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에서 / 김수련 / 글항아리
병원은 자기주장이 강한 간호사를 원하지 않는다.
민간이 주도하는 병원은 자본이 지배한다. 병원은 환자의 안전을 책임지지만, 돈을 벌어다주지 않는 간호사는 가능한 한 적게 고용한다. 또한 환자와 관련 없는 온갖 잡일을 모두 간호사에게 맡긴다. 한껏 착취한다. 샌드백으로 쓴다. 그들에게 ‘말하는’ 샌드백은 거추장스럽다. 직업과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간호사는 침묵을 강요당한다. 부당함은 삼켜야 한다.
사회는 제 목소리를 내는 간호사를 반기지 않는다. 드라마나 소설에 나오는 간호사들은 의사를 빛나게 하기 위해 실수를 연발하거나 의사를 짝사랑하거나 짧은 치마를 입고 환자 정보를 누설한다. 간호사가 실제로 수행하는 모든 가치 있는 일은 드라마에서 의사들이 수행한다. 간호사들은 그 이미지가 잘못됐다고 계속 말한다. 그런 그들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는다. 사회가 의사를 선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을 더 빛나게 하려면 간호사는 더 낮고 어두워져야 한다. (p.9-10)
나는 죽음이 만연한 곳에서 오랫동안 죽음을 꿈꿨고 지금도 종종 그런다. 매일 낭떠러지를 걸어다니면서 밑바닥에서 버둥거리는 사람들을 낚아올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나는 가끔 내 환자들이 맞는 죽음이 그립고 부러웠다. 질투가 나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죽음은 안락한 품이다. 그냥 끝이다. 좋아질 것도 없지만 더 힘들 일도 없고 슬프거나 혐오하거나 괴로워할 일도 없다. 어떤 노력은 죽음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다. 매일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용기를 내도 하루 치 살아갈 기력이 안 나오던 나 같은 사람에게 매일은 억겁같이 막막했고 그게 나를 짓눌러 자꾸 가라앉고 싶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나는 알았다. 현경이가 그물을 던졌구나. 이 애는 덫을 놓듯이 신중하게 다정했구나. 그 잠깐의 다정을 갚아야만 할 것 같아서 하루 더 살게 되는 거지. 내가 없으면 밤에 혼자 잠에서 깨어 마음에 스산한 더께를 얹을 누군가를 위해 하루 더 살도록. 그래, 그냥 사는 건 잘못 선 연대보증 같은 거다. 내 탓은 없지만 그렇다고 내 빚이 아닌 것도 아니지. 억울해도 어떡하겠어. 그러고 꾸역꾸역 사는 거지. 햇살 냄새 나는 다정함을 하루 쬐고 지옥에서 천 일을 갚아나가야 한대도, 설령 포크로 떠받고 포클레인으로 퍼주게 된대도. (p.64-65)
위태로운 날들을 견디게 해주는 것은 작고 예쁘고 소소한 것들이다. 그런 것을 나는 스스로에게 주지 않았다. 나는 그 시절 나를 괴롭히고 싶었다. 누가 뺨을 때려줬으면 했다. 다치고 싶었다. 교통사고가 나서 출근만 안 할 수 있다면 죽어도 상관없었다. 어떤 달콤한 것도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운이 좋았다. 죽고 싶은 날들에 한 번도 내 힘으로 견딘 적이 없다. 나는 그 시절 타인의 다정에 기대어 살았다. 말 한마디, 글 한 줄, 한순간의 달콤함에 기대어 숨 쉬었다. 그래서 나는 목숨을 빚졌다. 그런 것을 현경이가 나한테 주었다. 수없는 시도를 막은 가늘고 부드러운 손길 위에 서서 이 글을 쓴다. (p.66)
