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는가 / 기욤 피트롱 / 갈라파고스
그런데, 모름지기 “하나의 도시란 한 명의 개인과 마찬가지다. 도시도 제대로 기량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식량과 물, 공간을 필요로 한다”고 페데리코 쿠구룰로는 말한다. 대도시가 지닌 ‘도시 신진대사’를 연구하면서 도시계획가들은 생태적 역량을 평가하기 위해 그곳을 드나드는 각종 물질, 에너지, 폐기물의 목록을 작성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마스다르 같은 스마트시티의 신진대사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마땅히 제기되어야 할 좋은 질문입니다. 스마트한 기술도 자재를 필요로 하므로 그 각각의 영향력을 반드시 계산해야 할 테니까요.” 실제로 페데리코 쿠구룰로는 개발업자들에게 숫자로 표시된 보고서를 요구했으나 받아보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어쨌거나 “아부다비에서는 그런 종류의 서류는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튀르키예 출신 학자로 마스다르 시티에 관한 책을 쓴 괵체 구넬이 말한다. 이 정도면 아랍에미리트 정부에 대한 거의 노골적인 비판이 아닐까.
제일 기가 막힌 건 아주 최근까지도 전 세계를 통틀어 스마트시티의 전반적인 영향에 대한 연구가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2016년 들어 키크키 람브레히트 이프젠이 지휘하는 덴마크 연구진이 학술지에 이론적 분석 틀의 윤곽 정도를 게재한 게 전부였는데, 6개월 동안 일곱 개 범주의 스마트 기술(지능형 창문, 인터넷에 연계된 수도계량기, 전산화된 전력망 등 수백만 가지 장치)을 대상으로 각각의 비용과 이득을 조사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장치들이 분명 대도시의 전력 소비량을 줄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이득을 보기 위해서는 이 장치들을 산업화하여 대량으로 생산하고 운송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엄청난 양의 자재와 에너지가 투입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키크키 람브레히트 이프젠이 2019년에 발표한 비용-이득 분석 결과는 황망하기 그지없다. “스마트시티 솔루션 개발이 일반적으로 도시 시스템의 환경 역량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p.32-33)
디지털 산업은 그것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런 말 대신 디지털 산업의 발전이 기후에 긍정적인 효과를 낼 것이라고 장담한다. 실제로 디지털 산업의 역량은 디지털 전환을 꾀하는 모든 경제 분야 활동에 단비가 되어줄 것이다. 소규모 농가들은 위성사진을 통해서 농업에 필요한 요소를 조절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연료 소비를 최적화할 수 있는 친환경 장치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며, 대규모 광산업자들은 센서를 통해서 채굴 중이지 않은 갱도의 통풍 장치 사용을 중지함으로써 전력 소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 흥미로운 예시들은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총장을 역임한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가 어째서 SMARTer2030 보고서에 서문을 쓰게 되었는지를 확실히 설명해준다. 이 협약의 최고 기구가 매년 지구의 미래에 관한 토론을 벌이기로 유명한 당사국 총회(COP)이기 때문이다.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는 기후변화를 막으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얼마나 “이 보고서가 ICT의 본질적인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지를 역설한다.
한편, 유엔과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은 GeSI의 결론을 고유의 홍보 매체를 통해 배포하는가 하면, 세계은행은 공개 간행물에 이를 그대로 베껴 썼다. 맥킨지앤드컴퍼니, 보스턴컨설팅그룹, 딜로이트, 오랑주 같은 막강 기업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 GeSI가 작성하는 보고서는 성서가 되었으며, 브뤼셀의 이 로비 단체는 오늘날 자신들이 ‘녹색 디지털’과 관련하여 세계 정보의 원천이라며 으스댄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 전문가들이 이러한 연구 조사의 신뢰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의 프랑수아즈 베르투는 “활용된 데이터의 신뢰성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때로 경솔한 건 아닌지, 가설의 토대가 된 원천 정보들이 모호하지는 않은지” 우려를 표명했다. 나아가서, “이 두 개의 보고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에만 집중하고 있다. 가령 커넥티드카처럼 많은 전자폐기물이 나오는 기기들이 본래 모습대로 측정되지 않았다. … 그 어떤 독립 기구도 이 서류의 신빙성을 담보하지 않았다”고도 덧붙였다. (p.41-42)
