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찬란한 어둠 / 김문정 / 흐름출판
문제의 원인을 금방 이해하고 바로잡았지만 여전히 자존심은 상했다. 이대로 그냥 ‘몰랐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겨지지 않았다. 평소에는 한없이 순한 것 같아도 목표가 생기면 돌진해 버리는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불쑥 튀어나왔다. 첫 연습 이후 이를 악물고 며칠에 걸쳐 《명성황후》의 54곡 넘버(number, 뮤지컬에서 사용되는 노래나 음악)를 모두 외워버렸고, 악보를 보는 대신 음악감독의 지휘봉만 보며 연주했다. 그 같은 노력은 끝내 결실을 맺었다. 그 당시 《명성황후》 오케스트라에는 건반이 메인과 서브, 두 대가 있었는데 나중에는 중요한 연주 대부분을 내가 맡을 정도가 됐다.
《명성황후》 본 공연을 앞두고 어둡고 좁은 오케스트라 피트에 들어섰던 첫 순간을 기억한다. 본 무대에서 한참 아래의 깊숙한 자리는 생각보다 훨씬 좁았다. 연주자들이 연주할 때 서로 방해받지 않을, 딱 그만큼만 떨어져 앉을 수 있는 정도의 공간. 작은 상자 속 같았다고 해야 할까? 대중음악 공연 무대에서 세션의 자리는 무대 위, 유일하게 조명을 받는 뮤지션을 향해 연주하는 자리였다. 조명 밖에서 연주하는 대신 세션의 연주 위에서 그 별이 어떻게 노래하고 어떤 몸짓을 하는지 볼 수 있었고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뮤지컬 오케스트라의 피트는 달랐다. 무대와 분리된 피트라는 공간은 연주자들만의 우주였다. 연주자들이 그 우주의 별이었고, 서로의 반짝임이 어우러지며 무대 위와는 별개의 아름다운 밤하늘을 만들어냈다. 그 공간이 정말 좋았다. 그곳에 내 운명이 있으리라는 걸 어슴푸레 짐작했다. 50여 회의 공연이 막바지를 향해 갈수록 내 삶을 화려한 무대 위가 아닌 좁고 어두운 이 우주에 머물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무대 위를 ‘보는 것’만큼은 포기가 되지 않았다. 우리가 연주하는 음악이 흐를 때 무대 위의 배우들은 어떻게 노래하고 어떤 춤을 추고 어떤 표정을 짓는지, 장면이 바뀔 때마다 세트는 어떻게 달라지고 조명은 누구를 비추는지 보고 싶고 알고 싶었다. 깊숙한 피트 안에서 건반 연주자로 공연을 하면 할수록 무대 위에 대한 호기심, 무대 위를 보고 싶다는 열망이 끓어올랐다. 무대 위를 알면 공연에 더 좋은 음악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피트 안에서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자리는 딱 한 곳, 지휘봉을 잡고 서는 음악감독의 자리였다.
놀랍게도 그 모임이 있은 다음 날, 우리 집은 피아노가 있는 집이 됐다. 당시로서는 거금을 들여야 했음에도 엄마는 두 번도 고민하지 않고 덜컥 피아노를 사들였다. 신용카드도 없던 시절, 나중을 위해 차곡차곡 모아두었던 적금을 깬 것이다. 엄마의 결단으로 나와 동생들은 마음껏 피아노를 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집 피아노는 그 동네에서 피아노를 치고 싶어 하던 아이들 모두에게 열려 있었다. 자식 키우는 마음이 다 같을 거라는 엄마의 배려였다.
피아노는 어린 시절 내게 가장 좋은 장난감이었다.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으므로 억지로 연습할 필요도 없었고 원대한 목표 같은 것도 없었다. 그 희고 검은 건반은 어린 내게 단순한 즐거움이자 기쁨, 위로가 되었다. 큰아버지에게 선물 받은 『동요 500곡집』 속 노래들이 얼마나 많은 추억을 만들어줬는지 모른다. 생일이면 친구들을 초대해 그동안 연습해뒀던 곡들로 나만의 콘서트를 열기도 했는데, 주최한 나도 관객이 된 친구들도 제법 진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음악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할 때 더 즐겁다는 걸 알았다. 훗날 학교에서 고적대 활동도 하고 합창단 활동도 했던 것은 아마도 그때의 경험 덕분이 아니었을까? 게다가 초·중·고등학교 졸업식마다 교가 지휘를 도맡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지휘봉이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작부터 난관이었던 《둘리》가 음악감독으로서의 첫 작품이었던 건 행운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때 공연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온갖 변수를 다 경험하고 나니 그 이후로는 웬만한 일에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 공연으로 많은 걸 배웠다. 지휘봉을 잡는다는 건 어떤 상황에서도 책임을 다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 관객에 따라서 같은 공연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 그 두 가지는 뮤지컬 음악감독으로서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었다.
