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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과 역설 / 에드워드 사이드, 다니엘 바렌보임 / 마티

 

바렌보임 (…) 우리처럼 직업이 직업 그 이상의 의미인 경우, 즉 단순히 업무시간을 채우는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 되어버린 사람들에게 지리적 위치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베토벤이나 브루크너를 지휘할 때처럼, 당신도 분명 괴테를 읽을 때 재미있는 방식으로 독일인을 의식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참여했던 바이마르 워크숍의 가르침 중 하나였죠. 엄밀히 말해서, 다양한 정체성은 가능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추구해야 할 대상입니다. 다양한 문화에 속한다는 느낌은 우리를 풍요롭게 해줄 수 있으니까요. (p.24-25)

 

바렌보임 놀라운 건, 우리가 “타인”에 대해 어쩌면 이다지도 무지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이스라엘 학생들은 다마스쿠스[시리아의 수도]와 암만[요르단의 수도], 카이로[이집트의 수도]에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연주하는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고 하더군요. 아랍 단원들은 이스라엘에 음악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자세히는 몰랐던 것 같고요. 한 시리아 소년은 지금까지 이스라엘 사람을 단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아이에게 이스라엘 사람은 그저 자신의 조국과 다른 아랍 국가에 좋지 못한 상황을 만들 원흉에 불과했죠.
 바로 이 소년이 이스라엘 첼리스트와 함께 한 무대에 서서 음악을 연주했습니다. 그들은 하나의 음표를 연주하고 있었죠. 똑같은 다이내믹에 일사불란하게 활을 켜고, 똑같은 소리에 똑같은 표현을 담고자 애썼습니다. 그들은 하나의 목표를 위해 다함께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아주 간단한 문제였죠. 단지 양쪽 모두 관심과 열정을 가진 어떤 대상을 위해서 함께 노력하는 것뿐이었으니까요. 하나의 음표를 함께 연주하면서, 그들은 이미 서로를 더 이상 예전처럼 바라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경험을 공유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만남이 중요한 진짜 이유입니다. (p.29-30)

 

사이드 불행하게도 오늘날 미국에는 기억상실증이 만연해 있습니다. 미국이 진정한 이민 사회이며 언제나 그래왔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병이죠. 이 병증으로 미국은 오직 하나뿐이며 다른 대안은 없다는 주장이 최근 제기되고 있습니다. 무엇이 미국 전통인지, 무엇이 그들만의 규범이며 미국의 단일한 면모는 무엇인지에 대한 논쟁을 보고 있노라면 무척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왜냐하면 “독일적”인 것은 무엇인가, 또는 “영국적”인 것은 무엇인가 하는 식의 민족주의를 바다 건너에서 수입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제게는 심하게 변덕스럽고 역동적이어서 진심으로 매력적인 미국의 모습과 이런 민족주의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말입니다. 순식간에 정해지고 그대로 영원히 굳어버리기보다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끊임없이 동요하는 사회가 바로 미국입니다. 같은 의미로 대학이나 오케스트라처럼 한 사람의 인생을 하나의 이상에 쏟아붓는 예술과 학문의 장은 단지 지식을 긍정하고 응고시키기보다는 반대로 그 지식이 진실인지를 탐구하는 장소여야 합니다. 이런 공간이야말로 이 사회와 이 나라의 역사에 절대로 순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제 견해입니다. (p.33)

 

