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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노동 / 데니스 뇌르마르크 / 자음과모음

 

 콜롬비아 경영대학교의 교수, 에릭 에이브럼슨은 수많은 연구 작업을 통해 변화의 물결에 휩쓸린 기업들이 변화에 필요한 비용 등은 생각지도 않은 채 갑자기 강력하게 변화를 추구하고자 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에이브럼슨은 긴장과 불안감을 느끼는 기업의 관리자들이 이러한 혁신 프로젝트에 막무가내로 뛰어들고, 존재하지도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련 컨설턴트를 초대하는 경우를 자주 보았다. 그들은 ‘변혁적’이고 ‘파괴적’이라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조직을 ‘흔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방식은 죽은 것처럼 보이는 금붕어 한 마리를 살리기 위해 봉지를 마구 흔들다가 결국 살아 있는 다른 세 마리의 금붕어까지 모두 죽이는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과거 주요 변화의 선구자 역할을 했던 많은 기업이 오늘날에는 자취를 감추어버렸다는 연구 결과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기업들이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기업들이 ‘실제로 변화했기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문제는 현대 기업의 리더들이 끊임없는 변화에 좌지우지하지 않고 그들의 현재 상태에 만족하기란 너무나 어렵다는 데 있다. 기업 주변에는 ‘적군’과 ‘아군’의 차이점, 즉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과 현 상태에 집중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차이점을 거론하는 ‘현명한’ 컨설턴트가 맴돌고 있다. 기업의 관리자들은 결국 자신이 속한 기업이 어떤 유형의 사업에 배팅해야 하는지 이들을 통해 빠르게 터득한다.
 하지만 여기서 그들이 쉽게 간과하는 것은 지난 수년 동안 기업의 효자 역할을 해왔던 좋은 제품과 이를 뒷받침해 왔던 운영 방식을 유지해 왔던 사람들이 ‘아군’이라는 사실이다. 반면, 아직 무엇도 하지 않은 ‘적군’들이 증명해 보인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p.90-91)

 

 이것은 IT 개발 부문의 패러다임 변화로 이어졌다. 바로 큰 덩어리의 작업을 작은 부분으로 나누고, 각각의 부분에 소규모 팀을 배치해 작업과 관련된 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세세한 각 부분을 철저하게 검증하고, 간단하며 작동 가능한 작업 목표를 세우고, 이에 따라 생산된 제품이 실제 요구사항에 적합한지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이 방식은 생산자가 제품을 실제로 사용할 고객과 멀어지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로 생계를 유지하는 기업들은 이 작업 방식을 적용해 확실한 효과를 보았다. 하지만 과연 이 방법이 모든 조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애자일은 곧 적절한 배려, 과도한 복잡성, 고객 망각 등과 관련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기적적 수단이라 여겨지게 되었다. 애자일이 소프트웨어 개발 부문에서 효과를 보았다고 해서 지방자치단체의 도로와 공원을 담당하는 부서에서도 꼭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애자일과 관련해 긍정적인 말만 들어왔기 때문에 이러한 부서에서도 애자일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p.98-99)

 

 새 차고를 짓기 위해 목수를 고용했는데 그 목수가 차고를 완성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차고가 완성되었다 하더라도 너무 허술하게 지어서 큰 비에 금방 무너져버렸다고 치자. 그런데도 목수는 차고를 짓는 데 100시간이 걸렸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그가 요구하는 비용을 지불하겠는가? 사람들은 보통 건물을 짓는 데 고정된 비용을 지불하고 싶어 하며, 완성된 건물을 살펴보고 어느 정도 기대에 부응하는 경우에만 그 대가를 지불하기를 원한다. 나는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불을 생각하는 방식이라고 본다. 따라서 컨설팅 서비스와 관련하여 많은 이가 이러한 일반적인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비용을 지불한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새로운 프로젝트와 원대한 목표가 결국 돈과 시간만 낭비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얼마인지, 또 의뢰한 일이 실제로 우리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지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한다. 위험은 일을 수행하는 그들이 감수해야 하는 것이지, 일을 의뢰하는 당신의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컨설턴트로서 우리는 그 누구도 우리가 진행했던 그럴듯한 프로젝트와 워크숍에 관해 평가하지 않기를 바랐다. 고객이 바라는 실질적인 변화를 창출해 낼 수 있을지 스스로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일을 의뢰했던 고객 대부분도 그것이 실제로 효과가 있으리라고 믿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자신들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단 무엇이든 조치를 취했다는 사실과 더불어 현대사회에서 유행하는 말을 사용해 자신들의 행위를 뒷받침할 수 있어서 기뻐했을 것이다. (p.110-111)

