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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세상을 이기는 수학의 힘 / 류쉐펑 / 미디어숲

 

 동물들이 무리를 지어 아름다운 광경을 만들어내는 것에 관한 연구는 1986년 컴퓨터 과학자 크레이그 레이놀즈에 의해서 대대적인 진전을 이뤘다. 그는 연구 초기에 컴퓨터로 새 무리의 비행 모습을 효과적으로 재현했다. 사실 이전에 프로그래머가 새 무리의 운동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프로그램에서 새들 각각의 운동 궤적을 규정해야 했다. 한마디로 말해 당시 프로그래머는 새 무리의 중심 지휘자이자 샐루스가 말한 ‘유령’인 셈이다. 하지만 레이놀즈는 일종의 ‘자기 조직화(Self-Organizing)’ 알고리즘으로 새 무리의 집단행동을 간단하게 재현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알고리즘에 따르면 무리에서 각각의 새들이 비행할 때 아래 세 가지 규칙만을 따르면 복잡한 집단행동이 이뤄질 수 있다.

  1. 자신 주변의 다른 구성원과 충돌을 피한다.
  2. 주변 구성원의 비행 방향과 같은 방향을 유지한다.
  3. 다른 새와 거리를 가깝게 유지해 떨어지지 않는다.

 이 세 가지 규칙은 아주 단순해서 새들의 지능 수준이 높지 않아도 지킬 수 있다. 비행할 때 새 무리에서 각각의 새들이 주변 정보와 세 가지 규칙에 따라 상응하는 행동을 취하면 각종 복잡한 집단행동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새 무리뿐만 아니라 바닷속에서 물고기들이 회오리 운동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습격당할 때 분수처럼 중간에서부터 흩어진 뒤 다시 모이는 모습을 모니터 스크린에서 모델의 매개변수에 근거해 똑같이 재현해 낼 수 있다. 이러한 개체 사이의 단순한 규칙으로 전체의 수준 높은 활동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학술계에서는 ‘창발(Emergence)’이라고 부른다.
 새 무리와 물고기 무리 외에도 개미에서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 개미는 지능이 매우 낮아 거의 본능적으로 반응하며 아주 단순한 일만 하지만 전체 개미의 행동은 아주 정교하고 복잡하다.
 우리는 ‘창발’에서 복잡한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개체들이 가진 몇 가지 단순한 규칙도 ‘희소’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p.92-93)

 

 심리학에서는 이와 유사한 ‘ABC 이론’이 있다. 미국 심리학자 알버트 엘리스가 제시한 감정 조절법으로, 여기서 A는 사건 발생(Activating Event), B는 신념(Belief), C는 결과(Consequence)를 뜻한다. ABC 이론은 사건 발생 A는 감정 유발과 결과 C의 간접적인 원인일 뿐이며, 결과 C의 직접적인 원인은 사건 발생 A에 대한 개인의 인식과 평가를 바탕으로 한 신념 B라는 것을 알려준다.
 예를 들어서 똑같이 실연당했더라도 누군가는 꼭 나쁜 일인 것은 아니니 괜찮다고 자신을 위로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너무 상심해서 자신은 평생 사랑을 이룰 수 없을 것이라고 비관한다. 또 예를 들어서 취업 면접을 망친 뒤 누군가는 이번 면접은 경험이었을 뿐이고 다음에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오랜 시간 열심히 준비했는데도 붙지 못했으니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멍청이로 생각할 것이라고 낙담한다. 사건 A가 발생한 것은 같지만 두 사람의 신념 B가 달라서 두 사람의 감정의 결과 C도 다른 것이다.
 ABC 이론에서 사건 발생 A는 신념 B를 야기하고 신념 B는 결과 C를 야기한다. 이런 관계에서는 신념 B만 파악하면 비교적 정확하게 결과 C를 추측할 수 있다. 반면 사건 발생 A가 무엇인지 아는 것은 결과 C의 발생 확률을 추측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수학적으로 보면 사건 발생 A와 결과 C는 신념 B에 관한 조건부 독립이다. (p.106-107)

 