사이드 극심한 검열 속에서 완성된 문학이 훨씬 더 흥미롭다는 주장도 있죠. 작가가 심어놓은 갖은 독창성과 속임수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게 되기 때문이죠. 제가 문제삼고 싶은 것은, 예술과 음악이 일상의 사치로 자리 잡은 우리 사회에 관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처럼 정기회원 관객들의 기부로 운영되는 교향악단이 정기공연에서 베토벤과 브람스 교향곡을 연주하기로 되어 있다고 칩시다. 이 같은 맥락 안에서는 음악의 목적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무런 도전할 대상이 없는 상황이니까, 그저 기존의 상황을 재확인하기 위한 것일까요? 당신은 베토벤 교향곡 9번이나 〈피델리오〉를 자유를 지지하기 위해 무대에 세울 수 있다고 말씀했습니다만, 그런 경우가 적용되지 않는 사회에서 음악이 똑같은 비판의 역할을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가령 여기처럼 자유의 문턱을 아무나 넘을 수 있는 사회에서, 그런 활동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저 현재의 상황을 재확인하는 걸까요? 오케스트라라는 단체의 힘과 매력을 다시 한번 과시하며, 하나의 사회 번영의 상징으로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것일까요? 지식인으로서 그런 상황을 몇 번이고 재확인하는 것은 그다지 흥미로운 일이 아닙니다. 제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언제나 주어진 상황에 도전하는 행위입니다. 음악에서, 음악을 연주하면서 음악과 평행(parallel)을 이루는 것, 이와 유사한 행위는 무엇일까요? 정말 그런 도전이 가능할까요? (p.76-77)

 

사이드 (…) 이와 관련해 질문을 좀 드리고 싶군요. 가령 시카고 심포니처럼 20세기 후반에 존재하는 멋진 오케스트라의 맥락 안에 쑤셔 넣기 위해, 과거의 작품들을 왜곡하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지요? 하나의 작품을 취할 때에, 가령 베토벤 교향곡처럼 지금보다 훨씬 작은 편성의 오케스트라 및 공간이라는 특정한 조건에 맞추어 작곡된 작품을 연주한다고 합시다. 그 작품을 20세기에 맞춰 변형시킨다면, 그것은 어느 정도 과거를 침해하는 일이 됩니다. 당신도 저처럼 과거의 요구와 현재와의 연관성에 대한 의문 사이에서 끊임없이 오락가락하는 기분을 느끼시나요?

바렌보임 물론입니다. 모든 위대한 예술작품들은 두 얼굴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는 그 자신의 시대를 향하고, 다른 하나는 영원을 향하고 있죠. 다시 말해서, 모차르트의 교향곡이나 오페라의 어떤 측면은 분명하게 당대하고만 관련이 있지 지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백작이 가진 ‘초야권’은 오늘날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죠. 하지만 이 음악에는 시간을 초월하는 가치 또한 존재하고, 그런 측면을 발견하는 심정으로 연주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p.84-85)

 

바렌보임 정말 그렇습니다. 안타깝지만 이런 현상 또한 우리 시대의 사고방식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압축되고 동전 한 닢 또는 슬로건 하나로 요약됩니다. 사실 우리 모두가 그 자체로 극단적일만큼 비판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정작 개인에게는 비판의 수단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사이드 또는 엄청난 노력, 엄청난 인내를 요구하는 문화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바렌보임 촘스키가 텔레비전 방송 출연을 거부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었습니다. 그는 어떤 개념을 끝까지 설명할 만큼 충분한 시간을 방송국이 주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그 의견에 깊은 존경을 표합니다.

사이드 그렇습니다. 저도 방송을 그만두었습니다. 한때는 방송에 매우 많이 출연했습니다. 방송에 나가면 소위 그들이 말하는 용어로 간략히 줄인 방송용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저는 전적으로 거기에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그저 시간낭비에 불과하죠. 제가 표현의 수단으로 집필이나 강의를 더 선호하는 이유도 그때문입니다. 청중 앞에서 생각을 펼칠 수 있는 시간이 보장되니까요. 물론 저도 게릴라식 토론의 매력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갑자기 끼어들어 말을 가로막곤 하죠. 안 될 건 없지만 뭔가 부족합니다. 토론 중에는 발만 살짝 담그기보다 확실하게 토론에 개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p.92-93)

 

