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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순간 / 최형섭 / 이음

 

 인적이 드문 빽빽한 숲 속에서 문명과 나를 연결해주는 것은 희미한 GPS 신호뿐이었다. 이 신호는 지구로부터 20,200킬로미터 떨어진 우주 공간을 맴도는 24대의 인공위성에 힘입은 것이다. 스마트폰에 내장된 GPS 수신기는 이들 중 가장 가까운 4대와 신호를 주고받으며 그 편차를 이용해 나의 위치를 계산해낸다. 화면의 배경을 이루는 지도 정보는 통신사의 데이터망을 통해 전달된다. 휴대전화 기지국이 많은 서울 시내를 다닐 때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지만, 수십 킬로미터를 달려도 사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지역에서는 문제가 발생했다. 지구 궤도를 도는 인공위성은 나의 (보다 정확하게는 내 스마트폰의) 위도와 경도를 알고 있었지만, 정작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는 역설적인 상황이었다. 그 순간 ‘나’라는 존재를 이 세상과 연결해주는 기술적 인프라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담배 필터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이 인공 물질이 함부로 버려진다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다. 서울 시내에서 버려진 담배꽁초가 없는 거리는 찾기 어렵다. 많은 흡연자가 큰 문제의식 없이 도로변 하수구 구멍에 꽁초를 버리곤 한다. 2019년 초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길거리 담배꽁초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토론회 내용에 따르면, 그렇게 버려지는 꽁초의 개수가 한국에서만도 매년 4조 개에 달한다. 그야말로 천문학적 규모의 담배꽁초가 하수도를 통해 강으로, 또 바다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그 악영향은 담배가 물에 녹으면서 나오는 진액이 물을 오염시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플라스틱 성분의 필터 부분은 미세플라스틱으로 변해 물고기의 몸속에 쌓이고, 이는 물고기를 먹는 인간의 몸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인류가 지구 환경을 변화시키는 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시기를 지칭하는 ‘인류세’ 개념을 받아들인다면, 담배꽁초는 치킨 뼈와 함께 인류세를 가르는 중요한 표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에어컨을 냉방기로 알고 있지만, 애초에는 대규모 작업장의 습도를 정밀하게 조절하기 위한 장치로 개발되었다. 습도 유지가 필요한 대표적인 업종은 인쇄업이었다. 습도 변화에 따라 종이가 수축과 팽창을 거듭하면서 고품질의 인쇄 작업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1902년 뉴욕주 브루클린의 한 인쇄 공장이 엔지니어 윌리스 캐리어에게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의뢰했다. 캐리어는 구리로 만든 코일에 냉각제를 채우고, 그 위로 공기를 통과시키는 방식으로 습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이 아이디어로 1904년에 특허를 출원했다. “공기 조절 장치(An Apparatus for Treating Air)”라는 제목의 특허는 “공기에 포함된 액체 입자와 고체 불순물을 차단하여 분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전기를 공기처럼 누리고 있는 현대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무심한 듯 벽에 설치되어 있는 콘센트의 배후에는 거대한 전력망 인프라가 버티고 있다는 점이다. 한반도 동남권의 원자력 발전소나 서해안의 화력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는 초고압 송전로를 타고 필요한 지역으로 전달된다. 해당 지역에 도달한 전기는 변전소에서 가정이나 공장에서 사용하기에 적합한 전압으로 바뀌어 최종 목적지까지 배달된다. 발전-송전-변전-배전이라는 일련의 과정에서 어느 한 군데라도 문제가 생기면 정전이 된다. 이렇게 보면 때때로 정전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신기한 일이 아닌가. 최근 들어 정전이 매우 드물어진 것은 전기 기술의 정교화도 한몫했겠지만, 복잡한 전력망 인프라를 유지·보수하는 노동에 힘입은 것이다.
 이러한 노동을 제공하는 사람들은 평소에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가끔 정전이 일어났을 때 다시 전기가 들어올 때까지 ‘사람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라고 불만을 터뜨릴 때 그 ‘사람들’이다. 이들은 한국전력이나 그 자회사, 또는 하청업체 소속의 직원들인데, 전력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을 때는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가 문제가 생기면 주목의 대상이 된다. 이들은 전봇대에 올라가 부품을 교체하는 단순한 유지·보수를 하는 사람들부터, 전력망 전체의 균형을 유지하는 고도의 작업을 수행하는 전문가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전기는 도시의 벽돌과도 같다. 어떤 테크놀로지는 이렇게 가시적이고 개별적인 실체가 아닌 토대로서 존재한다. 그럴수록 그것을 떠받치는 인간의 노동도 보이지 않게 된다. 우리는 일상의 테크놀로지가 폭넓고 복잡한 배후의 인프라를 통해 작동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테크놀로지를 이해한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 기능을 수행하는 기술적 요소들과 그것들이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게 해주는 수많은 사람들을 필사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라는 점 역시 말이다.