 앞의 예에서 살펴보았듯이 성공하고 싶다면 좋은 양성 피드백 회로를 찾는 게 중요하다. 일단 좋은 양성 피드백 궤도에 진입하면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러니 진정한 고수란 좋은 양성 피드백을 활용해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막 회사에 입사한 직원이 상사가 준 임무를 성공적으로 처리했다면 상사는 직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것이다. 즉, 직원은 손쉽게 좋은 양성 피드백 궤도에 진입하게 된다. 업무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면 상사는 더 많은 기회를 주게 되고 경험을 쌓아 더욱 좋은 성과를 보이면 상사는 더욱더 많은 기회를 주게 된다.
 SNS에 글을 올려 글 쓰는 습관을 기르는 것도 좋은 양성 피드백이라 할 수 있다. SNS에 글을 공개한 뒤 ‘좋아요’나 격려 댓글로 글의 가치를 인정받으면 성취감이 생긴다. 이렇게 주변의 격려를 받아 계속 글을 쓰면 문장력이 향상되고 생각도 깊어지게 되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되고, 더 많은 긍정적인 평가를 얻게 되니 좋은 양성 피드백 궤도에 진입하게 된다. (p.136)

 

 일반적으로 주어진 임무를 완성하기 위한 설계는 두 가지 단계로 나뉜다.

 첫째: 적합한 기초를 설계하는 것.
 둘째: 기초에 근거해 알맞은 최적화를 진행하는 것.

 여기서 문제는 첫 번째 단계인 기초 설계는 소홀히 하고 두 번째 단계인 최적화 방안을 그럴싸하게 설계하는 데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첫 번째 단계인 기초 설계는 두 번째 단계인 최적화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 이유는 두 번째 단계인 상위 최적화가 가진 역할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기초 설계를 소홀히 한 채 상위 최적화에 공을 들이는 것은 모래성을 쌓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여기서 다룬 망치 설계, 전기밥솥 설계, 무인 발권기에서 신분증을 분실하지 않는 방법 등에는 모두 하나같이 기초 설계의 중요성이 담겨 있다.

 사실 일상에는 이런 예가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영화 촬영에서 좋은 극본은 기초 설계이고 연기자의 연기력, 촬영 기술, 장면과 도구 등은 상위 최적화이다. 그러니 극본의 완성도가 떨어지면 아무리 뛰어난 연기자를 캐스팅하고 휘황찬란한 특수효과를 사용한들 좋은 영화가 만들어질 수 없다.
 설계의 소재가 종종 성패를 결정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평범한 소재의 경우 아무리 최적화를 진행한들 사용 가능한 설계만 완성될 뿐이다. 가장 적합한 소재를 찾아야만 뛰어난 설계를 완성할 수 있다. (p.152)

 

 대학 교수가 되었을 때 나는 석사나 박사 과정에 있는 학생 대부분이 과학기술 논문을 읽으면서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매번 논문을 읽은 뒤 해당 논문의 관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을 자신의 연구에 활용할 줄은 몰랐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농담으로 다른 사람의 과학기술 논문을 읽는 데 한 가지 패러독스가 있다고 말한다. 만약 다른 사람의 논문 방향이 자신의 관점과 맞지 않는다면 해당 논문이 제시하는 해결 방법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대로 다른 사람의 논문 방향이 자신과 일치한다면 제시된 해결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자신만의 혁신적인 관점이 부족해진다. 따라서 많은 사람이 자신이 연구하는 문제와 상당히 비슷한 관점을 다룬 과학기술 논문을 선택한 뒤에 개선할 부분이 있는지를 살펴본다. 그런데 이런 방식을 사용한 논문은 혁신성이 매우 부족하다. 새로운 논문의 전체적인 관점이 기존 논문과 너무 유사하고 기존 논문의 내용을 수정, 보완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른 사람이 쓴 과학기술 논문을 읽는 것도 일종의 모방인 만큼 본질을 파악하고 제약을 제거하는 사고를 사용해 볼 수 있다.
 먼저 논문을 선택할 때 자신의 연구 방향과 완전히 일치하는 논문은 선택하지 말아야 한다. 다음으로 다른 사람의 논문을 읽을 때 과학기술의 세부 부분에 집중하면서 한편으로는 세부 부분 배후에 한 차원 더 높은 생각과 지혜가 담겨 있지는 않은지 고민해 본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아래서 위로 향하는 추상 과정이다. 논문에 담긴 생각과 지혜를 찾기만 한다면 해당 논문의 구체적인 시나리오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면 자신이 연구하는 문제의 특징에 근거해 파악한 생각과 지혜를 더욱 발전시켜 해당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것은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응용과정이다. (p.159-160)

