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피정 / 노시내 / 마티
번역할 때나 글을 쓸 때 종종 음악을 듣는다. 클래식도 좋고, 대중음악도 좋고, 테크노 음악의 강한 비트도 의외로 집중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일할 때 틀어놓으면 안 되는 것이 하나 있으니, 가요다. 모국어 가사를 접하면 뇌가 조금 다른 식으로 반응한다. 한 단어 한 단어가 전부 인지되면서 연상 작용이 일어나고 어느새 딴생각을 하게 되니 일을 할 수가 없다. 적당히 거리감과 낯섦이 있어야 흘려버릴 수 있다. 모국어가 아닌 가사는 그렇게 흘려버리거나 머릿속 서랍에 대충 밀어 넣고 뿌옇고 흐릿하게 보관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모국어 가사는 그게 안 된다. 같은 맥락에서 모국어 가사가 일으키는 ‘딴생각’은 반복적인 집안일이나 운동의 고됨을 오히려 잊게 해주니 유용하다.
이제 ‘빵과 장미’, 거기에 음악까지 보태니 마음이 든든하다. 앞으로 사십 일을 잘 버틸 수 있을 것 같다는 안도와 위로감이 깃든다. (p.26-27)
스위스의 국민투표 제도는 본래의 취지 외에도 부수적으로 그런 효과를 발휘한다. 투표 결과가 기존 제도를 유지하는 쪽으로 나오더라도 스위스 정부는 국민이 해당 이슈를 왜 문제 삼는지 귀담아듣고 적정하게 반영하려고 노력한다. 1989년 냉전의 종식이 다가오던 무렵 국민투표에 부쳐진 스위스 군대 폐지 발안도 비슷한 사례다. 발안은 부결됐지만, 투표자의 3분의 1이 넘는 36퍼센트가 군대 폐지에 찬성했다는 점에 충격을 받은 군대와 정부는 자칫 다음번 국민투표에서 군대가 진짜로 폐지되는 사태를 피하고자 대대적인 군 제도 개혁에 착수했다. 복무 기간을 줄이고, 대체복무 제도를 도입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개혁의 의도대로 군대 폐지에 대한 국민의 의지는 궁극적으로 약화되었다.
다시 말해 스위스의 국민투표 제도는 국민의 주도로 제도를 바꾸는 것에만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정부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소통 수단으로서의 의의를 지닌다. 이를테면 군대가 폐지되는 사태 또는 공영방송 수신료가 폐지되는 사태를 맞기 싫으면 정신 차리고 개혁하라는 메시지가 국민투표를 통해 전달된다. 수신된 메시지는 개혁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런 소통을 통해서 사회가 중도를 향해 통합되는 효과가 생긴다. 극심한 사회분열이 사전에 예방된다. (p.46)
미국인들은 왜 큰 비용을 지불하고 범죄, 총기, 공포와 일상을 함께 살아가는 선택을 하는지, 나는 지금도 종종 혼란스럽다. 미국에 범죄가 많은 주요 요인 중 하나는 극심한 소득 불평등이다. 미국에선 1980년대 이후 40여 년 동안 상위 1퍼센트의 연 소득은 두 배로 증가한 반면, 같은 기간 하위 50퍼센트의 소득은 늘어나지 않았다. 2021년 미국 상위 1퍼센트가 나라 전체 부의 3분의 1을 차지했으나, 하위 50퍼센트의 부 점유율은 2.6퍼센트에 불과했다. OECD 국가 중에 빈부 차가 가장 극심하다. 조세 제도는 부자와 기업에 유리하게 운영됐고, 최저임금제와 노조는 약화됐으며, 교육 접근권도 불평등해져 격차가 빠른 속도로 확대됐다. 열심히 일해도 소득이 최저 생계비에 미달하고, 빈곤으로 삶이 막막해지면 때로는 절박한 선택을 하기도 한다. 갱에 입단하면 갱단이 생계를 해결해주고 유대감과 소속감까지 제공해주니 유혹을 느낀다. 미국 같은 돈 많은 나라가 극심한 빈부 격차를 왜 못 줄이느냐는 의문이 들지만, 그게 쉽지 않다. 