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작아서 실패할 수 없는 국가 / R. 제임스 브라이딩 / 에피파니
수세기 동안 국가의 위상은 영토, 군사력, 천연자원의 크기로 평가되었다. 이것들은 근대 국민국가 체계의 청사진이 된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의 기초였다. 이런 물리적 수치는 힘의 세계 균형에 여전히 중요하긴 하지만, 오늘날 세계 경제의 상호의존성에 직면하여 그 타당성이 줄고 있다. 이런 상호의존성은 주로 급격한 정보기술, 교통, 통신의 발달에 기인한다. 세계의 부에 대한 지배력은 이제 육군과 해군의 규모가 아니라 무역 전쟁과 세계적 차원의 전문 인력 쟁탈전의 승패에 달려 있다. 놀라울 정도로 많은 사례에 따르면, 더 작고 더 민첩한 국가가 이 싸움에서 이기고 있다.
거대 국가에서 작은 국가로의 변화는 세계 경제구조의 변화를 반영한다. 지난날 기업들은 지역에서 탄생해 조직이 점점 커진 다음 국제적인 기업이나 때로 다국적 기업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들의 힘의 기원은 여전히 맨체스터, 세인트루이스, 슈투트가르트와 같은 산업시대의 탄생지였다. 오늘날 기업의 위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상품은 수차례 국경을 넘어 전 세계의 고객들에게 전달된다. 과학기술, 제조, 고객, 경쟁자, 금융은 세계 어디에서나, 언제든지 접근할 수 있으며, 대부분의 전통적인 거대기업은 이런 추세에 뒤처진다. (p.18-19)
세계에는 거의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형태의 작은 국가들이 있지만 가장 성공적인 국가들은 특정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들은 경제의 개방성이 더 높고 국가의 생존을 해외 무역에 크게 의존한다. 그들의 경제는 새로운 기회와 위협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고 따라서 더 민감하고 더 큰 적응력과 의지를 갖고 있다. 그들의 소비자들은 더 다양한 신상품과 서비스에 노출되어 있고 그들의 사회는 유능한 이민자를 끌어들일 가능성이 더 높다. 이런 개방성과 더 큰 관용으로 인해 활동 무대가 더 평등하고, 흔히 성, 종교, 성적 취향에 따라 차별하지 않기 때문에 더 큰 인재 풀이 만들어진다. (p.21)
대부분의 지난 세기 동안, 많은 국가들은 윈-윈(win-win)하는 환경을 누렸고, 꾸준한 생산성 향상과 무역장벽 완화로 더 부유해졌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외교문제 평론가 기디언 래치먼에 따르면, 이제 국가들은 이기심이 훨씬 더 중요해지는 제로-섬(zero-sum) 세계에 직면해 있다. 판카지 미슈라는 「분노의 시대(Age of Anger)」에서 경제가 침체되고 불평등이 점차 심화되면서 세계가 더 분열되고 무질서해질 것이라는 비슷한 주장을 편다.
사회는 성장 정체와 맞서 싸우면서 더 적은 것으로 더 많은 일을 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가진 자들은 못 가진 자들에게 더 자주 조사와 비판의 대상이 될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친밀감을 느끼는 사람들과 공감할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보여주듯이 공감적인 사회에서 부를 재분배하는 정책들이 더 쉽게 받아들여진다. 예를 들어 덴마크 사람들은 세금이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필수적인 투자라고 믿는다. 물론 개인에게 권리가 있지만 집단이 화합하려면 개인들도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 친밀감이 약해지면 개인은 세금을 부의 창출에 대한 연례적인 처벌로 보고, 그 결과 회피해야 할 것으로 여기기 시작한다―아니면 허점을 이용해 최소화해야 할 것으로 본다.
시민들은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과 ‘그런 사람에게 빌붙는 사람’ 중에 어느 한쪽이 되고, 그 결과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재분배 정책을 수용하는 힘이 약화될 것이다. (p.27-28)
컨테이너화의 가장 분명한 첫 번째 편익은 운송 생산성의 엄청난 개선이었다. 1세제곱미터 크기의 화물의 평균 운송비용은 1930년 이후 80퍼센트 떨어졌다. 그 이외에 훨씬 더 많은 편익이 있다. 해운회사가 화물운송 단가를 낮출 수 있게 되면서 운송량이 급격히 늘고, 더 효율적이면서 훨씬 더 큰 선박을 개발하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편익은 더 빠른 선박이 건조되면서 선박의 왕복운항 시간이 더 짧아진 것이다.
스코우는 창문 밖 몇백 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A.P. 몰러-머스크의 물류 허브를 가리키며 말한다. “대부분의 경우 어떤 기업이 제품을 텐진 또는 세인트루이스에서 생산할지는 더 이상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운송비가 제품 생산단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졌기 때문입니다.” (p.48-49)
드러나지 않는 이런 기업들은 작은 국가들의 경제에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우리가 그들의 이름을 모르는 것은 최종 이용자가 그들의 목표 소비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부분 페이스북, 엠앤엠스, 바비 또는 우리가 소비자로서 구매하는 제품들에 익숙하다. 우리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스위스에 기반을 둔 지보당(Givaudan)과 퍼메니시(Firmenich)가 향미산업과 향수산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기업이라는 것을 알까? 당신이 이용하는 세탁세제의 향기, 라벤더향의 샴푸나 바닐라향 요거트는 이 회사들의 제품일 가능성이 있다. 스위스의 프랑케는 맥도날드에서 사용하는 모든 주방기구를 생산하고, 코네(핀란드)와 쉰들러(스위스)는 세계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시장을 지배한다. 1세기 전, 열차가 우리 삶을 수평적으로 넓힌 것과 비교할 때 그들은 특히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를 수직으로 확장하는 데 일조해 왔다. 소형 개인 손목시계 생산자 그룹에 의해 1909년 설립된 우니베르소 에스에이(Universo SA)는 이제 세계 소형 손목시계의 대부분을 만든다. 스웨덴의 호가나스 에이비(Höganäs AB)는 야금산업에 이용되는 분말금속의 세계 최대 생산기업이다. 지엔 리사운드(GN ReSound)는 특별히 아이폰용으로 설계된 덴마크 보청기다. 그 외에도 많은 사례가 있다. (p.55-56)
TSTF 국가들은 경제 분야에서 서비스보다는 제품을 강조한다. 혁신에 더 비옥한 토양을 제공하는 것은 제품의 제조활동이기 때문이다. 서비스는 노동시간과 관련되며, 소득신고, 콜센터, 또는 법률적 계약을 더 빨리 또는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은 제한적이다. 의료기기, 컴퓨터 소프트웨어와 같은 제품들은 끝없는 혁신 가능성이 있고 지식재산권을 통해 경쟁력 우위를 지킬 수 있다.
