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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티 워크 / 이얼 프레스 / 한겨레출판

 

 이때는 나치 체제하에서 펼쳐지고 대량학살로 절정에 달했던 공포의 행렬을 설명하기 위한 수많은 이론이 나와 있었다. 여기에는 독일인 특유의 ‘독재적 성격’ 탓이라는 설명도 있었고, 아돌프 히틀러의 광신주의 탓이라는 설명도 있었다. 그러나 휴스는 다른 요인에 주목했다. 그 일에 관련된 자들은 광신자도 아니었고 딱히 독일에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히틀러 시대의 범죄자들은 그저 총통의 명령에 따라 잔악한 짓을 저지른 게 아니었다. 그들은 ‘선량한 사람들’의 ‘대리인’이었다. 프랑크푸르트의 건축가 같은 선량한 사람들은 나치의 유대인 박해에 대해 깊이 따져 묻지 않았다. 그들에겐 유대인 박해가 어떤 면에서는 만족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 ‘유대인 말살’ 등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표현하는 용어가 여럿 나와 있었으나 휴스는 보다 평범한 표현을 선택했다. 그는 유대인 학살을 ‘더티 워크’라 표현했다. ‘불결하고 불쾌하지만 점잖은 사회 구성원들이 아주 모를 수는 없는 일’이라는 뜻이다. 독일에서 ‘열등한 족속’을 제거하는 것은 나치에 찬동하지 않던 지식인마저 동조했다. 휴스는 ‘유대인 문제’에 관한 건축가의 생각에 대해 프랑크푸르트에서 다른 대화들을 나누며 결론을 내렸다. 휴스는 그 건축가를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자신을 그들(유대인)과 명확히 분리하고 그들을 문제라고 호명했다. 그런 그가 제 손으로는 하지 않을 더러운 일을 다른 사람에게 시키고는 또 그 일이 부끄럽다고 표현했다.” 이것이 더티 워크의 본질이다. 선량한 사람들은 비윤리적인 행위를 대리인에게 위임한 뒤 책임을 편리하게 회피한다. 더러운 일을 떠맡은 사람들은 무슨 불량배가 아니라 사회로부터 ‘무의식적 위임’을 받은 이들이다. (p.17-18)

 

 다른 종류의 더티 워커가 흔히 그렇듯 도축 노동자도 극한의 물리적 위험에 노출되곤 한다. 이 산업의 노동조건이 워낙 가혹하고 노동자의 힘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축 노동자는 물리적 위험만이 아니라 이 노동의 불쾌한 성격에서 비롯되는 또 다른 위험을 감당하고 있다. 사람들은 정신질환자를 대량감금하는 행위뿐 아니라 공장식 대량도축에 대해서도 불편함을 느끼고 심할 경우에는 반감과 수치심을 느낀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은 감금이나 도축이 직업인 사람에 대한 대중의 인식에 큰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결국에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자기 인식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사회학 명저 《계급의 숨겨진 상처(The Hidden Injuries of Class)》(1972)에서 리차드 세넷과 조너선 콥은 계급 분석의 초점을 노동자의 물질적 조건이 아니라 그 사람이 겪는 “도덕적 부담과 감정적인 어려움”에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티 워커가 지는 부담에는 낙인, 죄의식, 존엄성 상실, 자존감 저하 등이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도덕적 외상도 종종 발생한다(도덕적 외상은 군사 심리학에서 군인이 자기 정체성의 핵심 가치에 위배되는 명령을 수행한 뒤 겪는 고통을 설명하는 용어다). (p.23-24)

 

 일상의 대화에서 ‘더러운 일’은 자랑스러워할 수 없는 일 또는 불쾌한 일을 뜻한다. 이 책에서 ‘더티 워크’는 일상어보다 더 구체적인 뜻을 가진다. 첫째, 다른 인간에게 또는 인간이 아닌 동물과 환경에 상당한 피해를 입히는 노동으로, 이따금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둘째, ‘선량한 사람들’, 즉 점잖은 사회 구성원이 보기에 더럽고 비윤리적인 노동이다. 셋째, 그 일을 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에게 낮게 평가되거나 낙인찍혔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아니면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을 스스로 위배했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상처를 주는 노동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선량한 사람들’의 암묵적 동의에 기반한 노동으로, 그들은 사회질서 유지에 그 일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명시적으로는 그 일에 동의하지 않음으로써 만약의 경우에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이런 일이 가능하려면 그 더티 워크를 다른 사람에게 위임해야 하는데, 이는 다른 누군가가 매일같이 고역을 치르리라는 것을 그들이 알고 위임한다는 뜻이다. (p.29-30)

 