전쟁으로 점철된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승자가 얼마나 자기식으로 역사를 다시 쓰려는 집착을 보이는지 학습했다. 21세기의 디지털 기업들은 이러한 기법을 한층 세련되게 가다듬어 아예 미래를 새로 쓸 것을 제안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알고 보면 디지털은 세상을 오염시키니까. 그것도 아주 엄청나게. 특히 물과 에너지 소비량, 광물 자원 고갈에의 기여 등을 고려한다면, 디지털 산업이라는 분야는 앞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의 두세 배에 해당하는 생태발자국을 탄생시킨다. 다른 것들보다도 특히 지구상에서 유통되고 있는 340억 개의 디지털 장비들이 주요 원인이다. 이것들은 전부 더할 경우 무게가 2억 2400만 톤에 이르는데, 이는 세단 1억 7900만 대의 무게와 맞먹는다. 에너지 관점에서 보자면, ICT는 세계 전기의 10퍼센트가량을 소비하는데, 이것은 원자로 100대가 생산해내는 전기량에 해당된다. 디지털 산업계가 하나의 나라라면, 이 나라는 전기 소비 면에서 미국과 중국의 뒤를 이어 세계 3위를 차지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전기의 35퍼센트가량은 여전히 석탄을 통해서 생산된다. 사정이 이러니, 지구의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 가운데 약 4퍼센트는 디지털 산업에서 발생하는 형편이다. (p.44-45)
최근 들어 당신은 그걸 누르고 싶어 죽겠을 때마다 눌러왔다. 가령 사랑스러운 직장 동료의 마음을 사기 위해 당신은 그 동료가 페이스북에 올린 한 사진에 ‘좋아요’를 눌렀다. 사랑하는 이의 휴대폰에 도달하기까지 이 ‘좋아요’는 인터넷의 일곱 개 층을 거치는데, 그중 일곱 번째, 그러니까 제일 꼭대기에 있는 층이 당신이 작동시키는 디지털 기기(가령 컴퓨터)이다. 당신의 애정 어린 ‘좋아요’는 이제 중간층들(전송 층과 네트워크 층 등) 속을 파 내려가며, 마침내 인터넷의 가장 첫 번째 층인 물리적 층, 즉 해저케이블로 이루어진 층에 닿는다. 다시 말해, 꼭대기 층과 바닥 층 사이에서 ‘좋아요’는 이동통신 사업자나 인터넷 모뎀의 4G 안테나를 거쳐 건물의 공유기를 따라가다 당신이 밟고 다니는 인도 표면에서 약 80센티미터 아래 묻혀 있는 구리 관에 닿는다. 그런 다음 대규모 이동 경로(고속도로, 하천, 선박 예인로, 철도…)를 따라가며 설치된 전선을 타고서 통신 사업자의 여러 기술적 공간 속에 쌓여 있는 다른 ‘좋아요’들과 합류한다. 여기서 모인 ‘좋아요’들은 바다를 가로질러 다른 데이터센터로 운반된다. 그러다 마침내 인터넷의 가장 깊은 층에 도달한 당신의 ‘좋아요’는 이제 가장 위층인 일곱 번째 층, 그러니까 당신이 연모하는 동료의 휴대폰을 향해 지금까지의 여정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동료가 당신과 고작 10미터 떨어진 곳에 있더라도 당신의 ‘좋아요’는 수천 킬로미터를 여행하는 것이다. 그러니 ‘좋아요’의 지리학이란 말이 나오는 게 괜한 호들갑은 아니다.
G메일을 통해서 한 통의 전자메일을 보내거나 왓츠앱을 통해 메시지 한 줄을 보내거나 페이스북으로 이모티콘 하나를 게시하거나 틱톡에서 동영상 한 편을 저장하거나 스냅챗에서 새끼 고양이 사진 몇 장을 보내는 것처럼 손으로는 만져볼 수 없는 행위들을 하기 위해 우리는, 그린피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십중팔구 인간이라는 종에 의해서 건설된 가장 광대한 것이랄 수 있는 것”, 분명 물질로 구성되었으며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하부구조를 구축한 것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지금까지 발표된 연구들은 그럼에도 디지털 산업의 혜택이 부정적인 편견들을 능가한다는 점을 입증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적어도 2018년에 더시프트프로젝트라고 하는 한 싱크탱크가 풍부한 자료를 담아 보고서를 출간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 보고서의 저자들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방식대로의 디지털 전환은 기후 위기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을 돕는다기보다는 오히려 가속화한다”고 거침없이 주장한다. 이들은 “디지털 기술이 디지털화된 분야의 생태발자국을 확실하게 증가시킬 위험이 분명 실재한다”고도 말한다. (p.46-48)
요즘 전형적인 스마트폰이라면 카메라 두 개, 마이크 세 개, 적외선 센서 한 개, 근접성 탐지기 한 개, 자기계 한 개는 기본으로 갖추고 있다. 수많은 GPS, WiFi, 4G, 블루투스 안테나들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 경이로운 장치들을 제작하는 데 드는 경비는 얼마나 될까? 그 답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동네 벼룩시장 같은 곳을 돌아다녀 보라. 분명 1960년대에 만들어진 원형 다이얼 판이 장착된 구형 전화기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당시 그런 전화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알루미늄, 아연 등 적어도 10가지 재료가 필요했다. 1990년대에 등장한 두께가 아주 두꺼운 휴대폰도 당신 눈에 띌 것이다. 다이얼 전화기보다 좀 더 진화한 형태의 이 휴대폰에는 구리, 코발트, 납을 비롯해 19가지 원자재가 추가로 들어간다.
이제 그것들을 요즘 사용되는 휴대폰과 비교해보자. 작은 크기는 어디까지나 겉모습일 뿐, 내용물까지 단출하리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실제로 요즘 휴대폰은 금, 리튬, 마그네슘, 규소, 브로민 등 다 합해서 50가지 이상의 원자재로 이루어졌다! 이 많은 재료들이 배터리와 몸체, 화면을 비롯하여 전화기의 전자 부문 전체를 이루고, 나아가서 그것들이 보다 간편한 조작을 통해서 보다 큰 소통의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도록 요소요소에 투입되는 것이다. 네오디뮴을 예로 들어보자. 이 낯선 금속은 적절하게 설정될 경우 당신의 휴대폰을 진동하게 만든다. 액정 화면엔 소량의 인듐도 들어가는데, 이 금속의 산화물(분말) 덕분에 터치 화면의 출현이 가능해졌다. 한마디로, 우리는 각각 1그램이 채 안 되는 다양한 재료들을 매일 들고 다니면서 그것들의 존재도, 정확한 용도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데에는 그 각각의 1그램만으로도 충분했다.
