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미식 / 이의철 / 위즈덤하우스
기후위기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면 중 하나는 거대한 산불이다. 산과 들, 마을이 붉은 화염에 휩싸이고, 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어 온 세상이 검붉게 물든 장면은 앞으로 인류에게 닥칠 대재앙의 서막과 같은 인상을 준다. 이런 산불이 자주 발생하는 대표적인 지역은 미국 캘리포니아다. 캘리포니아에서는 2021년 한 해만 서울의 11배에 해당하는 면적이 불에 타버렸다. 미국 캘리포니아와 네바다주는 이미 20년째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데, 2018년부터는 해마다 여름이 되면 대형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평균기온이 상승하고, 대기가 점점 더 건조해지면서 산불이 더 자주, 더 거대하게 발생하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캘리포니아 산불로 인해 금융위기가 촉발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캘리포니아 지역의 1,200만 주택 중 300만 채 이상이 산불 위험지역에 해당한다. 주택들의 화재보험료가 증가하고, 주택 가격이 떨어지면서 이 주택들을 담보로 대출을 제공한 금융기관이 부실해져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같은 금융위기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2019년 9월부터 2020년 2월까지 5개월간 지속된 호주의 산불로 인해 대한민국 국토 면적의 1.8배에 해당하는 1,860만 헥타르가 불타버렸다. 이 과정에서 건물 5,700여 채가 불타고, 야생 포유류, 파충류, 조류 약 5억 마리를 포함해 총 12억 7,000여 마리의 야생동물과 곤충이 불타 죽는 대재앙이 발생했다. 이 산불은 1월 말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 덕분에 비로소 진화됐다. (p.16-17)
한편 농업 생산성은 기후위기가 농작물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 외에 꿀벌에 미치는 영향으로 인해서도 크게 위협을 받을 수 있다. 2022년 초 제주와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78억 마리의 벌들이 사라지면서 꿀벌들이 수정해주던 딸기 생산량도 감소했다. 2010년 한국 토종벌 65~99퍼센트가 폐사한 이후, 꿀벌(서양벌)도 지속적으로 감소해오던 터라 이제 꿀벌까지도 집단 폐사하게 되는 건 아닌지 위기감이 조성됐다. 계절에 맞지 않는 이상저온과 이상고온으로 꿀벌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충분히 쉬지도 못한 채, 꿀을 따러 벌집에서 나왔다가 돌아가지 못한 것이 주원인으로 지목된다. 여기에 바이러스, 해충, 살충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
벌들의 급격한 개체수 감소 현상은 유럽, 미국 등 전 세계 곳곳에서 관찰되고 있다. 전 세계 주요 작물 115개 중 87개는 벌을 비롯한 다양한 곤충과 동물이 꽃가루를 수정해주어야만 알곡과 열매를 맺는다. 이 농작물들이 전 세계 농업 생산량의 35퍼센트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꿀벌이 없을 경우 일부 과일과 씨앗류, 견과류는 수확량이 90퍼센트 감소한다는 보고도 있다.
꿀벌이나 나비, 파리, 설치류, 박쥐 등 다양한 생명체들의 도움 없이 수확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일일이 수정해야 하는데, 그 비용은 얼마나 될까? 하지만 그 정도 비용을 들인 후에도 벌과 나비 등이 수정해준 만큼 수확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도 없다. 이런 요인들이 농산물 가격에 반영된다면 인류는 식량위기와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제라도 우리는 인류에게 무상으로 엄청난 혜택을 제공해준 다양한 생명체에 감사의 마음과 함께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대가는 거창한 게 아니다. 그저 그들이 자신의 본성에 맞게 생활하고 번성할 수 있도록 환경을 보전하고 개선하는 것뿐이다. 우리에게 생태계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다양한 생명체들의 권리를 인정하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할 때 비로소 우리의 생존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p.32-33)