 

 직원들에게 변화는 공짜로 다가오지 않는다. 변화는 직원들에게 스트레스와 불확실성을 유발시키며, 이는 누구도 원하지 않는 일이다. 변화에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단지 시대의 흐름을 따른다고 해서 탈바꿈이라 할 수도 없으며, 반드시 이를 목표로 삼아야 할 이유도 없다는 점을 기억하라.
 문제는 조직이 새로움을 위한 탄성력을 관리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한때 초등학교를 비롯한 우리의 공교육기관은 전산화 작업을 옹호하는 컨설턴트들로 가득했다. 그 결과 교실은 크롬북, 아이패드 등의 전자 장비를 완벽히 갖추었다. 하지만 그것이 실질적으로 좋은 생각인지 묻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모두가 이것이 변화와 발전에 따르는 당연한 현상이라고 주장했기에, 반발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오늘날 그 결과는 너무나 명백하다. 광범위한 디지털화는 학생들의 학습을 향상시키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왕립 얼스터 경찰대학교의 에스퍼 발스레브는 그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칠판과 분필을 태블릿과 스마트 보드로 대체한 것이 교육학적 지식과 과학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고 했다. 발스레브는 매번 누군가가 이 새로운 ‘학습 테크놀로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때마다 근거 없는 ‘잠재성’만이 그 대답이 되었다고 꼬집었다. 이 새로운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수많은 돈과 인력이 낭비되었던 것은 물론이다. (p.115-116)

 

 현대 조직의 일원인 우리들은 일정 기간 특별히 할 일이 없을 때도 일이 있다는 고통을 겪는다. 스웨덴의 노동시장 연구원인 롤랜드 폴센은 이를 직원과 경영인 사이에 존재하는 일종의 상호 당혹감이라고 묘사했다. 왜냐하면, 일을 완수하고 나면 일찍 퇴근을 하거나, 또는 자신의 일과 관련된 흥미로운 일에 몰입하거나, 또는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는 따위의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그 누구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봉쇄 기간 이후 덴마크에서는 주 4일 근무 체제로 전환한 회사가 여럿 생겨났다. 정해진 시간 내에 충분히 업무를 완수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직원들이 금요일에는 회사에서 무엇을 하는지 물어보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도 많다. (p.122-123)

 

 가짜 노동이 대두되며 많은 이들이 직업 컨설턴트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아무런 가치도 창출하지 못하는 직업에 묶여 있다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지 곱씹게 되었다. 이러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업무 시간과 삶과 돈을 낭비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직업에 관해 솔직할 수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불만을 갖게 된다. 그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프로젝트를 끊임없이 언급하고, 실제로는 다섯 배나 적은 시간 내에 완수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도 지속적으로 바쁜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궁극적으로는 그 분야에서 실질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마저도 방해하게 된다. (p.130-131)

 

 현대 조직의 패러독스는 꽤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 우리 주변에서는 쉴 새 없이 더 큰 복잡성이 발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모든 라인을 한 군데, 즉 최상위에 모으는 조직문화를 유지한다. 이는 경영인들의 책상에 모든 과제를 모으는 것을 의미하기에 그들은 필연적으로 과로에 시달리게 된다. 랄루의 말에 의하면 경영인들은 ‘몇 가지 소수의 팩트와 주장을 바탕으로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불안해하고 초조해한다’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조직의 하위 부분에서 요구하는 상세한 사항들은 점점 더 많아진다.
 더불어 최고경영인들의 시간은 매우 귀하기 때문에 ‘직원들은 경영진과 약 30분간 회의를 하기 위해 몇 주 동안 준비하지만 많은 중요한 결정은 적절한 자리를 찾지 못하거나 결정이 아예 내려지지도 않는다.’ 모두가 윗선의 결정을 기다린다는 사실은 경영의 병목 현상을 유발시키고, 직원들은 결정이 내려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가짜 노동을 하거나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 내용을 다듬는 것으로 시간을 채운다. (p.165-166)

 