우리가 보통 인터넷이라고 할 땐 통신망의 모든 것(케이블, 라우터, 와이파이 접속단자 등)은 물론 데이터를 저장함으로써 사물인터넷이 서로 통신 가능하도록 해주는 데이터센터까지 모두 포함된다. 이 거대한 하부구조가 독식하는 지구 자원의 양은 점점 늘어만 가는데, 가령 세계 구리 생산량 가운데 12.5퍼센트, 알루미늄의 경우는 7퍼센트(이 두 금속은 매장량이 풍부한 편에 속한다)를 ICT 분야가 소비한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자원들은 매우 특수한 화학적 특성을 가진 소량의 금속들이 얇은 평면 화면, 축전지, 하드디스크, 집적회로, 광섬유 또는 반도체 등에 들어가야만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 디지털 산업은 이러한 금속들의 세계 생산량 가운데 상당 부분을 집어삼킨다. 예를 들어 팔라듐 15퍼센트, 은 23퍼센트, 탄탈럼 40퍼센트, 안티모니 41퍼센트, 베릴륨 42퍼센트, 루테늄 66퍼센트, 갈륨 70퍼센트, 저마늄 87퍼센트, 터븀은 심지어 88퍼센트를 소비한다.
이러한 자원들을 손안에 쏙 들어가는 스마트폰 안에 모두 욱여넣는 일은 이제 너무도 복잡하게 되었고, 따라서 이 작업은 ‘에너지 먹는 하마’ 격이 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스마트폰은 제조 과정에서만 이미 제품의 생애 주기 전체가 만들어내는 생태발자국의 절반, 소비 에너지의 80퍼센트를 잡아먹는 원흉이 되었다. (p.60-61)
그건 그렇고, 지난 5000년 동안 이어져 온 탈물질화는 또 다른 이야기이다. 우리는 문자의 유용성에 대해서라면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지만,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이 개별적인 인간의 탈물질화를 위한 최초의 도구를 발명한 건 사실이다! “문자는 요청이 있을 때면 어떤 순간에도 읽어볼 수 있다는 특성을 지닌다. 문자 덕분에 인간은 물리적인 현존이 없이도 자신의 명령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 기술 문제 전문가는 분석한다. 고대사회가 점차 복잡해져 가면서 화폐가 판매 가능한 생산품의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 역할을 하게 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이렇게 되자, 물건이 되었든 곡물이 되었든, 재산이라고 할만한 것은 이제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오직 은으로 환산한 가치로서 존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확산되어 가면서 ‘상거래 협상’은 협상의 대상이 되는 것이 물리적으로 눈앞에 있지 않은 상태에서도 진행되는 지경에 이른다.” 어음의 등장으로 “이제 은마저 탈물질화되면서 무역은 한층 더 활발해진다. 어음은 15세기에 벌써 국제무역의 기본 도구로 자리 잡으며, 이로써 경제계 최초의 탈물질화가 중요한 한 단계를 넘어서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현대 기술들과 더불어 “인간이 자신을 대신해서 성찰하는 임무를 기계에 맡김으로써 어떤 의미에서 이제 사고까지도 탈물질화 단계를 밟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계산기라는 도구를 생각해보라).” 사고뿐만 아니라 말(전화기)이며 이미지(시각 매체)도 같은 경로를 밟는다.
이처럼 탈물질화 현상은 그 기원이 정보화 이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금속으로 가축들을 대체하고, 종이로 금속을 대체하다가 디지털 매체로 종이마저 대체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변동이 이루어질 때마다 기존의 도구는 완전히 제거되지 않고 보다 월등한 특성을 지닌 다른 도구가 추가되었다. 현대적인 전자 설비를 기획하는 데 필요한 막대한 양의 자재들을 고려할 때, 오늘날의 정보화는 이러한 역사적인 메커니즘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줄 뿐이다. 실제로, 책임감 있는 디지털 산업을 지향하는 한 전문가가 말했듯이, “탈물질화란 다른 식으로 물질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p.71-72)
이러한 전자 숙청은 ‘구식화 프로그래밍’, 즉 한 제품의 수명 단축을 가속화하는 전략으로 잘 알려진 현상의 가장 극단적인 변이이다. 구식화는 우선 ‘물질적’ 차원에서 일어날 수 있다. 가령 스마트폰의 특정 구성 요소(배터리일 경우가 가장 흔하다)가 작동을 멈추었는데, 부품이 기기에서 분리 불가능한 탓에 새 부품으로 갈아 끼울 수 없게 되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부품 하나 때문에 스마트폰 전체를 버리게 된다. 구식화는 또한 ‘문화적’ 차원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 신기술 출현으로 예전 기술의 매력이 줄어들면서 결국 이를 쓸모없게 만들어버리는 방식이 여기에 해당된다. 2025년이면 기업의 80퍼센트가 자기들의 자체 데이터센터를 폐쇄하게 될 것이다. 기업들이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외부 기업을 아웃소싱해서 그들이 운영하는 데이터센터에 자기들의 데이터를 저장해두는 편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논리적으로 전 세계에서 작동 중인 수백만 대의 서버를 폐기 처분하도록 이끈다. 마지막으로, 구식화는 ‘소프트웨어’ 차원에서도 가능하다. 하나의 전자 제품은 최신 소프트웨어와 양립할 수 없을 때 작동을 멈춘다. 