 

 한강 상류의 정수센터에서 ‘만들어진’ 물을 서울 시내 각 가정으로 공급하는 상수도관은 땅속에 묻혀 있다. 이 관의 길이는 2007년 기준 무려 14,027킬로미터에 이른다. 1982년에 약 4,200킬로미터였던 데 비해 세 배 이상 늘어났다. 도시가 확장되고 인구가 증가하면서 그만큼 수돗물에 대한 수요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 어마어마한 상수도 네트워크는 평소에는 우리 눈에 띄지 않다가 “상수도 공사중”이라는 표지판 아래에서만 모습을 드러낸다. 수도관에 문제가 생기면 아스팔트를 뜯고 땅을 파서 드러낸 후, 파이프 연결 부위를 분해해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인프라는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우리의 시선으로부터 사라졌다가, 무언가 문제가 생겼을 때에야 순간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번개가 치는 찰나에 물체의 윤곽을 볼 수 있게 되는 것과 같다. 일상생활의 배경으로 후퇴해 잊힌 도시 인프라는 구멍이 뚫렸을 때만 그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기묘한 존재가 된다.

 

 2019년 인천 녹물 사태는 우리가 사용하는 수도꼭지 배후에 거대한 인프라가 존재하며, 나아가 그 인프라는 항상 완벽한 상태로 유지될 수 없다는 것 역시 알려준다. 집에서 사용하는 정수기 정도의 규모라면 기계를 분해해 물이 통과하는 관을 세척하거나 통째로 교체할 수 있다. 하지만 서울시에만 14,000킬로미터가 넘는 길이의 서울 시내 상수도 관로를 완벽히 깨끗한 상태로 유지하는 일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문제가 생기면 땜질하는 식으로 처방하고, 정해진 일정에 따라 순차적으로 인프라를 교체하는 것이 최선이다. 거대 인프라를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유지·관리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효용과 비용 사이의 균형 감각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유지하고 보수하는 노동과 시스템이 중요하다. 보이지 않는 것을 상시로 예측하고, 관찰하고, 징후를 발견해내는 일에는 품이 많이 든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수많은 도시 거주민들에게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와 동시에 인간이 세우고 지속시키는 테크놀로지와 인프라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즉, 인프라를 “받아들일 만한 위험(acceptable risk)”의 범위 내에서 관리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위험을 받아들일지에 대한 정보 공개와 사회적 논의가 꾸준히 필요하다. 100퍼센트 안전하지 않다고 해서 수돗물을 포기해버린다면 더 큰 환경적·사회적 재앙으로 이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지하철 1호선 공사는 전차가 서울에서 사라진 직후인 1970년대 초에 시작됐다. 1971년 4월 서울시청 앞에서 성대한 기공식이 열렸다. 지하철 1호선은 서울역에서 청량리로 이어졌다. 이는 교통 인프라의 연속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서울역에서 남대문을 지나, 종로를 거쳐 청량리에 이르는 노선은 70여 년 전 첫 노면 전차의 노선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동 수단이 시간과 공간을 조직하고 삶의 패턴을 만든다는 것은 은유가 아니다. 도시 교통 수단으로서의 전차는 폐기됐지만, 그것이 만들어낸 사람과 물류가 이동하는 패턴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결국 기존의 흐름에 얹히는 형태로 시작된 지하철은 강남이 주거 지역으로 개발되면서 새로운 지역으로 확대되는 모습을 보였다. 내가 처음 지하철을 탔던 1980년대 중반이면 이미 지하철 3호선이 개통되기 시작했고, 2호선 순환선이 완성됐다. 지하철은 자동차를 보완하는 도시 모빌리티 수단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한국 ‘삐삐 열풍’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보다도 가입자의 연령대가 점점 낮아졌다는 데 있었다. 처음에는 업무상 연락을 주고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 직장인이 주로 사용했지만, 점차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이, 이후에는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도 무선호출기가 유행했다. 이러한 변화는 특정한 테크놀로지가 갖는 사회적 의미가 빠르게 바뀔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19세기 말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처음 전화 사업을 시작했을 때 유선전화는 사무용 통신기기로만 받아들여졌다. 이후 일반 가정에까지 전화가 확산되면서 ‘전화’라는 사물이 갖는 의미가 달라졌고, 그에 따라 전화 통화를 주고받는 에티켓까지 변화하게 됐다. 마찬가지로 무선호출기는 경찰이나 의사 등이 ‘특수 목적’으로 사용하는 기기에서 직장인들의 업무용 기기로, 나아가 대학생과 청소년들이 사적 용도로 사용하는 통신기기로 자리 잡았다.