 그러나 엘리아스는 “문명화 과정”을 도덕적 진보와 동일시하지 않았다. 프로이트와 마찬가지로 그는 문명화란 사회적 통제가 강화되는 과정이며, 그 결과 부적절한 것으로 여겨지는 관행들이 더 은밀한 곳에서 수행되게 되었다고 보았다. 이론상 이는 불쾌한 관행이 더욱 만연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었다. 엘리아스는 썼다. “불쾌한 행위는 사회생활이라는 무대의 뒤편으로 옮겨졌다. (…) 우리가 문명화라 부르는 모든 과정의 특징이 바로 이 격리의 움직임, 혐오스러운 것을 ‘무대 뒤편’에 숨기는 일임을 우리는 앞으로 거듭 확인하게 될 것이다.”
 미국에서 더티 워크가 펼쳐지는 곳은 바로 ‘무대의 뒤편’이다. 가령 미국의 교도소와 정육공장은 빈민과 유색인 비율이 높은 고립된 지역에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외딴 세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미국의 ‘불가촉천민’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가 요구하고 암묵적으로 동의하지만 눈에 띄지 않게 처리되는, 도덕적으로 오염된 일을 이들이 도맡는다. 이 비가시성은 물리적 방벽(그 장소를 바깥으로부터 격리하는 울타리와 담장)을 통해 유지되고 법적 방벽(대중이 알 수 있는 범위를 제한하는 기밀 유지 조항)을 통해 강화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방벽은 우리 자신이 세우는 방벽일 것이다. 자신이 어떤 일을 용인하고 있는지 깨닫고 불편해하지 않게 막아주는 우리 머릿속의 여과기 말이다. (p.32-33)

 

 휴스의 글이 발표되고 지금까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미국인의 수동성은 더 심해졌다. 근래의 대통령 선거를 보면, 수천만 명의 유권자들이 앞선 세대가 투쟁과 죽음으로 얻어낸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다. 발전한 기술 덕분에 일반인들이 그 어느 때보다 쉽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된 한편, 뭔가 심란한 내용이 나오면 다른 링크를 클릭해서 눈길을 돌리기가 이전보다 쉬워졌다. 산만하고 주의력이 감소하는 요즘 세상에서 과연 누가 인내심을 가지고 자신도 어떤 식으로든 연루되었을지 모르는 문제에 관한 폭로를 살펴보려고 할까? 인터넷 서핑 중에 잠깐 양심의 동요를 느낀다 해도 이튿날 기억이나 할까? 연구에 따르면 최근 대학 졸업자들의 감정 이입 능력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 알고자 하는 의지와 함께,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는 의지까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p.34-35)

 

 해리엇은 이 아이들의 경험에서 자신의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가 많았다. 그리고 데이드 교도소의 환자들이 들려준 이야기들도 떠올렸다. 많은 재소자가 어릴 때부터 폭력에 시달렸다. 해리엇은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는 것을, 즉 폭력의 피해자가 폭력의 가해자로 성장하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사실에 충격을 받은 사람은 해리엇만이 아니었다. 2012년 사회학자 브루스 웨스턴의 연구팀은 매사추세츠주 교정시설 수감자 122명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중 절반이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구타당했다고 답변했다. 성폭행을 당한 사람도 많았다. 또한 무질서하고 위험한 동네에 살면서 총기 사고를 목격한 사람도 많았다. “대다수의 폭력범은 처음 범죄를 저지르기 한참 전부터 피해자다.” 웨스턴은 이렇게 요약한다. 과거에 피해자였던 수감자가 많다는 것은 그들이 그저 처벌의 대상이 아니라 “자비와 연민”의 대상임을 뜻하지만, 교도소에는 그런 정서가 거의 없다고 웨스턴은 말한다. 인터뷰에 참가한 수감자의 4분의 3이 교도관이나 다른 재소자의 폭력을 목격했다고 답변했던 것이다. (p.84)

 

 재소자를 학대하는 교도관은 에버렛 휴스가 1962년에 말한 바로 그 일, 즉 사회의 더티 워크를 떠맡은 사람이다. 휴스는 이렇게 썼다. “때때로 우리는 교도소나 구치소의 죄수들에게 잔혹 행위가 자행되고 있다는 풍문을 듣는다.” 그런 행동에 대해 교도관을 비난하고 싶은 충동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교도관은 사실 “우리의 대리인”일 뿐이다. 대다수의 국민이 느끼기에, 교도관이 집행하는 처벌은 사회의 ‘외집단’인 범죄자들이 “선량한 사람들로 구성된 내집단에서 떨어져나갔기 때문에 마땅히 받아야 하는 처벌”이다. 그 처벌이 “우리가 생각하고 싶어 하는 정도를 넘어설 때는 좀 나쁜 것이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양가적이다.”
 이어 휴스는 “미심쩍은 관행”에 가담한 뒤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자랑스러워하는 “하급 교도관”의 관점으로 그를 멸시하는 ‘윗사람들’과 ‘선량한 사람들’의 위선을 비웃는다. 이 교도관은 그들을 위선자로 여길 이유가 충분하다. “그는 자신을 고용한 사람의 바람, 즉 대중의 바람이 전혀 일관되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대중은 교도관이 지나치게 가혹할 때와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친절할 때도 비난한다. 또한 종종 그렇듯 교도관의 성격이 잔혹할 경우 그는 다른 사람들이 하고 싶어도 감히 하지 못하는 일을, 혹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위치에 있었다면 똑같이 했을 일을 자신이 한 것뿐이라고 정당화한다.” (p.90-91)

 

 스피나리스는 알코올중독자인 교도관, 결혼생활이 안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는 교도관, 자신이 공적인 일을 하는데도 고마워하는 이 없이 툭하면 멸시하는 것에 격분하는 교도관의 이야기를 들었다. 여과되지 않고 터져 나오는 이들의 고뇌는 그가 트라우마 피해자를 치료하던 때를 떠올리게 했다. 2012년 스피나리스는 전국의 교도관 3000여 명에게 설문지를 보내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유병률을 조사했다. 응답자의 34퍼센트가 관련 증상을 보고했으니, 이는 군대에 맞먹는 비율이다. 그러나 많은 교도관이 또 한 가지 문제로 고생하고 있었다. 이들의 거친 외면 안쪽에는 소외감과 수치심이 출렁이고 있었다. (p.113)