다만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점은 전 세계 어디에서든 다 비슷하지만 시스템만큼은 확연히 차이가 났다. 《명성황후》 런던 공연에서 밤을 새서 악보를 수정해 새로 뽑아갔을 때의 일이다. 악보를 낱장으로 출력해서 가니 책처럼 넘겨볼 수 있는 악보여야 한다고 했다. 악보 테이핑을 해야 했다. 내가 바로 해오겠다고 하자 존이 나를 의아하게 보았다. 테이핑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데 왜 이걸 네가 하느냐는 거였다. 그때 나는 존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잠시 후 시간당 보수를 받고 전문적으로 악보 테이핑을 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테이프를 종류별로 들고 와서는 꼼꼼하고 세심하게, 종이 사이사이에 갱지까지 붙여가며 견고하게 제본된 형태의 악보를 만들어냈다. 내가 했다면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어떤 역할이라도 전문가가 있고 각자 맡은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는 것, 그것이 프로의 세계였다.
무대는 영상과 다르다. 영상은 하나의 세계를 완벽한 현실로 만들어내 화면 속으로 끌고 와야 하지만 극 무대는 영상보다 관대하고 너그럽다. 상상이 시공간을 감싸면 공연장 안의 모두가 아름다운 거짓말을 즐길 수 있다. 파도 소리만으로도 바다를 볼 수 있고, 사계절을 노래하는 것만으로도 봄의 꽃과 여름의 신록을, 가을의 바람과 겨울의 눈을 느낄 수 있다. 소품 하나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만으로도 장소와 배경이 바뀌는 것이 무대예술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마법. 같은 작품이어도, 같은 출연진이라고 해도 어제와 오늘의 공연은 결코 같지 않으니 절대 돌아오지 않는 한 순간의 마법이기도 한 셈이다.
완벽에 가까운 협업의 경험은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좋은 배움이 된다. 그 과정 속에서 협업하는 방법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완성도 있는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에 나와 우리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방법을 배운다. 작품의 색에 따라 어디에 어떻게 힘을 빼고 줄지를 생각한다. 나를 잃지 않으며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태도를 배운다. 좋은 동료와 좋은 경험을 함께 나누고 나면 그것이 하나의 기준점이 되고, 다음에도 그 같은 기준에 이르려고 애쓰게 된다. 그런 점에서 《내 마음의 풍금》은 지금도 여전히 내게 별과 같은 작품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매 작품마다 그 같은 별 하나를 다시 만들어보고자 노력한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그 작품이 또 다른 기준점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분야를 막론하고 창작자라면 내 것에 대한 열망을 피할 길이 없다. 그건 안에서 자연스럽게 솟는 불꽃과 같다. 하지만 뮤지컬 세계에서 내가 만든 것은 다른 것과 어우러질 때 가장 빛난다. 정원에는 다양한 꽃과 식물이 있고 정원은 그 모두가 조화롭게 어울릴 때 가장 아름답다. 그래서 때로는 비죽 솟은 나뭇가지는 잘라내고 지나치게 뻗은 뿌리는 솎아내야 하는 법이다. 그걸 아는데도 막상 곡을 만들다보면 때때로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가는 가지라도 칼을 대면 아프고 작은 꽃 한 송이라도 떨어내려면 속이 끓는다. 어렵게 뻗어낸 가지일수록 힘들게 피워낸 꽃일수록 더 그렇다. 그렇다는 것을 나는 이 작업을 하면서 깊이 알았다.