제조업은 세계화와 기술 발전의 영향으로 지속적으로 감소 추세에 있지만 가장 성공적인 TSTF 국가들은 꾸준하게 자신의 제조업 기지와 연구 허브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더 크고 근시안적인 국가들은 자신의 제조업 기지와 연구 허브를 떠나보냈다. 미국과 영국의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1980년대 이후 43퍼센트와 52퍼센트 각각 감소했다. 반면 덴마크, 싱가포르, 스위스의 제조업은 13퍼센트, 27퍼센트, 25퍼센트 각각 감소했다. (p.70)
대학 차원에서 보면, 미국 MIT와 비슷한 위상이며 스위스의 가장 중요한 연구수행 기관인 스위스연방공대(ETH) 총장 랄프 아이흘러 교수는 과도한 시간 압박과 지나친 평가는 혁신을 가로막는다고 생각한다. 그가 나에게 말했다. “아시아 국가들이 모든 것에서 ‘핵심성과지표(KPI)’를 요구하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실력 없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으려고 위험이 적은 프로젝트를 선택합니다. 이러면 위험 감수가 불가피한 획기적인 혁신이 위축됩니다.”
그러나 혁신은 올바른 사고방식과 돈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아이흘러는 “연구는 50퍼센트의 계획과 50퍼센트의 우연한 발견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p.73)
코펜하겐의 자전거도로와 보행도로의 종합적인 설계를 도와준 얀 겔(Jan Gehl)은 이렇게 말했다. “아침에 자동차를 타고 지하주차장을 걷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21층으로 가는 식으로 매일 똑같은 패턴을 두 번 반복하는 사람들에 비해 시속 3킬로미터로 걸어갈 때 발견의 기쁨이 더 큽니다.” 자전거는 일상적이고 비계획적인 대중적 교류를 촉진하지만 자동차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시켜줄 뿐이다. 겔은 말했다. “주목은 삶을 경험하고 다른 존재와 새롭게 연결되는 데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제인 제이콥스는 「위대한 미국 도시의 죽음과 삶(The Death and Life of Great American Cities)」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우연한 발견의 기쁨과 즉흥성은 도시를 살아 있게 만든다.” 우리는 우연한 발견의 기쁨을 통해 사회와 관계를 맺으며, ‘깊은 관계를 맺거나’ 친교를 나누지 않고도 ‘사람들 사이의 친밀, 존경, 신뢰의 그물망’을 만든다. 제이콥스는 1950년대 자동차 중심의 도시계획 정책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자였다. 그녀는 대도시 생활의 일반적인 특징이 반복적인 통근―매일 똑같은 지하주차장에 주차하고 똑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똑같은 사무실로 간다―인데, 이는 우연한 발견의 기쁨이 일어나는 데 필요한 우연한 만남을 차단한다고 주장했다. 우리의 삶이 점점 디지털에 의존하면서 비슷한 관점을 공유하고 미리 정해진 피드백과 똑같은 반응을 표출하는 사람들과 교류할 가능성이 더 커지고 있다. 이런 환경은 관점의 다양성을 억제한다. (p.74-75)
겸손은 사회적 차원에서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첫째, 더욱 겸손할수록 갈등이 줄어든다. 작은 국가는 세계무대에서 지정학적 경쟁을 피함으로써 얻는 이점을 배웠다. 그래서 엄청난 군사비를 지출하고 그 효과를 입증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났다. 캐나다 출신 스티븐 핑커는 이렇게 지적한다. “갈등이 신뢰와 장기적인 상호주의와 관련될 때, 갈등에 따른 비용은 싸워서 얻는 편익을 거의 항상 능가한다.” 그래서 TSTF 국가들은 무형적인 영향력인 소프트 파워(soft power)에 강하게 되었다. 그들은 타국을 침략하지 않고 협상과 관용으로―강요와 금전적 보상, 정부 명령이 아니라―갈등을 해결하여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능숙하다. (…)
둘째, 겸손은 불평등의 부정적 효과를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범죄, 경기불황, 사회적 지위 불안, 신뢰와 사회적 이동성의 부재에서 비롯된 사회적 역기능은 타인을 경시하는 시각이 증가할 때 악화된다. 이것은 가장 부유한 사람들과 가장 가난한 사람들 간의 격차가 더 큰 사회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p.88-89)
겸손은 점증하는 기술 지상주의의 급속한 확산과 그에 따른 파괴를 막는 방패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스마트폰 덕분에 삶의 매 순간을 온갖 자극으로 채울 수 있다. 스마트폰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많은 선택지를 제공하여 삶에서 지루함을 없애고, 그 대신 즉각적인 만족과 사회적 지위에 대한 끝없는 자화자찬으로 채운다. 우리는 휴대폰에서 보이는 내용이 우리가 드러낸 선호를 강화하고 광고를 최적화하고 우리의 중독을 이용하도록 설계된 알고리즘에 의해 점차 결정된다는 사실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퓨 연구센터는 사람들 중 거의 절반이 스마트폰 없이 살 수 없다고 밝혔다.
수많은 선택지를 제공하는 기술 덕분에 얄궂게도 우리가 선택지를 택할 필요가 없어졌다. 우리는 스스로 묻는다. 왜 우리의 삶은 원하지 않는 수많은 것들과 정말 좋아하는 소수의 활동으로 채워져야 할까? (p.99)
허쉬먼은 사람들이 성과가 나쁜 시스템에 대응할 때 사용하는 두 가지 전략을 흥미롭게 비교했다. ‘떠남’은 퇴장함으로써 반대의사를 나타내는 것인데, 사업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킴으로 불만을 표현하는 것이다. ‘머무름’은 그대로 머무르면서 목소리를 높이면서 내부로부터 개혁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처럼 천성적으로 대립적인 사회는 정책 수립 수단으로 ‘떠남’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보다 협력적인 TSTF 국가들은 ‘머무름’을 선호한다. ‘떠남’은 더 편리한 방법일 수 있지만 성과가 저조한 사람들에게는 유용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한다. 허쉬먼은 미국의 무능한 공립학교에서 일어난 최악의 일은 사립학교의 증가였다고 생각했다. 사립학교는 최고의 교사와 가장 부유한 학생들을 선별하고, 나머지 교사와 학생들은 공립학교에 남게 된다. 이것은 아이들이 첫 이갈이를 하기도 전에 그들의 삶에 사회적 차별과 불평등을 심어준다. 허쉬먼은 또한 달리 수단이 없었다면 공립학교 내에서 개혁을 요구했을, 쉽게 만족하지 않은 유형의 부모들을 사립학교가 빼내 간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비판에서 자유로워진, 성과가 낮은 공립학교들은 더 이상 상위권에 머물기 위해 필요한 격렬하고 반복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교육의 질이 저하되는 악순환에 빠지고, 한 국가 내에서 가장 좋은 학교 시스템과 가장 나쁜 학교 시스템 간의 격차가 확대된다.
허쉬먼은 심지어 ‘떠남’은 비겁한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표출하는 조용한 항의라고 말한다. 반면 ‘머무름’은 더 힘들지만 용기와 합의가 요구되며, 따라서 ‘공공재’의 더 좋은 토대가 된다. (p.110-111)
우리는 어려서부터 사람마다 능력과 역량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스포츠 팀에 선발되지 못했을 때 창피한 마음이 들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재능은 똑같이 주어지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클라리넷 연주에 최고의 소질이 있고, 다른 사람은 여자 농구팀 센터가 가장 적합할 수 있다.