 

 이처럼 교도소의 더티 워커, 나아가 모든 더티 워커가 담당하는 또 하나의 필수 기능은, 그들로서는 결국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는 비인도적인 시스템에 대한 비난을 받아내는 것, 그럼으로써 그들보다 훨씬 더 힘센 사회적 행위자들이 관심의 초점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힘센 행위자가 누구인가 하면, 그들의 윗사람만이 아니라 국민의 포괄적인 동의하에 일하는 판사와 검사, 선출직 공무원이다. 데이드의 교도관은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교도소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회의 대리인이다. 특히 플로리다주의 교도소 시스템은 주지사가 공화당원일 때든 민주당원일 때든 관계없이 미국 전체 교도소 시스템보다도 빠른 속도로 확대되어왔다. (p.119-120)

 

 교도관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바비는 자부심을 느꼈고, 그 일을 계속하고 싶었다. 그러나 적은 임금과 만연한 부정부패에 그의 생각이 바뀌었다. 플로리다주의 ‘선량한 사람들’은 이 상황을 바꿀 의지가 전혀 없었다. 지역신문의 기사를 읽고 득달같이 달려와 샬럿의 교도관들이 매슈 워커를 죽였다고 비난한 사람들은 또 그만큼 빠른 속도로 교도소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잊을 거라고 바비는 예상했다. 그는 플로리다주 교도소의 환경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쓰레기 매립지에 대한 인식에 견주었다. “우리가 쓰레기를 내다 버리면 쓰레기가 어디론가 치워지잖아요. 우리는 그 쓰레기가 어디로 갈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생각할 때는 매립지가 다 차서 새 매립지를 살 돈을 낼 때뿐이죠.” 플로리다주의 주민 대다수는 주 교도국에 대해 바로 그렇게 생각한다고 바비는 말했다. 그때쯤 우리가 앉아 있던 식당이 해피아워로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와 골프와 야구 경기 중계를 틀어놓은 바에서 맥주와 마가리타를 마셨다. “신문에 기사가 나기 전까지는 아무도 교도소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요.” 바비는 이렇게 말하며 홈디포 모자의 챙을 힘껏 잡아당기고는 바에 앉은 손님들을 흘끗 둘러보았다. “그러다 언론이 뭐 하나 크게 터뜨리면 우리가 악인 무리가 된답니다.” (p.133-134)

 

 플로리다는 민영화가 아닌 다른 방법들로도 얼마든지 교도소의 보건비 지출을 줄일 수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애초에 교도소로 보내는 정신질환자의 수를 줄이는 것이었다. 이미 2008년에 일부 활동가와 판사가 소집한 특별 전문 위원회는 교정시설과 거리를 오가며 살아가는 수많은 정신질환자에게 구치소와 교도소는 “부적당하고 부당한 안전망”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정신질환에 대한 즉각적인 치료를 요하는 사람이 매년 12만 5000명씩 체포되어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대다수는 정신질환에서 직접적으로 비롯된 경범죄와 비교적 가벼운 중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이다.”
 특별 전문 위원회에 따르면, 이러한 현실은 비인도적이었으며 “무연고자·경찰 부상·정신질환자에 대한 경찰의 총격 증가”를 초래했다. 또한 비용이 몹시 많이 들었으며, 허술한 주정부의 정신보건 체제의 틈새로 추락하는 사람이 줄어들면 아낄 수 있었을 돈이 법정 업무 가중·교도소 인구 과밀 같은 고가의 ‘백엔드’ 서비스에 낭비되었다. 예를 들어 플로리다주는 정신질환자가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회복시키는 데에만 매년 2억 5000만 달러를 지출했다. 한편 중증 정신질환자 가운데 성인 2분의 1과 미성년자 3분의 1이 지역사회 안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을 길이 전혀 없었다. (p.160-161)

 

 윤리 위반이라는 위험은 당연히 군인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내가 데이드 교도소에서 인터뷰한 모든 상담사가 자신이 목격했으나 막을 수 없었던 끔찍한 일 때문에 내적 갈등을 겪고 있었다. 로비타 리처드슨은 재소자가 의자에 묶인 채 곤봉질당하는 모습을 보고도 개입하여 그를 돕지 않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게 되었다”고 했다. 해리엇 크르지코프스키는 ‘샤워기 치료’에 대해 알게 된 후 “난 왜 더 나서지 못했을까?”라고 자문했다. 그뿐 아니라 내가 만난 교도관 중에서도 여러 사람이 자신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다고 넌지시 언급했다. 가령 빌 커티스는 재소자를 바닥에 내던져 그의 머리뼈를 부술 뻔했다. 그러므로 도덕적 외상은 “근본까지 닿아 있는 도덕적 신념을 위배하는 행위를 스스로 행하거나 막지 못하거나 목격하는 일”과 관계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산업재해다. 더티 워크를 하는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이러한 산업재해를 당한다. (p.194-195)

 

