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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 걸스 / 장수진, 김미연 / 에디토리얼

 

 이제 바다로 돌아간 남방큰돌고래 세 마리는 야생의 개체군과 무리를 이루어 다니며 대형을 짜서 물고기를 몰고 사냥한다. 때로는 소리를 지르고 꼬리로 수면을 때려 동료와 먹이 사냥 신호를 주고받거나, 물고기를 다 먹고 나서도 동료들을 위해 물고기 떼를 잡아 둘 수 있는 수준의 사냥 능력을 갖추었다. 예전에는 무서워하던 문어를 던지고 놀며 장난치는 여유도 생겼고, 같이 다니는 동료가 생겼으며, 짝짓기를 해 새끼를 낳아 기르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새끼를 낳은 다른 암컷 돌고래들과 함께 육아를 위한 무리를 이루기도 한다. 가끔 선박에 접근하여 선수파(배의 앞머리에 이는 파도)를 타기도 하지만 사람에게 의존하려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바다로 나간 후로 쭈욱, 4년여의 수족관 생활 때문에 바다로 돌려보내기엔 위험부담이 있다는 초기의 기우가 무색할 만큼 건강하고 자유롭게 지내고 있다.
 돌고래 방류는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그 순간을 함께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방류 행사장을 방문했고 수많은 기사가 뉴스를 장식했다. 그러나 방류의 전 과정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 중 하나는 돌고래들이 가두리를 나가던 그때가 아니라, 이후 거친 파도 사이에서 무리와 함께 이동하던 제돌이가 수차례 수면 위로 높이 뛰어오르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제 고향에서 야생 돌고래로서의 삶을 온전히 되찾았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던 순간의 장면이었다. (p.30)

 

 고래류의 서식지를 파악하는 일은 고래(혹은 돌고래)를 찾는 일에서 시작된다. 일단 찾고 나면 발견한 고래를 따라다니면서 이동 장소와 행동을 기록한다. 어떤 개체가 어느 시기에 어느 장소에서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정보들이야말로 한 종을, 한 개체군을 보전하는 데 필수인 정보이다. 동물은 서식지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야생에서 종과 개체군의 생존과 유지는 서식지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요소의 시간적이고 공간적인 변화를 모두 포함할 때 온전히 가능하다.
 인간이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그 공간에 서식하던 수많은 동식물을 대체 서식지로 옮겼을 때 대부분 실패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인간이 아무리 심사숙고해 제공한 환경이라도 이들이 서식지로 삼기에는 충분히 감안하지 못한 요소가 분명 있기 때문이다. 해양 포유류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우리는 바다를 막연히 넓고 무한한 공간으로 생각하지만 그들에게는 다양한 조건과 제약을 가진 공간일 수 있다. 한 지역이 망가져도 망망대해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 되겠거니 생각할 수 있지만, 그들에게는 오랜 시간 적응해서 정보를 습득하며 대대로 살아온 터전이다. 나이 든 개체들이 환경과 변화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공간이다. 갑작스럽게 바뀐 공간으로 밀려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생물은 기존 정보를 하나도 활용할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치거나 예상치 못한 새로운 경쟁자나 포식자를 만나기도 한다. 운 좋게 살아남는 개체가 있을지 몰라도 생존경쟁을 하며 새로이 서식지를 만드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최근 해양보호구역과 관련하여 해양 포유류에 대해서는 해양 포유류가 이동하는 지역을 따라 ‘이동 가능한 해양보호구역’을 설치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이다. (p.42-43)

 

