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 Read Code

 

도서관 환상들 / 아나소피 스프링어, 에티엔 튀르팽 / 만일

 

 오프라인 도서관은 정해진 시간에만 문을 열지만, 온라인 도서관보다 스무 배나 더 많은 자료를 갖추고 있다. 또한 오프라인 방문자는 어떤 자료든 쉽고 편하게 이용하도록 설계된 물리적 환경에서 서가를 둘러볼 수 있다. 디지털 컬렉션을 먼저 접한 뒤 마음이 동해 오프라인 도서관을 구석구석 살피고자 찾아오는 이들도 많다. 디지털 접근 방식이 이런 식으로 아날로그 서가에 생기를 불어넣기도 한다.
 온라인 방문자는 대개 질의 기반 검색에 의존해 자료를 찾는 한편, 오프라인 방문자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도록 이끄는 물리적·촉각적 환경에 둘러싸이게 된다. 후자는 서가를 둘러보면서 온라인에서 발견한 자료의 실물을 찾은 뒤 그것을 디지털 사본으로 변환해 ‘소유’할 수 있다. 이때 아날로그 서가는 디지털 자료를 얻기 위한 일종의 ‘검색 도구’가 된다. 먼저 온라인에서 자료를 찾은 뒤에 그것의 실물을 구하던 기존 순서가 뒤집힌 꼴이다.
 우리가 관찰한 바, 사람들은 두 가지 방식 모두를 통해 도서관을 이용하며 어떤 발견 절차를 밟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물을 얻는다. 그리고 이런 사실로부터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 창조적인 긴장 상태가 발생한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접근 방식의 차이를 강조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을 텐데, 방점은 그 둘이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서로 경쟁하지 않고 보완한다는 데 있다. 물리적 도서관이 제공하는 것은 단일한 방식의 둘러보기 경험이 아니라 둘러보기를 기반으로 무언가를 발견하는, 복제할 수 없는 수많은 경험이다. 나는 흔히 서로 경쟁한다고 여겨지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접근 방식의 관계를 새로 규정하고자 한다. 그 둘은 판이하게 다르며 서로 정교히 맞물려 돌아갈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프레링거 도서관은 두 접근 방식의 차이에 얽매이지 않고 더 멀리 나아가고자 한다. 이를테면 물리적 둘러보기 과정의 일부를 온라인 도서관에 그대로 옮겨다 놓을 계획인데, 그러려면 우선 대규모 디지털화 작업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모든 자료가 디지털화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당장 떠오르는 예시만 18~19세기 도서, 아티스트북, 저작권 보호 자료, 사이사이 끼워 넣거나 스테이플러로 찍거나 풀로 붙인 페이지를 포함한 정기 간행물, 초대형 자료 등이 있는데, 이것들을 디지털화해 제공하기란 아주 까다롭고 때에 따라서는 불가능하다. (p.26)

 

 결코 모든 것을 보존할 수는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상실은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다. 부재는 현존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문화 유산을 공격하고 파괴하는 행위를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지난 40년간 대두된 신생 역사 담론 다수는 사료가 매우 드물거나 분실 혹은 파괴됐다는 감각을 원동력 삼아 발전했다. 이를테면 노동 계급의 역사,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 여성의 역사가 그렇다. 전통적인 의미의 역사적 증거가 부족하다는 사실이, 학자는 물론이고 역사에 관심이 많은 비전문가까지 어떤 주제를 깊이 파고들어 뜻밖의 장소에서도 사료를 찾아내도록 부추겼다. 방금 언급한 분야들은 그렇게 해서 학문적으로 번성하게 됐다. (p.30)

 