1인실 비용은 하루에 얼마가 든다. 병원에서 이런 유의 내용은 주로 우리가 설명했다. 사실상 우리가 하는 일 중 가장 많이 신경 쓰이고 손 가는 일이다. 직접 간호가 아니라 물건을 뭘 썼고 병원비가 얼마, 약제비가 얼마, 무균식염수가 충진된 시린지는 하루에 몇 개까지 급여 처리되는지, 그게 급여 처리되기 위해서 환자 상태가 어때야 하는지, 이런 내용을 외우고 맞게 입력하느라 머리가 셀 지경이다. 종종 몇 주 전에 사망해서 퇴원한 환자의 가족에게 전화해 비급여 처리된 처치 재료 하나가 정산되지 않았으니 결제해달라는 전화를 해야 한다. 그런 전화를 할 때는 미안해서 차라리 내가 내버리고 싶다. 어떤 사람은 비급여라는 설명을 듣지 못했다며 중환자실로 전화해 그 돈은 못 내겠다고 항의한다. 그런 일은 그 일을 잘못 처리한 간호사 본인이 아니라 그 듀티에 근무하던 운 나쁜 책임간호사가 뒤집어쓴다. 그래서 이런 일은 한 번에 제대로 처리해야 한다. (p.91)
지금이 지나가면 기회가 없을 거라는 감이 올 때가 있다. 그때는 빨리 움직여야 한다. 나는 그 감이 오면 일단 급한 일을 뺀 다른 일은 다 미루고 환자 옆에 비치된 전화기로 보호자에게 전화를 건다. “아버님, 지금 보호자분이랑 통화하실 건데 어떤 분이랑 하고 싶으세요?” 답은 부인일 때도 있고, 딸이나 아들일 때도 있다. 신호음이 가는 동안 빠르게 환자에게 을러댄다.
“전화 연결되면요, 사랑한다고 하셔요. 아셨죠? 꼭 사랑한다고 하세요.”
그러면 그 서툰 아버지들은 꼭 이런다.
“어…… 야, 밥 먹었냐?”
그러고는 한참 있다가 말한다. “응, 나는 괜찮다.” 이어서 몇 마디 하다가 끊는다. 그게 아버지의 마지막 목소리가 된다.
아니면 이런다.
“그 두 번째 서랍에 인감도장이랑 위임장 있는데 그거 가지고 은행 좀 갈 수 있겠냐?”
뭐 대략 이런 내용이다. 그게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이 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환자나 보호자가 겁먹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더라도, 윽박질러야 한다. 좀 급하게 한다. 영 못 미더우면 통화가 연결된 후 바꿔주기 직전까지 한다.
“사랑한다고 하세요. 아버님 지금 말씀하세요.”
우리네 그 세대 아버지들은 많이 무례하다. 대부분 서툴고 어떤 사람은 인내력이 없으며 어떤 사람은 숨 쉬듯이 모두를 깔본다. 그러나 그들도 그때가 되면 예외 없이 이 어린 여자가 맹렬히 윽박지르는 말에 따라준다. 오직 그때만큼은. (p.95-96)
화장실을 못 가고 소변을 계속 참아서, 물을 못 마셔서 방광염이, 식사를 못 해서 위염이, 십이지장 궤양이 생기고, 스트레스로 메니에르병에 걸려서, 환자를 들다가 허리 디스크가 터져서, 무거운 기계를 들어 옮기다 손목 관절이 망가져서 그만둔 동료들의 이름을 떠오르는 대로 열댓 명은 주워섬길 수 있다. 그들은 대부분 산재 처리도 받지 못했다. 우울증, 불면증 약을 먹는 사람들은 그냥 그걸 겉으로 말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점에서만 다를 뿐이다.