바렌보임 (…) 학교가 훨씬 더 많은 정보와 훨씬 더 적은 교육을 제공하게 된 까닭은 예전에 비해 오늘날 전체적인 교육 수준이 현저하게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기관들, 특히 교향악단이나 오페라 극장 같은 대형 음악 기관들은 21세기 들어 대중과 청소년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교육과 훨씬 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대중에게서 엿볼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진보는 그들이 당황하지도, 거만하지도 않은 태도를 취하며 지식에 대한 갈증을 적극적으로 표출한다는 점입니다. 자막은 이를 증명하는 최고의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50년 전만 해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서 영어 자막을 제공한다든가, 베를린 오페라 극장에서 이탈리아어를 독일어로 번역한 자막을 사용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때는 모두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글쎄요, 우리는 〈라 보엠〉을 잘 아는데, 자막이 왜 필요한 거죠?”
 자막 서비스는 알고 싶고 교육받고자 하는 의지가 충만한 대중의 입장에서 볼 때, 매우 긍정적이면서 중요한 변화입니다. 더 나아가 바로 이들 때문에 기관들에게 이런 종류의 교육을 제공할 의무가 있습니다. 오늘날 음악 교육은 매우 열악하며 미국에는 실제로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이를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지 작곡가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작품이 어떻게 작곡되었는지, 무엇에 영감을 받았는지에 관해서도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관건은 사람들에게 소리의 역할을 이해시키는 방법입니다. 저도 그 방법만큼은 아직 자신이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군요. 늘 찾고 있기는 하지만요. 왜 소리는 감정을 자극할까요? 다른 말로 하면, 듣는 방법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음악과 함께 끝날 때까지 머물고자 하는 희망, 그리고 처음 들려오는 소리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가가 관건이죠. 제게는 정말 매력적인 주제입니다. (p.103-104)

 

사이드 당신에게 깊은 영향을 끼친 대상에게 “아니, 이제 됐습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하렵니다”라고 말해야 했던 순간은 없었나요? 저 같은 경우는 권위주의를 너무 싫어해서 늘 반항했거든요. 때때로 다른 사람의 독서 스타일이나 지적인 태도를 흉내내다가도 나중에는 꼭 의식적으로 이렇게 말하곤 했어요. “자, 이제 충분해. 더 이상은 따라하지 않겠어. 나는 나만의 방식이 필요해.”

바렌보임 저도 그랬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최고의 아첨이라 할 수 있는 모방과 타인의 영향을 받는 데 대한 두려움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는 듯 보입니다. 누구나 기본적으로 두 극단 사이에서 왔다갔다 흔들리게 마련이죠. 당신의 이야기는 역설의 본질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언젠가 버릴 것을 알기에 취하는 것이죠. (p.106-107)

 

바렌보임 저는 늘 작품을 전체적으로 조망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전곡 연주를 신뢰합니다.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회를 시도해 본 피아니스트라면 분명 각각의 소나타에 대해 훨씬 폭넓은 관점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나는 인생도, 생각도 변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어떤 시점에 이르면 다른 이들의 창조물들을 통해 우리 자신을 살찌워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고 나면 이번에는 스스로를 격리시켜야 하는 시기가 찾아오죠. 진보의 길이란 이처럼 역설적으로 오르내리는 법입니다.

사이드 가령 어떤 에세이스트가 쓴 책을 집어 들었다고 합시다. 제가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다는 전제 아래, 제게 영감을 주거나 또는 감동시키거나 생기를 불어넣거나 지적으로 흥분시키는 것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단어들을 통해 느껴지는 일종의 정신입니다. 하나의 발견이기도 하죠. 독창적이거나 불현듯 심각하면서도 의미심장한 인상을 주는 소재들을 통해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있는 느낌 말입니다. 스물두서넛쯤이었을 때 비코가 쓴 『새로운 과학』을 처음으로 읽었습니다. 이상하리만큼 구식인데다가 처절하게 투쟁하는 스타일로 내 사상에 꾸준히 영향을 끼친 비범한 저서죠. 18세기 나폴리 출신의 무명 철학자 겸 수사학자가 쓴 괴상한 책인데, 역사와 세계를 대하는 태도가 환상적이리만큼 독창적이어서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이란 존재는 언제나 그만의 고유한 역사를 만들고 또 스스로 만든 역사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것은 세속에 대한 제 생각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기적이라든가 신성 같은 외부 세계의 권능에 의지하지 말고 우리 자신의 역사를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고 비코는 여러 차례 반복합니다. 이것은 저를 일깨워주는 매우 중요한 통찰이었습니다. (p.112-114)