 한편 나는 큐레이터를 비롯한 지식인들, 특히 커리큘럼, 컬렉션, 나아가 서사를 구축하는 대형 기관에 소속된 이들이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를 겪는다고 본다. 특정 주제나 역사를 어느 정도 아는 20명 내지 40명의 눈높이에 맞춰 서사를 구축하는 일은 수월하다. 그런데 400명 혹은 4,000명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서사를 구축하는 일은 어떤가? 기존 모델, 그러니까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두말할 것 없이 힘들다. 소수가 독점하는 지식 체계를 지탱해 온 토대가 이제 흔들리기 시작했다. 2013년 11월 홍콩에서 열린 뮤지엄 서밋(Museum Summit) 당시 겪은 일을 꺼내고 싶다. 나는 행사 둘째 날 패널 토론 사회를 맡아 유럽 및 북미의 박물관장들과 대화를 나눴다. 유럽 및 북미의 박물관에서는 최근 서구 바깥의 동시대 미술을 다루기 시작한 한편, 과거에 모더니즘 컬렉션을 어떻게 구축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요컨대 박물관 차원에서 써 내려 온 역사에 별다른 의문을 품지 않는 듯했다. 나는 그들이 역사를 성찰하지 않은 채 앞만 보고 미래로 뛰어들려고 한다는 점을 언급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우리의 역사는 이미 쓰였다. 북미나 유럽 바깥에서도 저마다의 역사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미래를 본다. 바로 지금 그래야만 한다. 뒤돌아봐서는 안 된다.”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박물관의 기존 컬렉션에 비판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 대답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라면 문제가 심각하다고 본다. 앞으로 진행할 프로젝트가 얼마나 흥미롭든지 간에 말이다. (p.52)

 

 중세에는 학술 원고가 각양각색으로 꾸며졌다. 필사 과정에서 흔히 내용이 바뀌거나 수정되거나 아예 대체됐고 필사자의 메모도 덧쓰였다. 그러나 최근 50-60년 사이 학술서는 흰 종이 위에 검은 글자가 찍힌 책이라는 기본 형식으로 획일화되고 말았다. 많은 인문학자가 자기 책의 내용에만 신경을 쓰지 형식에는 관심이 없다. 우리는 책을 생각을 담은 하나의 사물로 보고 인문학계에 시각성을 다시 소개하고자 했다. 부록에 이미지 몇 장 끼워 넣는 관행을 벗어난 시도를 통해서 말이다. 또한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의 위계질서에 의문을 제기하고자 했다. 우리가 경험하는 문화가 이미지로 가득하다고 해서 모두가 이미지를 가지고 작업해야 한다고 주장하려던 것은 아니다. 다만 통일된 형식을 따라야 한다는 긴장을 완화한다면 책이라는 사물을 제작하는 작업, 혹은 책의 형식적 한계 안에서 지식을 생산하는 작업이 어떤 결과를 만들까 궁금했다. 우리의 실험은 책 안에서 시각성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탐색하는 한편, 어떻게 미적 유희가 아니라 엄밀성을 기준 삼아 이미지를 다룰지 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p.138)

 