상처가 되는 것은 성과의 차이가 개인의 재능이 아니라 학교의 기능에서 비롯될 경우다. 예를 들어 핀란드는 학교별 학생 성과의 차이가 세계에서 가장 적다. 가장 잘하는 학교와 가장 못하는 학교 간의 차이는 5퍼센트 미만이다. 미국과 영국의 가난한 학생들은 가장 부유한 학생들보다 성과가 낮을 가능성이 세 배 더 많다. 이튼 칼리지의 전 교장 토니 리틀은 이렇게 묻는다. 영국의 소수 사립학교들은 교육을 선도하는 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이튼, 해로우, 웨스트민스터와 같은 학교에 입학하지 않은 학생들은 어떨까요?
핀란드와 같은 국가의 교육당국은 타고난 능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남들만큼 학문적인 성향을 갖지 못한 아이들을 위한 지원을 보장한다. 헬싱키 대학 한넬레 니에미 교수가 나에게 말했다. “한 국가의 성공은 그 나라의 하위 50퍼센트를 교육하는 방식에 달렸습니다. 가장 똑똑한 10퍼센트는 어떠한 교육제도에서도 대체로 잘합니다. 특별한 정책과 지원이 가장 필요한 곳은 평균 이하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핀란드의 실용적인 시스템은 ‘필요한 건 무엇이든지’ 정책을 통해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조기에 찾아 특별 지원을 제공하여 그들을 다른 아이들보다 뒤처지지 않게 한다. 더 똑똑한 아이들은 학습을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돕게 한다. 그 결과, 니에미의 말을 인용하자면, “아무도 배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가장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을 지원하는 이런 정책은 핀란드가 가장 잘하는 학생과 가장 못하는 학생 간의 차이가 세계에서 가장 작은 이유를 설명해준다. (p.113-114)
학교 시스템이 성공하려면 다양한 시스템이 필요하며, 이 시스템들이 조화롭게 협력하여 청소년들과 미래 노동력의 재능을 적절하게 발전시켜야 한다. 가장 중요한 성공요소를 선택하려는 사람들은 이 경고를 명심해야 한다. 하지만 여러 연구는 가르치는 교사가 모든 학교 시스템의 성공(또는 실패)을 가장 의미 있게 설명해 준다는 것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전 세계 학교 시스템에 관한 맥킨지의 기념비적 연구는 “적절한 사람을 교사로 선발하고 그들이 모든 아이에게 가능한 최고의 교육을 제공하도록 격려하는 것”이 성공적인 시스템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밝혔다. 학생이 거둔 성과의 50퍼센트 이상은 교사의 가르침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TSTF 국가들이 다른 국가에 비해 더 나은 성과를 보이는 것은 더 우수한 교사가 있기 때문이다. 니에미 교수는 다음과 같이 적절히 요약했다. “교육 시스템의 질은 교사의 질을 능가할 수 없다.” 이들 국가에서 교사는 가장 똑똑하고 가장 열정적인 학생들이 희망하는 직업이며 사회에서 크게 존경을 받는다.
이렇게 영민하고 열정적인 사람들이 교사가 되면 신뢰의 환경이 조성된다―최고의 성과를 내는 학교 시스템에서 교사직을 특별히 돋보이게 하는 또 다른 특징이다. 교사들을 위협하고 과도하게 통제하고 경시하는 관료적 시스템을 가진 국가들과 달리, TSTF 국가의 교사들은 신뢰와 존경을 받는다. 싱가포르의 접근방법은 부지런함을 강조하는 반면, 덴마크, 핀란드, 네덜란드, 스위스의 교사들은 보통 자신이 적절하다고 여기는 모든 방법을 이용해 수업을 계획하여 실행하는 것이 허용된다. 그들은 스스로 교수방법, 수업 시수, 숙제, 시험 방식은 물론 필수 교과서와 학습 자료를 결정한다. (p.120-121)
‘통합(cohesion)’의 유의어를 잠시 생각해보면 익숙하고 편안한 단어들―함께함, 연대, 유대, 연속성, 연결―이 생각난다. 이 단어는 화학에서 어떤 원소들이 서로 친화성을 갖거나 분자들이 함께 결합하는 특성을 묘사할 때 사용된다. 소프트웨어 전문가들은 프로그램의 호환성을 평가하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한다. 우리 가운데 누가 약체이지만 응집력 있는 팀웍을 발휘하여 강팀을 이기는 스포츠 팀을 응원하지 않겠는가?
인간은 독특한 종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충성을 요구하는 이중적인 주장과 부딪힌다. 이기심 대 타인에 대한 배려, 협력 대 경쟁, 대결 대 타협, 개인주의 대 공동체주의가 그것이다. 우리는 상황에 따라 이것에서 저것으로 입장을 바꿀 수 있다. 개방성에 관한 장에서는 기회를 찾고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는 인간의 성향을 강조한다. 이런 성향에는 어떤 형태의 협력―그리고 이기심의 억제―이 필요하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뉴욕대 조너선 하이트 교수는 협력이 사회 통합의 핵심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그는 도덕적 자본의 한 유형인 통합을 “공동체가 하나의 세트로 서로 맞물려 있는 가치, 미덕, 기준, 관습, 정체성, 제도, 과학기술을 공유하는 정도”라고 말한다. 이런 요소들은 심리학적 메커니즘 발달과 연결되며, 공동체가 이기심을 억제하거나 규제하고 협력이 가능하게 만든다.
자발적으로 협력하려는 성향은 성공적인 사회의 가장 중요하지만 과소평가된 특성이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한때 말했다. “행동의 어머니는 연대의 기술이다.” 그는 이것이 이례적으로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국가가 된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가 말했다. “모든 연령층, 모든 계층, 모든 성향의 미국인이 끊임없이 연대한다.”
토크빌은 한쪽에서는 친족이나 가족과의 협력이 계속 이어지고, 다른 쪽에서는 국가나 군주국과의 협력이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통합적인 사회를 위한 핵심 요소는 이 두 가지 제한적인 틀 중 어느 한쪽에 의존하지 않는, 더 넓은 범위의 신뢰와 협력이다. 가족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정실주의를 낳아 사회의 발전을 저해한다. 국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사회의 주도성과 경쟁을 앗아간다. 그 대신 사회는 특정 목적―새로운 로터리클럽, 병원 설립, 또는 보이스카우트 지부 창설 등 어떤 것이든―에 적합한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협력을 많이 조성해야 한다. (p.132-133)
국가마다 공동체에 대한 강조와 사회 통합의 정도가 다르다. 스탠퍼드대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신뢰도가 높은 사회’와 ‘신뢰도가 낮은 사회’로 구분한다. 신뢰도가 높은 사회의 시민들은 서로에게 예측 가능한 행동을 보여주는 반면, 신뢰도가 낮은 사회의 시민들은 일탈된 또는 이해하기 힘든 행동 규범에 의해 도전받는다. 행동이 예측 불가능할 경우 시민들은 심각한 부패, 렌트 추구 행위(rent-seeking), 불평등을 경험할 가능성이 더 높다.
