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말의 힘 / 박상훈 / 후마니타스
그 가운데 막스 베버는 정치야말로 정치 나름의 고유한 실천 이성이 있고, 다른 사회 윤리가 대신할 수 없는 정치만의 특별한 도덕, 윤리, 규범이 있다는 것을 이론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정치는 전업 정치가가 해야 하며, 전업 정치가의 좋은 역할 없이는 정치도 민주주의도 제대로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치를 경제 엘리트나 법률 전문가, 행정 관료에게 맡기는 것을 베버만큼 비판적으로 본 사람도 없다.
민주주의에 대한 베버의 정의는 인상적이다. 그는 정치가가 정치를 통해 소득을 얻는 체제를 민주주의라고 정의했다. 정치 밖에서 경력을 쌓은 사람들이 잠깐 정치 안으로 들어와 정치를 부업이나 임시 봉사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정치를 본업이자 생업으로 삼는 선출직 공직자들이 ‘직업 정신’을 갖고 국가나 정부를 운영해야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정치가는 시민의 다른 얼굴 혹은 다른 이름이다. 민주주의에서라면 정치가는 시민적 사업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한마디로 말해 정치를 (군인도 관료도 전문가도 운동가도 아닌) 시민이 선출한 정치가가 해야 시민 주권도 살고 민주주의도 산다.
정치의 역할에 대한 경제사상가 칼 폴라니의 설명도 도움이 된다. 그에 따르면 경제나 법, 행정은 사회의 ‘부분 체제(partial regime)’이며, 그에 맞는 하위 원리를 갖는다. 다시 말해 그 분야에서만 적용 가능한 원리로 움직인다는 뜻이다. 정치는 다르다. 정치는 체제 전체의 관리를 목적으로 하는 인간 활동이다. 부분의 원리로 전체를 운영할 수 없듯이, 경제의 원리로 정치를 운영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법률가의 정신으로 정치를 해서도 안 된다. 상업 엘리트나 행정 관료가 정치를 하는 민주주의도 있을 수 없다.
정치만이 체제 전체의 운영을 감당할 수 있는 인간 활동이다. 그런 정치를 다른 부분 체제의 운영 원리로 대체할 수는 없다. 정치의 자율성은 정치의 본질이다. 그런 정치를 직업이자 소명으로 삼는 좋은 정치인의 역할 없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는 인간 사회는 없다. (p.20-22)
법정이 ‘과거에 행해진 일’을 다루는 데 반해 의회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다룬다.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진실 공방의 언어와 의회에서의 심의나 조정의 언어는 다르다. 이를 처음 주목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였다. 시민이나 시민 대표가 모여서 말하는 가운데 모두를 경청하게 하는 특별한 존재를 우리는 정치가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 사람들은 그런 정치가를 가리켜 ‘레토르(Rhetor)’ 혹은 ‘오레이터(Orator)’라고 불렀다. 두 말 모두 ‘공적 언어 사용에 솜씨를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로마나 그리스만이 아니었다. 어느 문명에서든 지도자로서 정치가란 한결같이 말이 좋은 사람을 의미했다. 결국 정치가란 말로 공적 행위를 이끄는 시민 대표라고 정의할 수 있는데, 그런 정치가의 말이 나쁘다면 세상이 어찌 되겠는가.
현대 의회정치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막스 베버는, 소명 있는 정치가는 ‘정당 지도자’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현대 의회는 과거의 민회처럼 민중 집회의 형식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본회의와 위원회 같은 제도화된 회의체로 움직인다. 이를 누가 주도하는가? 교섭단체로 불리는 복수의 정당이다. 이제 의회는 정당들이 공동 운영하는 회의체가 된 것이다.
우리 국회도 마찬가지다. 국회는 의원들의 교섭단체인 복수의 정당이 움직인다. 의장도, 부의장도, 위원회 위원장도 모두 교섭단체, 즉 원내 정당이 결정한다. 위원회 구성도, 국회 지원 기관의 장을 임명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노사가 교섭하듯, 국회는 정당을 대표하는 의원들 간의 교섭을 통해 조세와 재정, 입법과 감사, 갈등 조정과 사회 통합의 역할을 감당한다. 오래전 막스 베버가 강조했듯이, 이를 통해 “선동가이기만 한” 사람, 즉 공동체가 아니라 자신과 자신의 파당만을 위해 활동하는 “권력정치가”를 배제하는 곳이 국회다. 그런 의미에서 막스 베버는 의회를 가리켜 “정치 리더십의 훈련장”이라고 정의했다.