다행인 것은 이 정원을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 등을 밀어주거나, 내가 너무 홀로 달려 나갈 때 잡아주거나, 나를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돌려세워주는 동료들. 《도리안 그레이》는 내가 했던 작곡 작업 중 가장 힘들고 고통스럽게 곡을 썼던 작품이지만 여러 사람의 아이디어가 더해지며 그들과 ‘함께’ 만든 결과물이었다. 창작자들이 오리지널 캐스트, 초연의 향수를 잊지 못하는 건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이지 않을까? 함께한다는 것, 그것이 뮤지컬의 가장 큰 자산이자 보람이며,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가치라고 나는 여전히 믿는다.
관객은 캄캄한 객석에 있지만 무대에서는 관객의 반응을 모두 느낄 수 있고 볼 수 있다. 가끔 관객석이 한 배우의 팬들로 채워진 공연에서는 관객이 ‘내 배우’를 좇느라 다른 배우들을 무심히 지나치기도 하는데, 그러면 그 순간 다른 배우들은 빛을 잃는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모든 배우들에게 더 잘하자고 말한다. 제대로 잘해서 관객을 뮤지컬 자체의 매력에 흠뻑 빠뜨리자고. 어느 한 배우가 아니라 뮤지컬 자체를 즐기기 위해 다시 극장을 찾을 수 있도록 만들어보자고. 처음에는 단지 누군가의 팬이었던 관객이 뮤지컬 팬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 명의 배우를 보러 왔다가 점점 다른 배우가 보인다면, 무대가 보이고 음악이 들린다면 그걸로 성공이다. 그렇게 무대 위 모두에게 박수를 보내주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공연이 된다. 그래서 연출진으로서, 뮤지컬인으로서 뮤지컬 저변 확대에 기여하는 스타 배우도, 그의 팬덤도 사실은 무척 고맙다.
뮤지컬 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데 함께하는 백여 명 이상의 스태프는 한 명 한 명 모두 전문가다. 한 파트 한 파트 중요하지 않은 일이 없다. 무대, 기술, 미술(분장, 의상, 소품), 조명, 음향, 음악, 안무, 연출 등 절대로 빠져서는 안 된다. 무대 아래 좁은 피트 안에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연주자들뿐만 아니라 냉난방도 되지 않는 객석 위 실링이라는 천정 공간에서 무대 위 배우들을 비추는 조명팀, 배우들이 빨리 옷을 갈아입고 다음 장면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의상 헬퍼들, 배우들 땀에 마이크가 젖을까봐 무대 뒤에서 휴지나 수건을 들고 대기하는 음향 스태프들, 무대 위 장치들이 작동하게 하는 기술 무대 스태프들, 스케줄을 정리하고 공연과 관련한 공지를 전달하는 컴퍼니 분들부터 마케팅팀, 홍보팀, 티켓 부스의 직원 등 공연장 밖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스태프들까지. 사각지대라고 표현해도 될 만큼 보이지 않는 곳곳의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공연이다.
한 지인이 내게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감독님은 누군가의 열심을 참 잘 들여다봐주는 사람이에요.” 그 얘기를 듣고 너무 과분한 칭찬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나는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하니 그가 말했다. “감독님은 잊지 않으시잖아요. 누군가의 최선을 잘 기억해뒀다가 당사자마저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됐을 때 척하고 꺼내놓잖아요. 감독님이 앙상블의 열정과 그들의 수고를 지나치지 않아서 우리도 자꾸 바라보게 돼요”라고.
그의 말에 곰곰이 생각해봤다. 내가 썩 좋은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살아보니 성공이 노력과 수고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렇다고 앙상블 친구들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앙상블은 조연과 주연을 맡기 전 단계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낼 수 있는 재주 많은 사람들의 자리이다. 무대 위엔 늘 그들이 있다. 다만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지 않을 뿐이다. 화려한 꽃이 돋보이는 건 초록의 무성함이 있기 때문이고, 난 그 초록을 아낀다. 그래서 무대를 다채롭고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앙상블에 자꾸 눈길이 간다.
악기 연주도 몸을 이용하는 일이라 건강이 무너지면 연주하기가 어렵다. 건반 연주자는 손을, 활을 쓰는 현악기 연주자는 팔을 잘 관리해야 한다. 관악기 연주자들은 호흡을 써야 하니 기력이 떨어지면 소리가 달라진다. 타악기 중 드럼은 특히 사지를 다 써야 하는 악기다. 매년 수많은 음악 전공자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중 대가가 되어 끝까지 남는 사람들이 몇 안 되는 이유 중 주요한 한 가지는 체력 때문이다. 몸이 따라주지 않는 순간이 오면 연주자는 한계에 부딪히고 손을 놓게 된다. 우리 팀 안에도 그런 이유로 연주를 그만두는 이들이 있었다.