놀라울 것도 없이 우리 삶은 종종 비참하다. 사실은 자주, 우리 삶은 존엄하지 않다. 전신이 너덜해지도록 애쓰고 뛰고 서두르다 지친다. 우리가 이런 것을 참아내는 이유가 오직 돈벌이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보통은 그런 이유로 인간의 조건까지 고민하면서 남아 있지는 않는다. 사실 이런 걸 감당하고도 남을 이유가 될 만큼 급여를 많이 주지도 않는 것 같다. 다들 그런 일을 당하면서 일하고 사는 거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태반이라면 이 시스템은 정말이지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그토록 죽어라 일해서 우리에게 돌아오는 게 이런 것이라면, 어떻게 화가 안 날 수 있을까. 그러나 있는 힘을 다해 참는다. 환자가 도무지 사랑하기 힘든, 안쓰럽게 여기기 불가능한 사람이면 참기가 너무 어려워진다. 그래서 짜증이 새어나간 날이면 퇴근하고 집에 누워 내가 사람 새끼인지 금수인지 고민한다. 내가 다 죽어가는 암환자한테 짜증을 냈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리고 다음 날 출근해 더 힘껏 나를 착취한다. 더 공감하자. 힘든 사람들이야. 다정하게, 더 친절하게. 그러면 환자들 중 일부라고 하고 싶지만 사실은 태반이 더 많은 걸 요구한다. 이것도, 저것도, 그것도 해주세요. 그러면 어느 순간에는 지쳐서 또 짜증을 내고 또 집에 드러누워 반인반수의 고민을 한다. (p.145-147)
국가는 공공 병상을 확대해야 한다. 감염병이나 외상같이 돈벌이는 되지 않으나 필수적인 의료 영역은 민간이 유지하지 못한다. 이미 1차 팬데믹에서 우리 모두가 그것을 목격했다. 이제는 병상과 시설이 모자라 손쓰지 못하는 죽음이 생긴다면, 국가 책임이 된다. 지금 즉시 공공 병원을 확충하고,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국가는 간호 인력의 누수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환자와 가장 밀접한 곳에서 기민하게 움직여야 할 간호 인력이, 특히 경력자들이 매 순간 완전히 소진된 상태로 현장을 떠난다. 견딜 수 없이 힘들기 때문이다. 환자 대 간호사 비율 법제화, 신규 간호사 교육 제도 정립, 안전한 근무 환경 확보. 이 기본적인 요소는 수십 년간 일선 간호사들이 주장해왔던 것이다. 긴 시간 동안 국가는 이것을 무시해왔고, 노동 조건의 개선 없이 신규 간호사들만 양성했다. 이들은 고스란히 면허를 활용하지 않는 유휴 인력이 되었다. 이제 우리 곁에는 제대로 일할 수 있는 경력 간호사가 심각하게 모자라다. 여기서 파생되는 피해는 끔찍한 몰골이고, 그건 우리 모두의 몫이다. 이제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 지금 당장 해야 한다. (p.151-152)
병원 내의 간호 노동은 굉장히 많은 부분을 포괄합니다. 제가 일하는 중환자실에서만 해도, 환자의 돌봄과 관련된 간호 노동은 그저 일부일 뿐입니다. 각종 서류와 동의서 관리, 수가 산정, 약무국에서 해서 올려줬어야 했을 유해 약물을 분쇄하거나 수액을 만드는 일, 보호자와 의사의 면담 일정 조정, 보호자 응대, 물품과 기기 관리, 위생 관리 모두 간호사의 몫입니다. 이는 병원에서 보조 인력을 채용하는 데 인색하기 때문입니다. 원무과가 처리해야 할 서류와 동의서, 수가, 약사가 처리해야 할 일, 의사가 처리해야 할 일까지 모두 간호사가 떠맡습니다. 물자가 부족하면 그것도 간호사 인력으로 일단 때웁니다. 다른 국가에는 있는 LPN(Licensed Practical Nurse) 제도나 호흡기 전담, 순환기계 테크니션 같은 보조 인력들은 한국에 존재하지 않고, 그 때문에 간호사들은 기본적인 활력 징후의 확인부터 사람의 힘으로 환자를 들어 움직여야 하는 체위 변경, 그에 더해 에크모, 지속적신대체요법, 산소호흡기 같은 치료 기계들의 관리와 조절까지 모두 해야 합니다. (p.174)
‘태움 문화’로 일컬어지는 간호사들의 문제는 사실상 직장 내 괴롭힘입니다. 다만 그 수준이 심각하더라도 환자의 안전과 막중한 책임을 빌미로 피해자는 보호받기 어렵고 정신적으로 매우 중대한 죄책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또한 보수적인 병원 문화상 피해자가 문제를 인식하고 저항을 결심하더라도 실행에 옮기기는 어렵습니다. 가해자 또한 피해자를 괴롭히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급박한 병원 환경 속에서 어쩔 수 없이 가해를 하게 되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합니다. 이 모든 일은 대형 사립 병원들의 고용 부족과 간호사들의 비참한 처우에 대한 책임감 부족, 해결 의지의 부재가 가장 큰 원인입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의 궁극적인 가해자는 병원이라고 생각합니다. (p.185-186)
우리가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직접 보고 듣고 겪은바 우리 직업에 대한 인식은 그 수준에서 크게 바뀐 것 같지 않다. 보잘것없는, 옹졸함의 역사가 있는 직업. 비켜서 있는, 아무래도 절정에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어떤 대의나 거국적인 결정과도 관련 없고 그러리라 기대되지도 않는다. 어느 소설에서도 중요한 인물은 이 직업을 선택하지 않는다. 요즘 들어 몇몇 극의 살인마들이 이 직업을 갖는 경향이 있는데, 이 일을 하면서 사람 죽이러 다닐 기운도 있다는 점에서 범상한 인물들은 아니다.