 

 2018년 현재 한강에는 총 28개의 다리가 건설되어 있다. 이 다리들은 한강의 남쪽과 북쪽을 유기적으로 이어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지금 우리 인식 속의 서울은 한강을 중심으로 발달한 대도시이지만, 이러한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은 1945년 해방 이후였다. 보다 본격적으로는 1963년 특별시의 확장으로 한강 남쪽 지역이 서울에 대거 편입되면서부터 서울은 오늘날의 낯익은 형태가 되었다. 따라서 1970년대에 강남이 개발되기 이전까지 한강을 건너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 아니었다. 명절 때 고향에 내려가거나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한강철교를 건너는 경우가 고작이었을 것이다. 즉 한강 다리의 중요성은 1960~1970년대 서울이 ‘대서울’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부각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한강 다리가 건설된 것도 이 무렵의 일이었다. 한강을 건너는 최초의 다리는 1900년 건설된 한강철교였다. 도로교, 즉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다리로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광진교와 제1한강교(현재 한강대교)가 전부였다. 하지만 1963년에 서울시가 한강 이남 지역으로 대거 확장되자 더 많은 다리가 필요했다. 1965년에 제2한강교(현재 양화대교)가 열렸고, 1969년에는 제3한강교(현재 한남대교)가 지어졌다. 1970년대에만 총 8개의 다리가 놓였다. 바야흐로 ‘한강 다리 붐’이라고 할 만한 시기였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교량들은 서울이 하나의 대도시로 기능하기 위해 결정적인 테크놀로지였다.

 