The M.C라는 이름을 짓고 팀을 함께 만들었던 사람들 중 몇몇이 팀을 떠났던 것도 비슷한 이유였을 것이다. (그렇게 짐작하고 있다.) 다만 그때 팀의 리더로서, 오래 함께해온 동료로서 그들을 이해해주지 못했다. 오랜 시간 연주하면서 그들도 힘겨울 수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좀 더 따뜻했어야 했는데, 리더이기 이전에 동료로서 몰아붙여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한 번 더 깊이 헤아리지 못했던 걸 지금도 후회한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깊고 인연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성격이라 이유를 불문하고 헤어짐의 순간은 늘 아프다. 사람들의 부침 때문에 마음 쓰는 내게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었다.
“김 감독은 버스를 운전하는 사람이야. 그 버스에 탄 사람 누구나 자기만의 목적지가 있어. 각자의 정거장에서 타고 내리는데 그걸 운전자가 관여하지는 않잖아. 그러니까 김 감독은 버스에 타는 사람을 반갑게 맞아주고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을 안전하게 보내주면서, 함께 가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야.”
뮤지컬은 공연을 해야 돈을 받는 시스템으로, 배우든 연주자든 무대에 오른 횟수에 따라 보수가 정해진다. 그러나 공연 전 긴 연습이 필요하다.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하는 데 기본적으로 두 달은 연습하는데, 이 연습 기간 동안의 비용은 따로 지급되지 않는다. 공연 보수에 그 연습 비용까지 포함되어 있는 셈이다. 연습과 공연 기간을 합쳐 등분했을 때 보통의 스태프나 앙상블이 받는 금액은 충분하지 않다. 바뀌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와 오케스트라 단원, 스태프들은 아르바이트를 하든 가욋일을 하든 어떻게든 버틴다. 돈이 필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 일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한국 뮤지컬 시장은 빠르게 성장해왔다. 그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보이지 않게 무너지는 건 화려해 보이는 위가 아니라 가장 밑, 기반에 틈이 생기기 시작할 때부터다. 그 기반을 구성하는 것이 무대 밖 스태프들이다. 스태프의 기량이 늘어나고 기용 가능한 인력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무대의 질은 좋아진다. 많은 인재가 이 업계에 영입될 수 있도록,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이유다. 이를 위해서 내 자리에서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여전히 제대로 된 답을 내고 있지 못하지만 내게 주어진 숙제를 붙잡고 놓지 않으면 언젠가는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팬데믹으로 미뤄졌던 도쿄 올림픽이 끝나고 국가대표 여성선수들이 출연한 MBC 〈다큐 인사이트-다큐멘터리 국가대표〉가 이슈였다. 그건 승리의 이야기이면서도 차별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스포츠계에 여전히 존재하는 성별, 인종에 따른 차별을 단단한 실력으로 하나씩 바꿔나가는 선수들이 존경스러웠다. 그중에서 여자 배구 4강 진출이라는 좋은 성적을 낸 김연경 선수의 말을 기억한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그런 얘기를 정말 많이 들었어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해요. 안 좋은 얘기도 듣겠지만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 말하려고 노력했어요.”
없던 기준을 만들고 규칙을 정하고 조금 더 나은 환경을 위해 쓴소리를 할 때마다 생각했다.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 없고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나 하나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누군가 나서서 우리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 그게 바로 내가 되어야 한다고. 적어도 조금은 이름이 알려져 있고, 그 덕분에 내가 하는 말에는 조금 더 귀를 기울여주기 때문에. 그것이 나의 이름값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거라고 마음먹었다.