기온 상승은 미생물 활동도 더욱 왕성하게 만든다. 상수원의 녹조현상은 해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녹조현상을 유발하는 남세균(세균 중에서 유일하게 산소를 발생하는 광합성 세균)은 매우 강력한 간독성물질인 마이크로시스틴을 비롯해 다양한 독성물질을 만들 수 있어서, 녹조가 발생한 상수원의 물을 수돗물로 이용하려면 수백억 원의 관리비가 드는 고도정수처리 시설이 필요하다. 브라질에서는 마이크로시스틴에 오염된 물이 투석에 이용돼 수십 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녹조현상이 악화되면 고도정수처리시설의 한계를 넘어설 수도 있다. 고도정수처리시설의 한계농도는 수백 피피비(ppb) 수준이지만, 녹조가 심한 강물의 마이크로시스틴 농도는 수천 피피비(ppb) 수준에 달하기 때문이다. 기후위기가 심화되면 식수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 수영 등 수상레저활동 과정에서 녹조에 오염된 강이나 저수지의 물을 무의식적으로 섭취하거나, 녹조에 오염된 물에서 자라 체내에 독성물질이 축적된 민물고기를 섭취하게 될 경우 심각한 건강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2022년 2월에는 녹조에 오염된 낙동강과 금강 물을 농업용수로 사용한 논과 밭에서 재배된 쌀과 배추, 무에서도 정자 수 감소 및 난소 독성을 초래할 수 있는 수준의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됐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또한 지하수에서도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됐는데, 이는 강물의 독소가 지하수까지 스며들었다는 것을 뜻한다. (p.37-38)
독일의 비영리단체인 저먼워치(Germanwatch)는 태풍, 홍수, 폭염 등 극단적 기상현상으로 인한 피해를 ‘기후위험지수(Climate Risk Index)’로 지표화했다. 이 기준으로 살펴보면, 2000년부터 2019년까지 20년간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국가는 푸에르토리코, 미얀마, 하이티, 필리핀, 모잠비크 등이다. 이 국가들의 2018년 1인당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은 0.2~2.2톤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에 2018년 1인당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한 상위 5개 국가인 호주, 캐나다, 사우디아라비아, 미국, 러시아는 온실가스를 10배가 넘는 수준으로 17.6~24.6톤 배출함에도 피해는 31~111위 수준에 불과했다. 한국은 2018년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13.9톤으로 전 세계 6위였지만,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 순위는 91위에 불과했다. 엄청나게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각종 사회 인프라를 구축해놓은 덕분이다. (p.43)
기후위기가 심화될수록 해양생태계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육지의 숲과 마찬가지로 지표면의 70퍼센트를 덮고 있는 바다의 식물성 플랑크톤과 해초도 광합성을 통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기 때문이다. 바다가 대기 중 탄소를 흡수하는 경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바닷물에 직접 녹으며 흡수되는 경로이고, 다른 하나는 식물성 플랑크톤의 광합성과 다양한 해양생물들의 생물학적 활동을 통해 흡수되는 생물학적 경로다.
실제로 2011년부터 2020년까지 10년간 바다가 이산화탄소를 흡수한 양은 인간이 배출한 이산화탄소의 26퍼센트에 달한다. 이렇게 식물성 플랑크톤과 해초에 흡수된 이산화탄소는 유기물로 변환되어 동물성 플랑크톤, 작은 어류, 중간 크기 어류, 대형 어류 등 먹이사슬을 따라 상위에 있는 동물들의 양분으로 섭취되면서 바다에 저장된다. 그리고 해양생물들의 사체나 배설물은 다시 식물성 플랑크톤과 해초들을 위한 양분이 되고, 일부는 해저로 퇴적되면서 탄소도 함께 깊은 바다로 퇴적된다. 이런 이유로 바닷속에서 살고 있는 생물들의 종류가 다양하고, 그 개체수도 많을 때 바다가 흡수하고 저장하는 이산화탄소의 양도 자연스럽게 증가한다. 이렇듯 생명다양성은 성공적인 기후위기 대응의 필수 조건이다.
2021년 발표된 연구에 의하면, 어류가 배설물을 통해 해저로 퇴적시키는 탄소의 양이 연간 15억 톤에 달한다. 이를 이산화탄소로 환산하면 55억 톤으로, 2020년 전 세계에서 배출한 이산화탄소 348억 톤의 15.8퍼센트에 해당한다. 만약 바다에서 어류들이 사라지면 55억 톤의 이산화탄소가 바다로 흡수되지 못하고 대기 중에 남아 있게 될 것이다. (p.86-87)
특히 고래와 같은 대형 해양생물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고래는 심해에서 먹잇감을 먹고, 표층 바다로 올라와 배설을 하며 해양의 영양분을 재분배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 덕분에 식물성 플랑크톤이 양분을 얻어 이산화탄소를 활발히 흡수할 수 있게 된다. 이뿐만 아니라 고래와 같은 대형 해양생물은 평생 몸에 저장했던 탄소를 깊은 바다에 저장해 기후위기 완화에 기여한다.
