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를 생각한다 / 존 코널 / 쌤앤파커스
녀석이 나를 뿔로 들이받은 것은 그저 호기심 때문이었음을 안다. 소들은 성격이 저마다 다르다. 어떤 소는 착하고 어떤 소는 못됐고 어떤 소는 교활하고 어떤 소는 게을러터졌다. 기질도 다르고 기분도 변한다. 가장 순하던 녀석이 동료를 못살게 굴고 가장 다혈질이던 녀석이 송아지들이랑 놀아주기도 한다. 소의 세계에는 인종주의가 없으며 품종과 색깔이 달라도 서로 잘 지낸다. (p.27)
아버지와 나는 양 얘기 말고는 별로 말을 주고받지 않는다. 양은 우리의 공통 기반이다. 우리가 안전하게 느낄 수 있는 곳, 아버지가 안전하게 느낄 수 있는 곳. 나는 지금 글을 쓰고 있지만 아버지와 예술이나 문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은 전혀 없다. 내가 기자나 영화감독일 때도 취재나 촬영 작업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오로지 양을 매개로만 진정으로 소통한다. 그래서 번식과 새끼양과 암양에 대한 난해한 말들은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잘 지냈니, 아들아? 안녕하셨어요, 아버지? 사랑한다, 아들아. 저도 사랑해요, 아버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세계가 있기에, 다투지 않는 한 그 세계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다. (p.39)
물을 점검하고 새로 새끼를 낳은 어미양들의 우리를 돌아본다. 한 마리씩 작은 들통에 견과와 여물을 준다. 덧먹이를 줘야 하는 새끼양도 있는데, 이 일은 한 시간 넘게 걸린다. 우유를 데워 젖병에 담아 먹여야 하기 때문이다. 새끼양은 먹는 속도가 일정하기 때문에 서두르면 안 된다. 이따금 작은 이마에 뽀뽀하기도 한다. 어찌나 순하고 순박한지. 나는 자리에 앉아 라디오를 들으며 생각에 잠긴다.
양사에는 라디오가 항상 켜져 있다. 아버지는 라디오를 들으면 양들이 사람 목소리에 친숙해진다고 신문에서 봤다고 했다. 그러면 우리가 다가가 말을 건네도 겁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효과가 있었다. 라디오는 밤이 되면 우리에게도 말동무가 된다. 아름다운 음악이 어둠 속에 메아리친다. 양들이 숀 오 리어더나 데이비드 보위를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둘 다 여기서 들어봤는데 개의치 않는 듯했다. (p.49-50)
어릴 적에는 우리가 프랑스나 스페인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언어와 제의에서 드러나는 그들의 문화는 활력과 생기가 넘쳐 보였다. 그에 비하면 이곳의 문화는 희석되고 동화된 것 같았다. 내가 딴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 몇 년간, 특히 몇 달 동안 농사를 짓고 보니 우리의 삶에서도 풍부한 전통이 눈에 들어온다.
2월 1일은 성 브리지다 축일이지만 한때는 봄의 시작을 알리는 이몰륵이라는 켈트족 축제였다. 그때는 또 다른 브리지다를 기렸다. ‘브리이드’라고도 불리는 그녀는 게일인이 섬기는 새벽의 여신으로, 선한 신 다그다의 딸이다. 브리이드는 이몰륵 전야에 선한 가정을 찾아가 가족에게 축복을 내린다고 전해진다. 나와 우리 가족이 여전히 지키는 풍습들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지금도 켈트적 과거를 살아간다. 러시를 베고 모으는 일은 옛것과 새것을 함께 섬기는 것이다. 이곳에서 으레 그렇듯 모든 일은 다른 것, 더 오래된 것을 불러낸다. (p.65-66)
현대에는 ‘종교’가 웃기는 단어가 되었다. 신앙은 종종 멸시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신앙에 무슨 잘못이 있나? 가톨릭교회에서 하는 말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는다. 흘려듣는 것도 있다. 나도 신앙에 회의를 느낀 적이 있다. 하느님에게서 돌아선 적도 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신앙을 찾았다. 이 농장에서, 삶의 기쁨과 절망 속에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발견했다. 이것을 일컬을 말은 ‘야훼’뿐이다. (p.68-69)
하지만 지금은 책을 읽기로 한다. 일곱 달 만에 다시 독서를 하고 있다. 분만과 소와 비의 세계를 나와 호주 작가 리처드 플래너건이 쓴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의 밀림에 들어선다. 이 두꺼운 책은 2차 세계 대전 때 태국과 버마 간 죽음의 철도를 탄 호주 전쟁 포로들 이야기이다. 밤마다 책장을 들추면 이야기가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장이 끝날 때마다 잠시 책을 덮고, 일하러 나갈 때가 되었는지 시간을 확인한다.