 

 도박장과 인형 뽑기 기계의 예를 통해 직장과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첫째, 노력을 통해 자신의 기초 확률을 높여라. 이 점은 아주 명확하다. 기초 확률은 목표를 달성하는 핵심이자 결정적인 요소이다.
 둘째, 만약 어떤 일을 달성하려는데 기초 확률이 비교적 크다면 횟수를 늘리는 것은 가장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최대한 반복해서 횟수를 늘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1인 미디어를 운영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 수 있는 문장을 쓰고 싶어 한다고 해 보자. 우리는 폭발적으로 인기를 끄는 문장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설사 문장력이 아주 높다고 해도 반드시 인기 있는 문장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평균 100편의 문장을 썼을 때 인기를 끌 수 있는 문장 한 줄을 쓸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면 이미 상당히 높은 확률을 가지고 있으니 최대한 많이 써야 한다.
 그 이유는 뭘까? 평균 100편의 문장을 써서 인기를 끌 수 있는 문장을 만들 수 있는 확률은 실제로는 일어날 수 없는 빈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100편의 문장을 쓸 때마다 반드시 인기를 끌 수 있는 문장을 쓸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큰 수의 법칙에 근거해 보면 충분히 많은 문장을 쓴 상황에서 빈도는 비로소 확률과 같아진다. 그러니 2,000편의 문장을 썼다면 대략 그중에서 20편이 인기를 끌 수 있는 문장이라는 것이다. 100편의 문장을 썼는데 인기를 끄는 문장이 한 편도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낙심할 필요는 없다. 큰 수의 법칙에 근거해 보면 이건 정상적인 상황으로 인기를 끌 문장을 쓸 확률이 1%도 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계속 꾸준히 써서 수준이 기준에 도달한다면 큰 수의 법칙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p.168-169)

 

 최소제곱법이 전체의 오차를 최소화하게 하는 것은 앞에서 등장한 ‘양 끝을 잡고 중용을 실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양 끝을 잡고 중용을 실천하는 것’은 다양한 요구를 만났을 때 극단으로 향하지 말고 그 가운데를 파악해 바름을 지키고 여러 이익을 가늠해 다양한 요구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알려준다.
 만약 연립 방정식의 해가 없다면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
 첫 번째 선택은 일부 방정식을 완전히 만족시킬 수 있는 해를 찾는 것이다. 이 해는 일부 방정식을 완전히 만족시킬 수 있지만, 기타 방정식에서 방정식 좌우 양변의 오차가 비교적 크다.
 두 번째 선택은 모든 방정식의 평균 오차를 최소화하는 해를 찾는 것이다. 최소제곱법을 통해서 얻은 해는 모든 방정식을 만족시키지는 못하지만 모든 방정식의 좌우 양변의 오차가 너무 크지는 않다. 그러니 최소제곱법은 방정식의 해를 구할 때 ‘양 끝을 잡고 중용을 실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론상에서든 실천에서든 두 번째 선택으로 구한 해가 더 좋다.
 ‘일부 방정식에 대한 완벽한 해’와 ‘모든 방정식에 대한 불완전한 해’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사고방식을 대표한다. 우선 첫 번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편협’하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어떤 이치든 자신의 관점과 완벽하게 일치해야만 받아들인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옳다고 판단한 이치가 실제로는 그렇지 않더라도 신경 쓰지 않는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만 받아들이고 이와 충돌하는 관점은 무엇이든 문제가 있다고 단정 짓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완벽주의가 가진 문제점이다. 이것을 방정식으로 표현해 보면 연립 방정식 중 일부 방정식만 다루고 다른 방정식을 무시하거나 아예 삭제한 채 ‘연립 방정식에 유일한 해’가 있다는 신념을 갖는 것이다.
 반면 두 번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이 세계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사람마다 각자 다른 관점과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래서 일을 할 때 여러 방면을 참고해 균형을 유지하고 각종 방면의 이익을 고려해 조화를 이루려 하지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양 끝을 잡고 중용을 실천하는 것’이다. (p.182-183)

 