가령 2020년, 소노스는 2011년부터 2015년 사이에 판매된 인터넷 연결 스피커에는 더 이상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지원하지 않을 것이므로 쓸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멀쩡히 잘 작동하는 스피커를 쓰레기로 전락시키겠다는 거죠. 정말 구역질 나는 일이라고요!” 구식화 프로그래밍 방지를 요구하는 시민단체 HOP에서 활동하는 한 회원이 목소리를 높인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이런 일에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마땅하다. 실제로 인터페이스에 설치된 각종 애플리케이션이나 프로그램은 점점 더 육중해져 가는 게 사실이다. 때문에 몇몇 사람들은 그러한 프로그램들을 가리켜 복잡하고 에너지만 많이 잡아먹는 여러 기능들을 과도하게 한곳에 모아놓았다는 의미에서 ‘비만 프로그램’이라고 빈정댄다. 이 같은 추세는 시민단체인 그린IT에 의해서 밝혀졌는데 이들은 “1995년부터 2015년까지, 웹사이트 한 페이지의 무게가 115배 증가했다”고 보고한다. 약간의 변주도 가능하다. 텍스트 하나를 작성하는 데 필요한 출력은 2~3년마다 두 배로 늘어난다. 점점 더 복잡해지는 명령행을 점점 더 많이 소화하느라 컴퓨터들은 쉼 없이 고군분투해야 하며, 사용자들은 기기를 좀 더 나은 성능을 갖춘 것으로 교체하게 된다. (p.73-75)
구체적으로, MIPS는 한 벌의 의류, 오렌지 주스 병, 카펫, 스마트폰 등의 제조와 사용, 재활용 등의 과정에서 동원되고 이동하게 되는 자원의 총체를 평가한다. 그러니 모든 것이 다 검토의 대상이 된다. 재생이 가능하거나(식물류) 불가능한(광물) 자원, 농업 활동으로 발생하게 되는 토양의 변화, 끌어다 쓴 물, 소비된 화학제품 등등. 가령 티셔츠 한 장을 놓고 보자면, 인도의 한 봉제 공장에서 티셔츠를 만들 땐 전기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이 전기로 말하자면 석탄 덕분에 만들어지는데, 그 석탄을 캐내기 위해서는 소나무 숲을 몽땅 베어버려야 한다. 티셔츠 한 장의 MIPS는 그러므로 사용된 면뿐만 아니라 봉제 공장을 지을 때 사용된 벽돌과 작업대를 비추는 텅스텐 필라멘트, 약간의 석탄, 약간의 나무 등을 모두 포함해야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이 방식에 따르면, “마치 당신이 엔진의 기어 손잡이를 작동시키면 당신이 앉아 있는 좌석 아래에서 여러 개의 톱니바퀴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것 같다”고 옌스 토이블러가 설명한다.
이 톱니바퀴 이미지를 머릿속에 잘 새기고 나면 ‘물질의 나비효과’라는 표현이 적절해 보인다. 나비의 날갯짓이 세상의 반대편 끝에 태풍을 몰아올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옷 생산이 세계 방방곡곡에 분산되어 있는 제조의 각 단계에 특정한 효과를 야기할 수 있다. MIPS는 그러므로 전 지구적인 인과성 사슬의 베일을 벗겨주는 셈이다. 이러한 접근은 ‘생태 배낭’으로 수치화된다. 즉 우리의 소비 행위 각각에 따라 증가하는 지수로 만들어진다. 물론 MIPS가 완벽한 체계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MIPS 계산을 위해 활용된 자료들 대부분은 전문가들의 의견이나 추정치에서 비롯되는데, 이 경우 부정확한 것이 당연하다”고 옌스 토이블러는 시인한다. 그렇다 해도 우리는 그것이 담고 있는 끔찍한 진실 앞에서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티셔츠 제작엔 자원 226킬로그램, 오렌지 주스 1리터엔 각종 물질 100킬로그램이 소요되었다. 신문 제작의 MIPS는 틀림없이 10킬로그램 정도일 것이다. 금이 몇 그램쯤 들어간 반지 한 개로 말하자면, 왜 그것의 MIPS 때문에 옌스 토이블러가 기절초풍할 뻔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무려 3톤이나 되니까! 요컨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물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훨씬 무게가 나간다. 평균 잡아 30배 정도! (p.86-87)
그처럼 총체적으로 세심하게 관리한 결과는 그야말로 경이롭다. “오늘날 스마트폰마다 들어있는 컴퓨터는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에 제작된 최고 컴퓨터보다 그 성능이 100배는 향상되었다”고, 장-피에르 콜랭주가 설명한다. TSMC에서 일했던 이 전직 엔지니어는 “그토록 고성능인 컴퓨터가 고작 셀카 찍는 데에나 사용되고 있으니 약간 씁쓸한 건 사실”이라고도 덧붙인다. 그건 그렇고 하던 이야기로 돌아오자. 반도체 칩은 가장 복잡한 전자 부품들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이 칩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규소, 붕소, 비소, 텅스텐, 구리 등을 비롯하여 60여 가지의 자원이 필요하며, 그 자원들은 모두 99.9999999퍼센트의 순도로 정제되어야 한다. 트랜지스터를 새기는 공정으로 말하자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부 칩들엔 200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새겨져 있죠. 가령 손목시계 속에 200억 개의 작은 흐름이 있다고 상상해보십시오. 굉장하지 않습니까.” 장-피에르 콜랭주가 설명을 계속한다. 이 경우, 하나의 ‘웨이퍼’가 50개의 칩으로 이루어졌다면, 1조 개의 트랜지스터가 작동하는 셈이다. “이는 LP판만 한 표면에 은하수를 구성하는 별보다 네 배 많은 별이 박혀 있는 것에 해당됩니다.”