 성수대교가 1970년대 초까지 지어진 한강 다리들과 비교해 독특했던 두 번째 이유는 그 전까지 시도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공법으로 지어졌다는 것이었다. 건설비가 비싼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성수대교는 게르버 트러스(Gerber truss) 공법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채택해 한강 다리 중 최초로 용접 트러스교로 지어졌다. 게르버 트러스 공법은 독일인 엔지니어 하인리히 게르버가 개발한 교량 건설 방식으로, 기존의 공법에 비해 교각 사이의 간격이 넓어 시원스러운 미관을 갖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교각과 교각 사이에 힘을 지탱할 수 있는 경첩(hinge) 부위를 두었기 때문이었다.
 성수대교가 개통할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교각 사이가 긴 날씬한 모습” 등 외관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동전에 양면이 있듯이 이러한 공법에는 역시 단점이 있었다. 미적인 측면을 강조하다 보니 설계상 여용성이 거의 없어 사전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붕괴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엔지니어들이 구조물을 설계할 때 특수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정해진 무게 이상을 버틸 수 있도록 여유를 두는 것이 일반적인데, 성수대교의 경우 그러한 중복설계가 부족했다. 성수대교 붕괴 직후 서울지방검찰청에서 발간한 ‘성수대교 붕괴사건 원인규명감정단 활동백서’에는 트러스 공법의 채택이 “당시 우리의 시공 기술로서는 다소 무리”한 결정이었다는 평가가 기록되어 있다.
 즉, 추정해보건대 ‘미적’ 이유 때문에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못한 공법을 도입했다는 의미다. 성수대교는 1970년대 후반 한국의 성공적인 경제 발전과 확장된 서울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건설된 셈이다. 기능적인 측면만을 생각한다면 트러스 공법을 채택할 이유가 없었기에, 성수대교 건설에는 기존의 공법을 벗어나 새로운 기술을 시도해보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공사 보고서는 이 다리가 “과거의 교량 형태에서 과감히 탈피한 새로운 형식의 교량으로서 일찍이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선진 외국의 교량 형식과 보조를 같이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성수대교는 이를테면, 기술적 랜드마크였다. 테크놀로지가 인간의 편의를 충족시키는 걸 넘어서 이데올로기적 의미까지 담게 된 사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챌린저호 사고에 대해 오랜 기간 연구해온 사회학자 다이앤 보언은 위와 같이 선악의 구분이 명확한 설명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나사 매니저들이 단순히 경제적·정치적 압박 때문에 오링의 위험 가능성을 일방적으로 무시한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발사 전날 소집된 회의에서 매니저들과 엔지니어들은 당시 확보하고 있었던 모든 데이터에 근거해 토론을 벌였고, 그 결과 발사를 연기할 정도로 명확한 이유가 없다는 데 ‘합의’했다는 것이었다. 이는 모든 복잡한 기술 시스템은 항상 어느 정도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으며, 결국 이를 운용하고 작동시키는 인간의 개입과 그러한 개입을 판단하는 시스템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챌린저호는 당시 세계 최고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졌지만, 그 사실이 100퍼센트의 안전을 보장할 수는 없었다. 우리가 편안한 마음으로 이용하는 자동차, 기차, 엘리베이터 등도 마찬가지다. 일상적으로 접하는 모든 테크놀로지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약간의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결국 발사 전날 밤의 합의는 챌린저호가 가진 위험성을 ‘수용할 만하다’고 받아들이자는 합의였던 셈이다.

 

 현대사회 속 우리는 매일 각종 테크놀로지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가끔씩 오작동을 일으킨다. 컴퓨터가 다운돼 열심히 작업한 원고가 날아가기도 하고, 에스컬레이터가 고장나 힘든 다리를 이끌고 계단을 터벅터벅 오르기도 한다. 엔지니어들이 모든 경우에 100퍼센트 확실하게 작동하는 테크놀로지를 만들기란 불가능하다는 점을 받아들이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어떤 테크놀로지가 오작동을 일으키더라도 누군가에게 치명적이지 않도록 시스템을 설계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답이 나온다. 그것을 위해 중복 설계와 백업 시스템을 마련하고, 사용자들이 위험한 행동을 하더라도 목숨의 위협까지는 받지 않을 수 있도록 신경 써야 한다.
 테크놀로지는 사회문화 또는 정치의 영역과 독립된 활동이 아니다. 불확실함 속에서 최선의 해답을 찾아내고 그 해결책을 통해 인간 행동의 지향을 바꾸어낸다는 점에서 기술과 정치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인간을 위한 엔지니어링은 이를 이해하는 데에서 시작될 수 있다.