 남방큰돌고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제주도 연안은 인간의 활동이 활발한 지역이기도 하다. 해수욕장과 레저스포츠 공간으로 활용되고, 낚시와 어업이 이뤄지고, 항구가 조성되고 해상 풍력발전 단지가 들어선다. 바다를 이용하는 선박은 끊임없이 늘어난다. 최근에는 기후변화로 인해 수온과 생물종의 조성도 변화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의 필요에 의한 변화는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바다는 끝없이 넓으니 돌고래가 알아서 피해 인간처럼 이사를 갈 것이라고 쉽게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제주의 남방큰돌고래에게는 이 공간이 마지막 터전이다. 마음이 내킨다고 수백 수천 미터의 깊고 넓은 바다를 건너 다른 해역으로 옮겨 별일 아닌 듯 서식지를 다시 정해 정착할 수는 없다.
 화재로 전소된 숲 한가운데서 망연자실 앉아 있다 구조된 오랑우탄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숲에서 사는 생물에게 숲이라는 서식지가 사라진다면 멸종 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 해양 생물도 그렇다. 바다는 단순히 바닷물로 채워진 공간이 아니다. 숲이나 인간의 삶터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환경과 생물이 복잡하게 뒤얽혀 살아가는 공간이다. 인간이 바다를 사용하는 비중이 커질수록 고래와 돌고래는 서식지에서 내몰릴 것이다. 오늘날에도 해양 개발은 과거처럼 경제 논리를 앞세워 추진되지만, 생태계의 복잡성과 기후위기가 보내는 경고에 우리는 더욱 세심히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p.43-44)

 

 미쿠라섬 남방큰돌고래 연구는 바닷속에서 돌고래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부터 시작되었는데, 장기간 이어진 연구 덕분에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알려졌다. 그중 어미를 잃은 새끼를 ‘입양’한 암컷 돌고래에 관한 이야기가 특히 주목받았다. 2012년 4월, 남방큰돌고래 암컷 한 마리가 태어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수컷 새끼를 두고 그물에 걸려 죽었다. 그 후 눈에 띄지 않던 새끼는 죽은 어미가 발견된 지 15일 만에 다른 암컷과 함께 발견되었다. 새끼를 ‘입양’한 암컷은 여덟 살 정도로 추정되었는데, 새끼를 낳기에는 어린 나이였다. 5년 동안의 행동 관찰을 통해 새끼의 어미와 새끼를 입양한 암컷은 사회적으로 친밀한 유대를 맺고 있던 사이도 아니었고 유전적으로도 가깝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새끼를 입양한 암컷은 처음 그 수컷 새끼와 함께 발견된 날부터 102일 동안 새끼를 돌봐주는 모습이 관찰되었다. 모유를 먹어야 하는 새끼가 젖을 먹으려는 행동을 하자 놀랍게도 암컷에게서 모유가 나왔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새끼는 조금씩 살이 빠지는 모습을 보이다가 2012년 9월 입양한 어미와 함께 모습을 보이고는 사라져버렸다. 이 남방큰돌고래의 ‘입양’에 관한 사례 연구는 다른 해양 포유류와 다르게 사회적, 유전학적 거리가 먼 개체에 의한 입양이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또한 한 번도 새끼를 낳아보지 않은 아성체 암컷에 의한 입양이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그 아성체 암컷이 왜 그리고 어떻게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밝혀내지 못했지만, 남방큰돌고래의 이러한 행동은 높은 공감 능력을 시사한다. (p.81-82)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 돌고래의 몸통은 아직 살이 붙지 않아 쭈글쭈글하다. 몸통에는 어미 배 속에서 웅크려 있는 동안 생긴 배냇주름(fetal folds)이 있다. 새끼는 2~3년간 어미젖을 먹고 보살핌을 받으며 각종 교육을 받는다. 돌고래의 긴 수유기 동안 이어지는 어미와 새끼의 강력한 유대는 새끼의 신체적, 사회적 발달에 매우 중요하며 생존과도 맞닿아 있다. 일반적으로 새끼는 어미를 떠날 때까지 신체적으로 성장하고 다양한 행동도 습득하며 점차 독립심을 기른다. 긴 시간 동안 어미와 새끼 사이에 형성되는 깊은 유대감은 새끼가 자립한 후로도 지속된다. (p.84)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상괭이가 한국 바다에서 가장 많이 죽고 있다는 사실이 피부에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큰 죽음의 숫자를 눈으로 직접 확인했을 때 받았던 충격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태안 지역에서는 혼획되거나 좌초된 상괭이를 허가받은 한 위탁 관리 업체에서 폐기 처분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업체에 찾아가 2021년 태안 지역에서 3월부터 6월까지 혼획되거나 좌초된 상괭이 사체들을 측정하고 분석할 기회를 얻었다. 창고 같은 대형 냉장고 문을 열고 들어간 공간에는 200마리가 넘는 상괭이 사체가 겹겹이 쌓여 있었다. 해양 포유류 사체 냄새에 익숙하다고 생각했지만 눈으로 마주한 현실에 충격을 받아서인지 냉동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마스크를 뚫고 들어오는 냄새가 참기 어려울 정도로 역겨웠다. 상괭이 사체를 대량으로 보관한다는 창고가 있다는 소식을 들어 왔기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창고 가득 쌓여 있는 상괭이들을 보자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충격이었다. 인간의 이기심이 낳은 참혹한 장면이었다. (p.92-93)