서로 신뢰하는 사람들은 형식적인 규칙과 규제에 덜 의지한다. 그들은 흔히 강제적인 수단에 의한 협상, 합의, 소송, 법 집행으로 이루어지는 제도에 의존하지 않고도 서로 협력한다. 이런 규제 장치는 신뢰에 대한 비싼 대체수단 역할을 하며, 경제학자들이 말하듯이 ‘거래비용’을 수반한다. 사회에 불신이 널리 확산되면 모든 형태의 경제 활동에 일종의 세금이 부과된다. 하지만 신뢰도가 높은 사회에서는 이런 세금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 하나의 작은 예로 공항 보안검색 절차라는 성가신 행위를 생각해 보라. 규제는 신뢰 상실에 대한 대가다. 통합과 신뢰가 부재한 사회에서 간단한 활동도 어려워진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 청구금액을 지불할 것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또는 동네 식료품점으로 가는 길에 강탈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어떻게 확신하는가? 초등학교, 영화관, 나이트클럽에 무장 경비원이 필요하다면 좋은 신호가 아닐 것이다. 사회적 신뢰와 통합의 부재로 미국은 다른 선진국들보다 경찰 보호와 감금을 위해 훨씬 더 많은 돈을 지출한다. (p.137-138)
TSTF 국가들은 사람들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일에 능숙하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게티즈버그 연설에서 언급한 명언―“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은 덴마크, 네덜란드, 스위스, 스웨덴의 민주주의를 더 적절하게 설명해준다. 이들 국가의 사회는 위계질서보다는 네트워크로 조직되어 권한이 더 넓게 퍼져 있다. TSTF 국가의 사람들이 정부에 대한 신뢰가 훨씬 더 큰 이유는 정부가 그들의 의견을 듣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의 각 의원은 약 60만 명을 대표한다. 영국은 국회의원 한 명당 10만 명이다. 이에 비해 대부분의 TSTF 국가의 경우 4만 명 이하인데, 이것은 「연방주의자 논집(Federalist Papers)」의 저자들이 상상하는 대략적인 유권자수다. TSTF 국가의 시민들이 자신의 의사가 더 잘 대변되고 있다고 느끼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TSTF 국가들의 특징은 네덜란드 정치학자 아렌드 레이프하트가 「민주주의의 유형(Patterns of Democracy)」에서 묘사했듯이 비례대표 또는 ‘합의 민주주의’다. 레이프하트는 다수결주의, 즉 미국, 영국, 뉴질랜드 등에서 채택한 ‘승자독식’ 민주주의와 덴마크, 독일, 네덜란드, 스위스, 스웨덴처럼 정치적 연합형성을 촉진하는 선거제도를 비교했다. 그는 TSTF 국가들의 시민들이 자신의 관점을 더 잘 대변하는 정치지도자를 선택한다고 밝혔다. 또한 이들 국가의 정치는 부패가 적고, 그리고 성별, 성소수자, 소수집단의 이익에 대해 더 포용적이고, 더 정중하며, 적대적인 관계가 적고, 안정적인 정치가 필요한 장기적이고 중요한 이슈에 더 주안점을 둔다고 밝혔다. 여러 연구는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국가의 시민들이 ‘승자독식’ 시스템에 비해 정치 참여율과 선거투표 참여율이 더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 더 큰 포용력은 장기적이고 집중적인 노력이 필요한 정책―교육, 연금, 환경 등―이 이들 국가에서 지속적인 지지를 얻은 주요한 이유일 것이다. (p.143-144)
작은 국가와 큰 국가가 모두 사회 통합을 구축, 유지, 강화하는 일에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한 상황이 되고 있다. 우리는 공동체 대신 개인을 점점 더 강조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여러 힘들이 사회 통합에 반대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개인의 정체성을 더 강조하면서 사람들은 가족, 종교와 같은 전통적인 구조에서 멀어지고 있다. 전통적인 구조를 대체하는 새로운 소속집단이 사회 통합적일지 여부는 앞으로 지켜보아야 한다.
높은 수준의 사회 통합이 선순환을 만들듯이 낮은 수준의 사회 통합은 악순환을 불러일으킨다. 신뢰도가 낮은 사회는 더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을 경험하고, 이는 사회 통합 비용을 가중시킨다. 시민들은 ‘능력이 있는 사람’과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빌붙는 사람’으로 양극화되어 불평등을 감소시키기 위한 재분배 정책의 수용력이 약화된다. ‘각자도생’의 사고방식이 정착하면 가장 강한 사람들은 마음대로 이익을 약탈하거나 렌트 추구 행위를 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고 느낀다. 버클리대 심리학 교수 폴 피프와 다처 켈트너의 연구에 따르면, 부의 증가는 공감 능력을 떨어뜨리고 타인에 대한 비윤리적 행동을 북돋워서 사회 통합이 약화된다. (p.147)
사회 통합과 신뢰는 깨지기 쉽다. 이것들이 사라지면 사회는 값비싼 대가를 치를 수 있다. 신뢰가 깨지면 관계는 자세하게 설명해야 되고, 불문율의 규칙은 법률로 만들어야 하고, 논쟁을 중재하기 위해 제삼자들을 임명해야 한다. 자발적이고 협력적인 공동 작업은 중단된다. 이런 상황은 법조계 종사자들에게 금광이지만 사회에는 역병과 같다.
개인에 대한 숭배가 곳곳에서 증가하고 있다. ‘가장 많은 장난감과 함께 죽는 사람이 승리자다.’라는 만트라가 널리 퍼져 있는 것 같다. 네덜란드에서 성장한 사이먼 쿠퍼는 신뢰 수준이 높은 사회에서의 삶이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는지 이렇게 묘사한다. “아이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려고 직장에서 집으로 귀가하고 교육비나 치료비 지출 문제로 스트레스 받지 않고, 안전한 지역의 안전한 거리가 있고, 다른 가족들 근처에 합리적인 가격으로 집을 구할 수 있고, 휴가도 자주 가고 오래 산다. 당신은 부자가 되지 않겠지만 굳이 부자가 될 필요도 없다.”
큰 국가들의 발전 잠재력은 성장이나 놀라운 혁신과 별로 관련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 대신 이들 국가는 사람들 간에 더 많은 신뢰를 쌓고 사회 통합을 개선하는 방법에 더 집중해야 할 것이다. (p.149-150)
역사적으로 보면 정부 부채는 주기적인 성격을 띠었다. 전쟁 재원 마련을 위해 부채를 지고 평화 시기에 부채를 상환했다. 그 후 각국 정부들은 경기침체기에 경기를 부양하고 경기가 회복되면 부채 수준을 낮춘다는 케인즈 이론을 채택했다. 최근의 부채 증가에서 놀라운 점은 전쟁이 없는 상태에서도 부채 증가가 발생하고, 경제 회복 시기에도 계속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치인들이 당선되려고 재정 여건과 경제 상황에 상관없이 세금을 낮추고 지출을 늘리려는 동기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많은 이들이 말한다. 상환 부담은 후임 정권이나 미래 세대에게 손쉽게 전가될 수 있다.