 어느 날 저녁, 나는 필라델피아 보훈 의료 센터(요먼스가 이곳에서 일한다) 3층의 작은 예배당에서 열린 의식에 참석했다. 연단에 귀환병이 여러 명 앉아 있었다. 체격이 크지 않고 갈색 수염을 단정하게 기른 앤디라는 남자가 눈을 감은 채 두 손을 무릎 사이에 끼우고 있었다. 발언할 차례가 되었을 때, 그는 청중에게 자신이 폭력적인 가정에서 자랐다고 이야기했다. 형과 여동생이 학대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방비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군인이 되었고 이라크에서 첩보 요원으로 활동했다. 어느 날 밤 ‘순니 삼각지대’에 속하는 사마라시 근처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중 갑자기 어느 주택의 2층 창문에서 총성이 길게 울렸다. 앤디는 공습을 요청했다. 폭파당한 집에서 연기가 걷혔을 때, 그 안에 목표물은 보이지 않았다. “저는 남자 열아홉 명, 여자 여덟 명, 어린이 아홉 명의 시체를 봅니다.” 앤디는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제빵사들, 상인들, 형들, 여동생들입니다. 저는 거의 매일 이 기억을 재생합니다. 저는 구원을 바라면서, 우리 모두가 전쟁의 진정한 대가에 주춤하고 놀라기를 바라면서 여러분에게 이 현실을 고백합니다.”
 예배당이 조용한 가운데 앤디는 훌쩍이며 자리로 돌아갔다. 이윽고 요먼스와 함께 귀환병 주간 모임을 운영하는 유니테리언 유니버설리즘 목사인 크리스 앤털이 객석의 청중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화해의 메시지를 전달한 귀환병들 주위로 둥글게 모여달라고 청했다. 수십 명이 앞으로 나가 서로 팔짱을 꼈다. “우리가 당신을 위험한 곳으로 보냈습니다.” 앤털이 메시지를 말하면 귀환병을 에워싼 민간인들이 따라 말했다. “우리가 당신을 만행이 벌어질 수 있는 곳에 보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책임을 함께합니다. 당신이 본 모든 것에 대해, 당신이 한 모든 일에 대해, 당신이 하지 못한 모든 일에 대해 우리가 함께 책임집니다.” 그 후 앤털은 다시 한번 청중을 앞으로 불러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의식을 시작할 때 귀환병들이 은쟁반에 켜두었던 촛불을 들게 했다. 앤디의 쟁반에는 서른여섯 개의 촛불이 켜져 있었다. 그가 요청한 공습에서 살해당한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촛불이었다. (p.215-216)

 

 헤더의 신경을 건드린 것은 병사의 고통을 못 알아보는 시위대의 무지만이 아니었다. 헤더는 우월감을 내뿜는 듯한 그들의 모습이 거슬렸다. 이것은 사회계급적 차이에서 비롯된 인상이었다. 코드 핑크 시위대에는 생활비가 떨어지거나 빚을 질 걱정 없이 반전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교육받은 중산층 여성이 많다. 토비 블로메도 그중 한 사람이다. 반면 드론 부대에는 그런 사치스러운 일은 상상할 수도 없는, 헤더처럼 침체된 시골이나 척박한 소도시에서 자라 고등학교만 마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베트남전쟁 때 일부 귀환병이 징병을 연기할 수 있었던 유복한 집안의 대학생 자제들에게 낙인찍히는 기분을 느꼈던 것처럼, 헤더는 자기처럼 살지 않아도 되는 특권을 가진 이들이 자기를 이래저래 판단하는 것에 쓰라린 불쾌감을 느꼈다. “내가 장담하는데, 당신들 중에 내가 누구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아끼는 사람이 죽게 되는 이 뭣 같은 상황을 겪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는 코드 핑크 시위대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다. 헤더가 보기에, 그들은 군대 같은 위계 조직 안에서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도 무지했다. 그들이 구호를 외치며 설득하려는 하급 병사들은 드론 전투에 대해 발언할 권한이 거의 없다. “그들은 아무 영향력도 없는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공격하는 거예요. 그 기지에 있는 병사들은 드론 전투에 대해 어떻게 할 수 있는 영향력이 전혀 없어요.” 헤더가 격분하며 말했다. (p.230-231)

 

 여기서 샌델은 또다시 질문한다. “유복한 사람은 대리 복무자를 고용할 수 있었던 남북전쟁 시스템이 부당하다면, 모병제 역시 같은 이유에서 부당하지 않은가?” 모병제에서 군인이 되는 사람은 군역을 수행하는 대가로 여러 가지 물질적 혜택(입대 상여금, 교육 기회)을 보장받는데, 결국 그 돈은 시민이 공동으로 지불하는 세금이다. 이론상, 군 복무를 선택하는 사람은 자발적으로 그렇게 한다. 그런데 만약 군 복무 외에는 그런 혜택을 누릴 방법이 없어서 입대하는 사람이 불균형적일 정도로 많다면? 샌델은 이렇게 대답한다. “사회의 일부 구성원에게 다른 좋은 선택지가 없다면, 입대를 선택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경제적 곤경에 의해 징집되는 것일 수 있다. 이러한 경우 징병과 모병의 차이는 전자는 강제적이고 후자는 자발적이라는 것이 아니다. 징병과 모병은 서로 다른 종류의 강제를 구사할 뿐이다. 전자는 법이 강제하고, 후자는 경제적 곤경이 강제한다.”
 교육받을 기회와 일자리가 비교적 평등하게 주어지는 사회에서는 경제적 곤경이 누가 군인이 되는가를 강제로 결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그럭저럭 괜찮은 여러 일자리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서야 유급 복무라는 선택지가 그 사람의 제한된 선택지가 아니라 그 사람의 선호를 반영한다고 말할 수 있다.” 샌델은 주장한다. 이어 그는 한국전쟁 귀환병이자 연방 하원의원인 찰스 랭글이 이라크 전쟁에 징병제를 재도입하자고 주장한 신문 사설을 인용한다. 랭글에 따르면, 불균형하게 많은 저소득층과 소수인종이 입대 상여금과 교육 기회에 끌려 군인이 된다. 랭글에 따르면 뉴욕시의 “자원병 중 70퍼센트가 저소득층에 속하는 흑인 또는 라틴계였다.” (p.233-234)

