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 / 바츨라프 스밀 / 김영사
“에너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가장 뛰어난 통찰력을 지닌 20세기 물리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리처드 파인먼(1918~1988)의 가변적 정의보다 더 낫게 대답할 방법은 없는 듯하다. 파인먼은 자신의 유명한 저서 《물리학 강의》에서 단도직입적으로 이 문제에 뛰어들며 “에너지는 무척 다양한 형태를 띠며, 하나의 에너지에 하나의 공식이 있다. 예컨대 중력에너지, 운동에너지, 열에너지, 탄성에너지, 전기에너지, 화학에너지, 복사에너지, 핵에너지, 질량에너지가 있다”고 역설했다. 그러고는 느슨하지만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결론을 덧붙였다.오늘날 물리학에서는 우리가 에너지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 어떤 그림처럼, 에너지는 일정한 양의 작은 방울들로 오는 게 아니다. 에너지는 그런 게 아니다. 하지만 어떤 양을 숫자로 계산할 수 있는 공식들이 있고, 그 모든 걸 한꺼번에 더하면 (…) 항상 동일한 값이 된다. 에너지는 다양한 공식이 존재하는 이유나 메커니즘을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추상적이다.
맞다. 에너지는 추상적인 것이다. 우리는 여러 공식을 사용해서 움직이는 화살이나 제트여객기의 운동에너지를 정확히 계산해낼 수 있다. 또 산꼭대기에서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커다란 돌덩어리의 위치에너지, 어떤 화학반응에서 방출되는 열에너지, 깜빡이는 촛불이나 어떤 지점을 겨냥한 레이저의 빛(혹은 복사)에너지도 정확히 계산해낼 수 있다. 하지만 이 에너지들을 이해하기 쉽게 묘사한 단일 독립체로 정리하기란 불가능하다. (p.44-45)
배터리에서 동력을 얻는 초대형 제트기를 타고 대륙을 넘나드는 비행은 언제쯤이나 가능할까? 뉴스 헤드라인을 보면, 항공의 미래는 전기에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는 터보팬 엔진이 태우는 등유의 에너지밀도와 전기 항공기에 언젠가 장착되리라고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엄청난 차이를 철저히 무시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연료의 화학에너지를 열에너지와 운동에너지로 전환하며 제트여객기에 동력을 주는 터보팬 엔진이 태우는 연료의 에너지밀도는 킬로그램당 46메가줄(킬로그램당 대략 1만 2,000와트시)인 반면, 오늘날 최상의 리튬이온 배터리조차 킬로그램당 300와트시 정도를 제공할 뿐이다. 다시 말하면, 40배 이상의 차이가 난다. 누구나 인정하듯이 전동기는 가스터빈 엔진보다 대략 2배나 효율적인 에너지 전환기이다. 따라서 실질적인 에너지밀도 차이는 20배이다. 그러나 지난 30년 동안 배터리의 최대 에너지밀도는 3배 정도 증가했을 뿐이다. 2050년까지 다시 3배가 증가하더라도 배터리의 에너지밀도는 킬로그램당 3,000와트시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뉴욕에서 도쿄까지, 파리에서 싱가포르까지 비행하는 초대형 항공기에 설치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결국 지난 수십 년 동안 그랬듯이 앞으로도 등유를 연료로 사용하는 보잉과 에어버스를 타고 비행할 가능성이 크다.
3장에서 다시 살펴보겠지만, 현대 문명을 떠받치는 네 가지 중요한 물질을 생산하는 데 전기만으로 동력을 공급하기에 적합한 상업적 규모의 대안이 현재로서는 없다. 달리 말하면, 재생에너지로 발전한 전기를 충분히 확실하게 공급할 수 있더라도 강철과 암모니아 그리고 시멘트와 플라스틱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새로운 공정을 개발해야 한다는 뜻이다. (p.75-76)
자료를 면밀히 분석해보면 세계 식품 손실률이 의외로 높다. 그 주된 이유로는 생산량과 실질적인 필요량 사이의 격차가 손꼽힌다. 대다수가 정착해 살아가는 부유한 국가에서 성인에게 필요한 하루 열량은 2,000~2,400킬로칼로리에 지나지 않아, 실제로 공급되는 3,200~4,000킬로칼로리보다 훨씬 낮다. FAO에 따르면, 세계 전체로 볼 때 뿌리 작물과 열매 그리고 채소는 거의 절반, 어류는 약 3분의 1, 곡류는 30퍼센트, 씨앗에서 기름을 얻는 작물과 식용육·유제품은 5분의 1이 폐기된다. 영국의 비영리 환경 단체 ‘폐기물 및 자원 행동 프로그램(Waste and Resources Action Programme)’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각 가정이 먹을 수 없어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과일과 채소 껍질, 뼈 포함)는 폐기물 총량의 30퍼센트에 불과하다. 달리 말하면, 버려지는 음식물의 70퍼센트가 먹을 수 있음에도 잘못 조리하거나 너무 많이 준비한 까닭에 버려진다는 뜻이다. 복잡한 생산 과정을 개혁하는 것보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게 훨씬 더 쉬울 수 있다. 하지만 ‘낮게 달린 열매(low-hanging fruit)’는 쉽게 딸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이상하게도 수확하기가 어렵다.