밀림과 저 사람들의 투쟁에서 빠져나오라고 본능이 말하는 밤이 있다. 이보다 더 낫게 묘사하지는 못하겠다. 어쩌면 자연이나 탄생이 전해주는 감각인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이끌려 마당에 나가다 암양이 방금 새끼를 낳은 것을 본 적이 여러 번이다. (p.72)
날씨는 여전히 궂다. 2월은 나아지리라는 말이 있었지만 눈이 오자 그런 말은 쑥 들어갔다. 눈은 까끌까끌한 흰빛으로 만물을 덮어 땅을 몰라보게 바꾼다. 눈은 아름답지만 고생스럽기도 하다. 바깥의 가축들이 감기에 걸릴 수 있다. 날씨 때문에 트랙터의 시동이 잘 안 걸린다. 나는 옷을 여러 겹 껴입었다. 눈이 여러 날 녹지 않아 동네 아이들이 새하얀 눈사람을 만들었다.
나폴레옹은 건강하게 살아남아 큰 우사로 옮겼으며 젖 뗀 송아지들은 시장에 내놓을 준비가 거의 되었지만, 그 시절은 이미 흐릿하게 뒤섞였다. 아버지는 일주일째 농장에 나오지 않았다. 감기가 단단히 걸려서 내가 일을 도맡는다. 바쁜 한 주였다. 밤낮으로 소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지쳤다. 이따금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 일로는 돈이 벌리지 않는다. 농장이 적자나 면하면 다행이다. 농사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힘들다. 이 지역에는 전업농이 드물다. 대부분 목수나 장사꾼이나 교사 같은 부업이 있다. 아버지는 소수의 전업농 중 한 명이지만 늘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20년 넘도록 존 삼촌과 함께 집 짓는 목수일을 하다가 너무 고되어 10년 전에 은퇴했다. 아버지는 나이가 아직 젊은데도 목수일 때문에 늙어버렸다. (p.77-78)
나는 행운아다.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으면 아무 때나 벗어날 수 있다. 예전만큼 세상에 얽매여 있지 않다. 물론 휴대폰은 있지만, 그건 외출했을 때 연락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예 없앴으면 좋겠다. 지금 나는 기술에 의존하는 습관을 버리는 중이다. 기술이 없는 곳에 자유가 있다. 버치뷰가 나의 월든인지도 모르겠다. 지난해부터 비로소 삶을 진정으로 살기 시작했다는 느낌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 것은 동네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있을 때였다. 40번째인가 50번째인가 왕복한 뒤에 턴을 하고서 숨을 쉬려고 고개를 들었는데 그 순간 내가 이 몸속에서 편안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깨달음이 이내 사라질까 봐 걱정했지만, 그 뒤로 깨달음은 더욱 커져만 갔고 평정심은 깊어졌다. 이런 느낌이 가장 강할 때는 숲 속을 달리거나 농로를 자전거로 내려갈 때이다. 소나 양의 새끼를 받을 때도 그렇다. 무언가 숭고하고 거룩하고 본질적인 것을 경험한다는 느낌이다. 1년 전부터 비로소 삶을 진정으로 살기 시작했다고 느끼는 것은, 그전에는 죽는 것이 두려웠지만 이제는 그 두려움에서 벗어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그저 살아 있다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살아야 할 ‘삶’이 없다면 목숨을 부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p.96)