 

 문제의 일자리가 미국 본토인에게 실제로 얼마나 매력적인지는 확실히 말하기 어렵다. 다만 어느 정도는 이주민 때문에 본토인에겐 매력이 떨어지는 일자리가 된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앨버트빌에서든 다른 어디에서든 닭고기 공장 일은 ‘이주민 노동’이 되었고, 그 결과 이 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노동자의 임금과 협상력에 이주노동자가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여 일의 위상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팻이 일하는 정육공장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 공장에는 노동조합이 있었지만 앨라배마주는 노동조합 의무 가입이 금지된 주이기에 신규 채용자는 노조에 가입하지 않아도 되었고 수많은 이주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하지 않았다. 그러자 한때 94퍼센트에 달했던 노조 가입률이 40퍼센트로 떨어졌다. 그와 함께 팻의 소득도 줄었다. (p.283)

 

 사회주의 신문에 연재되었다가 책으로 출간된 《정글》은 대중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죽은 쥐와 결핵에 걸린 소가 한데 갈려 아무것도 모르는 소비자에게 팔려나가는 장면이 많은 독자를 충격에 빠뜨렸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싱클레어를 백악관 오찬에 초대했고 (사회주의의 대의에 공감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정육산업이 흉악한 독점 체제가 되었다는 주장에 공감하여 곧 시카고에 조사관을 파견했다. 그 결과 같은 해 육류검사법과 무해식품의약품법이 제정되었다. 앞서 출간한 작품들은 평단 내에서도 상업적으로도 모두 실패했던 스물일곱 살의 젊은 작가 싱클레어는 이 열렬한 반응에 도취되었지만 이내 정신이 번쩍 들었다. 대중이 더러운 고기를 먹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순간 거대 정육회사들이 다시 예전처럼 무자비하게 노동자를 착취하리라는 그의 예상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정글》을 읽고 분개했던 사람들은 노동자가 혹사당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더러운 고기를 먹을 위험에 분개했던 것이라고 싱클레어는 유감스럽게 말했다. “나는 대중의 심장을 노렸으나 뜻하지 않게 대중의 위장을 강타했다.” (p.288-289)

 

 더티 워크를 떠맡을 이주민이 줄어든다면 정육공장의 도살장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2019년 8월의 미시시피주 모턴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시시피주의 닭고기 정육공장들에 일제 단속을 실시하여 600여 명의 이주민을 체포했다. 그 결과 모턴의 정육공장 등에 트럼프의 지지층인 백인 노동자계급을 위한 일자리가 생겨났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결국 이 일자리에 지원한 백인은 거의 없었다. 정육공장의 시급은 같은 지역의 패스트푸드점이나 소매점보다 몇 달러 많은 11.23달러였고, 여기에 끌린 지원자의 대다수는 아프리카계 주민이었다. 신입 직원들은 이 돈에 만족했다. 그러나 그에 뒤따르는 도덕적인 문제는 기껍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일제 단속의 인종차별적 성격에 대해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다. “그들은 마치 라틴계 사람들이 누굴 죽이려 한다는 듯이 달려들었습니다.” (p.315-316)

 

 “물리적 위험보다 더한 가장 끔찍한 위험은 감정이 다치는 거예요.” 어느 돼지고기 정육공장의 노동자가 게일 아이스니츠에게 한 말이다. “도살장에 온 돼지들이 나한테 다가와서 강아지처럼 코를 문대요. 2분 후에 내가 죽일 텐데.” 이 공장에는 그로 인한 고통을 누르려고 약물이나 알코올을 남용하는 사람이 많았다. “유일한 문제는, 그렇게 술로 감정을 억눌러봤자 깨고 나면 그대로라는 거죠.” 이 문장에서 나는 톰 베네즈를 비롯해 여러 교도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도축 노동자는 교도관과 비슷한 대응 기제에 의지하고 있다. 아이스니츠는 생계를 위해 동물을 죽이는 사람은 그 자신의 영혼에도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다고 쓴다. (p.328)

 