생산-가공-유통-도매-소매-소비라는 길고도 복잡한 과정(밭과 헛간에서부터 식탁 접시에 올라올 때까지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줄이기는 정말 어렵다. 미국의 식품 수급표에 따르면, 개선을 요구하는 지속적인 호소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버려지는 음식물의 비율은 지난 40년 동안 변화가 없었다. 중국은 1980년대 초까지도 식량 공급이 불안정했지만 이제는 일인당 평균 공급량이 일본보다 높아지며 영양 공급도 개선되었다. 하지만 그에 따라 음식물 쓰레기 또한 많아졌다.
식품비를 인상하면 쓰레기가 줄어들겠지만, 이는 저소득 국가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합한 방법이 아니다. 저소득 국가에는 아직도 식량을 적정하게 공급받지 못하는 빈곤 가정이 많고, 식품비가 전체 가계 지출에서 여전히 큰 몫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반면 부유한 국가에서는 식품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해 인상할 여력이 상당히 있지만, 이러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p.128-130)
반세기 전, 생태학자 하워드 토머스 오덤은 에너지와 환경에 대해 체계적으로 분석한 책에서 “복잡한 시스템에 투입되는 에너지는 네트워크의 모든 부분에 간접적으로 되돌아간다. 현대 사회는 여기에 관련된 에너지론과 다양한 수단을 파악하지 못했다. (…) 산업화한 사회에서 우리가 먹는 감자는 더 이상 태양에너지만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이제 우리는 약간은 석유로 만들어진 감자를 먹는다”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런 실존적 의존성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 그러나 이제 이 책의 독자는 우리 식량이 무엇으로 만들어지는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 요컨대 우리가 먹는 식량은 석유뿐 아니라 석탄으로도 만들어진다. 물론 석탄은 농기계와 운송 도구 및 식품 가공 기계에 필요한 철을 제련하는 데 쓰이는 코크스의 생산에도 사용된다. 질소비료를 합성하는 원료이자 연료로 사용하는 천연가스, 또 작물을 가공하고 가축을 돌보며 식량과 사료를 저장하고 준비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화석연료의 연소로 만들어지는 전기도 식량 생산에서 빼놓을 수 없다.
현대 농업은 광합성의 효율을 개선한 덕분에 오랫동안 요구되던 노동량의 일부만으로도 더 나은 품종에 적절한 영양소와 물을 공급하고, 동일한 영양소를 놓고 경쟁하는 잡초를 제거하고, 해충으로부터 작물을 보호해 생장에 더 나은 조건을 제공함으로써 산출량을 지속적으로 늘려왔다. 그와 동시에 야생 수생종의 포획량도 어업의 범위와 집약도가 확대됨에 따라 꾸준히 늘어났다. 적절한 울타리와 고품질의 사료를 제공할 수 없었다면 양식업 또한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모든 중간재에는 상당한 양의 화석연료를―갈수록 더 많이―투입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현실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세계 식량 체계를 바꾸려 노력하더라도, 앞으로 수십 년 동안은 빵 덩어리로든 물고기로든 변형된 화석연료를 먹어야 할 것이다. (p.134-135)
실리콘으로 이루어진 얇은 웨이퍼(wafer, 마이크로칩이 각인되는 기판)는 전자 시대를 대표하는 물질이지만, 그것 없이도 수십억 인구가 풍요롭게 살 수 있다. 따라서 실리콘 웨이퍼는 현대 문명의 존재를 제약하는 물질이 아니다. 99.999999999퍼센트 순도의 큰 실리콘 크리스털을 만들어 웨이퍼로 잘라내는 과정은 복잡한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고 에너지 집약적이다. 보크사이트에서 알루미늄을 추출하는 과정보다 두 자릿수나 많은 일차에너지가 필요하고, 철을 제련해 강철을 만드는 과정보다 세 자릿수나 많은 일차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원자재는 넘쳐흐를 정도로 많다. 실리콘은 지구의 표층, 즉 지각에서 두 번째로 흔한 물질이다. 산소가 49퍼센트이고, 실리콘이 거의 28퍼센트이다. 전자급(electronic-grade) 실리콘의 연간 생산량은 다른 필수적인 물질에 비교하면 무척 적은 편이다. 웨이퍼의 최근 생산량은 1만 톤이었다.