 오튼과 할리웰의 사례는 도서관에 대한 집요한 애정을 공유한 또 다른 두 남자의 비극을 떠올리게 한다. 바로 프랑수아 드니 바르톨로메 부바르와 쥐스트 로맹 시릴 페퀴셰의 이야기다. 이들은 플로베르 사후 1881년에 출간된 유작 『부바르와 페퀴셰』의 두 주인공으로, 과학적 지식을 향한 욕망에 휩싸인 필경사들이다. 텍스트를 베껴 쓸 줄만 알았지 그것의 가치를 검토하고 평가하는 훈련은 받아 본 적 없는 두 사람은, 시골로 은퇴해 따분한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세상 모든 지식을 탐구하고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적어도 플로베르에게 있어서는) 근대 사회 특유의 열망에 불타오른다. 부바르와 페퀴셰는 글을 가까이 하던 직업적 배경을 믿고 농업, 축산업, 의학, 해부학, 화학, 천문학, 지질학, 역사학, 고고학 등 온갖 분야의 책을 구해 탐독하지만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주제를 연구하든 매번 실패만 거듭한다. 그들은 독자가 지식과 경험을 창의적으로 결합해야만 비로소 지식이 가치를 얻게 된다는 사실을 이상하리만치 눈치채지 못한다. 결국 부바르와 페퀴셰가 손을 댄 프로젝트는 전부 우스꽝스럽게 꼬여버린다. 모든 실험은 망하고 요리는 못 먹게 되며 디자인은 망신거리로 전락한다. 새로운 성과를 선보일 때마다 이웃과 친구들에게 혐오감, 충격, 불신과 경멸감만 불러일으킬 따름이다. 그러나 완고하게 근대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두 주인공은 과거의 실수에서 교훈을 얻는 대신 불어나는 실패작 더미 위로 또 다른 기괴한 일들을 허겁지겁 벌여 놓는다. 절대적인 진리를 구하려 애쓰며 비극과 익살극 사이에서 진동하는 부바르와 페퀴셰는, 세상 모든 지식을 객관적으로 탐구하려는 태도가 의도치 않게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여주는 쌍둥이 상징물이다. 근대의 과학적 사고방식에 대한 신랄한 캐리커처인 이 소설은, 대상을 실증적으로 관찰하고 텍스트를 축적하며 수집한 정보를 배열하는 행위 너머에 언제나 그보다 중요한 ‘삶의 방식’이 있음을 알리는 선언문이나 다름없다. 부바르와 페퀴셰가 또 한 번 실패할 때마다 우리는 도서관이 단순히 지식을 담는 용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알베르토 망겔의 말을 빌리자면 도서관이 지닌 힘은 “독자가 페이지에서 건져 올린 뒤 다시 경험으로 살려 낸 경험, 즉 독자의 내면과 바깥 세계에 모두 반영된 언어에 있다.” (p.157-159)

 

 “(플로베르는) 오늘날에는 누구나 익히 알지만 당시에는 감춰져 있던 과학적 진보의 어두운 진실을 들춰냈다. 바로 모든 지식을 공평하게 다루려는 실험적인 태도가 너무도 쉽게 무관심으로 변질된다는 점이다.” 『성 안투안의 유혹』에서 독서라는 행위는, 푸코가 말한 “마법의 힘”을 입고 자유로운 연상 작용과 성좌의 다채로운 변형을 품은 불꽃이 되어 터져 오른다. 반면 두 필경사의 독서는 활기 없이 정체되어 있는데, 이는 근대 사회에 보편화된 ‘모든 지식을 공평하게 다루려는 태도’라는 방화벽이 불꽃이 튀어 오르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두 사람은 “책에 매혹당해” 있음에도 “도서관의 회색 지대”를 벗어나지 못한다. 정확성과 완전성에 대한 환상이 관찰한 바를 끊임없이 쌓아 올리기만 하는 따분한 과업에 그들을 가두고 말았다. 인간의 사고 활동은 분명 세심한 관찰과 엄격한 규율을 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새로운 의미를 구축하기에 역부족하다. 불완전한 관계들이 서로 자유롭고 변화무쌍하게 얽히면서 관찰과 규율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야만 비로소 상상이 피어오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는 끝이 없다. 플로베르가 말했듯 “어리석음은 곧 결론지으려는 마음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피 달린 법복을 차려입은 권력자들을 우리의 도서관에 들여 어떻게 읽고 무엇을 읽으며 읽은 책에 어떤 가치를 부여해야 하는지 가르치게 두는 것은, 도서관이라는 안식처의 숨결과도 같은 자유의 정신을 파괴하는 것이다. 비록 우리가 다른 모든 곳에서는 법과 관습에 얽매여 있을지라도, 도서관에서만큼은 아니다.” 오튼과 할리웰, 부바르와 페퀴셰의 이야기는 도서관 큐레이터의 임무란 바로 울프가 묘사한 ‘자유의 정신’을 전달하는 것임을 말해 준다. ‘환상들’은 공상의 산물도 자연 발생물도 아니며, 도서관을 하나의 큐레이토리얼 공간으로 여기고 세심하고 열정적으로 가꿀 때 그 안에서 자라난다. 그러므로 전시 관람객으로서의 독자라면, 푸코가 언급한 “호적 관리의 도덕”이 도서관에 적용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p.161-163)

 

 