 과거 토론토 대학의 한 교수에게 논문을 쓰는 법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그 교수는 우리에게 논문을 쓰는 데 두 가지 모델이 있다고 말했다. 첫 번째 모델은 먼저 관점을 완벽하게 다듬은 뒤 실험을 통해 검증하고 실험을 완료한 뒤에는 모든 데이터를 기반으로 다시 쓰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모델은 초보적이지만 실행할 만한 관점이 있으면 일단 쓰기 시작하는 것이다. 쓸 때는 문장을 다듬지 말고 최대한 빠르게 초고를 완성한다. 그리고 다 쓴 초고를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줘서 의견을 들은 뒤 이를 근거로 관점을 발전시키고 실험을 통해 관점을 검증하며 문장을 수정한다. 이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해 문장을 다듬어 완성한다. 당시 교수는 우리에게 두 번째 모델로 논문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수가 말한 첫 번째 모델은 ‘모든 단계에서 완벽을 추구’하는 관점을 활용한 것으로 논문을 쓰는 과정을 세 단계로 나눠 볼 수 있다.

 첫 번째 단계, 관점을 완벽하게 다듬는다.
 두 번째 단계, 대량의 실험을 통해서 관점을 검증한다.
 세 번째 단계, 논문을 쓰기 시작한다.

 첫 번째 모델은 이전 단계를 완성하기 전에는 다음 단계로 진입할 수 없지만, 모든 단계가 설계에 따라 완벽하게 집행된다면 최종적으로 좋은 논문을 쓸 수 있다. 반면 두 번째 모델은 ‘반복 수정을 통해 완성도를 높이는’ 관점을 사용한 것으로 초보적인 관점에서부터 시작해 실험을 진행하고 논문 초고를 작성한 뒤 집필 상황과 실험 결과를 근거로 끊임없이 반복 수정해 논문을 완성한다. 나는 두 번째 모델로 논문을 써야 한다는 교수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연구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든 단계에서 완벽을 추구’하는 모델로 논문을 쓰면 효율이 굉장히 낮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그 이유는 먼저 머릿속에 있는 관점을 완벽하게 다듬기가 굉장히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학기술 논문의 관점은 시를 쓰는 것처럼 오랜 시간 다듬을 필요가 없다. 시는 오랜 시간 자신의 관점을 고민하고 다듬어서 완성도를 높이지만, 과학기술 논문은 실험 검증을 통해야만 자신의 관점이 좋은지 나쁜지를 알 수 있다. 연구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듯이 실험 결과는 문제를 발견하고 발전 방안을 찾을 수 있어 관점을 완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밖에도 논문을 쓰는 과정은 관점을 명확히 정리하고 완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단지 머릿속 생각으로만 얻은 방안은 신뢰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p.196-198)

 

 해석법, 경사법, 언덕 오르기, 담금질 기법 알고리즘을 살펴보았다.
 언덕 오르기에서 단계마다 이전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으려 한다면 국소 최적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이렇게 극대의 순간에 빠지는 문제를 해결하는 직접적인 방법은 무작위 도입이다. 즉, 일정한 확률에서 잠깐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담금질 기법 알고리즘은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확률에 대해 알려 준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처음 시작할 때는 해당 확률이 높을 수 있지만, 시간이 증가함에 따라서 서서히 낮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맨 처음 문제로 돌아가 보자. 젊었을 때 대도시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여러 직업을 시도해 봐야 하는 이유는 뭘까?
 그건 인생이 실제로는 최적해를 찾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완벽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해 자신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고,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위치에 이르는 것을 최후의 목표로 삼을 수 있다. 이 과정은 앞에서 다룬 경사법과 언덕 오르기에 담긴 사고와 일치한다.
 끊임없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인생에서 새로 내딛는 모든 걸음이 이전보다 더 좋기를 바란다. 예를 들어서 직장을 옮길 때 이전보다 더 높고 안정적인 수입을 요구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와 같은 선택은 아주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알고리즘은 우리에게 새로운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이전보다 더 좋은 상황을 요구한다면 국소 최적에 쉽게 빠지게 된다고 말한다. 즉, 월급이 더 높고 안정적인 직장을 선택하는 게 당장은 안정적일 수 있지만 엄청난 발전 잠재력을 가진 직장을 놓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이때 해결 방법은 무작위 도입이다. 일정한 확률로써 잠깐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면 국소 최적의 순간에 빠지는 것을 효과적으로 피할 수 있다. 이런 무작위성은 대도시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여러 직업을 시도하며 자신의 관심사를 찾고 잠재력을 발견하는 것이지 안정된 직장에서 평생을 쏟는 것이 아니다.