 

사이드 (…) 그렇지만 제가 말했듯이, 이것 말고도 고려해야 할 다른 문제들이 끊임없이 쏟아집니다. 청중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도 그중 하나이죠. 연주자로서 당신은 어느 정도까지 청중을 염두에 두는지요? 그들을 진지하게 대한다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바렌보임 그리 많이 염두에 두지는 않습니다. 지휘자가 되기로 결심한 날부터 당신은 호감을 얻고 싶어 하는 본능을 버려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말하고 싶은 무엇을 품게 되는 순간, 그것은 누군가로부터는 동의를 얻지만 또 다른 누군가와는 충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직 평범함만이 논란의 여지가 없는 반응을 얻을 수 있죠. 논란이 많다는 것은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거의 비난처럼 되어버렸습니다. “그는 논란거리야”라는 게 무슨 뜻인지 당신도 알겠지요?

사이드 저에 대해 늘 그렇게 말씀들 하지요.

바렌보임 글쎄요, 저라면 대단한 칭찬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p.118-119)

 

구젤리미안 텍스트에 충실하다는 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정격성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또한 이런 개념은 다른 예술에서도 적용이 가능할까요?

바렌보임 음악은 문자 언어와 다릅니다. 왜냐하면 음악은 오직 소리를 창조하는 순간에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베토벤이 교향곡 5번을 작곡했을 때, 맨 처음에 그 교향곡은 오직 머릿속에서 상상한 물리적 법칙의 지배를 받으며 단순히 허구로서만 존재했습니다. 그것을 작곡가는 하얀 종이 위에 검은 점이라는, 기보법 체계를 사용해서 옮겨놓았을 뿐입니다. 아무도 이 하얀 종이 위의 점들을 가지고 교향곡 5번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교향곡 5번은 세상 어딘가에서 오케스트라가 그것을 연주하기로 결심하는 순간에만 유효한 존재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소리의 현상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저마다 다른 사람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간다는 사실에 음악만의 독특함이 존재합니다. 그 의미는 시적인 것일 수도 있고 수학적인 것일 수도 있으며, 또는 관능적이어도 좋고 그 무엇이더라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음악은 그 모든 것을 오직 소리로만 표현합니다. 부조니가 말한 “귀에 듣기 좋은 공기”인 것이죠. 이 점이 근본적으로 중요한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충실함에 대해 논할 때, 그 충실함은 대체 무엇에 대한 것일까요? 여기서 언급되는 충실함의 대상이 되는 악보는 그저 아주 근사치에 가까운 빈약한 체계일 뿐입니다. 만약 악보에는 피아노[piano 여리게]라고 적혀 있는데, 포르테[forte 강하게]로 연주한다면, 그것은 분명 텍스트에 충실하지 않은 태도일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논하고자 하는 게 이런 것이 아니지만, 그렇더라도 음악적 경험, 음악을 연주하는 행위란, 소리를 지속적인 상호의존의 상태로 가져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을 상기해야 합니다. 거기에 관여된 요소들을 따로따로 분리시켜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속도는 내용, 음량 등과 관계되어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모든 것은 상대적이며 항상 그 전후는 물론 그와 동시에 일어나는 것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가령 바이올리니스트가 피아노라고 표시되어 있는 베토벤 교향곡의 한 패시지를 연주한다고 합시다. 이때 ‘여리게’를 지시하는 피아노는 무엇과 관계된 지시일까요? 그 시점에서, 그 전에 왔던 소리와의 관계이고, 그 위나 아래에 있던 소리와의 관계일 것입니다. 이렇게 상대적인 의미를 가지고는 충실함에 대해 논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눈앞의 인쇄물을 단지 적혀 있는 그대로만 재생하고자 시도할 뿐 그 이상 아무런 의미도 담지 않는다면, 그런 일은 불가능하기도 하거니와―따라서, 이것도 충실하다고 말할 수 없죠―완전히 비겁한 행동입니다. 왜냐하면 상호관계와 음의 정량을 이해하기 위한 수고를 거부하고, 그밖의 다른 것에 대해서는 일절 말하지 않겠다는 소리니까요. 지금 저는 선율이며 프레이징이며 그와 비슷한 것들은 차치하고 다만 음량과 밸런스에 대해서만 논하고 있습니다. (p.167-169)