누구도 그 서사를 궁금해하지 않고 쓰지 않아서 우리는 늘 가장 오래된 이미지로 가려져 있다. 현실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너스 케이프로, 하얀 스커트와 유리 주사기로, 촛불 든 여성과 무인 지대에 핀 장미 따위로. (p.197-198)
우리는 환자의 안전을 위해 볼모로 잡혔다. 하루에 2만 보를 족히 뛰어다니고도 시말서 같은 환자안전보고서를 써야 하는 것이 억울해서 이러는 게 아니다. 담당 간호사가 다른 병상에 있는 응급 환자를 도우러 뛰어간 사이 기도관이 발관된 환자가 방치된 것은 환자와 같은 방에 있었던 의사 탓은 조금도 없고, 오직 담당 간호사가 자리에 없었던 탓이라며 어깃장을 놓던 교수가 꼴도 보기 싫어서 이러는 게 아니다. 그냥 환자가 안전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들을 지킬 수 있기를 바라서 우리는 계속 말해왔다. 충원해달라. 간호사 대 환자 비율을 보장해달라. 신규 간호사들이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안전한 교육을 보장해달라. 그러나 이 말은 누구도 들어준 적이 없다. (p.207)
OECD 평균 간호사 대 환자 비율은 1인당 6~8명이다. 2016년 통계상 미국은 간호사 한 명이 5.3명의 환자를 보고, 한국의 종합병원은 16.3명, 일반 병원은 43.6명을 본다. 이게 가능한 숫자인가 싶겠지만 그렇게 한다. 사람 안 죽는 걸 감사히 여겨야 한다. 이나마 근근이 견뎌오는 것이 다 사람 죽을까봐 노심초사하며 죽도록 뛰어다니는 간호사들의 공이라 한다면 이건 제 얼굴에 금칠인가? 그러나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실은 지금까지 운이 좋았던 것이 결코 간호사를 ‘비용’ 취급하며 꾸준히 인력을 줄여온 병원 덕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의 간호사 인력 비중의 특징은 간호대학 졸업자 수와 간호조무사 수가 많다는 것, 임상 간호사 수가 현저히 적다는 것, 연령대가 어리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한국에서 20대 간호사가 36.5퍼센트로 뚜렷한 다수를 차지할 때, 호주, 캐나다, 프랑스, 미국 간호사의 50~60퍼센트는 35~50세 사이에 분포해 있다. 한국의 임상 간호 현장은 교육을 받고 입사한 젊은 간호사들이 고작 몇 달에서 몇 년을 견디고 아수라장을 피해 도망치는 소모전의 연속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간호대학 증설이다. 간호사가 부족하나 추가 고용을 보조하기 위해 비용을 보전해주지도 못하겠고, 법으로 추가 고용을 강제하지도 못하겠고, 이런 고강도 노동에 턱없는 저임금을 책정하는 병원들을 제재할 생각도 없으니 간호사를 더 양성해 메워보겠다는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수많은 산업 예비군을 양성했고, 병원들이 더 쉽게 콧대 높이며 어린 간호사들을 위협해 말 잘 듣고 대체 가능한 나사 하나로 만드는 데 큰 조력을 했다. ‘너 아니어도 간호사 많아.’ 이것이 지난 수십 년간 병원이 취해온 입장이고, 정부가 한 대응이다. (p.208-210)
사실상 정부가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별 게 없다. 정부가 간호사 고용을 직접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안 해서인지 못 해서인지는 모르나 정부는 지난 수십 년간 의료에서 손을 떼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 물론 국민건강보험으로 우리나라 의료가 최고라는 홍보는 열심히 했다. 제주 녹지병원이 생기면서 그것도 아니게 될 테지만, 지금까지는 모든 병원이 국민건강보험에 가입한 환자는 무조건 받아 치료해야만 하는 당연지정제 덕분에 의료보장성만은 높았다. 그러나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우리의 공공성은 비참할 정도로 낮다.