 담금질 기법 알고리즘은 또 우리에게 이런 무작위성이 나이가 증가함에 따라 서서히 낮아진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젊었을 때는 무작위성이 커서 외부를 충분히 탐색할 수 있다. 이에 자신이 잠깐 불완전해지는 것을 받아들여 국소 최적의 순간에 빠지는 것을 피하고 더 높은 정상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나이가 많아지고 자신에게 적합한 게 뭔지 알게 된 뒤에는 무작위성을 통제하고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곳에 터를 잡고 쉽게 바꾸려 하지 않는다. (p.221-222)

 

 홍콩에서 근무했을 때 우리팀의 지도 교수는 항상 우리와 대화를 나누기를 좋아했다. 주요 주제는 우리가 종사하는 분야에서 뛰어난 활약을 하는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하는지와 같은 것들이었다. 한번은 유명 회의나 학술지에 연구 결과를 매년 꾸준히 발표하는 해외 교수에 관해 이야기한 적 있다. 누군가가 다작을 할 수 있는 이유를 물었을 때 그 교수는 자신의 업무처리 방식을 다음과 같이 자세히 설명했다고 한다.
 외국에서는 매년 한 달 정도 휴가를 떠난다. 그래서 휴가를 가기 전에 교수는 그해 자신의 분야와 관련된 학술 논문을 전부 인쇄한 뒤 깊은 산 속에 있는 리조트에서 매일 인쇄해 간 논문을 읽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교수가 논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읽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읽는 논문이 다루는 문제를 파악하면 곧장 논문을 덮은 뒤 해당 문제를 고민했다. 그리고 하얀 종이에 자신만의 해결 방안과 과정을 적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답안과 논문에서 제시한 방안을 서로 비교해 가며 영감과 깨달음을 얻었다. 자신의 해결 방안이 해당 논문이 제시한 방안보다 좋으면 해당 부분을 정리해서 회의나 학술지에 발표했다.
 해당 교수가 학술 논문을 읽는 방식은 내 동료가 드라마를 보는 방식과 본질적으로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해당 교수 역시 다른 사람의 해결 방법을 보기 전 자신만의 방법을 고민한 만큼 ‘주동적 예측’을 할 줄 안다. 이처럼 자신이 생각해 낸 방법과 논문에서 제시한 방법을 서로 비교해 자신의 수준을 발전시키는 것을 ‘편차를 통한 학습’이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서 ‘주동적 예측+편차를 통한 학습’이 얼마나 효과적인 방식인지 알 수 있다. (p.227-228)

 

 “책을 빠른 속도로 읽고 싶다면 아주 많은 책을 읽어야 합니다. 아주 많은 책을 읽고 나면 손에 들린 책의 다음 페이지에 무슨 내용이 나올지 예측할 수 있습니다.”

 독서 경험이 아주 많아지면 주로 읽는 분야의 책은 읽을수록 속도가 빨라지게 된다. 이들은 한눈에 새로운 것을 발견해 핵심을 파악할 수 있으며 해당 책이 관련 영역에서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새로운 공헌을 하는지도 알 수 있다. 사실 이런 사고는 지도 학습의 ‘주동적 예측+편차를 통한 학습’에 부합한다. 독서 경험이 많은 사람의 책 읽는 방식을 자세히 분석해 본다면 이들의 책을 읽는 속도가 다음과 같은 동적 조정을 거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 이 문제는 나도 알고 있어. 분명 A 관점에서 분석하고 해결할 거야.’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작가가 A 관점에서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지 본다.
 ‘역시, 틀리지 않았어. A 관점에서 해결 방안을 다룰 거라는 내 예측이 맞았어. 좋아! 건너뛰고 다음 문제!’
 ‘이 문제는 자주 접하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해결 방안이 B일 것 같아.’
 ‘음, B 방안이 핵심 키워드가 아니었네. 여기서는 C 방안을 제시했는데,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야. 이 부분은 자세히 읽어 봐야겠다.’