물론 어떤 물질의 연간 소비량이 그 물질의 필요성을 나타내는 최상의 지표는 아니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로 전자 산업이 이루어낸 발전이 유익하고 커다란 변화를 이끌었지만, 현대 문명에 반드시 필요한 물질적 기반을 놓지는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중요성을 근거로 어떤 물질의 필요성에 대해 반박의 여지없게 순서를 매길 수는 없지만, 나는 필수성과 편재성 및 수요량을 고려해 설명 가능한 순서를 제시해보려 한다. 이렇게 결정한 순서에서 네 가지 물질이 최상위를 차지했다. 그 물질은 내가 현대 문명의 네 기둥이라 칭하는 시멘트, 강철, 플라스틱, 암모니아이다.
네 물질은 물리적으로나 화학적으로나 속성과 기능이 확연히 다르다. 그러나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네 물질은 현대사회의 기능에서 빼놓을 수 없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지금도 다른 기본적인 물질보다 많은 양이 필요하고, 계속 증가하는 추세이다. 2019년 세계는 약 45억 톤의 시멘트, 18억 톤의 강철, 3억 7,000만 톤의 플라스틱, 1억 5,000만 톤의 암모니아를 소비했다. 게다가 이것들은 다른 물질로 쉽게 대체하지도 못한다. 가까운 미래에는 물론이고 세계적인 규모로 대체하기는 더더욱 불가능하다. (p.140-141)
현재의 역동적이고 다원적인 현실에 대한 우리 이해가 완벽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믿는다면, 기후변화 과학을 기후변화 종교로 착각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실질적 조치를 취하기 위해 끝없이 새로운 모형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건물과 운송, 공업과 농업에서 에너지 사용을 줄일 기회는 어마어마하게 많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어떤 걱정과도 상관없이, 우리는 에너지를 절약하고 배출 가스를 줄이기 위한 대책을 수십 년 전부터 부분적으로라도 시작했어야 한다. 불필요한 에너지 사용을 피하거나 공기 오염과 수질 오염을 줄이고 더 편안한 삶을 제공하기 위한 탐구는 영원한 지상 과제이지, 재앙을 막기 위해 급작스럽게 취해야 할 필사적인 행동이 되면 안 된다.
우리가 마땅한 조치를 취하는 데 게을렀던 것은 사실이다. 일찌감치 조치를 취했더라면 기후변화의 영향을 제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조치가 장기적으로 이득을 가져다주고 더 편안한 삶을 보장하므로 지구온난화에 대한 걱정이 없던 때라도 우리는 적절한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는지 우리는 새로운 에너지 전환을 도입하고 촉진했다. 그러나 그 결과 화석 에너지의 소비가 증가하고, 덩달아 이산화탄소 배출도 늘었다. 이런 잘못된 관행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가 추운 나라들에서 시행하는 변명의 여지없이 부적절한 건축 법규와 SUV의 전 세계적 유행이다. (p.337-338)
사회의 진화는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행동,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궤적의 급작스러운 변동, 국가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받고, 유의미한 변화를 시행하려는 우리의 능력에도 영향을 받는다. 이런 현실은 본질적으로 복잡해서 만족스러운 수준까지 파악할 수 없는 생물권의 순환 과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숲이 탄소를 흡수하는 동시에 발생시키는 것처럼 자연 과정에는 모순되는 면이 적지 않아, 우리가 2030년이나 2050년에 화석연료 소비, 탈탄소화 속도, 환경 상황 등에서 어디쯤에 있을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특히 여전히 의심쩍은 부분은 중대한 문제에 실질적으로 대처하는 데 필요한 ‘집단 결의’이다. 환경문제에는 세계 모두의 집단 결의가 필요하다. 해결책, 조정 방향, 적응 방안은 이미 마련되어 있다. 부유한 국가들은 일인당 평균 에너지 사용을 큰 폭으로 줄일 수 있고, 그렇게 하더라도 삶의 질을 안락하게 유지할 수 있다. 게다가 삼중 유리부터 내구성이 더 뛰어난 자동차 설계까지 단순한 기술적 해결책이 널리 확산하면, 상당한 누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절반으로 줄이고 세계 육류 소비의 구성에 변화를 주면, 식량 공급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고도 탄소 배출을 감축할 수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미래의 저탄소 ‘혁명’을 지겹도록 떠벌리면서도 이에 대한 처방은 없고, 있더라도 우선순위에서 저 아래에 있다. 아직 가능하지도 않은 대규모 전기 저장, 비현실적인 대규모 탄소 포집과 영구적인 지하 저장에 의존하는 ‘혁명’을 노래할 뿐이다. 이런 과장된 예측에 새로운 것은 전혀 없다.