의회를 이끄는 정당 지도자라면 응당 공적 발언, 즉 연설의 힘을 발휘해야 하며, “말과 함께 글도 좋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사람 역시 베버였다. 정당의 정치인이나 정당 지도자 역시 언어 행위를 통해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집권당과 반대당으로 나뉘어 심의와 토론, 조정과 합의를 통해 적법한 결정을 이끄는 국회에서 언어 행위는 중요하다. 말을 가치 있게 만드는 사람은 정치가라 하고, 말로 주변을 어둡게 하고 세상을 분열시키는 사람은 정치의 파괴자라 불러 마땅하다. (p.23-25)
정치도 미학적 요소를 가져야 한다. 정치가 비록 해결할 수 없는 윤리적 딜레마 속에서 일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해도, 그렇기에 더더욱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한다. 인간 삶의 비극적 운명을 이해하면서도 공익적 열정을 잃지 않는 것, 정치가는 그런 특별함을 보일 때 빛이 난다. 수사학만큼 그런 정치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게 해주는 것도 없다.
우리는 모두 늙고 병들고 죽는다. 삶이 늘 좋은 것만으로 채워질 수도 없다. 마음은 지옥 같고, 기쁨보다는 슬픔이, 희열보다는 고통을 감내해야 할 때도 많다. ‘그래서’ 사는 게 의미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수많은 역설과 딜레마 속에서 놀라운 인간 정신이 발휘될 수 있고 그 때문에 특별한 인식을 얻게 될 수도 있으며 남다른 성취를 이룰 수도 있다. 이런 인간관에 기초할 때만 정치의 의미가 살아나고 수사학도 가치를 갖는다. 그러지 않고 완전한 삶을 꿈꾸게 되면 정치나 수사학은 당연히 열등해 보이기 마련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중요하게 평가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다. (p.41)
진실과 진리만을 말하면 될 뿐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면 이는 무책임하다. 누군가 목적의 순수함을 추구하면서 그에 적절한 수단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이 옳기 위해서만’ 행위를 할 뿐 독자나 청중에 대한 고려가 없는 사람일 것이다.
냉정하게 말해 수사학의 도움이 없다면 읽을 만한 책을 쓰기도, 경청하고 주목받을 만한 말을 하기도 어렵다. 수사학은 말과 글로 일하는 모든 이들의 본향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사학의 가치를, 설득하는 솜씨 그 자체에서 찾은 것은 아니다. 목적의 윤리성을 전제하지 않는 수사학을 옹호할 수는 없다. 다만 좋은 목적을 위해서라도 특정 상황에 맞게 설득의 수단을 찾아내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런 능력을 키우려고 노력하는 데 수사학의 가치가 있다. 말로 상황을 모면하거나 말로 편익을 추구하고 상대를 기만하는 것까지 수사학의 가치에 포함할 이유는 없다.
인간의 정치에는 도덕적 열정을 갖게 하는 힘이 있다. 정치철학자들은 그것을 공익에 대한 헌신이라고 정의한다. 그런 신념이나 대의가 없다면 정치는 정치가 아니다. 정치가도 존경을 받으려면 그에 합당한 소명 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런 소명 의식에 맞게 적합하고 적절한 말의 수단을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것, 수사학의 진정한 윤리성은 거기에 있다.