 그러면 읽는 속도를 늦춰 내용을 자세히 살펴본다. 독서 경험이 많은 사람은 다양한 지식을 알고 있어 작가의 해결 방안을 정확하게 추측해낼 수 있고, 이에 책을 읽는 속도가 자연스레 점차 빨라지게 된다. 어떤 경우이든 책을 빠르게 읽는 사람은 지도 학습 방식을 선택해 주동적으로 예측하고 편차를 통해 학습한다. 자신의 예측이 맞으면 빠르게 넘어가고 틀리면 속도를 늦춰 해당 내용을 터득하는 등 예측 결과에 따라 속도를 조절하며 주동적인 학습을 하는 것이다. (p.230-231)

 

 

버블 경제학 / 로버트 쉴러 / 알에이치코리아

 

 많은 경제학자들과 경제 비평가들은 ‘사고의 전염’이 인간사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견해 문제에 있어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에 관한 지지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현상에서 알 수 있듯이, 지역 간 차이가 존재하는 것처럼 시대 간 차이도 존재한다. 가변적인 시대정신이 특정 지역, 특정 시대에 속한 사회 구성원들의 여론을 좌우한다. 어느 한 시기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두각을 나타냈다가도, 집단 사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줄어들면 이러한 시대정신이 바뀌게 된다. 이러한 시대정신의 성쇠를 관찰하기에 매우 좋은 곳이 바로 투기시장이다. (p.103-104)

 

 최근 투기적인 부동산 붐에서, 시장에 대한 낙관적인 시각이 분명 크게 눈에 띄었다. 칼 케이스와 나는 시장이 호황을 누리고 있었을 때인 2005년에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우리는 샌프란시스코 주택 구매자들에게 향후 10년 동안 예상 주택가격을 물었다. 중간 예상 가격은 연간 9퍼센트 상승이었고, 평균 예상 가격은 연간 14퍼센트 상승이었다. 응답자들 가운데 약 3분의 1이 큰 기대를 갖고 있었다. 심지어는 연간 50퍼센트 상승을 기대하는 이도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의 주택 구매자들은 대체 무엇을 근거로 그런 예상을 했던 것일까? 그들은 주택가격이 급등하는 현실을 보았고, 그러한 상승에 대한 다른 이들의 해석을 들었다. 우리는 다른 이들의 해석이나 기대가 전염되는 현실을 목격했던 것이다.
 부동산 붐 동안 어떤 일이 발생하면(예를 들어 사업 지역의 재개발 호재 등), 그중에서 중요한 부분이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려있는 시장에 의해, 그리고 시장에서 목격한 가격에 의해 각색될 뿐 아니라, 언론매체에 의해 부풀려진다.
 여기서 ‘부풀려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언론은 가격 움직임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가격이 상승 움직임을 보일 때, 언론은 ‘새로운 시대’에 대한 이야기들을 추가로 손질하여 호도한다. 여기서 순환 고리가 만들어진다. 즉, 가격 상승이 ‘새로운 시대’ 이야기에 대한 믿음을 강화시키고, 그러한 이야기들의 전염력이 더욱 강해져 가격 상승을 한층 부추김으로써 투기적 버블 시기에 ‘가격 상승-이야기-가격 상승’이라는 순환 고리가 형성된다.
 이러한 순환 고리는 ‘가격 상승-경제활동-가격 상승’이라는 양상도 띤다. 투기적 가격 상승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사람들 사이에 경제에 대한 낙관적인 시각이 확산되어 소비가 더욱 증가하고, 그 때문에 경제가 더욱 성장하고, 그 때문에 낙관적인 시각이 더욱 확산되고, 그 때문에 가격이 한층 상승하는 순환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보통 경제적 번영을 이루어냈다는 의식이 투기적 버블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경제의 기초여건이 좋아져서가 아니라 버블 그 자체가 그러한 의식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p.105-107)

 

 문제는 지나치게 낙관적인(혹은 비관적인) 시각이 팽배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경우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는 정보를 이성적으로 판단한다고 해도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수실 빅챈다니, 데이비드 허시라이퍼, 이보 웰치 같은 경제학자들의 표현을 빌리면, 투기적 버블은 ‘인포메이션 캐스케이드’에 의해 발생할 수 있다. 단순히 다른 사람들 모두가 틀릴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에, 특정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일반적인 정보를 신뢰하고 독자적으로 수집한 개별 정보를 무시할 때(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러한 정보 덕에 그들은 붐이나 여타 대중적인 믿음에 동조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포메이션 캐스케이드가 발생한다.
 이렇듯 독자적으로 수집한 정보를 무시하고 대신 일반적인 정보에 따라 행동할 경우 사람들은 대개 독자적으로 수집한 정보에 대해 함구하게 된다. 따라서 그들이 속한 집단은 그 정보를 이용할 수 없게 되고, 그 집단이 판단을 내리는 데 그 정보가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게 되어 궁극적으로 그 집단의 정보의 질이 점점 떨어지게 된다. (p.107-108)