그동안 이어져온 정부 정책의 결과는 고작 5퍼센트 남짓에 불과한 공공 병원과 95퍼센트의 사립 병원이다. 이 공공 병원 비율은 자본주의 의료 체계로 유명한 미국조차 제치고 세계 최저 수준이다. 미국의 공공 병원은 전체의 약 25퍼센트다. OECD 평균은 73퍼센트다.
우리는 안전망을 잃었다. 이 말은, 공공 의료가 담당하는 중증 외상과 감염병, 그리고 노숙인, 새터민, 주민등록번호조차 말소된 사람들을 위한 의료, 말만 들어도 적자가 주렁주렁 달릴 것 같으나 반드시 필요한, 지금 눈에 띄지 않아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들을 국가가 축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는 뜻이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심각한 중증 외상,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집단 감염병, 누구나 떨어질 수 있는 삶의 밑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들을 위한 모든 것이 적자를 이유로 줄어만 갔다. (p.210-211)
공공의 역할은 감염 외에도 외상에서 현격히 드러난다. 외상 환자의 특징은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른다는 것이고, 외상센터에서는 응급 상황에 대비해 늘 인력과 자원을 예비해두어야 한다. 사립 병원에서는 아무리 세금으로 보전을 받아도 그 시간과 인력을 비급여 진료, 돈 되는 수술로 쉼 없이 돌려 벌 수 있는 액수가 훨씬 더 많은 것이다. 굳이 애써서 외상센터를 세울 리가 없다.
사립 병원들이 악마라는 얘기는 아니다. 거기서 일하는 의료진 개개인이 비급여 물품을 펑펑 쓰고 비급여 진료를 많이 하려고 애쓰는 것도 아니다. 사립 병원들은 제공하는 의료의 질이나 양적 측면에서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그 목적성에서 사립 의료기관은 공공과 같을 수 없다. 어쨌거나 이 병원들은 적자를 볼 수 없다. 돈을 벌어야 한다. 수익으로 자선을 할 수 있고 연구에 쓸 수도 있지만, 어쨌든 거액을 기부한 후원자한테 VIP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고 사업의 비전과 전망을 유지해야 한다. 결국 민간에서는 외상, 감염, 응급, 중환자, 돈 많이 들고 돈벌이 안 되는 대표적인 분야를 늘 최소화하려 한다. 한국처럼 공공 병상 비중이 아사 직전인 나라에서는 이 부분이 고스란히 공백이 되는 것이다. 이를 사립 병원이 담당하도록 비용을 보전해주려면 적자를 메우는 수준을 넘어 수익에 해당되는 돈을 국가에서 덤으로 줘야 한다. 고작 2퍼센트에 불과한 사립 병원에 코로나 환자 진료를 맡기기 위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던 영국을 돌이켜볼 때 95퍼센트에 달하는 사립 병상은 독과점에 가깝다. 여기에 돈을 부어야 하는 한국은 얼마나 많은 세금을 낭비해야 할까. 그 세금은 정책 입안자들이 내는 게 아니라 국민이 낸다.
차라리 이 부문을 공공에서 직접 운영하고 의료진을 국가에서 고용하는 게 적자를 덜 발생시키지 않을까?