 

 그렇다면 상충되는 해석의 충돌이 발생했을 때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객관적인 방법은 없다는 말인가? ‘진실은 저 너머에’라는 모호한 결론으로 유가족들과 시민들의 진상 규명 요구를 덮는 것이 최선이었다는 말인가? 이럴 때일수록 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100퍼센트 확실한 상황에서만 발언할 수 있다면 전문가를 사회적으로 우대할 이유가 없다. 전문가란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의 훈련과 경험을 바탕으로 불완전한 정보를 연결해 소견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질 용기를 가져야 한다. 즉, 불확실성이 개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양한 수준의 정보를 교차 검증해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다면 우리가 전문가를 우대할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우리는 200년 전의 러다이트들을 고리타분한 반기술주의자 정도로, 기술 발달로 인한 생산성 증대와 그에 따른 경제적 기회의 확대를 이해할 폭넓은 시야를 갖추지 못한 사람들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 두 세기 동안 각종 테크놀로지와 결합한 인간의 생산력은 경이적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증가했다. 사치품이 대량생산을 거쳐 대중화되고, 과거에는 상상하지도 못한 새로운 물건이 등장해 인간의 편의를 증대시켰다. 하지만 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서사이다. 단기적인 관점에서는 수많은 집단이 기술실업의 직격탄을 맞았다.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기술에 대한 생각은 대개 장기적인 관점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리고 이 관점이 곧 승자의 관점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기술의 발전은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절대선에 가깝다. 기술실업에 휩쓸린 사람들은 안타깝지만 단기적으로 감수해야 할 피해가 된다.

 

 최첨단 기술이 야기할 사회적 파국이 자연스러운, 필연적인 운명만은 아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사회적’ 작동의 결과다. 정책과 제도, 산업과 문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합의를 통해 결정되는 일들에 대처하는 방법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20년 전에 포스트먼은 컴퓨터 기술이 가져올 낙관적인 미래에 대해 열광적인 언설을 퍼뜨리는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왜 이런 일을 하는가? 당신은 어떤 이해관계를 대변하는가? 당신은 누구에게 권력을 주기를 바라며, 누구로부터 권력을 빼앗으려 하는가?” 오늘날 4차 산업혁명이라는 장밋빛 약속과 그것을 남발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의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 정부의 과학 정책은 누구의 편에 있는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정부 혁신 정책의 최우선에 인재를 두어야 한다”며 인재를 “평범한 엔지니어보다 수 배, 수십 배의 성과를 내는 최고의 SW 엔지니어”이자 “기업가 정신을 갖춘 소수의 창업자”로 정의하는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대정부 권고안에도 질문을 던져볼 수 있지 않은가. 고학력-고임금 노동자만을 정부 정책의 최우선에 둔다면 새로운 테크놀로지로 인해 대체될 것으로 예상되는 중간 정도 숙련도의 노동자의 이해관계는 누가 대변하는가. 대통령 직속 특별위원회의 임무가 사회 각계각층의 이해관계를 수렴해 공정하게 대변하는 것이라면 이 권고안에는 뭔가 문제가 있지 않은가.

 

 태양 에너지를 광대한 범위에서 상용화하려는 노력은 20세기 초에 본격화되었다. 미국의 발명가 프랭크 슈먼에 의해서였다. 그는 1897년 필라델피아에서 태양열 포집 장치를 발명했고, 이 장치를 여러 개 병렬로 연결해 보일러의 물을 끓인 후 그 증기로 증기기관을 가동하는 데 성공했다. 1912년에는 영국과 독일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아 당시 영국령이었던 이집트 나일강변에 대규모 태양열 발전소를 설치했다.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동력은 나일강 관개 설비를 돌릴 수 있을 정도에 달했다. 슈먼은 이와 유사한 태양열 발전소를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 건설해 전 세계에 산업 동력을 공급하는 것까지 구상했다. 하지만 그의 꿈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석탄 공급이 원활해지고, 이용·운반·보관이 용이한 석유가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꺾이고 말았다. 태양 에너지는 이후 한동안 역사의 수면 밑으로 가라앉게 됐다.