큰 고래의 경우 약 33톤의 이산화탄소를 해저에 저장할 수 있는데, 이는 나무 1,500그루가 1년간 흡수할 수 있는 양에 해당한다. 기온 상승을 1.5도 미만으로 제한하기 위해 2017년에 태어난 사람의 탄소 예산을 44톤으로 설정했던 것을 감안하면, 고래 한 마리가 흡수하는 이산화탄소 33톤은 상당한 양이다. 만약 사람이 태어날 때마다 고래 한 마리가 늘어난다면 미래 세대의 탄소 예산은 44톤에서 77톤으로 75퍼센트가량 증가할 수 있다. 어쩌면 고래의 개체수를 늘리는 게 미래 세대의 탄소 예산을 높일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주요 8종류의 고래들이 바다에 저장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연간 10만 5,000톤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만약 고래 개체수가 산업화된 고래잡이 이전 수준으로 회복된다면 연간 70만 7,000톤의 이산화탄소를 저장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뿐만 아니라 고래의 배설물 덕분에 식물성 플랑크톤의 광합성이 1퍼센트라도 증가하면 매년 수억 톤의 이산화탄소를 더 흡수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나무 20억 그루가 흡수하는 양에 해당한다. 단지 고기를 먹기 위해 고래를 포획하기에는 우리가 감수해야 할 생태적 부담이 너무나 크다. 미래 세대의 탄소 예산을 갉아먹는 행위나 다름없다. 현재 전체 고래 개체수는 130만 마리 정도로 과거의 4분의 1 수준으로 감소한 상황이다. (p.88-89)
현대 어업은 해양생물의 개체수를 급격히 감소시키는 것 외에도, 저인망어업을 통해 직접적으로 바다가 흡수하는 탄소를 줄어들게 한다. 저인망어업은 그물의 아랫깃이 해저에 닿도록 한 후 수평 방향으로 끌어 해저에 사는 해양생물을 잡는 어법을 말한다. 저인망어업은 매년 전체 해양의 1.3퍼센트에 해당하는 420만 제곱킬로미터의 해저를 그물로 훑는다. 이로 인해 해저에 저장돼 있던 이산화탄소가 다시 바닷물에 녹으면서 방출되는데, 그 양이 14억 7,000만 톤에 달한다. 이는 매해 해양이 대기로부터 흡수하는 이산화탄소의 15~20퍼센트에 해당하는 양으로, 바다의 탄소 농도가 증가하면 바다가 탄소를 흡수할 수 있는 여력이 감소해 그만큼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양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해양의 생명다양성과 바다가 흡수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보존하기 위해 저인망어업을 비롯한 산업화된 어업을 획기적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2030년까지 배타적경제수역과 공해 바다의 30퍼센트를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하기 위한 운동이 한창 진행 중이다. (p.92-93)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에 따르면 팜유 생산으로 인해 최소 193개의 멸종위기종이 영향을 받고 있다. 아울러 열대우림에서 소규모 농어업과 수렵, 채집으로 생존해왔던 소농과 토착민의 생존권도 위협받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Palm-oil Free’ 캠페인이 주목받고 있다. 시중에서 다양한 위생용품과 가공식품에서 ‘Palm-oil Free’ 라벨이 붙은 제품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Palm-oil Free’ 제품들은 팜유 대신 건강과 친환경을 지키는 다른 종류의 식물성 기름을 사용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팜유 대신 다른 식물성 기름을 사용하는 것이 친환경적인지 의문이다. 단위 면적당 기름 생산량에 있어서 팜유를 따라올 작물이 없기 때문이다.
전 세계 식물성 기름 생산은 1961년 1,745만 톤에서 2014년 1억 7,327만 톤으로 10배가량 증가했다. 이에 따라 식물성 기름 생산을 위해 사용된 농지도 같은 기간 1억 1,136만 헥타르에서 3억 930만 헥타르로 2.8배 늘어났다. 만약 전 세계 식물성 기름 수요 전체를 팜유로 공급할 경우 7,697만 헥타르의 농지이면 충분하다. 따라서 2억 3,000만 헥타르 가량의 농지를 자연으로 되돌릴 수 있게 된다.