 

 남방큰돌고래처럼 사회성이 높고 무리 생활을 하며 무리 내의 개체들과 다양한 관계를 형성하는 해양 포유류에서는 가끔 ‘애도 행동’이 발견된다. 제주에서는 간혹 어린 돌고래 사체를 반복적으로 수면 위로 밀어 올리는 행동을 하거나, 며칠 동안 죽은 새끼 곁을 떠나지 않고 지키는 개체가 발견된다. 이러한 행동은 주로 어미와 새끼 사이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어린 돌고래의 사체를 물 위로 밀어 올리는 행동은 아직 유영이 힘들고 부력 조절이 서툰 새끼를 도와주는 어미의 행동과 비슷한데, 이러한 모습은 새끼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했거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해서, 혹은 강한 애착으로 죽은 새끼를 떠날 수 없어서 나타나는 어미의 행동으로 해석된다. 새끼는 출생 후 어미와 밀착해 양육되는데, 그 몇 년 동안 형성되는 둘 사이의 강한 애착과 유대감은 새끼의 생존에도 중요하지만 어미에게도 중요한 요소로 보인다. 그러한 강한 애착과 유대감으로 얽힌 관계가 단절된 후에 보이는 이러한 애도 행동은 단순히 새끼를 잃었다는 비통함을 넘어서는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러운 추측을 해본다. (p.99)

 

 지중해 지역에서는 특히 소규모 어업과 돌고래의 상호작용을 깊이 들여다보는 연구들이 진행된다. 소규모 어업에 종사하는 어민들이 돌고래 때문에 경제적 손해를 본다는 불만을 꾸준히 제기하기 때문이다. 어민들이 제기하는 문제는 주로 그물에 걸린 어류를 돌고래가 절단해 생기는 상품 가치 손실, 그물 손상, 돌고래 출현으로 인한 총어획량 감소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가, 특히 총어획량 감소가 진짜 돌고래만으로 인한 피해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어쩌다 보니 즉각적으로 눈에 띄어 원망의 대상이 되곤 하지만, 이외의 남획이나 사회문화적 요인, 환경의 변화 등으로 인해 소규모 어업이 경제적으로 한계를 맞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지중해와 이오니아해에서 돌고래의 행동 연구는 물론 어민 인터뷰와 어획량에 대한 질적, 양적 연구가 함께 진행되었다. 결과는 어민의 짐작과는 다소 다르게 나타났다. 어획량은 이전 20년에 비해 꾸준히, 극적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돌고래와 어획량의 연관성에 대한 조사는 어민 인터뷰와는 상반된 결과를 보여주었다. 돌고래로 인한 피해는 분명 있었지만 돌고래에 의한 어업 손실은 사람들이 짐작한 것보다는 미미했고, 유일하게 어업에 피해를 미치는 종도 아니었다. 어업 손실의 원인으로는 남획이나 확장된 어업 활동, 서식지 파괴가 어획량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으며, 또한 어획량의 감소는 지역 돌고래 개체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어획량이 감소함에 따라 돌고래 개체군의 크기 또한 급격히 감소한 것이다. (p.154-155)