 이 대화만 놓고 보면, 동물을 죽이는 사람은 “고통에 심드렁한 태도”를 갖게 된다는 페타의 주장은 틀리지 않았다. 실제로 도축 노동은 잔혹성과 사디즘을 조장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잔혹성에 대한 책임은 어느 쪽이 더 무겁게 져야 할까? 동물을 기절시키고 죽이는 노동자인가(페타의 일부 회원은 도축 노동자를 중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니면, 그러한 대가에 대해 고민 한 번 하지 않고 고기를 먹는 소비자인가? 패키릿은 소고기 정육공장을 그만둔 후 한 친구에게 이 질문을 던졌다. “그 친구는 노동자의 책임이 더 크다고 열변을 토했다. 동물의 목숨을 빼앗는 물리적인 행동을 그들이 수행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패키릿은 반대 주장을 펼쳤다. “이 끔찍한 일을 다른 사람에게 위임한 채 먼 거리에서 이득을 보고, 그러면서 그에 대한 책임은 회피하는 사람들이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 이 사회에서 기회가 가장 적은 사람들이 떠맡는 도축 노동에 대해선 더더욱 그렇다.” (p.330)

 

 인체공학 규준이 그대로 남아 있었더라면 러프킨의 정육공장 노동자들은, 또한 플로르 마르티네스 등 브라이언의 정육공장 노동자들은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규준이 사라지지 않았더라면 도축 노동자는 신체적 부상에 덜 시달렸을지 모르고 감정적인 모욕도 덜 당했을지 모른다. 정계와 정부는 보건 및 안전 규준을 고의로 위반하는 회사를 더 강력하게 처벌한다거나 공장 가동 속도를 늦추는 등 다른 많은 방법을 통해서도 도축 노동자가 겪는 부상을 줄일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는 불변의 구조적 환경 때문이 아니라 그런 일을 막으려고 결집한 정치 세력들, 그리고 특정한 사상과 의제에 몰두한 시민들 때문이었다. 여기가 다른 나라였다면, 아니 그저 다른 시대이기만 했어도 단결한 노동자들이 공장의 가동 속도를 낮추라고 요구하고 노동환경을 개선하라고 요구했을 것이다. 미국 경제의 다른 많은 부문과 마찬가지로 정육 산업에서도 1970년대 이후 노동조합 세력이 급격히 축소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전미정육노동자조합은 전체 조합원을 위한 기본 협약을 협상할 수 있었던 반면, 지금은 노조가 남아 있는 공장에서도 노동자가 임금과 노동조건에 영향력을 거의 행사하지 못한다. 그중에서도 노동자의 힘이 유독 약한 곳이 바로 가금류 정육공장이다. 브라이언의 샌더슨 팜스 공장에는 노조가 있는데도 운영진이 노동자를 모욕적으로 취급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내가 인터뷰한 노동자 가운데 노조에 가입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p.342-343)

 

 이 대화를 보면 윤리적인 식생활을 추구하는 많은 이가 왜 노동자 복지보다도 식량 생산 체계 내의 동물 복지에 훨씬 더 민감한 모습을 보이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은 ‘방목’ ‘인도적 환경 인증’ 같은 라벨이 붙은 고기를 구입하는 데는 진심이지만, 그런 라벨에 노동자에 관한 정보는 나와 있지 않다. 이 대화는 윤리적 소비의 한계도 분명히 보여준다. 윤리적 소비는 정치의 문제를 개인의 자기만족감을 최우선시하는 시장 거래로 환원할 위험이 있다. 그렇게 될 때 개인은 자신의 건강에, 그리고 특정한 종류의 순수, 즉 항생제를 투여한 고기를 먹지 않는 순수한 상태, 식탁과 몸에서 가공식품을 추방한 순수한 상태에 관심을 쏟지, 적정 임금이나 노동자 혹사에 대해서는 무심한 경향이 있다. ‘좋은 먹거리’ 운동이 시장에서 상품을 선택하는 행위로 축소되면 식품업의 생산 환경 같은 구조적 문제는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밀려날 수 있다. 이 운동은 독선적이고 엘리트적이라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도시의 가난한 지역에는 풀 먹인 소, 유기농 닭을 파는 생산자 직판 시장이나 상점이 아예 없는 경우가 많고, 설령 있더라도 주민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가격표가 붙어 있다. 홀 푸즈 같은 슈퍼마켓에서 파는 유기농 고기는 월마트에서 파는 할인 패키지 상품보다 훨씬 비싸다. ‘팜 투 테이블’ 식당(여러 세대에 걸쳐 재배된 희귀한 채소부터 풀을 먹여 키운 양까지 모든 재료를 인근 지역에서 조달하는 지역식 식당)에서 한 끼를 먹으려면 평범한 동네 식당에서 먹을 때의 두세 배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패스트푸드점과는 비교할 것도 없다.
 가처분 소득이 많은 사람에겐 윤리적 소비가 쉬운 일이다.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에겐 그렇지 않다. 푸드 스탬프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에겐 더더욱 그렇지 않다. 소비에서 발생하는 윤리 격차는 계급 격차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KFC와 월마트에서 나쁜 고기를 소비할 때 부유한 사람들은 멋진 식당과 홀 푸즈 같은 상점에서 윤리적인 고기를 소비한다. 그런 소고기와 닭고기에 붙은 라벨은 소비자가 스스로에게서 순수함과 미덕을 느끼게 해준다. 삶의 다른 많은 영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미덕은 특권과 한 쌍을 이루어, 부유한 소비자는 공장식 축산에서 벌어지는 불순하고 더러운 관행에 가담하는 기분을 돈으로 떨쳐낼 수 있다. 불순하고 더럽게 생산되는 식품은 미덕, 윤리가 부족한 소비자의 몫이다. 누가 미덕이 부족한 소비자인가 하면, ‘해체 라인’에서 간을 걸고 내장을 뜯어내며 공장을 계속 가동하는 도축 노동자들이다. (p.358-359)