불평등을 해소하려면 정부가 조세, 복지, 교육, 사회, 금융정책 등에 다각적으로 개입해야 하는데 미국인들은 정부의 개입이라면 진저리를 치며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정책과 사회적 합의로 해소될 문제를 안 고치고 매일매일을 불안하게 산다. 말하자면 자초한 일이다. 2004년 미국을 떠난 이후로 나는 전후좌우를 살피는 버릇을 서서히 잃어버렸다. 미국 이후에 살았던 그 어떤 나라도 거리가 미국처럼 살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p.149)
그리고 시간이 흘러 취리히 미술관 신관에서 뷔를레 컬렉션을 장기 대여해 전시한다는 소식이 퍼졌다. 2020년대는 1950년대가 아니었다. 과거보다 비판적이고 지각 있는 세대가 들고일어났다. 전시하는 건 좋은데 뷔를레 컬렉션의 전력을 또 스리슬쩍 덮고 지나갈 거냐? 부끄러운 실상에 대한 역사적 성찰 없이 돈이나 벌고 넘어갈 거냐? 뷔를레 재단의 후원을 수십 년간 듬뿍 받아온 취리히 미술관이 그에 관한 진실을 제대로 밝히고 전시를 비판적으로 조명할 수 있겠느냐? 독립적인 외부 전문가가 개입해야 하는 것 아니냐? 취리히시와 취리히주가 주민투표를 거쳐 신관 건축에 지원한 금액이 각각 8,800만 프랑(한화 약 1,200억 원)과 3,000만 프랑(한화 약 400억 원)이다. 시민의 세금이 들어갔으니 시민의 목소리가 마땅히 반영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
수세에 몰린 취리히 미술관은 전시장의 일부를 할애해 벽에 연표와 일러스트를 붙이고 뷔를레와 그가 운영한 기업의 내력을 설명해놓았다. 나는 그 부분을 유심히 살펴봤다. 무기 제조 및 판매로 미술 수집품 자금을 마련한 일, 수집한 작품 가운데 일부가 나치의 약탈품이었던 것, 나치 정권에 무기를 공급했다가 연합군에 의해 블랙리스트에 오른 일, 전후 냉전 시대가 도래하자 서방 각국에 다시 무기를 조달하기 시작한 일, 한국전쟁 발발이 기업 회생에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 것, 1960년대에 세계 각 분쟁 지역에 불법으로 무기를 팔았던 일, 비아프라전쟁에서 구호 활동 중이던 적십자 수송기가 격추됐는데 거기에 쓰인 대공포가 뷔를레 기업 제품이라 항의 시위가 벌어졌던 일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어조는 스위스 사람들답게 수줍고 신중했지만 입이 있어도 말은 없는 빌라 파툼바에 비하면 준수했다. 그나마 시민들이 맹렬하게 아우성쳤기 때문에 이만큼 솔직하게 수집가의 치부가 공개될 수 있었다. 깨어 있는 사람들의 역할이란 얼마나 소중한가. (p.184-185)
인도 제국 시절 힌두교 특권 계급은 기독교로 개종해서 특별히 얻을 것이 없었다. 개종하면 상위 힌두교 카스트 계급으로서 누리던 기존 특권을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천대받고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던 달리트 계급은 반대로 잃을 것이 없었다. 오히려 하느님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다는 기독교 선교사들의 메시지에 위로받았다. 저주받은 신분에서 벗어나고자 기꺼이 힌두교를 포기했다. 교회와 선교사들이 제공하는 여러 가지 지원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개종했다고 해서 수 세기 끈덕지게 이어져온 사회적 차별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으며, 분뇨 수거, 시궁창 청소, 사체 처리 등 남들이 피하는 일과 험한 육체노동은 여전히 그들의 몫이었다.
