 구경꾼(spectators)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증언을 이끌어내서 그것을 기록하고 해석하여 궁극적으로 더 광범위한 독자들이 증언하도록 제시함으로써 아버지를 받아들이게 된다. 증언을 받아들일 의무는 포스트모던적이지만 포스트모더니즘만의 특징은 아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은 무엇이 받아들여지는지를 증인이 확신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아트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가 아버지의 증언을 존중한다고 하더라도, 그는 아버지의 덜 멋진 행동들을 알고 있으며 이것들이 전쟁 트라우마의 결과로 용납될 수 있는지 질문한다. 그는 증언과 책임의 수준들을 분류하고자 하지만, 의식은 절대로 경험에 대해 주권을 행사할 수 없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그 자신이 증언의 원으로부터 빠져나갈 수 없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증언은 다른 보고들과는 구별되는데, 단순히 증언을 접하는 사람들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증언은 다른 사람들을 그들이 목격한 것에 연루시킨다.
이러한 증언의 상호성은 하나의 소통하는 몸이 아니라 소통하는 몸들의 관계를 요구한다. 법정이라는 모델에 근거한 사고에 영향을 받아, 일반적인 화법에서 “증인”은 마치 증언하기가 독자적인 행동일 수 있는 것처럼 쓰인다. 증언하기는 언제나 관계를 함축한다. 나는 나 자신에게 늘 이야기를 하지만 나 혼자서 증언을 할 수는 없다. 이야기를 증언으로 만드는 것의 일부는 다른 사람에게 그 증언을 받아들이기를 요청하는 것이다. 증언은 증인이 소통하는 몸―우리 중 누구도 아직 되지 못한―이 될 것을 요청한다. 블라덱과 아트가, 각각 생존자와 예술가로서, 홀로코스트의 증언을 공유할 때 그들은 소통한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 서로가 소통하는 유일한 순간일 것이다. (p.287-288)
바다에서의 대학살은 케이의 몸에서도 일어난다. 몇 문단 뒤에 그는 이것을 “말 그대로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데니스 케이의 기품은 그 자신의 죽음 속에서 보편적인 박동을 듣는 데 있다. 그는 자기 자신이 파괴되는 순간에조차 완전히 살아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그의 개인적 에고인 “작은 마음”이 “큰 마음”으로 녹아들기 때문이다. 그는 조만간 죽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죽음이 청어가 떼를 이루고 먹히는 것과 동일한 봄철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낸시 메어스처럼, 그는 우리 모두가 죽을 것이고 그것은 괜찮은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p.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