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읽고 쓰는 이유 / 이강룡 / 라티오
무한한 우주처럼 방대한 읽기와 쓰기의 영역 역시 서로 떼어놓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 읽기와 쓰기는 의미 세계라는 더 넓은 차원 안에 있는 두 측면으로서, 어떤 보이지 않는 끈으로 단단히 여며 있다. 인류 최초의 역사서인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투퀴디데스에게 영향을 주어 《펠로폰네소스 전쟁기》를 쓰도록 했다. 투퀴디데스는 “내가 기술한 역사에는 설화가 없어서”라고 적었는데, 설화까지 기록했던 헤로도토스보다 더 정확한 역사를 기술하고 싶은 바람을 표출한 것이다. 백성들에게 사랑받는 군주가 되려고 하지 말고 백성들이 두려워하는 군주가 되라고 역설한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막스 베버에게 영향을 주어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쓰도록 했다. 베버가 “정치에 뛰어드는 자는 악마적 세력과 계약을 맺는 것”이라고 적은 구절이 마키아벨리의 관점을 잘 표현한다. 프랑스의 정치학자 알렉시 드 토크빌이 미국을 탐방한 뒤에 쓴 보고서인 《미국의 민주주의》는 존 스튜어트 밀에게 영향을 주어 《자유론》을 쓰도록 했다. 밀이 “정치 영역에서 ‘다수의 횡포’는 온 사회가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될 큰 해악”이라고 적은 것은 토크빌의 영향이다. 단테의 《신곡》은 오노레 드 발자크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인간 희곡》을 쓰게끔 했다. 발자크에 영향을 받은 에밀 졸라는 《루공-마카르 총서》를 기획한다. 찰스 디킨스의 작품들은 빅토르 위고에게 영향을 끼쳐 《레 미제라블》을 쓰도록 영감을 불어넣었다. 위대한 작품들을 이어 줄 뿐만 아니라 읽기와 쓰기라는 두 세계를 묶어 주는 그 보이지 않는 끈은 의미를 주고받는 일과 깊이 연관되어 있는 듯하다. (p.6-7)
화학자 아우구스트 케쿨레는 벤젠의 분자 구조를 처음 발견했는데, 자기 꼬리를 물고 있는 뱀 우로보스의 형상을 꿈 속에서 본 뒤에 벤젠의 분자 구조에 대한 착상을 얻었다. 케쿨레는 왜 하필 그런 꿈을 꾼 것일까? 벤젠의 분자 구조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온종일 그 생각만 했을 테니 그 생각의 연장인 꿈속에서 이런저런 상상이 펼쳐지는 건 당연한 일 아닐까? 별똥별을 보며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아주 진실된 것 같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그 순간은 새로운 소원을 빌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지만, 항상 가슴속에 소원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찰나에 본능적으로 소원을 되뇌일 수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p.19-20)
그가 수집한 세부 정보들 중에는 작가들의 친필 자료들이 꽤 많은데, 츠바이크의 수집 과정을 알고 있던 작가들은 그와 친하지 않은데도 그에게 기꺼이 자신들의 원고 초안을 기증했다. 츠바이크가 얼마나 그 원고들을 소중하게 다루고 또 잘 보관하고 있는지 익히 들었기 때문이다. 당사자인 자기보다 더 잘 보관해 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츠바이크가 요청하기도 전에 원고를 먼저 주는 작가들도 있었다. 루이 16세의 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평전을 쓰기 위해 츠바이크는 접근 가능한 모든 역사 기록을 뒤졌고, 물품 구매 명세서 같은 사소한 기록들까지 빠짐없이 분석했다. 그는 언제나 실제 원고의 수백 배에 해당하는 자료를 검토했다. 츠바이크의 글이 풍요로워진 것은 그가 수집한 엄청난 자료 덕분인데, 츠바이크는 1천 매 분량의 초고에서 800매를 버릴 줄 알아야 좋은 작품이 된다며 자신의 글에도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다. (p.34-35)