 현대 경영 이론은 1890년대 미국인 프레더릭 테일러에게서 시작되었다. 작업의 세분화, 최소한의 낭비, 직원들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한 지침을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던 그는 베들레헴 철강 공장을 간소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뿐만 아니라, 베들레헴 철강은 그의 과학적이고 혁신적인 경영관리법 덕분에 생산량이 4배나 늘어났다.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도 이 유명한 철강 공장의 생산 및 관리 방식을 모방하고 싶어 했다.
 산업과 기술 혁명 시기였기에 이에 발맞추기 위해 새로운 경영 방법이 필요했던 것은 당연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은, 테일러가 제철소에서 시간을 보낸 적이 거의 없었다는 것, 그가 요구했던 생산성 증대의 압박 때문에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을 그만두었다는 것, 그가 사용했던 이른바 과학적 방법을 실제 과학자들이 검증할 수 있는 데이터를 남기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테일러와 시간을 재는 그의 계시원들 및 흰색 가운을 입은 컨설턴트들에게 지불되었던 비용은 향상된 생산성이 얻어낸 비용만큼이나 많았다는 것이었다. (p.169-170)

 

 이는 현실적으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 필요와 요구는 조직의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나 또한 연구를 통해 이를 명백하게 깨달았다. 가짜 노동을 없애는 데 성공한 기업의 대표이사들은 모두 실제로 업무를 수행하고 고객과 가까이 있는 직원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결정을 내릴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기업 내에 복잡성이 발을 들여놓지 않도록 노력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50명의 직원이 주로 빵 굽는 일을 하는 베이커리를 신속하게 재정비한 마틴 다넬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전략 수립의 날, 성과 평가, 조율 및 조정에 관한 마라톤 회의 등을 없앴다. 그는 덴마크 일간지 『윌란 포스텐』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신뢰는 내게 매우 중요합니다. 나는 직원들에게 지침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직원들은 독립적이며 매우 큰 영향력을 갖고 있습니다. 나는 업무 일정을 짜는 데 시간을 소비하지 않으며, 직원들이 하는 일에 간섭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언제 출근하고 언제 퇴근하는지도 감시하지 않습니다. 나는 단지 그들이 매일 아침 신선한 빵과 맛있는 케이크를 진열대 위에 올려두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 과정을 어떻게 진행하는가는 전적으로 직원들의 몫입니다. 그들이 일에 만족하는 한 말이죠.” (p.178-179)

 

 공공부문을 예로 들어보자. 모든 사람의 맹장은 오른쪽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시스템에 등록할 때 자신이 제거한 환자의 맹장이 오른쪽에 있는지 왼쪽에 있는지까지 적어야 할지 고민하는 한 지방 도시의 의사나, 수년 동안 학교폭력 방지를 위한 전략 문서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문제 없이 매우 효과적으로 학교폭력을 예방해 왔지만, 어느 날 정부 기관에서 학교폭력 방지에 관한 전략적 조치를 마련해 홈페이지에 등록하라는 지시가 내려왔기에 그 일을 해야만 하는 고등학교 교사 등이 있다. 이와 비슷한 예는 수십 가지다. 이것은 실질적 업무에 방해가 되지만, 단순히 상급 기관에 보여주기 위한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는 의미다. (p.181)

 