나는 마흔에도 우왕좌왕했다 / 야나세 다카시 / 지식여행

 

 “호빵맨을 그린 게 저예요”라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깜짝 놀란다.
 아무래도 아흔 넘은 할아버지가 호빵맨을 그리고 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대충 쉰 전후라고 짐작하지 않는가.
 한편 쉰 살은 실제로 내가 호빵맨을 그리기 시작한 나이다. 이 작품은 1973년에 이르러 《호빵맨》이라는 그림책이 된다. 당시 평가가 상당히 혹독했기 때문에 수십 년 넘게 이어지는 시리즈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만화가로서 독립한 후, 무대 연출을 시작으로 시 잡지의 편집, 그림책 제작, TV 출연 등 들어온 일은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고 해왔다. 대표작이라고 내놓을 만한 만화 한 편 없이 수많은 선후배의 활약을 쓸쓸한 눈으로 좇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만화가로 살아갈 것을 단념하지 않았다. 꽉꽉 들어찬 만원 버스와 같이, 실력자들로 북적거리는 만화계에서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줄곧 서 있었다. 그러자 어느 날 눈앞에 있던 자리가 비었다. 칠십 세가 되기 직전, 호빵맨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한 가지 일에 마음을 담아 몰두한다면, 분명 어느 순간 눈앞의 자리가 빈다. 내 순서가 찾아온다. (p.49)

 

 복잡하게 보이거나 잘 모르는 일과 마주하면 호기심과 모험심이 샘솟는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은 대단한 기회다. 부탁을 받으면 “난 못 하겠다”고 거절하지 말고, 억지로라도 해보자. 미지의 세계와 마주하는 사이 그것이 또 다른 화학변화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인간관계가 넓어지기도 한다.
 일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법이다. 다양한 일을 통해 만난 사람이 언젠가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도 데리고 와준다. (p.57)

 

 칠십 년 가까이 일을 하면서 절실히 느낀 게 있다. ‘인생에서는 운이 7할 이상을 차지한다.’ 이때 말하는 ‘운’이란 ‘운을 하늘에 맡긴다’와 같은 의미가 아니다. 스스로 어떻게 해볼 수 없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운이 그렇게 수동적인 개념이라면, 노력할 필요가 없어지고 만다. 운이란 스스로 불러들이고, 스스로 붙잡는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 개척하고, 자신의 힘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운을 붙잡기 위해서는 하고 싶은 일을 그만두지 않고 꾸준히 해야 한다. 꾸준히 노력하면 성공한다지만, 동시에 그것 역시 운인 셈이다. 운을 기대하며 무작정 감나무 밑에 누워서 홍시가 입 안으로 굴러떨어지길 기다려봤자, 그런 기적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스스로 감나무에 올라가거나 기다란 장대를 이용해야만 맛 좋은 감을 손에 넣을 수 있다.
 나 역시 세상에 이름을 알리지 못했어도, 좀처럼 대표작을 내놓지 못했어도 꾸준히 만화를 그려왔다. 호빵맨은 그런 기나긴 세월이 낳은 ‘운’이었다. (p.67)

 

 기나긴 인생을 살아왔지만, 별의 수명과 비교하자면 백 살까지 산다고 하더라도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인간은 우주에서 바라보면 지극히 짧은 시간밖에 살지 못한다. 이렇듯 찰나의 인생이라면 될 수 있는 한 즐겁게 사는 게 좋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거울까. 무엇을 해야 가장 기쁠까. 내가 찾은 대답은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놀이’였다.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드는 것은 “맛있다!”는 말을 연발하며 맛있게 먹는 가족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다. 땀 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것은 사랑하는 가족의 행복을 지탱하기 위해서다.
 이것은 ‘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학문에 조예가 깊은 사람은 학문으로, 그림에 소질이 있는 사람은 그림으로,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은 노래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이 환하게 웃을 때 자신 또한 기쁨을 느낀다. 그래서 나 역시 사람들이 기쁘게 웃을 수 있도록 오랜 세월 만화를 그려왔다.
 내가 그린 만화를 읽고 아이들이 즐거워한다. 그 모습을 보면, 이번엔 내가 기쁨을 느낄 차례이다.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을 기쁘게 만드는 ‘놀이’를 할 수 있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행복하다.
 당신은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놀이를 하고 있나요? (p.81)