1991년 한 저명한 환경운동가가 “재미와 이익을 위해 지구온난화를 줄여라”라는 글을 발표했다. 그 약속이 현실과 조금이라도 비슷했더라면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온난화 재앙론자들의 점점 거세지는 번민에 직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우리는 한층 놀랍고 ‘획기적인’ 혁신과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해결책’을 약속받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효과적인 조치는 결코 마법적이지 않고 점진적이며 많은 비용을 각오해야 한다는 게 현실이다. 수천 년 동안 우리는 환경에 점점 더 큰 규모로 더욱 집중적인 변화를 가했고, 그런 변화를 통해 많은 이익과 혜택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생물권은 고통을 받았다. 이런 충격을 줄이는 방법은 많지만, 그 방법을 적절한 규모로 시행하기 위한 결의는 여전히 부족하다. (p.359-360)
전자화한 새로운 세계에서는 모든 게 훨씬 더 빨리 움직일 수 있을 것이란 결론을 귀가 따갑도록 듣지만, 이는 크게 잘못된 얘기이다. 이런 결론 뒤에는 범주 오류(서로 다른 범주에 속하는 것에만 해당하는 행동이나 특징을 같은 범주에서 생각하는 오류)가 있기 십상이다. 정보와 접속이 더 빨라지고, 새로운 개인 장치의 채택도 더 빨라지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실존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마이크로프로세서와 휴대폰이라는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충분한 물 공급을 확보하고, 작물을 충분히 재배 및 가공하고, 가축을 먹이며 도살하고, 엄청난 양의 일차에너지를 생산해 전환하고, 원자재를 채굴해 적절한 용도로 변형해야 한다. 그 규모는 수십억 명에 달하는 소비자의 수요에 맞출 수 있어야 하고, 기반시설은 대체 불가능한 것들을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일은 소셜 미디어의 프로필을 새로 작성하고, 더 값비싼 스마트폰을 구매하는 행위와는 확연히 다른 범주에 속한다.
게다가 이 새로운 발전을 가능하게 해주는 많은 기술은 거의 낯선 게 아니다. 최신형 스마트폰의 얇기와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에 많은 사람이 놀라지만, 그런 대규모 소유를 가능하게 해주는 많은 기본적인 공정이 무척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예컨대 초대형 슈퍼컴퓨터부터 초소형 휴대폰까지 현대의 모든 전자장치를 운영하는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비롯해 모든 마이크로프로세서의 기반은 무척 순수한 실리콘이다. 폴란드 화학자 얀 초크랄스키(1885~1953)가 단일한 실리콘 결정체 키우는 방법을 알아낸 건 1915년이었다. 그 뒤 다수의 트랜지스터가 실리콘에 집적되었고, 율리우스 에드가 릴리엔펠트(1882~1963)가 전계 효과 트랜지스터로 특허를 얻은 때는 1925년이었다. 또 앞에서 언급했듯 집적회로는 1958~1959년에 탄생했고, 마이크로프로세서는 1971년에 태어났다. (p.383-384)
코로나19가 전반적으로 부유한 국가, 특히 미국에 미친 영향에서, 우리가 앞다투어 칭찬하고 많은 비용을 쏟아부으며 미래를 만들어가던 시도들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가 잘 드러난다. 유인 우주 비행을 향한 새로운 단계, 특히 화성을 향한 공상과학적 임무와 목표가 누가 뭐래도 그런 시도들 중 맨 앞을 차지한다. 〈이코노미스트〉는 2020년 3월 12일 특별 기사로 개인 맞춤형 의료를 다루었다. 환자의 구체적 상태와 질병에 대한 반응을 고려해 진단과 치료를 개별적으로 맞춘다는 기사였다. 공교롭게도 바로 그때 코로나19가 유럽과 북아메리카를 휩쓸기 시작해 도시의 병원들은 산소 부족에 허덕이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또 더 빠른 연결과 접속에 집착하며 5G망의 장점을 끝없이 나열하기도 한다. 상투적으로 말하듯 유일하게 남은 세계 초강대국이 간호사와 의사에게 간단한 개인용 보호 장비, 예컨대 장갑과 마스크, 모자와 가운 같은 저차원적 물품조차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는데 그런 공상적 목표를 추구한다는 게 납득이 되는가?