삼촌은 몇 달 전에 장례식장을 지었다. 그는 이것이 미래의 방식이라고 말한다. 수세기 동안, 어쩌면 기독교 전래 이전부터 아일랜드 농촌의 뼈대를 이루던 경야(經夜)와 이전(移轉)은 과거의 것이라고. 이제 사람들은 사랑하는 이의 시신을 사흘간 집 안에 두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앞으로는 미국식으로 할 거라고 삼촌은 말한다. 내게는 낯설다. 우리의 장례 관습은 떠난 이를 애도하는 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경야의 사흘은 살아 있는 우리에게 탄식할 기회를 준다. 어머니는 당신이 죽으면 집에 두었다가 캠린강의 고니처럼 흙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말했다. 이것은 옛 시대부터, 우리가 켈트족이던 시절부터, 그리스도가 오기 전부터 우리가 알던 바이다. 우리는 죽고 나면 영혼이 동물이든 인간이든 다음의 살아 있는 몸으로 옮겨간다고 믿었다. 때가 되면 나 또한 옛 방식으로 떠날 것이다. 시골에서 사는 것은 죽음을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에게서 제거되거나 숨겨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인 것으로. 나는 이것에 감사한다. (p.111-112)
소 사육의 진실은 소가 도축당하려고 산다는 것이다. 소가 존재하는 것은 죽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기를 먹지 않으면 녀석들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이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이 농장에 있는 소는 모두 언젠가는 도축당할 팔자이다. 나이를 먹거나 몸무게가 차면 전부 푸주한의 쇠칼 맛을 볼 것이다. 하지만 진실을 알아도, 심지어 상업적 농사꾼이라도 이게 오로지 돈 때문은 아니라고, 소를 미래의 소고기로만 보지는 않으리라고 믿는다. 그게 아니라면 송아지를 받으려고 한밤중에 본능적으로 일어나거나 아픈 새끼양을 정성스럽게 돌볼 리 없다. 인간에게는 동물을 위하고 돌보는 본성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도시에서는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애초에 그러도록 생겨먹은 것은 아니겠지만, 이 분리는 이제 거의 총체적으로 일어났으며 도시민이 보는 자연은 기껏해야 자연의 인위적 복제인 공원뿐이다. 물론 공원에도 생명은 있지만 정교하게 관리되고 통제된다. 도시에도 동물이 있지만, 새와 길짐승 말고는 그 무엇도 자유롭게 돌아다니지 못한다. 도시민은 자연과의 연결을 지켜내라며 우리 농사꾼에게 대가를 치르고 우리는 그들이 못 하는 것을 수확한다. 애석하게도 이 푸른 행성에서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들은 자연과의 관계를 상실했다. (p.136-137)
누구나 숨겨진 깊이가 있다. 어느 시점에선가 누구나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몇 해 전에 아버지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 나는 한동안 기타를 배우다 밥 딜런에게 푹 빠졌다. 수많은 10대들처럼 나도 하모니카를 사서 맹렬히 연습하기 시작했다. 어느 토요일 아버지와 내가 일을 마치고 함께 집에 있는데, 아버지가 하모니카를 빌려달라고 했다. 입술에 대고 불었지만 아무 소리도 못 내기에 내가 어떻게 하는지 보여주었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하모니카를 입술에 댔다. 그러고는 집에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블루스였다. 시대를 초월한 옛 곡. 나는 할 말을 잃은 채 미소 지으며 서 있었다. 아버지는 이어서 컨트리 앤드 웨스턴을 연주했다. 이번에도 음은 낭랑하고 또렷했다. 아버지의 하모니카 선율을 듣고 있자니 대평원, 울타리, 드잡이, 버팔로, 피가 눈앞에 펼쳐졌다. 이 장면을 보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관객은 나뿐이었다. 아버지는 5~10분을 더 연주한 뒤에 하모니카를 살며시 내려놓았다.
아버지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오랜만이구나.”
“멋졌어요.”