반면 전체 식물성 기름 수요를 대두유로 공급할 경우 4억 8,676만 헥타르의 농지가 필요하고, 올리브오일로 공급할 경우 6억 4,226만 헥타르, 코코넛오일로 공급할 경우 8억 4,669만 헥타르의 농지가 필요하다. 팜유 반대가 오히려 더 많은 산림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팜유 대신 다른 식물성 기름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식물성 기름 사용 자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식물성 기름이 과도하게 사용된 음식이나 가공식품을 줄이는 게 훌륭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아울러 팜유와 다른 식물성 기름 생산과 관련하여 발생하는 다양한 환경비용을 생산자에게 부담시킴으로써, 생산자 스스로가 지속가능한 사업을 고민하도록 만들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p.96-97)
정부에서 발표한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각 배출원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을 계산할 수 있도록 하는 통계시스템)를 보면, 2019년 한국의 농업 관련 온실가스 배출은 전체 배출량의 3.0퍼센트, 축산 관련 온실가스 배출은 전체 배출량의 2.1퍼센트 수준에 불과하다. 전체 배출량의 86.6퍼센트가 에너지 생산 및 운송, 철강 산업 등에서 사용하는 화석연료 사용에서 발생한다.
이 때문에 그간 한국의 기후위기 활동가들은 주로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전체 배출량의 2.1퍼센트밖에 차지하지 않는 축산 관련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애써 식단을 식물성으로 바꿀 필요가 있겠냐는 것이다. 오히려 화석연료라는 거대한 표적을 향한 초점이 분산될 수 있다고 경계하는 분위기도 느껴진다. 축산업자들 또한 축산이 온실가스 배출에 기여하는 정도가 미미한 수준이기 때문에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채식을 장려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이 두 입장 모두 한국의 축산업에서 수입하는 사료를 재배하기 위해 남미에서 아마존 밀림이 파괴되고, 유전자 조작 콩과 옥수수 재배 면적이 늘어나고, 농약과 제초제, 화학비료, 축분비료가 과도하게 사용되는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 (p.166-167)
한국은 가축 사료의 주원료인 대두박과 옥수수의 대부분을 남미에서 수입하고 있다. 대두박의 87.5퍼센트를 브라질에서, 옥수수의 36.3퍼센트와 32.9퍼센트를 각각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서 수입하고 있다. 참고로 밀의 50.6퍼센트는 우크라이나에서 수입한다(2015년 기준). 만약 한국이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동물성 식품을 소비한다면 중남미 지역의 탈탄소 및 일자리 창출 정책은 성공하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한국의 농업 및 축산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 비율이 적은 이유는 이렇게 사료 생산을 위해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남미 지역에 외주를 준 덕분이다. 우리가 고기나 해산물을 먹는다면 당장 우리 국경 내에서 그 피해가 크지 않더라도, 지구 어딘가에선 그 대가를 지불할 수밖에 없다. 중남미 지역 사람들의 탈탄소 정책, 일자리 창출 정책에 연대하는 의미에서 한국에서도 동물성 식품에 관한 지출의 최소 3분의 2를 과감하게 식물성 식품에 관한 지출로 전환하는 캠페인이 필요하다. 아울러 전 지구적인 축산업 축소 압력에 떠밀려 허겁지겁 대응하기보다는 축산업 종사자들이 충격을 덜 받으면서 일자리를 바꾸게 하는 방안도 미리 마련할 필요가 있다. 탈 동물성과 관련된 이 모든 과정은 재생에너지, 전기차, 수소경제와 더불어 정부의 탈탄소 정책, 그린뉴딜 정책의 중요한 영역으로 포함되어야만 한다. (p.169)
데이터는 어떻게 인생의 무기가 되는가 /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 / 더퀘스트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연애 상대의 다양한 특징을 근거로 앞으로 관계가 달라지리라 기대하는 일은 십중팔구 실패로 귀결되고 만다. 지금 행복하지 않은데도 자기 자신과 여자친구가 공통점이 많으니 결국에는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해서 연애를 지속하는 친구는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데이터는 당신이 지금 연애에서 느끼는 행복보다 미래의 행복을 더 잘 예측하는 방법은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연애 상대가 지금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하는데 당신과 상대의 어떤 특징 때문에 미래에는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하는 건 잘못된 가정이다. (p.83)
엄마인 에이바 네이어는 육아에 관한 책, 특히 아기의 수면과 발달에 관한 책을 아주 많이 읽고 나서 느낀 좌절감을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아기를 포대기로 단단히 감싸되 너무 꽉 조이지는 말라고 한다. 아기를 재울 때는 등을 바닥에 대고 눕히라고 한다. 하지만 아기들이 등을 대고 누워 있는 시간이 너무 길면 발달이 지체될 수도 있단다. 영아돌연사증후군(SIDS)을 방지하기 위해 아기에게 노리개 젖꼭지를 주라고 한다. 하지만 노리개 젖꼭지는 모유수유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고 아기의 숙면을 방해할 수도 있으므로 사용을 자제하란다. 아기가 너무 깊은 잠에 빠져도 영아돌연사 위험이 있다고 한다.