수사학이 가치를 가지려면 먼저 정치가는 정치가다워야 한다. ‘정치가다움’이 없다면 정치가의 말이 가치를 가질 수 없다. 대의나 소명감, 책임성을 갖지 않는 정치가라면 그에게는 수사학만이 아니라 정치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 된다. 중요한 것은 정치가다운 정치가가 그 과업을 좀 더 제대로 수행하는 데 필요한 수사학을 어떻게 익힐 것인가에 있다. (p.44-45)
예컨대 오바마 연설에서 자주 인용되는 미국 헌법의 첫 문장인 “We the people”은 “우리 인민은”으로 옮겼다. 연방헌법 제정을 통해 연방 정부가 만들어지기 이전 13개 주의 연합 체제에서 주권(sovereignty)은 각 주(states)에 있었다. 연합규약의 원문 제목에는 이를 “주들 사이의(between States) 연합”으로 분명히 표현한 바 있다. 따라서 연합규약에서 연방헌법으로의 전환은 곧 ‘우리 각 주는’에서 ‘우리 인민은’으로 주권자가 바뀐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이전까지 ‘미국의 국민’이란 없었고, 단지 각 주에 흩어져 살던 인민이 있었으며, 이제 이들이 연방헌법을 통해 하나의 국민이 되려는 결정을 한다는 뜻을 담기 때문이다. 하나의 통일된 국가가 되기 전, 즉 국민 형성(nation building) 이전 상태에서라면 국민이 아니라, 인민이라는 좀 더 넓은 개념이 필요할 때가 있음을 잘 보여 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주권자를 다양하게 호명하는 일에는 유익함이 있다. 모든 것이 국민적 차원의 의제로만 다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에 못지않게 계층 불평등이나 빈곤 문제와 같은, 민중적 차원의 의제에도 주목해야 한다. 공권력과 균형을 이룰 시민적 차원의 권리 요구나 시민 불복종의 의제도 있다. 남북한 전체의 인민, 나아가 인간적 차원의 의제에 대해서도 생각할 것이 많다.
이 모든 것을 국민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좁히는 대신, 다양한 주권자 개념의 공존을 도모하는 것이 지금 시대에 맞는 일이다. (p.73)
1964년 가을, 존슨 대통령은 좀 더 엄격한 투표권법안 제정을 시작했다. 1965년 연두 시정연설에서는 이 법안을 통과시켜 줄 것을 의회에 촉구했다. 같은 해 3월에는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가 앨라배마주 셀마에서 투표권법안의 통과를 요구하는 행진을 주도했다. 앨라배마 경찰은 시위대를 잔인하게 공격했고, 이 장면이 텔레비전으로 방송되면서 미국 사회가 분노했다. 행진을 돕고자 수만 명의 자원자들이 남부를 향해 떠났다. 이런 충돌과 위기의 순간인 1965년 3월 15일 저녁, 린든 존슨 대통령은 연설을 하기 위해 의회로 갔다.
사람들은 이 연설을 존슨 대통령 최고의 연설로 평가했다. 감동적이고 설득력 있는 연설인 동시에 대통령의 도덕적 권위를 사용한 완벽한 사례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를 위해 린든 존슨은 정치적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민주당은 남부의 지지를 잃을 수 있었으며, 그 결과 린든 존슨의 대통령직 재임이 어려워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그때 이후 남부는 오랜 민주당 지지 지역에서 이탈해 공화당의 지지 기반이 되었다. 텍사스 출신인 린든 존슨도 대통령 재선의 기회를 잃었다.
정치학자들은 정치가들이 재선이라는 목표를 위해서만 정책 수단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며, 대의를 위해 정치적 대가를 감수할 때도 있다는 주장을 할 때, 린든 존슨의 사례를 들곤 한다. (p.152-153)
많은 이들이 정치 언어는 세고 강해야 하는 것처럼 말한다. 그래서 그런지 정치 언어가 점점 더 공격적으로 변해 가고 있다. 정치 논쟁이 ‘수사하라!’, ‘처벌하라!’ 같은 공안 담론으로 채워지는 것은 문제다. 누군가를 향해 ‘반성하라!’, ‘사과하라!’라는 말로 그 내면을 무단으로 헤집고 들어가 ‘수치심을 부과하려는’ 언어 사용법도 좋게 볼 수 없다.
‘절대’ 용납하지 못한다거나 ‘끝까지’ 두고 보겠다는 식의 ‘극강의 용어’도 절제해야 할 일이다. ‘도덕적 규탄’과 ‘윤리적 심판’의 언어를, 강하고 센 부사나 형용사를 동원해 표현하는 것은 정치에 필요한 이성을 마비시킨다. 규탄과 심판의 언어가 더 나은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은, 불행하게도 없다.