 

사이드 매우 흥미로운 생각입니다. 작곡가의 의도에 대해 좀 더 얘기를 나눠봤으면 합니다. 음악이 종이 위에 적혀 있는 것만으로는 움직이지 못하고 생명력이 없다는 말은 분명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주자와 작곡가 모두, 해석을 하면서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고수해야 할 어떤 요소, 해석에 득이 되는 요소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오리지널 텍스트라고 부르든 또는 합의된 관례라고 부르든 크게 상관없습니다. 이때도 음악은 처음 작곡될 당시 그대로의 상태는 분명 아닙니다. 처음의 상태로는 절대로 돌아갈 수 없죠.
 이런 발상을 가지고 텍스트로 다시 논점을 돌렸으면 합니다. 텍스트와 그 텍스트를 작성하는 방식에 대해 논할 거리가 아직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결국 우리가 의존하는 대상은 텍스트이니까요. 그러나 편집자가 원고나 음표를 교정하고, 또는 최소한 그들에게 존재를 부여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 작업 덕분에 연주자와 독자가 그 작품들의 세계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죠. 즉, 기본적 편집 작업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또한 우리는 앨런 타이슨이 제시한 세부적인 유형을 숙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모차르트 학자로, 종이 속의 문양을 분석하여 특정한 패시지가 어느 시대에 작곡되었는지 밝혀낸 인물입니다. 이런 분석 작업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 작업이 연주할 때나 책을 읽을 때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결정해주지는 않지만 텍스트를 구성할 때 이런 종류의 편집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면, 그렇게 만들어진 텍스트를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두 가지 방식으로 텍스트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모든 것이 여기 악보에 다 있으니, 내가 할 일은 그것을 단순하고 충실하게 다시 재현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접근은 완전히 엉터리입니다. “텍스트를 충실하게 재현하는” 방법이란 없으니까요. 만약 18세기 텍스트에 충실하고 싶다면 18세기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일은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텍스트는 일단 완성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굳이 작가가 부여한 의미 없이도 스스로 알아서 생존하는, 하나의 객체로 독립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텍스트가 무작정 변하기 쉬운 객체만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해석하는 입장에서든, 독자로서든, 또는 음악의 경우 연주자로서든 말입니다. ‘빠르게’ ‘여리게’ 등 모든 지시가 텍스트에 분명히 적혀 있는 마당에, 제멋대로 해석하면 당연히 반발심을 불러일으키겠죠. 누구나 무작정 원하는 대로 연주나 해석을 할 만큼 상황이 완전히 열려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리어 왕〉을 코미디로 결론짓는다면, 그것이 얼마나 우습게 왜곡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그저 근본적으로 해석이 잘못된 사례입니다. 〈오텔로〉를 익살극이라고 주장하는 건 또 어떨까요? 분명 비정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고의 해석은 텍스트를 작곡가, 작가, 또는 시인이 내린 일련의 결정의 결과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그 결과를 받아들일 뿐이지요.
 따라서 작품을 읽을 때는 이런 음표나 단어들이 종이 위에 존재하게 된 과정을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대단히 복잡한 일이죠. 그 과정에는 불레즈가 “거울”이라 부른 한 다발의 직관과, 교육을 통해 얻은 한 다발 추측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소리를 만들어내고 언어를 재생산해내는 훈련과 양식 속에서 직관과 추측은 드러나며, 이를 통해 주목을 끄는 참신함도 생겨나지요. 만약 연주자나 해석자가 이전에 다른 사람이 이미 해온 작업을 단순히 반복하는 데 그친다면, 해석과 연주는 따분해집니다. 때문에 새로운 자극이나 형태를 부여하고자 노력해야겠죠. (p.172-174)