(p.87)
놀랍긴 하지만 양육이라는 주제에 관한 신빙성 있는 증거에 따르면 부모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 기대수명
- 건강
- 교육
- 종교
- 장래 소득
부모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에는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다.
(p.99-100)
- 종교 성향
- 청소년기의 약물 및 알코올 복용, 성적 행동
- 부모에 대한 아이들의 감정
실제로 에밀리 오스터의 중요한 책들에 대부분 소개된 최고의 연구들은 육아의 가장 논쟁적인 기술들에서도 그다지 큰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p.101-102)
- 모유수유에 관한 무작위 대조군 실험연구는 한 편밖에 없는데, 그 연구의 결과 모유수유는 아동 발달의 여러 측면에 유의미한 장기적 효과가 없었다.
- TV 시청에 관한 정밀한 연구의 결과 TV는 아이의 시험 성적에 장기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 어느 정밀한 무작위 실험연구에 따르면 아이들에게 체스와 같이 인지능력을 많이 사용하는 게임을 가르친다고 해서 장기적으로 아이들이 똑똑해지지는 않는다.
- 이중언어 교육에 관한 정밀한 메타분석의 결과, 이중언어 교육은 아동의 인지능력의 여러 측면을 조금밖에 향상시키지 못했다. 그 약간의 효과도 긍정적인 결과를 공개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향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주의를 사로잡는 최신 연구가 아닌 세심하게 진행된 다른 연구들을 살펴보면, 부모들이 가장 많이 걱정하는 것들의 대부분은 놀라울 만큼 아이들에게 영향이 작았다. 간단히 말하면 부모들이 하는 결정의 대부분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중요하지 않으며, 육아산업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만큼 중요하지도 않다.
캐플런의 표현을 빌리면 다음과 같다.만약 당신의 아이가 전혀 다른 가정에서 자랐거나 당신이 전혀 다른 부모였다고 해도 아이는 거의 똑같이 자랐을 것이다. 당신은 옆집의 ‘슈퍼 엄마’와 ‘슈퍼 아빠’라는 기준을 따라가느라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다. 그냥 당신에게 편안하게 느껴지는 방식으로 당신의 아이를 키워도 된다. 걱정은 그만해도 된다. 아이들은 제법 잘 자랄 테니까.
여기에 덧붙여 캐플런이 그의 책에 붙인 소제목들 중 하나를 보자. 이 소제목이야말로 캐플런이 수십 년에 걸친 사회과학 연구를 바탕으로 부모들에게 건네는 최고의 조언이다. “너무 깊이 고민하지 마세요.” (p.102-103)
여자아이들이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실현하는 데, 흑인 남자아이들이 인종차별의 불리함을 이겨내는 데, 그리고 수많은 아이의 인생이 성공하는 데 동네의 성인들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 아이들의 장래에 부모가 아닌 동네 어른들의 영향이 의외로 크고 부모의 영향은 의외로 작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아이들이 자기 부모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복합적이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에게 반항하고 부모가 했던 것과 정반대의 행동을 하려고 한다. 만약 당신이 고학력자에 모범 시민이라면 당신의 아이들은 당신과 같은 어른이 되고 싶어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자기만의 길을 개척해서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반면 아이들이 동네의 다른 어른들과 맺는 관계는 그보다 훨씬 덜 복잡하다. 길 건너편에 사는 아저씨와 아주머니에게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나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느낄 일이 없다. 아이들은 동네의 다른 어른들을 존경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그 어른들의 행동을 모방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부모라도 아이들을 설득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만들기는 무척 어렵다. 반면에 아이들은 자신이 접하는 다른 몇몇 어른의 발자취를 따라가기를 자연스럽게 원할지도 모른다. (p.120-121)
솔직해지자. 한발 물러나서 이 장에 수록된 데이터 분석 결과를 보면 이러한 일은 그리 놀라운 이야기가 아니다. 데이터과학자들이 새로운 대규모 데이터세트들을 분석한 결과, 오랫동안 노력해서 자기 분야의 정상에 올라간 다음에 창업할 때 성공 확률이 높았다. 이것이야말로 직관에 부합하는 결과가 아닌가? 어떤 분야의 정상에 도달해본 경험은 당연히 그 분야에서 창업에 성공하는 것과 상관관계가 있지 않겠는가?