과도한 정부 부채는 재정적 해이와 정치적 영합주의를 나타내는 지표가 되었다. TSTF 국가들은 시민사회가 그런 단기적인 남용을 견제할 능력이 더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스위스 시민들은 2001년 이 문제에 직접 개입하여, 정부 부채와 지출액에 유권자들이 제한을 두는 안건에 85퍼센트가 찬성했다. 많은 국가들이 역할모델로 간주하는 이 개혁은 ‘부채 브레이크’라고 불린다. 이것은 선출직 관리들에게 ‘정부의 돈’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모두 ‘납세자의 돈’이라는 신호를 분명하게 보냈다. 관련법이 제정된 이후 정부 지출 증가율은 연간 4.3퍼센트에서 2.6퍼센트로 줄었다. 스위스는 세계에서 가장 부패가 적은 국가로서 GDP 대비 33퍼센트에 불과하다. (p.161-162)
수많은 사람이 소유한 주요 다국적 기업의 소유권을 조사해보면 주주들을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다. 하지만 경제학자 존 카이가 제안하듯이, 주주들은 일반 소비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소유한’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권리가 없다. 주주들이 기업의 공장 부지에 들어가면 아마도 거부당할 것이다. 기업의 행동은 그들의 책임이 아니며 기업의 자산은 그들의 부채를 상환하는 데 사용할 수 없다. 주주들은 그들이 이해관계를 가진 기업을 경영할 권리가 없으며, 심지어 경영진들을 임명하는 권리조차도 실제적인 것이라기보다 이론상의 권리에 가깝다. 그들은 이사들이 잉여금이라고 선언한 수입의 일부를 받을 권리가 있을 뿐이다. 그들은 대부분의 결정에 대해 아무런 발언권이 없다―이것은 이사와 경영진으로 구성된 이사회의 영역이다. 사실, 카이는 오노레가 학자적 관점에서 제시한 소유권의 11가지 기준 중에서 수많은 대규모 상장 기업들의 주주들은 단지 두 가지만 충족한다고 지적한다―그리고 이것들은 상당히 사소한 기준이며, 세 가지는 부분적으로 충족하고, 여섯 가지는 전혀 충족하지 못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대기업이 이사와 경영진에 의해 통제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강력한 근거가 있다. 아돌프 벌리와 가디너 민스는 1932년 다수의 일반인들이 소유한 기업들의 주주들이 널리 흩어져 있고 무관심한 주식 소유자를 부당하게 이용할 수 있는 이사들에게 종속되어 기업은 영구적으로 스스로 존속하는 조직이 된다는 유명한 말을 했다. 앤드루 카네기는 더 실용적으로 표현했다. “다수가 주식을 소유한 기업은 주인 없는 기업이 된다.”
벌리와 민스 이후 75년 이상 거의 변화가 없었다. 수십 년 동안 우리는 에이티앤티, 제너럴 일렉트릭과 같은 대기업의 이사회가 최고경영자의 훌륭하고 나이든 친구들로 채워지고 최고경영자의 경영을 확실하게 뒷받침하는 모습을 관례적으로 보아왔다. 최고경영자들이 책임 있게 경영하는 동안은 그들은 거의 반대에 직면하지 않았다. (p.183-184)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기업에서 대리인이 소유주를 능가하는 이익을 갖게 된 것은 주식 소유권이 개인 투자자에서 뮤추얼 펀드, 연금 펀드, 헤지 펀드, 상장지수펀드와 같은 수탁기관이 관리하는 집단 투자로 넘어가는 걷잡을 수 없는 추세 때문에 촉진되었다. 이런 펀드들은 주식거래에서 경멸적인 표현인 ‘다른 사람들’의 돈(other peoples’ money, OPM)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들은 주식을 소유한 기업의 장기적 전망에 별 관심이 없다. 이런 단순한 증거는 대기업의 주식을 보유하는 기간에서 드러난다. 다국적 대기업 투자자의 평균 주식보유기간은 1년 미만이다. 이것은 기업의 차기 주주총회 전에 ‘소유주들’이 일종의 ‘의자 바꾸어 앉기 활동’처럼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p.188)
교육의 평등은 핀란드 교육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모든 시민들은 자신의 민족, 연령, 가족의 부, 사회적 지위, 사는 지역에 상관없이 똑같은 교육 기회를 이용할 수 있다. 교육비는 대학교육까지 무료다. 여기에는 급식, 교과서, 건강보험과 같은 간접비용까지 포함된다.
전문가들이 합의하는 것 중 하나는 미래 세대가 직면한 가장 긴급한 도전과제는 불평등의 증가이며, 교육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아마도 국가와 시민 사이에 맺은 사회 계약의 가장 귀중한 내용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은 미래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하지만 막대한 지출 증가(지난해 세계의 각국 정부는 교육 분야에 20조 달러 이상 지출했다)와 야심찬 개혁 시도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교 시스템의 성과는 수십 년 동안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미국은 정부 관리가 공공교육에 시장의 경쟁 원리를 도입하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수십 년 동안 중간 수준에서 계속 혼란 상태에 머물고 있다. 영국은 입학, 재원, 교육과정 기준, 지역사회와 학교의 관계, 관리 행정을 포함하여 학교 시스템의 거의 모든 시스템을 개혁했지만 눈에 띄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핀란드의 탁월한 평가점수보다 훨씬 더 인상적인 것은 이 나라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달성했다는 것이다. 핀란드에서 여러 학교 간의 학생 성과 편차는 세계에서 가장 작으며, 가장 좋은 학교와 가장 나쁜 학교 간의 점수 차이는 5퍼센트 이하다. 반면에 독일은 60퍼센트의 차이를 보인다. 이것은 독일의 가장 나쁜 학교의 학생들은 가장 좋은 학교의 학생에 비해 교육 성취 수준이 절반 이하라는 뜻이다. (p.210-211)
전 세계의 교육 시스템은 대부분 경쟁에 기초하며 권위적인 특성을 보인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몇 가지 표준화된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이다. 그래서 교육 시스템은 이런 특별한 이벤트에 초점을 맞추도록 만들어져 있다. 교육계에서는 이것을 ‘시험을 위한 교육’이라고 부른다. 아만다 리플리가 흥미로운 책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들: 그들이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비교하고 점수를 매기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리플리는 매우 부담스러운 표준화된 시험에 기초하는 시스템은 ‘교육적 자기학대 문화’를 촉진한다고 믿는다. 그녀는 한국 학생들은 한국에서 최상위 3개 대학에 입학하려고 쉴 새 없이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심한 경쟁으로 아이들의 동기가 파괴되는 빈약한 교육 시스템을 가진 국가의 청소년들은 힘든 고통과 함께 낮은 자존감을 갖는다. 그들은 비참하거나 낙심에 빠지지 않은 경우에도 스트레스를 느낀다. 예일대 마크 브라켓이 미국의 고등학생 22,0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최근 조사에 따르면, 학생들의 80퍼센트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응답했다. (p.213-214)
학생들은 보통 처음 6년 동안 같은 교사와 함께 공부한다. 그래서 교사들은 모든 학생을 개인적으로 잘 안다. 교사들은 뒤처지는 학생들을 최대한 일찍 파악할 수 있도록 훈련받는다. 니에미가 말했다. “조기 발견과 개입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1학년 때부터 이미 문제에 대응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덧붙였다. “읽기, 쓰기, 말하기 분야의 문제를 교정하는 전문 교사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학교를 순회하면서 교사들에게 ‘문제가 있는 학생들이 있습니까?’라고 질문하죠. 그런 학생이 있을 경우 각 학생은 해당 문제를 교정할 수 있는 특수한 방법을 이용해 훈련을 받습니다.” 핀란드 아이의 약 30퍼센트가 초등교육 시기에 특별한 도움을 받는다. 학교 시스템이 이런 활동에 따른 비용을 지급한다.