그 결과 미국은 팬데믹이 창궐하는 중에 병원이 폐쇄되는 것만이라도 막기 위해 턱없이 부족한 양의 보호 장비를 공수해야 했고, 중국에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지불했다. 뛰어난 세계화 설계자들이 생존에 필요한 거의 모든 기본적인 물품의 생산을 중국에 몰아놓은 탓이었다. 매년 군사비로 5,000억 달러 이상(모든 잠재적 적국의 군사비를 합한 액수보다 많다)을 쓰는 국가이지만, 발생이 절대적으로 확실한 사태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기본적인 의료품도 충분히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국내 생산에 수억 달러만 투자했더라도 수조 달러로 추정되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p.387-388)
간혹 중대한 사건에서 우리가 최악의 결과를 피하는 데 성공했던 것은 통찰력 있게 미래를 내다보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효율적인 해결책을 찾아내기로 결정해 단호히 추진한 덕분이다. 효과적인 백신을 개발해 소아마비를 근절한 사례부터 더 믿음직한 비행기를 제작하는 동시에 더 나은 항공관제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상업용 비행의 위험을 낮춘 사례까지, 또 적절한 식품 가공에 냉장 기술과 개인위생 향상이 더해지며 식품 병원균 감염을 낮춘 사례부터 화학요법과 줄기세포 이식을 통해 소아 백혈병의 생존율을 높인 사례까지, 자랑스러운 사례를 얼마든지 나열할 수 있다. 물론 행운이 함께한 경우도 많았다. 예컨대 우리가 1950년대 이후로 실수나 사고로도 일어날 수 있는 핵 충돌을 수십 년 동안 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동 안전장치 때문뿐 아니라, 어느 쪽으로든 치달을 수 있다는 판단 덕분이기도 하다. 거듭 말하지만, 실패를 예방하는 우리 능력이 일괄적으로 나아졌다는 명백한 징후는 어디에도 없다. (p.392-393)
기후변화라는 난제를 상대하려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전 지구적 노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그 노력을 상당한 규모로 오랜 기간 지속해야 한다. 우리가 머잖아 효과적이고 필요한 규모로 탈탄소화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란 결론을 내리려면, 과거의 모든 증거를 뒤집어야 한다. 유엔이 기후 문제를 갖고 처음 개최한 회의는 1992년에 있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우리는 일련의 국제 모임을 열었고, 평가와 연구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거의 3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온실가스의 연간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구속력을 갖는 국제협약이 없고, 그런 협약이 체결되더라도 서둘러 채택할 가능성이 없다.
이런 노력이 효과를 거두려면 반드시 국제적 합의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200개 국가가 서명을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50개 정도의 작은 국가가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양은 전부 합해도 상위 5개국의 배출량을 계량화할 때 생기는 오류에조차 미치지 못한다. 실질적 진전이 이루어지려면, 지금 모든 배출의 80퍼센트를 쏟아내는 그 상위 5개국이 명확하고 구속력 있는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합의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한마음으로 행동을 시작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기억하겠지만, 많은 찬사를 받은 파리협정에도 상위 배출국에 요구하는 구체적 감축 목표가 없었다. 구속력 없는 약속은 어떤 것도 완화하지 못한다. 오히려 2050년쯤에는 배출량이 50퍼센트 더 늘어나지 않을까 두렵다!