정치 언어를 그런 식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좋게 느껴질 리가 없다. 진심이 아니라는 것쯤은 누구나 안다. 표현된 말에 비해 실제 행동과 실천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에 대한 말에는 관용이 없으나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관대한 경우도 많다. 그럴수록 정치에 대한 신뢰나 기대는 줄어든다.
정치가의 말은 정확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실성의 기반이 튼튼해야 한다. 논리적으로는 타당성의 근거가 확고해야 한다. 인과론도 없고, 비교 가능한 유형론도 없이 일방적인 주장으로 끝나는 정치 언어는 선동이다. 정확하고 타당하면 세고 강한 표현에 의존할 이유가 없다. 형용사·부사를 남발하지 않아야 말이 담백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 아름다운 말이 밋밋하고 유약하다는 생각은 편견이다.
정확한 표현, 타당한 주장, 아름다운 말보다 강한 것은 없다. 정치적 목적을 갖는 말이라 해도, 사실성이나 타당성의 기반이 튼튼해야 하고 그 표현은 아름다워야 한다. 세상을 만든 것도 말이었고 인간을 만든 것도 말이었다. 인간 사회의 변화와 개선을 생각한다면, 누구든 먼저 말로써 일해야 한다. 말로써 ‘변화되고 개선된 미래’를 설득력 있게 정의하는 것, 거기서부터 매사 좋은 일이 시작된다. (p.369-370)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 장하준 / 부키
경제학은 개인적이건 집단적이건 경제적 변수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 다시 말해 우리 자신에 대한 규정 자체를 변화시킨다.
정체성에 대한 영향은 2가지 방향에서 일어난다. 우선 경제학은 개념을 만들어 낸다. 예를 들어 각 경제학 이론은 서로 다른 특징을 인간성의 본질로 추정한다. 따라서 그 시대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경제학 이론은 동시대인들이 무엇을 가장 중요한 ‘인간의 본질’로 생각하는지에 영향을 준다. 인간은 이기적 존재라 추정하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이 지난 몇십 년 동안 세계를 주름잡으면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이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루저’라고 조롱당하거나 (이기적인) 저의를 품고 있다고 의심받는다. 행동주의나 제도주의 경제학 이론이 제일 주목받는 세상이었다면 인간이 더 복합적인 동기를 지닌 존재고, 이기적 동기는 그중 하나일 뿐이라는 믿음이 팽배했을 것이다. 이런 학파들의 시각을 따른다면 사회를 어떻게 설계하는지에 따라 여러 동기 중에 특정한 것을 장려할 수 있고, 심지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동기 자체를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경제학은 사람들이 무엇을 정상으로 보는지, 서로를 어떤 식으로 보는지, 그런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기 위해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에 영향을 준다.
경제학은 또 경제가 발달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며, 그에 따라 우리가 생활하고 일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고, 그 결과 우리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개발도상국이 공공 정책 개입을 통해 산업화를 촉진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아닌지에 대해 경제학 이론마다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한 나라의 산업화 정도는 다른 유형의 개인을 만들어낸다. 가령 더 산업화된 나라 사람들은 농업 사회 사람들에 비해 시간을 더 잘 지키는 경향이 있다. 그들이 하는 일이―그리고 거기에 따라 나머지 일상도―시계에 따라 조직되기 때문이다. 산업화가 진행되면 노조 운동도 촉진되는데 공장에서는 다수의 노동자가 한데 모여 일을 하고, 농장 같은 환경보다 다른 사람과의 협조가 훨씬 더 잘 이루어져야 작업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노조 운동은 결과적으로 평등주의적 정책을 추진하는 중도좌파 정당을 낳는데, 이런 정치 세력은 공장이 사라져도 약화는 될지언정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지난 몇십 년 사이 부자 나라들에서 목격된 현상이었다. (p.33-34)