집적회로 제작을 위해 500가지 단계를 거치려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하청 업체들(많을 땐 최대 1만 6000개)이 개입하게 된다. 한마디로 세계화를 단 하나의 물품으로 요약해보라고 한다면 의심할 여지없이 반도체 칩이 대표로 뽑힐 것이다. 이렇게 상상하면 이해하기 쉽다. “수정 광산은 십중팔구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을 것이고, 규소 판은 일본에서 생산될 겁니다. 사진석판 기구는 네덜란드가 담당하고, 세계 최대 진공펌프 제조업체는 오스트리아에 있으며, 볼베어링은 독일에서 제조됩니다. 원가 절감을 위해서 반도체 칩은 분명 베트남에서 메인보드에 조립될 테고요. 조립이 끝나면 중국의 폭스콘 그룹으로 보내져 아이폰에 탑재됩니다. 이 모든 과정을 최적화하기 위해서 TSMC 그룹은 과거에 이탈리아와 스코틀랜드 대학들에서 개발한 프로그램을 사용했죠.” 이런 식의 물자 보급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어마어마한 에너지 소비를 야기한다”고, 카린 사뮈엘이 탄식한다. (p.93-94)
규소의 채굴과 정제, 섭씨 1400도에서의 용해, 극자외선을 만들어내는 기계에 사용되는 빛에너지와 수십 차례에 걸쳐서 진행되는 판 세척 등 ‘웨이퍼’의 공정은 에너지를 무지막지하게 잡아먹는다. 그러니 산업 과정에서의 에너지 강도를 최소화하려는 것이, 더도 덜도 아니고 적어도 비용 때문에라도, 논리적인 것이 아닐까? “실제로 반도체 칩 제조업체는 에너지를 덜 쓸수록 더 큰 이득을 본다”고 장-피에르 콜랭주도 동의한다. 그렇지만 이 업체들은 애플 또는 화웨이 같은 그룹 어느 한 곳과의 계약을 따내야만 일 년의 수익이 보장되는 극단적인 경쟁 환경 속에서 작업한다. 그런데 휴대폰 제조업자들이 원하는 건 뭘까? 그들은 항상 더 빠르고 더 많은 기능을 가진 휴대폰을 원한다. “전자 제품 광고만 봐도 그건 자명합니다. 항상 더 나은 기능을 갖췄다고 자랑하잖습니까.” 장-피에르 콜랭주의 이 지적은 백번 옳다.
고객들의 요구 사항에 맞출 수밖에 없는 TSMC 같은 회사들은 기록적으로 짧은 시일에 괄목할만한 기술적 도약을 거듭하지 않을 수 없다. 5~7나노미터 크기의 트랜지스터를 새기는 것만으로는 오래도록 경주에서 살아남는 데 충분하지 않을 것이므로, 이 회사는 크기를 2~3으로, 아니 1나노미터로 줄이겠다고 약속했으며, 그렇게만 된다면 “그룹의 에너지 소비량 따위가 제일 심각한 관심사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직 TSMC 엔지니어는 결론짓는다. 사정이 이러하니 전체 연료 소비량이 제조된 집적회로의 최종 무게보다 몇백 배나 더 무거워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p.95)
환경과 위생 문제 관련 반향은 국민 1인당 전자 부품 제조량에서 세계 기록을 보유한 나라인 대만에서 두드러진다. 중국 해안에서 180킬로미터 떨어진 이 섬나라에 TSMC 그룹의 본사가 자리 잡고 있는데, 이 그룹은 전 세계 집적회로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공급한다. 그런데 TSMC는 최근 몇 년 사이에 각종 오염과 관련해서 비난을 받아야 했다. “마이크로프로세서 산업은 생태계에 기체, 액체, 고체 형태의 폐기물을 발생시킨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고, 대만의 한 화학자가 설명한다. 문제의 오염을 정확한 숫자로 입증하기는 어렵지만 몇몇 사람들은 정제 규소 1킬로그램을 생산할 때마다 적어도 280킬로그램의 화학 물질이 발생한다고 장담한다. 폐기물이 모두 적법하게 처리된 것은 아니었고, 2013년 이후 TSMC의 몇몇 하청 업체들(ASE Korea Inc., Nerca 같은 전자 회사들)은 주변 하천에 유독성 물질들을 불법으로 흘려보낸 후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집적회로는 제조 단계마다 탈이온수로 세척해야 하므로, 반도체 칩을 만드는 데에는 엄청난 양의 물이 소요된다”고 장-피에르 콜랭주는 설명한다. 때문에 TSMC의 1일 물 소모량은 무려 15만 6000톤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에서 86퍼센트는 재활용된다지만, 장-피에르 콜랭주는 자신의 옛 고용주가 개입된 최근의 한 사건을 떠올린다. “2017년 대만에 지독한 가뭄이 닥쳤기 때문에, TSMC는 트럭으로 필요한 물을 가까운 하천에서 공장까지 퍼 날라야 했습니다. 그러자니 신주 과학단지 부근 도로는 자동차의 통행이 불가능했습니다. 도로는 온통 물 운반 트럭들 차지였으니까요.” 물론 가장 충격적인 것은 TSMC의 에너지 소비량인데, 콜랭주에 따르면, “작은 크기의 제품을 정교하게 만들수록 그 물건들을 만들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엄청 잡아먹는 대형 기계들이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대만에서 TSMC 그룹의 공장 설비는 원자로 두세 대가 생산하는 전력량, 즉 정점에 도달했을 때 대만 국내 소비량의 3퍼센트를 필요로 한다. 게다가 이 숫자는 향후 10년 안에 두 배로 증가할 것이다. 대만의 국내 전기 생산량의 43퍼센트가 석탄과 석유를 이용하는 화력 발전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대만 전자 산업의 탄소발자국은 국내 총배출량의 10퍼센트를 차지한다”며 콜랭주는 한숨짓는다. (p.96-97)