가장 도움이 필요한 아이를 돕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한다는 태도는 핀란드에서 가장 앞선 아이와 가장 뒤처진 아이의 격차가 세계에서 가장 작은 이유를 설명해준다. (p.216)
일반적인 서비스와 달리 의료서비스는 두 유형으로 나뉜다. 희귀하고 심신을 악화시키는 질병처럼 발생 빈도가 드물지만 비용이 많이 드는 질환이 있다. 이런 유형은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질환은 보통 예외적이다. 훨씬 더 일반적인 경우는 귀, 눈, 코, 목 관련 질환처럼 빈번하지만 치료 비용이 적게 드는 질환이다. 리콴유는 두 가지 유형의 질환을 별도로 처리하는 시스템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심각하고 예측 불가능한 질병에는 위험공유 접근방식(보험)이 효과적이라고 보았다. 리콴유는 지금까지 싱가포르 의료시스템의 근간이 된 다섯 가지 근본적인 전제를 제시했다.
1. 적절하고 합리적인 가격의 의료서비스는 기본적인 권리이며 국가와 시민이 맺은 ‘사회 계약’의 기본적인 부분이다. 사회는 다양한 방식으로 의료서비스에 대한 비용을 지불한다. 따라서 의료서비스를 최적화하고 납세자의 비용부담이 최소화되도록 의료시스템을 설계 및 감독하는 책임이 정부에게 있다. 의료시스템은 이 서비스를 가장 필요한 사람들이 최소한의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2. 의료진이나 보험회사가 아니라 의료서비스 소비자들이 의료서비스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소비자들이 자신의 건강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3. 많은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즉각적인 만족을 좋아하고 혜택이 지연되는 것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의료비용은 여러 측면에서 연금과 비슷하다. 젊은 시기에 의료비용은 낮지만 연령이 높아지면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개인은 자신의 소득 능력이 없어지기 전까지 의료비용을 지불할 수 있다. 따라서 의료체계는 노년에 의료보험서비스를 받기 위해 젊은 시기에 저축을 하도록 장려, 유도, 또는 강제하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4. 의료서비스 분야는 자유 시장 원리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원천적인 취약점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남용을 완화할 수 있도록 의료시스템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5. 모든 질환, 특히 당뇨병, 고혈압, 비만과 같이 비용이 많이 드는 만성질환은 최선을 다해 예방하거나, 합병증이 생기기 전에 치료한다. 따라서 사람들이 습관, 생활방식, 운동을 통해 스스로 건강을 책임질 수 있도록, 그리고 정기적인 검사와 진단을 받도록 힘써 교육을 해야 한다. (p.242-244)
네슬레 헬스 사이언스의 대표 루이스 캔타렐은 ‘보건부’를 ‘질병부’로 불러야 한다고 엉뚱한 제안을 한 적이 있다. 그의 유머를 제쳐두고, 캔타렐은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을 보여주었다―즉, 통증과 질병을 치료하는 대신 예방하는 것이 훨씬 더 비용효과적이라는 사실이다. 이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활동 중인 기관인 트러스트 포 아메리카스 헬스(Trust for America’s Health)는 신체활동 부족, 빈곤한 영양 상태, 흡연을 해결하기 위한 지역사회 프로그램에 매년 1인당 10달러를 투자하면 의료비용 절감 측면에서 투자 대비 약 여섯 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추정한다. 이를 통해 미국은 5년 동안 매년 160억 달러 이상을 절약할 수 있다. (…)
이 모든 증거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의료시스템은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보다는 치료법을 발견하는 데 일차적인 초점을 두었다. 싱가포르는 민간부문이 질병 예방에 나설 인센티브가 없기 때문에 공공부문이 그런 활동을 선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의사와 제약회사와 같은 의료서비스 제공자들은 사람들이 질병에 걸려야 돈을 번다. 많은 사람들이 획기적인 약물을 발견하여 노벨 병리학상과 노벨 의학상을 받았지만, 학계에서 누가 질병 예방에 대해 합당한 보상을 받았는가?
실용주의를 강조하는 싱가포르는 개인이 습관, 생활방식, 운동을 성실하게 실천하도록 권장하는 교육에 상당한 돈을 투자하고 있다. 공공보건 캠페인은 건강하지 못한 생활방식의 위험성에 대해 인식을 제고한다. 가령, 음식, 규칙적인 운동에 대해 더 건강한 선택을 하도록 홍보하고 흡연과 같은 해로운 습관을 끊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싱가포르는 아동 ‘보건 소책자’에 아동의 병력을 자세히 기록하여 부모에게 제공하고, 부모가 자녀의 건강한 생활방식을 위해 노력하게 한다. 싱가포르의 젊은 남자들은 의무적으로 군사훈련에 참가한다. 이를 통해 건강과 적절한 식단의 가치를 배우게 된다. 심지어 도시계획에도 이런 측면을 고려한다. 자전거 도로, 공원, 운동 장소를 도시 전역에 설치하여 운동을 장려한다. 버스 노선은 정류장 수를 줄여서 더 많이 걷게 한다. 적극적인 노인 프로그램을 통해 노인들이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을 하고 정기검진을 통해 건강을 돌보도록 지원한다. 노인들은 활발하게 걷거나 군무를 추고, 일부는 태극권을 하기도 한다. (p.251-253)
1967년 어느 쌀쌀한 아침, 겔은 도시계획이 점점 사람보다는 자동차를 중심으로 설계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대부분 똑같이 혼자서 자동차를 타고 직장으로 가서 똑같은 주차장에 주차하고, 똑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로 올라가고 똑같은 카페에서 식사를 하고 똑같이 반대 과정을 거쳐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매일 이런 과정을 되풀이했다. 그러는 동안 자동차 대수가 증가하면서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차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교통 혼잡을 줄이기 위해 새로운 도로를 건설하거나 기존 도로를 확장했고 더 많은 주차공간을 만들기 위해 주차 건물이 세워졌다. 겔은 이렇게 생각했다. “코페르니쿠스는 우리 삶의 중심이 태양이 아니라 자동차라고 말했을 것이다.”