아버지의 연주를 다시는 들을 수 없었다. (p.142)
다 자란 소를 들판에 묻은 적은 딱 한 번이다. 옛 아일랜드어로 ‘마스(meas)’라고 하는 존경심 때문이었다. 작은 암소 블루는 무덤에 묻힐 자격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농장이 훨씬 작고 우리가 훨씬 가난할 때 녀석은 우리의 첫 우량우였다. 블랙 폴리와 벨지언 블루의 혼혈로, 뿔이 없었으며 성미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였다. 사납고 천방지축이었으나 해마다 그해 최고의 송아지를 낳아주었다. 도벽도 있어서 종종 다른 소들을 이끌고 교구를 누비며 신선한 풀을 뜯는 습격 작전을 지휘하기도 했다. 소 떼가 없어져서 이틀 동안 찾아다닌 기억이 난다. 실종 소식이 지방 라디오 방송에 보도돼 이웃들이 도와주러 왔다. 녀석들은 남쪽으로 몇 킬로미터 떨어진 컬리패드 숲에서 주말에 발견되었다. 블루가 무엇을 찾고 싶어서 소들을 이끌고 거기까지 갔는지는 모르겠다.
블루는 몇 해 뒤에 늙어서 평화롭게 죽었다. 우리 집 옆에는 은퇴한 이웃 노인에게서 사들인 땅이 있었는데, 블루는 그곳에서 마치 쉬는 것처럼 누워 있었다. 녀석의 죽은 몸은 뻣뻣했다. 우리는 슬프지 않았다. 녀석은 행복한 삶을 살았으니까. 우리에게 해준 것도 많았다. 녀석의 새끼들 덕에 이 땅을 살 수 있었으니 말이다. 우리 가족의 친구인 수의사 말로는 암으로 죽었다고 한다. 우리는 녀석이 영원한 안식을 취하도록 들판에 묻었다. 지금도 이따금 녀석 얘기를 할 때면 그 성미와 독립심, 신선한 풀을 노린 탈옥 사건을 흐뭇하게 떠올린다. (p.166-167)
숀 신부님은 아일랜드가 아메리카 원주민을 결코 잊지 않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대기근 때 그들이 우리에게 도움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영화와 대화가 끝나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간다. 숀 신부님은 영화관을 나서면서 사람들이 우리를 게이 커플로 볼지도 모르겠다고 농담한다. 몇 주째 둘이서 영화를 봤으니.
내가 말한다. “그러라고 하세요. 할 일이 그렇게 없나.” (p.170)
농사는 아일랜드에서 가장 위험한 직업이다. 지난 10년간 2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어떤 죽음은 끔찍했고 어떤 죽음은 부주의 때문에 일어났고 어떤 죽음은 가슴을 찢었다. 우리가 사는 곳은 작은 섬이어서 누가 죽을 때마다 전역에 소문이 퍼진다. 모든 통계 뒤에는 개개인이 있고 이야기가 있다.
몇 해 전에도 사고가 일어났는데, 한 가족이 아버지와 두 아들을 잃었다. 봄맞이 정화조 청소를 하다 참변을 당한 것이다. 정화조를 청소하려면 우선 대형 분쇄기로 분뇨를 저어 똥을 액비로 바꿔야 한다. 그래야 분뇨차로 빨아들여 풀밭에 뿌릴 수 있다.
액비화는 위험한 작업이다. 소똥에 잔뜩 들어 있는 메탄가스가 유출되면 의식을 잃거나 현기증을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통풍이 잘 되는 우사에서 작업해야 하며 작업자가 메탄가스에 노출되는 것에 대비하여 보조 작업자가 항상 곁에 있어야 한다.
사고의 원인은 개가 정화조에 빠진 것이었다. 하루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퍼내야 할 똥은 얼마 남지 않았다. 농부는 그때까지 한 치의 실수도 없었으나 개가 빠진 것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구하러 들어갔다. 정화조가 거의 비어서 안전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메탄가스에 중독되어 분뇨 속으로 쓰러졌다. 아들이 아버지를 구하려고 들어갔다가 쓰러졌으며 다른 아들도 아버지와 형제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었다. 그들을 빠져 죽게 한 분뇨의 높이는 몇 센티미터에 불과했다. 개만 살아남았다.