 “조직 내의 학습과 훈련 분야에서는 전통적인 방식보다 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디지털화해야 한다는 합의가 생겨났어요. 이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좋은 아이디어로 여겨졌고, 따라서 많은 이가 관심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방식이 제품의 품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위해 얼마만큼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받아들여졌지요. 제품의 품질 향상과 가치 창출은 부수적인 것이 되었어요. 글로벌화, 표준화를 통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실제적인 작동 방식에는 전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은 채 돈을 투자하고, 거기에 잠재력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전혀 새롭지 않은 일이죠. 예를 들어, 1980년대에는 직원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관련 내용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전 세계로 전송하기도 했으니까요.”
(…)
 “많은 기업에서 사람들은 실제로 작동 가능한지 여부를 알지도 못한 채 디지털화에 열중하고 있어요. 모든 것은 디지털 방식으로 전달되어야 하고요. 이것은 업무 지침처럼, 사람들의 머릿속에 가능한 한 많은 지식을 주입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일할 공간을 만들어주었어요.
 그들은 여기서 여러 페이지의 PDF 속에 온갖 종류의 정보를 채워 넣고, 사람들에게 그 문서를 읽고 이해했으며, 문서에서 규정하는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는 표시로 서명을 요구해요. 서명을 받고 나면, 그들은 직원들이 디지털화된 업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믿죠. 이런 식으로 그들은 많은 지식을 여러 사람들에게 간단하고 쉽게 전파하는 동시에 자신의 책임을 다한 셈이 됩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볼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그것은 속임수에 불과해요. 사람들이 문서에 기록된 정보와 지식을 다 습득했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나요? 단지 그들이 문서를 읽었다고 서명을 했기 때문에요?” (p.185-186)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구입하고 나면 이 도구의 사용법을 배울 수 있는 개발자를 고용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요. 그 다음에는 이 개발자들이 무엇을 개발하는지 설명하기 위해 프로세스 담당자를 고용해야 하고, 해당 작업을 조직화하기 위해 관리자들도 고용해야 해요. 이렇게 회사 내에 가상 인력 로봇을 구성한 후에는 회사의 누가 그 비용을 지불할지 알아내고 내부 인보이스를 발행해야 하고요. 이렇게 하다 보면 어느새 로봇이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업무들을 실제 사람들이 하게 되고 이 사람들은 자체 부서를 구성하게 돼요. 그리고 이전 직원들이 하던 만큼 어리석은 일을 다시 하게 되는 셈이죠. 로봇은 벤테의 업무를 대체했지만, 그녀는 다른 곳에서 업무를 보고 있죠.”
 옌스는 계속 말을 이었다.
 “애초에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을 로봇에게 떠맡기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며 갈등을 조장하지도 않아요. 게다가 문제를 해결하려 조치를 취한 것처럼 보이려고 컨설턴트들에게 엄청난 돈을 지불하는 것은 훨씬 더 쉽고요. 하지만 능력 있고 양심 있는 컨설턴트라면 로봇을 도입하는 대신 기존의 프로세스를 중단하거나 업무 환경을 바꾸라고 권할 거예요. 반면, 대부분의 컨설턴트들은 이런 기업들을 놓치고 싶지 않겠죠.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유지 관리가 전혀 불가능한 거대한 로봇 인프라를 구축한 기업들 말이에요.” (p.368)

 

 나는 우리가 학교 교육의 디지털화에 엄청난 비용을 들였지만, 궁극적으로는 아이들의 문해력에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하지만 전국의 모든 학교 지도자와 지방자치단체장 들은 ‘그 또한 피할 수 없는 일’이라 믿고, 자신들의 공통된 경험을 무비판적으로 무시했으며, 이전의 교육 운영 방식에서 벌어진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이었는지 자문하지 않았다. 사실, 디지털화 이전의 교육 방식은 수천 년 동안 작동해 왔다. 그런데 누가 갑자기 그것이 구식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는가? 그리고 주장에 대한 증거와 그를 주장하는 동기는 무엇인가?
 만약 그것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면 비판적인 질문을 하는 능력을 잃고 결국은 엄청난 비용을 쏟아부어야 하는 노동 집약적인 가짜 노동 프로젝트에 빠지게 된다. 옌스의 말처럼, 어떤 집단에서든 IT 프로젝트에 실패했거나, 사용하기가 너무나 번거롭거나 불필요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사용하지 않는 새로운 프로그램웨어를 소개했거나, 인력을 절약하기 위해 디지털화를 시도했지만 결국에는 동일한 인력이 조직의 다른 위치로 옮겨가는 경우가 있었다.
 따라서 변화와 디지털화의 파도에 몸을 싣기 전에 먼저 문제를 식별해 내고 디지털 솔루션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검토해봐야 한다. 단순히 기차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다른 길은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기차가 오고 있다 하더라도, 기차에 올라타 종착역까지 갈 것인지 아니면 지금 있는 곳이 정말 좋기 때문에 머무를 것인지의 결정은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 만약 기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얼른 합류하지 않으면 심연에 빠질 것이라고 소리친다면, 그것은 당신을 생각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그들만의 계획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우리는 먼저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실질적 요구사항부터 파악해야 한다. (p.376-378)

 

 디지털 솔루션을 사용하고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을 입력하는 것은 사람들의 시간을 요구하는 작업이며, 이것은 절대 무료가 아니다.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은 디지털의 심연으로 사라진다. 디지털 솔루션은 공원 벤치와 쓰레기통을 위한 관리 앱처럼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기록할 곳을 부여받았기에 거기에 기록을 한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 모든 데이터가 있다고 자랑스레 말한다.
 하지만 저장된 데이터를 언제 다시 검색할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우리는 저장공간이 무한해 보이기 때문에 더 많은 정보를 저장한다. 즉,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정보가 아니라 적절한 분류와 정리 메커니즘이다. 우리가 저장하는 (쓸모없는) 정보가 많을수록 이를 정리하는 데 점점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데이터 수집이 공짜라는 것은 명백한 거짓말이다. 우리는 근무시간에 적합한 비용을 책정해 두었지만 데이터 수집 작업에 관한 비용은 옆으로 제쳐두고 간과하곤 한다. (p.380)