 

사이드 문학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습니다. 매우 편협한 역사적 관점을 가진 경우인데요. 오늘날의 학생들이 호메로스나 베르길리우스 등등을 충분히 읽지 않는다며 고전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부르짖는 사람들이죠. 그들이 이렇게 외치는 이유는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에 관심이 많아서가 아니라, 앞서 언급했듯 차별, 인종, 계급 같은 우리 시대의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동시대 문학을 깎아내리기 위한 방도로서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를 이용하는 것뿐입니다. 그들은 우리 민족유산―본질적으로는 유럽의 유대·기독교 문명이죠―의 맥이 끊어졌기 때문에 이런 과거의 원전들을 읽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여성문학, 흑인문학, 소수민족 문학 등등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말이죠.
 자, 대체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이를 옹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작 그 작품들에 관한 새로운 의견은 좀처럼 내놓지 않습니다. 그저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필독서이니 무조건 읽으라고 강요할 뿐이죠. 누가 그렇지 않다고 했나요? 베르길리우스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긴 합니다. 그렇다고 여타 작품들을 다 치우고 오직 베르길리우스만을 읽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앨런 블룸은 실제로 니체 이후에 집필된 책들은 모두 그만 읽어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죠. 그는 기본적으로 고대 그리스 철학자, 몇 명의 시인, 그리고 프랑스 계몽주의 작가들의 작품을 읽는 데 시간을 투자해야 하며, 교육이란 엘리트를 양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대놓고 말했습니다. 모두가 교육을 받을 필요는 없다고 말입니다.
 이처럼 정격성과 과거에 대한 문제를 더 깊게 파고든다면, 우리는 “타자”에 대한 문제에 다시 도달하게 됩니다. 거기에는 오늘날의 이슈뿐 아니라 과거에 대해 누가 특권을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도 포함됩니다. 이는 음악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격운동에서도 매우 분명하게 드러나는 일종의 우월의식입니다. (p.188-189)

 

사이드 음악 교육이라든가 슈타츠카펠레의 연주, 특히 베토벤을 연주하는 방식 등 당신이 언급한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구조적 총체성은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점점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지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일단 심각한 부담을 느끼면, 그 부담은 보다 실용적인 노선으로 빠지는 법입니다. 즉 자신의 분야만 알면 그만이라는, 일종의 지식의 전문화를 추구하게 되죠. 그 결과, 같은 분야의 전문가들끼리만 이해를 공유합니다.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 한 발자국만 밖으로 걸어 나와도 누구하고도 소통할 수 없게 되죠.
 언젠가 의과 대학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후기 양식[말년의 양식]에 관한 것이었는데, 누군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선생님은 음악과 문학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계시지만 우리처럼 자연과학이나 의학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내용들입니다.” 그래서 “왜 해당되지 않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우리는 신경생물학을 전공하고 있거든요. 신경생물학을 전공한 사람들하고만 이야기하면 되죠.”
 공통된 담론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제는 사라졌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교육이 극도로 전문화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재정 지원 자체가 지식의 파편화에 적합하도록 맞추어져 있는 것도 문제죠. 이 때문에 분야는 가면 갈수록 쪼개어지고, 그 하나하나에 가는 손은 합한 전체보다 더 많은 형국이 되었습니다. 학문에서는 이런 현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데올로기적인 주입이 포함된 것도 사실입니다. “글쎄요, 그건 당신 문제가 아닙니다. 누군가 당신을 대신해서 그 문제를 풀어주겠죠. 더 이상 그 문제에 책임질 필요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나머지 세상에 대해서는 알 필요가 없다는 이런 인식은 특히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사회 전반에 대한, 그리고 우리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에 대한 인식이 사라졌죠. 환경이든, 예술이든, 또는 역사에 관한 것이든 말입니다. 가령, 미국에서 역사란 세상으로부터 잊혀진 대상으로 간주됩니다. 누군가가 “당신은 이미 역사가 되었어요”라고 말한다면, 당신이 역사의 일부가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미국에서 역사가 의미하는 바고요. (p.217-218)