 

 오늘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인생 가운데 절반 이상을 실의 속에서 살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렇게 불행하지는 않았다.
 이따금 눈앞에 거대한 벽이 나타나, 그 어디에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유명한 선배에게 “잘 그리는데! 선이 정말 좋아. 나는 도저히 이렇게 못 그리겠다.” 하고 칭찬을 받을 때면 하늘이라도 날 듯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어렴풋하게나마 희망을 발견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선배는 누구에게나 “잘 그리는데! 나는 도저히 이렇게 못 그리겠다”라고 말하고 다녔다나 뭐라나.
 사람은 이렇듯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는 존재다. 누구나 행복한 인생을 살기를 바라고, ‘이렇게 되면 좋겠다’ ‘내일은 그렇게 될지도 몰라’ 하며 꿈을 좇는다. 그렇기에 힘을 낼 수 있다.
 어쩌면 실현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꿈은 꿈으로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꿈을 좇는다. 어느새 그것이 살아가는 보람이 되기 때문이다.
 꿈을 실현하는 것만이 인생의 목적은 아니다. 꿈을 향해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려고 하는, 그 힘이 소중한 법이다. (p.85)

 

 블록은 쌓으면 무너뜨리고, 무너뜨리면 다시 쌓는다. 영원하지 않다는 점이 블록의 숙명이다. 그렇다고 접착제로 고정하면 블록의 특색은 사라지고 만다.
 불꽃처럼 한순간에 사라지는 아름다움이 있는가 하면, 모래성이나 눈 축제의 얼음 조각처럼 일정 시간 유지된 후 사라지는 아름다움도 있다. 그리고 그런 작품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매달리는 장인도 있다.
 무대 예술은 아무리 근사하더라도 순식간에 모습을 감춘다. 영상으로 남겨놓을 수는 있지만, 무대의 생생한 감동을 전하는 데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맛볼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사람은 한순간에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더라도 만들고 또 만든다. 계속해서 연기하고, 노래한다. 무대 연출을 하면서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한편 그림책이나 시집은 오래오래 남는다. 금방 사라지는 것과 오래오래 남는 것. 어느 쪽이든 좋은 점과 그렇지 않은 점이 있기 때문에 무엇이 좋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다. 내가 아는 것은 둘 다 존재하는 것이 훨씬 좋다는 것뿐이다. (p.93)

 

 전쟁이 끝나자, 미국에서 슈퍼맨이라는 영웅이 등장했다. TV 방송이 시작되면서 일본 최초의 슈퍼 히어로인 월광가면이나 울트라맨 등도 나타났다. 하지만 그들은 굶주린 사람을 돕지 않는다. 하는 일이라곤 악당이나 괴물을 해치우는 것뿐이다.
 악당은 사람들을 속이거나 살상을 저지른다. 괴물은 도시를 파괴한다. 그런 녀석들을 멋진 영웅이 보기 좋게 쓰러뜨리면 “정의가 승리했다!”가 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누구를 위해, 그리고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분명치 않다. 괴물을 때려눕힐 때도 마을이나 숲을 파괴하고 만다. 그걸로 정의가 이긴 꼴이 된다. 어딘가 영 석연치 않다. 아무리 결전을 벌여도 정의의 영웅은 옷이 찢어지거나 더러워지지 않는다. 이 역시 이상하다.
 온갖 무기를 연달아 선보이면서 펑펑 요란하게 불길을 일으키는 영웅을 보고 박수 치며 흥분하다니. 일종의 ‘전쟁 찬미’처럼 여겨진다. 어린아이의 잠재의식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걱정스럽다.
 나는 이러한 의문을 시작으로, 진정한 정의를 실현하는 새로운 영웅을 그리고 싶어졌다. (p.119)