“마이크로전자 산업으로 말하자면, 가스 천지!”라고 카린 사뮈엘 교수는 몇 번이고 강조한다. 이 기체들은 화학적 특성 때문에 반도체나 집적회로 생산에 사용되며, 심지어 평면 화면 제작에도 쓰인다. 불소화가스는 지극히 낮은 비율로 발생하므로, 양으로 볼 때 전체적인 온실가스 배출량의 2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이 기체들 가운데 제일 중심이 되는 건 HFC 계열의 기체들로, 이들은 CFC(염화불화탄소, 프레온가스) 계열 기체들과는 달리 오존층을 파괴하지 않는 대단한 장점을 가지고 있기에 차츰 CFC를 대체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HFC는 확실히 환경 관점에서의 진일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바스 에이코우트의 집무실은 브뤼셀에 밤이 내려앉는 광경을 지켜보기엔 더할 나위 없이 명당이다. 이 네덜란드 유럽의회 의원은 벌써 여러 해 전부터 이 유리로 된 망루에 앉아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유럽에서 불소화가스 사용을 제한, 아니 아예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 이유는 “이런 유형의 기체 분자 하나가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강력하기 때문”이다. 이 기체들이 기온을 올리는 힘은 굉장하다. 그 위력이 평균 잡아 이산화탄소보다 2000배는 더 클 것이라고 그는 단언한다. (p.99-100)
그렇다면 왜 만져볼 수도 없는 고양이 동영상이나 이메일, 위치 정보 등을 쌓아두기 위해 그토록 많은 콘크리트 믹서를 돌리고 그로 인해서 야기되는 환경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영향과 함께해야 한단 말인가? 인류는 이미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심한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하루에 5엑사바이트, 그러니까 정보화 산업이 시작된 시기부터 2003년까지 생산된 모든 정보의 양에 해당되는 만큼의 데이터가 생산된다. 그 정도면 블루레이 디스크 1000만 개의 기억 용량을 다 채울 수 있으며, 이 디스크들을 한 줄로 쌓아 올릴 경우 에펠탑만 한 탑 네 개가 세워진다. 거기다가 머지않아 전 세계에 쏟아질 5G에 연결될 수조 개의 사물들까지 고려하면, 데이터의 양은 “가히 지수함수적으로 증가할 것이고, 우리로서는 이 추세를 막을 길이 없다”고 프레드리크 칼리오니에미가 경고한다. 더구나 이 같은 인프라의 세계시장은 현재 연간 매출이 1240억 유로 정도인데, 해마다 거의 7퍼센트 수준으로 성장하고 있다. (p.112-113)
데이터를 위해서 국토는 어떻게 이용되어야 하는가? 미래에 그것들은 얼마나 많은 전기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인가? 이 모든 질문들에 대해서 현재로는 답이 없다. 마리에터 세데이는 정치인들이 두 자릿수 성장률을 보이는 이 분야에 두 손을 들어버렸음을 깨닫는다. 전력 장애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건 엄연한 현실이다. 세데이의 견해는 시 행정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서까지도 공유되기 시작했고, 6월에 암스테르담시는 조심스럽게 마리에터에게 접촉해왔다. 양측은 만나서 공동전선을 펼치자고 합의했고, 공동선언문을 준비해, 2019년 7월 12일 마침내 데이터 농장 업계에 폭탄을 떨어뜨렸다. 선언문은 “우리는 하루 종일 우리의 휴대폰과 노트북에 접속할 수 있기를 원한다”고 전제하면서, 그러나 암스테르담과 하를레메르메이르엔 공간이 ‘거의 없기’ 때문에, 두 도시는 급작스럽지만 전 세계에서 최초로 새로운 데이터센터 건설 유예를 결정한다는 내용을 전했다. (p.148-149)
부올레림의 한 식당에서 양손으로 뜨거운 찻잔을 움켜쥔 채 롤란드 보만은 우리에게 댐이 건설되기 전 강의 지류의 모습을 담은 해묵은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소나무 숲과 자작나무 숲을 적시는 기세 당당한 길이 15킬로미터의 릴라 룰레엘벤. 이 하천은 무엇보다도 스웨덴에서 연어 번식지로 제일 유명한 곳이었다. “낙원이었죠!” 당시 강에서 엎드리면 코 닿을 곳에 살았던 그가 기억을 되살린다. 릴라 룰레엘벤은 부올레림에 살던 3000명 주민의 생활의 터전이었다. 아이들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 “조금만 틈이 나도 나와 내 친구들은 자전거를 타고 강으로 냅다 달렸습니다. 헤엄도 치고 바위에 누워 햇볕도 쬐고 물고기도 잡았죠. 어떤 의미에서 강엔 영혼이 있었다고 봐요.” 하지만 스웨덴의 경제 발전에 발맞추기 위해 관계 당국은 곧 전 국토에 걸쳐서 많은 수력발전 시설 건설 계획을 발표한다. 룰레강의 잠재 역량은, 때가 되면 전기의 10퍼센트가 이 강에서 생산될 것으로 추정했음으로 미루어 볼 때, 막대하다고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다. 결국 렛시댐을 포함하여 여러 개의 댐 건설이 확정되었다.