 

사이드 글쎄요, 그런 대립 요소는 다른 방식으로 여전히 존재한다고 봅니다. 유럽과 미국의 이민 문제를 예로 들 수 있죠. 당신이 살고 있는 독일은 오늘날 매우 방대한 숫자의 이민자들을 수용하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에 하이더 같은 인물이 등장한 것을 보십시오. 이런 제노포비아, 즉 외국인 혐오는 자만으로 가득찬 승리감과 고립주의 정책의 원인이 됩니다. “자, 우리는 우리 고유의 것을 보존하고 순수하게 지키고자 한다”라고 외치면서 말이죠. 이야말로 진정한 공포입니다.
 그런 배타주의가 이 나라, 미국에도 존재합니다. 미국은 동질화되어야 하며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다른” 사람들은―멕시코인이건, 흑인이건, 혹은 아프리카 사람이건 상관없이―접근을 막거나 흡수 정책을 써야 한다는 것이죠. 자기와 “타자” 사이에 이뤄지는 건강한 교류는 염두에 두지 않겠다는 겁니다. 제 생각에도 건강한 교류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듯 보입니다. 모든 것이 이처럼 동일한 색깔을 가진, 단일하고 개념 없는 전체에 흡수되어 버리고 있습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고전문명의 역동적인 감정이 새로운 힘의 위협에 직면해 있는 것이죠.
 이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나와 다른 것은 위험하니까 조심해야 해”로 나타납니다. 오늘날 진짜 문제는 이 두 가지 극단 사이에 중재가 부재하다는 것입니다. 타자에 대해 한쪽은 나와 동화시키려고만 들고, 다른 한쪽은 무조건 내치려고만 들 뿐 교류를 하고자 하는 의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바로 이런 일들이 세계의 많은 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들 기원으로 돌아갈 필요들을 느낍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많은 사람들이 “뿌리로 돌아가자”고 말합니다. 독일인의 과거와 유대인의 과거, 아랍인의 과거, 미국인의 과거를 찾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죠. 다른 어떤 것으로부터도 오염되지 않은 과거를 발견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입니다. 비록 그 과거가 역사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더라도 말이죠. 과거 역시 현재와 크게 다를 바가 없을 텐데 말이죠. (p.221-222)

 