 

 라디오 방송국의 방송심의위원장을 맡은 적이 있다. 막상 회의에 나가니, 이것 참 재미가 없었다. 무료하고 따분했다. 그래서 모두에게 의견을 묻고, 좋은 아이디어를 낸 사람에게는 선물을 주기로 했다. 그러자 이 시간을 재미있어하고 기다리는 사람이 생겼다. 여기저기서 의견이 쏟아졌다.
 웃음은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만든다. 사물을 재미있게 바라보고, 재치와 유머로 받아들이는 자세는 무척 중요하다.
 그런데 TV에서 국회 중계를 보고 있노라면, 따분하기 짝이 없어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누가 총리가 되었든 무난하고 흠잡히지 않을 답변만 내놓을 뿐, 자신의 언어로 말하지 않는다.
 정치뿐만이 아니다. 일반적인 회의나 모임도 전혀 재미있지 않다. 진지한 사람이 많아, 무슨 일이든 무난한 게 제일이라고 생각해서일까. 특히 연설 같은 것은 좀이 쑤실 정도다. 그런 점에서는 웃음을 유도하는 미국 스타일의 연설을 배우면 좋을지 모르겠다.
 웃음 덕분에 사기가 올라 어려운 이야기도 원만히 마무리될 때가 많다. 모처럼 무언가를 할 바에는 품위를 지키는 선에서 재미있는 방식을 택하고 싶다. (p.167)

 

 

공정 이후의 세계 / 김정희원 / 창비

 

 미국에서 청년들의 학자금 부채는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한 사회문제다. 청년들의 3분의 1 정도가 학자금 대출로 인한 빚을 지고 있으며, 부채 규모는 국가 경제성장률보다 약 여섯 배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중이다. 청년들의 학자금 부채는 2021년 9월 기준으로 평균 약 4만 달러이고, 학자금에는 보통 5% 수준의 이자와 1% 수준의 수수료가 붙는다. 물론 훨씬 더 높은 이자가 붙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청년들이 졸업과 동시에 학자금을 바로 상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자는 계속 불어나고 많은 청년들이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빚을 갚는다. 믿기 어렵겠지만, 미국의 청년들이 학자금으로 진 빚을 완전히 갚는 데 소요되는 평균 기간은 20년이다. 40대가 되어도 여전히 밀린 학비를 갚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졸업 직후 5년 동안은 제대로 상환을 할 수 없어 대출금이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기도 한다. 팬데믹이 청년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악화시킨 것은 말할 것도 없기에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청년들의 학자금 상환을 일정 기간 유예해주거나 정부가 그 빚을 일부 갚아주는 방안이 논의되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기성세대들, 특히 공화당 지지자들이 이런 청년 구제책에 극렬한 반대를 표하면서 학자금 문제는 사회 갈등의 핵으로 급부상하게 된다. 이때 반대 논리로 내세워진 것이 바로 공정성이었다. 정부가 학생들의 빚을 대신 갚아주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입장은 다양한 듯 보였지만 사실 엇비슷했다. “나는 십수 년간 죽도록 일해서 이 나이에 빚을 다 갚았는데 왜 청년들의 빚을 탕감해주나? 이것은 불공정하다!” 나는 지난 시간 힘들게 일했고 오래도록 고생해서 빚을 갚았으니 당연히 모두가 똑같이 고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록산 게이는 전지구적 재난 상황에서 오히려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세대들이 이 같은 경직된 반응을 보이는 것에 분노하면서 미국인들은 내가 못 가진 것을 남이 갖는다고 느낄 때만 공정성을 들먹인다고 썼다. 남이 못된다고 내가 잘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도 덧붙이면서. (p.31-32)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한 한국에서는 대학입시 못지않게 이른바 ‘영재학교’ 입시 경쟁도 치열하다. 영재학교는 경기과학고, 서울과학고 등 과학영재학교 여섯 군데와 과학예술영재학교 두 군데를 통칭하는 이름이다. 영재학교 수험생들은 1단계 서류 전형을 거쳐 2단계에서 영재성과 문제해결력을 측정하는 시험을 보게 된다. 일부 기출문제들이 공개되어 있기도 한데, 짐작하다시피 상당히 어렵다. 그래서인지 영재학교 입학을 목표로 하는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준비를 시작한다고 한다.
 어떤 아이들이 이토록 어려운 시험을 통과할까? 능력주의의 원리를 따라 열심히 노력한다면 누구나 그만큼 좋은 성적을 거두고 영재학교에 합격할 수 있게 될까? 사교육 업계에 따르면 2021학년도 영재학교 최종 합격자 명단을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서울과학고 정원 120명 중 절반 이상인 66명이 대치동 A학원 출신, 경기과학고 정원 120명 중 절반 이상인 61명이 대치동 A학원 출신, 한국과학영재학교 정원 120명 중 절반 이상인 64명이 대치동 A학원 출신, 대전과학고는 정원 90명 중에서 절반에 살짝 못 미치는 41명이 대치동 A학원 출신이다. 합격자의 상당수가 전부 대치동에 있는 같은 학원을 다닌 것이다.
 이 결과를 어떻게 능력주의로 설명할 수 있을까. 중학생들의 능력과 노력은 대치동 A학원에 몰려 있나? 다른 중학생들은 노력을 하지 않았던 걸까? 복잡한 설명을 들이밀지 않아도 아마 우리 모두가 직관적으로 이해할 것이다. 아무리 밤잠을 자지 않고 공부해도, 그리고 뛰어난 수학적 재능을 가졌더라도, 학원은커녕 학교마저 폐교 위기에 처한 어촌 지역에서 태어났다면 영재학교 시험에 떨어졌으리라는 것을. 실은 그 마을의 누구도 그 아이가 수학적 재능이 있는지조차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조적 격차이자 불평등이다. 비수도권 지역 혹은 저소득층 가정에서 태어난 경우 경제력과 정보력의 차이를 더 이상 극복할 수가 없다. 물론 공교육 시스템을 통해 영재교육을 제공하고는 있으나 그마저도 질적 차이가 너무 커서 현장에서는 “서울 영재와 지방 영재는 수준 차이가 난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한다. (p.69-70)