3년 동안 인부 수백 명과 많은 트럭들이 콘크리트와 돌로 된 거대한 벽을 세우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고, 1967년 어느 여름날, 드디어 바텐팔 AB가 관리하는 수력발전소가 가동 준비를 마쳤다. 이 역사적인 사건을 롤란드 보만은 무척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때 난 열두 살이었는데, 언제나처럼 친구들과 물고기를 잡으려고 강에 갔습니다.” 그런데 뭔가가 달랐다. 상류 쪽으로 수심이 갑자기 수십 미터나 높아져 있었으며, 물의 일부는 길이 7킬로미터에 이르는 터널을 통해서 한 방향으로 유도되어 다시금 강의 본류와 합류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 하류 쪽으로 가자, 릴라 룰레엘벤이 말라 있었다. 롤란드 보만은 연어 한 쌍이 마지막 담수 물결을 거스르는 광경을 볼 사이도 없었다. 돌멩이들과 수초들이 이미 거품을 일으키고 있는 데다 골짜기엔 죽음 같은 침묵만 흘렀다. “강이 떠나버린 겁니다.” 그는 목이 메는지 그 한마디만 툭 던지고는 입을 닫았다. 15킬로미터에 이르는 물이 없어진 릴라 룰레엘벤은 서유럽에서 인간의 손에 의해 말라버린 가장 긴 강으로 기록되고 있다. (p.180-181)
네티즌들이 1초만 더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다면 케이블과 데이터 농장,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소와 디지털 허브 등의 지형이 어떻게 바뀔지 상상해보라! 분명 우리의 조바심, 인내심 결핍이 빚어내는 지형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디지털 산업이 언제나(심지어 부조리할 정도로) 성능과 즉각성만을 추구한다고 비판한다. 스웨덴의 보덴시에서 나란히 도열한 하이드로66의 서버들 사이를 거닐면서 프레드리크 칼리오니에미는 데이터를 스웨덴 라플란드 지역으로 옮김으로써 페이스북의 ‘좋아요’가 발생시키는 오염이 15000분의 1로 줄어들 것으로 추정한다. 놀라운 숫자임에 틀림없으나, 이 숫자는 꾸준히 늘어만 가는 데이터 생산량으로 금세 상쇄될 것이다. “서버들은 예전에 비해서 훨씬 성능이 뛰어나지만 데이터의 증가량은 그보다 더 가파른 상승 곡선을 보인다”면서 퀘벡의 대형 전기회사의 한 간부는 걱정한다. 그렇게 되면 데이터센터의 연간 전기 소비가 오히려 15퍼센트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이 두 추세가 균형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데이터 저장의] 중앙 집중화 패러다임은 효율적이다. 우리는 이전에 비해서 네트워크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있으며, 아마 미래에도 이러한 방향으로 계속 밀고 나갈 것”이라고 디지털 인프라의 한 전문가는 내다본다. (p.186-187)
보다 평범하게 우리 모두는 얼핏 보기에 지극히 사소해 보이는 일상 속 몇 가지 행동들을, 앉은 의자에서 일어날 필요도 없이 따라할 수 있으며, 게다가 엄청난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와이파이를 통해서 동영상을 감상한다면 4G를 통해서 볼 때보다 23배나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고, 집을 나서면서 셋톱박스(참고로 셋톱박스는 대형 냉장고만큼이나 전기를 잡아먹는다)를 끄는 것도 에너지 절약의 한 방편이다. 구글을 통하지 않고 웹사이트에 접속해도 전기를 아낄 수 있다. 검색엔진을 통한 검색을 한 번 할 때마다 전구를 1~2분 동안 켜놓을 때만큼의 전력이 소비된다. 영화 한 편을 고화질이 아닌 저화질로 보면 에너지 소비가 4~10배 줄어든다. 더구나 7000만 명의 네티즌이 화질을 낮추어서 동영상을 감상한다면 매달 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350만 톤 줄일 수 있는데, 이는 미국 석탄 생산량의 6퍼센트에 해당된다. 우리가 사생활을 존중하는 서비스 쪽으로 옮겨 탄다면 역시 데이터 ‘원천징수’를 제한할 수 있으며, 따라서 에너지 먹는 하마인 데이터 저장도 제한할 수 있다. 그러려면, 가령 메시지 애플리케이션 시그널(Signal)과 올비드(Olvid)를 이용하고, 이메일 계정은 프로톤메일(ProtonMail)에 만들며, 비용이 몇 유로 정도 들거나 기부금을 약간 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긴 하나 전자 파운데이션(E-Foundation)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라. 검색을 위해서라면 덕덕고(DuckDuckGo)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미국에서 만들어진 이 검색엔진은 사용자들이 실행한 검색 내역을 저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언은 끝도 없이 이어질 수 있으며, 그만큼 우리 각자가 아주 구체적이고 간단한 방식으로 보다 깨끗하고 간소한 인터넷을 위해 얼마나 슬기롭게 행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p.188-189)