게다가 실효성 있는 노력에는 많은 비용이 들겠지만, 온실가스 배출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크게 줄이는 결과를 얻어내려면 적어도 두 세대 동안 지속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과감한 감축도 수십 년 내에는 눈에 띄는 결과를 끌어내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세대 간 정의(intergenerational justice)라는 무척 까다로운 문제가 제기된다. 다시 말하면, 미래를 디스카운트하는 우리의 변하지 않는 성향이 여실히 드러난다. (p.395-396)
20대 여자 / 국승민, 김다은, 김은지, 정한울 / 시사IN북
이번 웹 조사에서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한다(표 1-1-32)’와 ‘자녀는 반드시 낳아야 한다(표 1-1-33)’라는 문장에 동의한 20대 여성의 비율이 각각 8.1%(전체 평균 36.9%)와 7.5%(전체 평균 43.5%)로 나타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두 문장에 동의한 비율이 한 자릿수에 머문 집단은 전체 연령대별·성별 집단 가운데 20대 여성이 유일했다. 2020년 KB금융지주가 발표한 〈1인 가구 보고서〉에서 “남자는 경제적 부담 때문에, 여자는 그냥 결혼을 안 한다고 답했다”라는 문구가 화제를 일으킨 바 있다. ‘그냥’이 함축한 수많은 맥락이 이번 〈시사IN〉의 웹 조사에 담겨 있다. ‘왜 결혼을 안 하느냐’고 물어서는 답을 찾기 힘들다. ‘이래서 결혼을 안 하는구나’로 질문을 바꿔야 한다는 뜻이다.
20대 여성은 사회문화적 이슈에 대해 다른 어느 집단보다 진보 성향의 답변을 내놓았다. 성장(19.9%)보다 복지(66.0%)가 우선이고(전체 평균은 성장 우선 47.0%, 복지 우선 44.2%), 경제성장(28.8%)보다는 환경보호(61.9%)가 먼저라고 답했다(전체 평균은 경제성장 47.2%, 환경보호 47.5%). 차별금지법을 찬성하고(67.5%), 더 나아가 동성결혼 법제화까지 지지했다(64.1%). 전체 평균에서는 차별금지법 찬성 56.6%, 동성결혼 법제화 찬성 30.3%였다.
그런데 20대만 달랐다. 20대 여성과 20대 남성 모두 전체 순위와 다른 세력을 1, 2위로 꼽았다. 20대 여성이 가장 선호하는 정치세력은 사회적 소수자가 겪는 차별을 금지하고 다양성을 우선시하는 세력(32.1%)이었다. 전체 연령대별·성별 집단 중 유일하게 법과 사회질서 확립을 우선시하는 세력에 1등을 내주지 않았다. 20대 남성은 지지 세력 순위 1위가 법과 사회질서를 우선시하는 세력(38.6%)이되, 2위로 정부 개입의 최소화를 우선시하는 세력(20.7%)을 꼽았다.
“정치세력을 도식화하는 다소 도전적이고 무리한 시도임에도 불구하고, 20대 여성과 남성에게 보이는 새로운 정치적 경향을 포착하기 위해 설계한 질문이었다. 20대 여성은 ‘사회적 소수자 차별 금지와 다양성’을, 20대 남성은 ‘정부 개입의 최소화’를 선호할 거라는 가설이 정확하게 맞아 적잖이 놀랐다. 한국 사회를 20년 넘게 설명한 진보/보수의 이념 지형에 새로운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단초다.” 데이터를 살펴본 국승민 교수의 말이다.
20대 여성의 표심은 부유 중이다. 투표할 의사는 높은데 누굴 찍을지는 정하지 못했다. 지난 10년 동안 20대의 투표율은 꾸준히 상승했다. 이 중에서도 2017년 19대 대통령 선거를 기점으로 20대 여성의 투표율은 20대 남성의 투표율을 훌쩍 뛰어넘었다(표 1-2-20).