 

 “문명”과 “비문명” 사이에는 몇 단계의 위계가 있을까. 우리는 그 서열에서 어디쯤에 자리잡고 있는 걸까. 사실 누구든 갑작스런 질환을 얻어 거동이 불편해질 수도 있고, 사고를 당해 장애인이 될 수도 있고, 뜻하지 않은 경제 상황으로 실업자가 될 수도 있다. 사랑하는 이를 갑작스레 떠나보내고 오랫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매일 아침 출근하는 것조차 어려워질 수도 있다. 우리는 모두 우리의 능력이나 노력과 무관하게 바람직함의 위계에서 곤두박질치거나 탈락할지도 모르는 삶을 살고 있다. ‘생산적이고 정상적인’ 시민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효율과 경쟁의 논리는 결국 우리도 그 시스템의 눈 밖에 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국가의 경제 상황과 정부의 정책 기조에 따라 우선순위는 언제든지 뒤바뀔 수 있기도 하다. 가령 특권층 남성들만 가득한 정부가 만들어내는 정책은 어떠하겠는가? 바람직함의 위계 최상단에는 아마도 모성, 출산, 양육 같은 가치들이 자리를 잡을 것이다. 저출생 시대에 아이를 여럿 낳아 헌신적으로 기르는 어머니가 가장 바람직한 여성상으로 전폭적 국가 지원을 받는 것이다. 여성과 성소수자를 위한 정책과 예산이 축소되거나 삭제되면, 결국 남겨진 협소한 자원은 여성과 성소수자 중에서도 특히 “바람직한 주체들”에게 돌아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비록 성소수자이지만 우등생”이라고 불리는 청소년은 장학금을 받을 자격이 있고, 단 한 번이라도 ‘일탈’했던 기록이 남아 있는 청소년에게는 순번이 오지 않을 것이다. (p.158-159)