 

 1936년 잉글랜드 북부 요크셔주와 랭커셔주의 탄전을 방문한 조지 오웰은 땅 밑에서 자원을 캐는 사람들이 사회를 어떻게 떠받치고 있는지 생각했다. 그가 갱도로 내려가서 본 것, “열기, 소음, 혼란, 어둠, 더러운 공기, 무엇보다도 견딜 수 없이 비좁은 공간”은 한 편의 지옥도였다. 지옥을 가득 채운 광부들의 고된 노동은 사회에 필수적이었던 동시에 사회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오웰은 《위건 부두로 가는 길》(1937)에 이렇게 썼다. “서양 세계의 물질대사에서 광부는 땅을 경작하는 농부 다음으로 중요한 사람이다. 광부는 검댕 묻은 기둥으로서 검댕이 묻지 않은 거의 모든 것을 어깨로 떠받치고 있다.”
 오웰은 이어 이렇게 썼다. “우리가 하는 사실상 모든 일, 빙과를 먹는 것부터 대서양을 건너는 일까지, 빵을 굽는 일부터 소설을 쓰는 일까지 모든 일이 석탄 사용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먼지 가득한 좁은 터널 안에서 노동자들이 허리를 굽히고 석탄을 퍼서 컨베이어벨트에 올리는 그 모습을 볼 수만 있다면 “우월한 사람들이 우월함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오직 광부들이 분골쇄신 일하기 때문임을 똑똑히 알 수 있다. 당신과 나와 《타임스 문학 부록》 편집자와 유약한 시인들과 캔터베리 대주교와 《유아를 위한 마르크시즘》의 저자 동지 X까지, 우리 모두가 상대적으로 품위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정말이지 땅 밑에서 눈까지 시꺼메지고 목구멍에 석탄 먼지가 잔뜩 낀 채 강철 같은 팔과 배의 근육으로 삽을 꽂아대는 가난한 막장꾼들 덕분이다.” (p.365-366)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딥워터 호라이즌 노동자들에게 그 일자리는 “원래라면 누릴 수 없었을 삶을 누리는 길”이었다. 그들은 원래라면 누릴 수 없었을 특전과 혜택을 시추선에서 일함으로써 누릴 수 있었다. 그러니 석유산업의 ‘더러운 현실’을 알고도 모르는 척하며 특전을 챙기는 시추선 노동자가 환경주의자에게 조금의 연민도 사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천연자원보호회의는 화석연료산업이 수질을 오염시키고, 땅을 황폐하게 만들며, 미국 전체 배출량의 75퍼센트에 달하는 탄소를 배출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스티븐은 그런 보고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시추선 노동자가 더러운 현실에 연루되었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이 정작 자기 차에 기름을 넣을 때는 그들 자신이 더러운 현실에 가담하고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스티븐도 세라도 잘 알고 있었다. “우리의 일상이 그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걸 다들 잊으려고 하죠.” 스티븐이 말했다. 값싼 고기를 원하는 요구가 있기에 샌더슨 팜스와 타이슨 푸드가 존재하듯이, 값싼 기름을 원하는 미국인의 끝없는 요구가 있기에 석유산업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p.382-383)

 

 정치적으로 진보적이고 환경 의식이 높은 지역의 주민은 쉽게도 이런 계층을 내려다보는 동시에 자신이 그들에게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편리하게 잊는다. 딥워터 호라이즌 사고에 대한 국가위원회의 보고서는 이렇게 지적했다. “석유와 천연가스가 멕시코만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는 국민이 많지 않다. 많은 국민이 교통수단에 필수적인 에너지를 누리면서 그 직접적인 위험은 조금도 감수하지 않는다.” 이 말 그대로, 잘사는 캘리포니아주 사람들은 에너지산업의 직접적인 위험을 못사는 루이지애나주 사람들에게 떠넘겼고, 루이지애나주 사람들은 캘리포니아주 사람들을 대신해 석유화학공장과 해양 시추 사업을 운영하는 더러운 일을 맡았다. 알고 보면 루이지애나주 주민이라고 해서 늘 두 팔 벌려 석유산업을 환영한 것은 아니었다. 1930년대에 내포 지역의 어부와 사냥꾼은 ‘텍사스 잡놈들’이 석유를 뽑아낸답시고 그들의 생계 수단인 땅에 운하를 파고 소금 돔에 구멍을 뚫는 데 분개했다. “이건 우리를 침략한 거나 마찬가지예요.” 한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분개심 대신 실리주의가 들어섰다. 먼저 쉘이 유전을 운영하는 블랙 바이유(내포) 같은 지역의 주민들이, 이어 해양 시추 붐이 일면서는 해안의 소도시와 마을 주민들이 석유산업이 만들어내는 일자리를 환영했다. (p.386-387)

 

 이론상으로 퇴장 전략은 더럽거나 모욕적인 일을 하는 사람 모두에게 주어진 선택지다. 그러나 실제로는 교육 수준과 전문성이 높기에 다른 길을 갈 수 있는 사람들에게 훨씬 더 쉬운 선택지이며, 대다수의 더티 워커는 교육 수준이 낮고 전문성이 없어 퇴장하기가 어렵다. ‘시골 게토’의 고등학교 졸업자들은 애초에 다른 길이 없었기에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최후의 수단’인 교도관 일을 하는 것이다. 미등록 이주민은 애초에 다른 길이 없었기에 본토인은 꺼리는 도축 노동을 하는 것이다. (p.428-429)