사제들은 미사에서 그 가족을 위해 기도했다. 우리는 사별을 애도했으며 우리가 같은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자신의 덧없음과 연약함을 상기하는 것은 죽음에서뿐이다. 우리는 이 세상을, 이 농장을 스쳐 지나갈 뿐이다. (p.174-176)
우리 농장은 여러 교구에 걸쳐 있어서 철마다 소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 하지만 1년 동안 못 보던 초지에 돌아와도 녀석들에게 급수기와 샘물, 숨겨진 그늘과 쉼터를 알려줄 필요는 없다. 다 기억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 궁금해진다. 소들은 해마다 우리에게 새끼를 빼앗긴 것을 기억할까? (p.178)
모든 농장과 모든 가족은 저마다 가축을 부르는 나름의 소리가 있다. 이 부름소리는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구전되는 일종의 문화이다. 소들은 이 언어를 알며 새로 온 소도 금세 배운다. 단어나 억양이 무슨 뜻인지 다들 이해하고 우리가 가라는 대로 움직인다. 부름소리는 전혀 말이 아닐 때도 많다. 영어도 게일어도 아닌, 어쩌면 그 이전, 아주 오래 전의 소리.
아프리카 풀라니족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큰 유목민 집단으로 인구가 1300만 명에 달한다. 아직도 전통적 생활 방식을 고수하여 가축을 데리고 철 따라 중앙아프리카 초원을 누빈다. 그들의 부름소리를 들어보고 싶다. 수세기 동안 바뀌지 않은 아주 오래된 소리일 테니까. (p.179)
유럽의 농업은 공동농업정책에 따라 유럽연합으로부터 보조금을 받는다. 이 정책은 전쟁으로 식량 부족을 겪고 난 1950년대에 수립되었다. 공동농업정책에 따라 유럽 농부들은 농업 보조금을 받으면서 전체 인구를 위해 식량을 생산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정책은 무역 규제와 유럽 차원의 동물 복지 및 환경 보호 기준 준수 등을 포함하도록 확장되었다.
유럽에서도 도시화와 산업화가 진전된 나라들은 농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에 대해 늘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어느 농부에게나 물어보라. 농사로는 돈 벌기 힘들다고 대답할 것이다. 보조금은 농장 단위로 지급하는 형태이다. 지원 절차는 깐깐하게 운용되는데, 이 제도가 없으면 많은 소규모 농민이 도산할 것이다.
보조금 때문에 유럽의 농업이 현대화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대다수 유럽인이 미국식 또는 기업형 농업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지역 농가에서 재배한 음식을 먹고 싶어 한다. 아일랜드인은 대기업이 농장을 경영하도록 하지 않을 것이다. 땅을 소유한다는 관념이 우리 문화 깊숙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식민지 경험이나 대기근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프랑스와 스페인의 형제자매 농부들도 우리와 똑같이 느낄 것이다. 식량을 남의 손에 맡기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 (p.217-218)
16세기에 약 3000만 마리로 추정되던 북아메리카의 버팔로는 19세기 들머리가 되자 100마리만 남았다. 하지만 이 사진에는 더 깊고 더 음산한 의미가 담겨 있다. 그것은 우리 내면의 파괴적 본성이다.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면 수세기에 걸친 인간 집단 살해가 끔찍하게 겹쳐 보인다. 사진 속 두개골에서 또 다른, 감각 능력이 있는 존재가 연상되지 않는가? 이것이 르완다인이나 원주민, 유대인의 뼈는 아닐까? 굶어 죽은 아일랜드인이나 콩고 고무 노예의 두개골은 아닐까? 무엇보다 이 사진은 우리가 한 종에게 저지르는 짓을 다른 종에게도 저지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19세기와 20세기 산업적 축산에서 그랬듯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집단 살해의 기술을 동물에게 먼저 연습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버팔로는 불운하게도 그 대상이 되었을 뿐이고. (p.225)
얼마 전 축산업 학회에서 통계학자와 연구자가 집약적 축산의 향후 발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들은 농업이 기술 부문의 마지막 미개척지이며 농업에 종사하는 것은 흥미진진한 일이라고 말했다.
몇 년 지나면 품질은 더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똑같은 종류의 가축을 생산할 테니 말이다. 소비자는 값싼 고기를 찾는다. 그런 고기를 만들어내고 가난한 사람들의 배까지 채워주는 것은 우리의 할 일이다. 기계가 사료를 측정하고 공급할 것이며 육체노동은 저임금 노동자 몫이 될 것이다. 가축과 가장 가까운 사람은 농민이 아니라 조립 라인 노동자일 것이다.