지금도 파키스탄과 인도 양국에서 기독교도는 극빈 계급이다. 몹시 가난할 뿐만 아니라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그리고 달리트 출신이었다는 이유로 온갖 박해와 차별을 받는다. 특히 파키스탄에서는 이슬람과 조금이라도 배치되는 행동을 하면 불경죄로 엄격히 다스리고, 툭하면 불경죄를 소수 종교 박해의 수단으로 이용해 기독교 신자들을 투옥하거나 사형 선고를 내린다. 불경한 행위가 전혀 없었는데도 증오의 감정이나 개인적인 원한을 품고서 해코지할 목적으로 불경죄를 오남용한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파키스탄 내의 교회나 기독교 관련 시설을 습격하거나 자폭 테러를 자행하기도 한다. 이런 테러 행위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더 증가했다. (p.190-191)
정치 풍자 시트콤 〈인민의 종〉은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이 졸지에 대통령에 당선되어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다. 현재 우크라이나 제6대 대통령으로 재임 중인 코미디언 출신 정치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기획, 제작, 감독, 주연했던 작품이다. 2015년부터 세 시즌에 걸쳐 방송되면서 엄청난 인기를 얻자 젤렌스키는 아예 시트콤 제목과 똑같은 이름으로 정당을 창당하고 2019년 4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73퍼센트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당선됐다. 그렇게 해서 픽션은 논픽션으로 거듭났다.
젤렌스키는 41세라는 젊은 나이에 정치 경험이 일천했지만, 의외로 법대 출신이고 정치 야심이 전혀 없던 사람도 아니었다. 〈인민의 종〉의 인기 덕택에 대통령이 된 것은 분명하나 시트콤이 큰 반향을 일으키자마자 곧장 이를 발판으로 대선 준비에 착수하며 전략적으로 기회를 포착했다. 자기가 제일 잘하고 재능을 보일 수 있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띄워 대통령까지 됐으니 그 노련함이 결코 아마추어로 보이지 않는다. 그는 취임사에서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지속되던 러시아와의 분쟁을 종결하고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고 약속하고, 다음과 같이 덧붙여서 듣는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냈다.나는 여러분 사무실에 내 사진 걸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은 우상도, 숭배의 대상도 아니고, 벽에 거는 초상화도 아닙니다. 대신에 여러분 자녀의 사진을 걸어놓고 매사 결정에 앞서 바라보세요.
(p.203-204)
아니카는 딸에게 음악과 신체 활동을 독려하여 난독증의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이 상황을 계기로 자신도 수업을 하나 듣고 있다. 주로 아동과 노인을 대상으로 신체의 움직임을 통해 뇌 기능을 향상하는 훈련을 시켜주는 코치 양성 과정이다. 자신은 주로 어린 학생을 모집하려고 하며, 자기 딸이 자연스럽게 수업에 합류하길 바란다고 했다. 억지로 시키면 자신에게 장애가 있어서 시키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거부반응을 보일 것이므로 조심스럽다고 했다.
12개월 코스를 마치면 정식으로 수강료를 받고 학생을 모아 지도할 수 있게 되는데, 학생 10~15명을 받을 경우 학생당 한 시간에 최소한 14프랑을 받으라는 수강료 지침까지 코치 양성 과정에서 제시해주었다고 한다. 수강료를 낮게 제시해 코치들끼리 부당한 가격 경쟁을 하지 않도록 하는 지침이다. 수강료에 하향 압박이 오면 그 직업군에 있는 사람 전체가 피해를 본다. (p.228-229)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 / 한승혜 외 / 문예출판사
이 때문인지 사회는 여성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신분석학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왔다. 여성은 예로부터 남성보다 무지하며 비이성적이고 열등한 존재로 그려졌고, 각종 신화와 전설을 비롯한 온갖 예술 작품이 이러한 믿음을 부추겼다. 프로이트와 같은 정신분석학자들은 여성이 태생적으로 남근에 대한 선망을 지녔으며 타고난 호르몬 때문에 이상행동을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주류에서 파생된 잘못된 신념은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 여성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형성했다.