 

 하지만 이런 전환은 갑자기,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미 구축되어 있는 내연기관 자동차 중심의 교통 시스템 속에 전기자동차가 들어올 때 발생하는 예기치 않은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는 사회적 과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부르릉’ 소리가 나지 않는 전기자동차를 시각장애인이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유럽연합에서는 2019년 전기자동차에 ‘음향 경고 시스템’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한 사회에 특정 테크놀로지가 자리 잡는 것은 집단적 행동 방식의 적응 시간이 축적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더 나아가 기존의 테크놀로지를 대안적 테크놀로지로 대체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깊은 성찰이 전제되어야 한다. 20세기 모빌리티가 야기한 각종 문제의 근본에는 현재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거대하고 극도로 개인화된 교통 시스템과, 개별 소비자의 더 많은 소비를 유도해 온 대량생산-대량소비 체제가 놓여 있다. 아무리 ‘친환경’적인 자동차가 개발된다고 해도, 문제의 원인이 된 현대적 삶의 방식 자체가 바뀌지 않는데 얼마나 효과가 지속될 것인가. 즉 전기자동차와 교통의 전환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는 더 집요하게 물어야 한다. 현대인은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이, 멀리, 게다가 굳이 혼자서 이동하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전염병 예방은 한편으로 과학과 의학의 문제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 또는 국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백신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개발된 백신을 수많은 사람에게 접종해 집단 면역(herd immunity)을 확보하는 것이 전염병 전파를 예방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구 대부분이 항체를 형성해 면역성을 갖출 수 있게 하려면 접종을 강제할 수 있는 강력한 국가 기구가 필수적이다. 파스퇴르의 백신 개발이 유럽에서 강력한 국민국가가 등장하던 시기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백신과 정치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19세기 중반 이후 전염병을 예방해 국민의 건강과 생명권을 보호하는 것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외적으로부터 영토를 지키는 문제와 함께 국가의 기본 책무로 떠올랐다.

 

 

교정의 요정 / 유리관 / 민음사

 

 내가 입사하기 전, 어떤 교수 녀석이 □□□이라고 틀리게 쓰려는 걸 끝까지 □○□으로 고치려다 대판 싸우고 퇴사한 교정공이 한 명 있었다고 들었다. 그는 단 하나의 자음을 옳게 고치기 위해 자신의 거의 모든 것을, 우리 같은 노동자들에게는 거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는 노동 그 자체를 걸었다. 부러질지언정 구부러지지 않은 그의 불굴을 생각하면 내가 지금 로써와 로서 따위에서 물러날 수는 없는 법이다. 나는 그의 얼굴은 물론이요 이름도 모르지만 그는 오늘 무명용사 되어 내 안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잘못된 교정을 다시 옳게 되돌리며, 나는 그 무명용사가 왜 교수와 대판 싸웠는지 이해한다. 내가 겪은 일인 것처럼 이해한다. 그것은 글자의 옳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전혀 아니다. (p.19-20)

 