크기가 수십 센티미터 정도 되는 안테나는 갈륨, 스칸듐 등의 희귀금속들로 꽉 채워진 장치로 거의 100미터마다, 그러니까 버스 정류장이며 가로등 혹은 광고판 등마다 하나씩 설치되어야 할 판이다. 그렇다면 그 안테나는 어떤 식으로 재활용될 것인가? 게다가 데이터를 전송하기 위해서는 그것들을 광섬유로 된 추가 네트워크에 연결해야 할 것이다. 미국에서 고속광섬유연합은 자국 내 규모 면에서 상위 25위까지의 도시를 커버하려면 220만 킬로미터의 광섬유(지구 둘레의 55배에 해당하는 길이)를 뽑아내야 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이 숫자는 2026년 세계 인구의 60퍼센트가 이 새로운 세대 휴대폰 네트워크를 쓰게 될 때면 몇 배나 더 늘어나야 할까? 그뿐 아니라, 5G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거의 모든 경우에, 전화기를 교체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2020년 한 해에 5G 사용 가능 단말기 2억 7800만 대가 팔렸을 것으로 집계되는데, 이러한 구매는 고장 난 휴대폰을 교체해야만 하는 실제적인 필요성에 의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디지털 세계를 한층 더 효과적으로 즐길 수 있으리라는 장담에 대한 맹신 및 사용의 편리함 추구가 동기로 작용한 것이었을까? 어찌되었든 궁극적으로 이러한 기술적 모험으로 야기되는 생태 비용은 어느 정도나 될까? 안타깝지만 이 질문에 대해서는 아무도 정확한 답변을 제시할 수 없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따위는 없었다”고 한 유럽의회 의원은 불만을 토로한다. 때문에 5G 서비스를 전개하는 데 ‘신중성 부재 원칙’이 작용한 건 아닌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정확한 정보가 없다 보니 비합리적인 공포심이 만연한다. 사람들은 예를 들어, 아무런 증거도 없이 새로운 안테나가 건강에 치명적인 전자기파를 방출할까 봐 두려워한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결국 환경 영향 평가 연구가 산발적으로나마 시작되었다. 유럽 전역을 통해서 여러 시의회가 5G 사용을 유예하기로 발표했으며, 시민들이 주축이 되어 공권력이 꽁꽁 묶어두었던 공개 토론회를 열기 위해 위원회를 구성했다.
5G 서비스 제공업자들은 그럼에도 부인할 수 없는 5G의 이점을 강조한다. 같은 양의 데이터를 소비한다고 할 때, 이 서비스를 통하면 이전 세대 네트워크를 사용할 때보다 에너지 효율이 10배나 상승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5G로 인하여 우리의 인터넷 소비와 데이터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개연성을 망각하는 것이다. 사실상 신기술은 우리의 소비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늘어나게 한다는 데에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이는 자명한 사실로, 그 구체적인 효과는 1865년에 이미 영국 출신 경제학자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에 의해 처음으로 연구되었다. 당시, 증기기계의 성능이 올라가게 되면 석탄 활용량이 감소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제번스는 기술 발전이 제공하는 에너지 절감 효과가 기계 활용의 증가로 상쇄됨으로써 결국 석탄 연료의 소비가 증가하게 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러니까 기대했던 것과 정반대의 효과가 나타난 셈이었다! (p.200-202)
이렇듯 직접적인 리바운드 효과는 이른바 ‘간접적’이라고들 하는 다른 효과에 더해진다. 사실 디지털 기술 덕분에 가능해진 시간 절약과 구매력 상승은 다른 방식의 소비를 가능하게 해준다. “인터넷 덕분에 나는 원격 근무를 할 수 있게 되었고, 따라서 주유비 1000유로를 아꼈죠. 이렇게 해서 생긴 돈으로 무얼 할까요?” 오랑주의 직원은 이어 자답한다. “유럽 북부에서는 겨울이 엄청 기니까 비행기를 타고 카나리아 제도로 날아갈까 해요.” 한 컴퓨터 관련 엔지니어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새삼 상기시켜준다. “디지털은 사회가 조직되는 방식, 물류의 유통 방식 등을 완전히 바꾸어놓습니다. 증권거래소에 즉각적으로 지시를 내리거나 아마존에서 물건을 주문하는 것과 같은 많은 일들이 디지털 없이는 존재할 수 없죠.” 달리 표현하자면, 디지털은 현재 경제와 기술의 발전을 놀랍도록 가속화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그 같은 간접 효과가 정확하게 계산된 적은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것이 우리의 실존을 가상화하는 데 절대적으로 일조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1930년대부터 자재, 디지털 및 에너지 관련 학문 분야에서 이루어진 57가지 발명을 분석한 결과 연구자들은 그 57가지 가운데 어느것도 자원 사용을 전반적으로 감소시키지 못했다고 결론내렸다. 물리적인 모든 제약으로부터 해방된 에테르적 세계 속으로 무모하게 돌진했던 우리는 이제 피할 수 없이 우리의 발목을 잡는 명백한 사실, 즉 탈물질화된 세계란 알고 보면 훨씬 더 물질적인 세계라는 자명함 앞에서 도망치고 싶어진다. (p.203-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