아일랜드에는 아직 소의 공장식 축산이 자리 잡지 않았다. 이곳의 소는 대체로 초지에서 풀을 뜯으며, 풀을 자연적으로 구할 수 없는 겨울에만 우사에서 사육된다. 산업적 축산이 미래라고 생각하는 기술 기업인들이 보기에 나와 동료 농부들은 러다이트주의자요 과거의 유물이다. 그래도 나는 대다수 유럽 농부들처럼 옛 방식을 지키는 게 좋다. 유럽연합 축산법에서는 생산 과정에서의 성장 호르몬 주입을 금지했으며 항생제 사용도 추적되고 기록되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가축 항생제가 인간의 식단과 먹이 사슬에 흘러드는 것을 방지한다. (p.299-300)
일전에 숀 신부님이 “허구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진실이요, 진실은 일어난 허구”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말을 오랫동안 곱씹었다. 이제 나는 그 사이 어디에선가 서사가 태어나고 그와 더불어 의미가 생겨난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면서 삶이 그저 사건의 연쇄가 아니며 우리가 스스로에게 설명하기 위해 삶을 빚어낸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송아지들은 내게 단순한 동물이 아닌 훨씬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녀석들은 의지의 전투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오래된 이야기에서 나름의 배역을 맡았다. 비를 맞던 그날과 아버지의 뼈아픈 말들을 떠올리면서 아버지의 말이 나뿐 아니라 당신을 향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아버지도 당신이 다른 선택을 하길 바랐을 테니까. 또는 아들이 홀가분하게 농장을 떠나 다른 일을 하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가 그토록 힘겹게 일한 것은, 건설 현장에서 그 오랜 세월을 보낸 것은, 그 모든 늦은 밤과 뼈 빠지는 노동을 감내한 것은 그 때문 아니었을까? 내게, 우리에게 다른 삶을 살아갈 기회를 주기 위해서 아니었을까? 학식 있는 사람이 되어, 삶이 당신에게는 주지 않은 기회를 얻길 바란 건 아닐까? 아버지는 오래전에 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먹고살기 위해 학문의 세계가 아니라 노동의 세계를 선택했다. 나를 향한 아버지의 말들은 분노보다는 사랑에서 비롯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당신이 못 가진 모든 것을 내게 주었다. 스페인의 아침 햇살 속을 걸으면서 이 모든 일을 곰곰이 생각했다. (p.318-319)
토탄 뜨기는 오래된 관습이다. 토탄은 식물의 잔해가 화석화된 것으로, 한때 섬 전체를 덮은 고대 숲의 흔적이다. 늪에서 토탄을 떠내어 햇볕에 마르도록 놔둔다. 그런 다음 겨울에 땔감으로 쓴다. 이 일은 이 나라보다, 그 누가 아는 것보다 오래되었다. 켈트족은 늪에, 신들에게 희생 제사를 지냈으며 토탄 속에서는 가죽처럼 보존된 시신들이 발견된다. 검고 찐득한 덩어리 속에서 미라가 된 고대인의 얼굴은 회한에 잠긴, 마치 기도하는 듯한 표정이다.
토탄을 떠 올려 트레일러에 싣는다. 토탄은 검고 차갑다. 아버지가 천천히 말을 걸기 시작한다.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내 글쓰기에 대해, 스페인에서 어땠는지 묻는다. 스페인에는 소가 없지만 양은 많다고 대답한다. 우리는 축구와 럭비에 대해, 로리와 데이비 삼촌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새 황소와 새끼양들이 어떤지 묻는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처럼 이야기한다. 하긴 오랜만이다.
아버지의 행동은 당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미안하다’와 ‘사랑한다’이다. 우리는 이마를 닦고 더위에 욕을 퍼붓지만 진심은 아니다. 실은 태양이, 계절의 변화가 반갑다. 저 높은 곳에서 새들이 노래하고 찌르레기의 종알대는 소리는 검고 거대한 하늘의 여울처럼 오르락내리락한다. 자연의 패턴은 변하지 않지만 우리는 변할 수 있다.
아버지가 말한다. “여름이 왔구나.”
내가 대답한다. “하느님께 감사할 일이죠.”
소 분만 철이 끝났다. 가축은 모두 우리 곁에 있고 가족도 모두 서로 곁에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것뿐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도. (p.323-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