이런 발견 중 일부는 직관에 부합하지만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은 담론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정말 많은 사람이 젊음의 힘, 외부인의 이점, 주변부의 힘이라는 세 가지 통념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데이터가 그 통념을 모두 반박했다. (p.195-196)
사람들은 이처럼 ‘처음에는 놀라운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놀랍기 때문에 처음에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사람들은 젊음이 창업에 유리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소셜네트워크〉만 봐도 그렇잖아.’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처음에는 놀라웠던 아이디어가 너무나 신기해서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다 보니 나중에는 진리로 간주된다.
대표성이 높은 대규모 데이터세트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되는 표본을 편애하지 않는다. 때때로 데이터는 보편적 진리가 되어버린 ‘직관에 반하는 주장’들이 정확하지 않다고 알려준다.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창업자들의 세계가 아닌 창업자들 전체의 세계를 들여다본다면, 연륜과 지혜야말로 스타트업 창업의 성공에 유리한 조건임을 확인할 수 있다. (p.196-197)
창업의 성공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데이터는 대중매체가 보여주는 대표성 낮은 사례들에서 비롯되는 소음을 제거한다.
모든 소음을 제거하고 나면, 그러니까 우리가 대중매체에서 접하거나 친구와 지인들에게서 듣는 이야기를 제거한 뒤 창업의 성공에 관한 실제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사업 성공의 확률을 극대화하는 공식을 발견할 수 있다. 그 공식은 다음과 같다. 오랜 세월 동안 어떤 분야를 속속들이 익히고, 그 분야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직원 중 한 명으로서 당신의 가치를 입증한 다음, 독립해서 진정한 부를 쌓는다.
이 성공의 공식은 별로 짜릿하지는 않다. 20대 초반에 이미 몇 가지 능력을 습득해서 비즈니스 제국을 건설할 준비가 됐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짜릿하다. 사업에서 성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당신이 잘 알지도 못하는 에센셜오일 몇 종류를 섞어서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는 거라고 생각하는 편이 더 짜릿하다. 당신의 분야에서 아직 실력을 입증하지 못했어도 사업을 시작할 준비가 됐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짜릿하다. 당신의 분야에 관해 잘 몰라도 되고, 필요한 지식은 사업을 해나가면서 배우면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짜릿하다. 하지만 이 매력적인 생각들은 모두 틀렸다. 이런 생각들은 성공에 관한 신화일 뿐 데이터로 입증된 사실이 아니다. (p.199-200)
우리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오늘날의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된 이유는 시적인 노랫말과 에너지 넘치는 콘서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렇게 강렬한 무대를 만드는 사람은 세계적인 예술가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은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브루스 스프링스틴인 이유는 그가 21세부터 차를 몰고 장거리 여행을 하면서 새해 전야 공연에서 자신의 음악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재능으로는 스프링스틴에게 뒤지지 않는데도 매그너스 앱 데이터에서 발견된 ‘범주 1’의 화가들처럼 자기 고향의 같은 장소에서 계속 연주하면서 누군가가 알아주기를 기다리다가 실패하는 사람도 많다. 예술가로 성공하려면 재능만으로는 안 된다. 누군가가 당신을 발견할 확률을 높일 수 있다면 기꺼이 차를 몰고 대륙을 횡단해야 한다. 스프링스틴은 다비드 오스트롭스키를 비롯해 수많은 성공한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행운을 직접 만들었다. (p.229)
당신이 순전히 실적으로만 평가받는 분야에 몸담고 있다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기회를 찾아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세계 최고의 미식축구 예비 선수들이 ‘프로 데이(Pro Day)’에 자기 대학에서 경기를 하면 스카우터들이 모두 찾아와서 그들을 지켜본다.