엥겔스를 늘 괴롭혔던 이중성이 무엇이냐면, 자신이 받는 높은 급여가 자본가인 아버지 회사에서 나온다는 점과 그 돈이 맨체스터 프롤레타리아트의 노동력을 착취한 결과라는 사실이다. 이 돈으로 마르크스를 후원하고, 마르크스는 엥겔스와 함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한 사상 체계를 구축했다. 인생사는 너무나 복잡하고 미묘해서 뭔가 가치 있는 일을 추구할 때도 온갖 모순된 상황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엥겔스 자신은 이런 모순적 상황이 그리 오래 갈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이 이중생활은 십구 년 동안이나 지속된다. 자의든 타의든 엥겔스가 산업 현장에 있었던 시간과 경험은 이론에만 몰두했던 마르크스가 도저히 얻을 수 없었던 현장 동향과 데이터를 확보함으로써 더 설득력 있는 공산주의 이론 체계를 완성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공산주의는 일반적인 소유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적 사적 소유를 철폐하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았다. 이와 더불어 토지와 운송 기반 시설 국유화, 상속권 폐지, 누진세 도입, 도시와 농촌 격차 해소, 아동 노동 폐지, 아동 무상 교육 등을 실현 목표로 내걸었다. (p.63)
조지 오웰의 에세이 〈정치와 영어〉는 소설 《1984》의 모태가 된 작품이다. 〈정치와 영어〉에서 지적하는 어휘 부족, 말 짜깁기, 개념 오남용 등의 문제의식이 《1984》에서 구체적인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그는 〈정치와 영어〉에서 계급, 진보, 평등, 민주, 자유, 정의처럼 정치적으로 오남용되기 쉬운 개념들을 쭉 열거했는데, 그중 가장 먼저 언급한 개념이 파시즘이다. 파시즘은 조지 오웰이 끈질기게 파헤치고 깨부수려 했던 그 시대의 처절한 현실이었다. 파시즘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정치 철학 연구자들에게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조지 오웰이 바라본 파시즘은 극단적인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전체주의 정치 이념으로서, 국익이라는 명분 아래 개인의 자유를 희생하고 역사를 왜곡하며 획일화된 선전 정책으로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 대중은 민족적 우월성으로 고양되며,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가 제시하는 미래의 전망에 도취되어 모든 것을 내맡긴다. 파시즘 체제 아래에서 자유로운 표현과 사고는 쇠퇴하며 서서히 죽어간다. 민주주의와 민주적 사회주의의 이념 역시 소멸한다. 자유로운 사고가 억압되면 문학의 소멸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히틀러 집권기의 문학과 문화 활동이 어떠했는지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인류 화합과 평화의 제전인 올림픽(베를린 올림픽)도 체제 선전 수단으로 동원되어 버렸다. (p.67-68)
평범한 대다수 사람들이 바라고 꿈꾸는 생활이란 소박하기 그지없다. 하루 한 번 씻을 수 있는 환경, 적당히 자주 세탁된 이불, 비가 새지 않는 지붕, 매일매일 몰아치는 실업과 해고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일 등. 조지 오웰은 ‘우리가 다함께 이십 년 정도 마음을 쓴다면 이 정도는 모두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겠나’ 하고 바랐다. 온갖 거짓된 것들을 계속 피하고 혐오하며 맞서다 보면 진실한 삶과 진실한 세상이 되지 않겠는가. 조지 오웰은 그런 신념으로 하루하루 노력했다. 일 년 이내에 그런 세상이 오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일백 년 이내에는 이루어지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p.78-79)
스타인벡이 쓴 《분노의 포도》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쓴 《공산당 선언》을 연상시키는 구절들이 있다. 일자리를 찾아 멀고 험한 길을 지나 캘리포니아 농장까지 흘러들어 온 이주 노동자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매일매일 굶주림에 시달린다. 지주들은 농산물 가격을 적정선에서 유지하려고 멀쩡한 과일과 곡물을 폐기하곤 한다. 노동자들의 눈앞에는 자신들이 수확한 오렌지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과일을 먹고 싶지만 자기 것이 아니니 눈만 껌뻑거릴 뿐이다. 울금색 산더미에 휘발유가 뿌려진다. 활활 타오르는 붉은 불길이 노동자들의 눈동자에 비칠 것이다. 《분노의 포도》 제25장에 묘사된 장면이다. 스타인벡은 마치 선언이라도 하듯 이렇게 서술했다. “굶주린 사람들의 눈 속에 점점 커져 가는 분노가 있다. 분노의 포도가 사람들의 영혼을 가득 채우며 점점 익어 간다. 수확기를 향해 점점 익어 간다.” 점점 무르익은 그 분노는 언젠가 반드시 표출될 것이다. 이 대목은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라는 외침으로 종결되는 《공산당 선언》을 연상시킨다.