 

 이러한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발생한다. 제주의 정치망뿐만이 아니다. 전국 어디든 어업이 행해지는 곳이나 하다못해 낚시터라도 돌고래가 나타나면 “오늘 조업은/낚시는 망했다”며 혀를 차는 사람이 대다수다. 때로 돌고래가 너무 많아 어업에 방해가 되므로 돌고래의 개체수를 줄이고, 일정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우리나라의 상괭이가, 참돌고래가, 남방큰돌고래가 실질적으로 얼마나 어업에 피해를 미치는지 연구가 절실한 시점이다. 피해의 원인과 정도가 제대로 파악되기 전까지는 누군가에게 돌고래는 막연한 피해의 원흉이자 배척해야 할 존재로 남는다. (p.156)

 

 어떤 현상을 마주할 때 당장 드러나는 사실만을 바탕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있다. ‘돌고래가 나타났다, 어획량이 줄었다, 돌고래는 이 사태의 주범이다’라는 말들을 쏟아내는 생각들이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해양 생태계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인간의 활동 영역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우리가 파악할 수 없는 변화들이 연쇄적으로 파생될 가능성이 크다. 정확한 인과관계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동안 현상을 피상적으로 해석한 목소리가 만만한 대상을 향해 비난을 쏟아붓는다. 어쩌면 우리가 변화시킨 환경이, 그간 바다 생물을 원 없이 잡아들인 우리의 행위가 돌고래를 정치망과 양식장 가까이 몰아왔는지도 모른다. 돌고래가 아예 나타나지 않는, 그래서 돌고래로 인한 어업 피해도 전혀 없는 바다가 정말 우리에게 유익한 바다일까. 돌고래와 지구를 공유하는 생물로서 던져보는 질문이다. (p.157-159)

 

 부리고래류는 가장 오랜 시간 잠수하는 것으로 알려진 포유류이기도 하다. 연구에 따르면 부리고래류의 한 종류인 민부리고래는 2시간 넘게 3000미터 가까운 깊이까지 잠수한다. 혹부리고래 또한 1000미터 넘는 수심까지 잠수해서 심해의 오징어나 해저에 사는 어류와 갑각류를 먹는다. 이빨고래류에 속하는 부리고래는 돌고래처럼 반향정위를 사용한다.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심해에서 먹이를 찾기 위한 방안이다. 수심 400~500미터에 다다를 때까지는 반향정위를 사용하지 않는다. 족히 수백 미터 이상의 수심에 다다라서야 고음을 발생시켜 주변을 탐색한다. 학계에서는 이를 범고래 같은 포식자를 피하고 경쟁자가 거의 없는 심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본다. 사냥을 마친 부리고래는 수면 위로 향하면서 다시 소리를 죽인다. 계속 소리를 내면 얕은 수심에 있던 범고래가 들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리고래는 매우 유능한 잠수부이지만 이런 움직임 자체는 몸에 무리를 준다. 깊은 바다에 잠수했다 올라온 부리고래는 수면 위에 떠서 1시간 이상 휴식을 취한다. 고래 행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를 로깅(logging)이라고 부르는데, 통나무처럼 물에 둥둥 떠 있기 때문이다. 망망대해 한복판, 파도에 몸을 싣고 둥실둥실 휴식을 취하는 그 안온한 시간이 이제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시간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부리고래가 로깅을 하고 있을 때 빠른 속도로 지나던 배가 부리고래를 발견하지 못하거나, 휴식을 취하던 부리고래가 접근하는 배에 신속하게 반응하지 못하면, 결국 충돌이 발생하고 만다.
 고래의 두개골을 함몰시킬 만큼 큰 충격은 야생에서는 일어나기 어렵다. 그러나 인간은 엄청난 무게의 거대한 물체를 바다 위에서 빠르게 움직이도록 만들었다. 1877년 한 증기선이 종을 알 수 없는 고래와 충돌했다는 최초의 보고 이후로 지금까지 수많은 해양 생물이 선박과 충돌했다는 보고가 산더미처럼 쌓이고 있다. 고래, 돌고래, 물개, 해달, 듀공, 상어, 바다거북, 펭귄 혹은 어류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동물들이 인간이 만든 문명의 산물과 끊임없이 부딪혀 상처 입고 죽어 가고 있다. (p.160-161)