국가 위기 사태에 가까웠던 감염병 상황에서도, 생목숨이 죽어나가는 외상에서도 국가는 무력했다. 하물며 그게 손에 잘 잡히지도 않는 환자 안전 문제라면, 겉으로는 썩 중요해 보이지도 않는 어린 간호사들이 누수되는 문제에 국가가 무슨 일이나 하려들었을까. (p.214-215)
의료는 시스템이다. 어떤 스타 플레이어, 가령 드라마에 나오는 천재 의사 한 명이 있다고 해서 환자가 벌떡 살아나는 것이 아니다. 팀워크와 인력, 트레이닝이 없는 의료진은 어떤 관록 있는 의사가 리더라고 해도 환자를 손쉽게 위험에 빠뜨린다.
결국 환자를 24시간 옆에서 돌보는 이는 간호사이고, 환자를 지켜주는 것은 간호사의 대처 능력, 모니터링 능력, 통합적 역량과 업무 연속성이다. 그러나 스타 플레이어 한 명의 이름은 쉽게 기억하지만 환자의 출혈을, 부정맥을, 심지어 심정지를 발생 즉시 잡아내 해결한 간호사의 이름을 누가 기억하겠는가. 민간 병원은 수익을 추구한다. 수요자, 국민이 기억하지 않는 이름들에게 민간 병원이 무언가를 스스로 주지는 않는다.
수요자가 아니라, 돈 내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인간으로서의 인간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곳, 인간을 보호하기 위한 복지를 만드는 곳은 결국 공공이고 국가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오랜 세월에 걸쳐 잃었다. 우리가 그걸 잃었다는 것은 뒤늦게 드러났다. (p.217-218)
‘계집애들끼리 서로 괴롭히다가 누구 죽었대.’
‘여자 군대라더라. 진짜 군대보다 더하다더라. 피 말리도록 괴롭힌다더라.’
이런 말을 간호사들이 하는 업무가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수없이 들었다. 대부분은 간호사가 하는 일이 그냥 상처에 거즈 붙이고 주사 놓는 것인 줄로 아는 분들이었다. 이들 중 일부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안다. 기사마다 자극적인 제목으로 대중을 끌어당기는 것처럼, 간호사들은 종종 이목을 끄는 용도로 쓰인다. 팬데믹 때 간호사에게 삼계탕 뼈를 발라달라고 요구했다던 환자가 그런 역할로 쓰였고, 많은 기자가 내게 그런 것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자신과 동떨어진 세계의 캣파이트(Catfight)를 둘러싼 구경꾼들의 저열하고 내밀한 기쁨을 모르지 않는다. 그게 대중의 길티 플레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나.
그러나 이것은 엄연한 직장 내 괴롭힘이다. 문제라면 회사, 즉 병원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것이고, 그것이 간호사들의 무슨 독특한 문화라도 되는 양 이름 붙이고 속성으로 규정해 버린 것이다. 이것을 문화와 속성으로 규정하면 거기 가려진 일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가해자가 비정상이고 그 집단이 비정상이라며 욕하고 끝내버리면 그만이다. 가해자를 과녁으로 삼으면 병원은 비용 들이지 않고 해결할 수 있다. (p.226-227)
간호사들이 파업을 하겠다며 들썩거렸던 적이 있다. 2021년이었고, 보건의료노동조합에 속한 130개 병원이 참여했다. 이 파업은 예고에 그쳤다.
목적은 임금 인상이 아니었다. 간호사들이 원했던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간호사들이 요구한 것은 인력 충원이었고, 공공 병상 확보였다. 환자 대 간호사 비율을 확충해달라. 그 요구를 피력하기 위해 욕먹을 각오를 하고 정부와 합의를 시도했지만 중도에 멈췄다. 정부가 제시한 것은 간호등급제를 변형해 적용하겠다는 것이었고, 그마저 얼마나 걸릴지, 유명무실한 간호등급제를 어떤 식으로 강화하겠다는 것인지는 불분명했다. 그런 허망한 약속으로도 파업은 무산되었다. 간호사들은 쉽게 물러난다. 단순히 협상에서만이 아니라 이 직업에서. 그러나 이 물러남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들이 무력하게 물러나서 환자들이 얼마나 위험해지고 누구나 그 환자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p.238-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