하지만 대다수 분야는 스포츠보다는 예술과 공통점이 많다. 당신의 분야가 실력을 측정하기 어려울수록 화가들에게 적용되는 법칙이 당신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당신이 일생일대의 기회를 아직 잡지 못했다면, 빅데이터가 밝혀낸 성공하지 못한 예술가들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당신의 재능을 알아주지 않는 무심한 선임들 밑에 계속 머물러서는 안 된다. 유능한 사람들이 수십 년 동안 똑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회사는 피해야 한다. 당신이 고용된 회사가 해머미술관, 디킨슨, 화이트큐브 같은 곳이 아니라면 그곳을 뛰쳐나와야 한다. 지금까지 당신이 있는 곳으로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기회가 당신을 찾아올 가능성은 적다.
당신의 행운 사건을 발견하러 떠나라! (p.230)
그러나 다작과 성공의 상관관계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가설이 있다. 작품을 많이 제작하는 예술가들이 행운을 잡을 기회가 더 많다는 것.
다음과 같이 생각해보자.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이 때때로 엄청난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의미에서 특정한 예술작품의 성공은 복권 당첨과도 비슷한 일이다. 만약 당신이 다른 예술가들보다 복권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면 행운을 차지할 기회 역시 많아진다.
예술가로서 작품을 많이 발표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때때로 예술가들은 자신이 언제 걸작을 생산할지 예측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베토벤이 쓴 편지들을 정밀 분석한 한 연구에 따르면, 베토벤 자신은 작곡을 해놓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썼는데 세상은 그 곡을 걸작으로 간주한 경우가 여덟 번 이상이었다.
(…)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3집 음반인 〈본 투 런〉을 완성하고 나서 그 음반을 창피해했다고 한다. 스프링스틴은 이렇게 말했다. “내 평생 그렇게 쓰레기 같은 음반은 처음이었어요.” 그는 그 음반을 발매하지 않을 생각까지 했는데, 제작자인 존 란다우가 그를 설득해서 음반이 세상에 나왔다.
주제곡인 〈본 투 런〉과 함께 〈선더 로드〉 〈정글랜드〉 〈텐스 애비뉴 프리즈아웃〉 등의 곡이 담긴 그 음반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 덕분에 스프링스틴은 《타임》과 《뉴스위크》 표지에 실렸고 《롤링스톤》지로부터 “장엄하다”는 평을 들었으며, 음반은 뒷날 역사상 가장 훌륭한 록앤드롤 음반 중 하나로 손꼽히게 됐다.
다행히 베토벤, 앨런, 스프링스틴은 주저하면서도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러나 그들만큼 찬사를 받아본 적이 없는 수많은 예술가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작품을 내놓기도 전에 폐기해버린다. (p.232-233)
최근 엘리엇 퍼거슨은 쿼라에서 종신교수 임용에서 탈락하면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답을 달았다. 그는 1976년에 매디슨 위스콘신대학교에서 심리학과 종신교수 임용에서 탈락했을 때 “좌절했다”고 밝혔다. 그는 종신교수가 되는 것만을 목표로 노력을 집중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에게도 회복력이 있었다. 그는 경영계에서 사업가와 컨설턴트로 경력을 쌓아갔다. “학계 바깥의 똑똑하고 창의적이고 흥미로운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즐거웠고, 기업들의 실행력에 감탄하기도 했다. 종신교수 임용에서 탈락한 지 37년이 지난 시점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나는 위스콘신대학교가 나를 종신교수로 임용하지 않은 데 고마워하고 있다. 그건 학교를 위해서도 옳은 결정이었고 나에게도 최선의 결정이었다.”
길버트 연구진이 얻은 데이터는 퍼거슨의 이야기가 대표성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학자들은 종신교수로 임용되지 못해도 다시 일어선다. 그들 자신은 그러지 못할 거라고 생각할지라도.
경력 사다리를 오르려고 하면서도 삶 속의 여러 가지 사건에 자신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예측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학자들만이 아니다. 길버트와 동료 연구자들은 똑같은 방법으로 사람들이 애인과의 결별이나 정계 진출과 같은 중대한 사건의 여파로 그들 자신이 얼마나 행복할지 예측할 수 있는지를 알아봤다.
사람들은 항상 그런 사건들이 일어나면 자신의 행복도가 크게 바뀔 거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막상 그런 사건들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 사건이 자신의 장기적 행복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답했다. 다시 말해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끔찍할 것 같고 치명타가 될 것 같은 사건들도 대개는 막상 닥치면 그렇게 큰일이 아니다. (p.271-2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