뮤지컬 사회학 / 최민우 / 이콘
뮤지컬에만 유독 ‘창작 뮤지컬’이란 말이 자주 쓰인다. 조금 어색하지 않은가. 예술이란 영역을 논하면서 어떻게 창작이란 단어가 강조되는지. 예술이란 새로운 것을 만들기에 사실 다 창작이라야 정상이다. 그런데 뮤지컬에 창작이란 말을 앞에다 쓰는 건, 창작이 아닌 경우가 그만큼 많다는 반증이다. 영화에서는 창작 영화란 말을 쓰지 않는다. 그건 영화를 만든다는 행위가 다 창작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이 만들든, 외국 사람이 만들든, 아니면 한국 사람과 외국 사람이 합쳐 만들든 다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기에 창작이다. 리메이크나 표절 시비와는 다른 문제다. 드라마나 대중음악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뮤지컬은 그렇지 않다. 한국인이 만든 건 창작 뮤지컬, 외국인이 만든 건 외국 뮤지컬, 외국인이 만든 뒤 한국인이 따라하는 건 라이선스 뮤지컬,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물론 한국인이 만든 걸 외국인이 따라 해도 라이선스 뮤지컬이긴 하지만 그런 경우는 지금껏 손에 꼽을 정도다. 라이선스 뮤지컬 중엔 외국 것을 하나도 고치지 못하고 100% 그대로 해야 하는 경우가 있고, 나름 운용의 묘를 살려 대폭적인 변화를 해도 되는 경우가 있지만, 그 어느 경우에도 정도의 차가 있을 뿐 외국 창작물에 기반을 둔다는 건 똑같다. 이 얘기가 라이선스 뮤지컬이 무의미하다거나 수준이 떨어진다는 뜻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길. 다른 대중문화와 다른,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가지는 고유한 속성임을 말하려 할 뿐이다. 그리고 라이선스 뮤지컬은 한국만의 유별난 현상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흔히 제작되는 방식이다.
그럼 라이선스 뮤지컬이 한국 뮤지컬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전체 시장 규모의 70%에 육박한다. 시장을 주도하며 대세를 이룬다는 의미다. 이 지점에서 바로 뮤지컬은 킬러 콘텐츠를 탄생시키기 어려운 구조적 원인을 갖게 된다. 다른 장르가 외국에서 한국으로 바로 주도권이 넘어온 데 비해, 뮤지컬은 타 장르엔 없는 새로운 제작 형태인 라이선스 뮤지컬이 중간에 떡 하니 위치해, 외국에서 바로 창작 뮤지컬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 창작 뮤지컬의 킬러 콘텐츠가 탄생하지 못하는 결정적 요소다. (p.61-62)
하나의 예술 장르가 온전히 자기 모습을 갖추기 위해선 네 가지 영역이 톱니바퀴처럼 잘 굴러가야 한다. 그 네 가지 영역이란 창작―제작―비평―학문이다.
영화를 예로 들면, 창작이란 이름 그대로 만드는 과정이다.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을 하는 일 등이 속할 것이다. 제작이란 구체적 결과물이 나오는 제반 과정을 모두 포괄하지 않을까 싶다. 돈을 끌어 모으고, 적절한 배우를 캐스팅하고, 촬영할 만한 장소를 미리 알아보고, 상영할 극장을 잡는 일 등이다. 비평이란 꼭 평론가들의 전문적인 영역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 예술품을 소비한 이들이 이를 어떻게 느꼈는가를 서로 소통해, 또 다른 예술 작품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 정도로 정리하자. 학문이란 이런 모든 과정을 체계화시켜 후학들이 잘 배출될 수 있도록 하는 일일게다. 이 네 가지 영역이 일정 정도 수준 이상으로 잘 돌아가는 장르가 영화일 듯싶다. 그러니 한국 영화가 경쟁력을 갖게 되는 거고.
그렇다면 한국 뮤지컬은 어떨까. 라이선스 뮤지컬이 대세이다 보니 제작 위주다. 아니 더 적나라하게 얘기하면 제작밖에 없다.
외국 나가 판권 따내는 건 선수다. 해외에서 올라간 뮤지컬을 이토록 빨리 수입해 들여오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단연 1등이다. 워낙 외국 뮤지컬을 많이 따라하다 보니 무대화시키는 방법, 이를테면 무대 음향 조명 등 스태프들의 기술은 날로 발전하고 있고 무엇보다 배우들의 기량이 출중한 편이다. 마케팅 기법도 다양해지고, 티켓 운영 시스템도 체계가 잡혔다.