노예가 된 아프리카인과 그들의 후손이 아니었으면 유럽의 자본주의 국가들은 자국의 공장과 은행을 운영하고 노동자를 먹여 살릴 금, 은, 목화, 설탕, 쪽빛 염료, 고무 등의 온갖 자원을 값싸게 얻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그들이 없었다면 미국은 현재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냥 수사학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미국의 플랜테이션에서 노예로 일하던 아프리카인이 목화와 담배를 생산하기 위해 채찍을 맞아 가며 일하고 고문당했던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작물들이 미국 경제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19세기 미국 수출에서 목화와 담배 두 작물이 차지한 양은 적게는 25퍼센트, 많게는 65퍼센트에 달한다. 최고점을 찍은 1830년대에는 목화 한 상품이 미국 수출의 58퍼센트를 점했다. 미국은 목화와 담배 수출로 벌어들인 돈이 아니었으면 당시 경제적으로 더 우월했던 유럽, 특히 영국에서 자국의 경제 발전에 필요한 기계와 기술을 수입할 자금이 없었을 것이고, 영국도 산업 혁명 기간 동안 방직공장을 돌릴 엄청난 양의 값싼 목화를 수입할 수 없었을 테니 상부상조를 한 셈이었다. (p.66-67)
그러나 자유 시장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자유는 매우 좁은 개념의 자유다. 첫째,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경제 영역 내의 자유로, 기업이 가장 높은 이윤을 낼 수 있는 것을 만들고 팔 수 있는 자유, 노동자가 직업을 고를 수 있는 자유,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살 수 있는 자유 등에 한정되어 있다. 정치적 자유나 사회적 자유 등의 다른 자유가 경제적 자유와 충돌을 일으키면 자유시장주의자들은 주저하지 않고 경제적 자유를 우선순위에 둔다. 밀턴 프리드먼과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가 살인을 일삼았던 칠레의 피노체트 독재 정권(1974~1990년)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던 것도 바로 이런 사상적 배경에서 나온 행동이다. 그들은 피노체트 정권 때 이른바 ‘시카고 보이스’라고 부르는 경제학자들의 도움으로 시행했던 자유 시장 정책이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의 ‘사회주의’ 정책으로부터 경제적 자유를 보호한다고 믿었다. (…)
거기에 더해 프리드먼이나 헤리티지 재단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자유는 좁디좁은 경제적 자유의 개념 중에서도 자산 소유자(지주와 자본가)가 가장 큰 이윤을 내는 방법으로 자신의 자산을 사용할 수 있는 자유다. 자산가의 자유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 다른 사람들의 경제적 자유―노동자들이 집단행동을 할 자유(예를 들어 파업), 실직한 노동자들이 새 직장을 구할 때 강력한 복지 국가의 보호를 받아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여유를 누릴 자유 등―는 잘해야 그냥 무시되고, 많은 경우에 반생산적이라는 이유로 비난을 면치 못한다. 최악의 경우 노예화된 아프리카인처럼 누군가가 ‘자산’으로 정의되면 그들의 비자유는 폭력, 심지어 전쟁을 불사하고라도 관철되어서 그들의 ‘소유주’의 자유로운 재산권 행사를 보호해야 한다. (p.74-75)
이처럼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부자 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더 열심히 일한다면 그들의 빈곤이 근면성 부족 때문일 수가 없다. 문제는 생산성이다. 이들이 부자 나라 국민보다 인생의 훨씬 더 긴 기간, 훨씬 더 오래 일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들만큼 많이 생산해 내지 못하는 것은 생산성이 그만큼 높지 않아서다.