결국 여성의 정신 상태를 얕잡아보는 농담이나 표현이 사회 곳곳에 공기처럼 자리하기에 이르렀고, 사람들은 남성의 분노는 합당하고 이성적인 것으로 받아들인 반면 여성의 분노는 비이성적이고 비정상적인 반응으로 여기곤 했다. 내가 어린 시절만 하더라도 여성이 어떤 사안에 불만이나 분노를 표현하면 “생리 중이냐”는 물음이 예사로 돌아왔다. 또한 의견의 합당함과는 별개로 “역시 여자라서 예민하다”와 같은 평가를 받았다. 사회가 규정하는 ‘혼인 적령기’를 벗어난 여성은 부당한 상황을 맞이했을 때조차 쉽사리 항의하기 어려웠다. ‘노처녀 히스테리’라는 식으로 낙인을 찍어 정당한 항의를 결혼하지 못했다는 열등감과 콤플렉스에서 생긴 발언으로 비하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성은 정신적으로 병들어 있다고 규정되었던 탓에 사회의 입맛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할 때 남성보다 훨씬 더 손쉽게 통제당했다. 여성의 판단력은 쉽사리 의심받았으며 여성이 느끼는 부정적 감정은 호르몬 문제로 취급되었다. 성폭력이나 정신적, 육체적 학대를 고발하는 여성은 없는 사실을 지어내는 망상증 환자 또는 관심을 받고 싶은 비뚤어진 마음에 남성을 모함하는 사악한 마녀 취급을 받았다. 여성들이 입은 폭력과 피해는 ‘지나치게 예민하여’ 또는 ‘신경이 과민하여’ 과장해서 만들어낸 거짓말로 치부되었다. 결국 여성들 자신조차 스스로를 믿지 못하며 의심하고 불안해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p.31-32)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처음 출현하여 2차 세계대전과 그 직후의 혼란스러운 시대를 풍미했던 하드보일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19세기의 연장선상 같았던 20세기 초의 유유자적하고 느슨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격변의 시기를 참전이라는 형태로 경험한 남성들의 고통스러운 트라우마를 작품의 주제로 끌어들였다는 데 있다. 그럼으로써 하드보일드는 이전 시대와 완전한 단절을 추구했다.
참전 용사를 지배한 감정은 갖가지 형태의 죽음을 목격한 후의 충격, 삶의 허무함, 자신이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데서 오는 불쾌감 등이었다. 때문에 전쟁이 끝난 후 지칠 대로 지친 채 귀국한 남성들은 다시금 예전의 평온한 삶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전쟁과 함께 사회도 빠르게 바뀌었다. 무엇보다 여성들에게 급진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남성들이 참전한 사이, 그전까지 주로 가정에 머물러 있기를 권고받던 여성들이 직장의 빈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수많은 미국 여성들은 기술을 배웠고, 새로운 직무를 수행했고, 군복을 입거나, 이른 나이에 결혼하거나, 성적 자유에 몰두하거나, 집에서 수백 마일의 거리를 떠나면서, 국가적이며 전 세계적인 광대한 위기 속에서 새로운 직무를 수행했다.” 전쟁은 끝나갔지만, 자신의 경제력과 부양 능력을 확인한 여성들은 그들이 차지한 자리에서 순순히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대중문화부터 사회적 논평, 정치 지도부에 이르기까지 권위 있는 목소리들이 여성들에게 ‘참전 용사들에게 일자리를 주어야 하니 당신들은 집으로 돌아가라’고 촉구했다. 다수의 여성이 일하던 자리는 전쟁 전 젊은 남성들의 일자리가 아니었고, 대부분의 참전 용사들이 전쟁 이전인 1930년대에 정규 임금을 받으며 일한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여성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무수한 조사와 설문의 결과에 따르면 대다수의 여성은 전쟁 전의 고용 상태로 돌아가기보다 노동 인구로 남고 싶어 했다.”