 

 성공한 화이트칼라 전문직(투자 은행가를 비롯해 변호사, 로비스트, 테크 노동자)이 권력이 있다고 해서 도덕적 비난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권력이 있는 한 이 비난은 훨씬 덜 뼈아프고 훨씬 덜 파괴적이어서 그들의 소득에, 위상에, 존엄성과 자존감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한다. 금융 붕괴 이후에도 과거와 다름없이 고액의 상여금을 받은 은행가들은 더티 워커는 택할 수 없는 방법으로 낙인을 ‘관리’할 수 있었다. 그 한 방법은 자선단체에 돈을 기부하는 것이었는데, 이처럼 미덕을 내보이는 행위가 가난한 노동자에겐 애초에 불가능하다. 또한 설령 누군가 그들의 직업을 탐탁잖아하더라도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이 우월하고 특별하다는 태도로 타인의 비판을 훨씬 더 쉽게 무시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많은 투자 은행가가 자신이 얼룩지고 에누리당했다는 감정을 느끼기는커녕 금융업이 부당하게 규제당하고 비난받게 생겼다며 분개하고 억울해했다. 바로 이것이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이 말한 “능력주의의 오만”, 즉 일류 법학대학원, 경영대학원, 공학대학원에서 학위를 딴 엘리트 계층의 과도한 자기애다. 성공은 개인의 재능과 노력에 달려 있다고 전제하는 능력주의 사회는 선망받는 엘리트 교육기관에 입학하는 능력을 기준으로 사람을 각각의 소득계층과 각각의 직업 경로로 밀어 넣는다. 샌델이 지적한 대로 이 시스템은 일류대학 학위가 없고 근 몇십 년간 소득이 줄거나 정체되고만 있는 노동자계급의 존엄성과 자존감을 깎아내려왔다. 그와 동시에 초고학력으로 성공한 사회의 ‘승자들’에게는 빛나는 도덕적 자격을 쥐여주며 “성공을 오로지 저 자신이 노력한 결과요, 제 미덕의 척도로 여기라고, 그리고 불우한 사람을 깔보라고” 부추겨왔다. (p.438-440)

 

 수많은 인권 단체가 지적한 대로 글로벌 테크 공급 사슬은 전혀 깨끗하지 않다. 이 사슬의 한쪽 끝에는 베스트 바이, 애플 스토어에서 판매하는 전자 장비가 있다. 반대편 끝에는 현지의 영세 광부가 있다. 국제 앰네스티와 아프리카 자원 감시단이 공동으로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노트북과 휴대전화에(그리고 전기차에도) 쓰이는 충전용 이온 배터리의 핵심 원자재인 코발트는 전 세계 생산량의 절반 이상이 콩고민주공화국의 콜웨지에 있는 광산에서 생산된다. 이곳의 광부들은 극악한 환경에서 일한다. 하루에 열두 시간에서 열네 시간씩, 장갑도 마스크도 없이,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경금속 폐질환” 같은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유해 화학물질을 들이마시면서 일한다. 이들 중엔 아동도 많다. 극도로 가난한, 그래서 학교에도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이 이 일로 내몰린다. 좁은 가설 광산이 붕괴되어 사람이 죽는 일이 다반사다(이 위험한 환경은 조지 오웰이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 묘사한 탄광을 떠올리게 한다. 세계 자본주의의 물질대사는 석탄이 맡은 역할이 코발트로 바뀌긴 했으나 바뀌지 않은 것들이 분명 있다). 영세 광부가 원시적인 도구로 긁어내는 광물은 중국 기업 화유코발트의 자회사인 콩고 동팡 마이닝 인터내셔널 같은 회사가 사들인다. 그중 일부는 마이크로소프트, 삼성, 애플 같은 기업의 제품에 들어간다. (p.444-445)

 

 《베트남의 아킬레우스》에서 조너선 셰이는 도덕적 외상을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공유화하는 것이라고 썼다. 가령 귀환병에게는 그 사람의 경험을 대중과 공유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 기간에 의료 노동자는 도덕적 외상의 위험을 무릅쓰긴 했어도 자신의 경험을 대중과 공유할 수 있었고, 그들에게 부채감을 느낀 대중은 존경과 호기심의 마음으로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해리엇 같은 더러운 노동자는 그런 기회를 얻지 못했다. 해리엇은 자신의 경험을 사적으로 대면해야 했고 그로부터 펼쳐진 불안한 기억과 홀로 씨름해야 했다. 여기엔 공동체적 대면이 없었다. 필라델피아 보훈 의료 센터에서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귀환병이 전장에서 자신의 도덕적 신념을 위배한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들이 함께, 소리 높여 귀환병에게 전한 메시지는 우리가 마땅히 모든 더티 워커에게 전해야 할 바로 그 메시지다. “우리가 당신을 위험한 곳으로 보냈습니다. 우리가 당신을 만행이 벌어질 수 있는 곳에 보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책임을 함께합니다. 당신이 본 모든 것에 대해, 당신이 한 모든 일에 대해, 당신이 하지 못한 모든 일에 대해 우리가 함께 책임집니다.” (p.461-4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