 

 사람들이 현대 기술을 선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미래 잠재력에 대한 약속 때문이다. 코펜하겐대학교의 클라우스 회이에르 교수는 현대 데이터 기반 의료 시스템에 대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치인, 전략 문서 그리고 각종 위원회에서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사회의 무한한 잠재력에 대해 종종 이야기합니다. 즉, 우리가 그 잠재력을 일깨우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더 효율적이고, 더 쉽고, 더 저렴해지고 더 좋아질 것이라 합니다. (……) 잠재력은 어떻게 보면 매우 우스꽝스럽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구체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데다 너무나 부드럽고 좋아 보여서 아무도 진지하게 반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회이에르는 의료 시스템이, 무엇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잠재력이 있다는 가정 하에서 생명을 디지털화하고 모든 것을 등록한다고 말한다. 이는 종종 제대로 수집되지 않은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의미한다. 내가 HR 네트워크의 한 이사에게 직원 개발 면담 시스템의 디지털화에 대한 의미를 물었을 때 그가 내게 했던 말은 다음과 같다. “많은 양의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기 때문에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데이터를 통해 여기저기 검색하고 측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빠진 질문을 발견할 수 있다. “혹시 이전 시스템에서 놓친 것이 있습니까? 이전 시스템에서 해당 사항이 부족해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점이 있었습니까?”
 따라서 직장에서 누군가가 잠재력에 대해 말한다면 머릿속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 잠재력이라는 것은 회이에르 교수의 말처럼 무엇도 의미할 수 있고, 동시에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다소 뜬구름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잠재력은 우리가 전혀 모르는 먼 미래의 허상적인 필요성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와 관계를 맺어야 한다. (p.383-384)

 

 영국 정부는 2011년에 기존 법률이나 규칙을 폐지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법률이나 규정을 도입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일명 ‘원 인, 원 아웃(One in, one out)’으로 불리는 이 제도는 2012년까지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 후에 ‘원 인, 투 아웃(One in, two out)’ 규칙이 뒤따랐는데, 이는 영국의 규제 완화에 추가적 압력을 가하리라 예상되었다.
 이 새로운 규칙에 대한 모라토리엄도 도입되었는데, 이는 어떤 법률 조항이 특정 날짜 이후 무효화되는 것으로 덴마크에서는 일몰조항이라고 부른다. 좋은 의도에서 출발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우리에게 걸림돌이 되고 조직 내에 소화불량을 유발시키는 사안들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되는 상당히 단순한 규칙이라 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법률 조항이나 규칙은 한 번 도입되면 자동 만료 일자가 없는 한 삭제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영국에서 성공을 거두었던 이 규칙을 덴마크 법무 분야와 개별 조직 및 회사에 간단한 형식으로 바꾸어 도입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경영진이나 관리자들이 관료주의로 인한 조직의 소화불량을 피하기 위해 기존의 조항을 없애기 전에는 새로운 절차나 새로운 규칙 또는 새로운 복잡한 ‘표준운영절차(SOP)’를 도입하지 않겠다고 합의하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도입하려는 새로운 조항보다 더 많은 조항을 제거하자. 이때 새로운 규칙을 도입하는 일은, 더 이상 누구도 유지하기를 원하지 않는 과거의 규칙을 도입했던 바로 그 사람이 담당하는 것이 좋다. 이런 식으로 탈관료주의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은 새로운 규칙을 추가하는 것을 자제할 수 있고, 그 결과 조직은 자연스러운 인센티브를 얻을 수 있다. (p.397-398)

 

 목표가 가짜 노동으로 전환되는 것을 핵심적으로 방지하기 위해서는 측정 항목 수를 줄이고, 개별 목표가 구체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오랫동안 개선의 여지를 보이지 않았고, 직원들의 의욕을 꺾고, 혁신을 죽이는 KPI 문화와 맞서 싸워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법칙은, 측정되어야 하는 그 작업을 다른 누가 수행했을 때, 그 사람에게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가에 있다. 만약 이때 그렇지 않다는 대답이 나온다면 측정하지 말라. 그 누구도 고용 센터의 회의, 병원에서의 ‘만남’, 뉴스레터, 경찰들의 순찰 업무, 또는 고객지원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일자리를 구하고, 치료를 받고, 중요한 정보를 얻고, 범죄를 줄이고, IT 문제에 대한 구체적 해결을 얻기 위해서는 선뜻 비용을 지불하려 할 것이다. (p.430-4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