“오랜 시간 계속된 학대와 착취가 변함 없이 동일한 목적을 추구하고 인민을 절대 전제 정치 밑에 예속시키려는 계획을 분명히 했을 때에는, 이러한 정부를 타도하고 미래의 안전을 위해서 새로운 보호자를 마련하는 것이 그들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얼핏 《공산당 선언》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 구절은 미국 독립선언서의 일부다. 《분노의 포도》는 1776년의 독립선언으로부터 일백오십 년이 지난 미국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요즘은 소작인들이 그냥 정신없이 사라지고 있수. 트랙터 한 대면 열 가구가 쫓겨나”라며 소작농이 탄식하는 대목이다. 이들은 그 땅에서 쫓겨나 도시 어딘가에서 저임금 노동자가 될 것이다. 산업 구조의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던 1500년대에 소규모 농업이 대규모 목축업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고 쫓겨나는 농민들의 모습을,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에서 ‘온순했던 양들에게 이제는 잡아먹히는 사람들’로 표현했다. 스타인벡이 “은행은 사람보다 강해요. 괴물이라고요. 사람이 은행을 만들었지만, 은행을 통제하지는 못합니다”라고 비유적으로 표현한 구절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현대의 부르주아 사회는 주문을 외워 불러냈던 지하 세계의 위력을 더 이상 지배할 수 없게 된 마법사와 비슷하다”라며, 이제는 그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지하의 힘에 빗대 자본주의를 표현했던 《공산당 선언》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p.85-86)
형편이 안 좋아도 멀리서 온 손님에게는 좋은 것을 대접하고 싶은 것, 그런 모습은 어디나 비슷했다. 마을 사람들은 멀리 미국에서 온 소설가와 사진가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들어주었다. 스타인벡과 카파가 보고자 했던 것이 바로 그런 모습이었다. 순수한 아이들의 눈이 경험 많은 어른들보다 진실을 더 잘 표현하듯, 방문객의 눈에 비친 편견 없는 모습이 그 사회의 진실을 더 잘 표현하기도 한다. 우크라이나에서 만난 가정에서 ‘그리샤’라는 아이가 스타인벡과 카파를 보더니 자기 엄마에게 외쳤다. “이 미국 사람들도 우리랑 똑같이 생겼어요!” 아이의 천진한 한 마디 속에 냉전 시대의 서글픈 진실이 담겨 있다. (p.92)
오에 겐자부로가 오키나와 역사를 살펴보다가 뭔가 잘못된 것을 발견한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사과를 할 때는 사과의 주체를 뚜렷하게 드러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사과할 대상과 사과하는 주체가 뚜렷하다면, 피동형이 아닌 능동형을 써야 한다. ‘실수가 있었습니다’(Mistakes were made)라고만 쓰면 안 되고 ‘저희가 실수를 했습니다’(We made mistakes)라고 잘못의 주체를 밝혀야 제대로 된 사과 문장이 된다.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 일어났습니다’라고 논점을 피하지 말고, ‘일으키지 말아야 할 일을 일으켰습니다’라고 사고 주체를 드러내야 한다. 피동형은 ‘사고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처럼 주체가 뚜렷하지 않을 때 불가피하게 쓰는 표현 형식이다.