참전 용사들은 일하는 여성, 타인 앞에 나서서 매력과 능력을 수줍음 없이 과시하는 여성, 남성과 대등하게 맞서거나 심지어 대적하려는 여성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여성을 맞닥뜨리고 당혹스러워했다. 그리고 돈과 힘을 직접 갖고자 하는 여성들에게 점점 분노하기 시작했다. 하드보일드 작가들은 이 젊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대립과 긴장 관계를 재빠르게 포착했다. (p.69-71)
가정적이고 순종적인 ‘집안의 천사’ 역할을 전면 거부하고 여성의 권리와 경제적 자립을 요구한 신여성. 그러나 신여성은 가정을 벗어나자마자 대중매체의 자극적 이미지화를 거치면서 재빨리 “버릇없고, 성적으로 자유롭고, 자기중심적이며, 재미를 추구하며, 그러면서도 자석처럼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는” 플래퍼가 되고 만다. 이들이 주체적이고 독립적인지, 고등교육을 받았는지, 직업적으로 프로페셔널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겉보기에는 파티에서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노는 여자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겉으로 드러나는 ‘경박한’ 이미지가 내면을 평가하는 근거로 활용된다는 점이다. 이는 소설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여성 인물(그들이 중심인물이든 아니든, 상류층이든 아니든)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그들은 모두 자기 과시적이고 부도덕하며 오직 돈만을 쫓는 ‘속물’이다. (p.111-112)
데이지의 과잉된 행동과 감정만 보고 그녀를 ‘자신이 뭘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뭔가를 원하고, 그러면서도 그 결과에는 무심하며,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와 사랑에 빠지는 여자’라고 단정 짓는 것은 너무 섣부르다. 데이지의 울음은 개츠비의 과장된 모습 뒤에 감춰진 불안감과 초조함을 읽고 난 뒤 그녀가 느낀 애잔함의 표현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데이지는 자기가 누구인지, 어떻게 평가받는지, 남들에게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를 너무 많이, 너무 정확하게 알고 있었을 수도, 이 모든 걸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을 수도 있다. 출산 당일 남편 없이 홀로 딸을 낳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데이지의 다음과 같은 자조적인 말은 그녀가 당대 사회가 여성에게 무엇을 원했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딸이라서 다행이야. 이왕이면 아주 바보가 돼버려라. 이런 세상에선 바보가 되는 게 속 편하다. 귀여운 바보. (30)
(p.115)
2010년대 중반부터 일베를 시작으로 온라인에서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특정 지역민, 이주 노동자에 대한 혐오 문화가 일상화되자 이를 우려·비판하는 논리도 많아졌다. 그러나 여기에서 혐오는 협의의 혐오 혹은 혐오와 무관한 의미로 사용된다. 혐오는 증오, 따돌림, 비호감, 막말, 역겨움, 비하 등 부정적인 의미에 국한되지 않는다. 막말이나 ‘말이 칼이 될 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주체와 관련된 이슈다. 발화자 혹은 주체(主體, the one)가 특정 집단을 임의로 규정하는 행위, 즉 타자(他者, the others)로 만드는 행위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너를 마음대로 규정할 수 있는 권력을 가졌다.’ 이것이 주체의 심리다. 주체는 자기 편의대로, 맥락 없이, 즉 자기 위치성을 인식하거나 밝힐 필요 없이 타인을 숭배하거나 평가하거나 배제할 수 있다. 미소지니는 타자화다. 타자 중에서 가장 광범위한 대상인 여성을 대하는 남성 문화의 원리다. (p.211-212)
타자화는 발화자 자신에게는 질문을 던지지 않고, 자신을 설명하는 데 타인을 동원하는 폭력이다. 인간 범주를 독식한 제1의 인간인 성인 남성의 기준에서 여성은 가장 재현하기 쉬운 타자이고 기존의 문학은 이러한 관습을 반복, 변주해왔다. 이것은 호모 사피엔스의 행위 중 가장 비윤리적이다. 일제시대와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에 한국의 위상이 달라졌다지만 그 차이는 타자화 행위, 혐오 발화에 남성을 포함한 모든 이가 참여하고 있다는 암울한 사실에서 나온다. 온라인에서 익명으로, 아류 제국주의의 국민으로, 강자와 동일시하는 욕망의 주체로서 말이다. (p.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