그리고 이렇게 생산성이 낮은 것은 교육 수준, 건강 등 노동자 개인의 능력이나 조건과 크게 상관이 없다. 노동력의 질은 전문직이나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직종에서는 생산성의 차이를 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직종에서 가난한 나라 노동자와 부자 나라 노동자의 개인적인 생산성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 점은 가난한 나라에서 부자 나라로 이민 온 사람의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잘 될 것이다. 이민을 왔다고 갑자기 없던 기술이 생기거나 건강이 급격히 더 좋아지는 것이 아닌데 그렇다. 그들의 생산성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것은 더 양질의 사회 기반 시설(전기, 교통, 인터넷 등)과 더 잘 기능하는 사회적 체제(경제 정책, 법률 체계 등)를 기반으로 해서 더 잘 운영되는 생산 시설(공장, 사무실, 가게, 농장 등)에서 더 나은 테크놀로지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p.88-89)
개인의 비전으로 성공적인 기업을 일으킬 수 있다는 신화는 현재 경제학계의 담론을 장악하고 있는 자유 시장 경제학의 근간이 되고 있다. 자본주의 초기에는 어느 정도 가능했을 수도 있는 시나리오다. 생산 규모가 작고 테크놀로지가 단순한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환경에서는 뛰어난 개인 기업가가 큰 차이를 가져올 수도 있었다. 사실 그 시절에도 기업이 성공하려면 그냥 뛰어난 개인만으로는 부족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규모가 큰 생산, 복잡한 테크놀로지, 국제 규모의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19세기 말 이후의 환경에서 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집단적 노력―개인의 노력보다―이 필요하고, 거기에는 기업의 리더뿐 아니라 노동자, 엔지니어, 과학자, 전문 경영인, 정부의 정책 입안자, 그리고 심지어 소비자의 노력까지 모두 포함된다. (p.139-140)
이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그와 함께 등장한 자유 시장, 자유 무역 경제학 이데올로기가 힘을 얻으면서 ‘자유’는 우리가 사회와 경제를 생각하는 방법의 틀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개념이 되었다. ‘자유’라는 단어가 들어 있는 생각은 모두 좋은 것으로 간주된다―자유 무역, 자유 시장, 언론의 자유, 출판의 자유, 자유의 투사 등 모두. 그리고 이것들에 반하는 건 무엇이든 원시적이고 억압적이며 구시대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다양한 개념의 자유가 존재하는데, 그 모든 자유가 논란의 여지 없이 모든 사람에게 좋은 것인 양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자유 무역에서 ‘자유’라는 개념은 국경을 넘어 이루어지는 거래가 해당 정부의 규제(예를 들어 수입 금지 조치)나 세금(예를 들어 관세)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의미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바로 이 때문에 자유 무역 1기(19세기와 20세기 초)에 ‘자유’ 무역은 거의 전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나라들, 다시 말해 식민주의와 불평등 조약 등으로 자국의 미래를 결정할 권리를 박탈당한 나라들에서만 행해졌다. 국가들 사이에 형식적인 평등이 존재하는 상황인 현재의 자유 무역 2기에서조차 자유 무역은 모든 당사자에게 평등하게 혜택을 주지 못한다. 국제 무역의 규칙이 강한 나라들에 의해 그들의 이익을 보호하도록 만들어지고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p.175-176)
요즈음 복지 국가를 지지하는 사람은 곧잘 ‘사회주의자’라고 불린다. 그러나 비스마르크가 복지 국가를 도입한 건 그가 ‘사회주의자’여서가 아니었다. 그는 이름난 반사회주의자였다. 독일 사회민주당은 활동 자체를 금지당한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1878년부터 1888년 사이 비스마르크가 유지한 이른바 반사회주의자법 때문에 활동을 크게 제한당했다. 그러나 그는 노동자들을 인생의 큰 충격들(산업 재해, 질병, 노령, 실업 등)에서 보호하지 못하면 그들이 사회주의에 경도되리란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제는 많은 사람이 ‘사회주의적’이라고 여기는 복지 정책을 비스마르크가 도입한 것은 사회주의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바로 이런 이유로 많은 사회주의자들, 특히 독일의 사회주의자들은 처음에는 복지 국가에 반대했다. 그들은 복지 제도가 노동자들을 ‘매수해서’ 노동자들이 혁명을 통해 자본주의를 전복하고 사회주의 국가를 확립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좌파 내에서 개혁적 성향이 혁명적 성향을 압도하면서 좌파 성향을 지닌 정당들도 복지 국가를 받아들이게 되었고, 특히 대공황 이후 적극적으로 이 제도의 확장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 후 유럽에서는 심지어 중도우파 성향의 정당들마저 복지 국가의 필요성을 받아들인 경우가 많았다. 특히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국가들과 체제 경쟁을 벌이는 환경에서 일반 시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정치적 안정을 이루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p.226-227)
복지 국가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대비해 시민 모두가 공동 구매하는 사회 보장 상품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복지 국가가 소득의 하향 재분배 요소를 가지고 있을 수 있지만(세금 제도와 복지 제도가 어떤 식으로 고안되어 운용되는지에 따라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심지어 복지 제도의 핵심 역할조차 아니다.
복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점은 그 나라의 시민(그리고 장기 거주자) 모두가 동일한 보험 패키지를 대량 구매를 통해 싼 값에 구입한다는 사실이다. 이 부분을 가장 쉽게 이해하려면 바로 부자 나라 중 보편적 공공 의료 보험 제도가 없는 유일한 나라인 미국과 다른 부자 나라들의 의료 비용을 비교해 보면 된다.