 지난해 11월 9일 독일 대통령 요하네스 라우는 연설을 통해 민족주의와 애국심이 어떻게 다른지 적절하게 논한 바 있다. “애국심은 오직 인종차별과 민족주의의 여지가 없는 곳에서만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애국주의를 민족주의와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애국자란 자신의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민족주의자는 다른 이들의 조국을 경멸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지적으로 보인다. 나는 전후 반세기에 걸쳐 수많은 독일인이 애국심과 나라에 대한 애정을 상실했으며, 그 원인은 일부 민족주의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이것은 불행한 일이다. 이런 변화는 독일에 대규모의 이주민들이 찾아오는 시기와 맞물렸다. 그 어느 시대보다 훨씬 많은 외국인들이 독일에 정착하고 싶어 하거나, 부득이하게 정착해야만 했다. 아르헨티나나 미국처럼 이민자들이 기반을 이루는 나라와 달리 독일은 그들에 대한 관용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문을 활짝 열고 이민자들을 받아들였다. 외국인에게 적대적인 일부 독일인의 태도는 이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납득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하나 이상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외국 출신들이 외국 관습과 문화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동시에 독일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들 고유의 문화를 지키는 것이 독일인으로서의 그들 정체성에 아무런 해를 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독일 문제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가장 좋은 사례가 바로 오늘날 베를린의 상황이다. 일부 독일인들은 그들의 수도가 점점 다양한 다문화 사회가 되어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런 두려움이 그들이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과거에서 비롯되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베를린은 독일의 유일한 분단 도시였으며, 각각의 지역에는 엄청난 외부 지원이 있었다. 독일연방공화국(서독)과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은 양쪽 모두 베를린이란 도시에 특별한 위상을 부여했다. 통일이 되었다는 이유로 베를린이 이 특별한 위상을 상실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이다. 지금의 독일인이 가진 우려와는 정반대로, 베를린은 4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동서 양 진영이 분단된 채 나란히 공존하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베를린은 서로 다른 차이점을 포용할 수 있는 고유의 잠재력이 있으며, 이제 그 잠재력을 발휘해야만 할 때가 온 것이다. 역사에서 비롯된 분단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그런 역사를 긍정적인 힘으로 발휘해야만 한다. 그것이 베를린은 물론 독일의 나머지 도시와의 관계, 그리고 더 나아가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위한 일이다. (p.249-251)

 

 그러나 지식인, 예술가, 그리고 자유 시민은 반대와 대안, 다수의 횡포에 도전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계몽과 자유를 진보시키기 위한 길과 가능성을 언제나 스스로에게 열어두어야 한다.
 이런 생각은 “서구” 수입품이어서, 아랍이나 이슬람 국가는 물론 유대인 사회와 전통에 적용할 수 없다고 간단히 일축해서는 안 된다. 이는 내가 아는 한 모든 전통에 존재하는 보편적 가치이다. 모든 사회는 그 안에 갈등을 품고 있다. 정의와 불의, 무지와 지식, 자유와 억압이 그 안에서 투쟁하고 있다. 중요한 점은 단지 남의 말만 듣고 어느 한쪽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그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상황의 모든 측면에 적합한지 신중하게 고려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의 목적은 사실 그 자체를 축적하거나 “정답”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스스로의 힘으로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바그너와 바렌보임에 대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반응으로 되돌아가보자. 만약 예술의 가치를 예술가의 도덕적 행위로 판단한다면, 대체 대중 앞에 남아나는 작가와 음악가, 시인, 화가들이 있기는 할 것인가? 또한 예술가의 예술 작품을 놓고, 그 추하고 부도덕한 수준을 어느 정도까지 눈감아줄 수 있는지, 과연 누가 결정한단 말인가? 성숙한 정신의 소유자라면, 두 가지 모순된 사실을 마음으로 함께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즉, 바그너가 위대한 예술가였다는 점과 바로 그 바그너가 역겨운 인간이었다는 점 양쪽 모두를 말이다. 불행하게도, 둘중 한쪽 사실만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렇다고 부도덕하거나 악행을 저지른 예술가들이 도덕적으로 자유롭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예술가의 작품을 오로지 예술가의 도덕성만 가지고 판단하고 그에 따라 금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p.261-262)

 

 그리고 다른 맥락에서, 바렌보임의 바그너 연주가 유익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유대인 집단 학살의 트라우마로 아직까지 고통받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진정 고통스러운 일이 될지라도, 그의 연주는 단순한 애도에서 한 단계 나아가 삶 그 자체를 살아가도록 한다. 삶이란 과거에 들러붙어 있을 수 없는,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복잡한 이슈들의 미묘한 차이를 나라고 모두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요점은 진정한 삶은 비판적 이해와 해방의 경험을 가로막는 금기나 금지에 지배될 수 없다는 것이다. 비판적 이해와 해방의 경험은 언제나 그 무엇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 외면과 회피는 현재를 위한 적절한 안내자가 결코 될 수 없다. (p.264-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