혐오 표현을 연구해온 숙명여대 법학부 홍성수 교수는 혐오 표현과 ‘기분 나쁨’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GS25 포스터가 의도적으로 남성 혐오 표현을 담고 있었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기분이 나쁘다’ ‘의혹이 있다’가 아니라 “실제로 그 표현에 의해 불안과 위협을 느끼는, 자신이 배제되었다고 인식하게 되는 구체적 맥락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남초 사이트의 ‘총공(총공격을 뜻하는 온라인 은어)’이 전방위로 펼쳐졌던 한 달여간 언론도 중계 보도를 쏟아냈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은 2021년 5월 1일부터 6월 13일까지 ‘GS25’로 검색해서 나온 기사 중 해당 논란 관련 보도 336건을 추려 분석했다. 민언련은 “언론보도 양상이 온라인 커뮤니티와 다를 바 없었다. 커뮤니티에서 제기된 논란을 그대로 전달하거나 유사한 사례를 단순 언급한 보도가 전체의 70%를 넘었다”라고 비판했다. 특히 “보편적인 손가락 모양과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 상징의 유사성만을 근거로” 남성 혐오 논란이 펼쳐졌다며 언론의 역할을 따져 물었다. 실제로 많은 언론이 논란을 전달하기는 했으나 남초 사이트가 펼친 주장의 근거를 체크하지는 않았다.
온라인은 물론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성범죄에 대한 법률 규정들(예컨대 ‘무엇이 성범죄이고 어떤 경우에 성립되는가?’)을 확실하게 재규정하고 적절한 양형 기준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이를 위해서는 성범죄에 대한 인식부터 사회적으로 합의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시사IN〉 조사에서는 성범죄에 대한 인식이 성별에 따라 크게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남성 52.4%는 한국 여자들이 성범죄를 당할 위험을 ‘실제보다 과장한다’고 인식했다(여성은 17.7%). 인식 격차는 20대에서 가장 컸다. 20대 여성은 7.9%만이 한국 여자들이 성범죄 위험을 실제보다 과장한다고 답했으나, 20대 남성에서는 61.1%에 달했다(표 1-4-8). 전체 남성 평균보다도 높은 수치다.
그렇다면 성범죄 인식 항목 중 20대 남성들이 가장 높게 ‘불안하다’고 답한 것은 무엇일까? 20대 남성들은 ‘무고(사실이 아닌 일을 거짓으로 꾸미어 해당 기관에 고소하거나 고발하는 일)’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데에 가장 큰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표 1-4-9]에 따르면, 20대 남성 절반 이상이 의도와 상관없이 성범죄의 가해자로 지목될까 봐 불안하다(54.8%)고 응답했다. 한국 남성들이 잠재적 성범죄 가해자로 부당하게 몰리고 있다는 항목에도 20대 남성 73.6%가 그렇다고 답했다(표 1-4-10). 20대 여성은 22.7%만 이에 동의했다.
미국 여론조사에서 바이든과 트럼프 지지자를 가장 잘 구분할 수 있는 질문은 무엇일까? ‘오늘날 미국에서 흑인은 얼마나 많은 차별을 경험하고 있는가?’다. 흑인이 사회경제적 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믿을수록 바이든을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 그 반대의 경우는 트럼프 지지자이기 쉽다. 2020년 미국 대선 이후에 실시된 미국 선거 조사(American National Election Studies, ANES)에 따르면, ‘흑인이 전혀 혹은 거의 차별받지 않는다’고 응답한 유권자의 85.1%가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다. ‘흑인이 아주 많은 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응답한 유권자 중에서는 7.8%만이 트럼프를 지지했다. 인종차별의 현실을 인정하느냐 여부가 전혀 다른 정치관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남의 나라 이야기가 한국과 무슨 관련이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을 터이다. 그러나 한국의 유권자도 미국의 유권자와 유사하게 갈리기 시작했다는 징후가 포착된다. 차이가 있다면, 전체 유권자가 아닌 20대 유권자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점이다. 인종차별 대신 젠더차별에 대한 인식이 갈등의 전선이다.
20대 여성 부동층을 이해하기 위해 이번 〈시사IN〉-한국리서치 조사에서 정치, 정책, 젠더와 관련해 던진 질문에 대한 응답 패턴을, 대선에서 ‘여당 후보 지지’와 ‘야당 후보 지지’, ‘모르겠다’로 응답한 그룹으로 나누어 비교해보았다. 데이터 분석 결과를 보면서 놀라는 일이 끊이지 않았다. 부동층은 중도 성향이 강할 것이라는 생각을 완전히 깨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20대 여성 부동층의 경우, 다른 세대의 여당 후보 지지자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진보적이며,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태도는 여당 후보를 지지하는 20대 여성들보다 더 긍정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