 

 당시 일본은 한국에서 매우 활발한 포경을 벌였다. 그때 우리나라는 고래류가 자주 발견되는, ‘풍부한 포경 자원’을 가진 곳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며 한반도 해역의 포경사업 주도권을 잡은 일본은 1903년부터 1944년까지 8000마리 이상의 대형 고래를 잡았으며, 1911년부터 1944년까지 34년간 1300마리 이상의 귀신고래를 잡았다. 당시 일제의 포경은 국내 대형 고래류 감소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일본이 물러간 뒤라고 해서 얼마 남지 않은 한반도의 고래 사정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절대적인 포획량은 감소했지만 동해에서는 여전히 활발하게 포경이 진행되었다. 특히 동해 포경업은 1970년대까지 전성기를 이루었다.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IWC)가 대형 고래류에 대한 상업 포경을 금지한 후에야 국내에서도 대형 고래류의 포경이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안타깝게도 귀신고래는 한국에서 자취를 감춘 뒤였다. 한국에서 귀신고래가 마지막으로 잡힌 것은 1966년이고, 마지막으로 목격된 것은 1977년 울산 앞바다에서였다. 그 후 귀신고래는 국내 바다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p.178-179)

 

 우리는 왜 돌고래와 함께 살아야 할까, 왜 우리 바다에 사는 고래와 돌고래를 보호해야 할까, 라는 질문에는 대체로 우리가 사는 데 도대체 돌고래가 어떤 도움을 주냐는 보상 차원의 의미가 들어 있다. 이런 질문을 마주하면 속으로 매번 ‘우리는 우리에게 무언가 해줄 수 있는 대상만 보호해야 하는가’라고 되묻고 싶어지지만, 아무튼 그렇게 찾은 답변들이 보호해야 하는 이유를 효과적으로 납득시켜 온 것은 사실이다.
 2019년 국제통화기금(IMF)에서는 흥미로운 발표를 내놓았다. 고래가 기후변화를 막는 데 기여하는 역할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한 내용이었다. 고래는 그 거대한 몸속에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죽은 후에는 심해로 가라앉아 몸속에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심해에 매립한다. 심해에 매립된 이산화탄소가 다시 바다 밖으로 빠져나오려면 수백 년 이상 걸리며 그 과정은 매우 느리게 진행된다. 이산화탄소 포집 기술 개발에 막대한 포상금이 내걸린 현실을 생각하면 놀랄 만한 사실이다. 이뿐이 아니다. 고래류의 배설물은 질소, 인, 철분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어 이를 영양분으로 삼는 식물성플랑크톤이 증식할 수 있다. 그리고 식물성플랑크톤은 광합성을 통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포획한다. 이 과정에서 고래 한 마리가 하는 역할을 금전으로 환산하면 한 마리당 약 200만 달러, 한화로 약 26억 원이 넘는다. 한 마리의 고래에서 시작해 다양한 생물과 환경 요소가 엮인 이 과정은 ‘고래 펌프’라 불린다. 고래 펌프가 해양의 수직적인 순환에 기여한다면, 고위도와 저위도를 오가는 고래의 이주는 멀리 떨어진 지역 간의 생물학적 순환에도 기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p.184-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