행위 주체인 주어를 숨기는 화법은 진실을 감추려는 자들이 자주 쓰는 수법이다. 행위 주체를 모호하게 표현하여 독자의 판단 기준을 흐리게 만든다. ‘오해가 있었다’고 시작하는 사과문은 사과하기 싫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 어느 단체에서 사과 성명을 내면서 ‘많은 분들이 고통과 불편을 당하신 점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같은 식으로 가해자인 자신들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기사에 ‘~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같은 피동형 구절이 보이면, 기자가 익명으로 자기 의견을 내세우고 싶은 거라고 보면 된다. 중요한 대목에 피동형 표현이 많이 나온다면 숨겨야 할 뭔가가 있다는 뜻이다. 정치 영역에서 언어 표현은 훨씬 더 다의적이고 미묘하며 민감한 문제가 된다. (p.95-96)
자신이 새로 개척한 지식 영역에서 세상에 해로운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했을 때 그 지식인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참다운 지식인이라면 이 사실을 널리 알리고 다함께 개선 방법을 궁리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고자 했는데 아무도 자기 말을 믿어 주지 않고 오히려 신변의 위협까지 받았던 과학자가 있다. 물리학자 클레어 패터슨(1922~1995)은 지구의 나이가 사십육억 년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입증한 인물이다. 그는 연구를 진행하다가 인체에 해로운 납 성분이 대기 중에 너무 많이 퍼져있다는 점을 알아내고 의아하게 여겼다. 지층의 연대별 성분들을 분석하던 중에 1920년부터 납 성분이 급격하게 증가했음을 발견했고, 그것이 1920년대의 폭발적인 자동차 보급 때문이라는 점을 알아냈다. 자동차 매연이 대기 중에 가득 찼던 것인데, 당시에 생산되던 유연 휘발유(납 성분이 포함된 휘발유)가 주요 원인이라는 점을 알아냈다. 진상이 드러났고, 과학자는 자신의 소명을 다했다. 석유 회사들의 압력, 회유와 모진 협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유연 휘발유 판매와 생산 금지를 위해 노력했고, 마침내 유연 휘발유 유통 금지 법안이 통과되었다. 납 중독 위험으로부터 수많은 인류의 생명과 건강을 지킨 것이다. 주유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구인 ‘무연 휘발유’를 볼 때마다 클레어 패터슨의 노고를 떠올린다. 앎이 삶을 구했다. (p.177-178)
한편 14호 쉼
언젠가 권여선 작가의 인터뷰에서 사람에게 가장 힘든 일은 ‘시간을 보내는 일’이라고 말하는 부분을 읽은 적이 있다. 동의한다. 텅 빈 시간, 텅 빈 일정, 텅 빈 머리, 텅 빈 대화. 이런 것들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다. 비어있는 공간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과 마주쳐야 하는데 그렇게 마주친 자신의 존재를 감당하는 일이란…… 정말이지 끔찍하다. 그것이 너무나 어려운 나머지 우리는 해야 할 일을 만들고, 쓸데없는 말로 침묵을 채우고, 사람과 사건에 대한 이론을 계속해서 생성해 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충분히 버티는 사람을 나는 진심으로 존경한다. (p.20-21)
서울과 현실에서 무뎌지는 생의 감각은 일과 성공, 취향과 유행에 대한 것만은 아니었다. 정말로 우리가 살면서 필요한 연대와 친절, 삶의 희노애락 같은 것들이 팔딱팔딱 뛰는 곳에 나를 덩그러니 놓아두면, 내가 잊고 있는 정말로 중요한 삶의 가치들이 다시금 생생해진다. 나는 왜 글을 쓰고, 왜 콘텐츠 기획을 하고, 왜 동료들과 밤을 새우며 일을 하고, 왜 돈을 벌고, 왜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지. 소셜 미디어 팔로우 수나 통장 잔고에 찍히는 숫자 너머의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 이 세계에서 나의 존재는 어떤 의미인지. 어쩌면 더욱 막막해지지만 동시에 나는 정말로 커다란 세계를 이루는 하나의 개체가 되어 더욱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그 자유로움은 한계 없는 에너지를 준다. (p.86-87)