1960년대 코펜하겐은 음울한 도시였다―환경오염과 교통혼잡이 심각했고 아황산가스 수준이 런던, 뉴욕, 또는 슈투트가르트와 비슷했다. 아울러 덴마크는 모든 에너지를 수입했고 선진국 중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최고 수준이었다. 1980년대 이 도시는 파산 직전에다 실업률은 17퍼센트 이상이었고, 도시의 사회 통합과 활력이 위태로운 상태였다. 도시 외곽의 가구 세대를 도심으로 이주시키려는 노력이 실패하면서 코펜하겐에는 주로 학생과 연금생활자들이 남게 되어 이 도시의 조세 기반이 매우 취약해졌다.
코펜하겐이 도시 기능을 회복하고 성공하는 과정은 논쟁이 없는 곧은길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당국자들은 결국 그 당시로서는 급진적인 얀 겔의 도시계획 아이디어를 지지했다. 그는 자동차를 인간적인 도시 생활을 망치는 혐오의 대상이라고 불렀고, 이 싸움을 필생의 과업으로 삼았다. (p.295-296)
도시의 활력을 회복하기 위한 겔의 첫째 금언은 자동차가 아니라 사람을 위해 도시를 다시 설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자동차의 필요성과 자동차를 소유하려는 욕구를 줄여야 했다. 대체재가 필요했고 그는 자전거를 주목했다. 자전거는 1817년 발명되어 ‘장난감 목마’라는 별명이 붙여진 뒤 기술적으로 거의 변화가 없었다. 두 개의 바퀴, 체인, 두 개의 페달, 플라스틱 안장―때로 최고의 발명품은 사실 그 단순함에 있으며, 때로 기술적 단계를 한 단계 후퇴시킴으로써 발견된다.
오늘날 코펜하겐을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도시의 주요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자전거 도로를 통해 계속 흘러가는 자전거족의 물결을 보지 않을 수 없다. 그 광경은 바로 눈앞에서 수많은 물고기 떼가 땅에서 수영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613,000명 규모의 도시에서 62퍼센트가 매일 자전거를 타고 출근한다. 모두 다 합하면 그들은 자전거를 타고 하루에 1백4십만 킬로미터를 달린다. (p.296-297)
겔은 좋은 도시를 판단하는 가늠자는 거리에서 노는 아이들의 수라고 믿었다. 덴마크에서는 아이들을 도시 공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아이들은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덴마크가 신뢰에 관한 세계 순위에서 최고 수준인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당신은 보호자 없이 아이가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가는 것을 다른 곳에서 본 적이 있는가? 덴마크에서는 ‘가짜 뉴스’가 더 크고 더 익명적인 사회에서만큼 잘 확산되지 않는다.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을 쓴 제인 제이콥스에 따르면 삶은 우연과 자연스러움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차고나 승강기 안에 있을 때나, 교통 혼잡으로 차 안에 앉아있을 때 우리의 삶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겔은 일상적인, 계획되지 않은 공적 교류, 즉 지나가는 행인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것이나 식료품 잡화상과의 가벼운 잡담 등의 가치를 깨달았다.
하지만 이런 당근과 함께 사람들이 자동차에 대한 의존성을 끊게 하는 채찍도 있어야 했다. 코펜하겐은 보행구역을 확대하기 위해 구획을 다시 설정하고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들었다. 코펜하겐은 450킬로미터의 자전거 전용도로와 교량을 구축해 세계에서 가장 자전거 친화적인 도시가 되었다. 코펜하겐은 땅의 제약이 심하기 때문에, 보행과 자전거 타기의 확대는 자동차에 필요한 도로가 줄어든다는 뜻이었다. 초기에는 교통 혼잡이 더 심했기 때문에 운전자들이 자동차 통근을 단념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다른 인센티브도 행동을 변경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덴마크의 자동차 가격은 다른 국가들보다 세 배 더 비싸다. 자동차에 부과되는 특별소비세는 자동차 이용을 줄이는 데 유용했다. 주차비 역시 비싸다. 일반적으로, 도심에 가까울수록 주차비가 더 비싸다.
거리 주차를 제한하거나 금지함으로써 자전거가 지나갈 때 자동차 문을 열거나 자동차가 다가오는 자전거 이용자와 충돌하는 위험이 감소했다. 오늘날 덴마크인 10명 중 9명이 자전거를 갖고 있으며 10명 중 4명만 자동차를 소유한다. (에너지, 보건, 보험, 교통비용) 추정치에 따르면, 코펜하겐 거주자가 자전거를 1킬로미터 탈 때마다 사회는 75센트의 이익을 얻고, 같은 거리를 자동차로 달리면 1.58달러의 비용이 발생한다. 전통적으로 비용이던 것이 이익의 원천이 되었다. (p.298-300)
정부는 혁신적일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우리는 최신 제품의 발명―네스프레소 머신, 포스트잇, 아이폰―을 정부에 기대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덴마크인들이 에너지와 도시계획에서 보여주었고 핀란드인들이 초등교육에서 입증했듯이, 정부 역시 대담하고 미래지향적일 수 있다. 물론 정책 입안은 위험하고 우리가 검토한 사례의 대부분에서 운도 거의 따라주지 않았다. 풍력 에너지 생산비용이 경제성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도박과 같은 그런 모험의 성과가 없었다면 덴마크 정부는 매우 어리석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풍력 에너지는 성공했다.
좋은 일들은 보통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정책에 관해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협업은 대립보다는 타협을 중재하는 데 더 효과적이다. 덴마크의 풍력발전 실험은 정치적 합의가 없었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코펜하겐 경영대 정치학 명예교수 오베 카즈 페데르센은 이렇게 요약한다. “위기가 닥치면 덴마크인들은 협력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따라해야 할 금언이다.
자유 시장은 희소한 자원을 엄청나게 다양한 재화와 서비스에 배분하는 최적의 시스템이다. 하지만 자유 시장은 공유경제를 창출하지 못하며, ‘중요하지만 긴급하지 않은’ 장에서 설명했듯이, 특히 장기적이고 서서히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 25년 뒤에 기업에 일어날 일들은 지금의 최고경영자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떤 실리콘밸리 벤처자본가가 덴마크 정부가 보여준 모습과 같은 위험 수용적 태도와 역량을 갖고 있겠는가? 캘리포니아가 아니라 덴마크가 풍력에너지 산업에서 세계적 선두주자가 된 것은 캘리포니아의 민간 부문이 풍력에너지에 관한 준비나 동기가 없어 내리지 못한 결정을 덴마크 정부가 단호하게 내렸기 때문이다. (p.311-313)
하워드의 입법 추진이 성공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하나는 기발한 총기 환매 프로그램이다. 규제는 대개 보상이 아니라 처벌 위주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 사람들은 대부분 지하실에 방치되어 있는 총기를 반납하는 대가로 돈을 받았다. 게다가 정부는 새로운 총기 가격을 기준으로 돈을 지급했다. 이 금액은 사람들이 전당포에 총을 맡기고 받을 수 있는 돈보다 훨씬 더 많았다. 총기 환매 기간이 한정되어 있어 총기 소지자들은 현금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있었고, 관련법이 제정된 이후에 불법 총기 소지자는 체포될 수 있었다. 현금 보상 기회 상실과 그 이후 초래될 수 있는 곤경 때문에 총기 환매 프로그램은 대중적인 인기를 모았다.