반면 창작은 엉망이다. 뮤지컬 창작의 첫 단계라는 극작 작사 작곡에서 눈에 띄는 인재는 좀체 발견하기 어렵다. 제작 위주로 시장이 굴러가는 통에 창작에 대한 강한 필요성이 제작자도, 투자자도, 극장도, 관객도 딱히 많지 않은 것이다. 무대화를 시키는 노하우는 제법 틀을 갖췄지만, 무대화에 가장 근간을 이루는 ‘원천 기술’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창작의 영역 구분도 제대로 돼 있지 않다. 뮤지컬 창작이란 우선 극작가가 대본을 완성하면 그중 가장 강렬한 부분을 작사가가 노랫말로 바꾸고, 여기에 음악을 입히는 게 일반적인 과정이다. 세 영역 모두 고유한 특성이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국내 창작 뮤지컬은 ‘말’이라는 이유로 극본과 작사를 한 사람에게 맡기곤 한다. 극본, 작사가가 연출까지 맡기도 하며, 작곡가가 음악 감독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점점 전문화 세분화 되고 있는 현대 뮤지컬의 흐름과는 분명 거리가 있는 실정이다.
비평 역시 허접스럽다. 국내 뮤지컬 평론가는 다섯 손가락을 넘지 않는다. 물론 뮤지컬 평론은 근본적으로 영화에 비해 한계가 있다. 영화야 극장에서 혹시 놓쳤으면 비디오로 봐도 되고, 심도 있게 분석하고 싶으면 다시 또 보면 된다. 아직 한국에 안 들어온 외국 영화라도 필름을 빌려오면 된다. 뮤지컬은 그게 안 된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다는 신작을 보려면 뉴욕이나 런던으로 직접 날아가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반복해 보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해 달랑 한번 본 기억을 더듬곤 한다. 미학적 접근이라는 심도 있는 분석은커녕 “봤냐, 안 봤냐”가 우선시 되곤 한다. (p.66-68)
2010년 대학로에 위치한 메이저 연극 기획사가 약 200여 명의 관객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다. “4만원짜리 티켓을 50% 할인해서 파는 게 좋은가, 아니면 맨 처음부터 2만원으로 파는 게 좋은가.” 어떻게 보면 어리석은 질문 아닌가. 결과적으로 소비자의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은 똑같이 2만원이니 말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전자, 즉 50% 할인을 좋아한다는 소비자가 90%였다.
이런 설문 조사를 보면 합리적인 소비란 애당초 없는 게 아닌가 싶을지도 모르겠다. ‘조삼모사’를 떠올리며 혀를 찰지도 모른다.
공짜 좋아하는 한국인의 습성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워낙 값 깎는 것, 혹은 흥정하는 것에 익숙해져 가격 할인이 하나의 소비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분석이 있을 수도 있다. 난 생각이 조금 다르다. 가격을 낮춰주는 것이야말로 ‘당신은 특별하다’는 걸 전해주는 분명한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p.130-131)
그렇다면, 시키만 아니라면, 디즈니만 아니라면, 뮤지컬 전용관에서 오래오래 공연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 지점에서 한국 뮤지컬 시장의 근본적인 한계가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시키가 샤롯데씨어터에서 장기 공연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한국 뮤지컬 제작자들이, 뮤지컬협회가 그토록 펄펄 뛰었던 건 전용관을 못 쓰게 되는 것에서 비롯한 위기의식이었다. 뮤지컬이 산업이 되기 위해 가장 필수적인 인프라인 전용관이 있어야 하고, 그 전용관에서 종영 날짜를 정하지 않은 채 오픈 런으로 공연해야 뮤지컬 시장이 제대로 틀을 갖추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키가 떠나고 샤롯데씨어터에서 〈라이온 킹〉보다 오래 공연한 뮤지컬이 있었나? 없었다. 가장 근접했던 게 2009년 9월 말부터 2010년 9월 중순까지, 11개월 남짓 공연한 〈오페라의 유령〉이었다. 그 〈오페라의 유령〉마저도 수익을 내진 못했다.
한국 뮤지컬 시장은 장기 공연이 불가능하다는, 오픈 런으로 공연할 수 없다는, 그만큼 시장 규모가 작다는 얘기다. 따라서 제작 방식 역시 미국 브로드웨이를 그대로 차용할 수 없다. 사전 제작에 큰돈이 들어가더라도 오래 공연해 그 제작비를 충당하는 방식이 한국에서는 현실성이 없다. 대신 맨 처음부터 특정 기간을 정해놓고, 그 기간에 사전 제작비, 러닝 코스트를 몽땅 빼내야 한다. (p.137-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