쉼이라는 주제에 관해 이런저런 생각을 공글리고 있습니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안식을 이렇게 한갓지게 탐구하는 일은 부끄러운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면, 그에 앞서 쉬는 법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사는 법은 항상 이미 쉬는 법을 통해 결정되고 있습니다. 기성의 삶에 코를 박은 일차원적인 진지함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것이 쉼이 지닌 환기의 기능이기 때문입니다. 쉼은 친구와 연인, 혹은 회사와 가족, 또는 국가와 시장의 진지함을 중지시키고, 다른 존재 방식을 발견하게 해 주는 장치일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조지 오웰의 말을 음미해도 좋을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 삶에서 단순함의 너른 빈터를 충분히 남겨 두어야만 인간일 수 있다.” 저는 저 ‘단순함의 너른 빈터’가 우리를 기존의 진지함으로부터 뺄셈하게 하는 안식일의 시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p.94-95)
아마도 제 안에 흡사 나이테와도 같은 점진적인 성숙의 무늬, 곧 제 자아의 유아론적 중심으로부터 어렵사리 벗어난 흔적이 남아 있다면, 그 수평적인 월경의 동력은 옆으로 전개되는 글을 읽고 제 낡은 어휘들을 지속적으로 써 ‘버렸기’ 때문입니다. 피정으로서의 책 읽기와 글쓰기를 통해 제가 경험적으로 배운 것은 자신의 ‘고독’을 배려하기 위한 자기만의 방과 시간을 스스로 창출할 때에만, 비로소 ‘없던 바깥’으로의 외출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p.113-114)
효정 농사를 짓다 보면 자연과 상호 조응하는 리듬이 생기는 듯해요. 싹이 나고 풀이 자라면 밭이 자연스럽게 일을 시켜 주더라고요. 또 비가 오면 일 안 하잖아요. 아프면 쉬고요. 임금 노동을 할 때는 아파도 쉴 수가 없지요. 도시에서 일할 때를 생각해 보면, 밤낮 없는 현대의 노동은 시간과 계절에 대한 감각과 자연에 조응할 수 있는 역량 자체를 뺏어 버리는 것 같아요. 쉼이 일과 일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영역이 아니라 여가든 휴가든 내가 억지로 만들어 내야 하는 시간이 되는 거예요. 밭일이 고되기도 한데, 나에게 병을 주기도 하지만 병원이기도 하다, 이렇게 이야기해요. 인제에 와서 저는 휴가라든가 여행을 한 번도 안 가 봤어요. 밖에 나갔다 돌아올 때면 어서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여기선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그렇게 들지 않아요. 물론 다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에요. 농민은 아파도 상병수당도 없고, 4대 보험도 보장되지 않는 노동자라는 것도 말해야겠습니다.
사실 임노동 체제에서 일과 쉼이 분리된 이유는 일하는 시간을 계산해서 돈을 주고 그 밖의 시간에는 돈을 주지 않기 위해서거든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일터와 가정, 일과 휴식이 극단적으로 분리되어 있었던 거죠. 그런데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금 우리의 삶은 오히려 그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일인지 쉼인지 구분이 안 되는 상태로, 일상적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추출당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p.130-131)
연어 곡성에 와서 이웃들의 내어줌을 많이 경험했어요. 도시에 살 때는 못 느꼈는데, 여기에서는 채소와 곡물을 한가득 집 앞에 놓고 가시곤 해요. 씨앗과 모종 나눔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요. 어떻게 그런 넉넉한 마음이 가능할까 싶었는데, 농사를 지어 보니까 씨 하나를 심어도 엄청 많이 열려요. 거기에서 또 씨 몇백 개가 열리는 거예요. 자연이 정말 많이 내어주는구나. 감동적으로 느껴졌어요. 그런 걸 경험하면 우리도 이웃에게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더 내어주게 되고요. 돌봄의 공동체가 이런 걸 경험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수밖에 없겠다 생각했죠.