이번에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의 규모도 시민들이 이전과는 다르게 상황을 보고 뭔가 해야 한다는 마음을 갖도록 했다. 마틴 브라이언트의 재판을 진행한 울리엄 콕스 판사는 나에게 말했다. “엄청난 규모의 잔혹 행위가 호주 사회의 기초를 뒤흔들었습니다.” 1920년대 말 호주 원주민이 저지른 두 건의 대량학살 사건을 제외하고 20세기 초 이후 호주에서 발생한 모든 총격 사건의 사상자는 15명 이하였다. 이에 비해 포트 아서에서 35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부상하는 사건은 호주를 충격에 빠뜨렸다.
또 다른 성공 요인은 속도였다. 하워드와 자유당은 거의 즉각적으로 대응했다. 시드니 대학 부교수 필립 알퍼스는 〈가디언〉지에 말했다. “그 당시 총기 관련 로비는 호주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습니다. 포트 아서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한 명의 권력자가 총기 로비스트들보다 더 빠르게 전방위적으로 선수를 쳐서 놀랍게도 12일 만에 상황을 바꾸었습니다.” 이로 인해 총기 로비스트들은 조직을 정비하여 총기 규제 정책을 지연시킬 결정적인 시간을 놓쳤다. 하워드는 선거에서 낙승을 거두어 시민들의 지지율이 높았기 때문에 규제 정책을 실행하기로 결정했다. 그가 나에게 말했다. “정치 발전은 90퍼센트 타이밍에 좌우됩니다.” (p.377-379)
징병제든 입법이든, 국가 정책은 항상 개인의 이익과 사회 전체의 이익 간에 상충관계가 발생한다. 마음의 평화, 자살, 강도, 무단침입, 감금, 경찰의 사기에 미치는 영향과 같이 총기남용과 관련된 사회적 비용 요인을 생각해보라. 미국은 유죄판결을 받은 범죄자가 호주의 약 4배다. 〈미국 법 및 경제학 리뷰〉에 실린 한 연구에 따르면, 호주에서 총기환매 프로그램이 시행된 이후 호주의 총기 관련 자살은 약 74퍼센트 감소했다. 강도와 빈집털이 역시 상당히 감소했다.
폭스 뉴스의 빌 오라일리는 한때 총기난사 사건을 ‘자유의 대가’라고 말했다. 호주는 그것이 실은 무지의 엄청난 대가이지만 올바른 리더십에 의해 피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p.384)
풍부한 자연자원을 보유한 국가는 석유 생산과 같이 단 하나의 산업 생산에만 집중하여 다른 분야에 대한 투자를 무시할 수 있다. 그 결과 그 국가는 해당 상품의 가격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고 전반적인 생산성이 불안정하게 된다. 아울러, 이런 국가들은 대규모 정부 부패에 더 취약할 수 있다. 나이지리아, 앙골라, 베네수엘라에서 보듯이 월급이 적은 관료들이 상당히 큰 권한을 갖고 있어 채굴권이나 광업권을 허가하는 대가로 뇌물을 받으려는 유혹에 넘어가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TSTF 국가들은 자연자원이 부족한 탓에 그런 상태를 극복하려는 동기를 부여하여 결핍이 오히려 유익이 되었다. 이스라엘과 네덜란드는 농업 여건이 좋아서가 아니라 나쁘기 때문에 농업 기술의 세계적 선두주자가 되었다.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석유 의존도를 낮추려는 노력 덕분에 덴마크는 풍력 재생에너지와 클라우드 저장시설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한다. 스위스는 수력 에너지가 국내 전력생산량의 약 60퍼센트를 차지한다. 토지가 제한적인 싱가포르는 다양한 측면에서 도시계획의 세계적 선두주자이며 자체 수자원이 전혀 없음에도 계속해서 세계 최고의 녹색국가 순위를 차지한다. 싱가포르는 지리적 위치가 섬과 같음에도 불구하고, 또는 그렇기 때문에, 연결성이 국가의 비교우위가 되는 시기에 최고 수준의 공항과 항만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잘 연결된 국가 순위에 올랐다. (p.416-417)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이 공정하게 대표될 때 소속감을 느낄 가능성이 더 높다. 2017년 스탠퍼드대 정치학자 애덤 보니카는 법조인들은 미국 시민의 0.4퍼센트에 불과하지만 하원 의석의 39퍼센트, 상원 의석의 56퍼센트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이와 대조적으로 보니카는 호주, 덴마크, 네덜란드, 스웨덴은 정치인들 중 15퍼센트 미만이 법조계 출신이라고 밝혔다. 사회의 다양성을 대표하지 못하는 국가는 불평등을 촉진하고 갈등을 해결할 때 소송 방식을 더 많이 이용한다.
잦은 소송은 사람들의 정치적 책임감과 주권의식을 없애고 법원에 의존하게 한다. 법원의 판결에 의존할수록 국가적 의사결정의 가능성은 낮아진다. 이것은 링컨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선언할 때 염두에 둔 것과는 반대다. 미국에서는 의회의 다수파가 아니라 9명의 대법관이 미국의 가장 중요한 문제―이를테면 게이는 결혼할 수 있는가? 낙태는 합법적인가? 정치후보자에게 기부한 돈은 연설로 보아야 할까?―를 결정한다는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런 혼란스러운 현상은 영국에서도 볼 수 있다. 영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전 대법관 섬프션 경은 쇠퇴하는 정치가 남긴 빈자리를 법이 점점 메꾸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리스 강의(Reith Lectures) 시리즈에서 법이 “이제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간섭하고 민주주의를 좀먹고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는 현재 영국인에게 부과된 21,000개의 규제와 유럽연합이 부과한 12,000개 규제가 정말 필요할까?―여기에는 티백 재활용 금지와 8세 이하 어린이의 풍선 불기 금지도 포함된다. 결과적으로 영국의 국민 1인당 변호사 수는 지난 세기보다 거의 8배 증가했다. 1911년 거주민 3천 명당 한 명의 변호사가 있었다. 지금은 400명당 한 명의 변호사가 있다.
섬프션의 견해에 따르면, 법은 개인의 권리를 지향하는 고유한 편향성을 띤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규제의 추동력 역할을 하는 것은 집단적 불만보다는 주로 개인적인 불만이다. 소송―본질적으로 권위적인 과정이다―은 항상 시민들 간의 차이를 해소하는 올바른 길일까? 공공정책 영역에서 이런 불만을 처리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섬프션은 이렇게 고백했다. “낙태나 안락사에 대해 정치시스템에 의해 표현되는 집단적 도덕 감정보다 대법관으로서의 나의 의견이 도대체 왜 우월한가?” (p.423-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