GDP에 대한 비율로 볼 때 미국인은 비슷한 경제 수준의 다른 부자 나라 시민에 비해 적어도 40퍼센트 이상, 많으면 2.5배 정도를 의료비에 더 쓴다(미국은 GDP 대비 17퍼센트인 데 반해 아일랜드는 6.8퍼센트, 스위스는 12퍼센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인의 건강 지표는 선진국 중 최악이어서 다른 부자 나라들에 비해 미국에서는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비용이 훨씬 비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다양한 시각이 있을 수 있지만, 중요한 이유 중 한 가지는 미국의 의료 시스템이 조각조각 분산되어 있어서 의료 제도가 더 잘 통합되어 있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공동 구매를 통해 얻는 혜택을 보지 못한다는 점일 것이다. 예를 들어 국가 전체 시스템을 통한 ‘대량 구입’ 디스카운트를 받는 대신 모든 병원(또는 병원 그룹)은 개별적으로 약과 장비를 구입해야 하며, 의료 보험 회사들은 (이윤 추구 기업이므로 더 높은 보험료를 부과하는 데 더해) ‘규모의 경제’ 혜택을 볼 수 있는 통합된 시스템 대신 각각 자체 시스템을 운영하는 비용을 들여야 한다. ‘집단 구매를 통한 비용 절감’ 논리에 설득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루폰 같은 곳을 통해 공동 구매로 할인된 물건을 사 본 경험이 있다면 이미 복지 국가의 논리를 받아들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p.230-231)
돌봄 노동이 저평가되는 문제는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못 받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성에게 물질적인 불이익을 가져오기까지 한다. 여성은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부터 병들고 나이 든 가족과 친척을 돌보는 일에 이르기까지 돌봄 노동을 더 많이 감당하기 때문에 남성보다 보수를 받는 일을 할 시간이 줄어든다. 국민 기초 연금 수준을 넘어선 연금은 평생 받은 보수와 연동되기 때문에 다른 조건이 동일할 경우 여성은 남성보다 받을 수 있는 연금액이 적은 경우가 많다. 일부 유럽 국가에서 ‘돌봄 크레디트’ 정책을 써서 육아와 노인 돌봄에 들인 시간을 인정해 주는 정책을 쓰고 있지만 이는 매우 부분적인 해결책일 뿐이다. 그 결과 무보수 돌봄 노동에 시간을 많이 할애한 여성일수록 노년 빈곤에 시달릴 확률이 높아진다. (p.257)
미국 최대의 농산물 생산을 자랑하고, 미국 딸기 생산량의 80퍼센트가 나오는 캘리포니아주의 값싼 노동력 대부분은 멕시코에서 공급된다. 캘리포니아 농업 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70퍼센트가량이 멕시코에서 태어났고 그중 적어도 절반은 ‘등록 서류가 없는(undocumented)’ 사람, 다시 말해 불법 이민자다.
이 멕시코 이민 노동자들 사이에서 딸기는 ‘악마의 과일’이라는 뜻의 ‘라 프루타 델 디아블로(la fruta del diablo)’라고 불린다. 딸기 수확은 캘리포니아 농장 일 중에서 제일 임금이 낮고 제일 힘들어서 가장 피하고 싶은 노동이기 때문이다. 낮은 높이에 맺힌 열매를 따야 해서(딸기나무 높이는 10~12센티미터 정도고, 딸기를 심기 위해 흙을 돋아서 만든 두렁 높이도 20~30센티미터에 불과하다) 계속 허리를 굽히고 일해야 하는데 매일 이런 일을 10시간에서 12시간 동안 몇 주에 걸쳐 쉬지 않고 계속하고 나면 ‘엄청난 통증과 평생 가는 장애’가 생길 수 있다. 딸기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대부분은 낮은 임금과 혹독한 작업 환경에 시달린다. 불법 이민 노동자는 ‘합법’ 노동자가 받는 임금의 절반 정도밖에 받지 못하고, 많은 수가 학대에 가까운 처우를 받는다. 이들이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리란 걸 고용주들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p.306-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