효정 너무 공감해요. 조그마한 땅도 혼자 못 먹을 만큼 풍요롭게 많은 걸 줘요. 그래서 나눠 먹어야만 하고. 그게 또 순환의 리듬, 나눔의 흐름을 만들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런 이야기도 들었어요. 동네에 구멍가게가 하나 있었는데, 한 달 매출이 100만 원도 안 된다는 거예요. 처음에는 어떻게 먹고사는지 이해가 안 됐는데요. 동네 사람들한테 외상을 주고 하니까, 고마워서 또 밭에서 기른 것들을 넉넉하게 가져다주고 하는 거예요. 할머니들한테는 구멍가게가 동네 사랑방이기도 하고요. 시골에선 그런 비공식 경제 부문이 생각보다 커요. 그런 구멍가게가 다 없어지고 편의점이 들어왔는데, 편의점은 외상이 안 되잖아요. 필요한 물건을 구해다 주지도 않고. 하나뿐인 구멍가게가 없어지고 하나뿐인 세탁소가 사라지고, 지금 농촌에선 하나뿐이던 것들이 자꾸만 사라져요. 모두 소중한 순환과 나눔의 장소였던 곳들인데. (p.136-138)
효정 많은 전문가들이 말하는 생태경제, 순환경제, 수리경제, 분해경제 같은 개념의 살아 있는 현실태가 ‘농생태적 농경제’라고 생각해요. 정치학자 낸시 프레이저는 분리된 생산과 재생산을 연결시키는 것으로는 안 되고, 우선순위를 바꿔야 한다고 말해요. 노동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돌봄 정책을 잘 해야 한다가 아니라 돌봄이 가능하도록 노동 체제를 바꾸어야 한다는 거예요. 농촌에 대해서도 보조금을 주거나 기술을 개발해서 지금의 생산 체제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생태적인 한계 안에서 산업과 생산의 규모를 정하고 배치해야 한다는 거지요. 농을 중심에 놓지 않고서는 그런 전환 계획을 수립할 수 없겠지요.
책도 너무 많이 찍어 내고 너무 빨리 폐기하고 있는데, 그런 것도 그만해야죠! 저는 글 쓰고 책 만드는 일도 나무에게 빚지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소비와 폐기의 주기가 나무가 자라는 시간을 추월하면 안 되는 거죠. 책뿐만 아니라 아무리 우리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일이라도 늘 그 생태적 한계 안에서 놓고 봐야 하는 거지, 그 의미를 위해서 자연에 원료를 조달해내라 닦달하거나, 또 그걸 조달하기 위해서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라는 관점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최근 유럽의 농민 시위는 화석연료에 의존해 온 북반구 농업이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위기가 닥쳐 왔다는 걸 보여 주는 사례예요. 브라질의 교육학자 파울루 프레이리는 억압이 있는 곳에는 피억압자가 있고 따라서 반드시 저항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지금 농촌은 저항의 시발점이 될 수밖에 없는 곳이에요. 자본의 모순이 가장 응축된 곳에서 가장 치열한 운동이 만들어질 테니까요. 어떤 이들은 농촌 인구가 줄어서 이제 농민 운동은 안 된다고 하지만, 연어 님 그리고 저와 같은 반농반작의 인간들, 새로운 농민의 얼굴들이 등장하고 있어요. 이주 노동자 없이는 안 되는 상황이라 할 정도로 많이 의지하고 있고, 농촌의 주민 구성에서도 결혼 이주 여성이 늘어나고 있지요. 다양한 각도에서 변화하는 농촌의 지형이 이 체제에 대한 저항의 전선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조건을 새롭게 형성해 내고 있다고 생각해요. (p.138-140)
정화 생각해 보면 나는 농사 지을 때가 가장 기분이 좋고 건강했어. 사실 쉰다고 쉬어지는 게 아니더라고. 잠을 많이 자도, 집에서 늘어져 있어도 전혀 쉬는 느낌이 들지 않고 피로가 쌓이는 거야. 어떤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구나를 절실하게 느끼면서, 자발적인 노동을, 노동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 일종의 놀이를 하게 된 거지.
그런데 사실 나는 베란다 텃밭이 성에 안 차. 더 하고 싶어. 더 넓은 땅에서 내 노동을 통해서 생산성 있는 일들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지금 하는 건 일상을 버티기 위해서 하는 잠깐의 쉼, 모드 전환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아예 내 삶을 전환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해. 일과 삶이 분리되어서 막 긴장해 있다가 확 풀어지는 식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놀 때 놀고 일할 때 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현재 나의 상태나 나이, 모든 게 영향을 미치겠지만 나는 지금 내가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해. 어느 때는 엄청 소비하면서 스트레스 풀고, 어떤 때는 미친 듯이 콘텐츠를 보고…… 이런 상태를 차츰차츰 줄이면서 종국에는 나 스스로 내 일상을 건강히 보듬고 싶다는 마음이야.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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