 

 주식시장 붐은 경제에서의 자신의 역할에 대한 일반인들의 사고를 변화시켰다. 누구나 주식투자로 거액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이 확산되었다. 단순히 투자 전략과 관련된 사고만 바뀐 것이 아니라, 미국인들의 자아를 지탱하고 있는 자긍심 구조까지 변화시켰다. 즉, 오랫동안 국민 정서의 근간을 이루었던 프로테스탄트 직업윤리가 변화를 겪으면서, 미국인들은 단순히 열심히 일하기만 하는 사람들을 더 이상 존경하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진정으로 존경받으려면, 열심히 일할 뿐 아니라 현명한 투자자가 되어야 했다.
 버블의 가장 뿌리 깊은 원인이자 버블이 끝난 뒤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변화는, 바로 ‘우리 자신에 대한 사고의 변화’다. 조지 애커로프와 레이첼 크랜튼은,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타느냐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이느냐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을 경제이론가들이 당연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설득력 있게 설명했다. 투자자로서의 삶이 단순히 목표에 이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삶의 또 다른 목표가 되고 있는 것이다. (p.119-120)

 

 본래 뉴어버니즘 운동은, 소규모 지역 중심지를 건설하는 운동으로 흔히 인식되었다. 최근 들어 도시이론가들은 전적으로 새로운 대규모 도심 건설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어 크리스토퍼 레인버거는 걸어 다니기 편한 대규모 도심(일명 ‘리틀 맨해튼’)들이 필요하지만 아직 수요가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중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단순히 기존의 도심이 아니라, 효율적으로 설계된 도심이다. 많은 사람들이 복잡한 도시에 살고 싶어 한다. 그곳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활발한 활동이 삶의 자극제가 된다. 인간은 무리지어 사는 것을 선호하는 종족이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적이 드문 곳을 찾는 것은 몇 차례의 잘 짜인 휴가 계획으로 만족한다.
 사람들은 걸어 다니기 편한 도시에 사는 것을 좋아한다. 쾌적한 환경 속에서 흥미로운 군중들을 보며 즐겁게 걷다가 온갖 기회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즐거움이 넘치는 세계적인 도시들이 있다. 런던, 뉴욕, 파리, 도쿄 같은 도시들 말이다. 뉴어버니즘의 핵심은 새로운 대규모 도심을 건설하는 것이다. 이것은 실질적으로 충족 가능한 요구다. 다만 지속적인 협조와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p.149-150)

 

 정부가 부동산 신화의 정당함을 뒷받침해주고, 주택가격 붕괴를 막는 공공정책을 세워야 한다는 생각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물론 단기적으로 볼 때 주택가격 하락으로 경제가 붕괴될 수도 있고, 시스템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주택가격 하락은 분명 좋은 일이다.
 이러한 장·단기 역설은 비슷한 역설을 펼치는 케인스 경제이론을 연상시킨다. 즉, 갑작스런 저축률 상승이 경기 침체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단기적으로는 갑작스런 저축률 상승을 두려워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저축률 상승을 환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미래를 위해 투자할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기와 장기를 각각 고려해야 하고, 단기와 장기에 대응하는 정책을 각기 다르게 세워야 한다. (p.154-155)

 

 지금처럼 금융 시스템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보다 기본적인 사회계약(즉, 한 사회로서 우리는 주요 불행으로부터 모든 사람을 보호하고, 기존의 문제점들이 확산되는 것을 막고, 양식 있게 행동하겠다는 사회계약)에 즉각 의지해야 한다. 지금은 정치적 견해의 차이나 정책 차이를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러한 사회계약이 가장 값진 보호막이다. 왜냐하면 한 사회로서 우리는 일어날지도 모를 모든 우발적인 사건들에 대한 대비책을 세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p.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