 교정의 요정이 나타나 내일까지 이 원고를 다 교정해 줬으면 좋겠다……. 그러나 교정의 요정은 그 반대의 일을 합니다. 몇 명의 사람이 매달려 아무리 눈이 빠져라 교정을 보더라도 인쇄된 책에 반드시 하나 이상의 오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그것이 바로 교정의 요정의 소행입니다. 누군가의 맞춤법을 지적하는 글의 어디 한 군데는 반드시 틀리기 마련이라는 사실, 그로부터 어렴풋이 알아차릴 수도 있을 겁니다. 그 또한 짓궂기 짝이 없는 교정의 요정의 소행입니다. 교정의 요정은 문자와 비문자 사이 틈새 차원에 살고 있습니다. 그 차원에 얽혀 있는 것은 인쇄소, 인쇄기, 출판사 사무실, 교정공과 디자이너와 저자의 컴퓨터 내부, 광케이블, 전화선, 수많은 사람들의 뇌신경, 그리고 읽힘이 일어나는 시간과 일어나지 않는 시간, 전 세계 언어문화의 흐름과 적층…… 글이 책으로 되기 위하여 추상적으로 물리적으로 거쳐 지나가는 모든 것입니다. 교정의 요정은 양지바른 데서 다리를 꼬고 드러누워 있다가 내키는 때가 오면 손깍지를 쭉 밀고 활동에 나섭니다. 한 글자를 슬쩍 바꾸고, 자음이나 모음 한 개를 슬쩍 돌려놓고, 한 칸을 지우고, 두 칸을 넣고, 선과 숫자를 밀고 당깁니다. 그냥 순전히 장난으로요. 어쩌면 요정에게는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어떤 의무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교정의 요정의 개입은 불가항력입니다. (p.70-71)

 

 한국인 인구가 감소한다면 다만 외국인노동자는 더 많아질 것이며, 이미 그렇게 되고 있다. 노동에 대한 이 나라의 혐오는 점점 더 커지고 있고, 노동은 기대와 전혀 달리 제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의 종식이 가능하다는 것은 망상이다. 또는 SF다. 나도 나름 에셉애호층이다. 내 머릿속도 망상으로 가득하다. 나는 몰라도 이 말은 들어도 좋다. 노동은 그저 재분배된다. 노동? 물론 제거하고 싶죠…… 거미줄처럼 얽혀 만사 위에 내려앉은 노동을, 제거하고 싶은데, 당연히 제거하진 못하고, 다만 어떤 이들은 거기서 벗어나 있다는 사실을, 단지 벗어났을 뿐 아니라, 여럿으로부터 적극적으로 짜냄으로써 벗어나 있다는 사실, 그 자신 정신병적으로, 한 인간으로선 이미 무한히 누리고 있음에도, 점점 더 무한히 자신만의 자유시간을 여럿으로부터 짜내려 한다는, 다시 말해 몫을 넘어 지배하려 든다는 사실을, 노동으로부터의 자유는 다름 아닌 노동자 자신들이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합심으로 은폐하려 들 따름…… 심지어 그 어떤 이들의 자리에, 이제 인간마저 없어지려 하고, 그야말로 자동으로, 즉 자본가마저 자동화되어, 엄연히 존재하는 노동을 아예 없는 듯이 치워 버리려고…… 저 바깥으로, 저 밑으로, 외주로, 외국으로, 노동자화하고, 노동자를 변신시키고, 변장시키고…… 노동 그 자체에 내재된 자존을 노동으로부터 분리시켜, 노동은 다만 혐오스러운 것으로 주저앉히는 그런 일은, 환율이 허락하는 한, 경계들이 존재하는 한, 편재하고 편재하는 인세지옥들이 허락하는 한, 다시 말해 ‘그 조건들을 만들어 내는 한’ 가능하고 또 일어나려 할 텐데, 어떤가? (p.213-214)

 

 집회에서는 일본에서 온 탈핵네트워크활동가와 화력발전노동자의 발언이 좋았다. 아마 그런 이야기를 끈질기게 찾아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를 우리 가운데로 건져 내는…… 화내는 사람에 머물기를 포기시키고 낙담한 사람으로 머물기를 넘어뜨리는…… 데모라는 시연장은 어려운 문제다. 그 바깥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특히 거기 있는 사람에게 그렇다. 그곳에 있는다는 것이 어렵고, 가서 뭔가를 보고 듣기가 (물리적으로) 어렵고, 보고 들은 것이 맞는지 어떤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모인단 말입니까? 어려움을 위해서다. (p.223-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